사회적 질병 - 안전불감증과 책임회피 (폄글) / 한겨레신문 토론에서

2014. 4. 17. 21:10여행 이야기

 

 

 

 

      

사회적질병- 안전불감증과 책임회피
일상의 사유 2014/04/17 13:58   http://blog.hani.co.kr/depechemode/4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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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드라이브
노트북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 준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았다고 해서 거의 반사적으로 이 영화를 봤다.
영화는 현재와 15년전,경찰과 범법자,부유층과 그렇치 못한 층 등의 느슨한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전개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갈등의 고조는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한다,여기에 더해 감독 데렉 시안프랜스는 남자가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는 요소인 책임감을 곁들인다.
루크(라이언 고슬링)은 자기 혼자 먹을 수 있을 만치 되는 대로 일하고 마음내키는 대로 인생을 즐기는 남자다.
자기자신도 변변하게 책임 못질 것 같은 그가 어느날 갑자기 은행을 터는 이유는 단 한가지,그도 몰랐던 하룻밤 사랑놀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함을 아는 그는 물질적으로나마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한 민완경찰의 총에 죽고 만다.
루트를 죽인 경찰은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 물론 정당한 법집행절차였다.그 역시 루크의 총에 무릎을 다쳤고.
입원치료가 긑난 후 그는 심리치료를 받게 된다.
그에게도 아들이 있었어요.
아들이 있는 아버지를 죽였단 죄책감에 당신의 아들을 잘 마주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임상심리사의 말에 에이버리는 아무런 대꾸도 않는다.
에이버리는 은행강도 이전에 한 남자아이의 아버지를 죽였단 죄책감을 쉽게 떨구어 내질 못한다,더구나 그 아이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나이다.
물론 당신은 아버지란 동질성이외에도 부유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러는 것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에이버리는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주 부장판사이며 그 역시 아버지의 궤적을 따라 로스쿨을 졸업하고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적 삶이 보장된 업타운의 도련님으로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이력에 주요요소 한가지를 추가하려 그런 일선경찰에 지원한 것 인지도 모른다.
그 죄책감으로 에비어리는 15년 후 자신이 죽인 루크의 아들을 마주함에 전연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보다 더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두 남자...루크는 아들을 위해 은행강도도 마다않는 부성애적 책임감때문에 죽었고,에이버리는 모든 것을 떠나 한 아이의 아버지를 죽였단 죄책감에서 자신의 가정도 잘 건사하지 못할만큼 시달리며 중범죄현장에서도 아들보다 루크의 아들을 더 챙기는 외곬수적인 책임감을 보인다.
두 남자 모두 거칠고 모난 방법이지만 자신이 벌여놓은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멀리 남족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해상에서의 재난은 육상에서의 재난관 다르다.
육상에서야 어떻게든 발 가는대로 피함이 가능하지만 해상은 적어도 수영을 할 수 있어야 생존확율이 높아지고 그나마도 오랜시간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가 쉽다.
전쟁사에서도 해전에서의 사망자비율이 높은것은 그때문이다.
모쪼록 현재 행방이 묘연한 이들도 빨리 구조되길 바라마지 않치만 속속 들어오는 특보들을 보자면 안타까움과 모종의 분노에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먼저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태.
암초로 추정되는 것에 최초의 충돌로 배가 좌초되기 시작했을 때 왜 그들은 즉각적으로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거의 한 시간에 이르도록 그들은 구조요청을 하질 않았고 최초의 구조요청은 배에 탑승하고 있던 학생의 부모가 위험하단 자식의 연락을 받고 한 것이다.
만일 그 부모가 자식의 연락을 장난으로 치부했거나 주저했다면 구조활동의 시작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몸으로 느낄 정도로 배가 심하게 기울며 가라앉고 있는데 승무원은 선내방송으로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직접 나서서 탑승객들의 대피활동을 시켜도 모자른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속보들을 종합해서 잠정판단할 때 적어도 그 아수라장에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구조활동은 전연 없었고 위험을 감지한 몇몇 승객주도하의 대피만있었다.
해상에서의 사고 아니 거의 모든 그러한 종류의 재난은 최초의 행동이 아주 중요하다.
만일 첫 충돌 직후 승무원들이 바로 구조요청뒤 탑승객들에게 위험을 고지하며 구명조끼착복등의 조치를 취했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근 200명에 달하는 행방불명자가 나왔을까?
 
두 번째 안전불감증.
사고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아무리 사전예방을 한다고 해도 전연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항공기는 하이잭킹에 대비하여 탑승객수에 따라 사복경찰을 두명 이상 배치하고 갑작스런 사고에 대비 의사도 동승시킨다,물론 재난시의 대처요령도 상세하게 시범을 보이며 설명도 한다.
그럼 해상에선 어떨까?
침몰한 배는 여객선이라고는 하지만 자동차등의 무거운 화물도 상당량 실려 있었는데 그로 인해 야기 될 사고에 대한 대책은 해 두었을까?
화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탑승객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나온 형기방장한 고등학생들이었다,그것도 수백명.
들뜬 기분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소요상황에 대비해 과연 그 배에는 몇명의 안전요원들이 있었을까?
그런것은 같이 가는 선생들이 하지 않냐고?
생각해보시라,우리 수학여행갔을때 선생들이 잘 통제했던가?
그리고 이런 해상에서의 재난이 이번이 처음인가?
국가기록원의 해양사고 카테고리만 검색해도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잘 살펴보면 공통된 이유가 있다
바로 한계초과.
적정수 이상으로 무리하게 승객들을 태웠고 적정량 이상으로 화물을 실었으며 정규항로이탈,기상악화를 무시한 무리한 출항.
그리고 낙후되고 노화된 설비에 대한 시의적절한 교체미비.(이번 재난의 세월호는 지난 2011년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건조후 19년이 지난 기체였다,해양법상의 여객선실항한계연도인 20년을 지금 시점으로 계산해도 이미 넘었다,관계자는 적절한 검사들을 다 받았다곤 하지만 말이다)
더 말이 필요할까?
지킬것들을 그냥 그대로만 따랐으면 안 일어났을 재난들아닌가?
앞서 말한것처럼 아무리 예방하고 주의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재난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에서 굵직하게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한 그 많은 재난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그냥 임시방편적으로 차후 최대한의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공언하면 끝나는 일인가?
 
마지막 책임회피.
그러게 무대책의 대책으로 일관한 승무원중 선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구조되었다.
구조요청후 거의 바로 구조되었는데 그는 안전한 곳에 미리 대피해있었다.
탑승객들,아직 꽃도 채 피우지 못한 수백명의 학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저 혼자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판이 일자 회사측에선 변명이라고 구조대가 빨리 오라고 해서 그냥 내린것 일 뿐이란다.
선장이고 승무원이라면 그러한 재난시 자신보단 먼저 탑승객들의 안전을 염두해 두어야 하는게 상식아닐까?
선장이하 승무원들이 그렇게 무책임으로 일관했다면 정부는 어떨까?
현재 다각도로 구조활동을 벌이고는 있다지만 그건 이미 밥상 엎어놓고 치우는 형국이지 않을까?
과거 그렇게나 많은 해상재난을 경험했다면 적어도 그러한 일에 대비한 국가직속의 부서와 인명구조에 따른 물적인적자원확보에 적어도 일년에 단 한차례도 실재와 다름 없는 훈련을 반복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해양경찰에 군부대 그것도 모자라 잠수가능한 인원을 공개모집하고 도대체 그에 대한 대비는 아무것도 안한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바로 총체적인 책임회피다.
저 혼자 살자고 안전한 곳에 가있던 선장과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승무원.
구조신고 접수 후 부랴부랴 급하게 서둘러서 현장에 급파한 정부측.
낡은 여객선을 계속 운행케한 해운회사.
적절한 엠바고 없이 막무가내 식으로 오보를 거듭한 언론.
가장 압권은 박근혜다,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구명조끼입으면 아니 그것도 입었을지 안 입었을지도 모르고 침몰하는 배의 선실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데 지금 물속에 가라앉은 배안에 있는데 도대체 일국의 대통령이란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상상할수도 없다.
대통령이 이 지경이니 그 밑으로 말해 무얼할까?
그 구조활동도 그렇다.
간단히 말해 침몰하는 배는 침몰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방법은 잠수함을 동원하여 침몰하는 배 밑으로 보내 급부상하거나 아니면 정지한 채 구조활동을 벌이면 된다.
세월호 정도라면 잠수함 세척정도를 보내 배밑으로 나란히 붙여서 부상하면 적어도 침몰치 못하게 하거나 그 시간을 상당분 지연시킬 수 있다.
말도 안된다고?
미해군이 해전 시 침몰하는 아군전함들을 구할 때 쓰는 전술 중 하나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지말고 스크램불상태의 해군기지로 연락하여 조치를 취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우리 해군의 전력이 노출된다고 반문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럼 한미연합훈련에 나오는 그 첨단무기들과 장비들은?
설사 그렇게 군기밀이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사람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과 군기밀 과연 어느쪽에 무게를 두어야 하나?
일어나지 않았을,막을 수 있었을,죽지 않았을...이러한 재난에 우리는 얼마나 무기력함을 느끼고 얼마나 우린 그 책임회피에 분노하여야 할까?
먼저 간 한 많을 학생들께 조의를 표하고 구조활동에 여념없는 많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책임회피에 여념없는 이들에게 버큰헤이드호의 병사들을 소개한다,읽고 좀 느끼기 바란다.

영국인들은 해상에서 재난을 당하면 이렇게들 말하며 서로를 격려한다고 한다.
버큰헤이드호(號)를 기억하라.

1852년 영국해군소속 버큰헤이드호가 암초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배에 탄 사람들은 630명에 그 중 아이들과 여자는 130명.
상황은 구조선 세척인데 탑승인원은 60명으로 도합 180명만 탈수 있었다.
이것은 180명 이외에는 죽음을 맞아야 한단 말이다.
사련관 시드니 세턴 대령은 모든 병사를 집합케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구조선에는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태운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곳에 남는다.
만약 너희들이 서로 구조선에 타려고 뛰어들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서로 뛰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의 아내와 너희의 자식들도 모두 다 함께 죽는다.
자! 그럼 너희들이 이곳에 남고 너희 가족을 살릴것인가?
아니면 너희도 저 구조선에 뛰어들어서 모두가 함께 죽을것인가?
이것 뿐이다.

병사들은 동요치 않고 질서정연하게 부녀자들을 구명정에 태우기 시작했다.
모든 부녀자들을 구명정에 다 태웠을 즈음 한 사병이 세턴대령에게 말했다.
대령님! 저희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대령님께선 구조선에 오르십시오,그리고 우리의 가족들을 인솔하고 무사히 구조되게 그들을 지켜주십시오.

세턴대령은 뭐라고 답했을까?
나는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고싶지 않다.
이곳에서 자네들과 끝까지 함께함이 곧 나의 명예로운 운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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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세턴 대령은 사병 중 나이어린 사병들을 골라 억지로 구명정으로 밀어넣었다.물론 그 어린사병들도 나가려 하질 않았고.
세턴대령과 병사들은 침몰하는 배의 갑판에서 떠나가는 가족들을 바라본 채 서서히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느 한 사병 갑판위에서 움직이질 않았고 얼마안가 그들은 모두 침몰하는 배와 함께 물속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구조된 이들로부터 이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약자우선의 책임감이란 정언문구가 되었다.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