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영산대재 - 바라춤, 나비춤

2014. 11. 19. 01:11사진이야기

 

 

       강화 전등사 영산대재  - 바라춤, 나비춤

                         / 20140928 일요일, 맑음

 

 

 

 

 

 

 

바라춤 봉행

 

 

 

 

 

 

 

 

 

 

 

 

 

 

 

 

 

 영산재는 불.보살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찬탄하며

죽은 자에게는 극락왕생을,

산 자에게는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의식으로써,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 범패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도의 정신세계로 이끄는 불교무용 작법무가 어우러져

신, 구, 의(身 口 意) 즉 몸과 입과 마음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최상의 공양이며, 

부처님의 설법이 예술로 승화된 최상의 경지이다.

 

 

 

 

 

 

 

영산작법  점심공양 후 시작된 영산작법은 불,보살을 청정도량에 청하여  

 

불법을 듣고 감화하여 불법을 찬탄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의식으로 영산재의 핵심이다.

 

모든 영가에게는 극락왕생을, 살아있는 중생들에게는 깨달음을 얻는 진리의 등불을 밝히게 하여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법 공양을 하였다.  

 

 

구도의 도량에서 신성한 기운 속에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춤사위와

 

천신들의 음성공양은 깨달음을 성취하는 재의식에서 최상의 극치를 이루었다. 

 

 

- 다음 카페 < 지심귀명례 > 향공 님의

"조계사에서 열린 영산대재" 글 중에서 발췌 ...

 

 

 

 

 

 

 

 

 

 

 

 

 

 


범패는 불교음악을 이르는 말이고, 작법무는 불교무용을 말한다.

범패와 작법무는 수륙재, 영산재, 예수재 등과 같은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음악과 무용이다.

범패와 작법무 예능 보유자인 능화 스님은

"범패는 진리를 노래하고, 작법무는 진리를 춤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범패와 작법무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을 올림으로써

그 공덕으로 중생들의 안녕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불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의식을 행할 때 스님들의 노래를 통해 진행해 왔다.

범패와 작법무는 부처님 살아 생전에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역사상으로는 중국 3세기 전반에 조식(曺植·조조의 셋째 아들)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덕왕대의 승려 월명의 일화에서

범패가 신라에 전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작법무는 원효대사가 무애춤을 추며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기록에서

일찍부터 불교무용이 행해졌음을 살필 수 있다.

오늘날의 범패와 작법무는 신촌 봉원사를 중심으로 송암 스님

등이 계승하였고 그 문하에서 많은 스님들이 배출되었다.

 

 

- 경인일보 2014.1. 21일자 기사 중에서 발췌 

 

 

 

 

 

 

 

 

 

교의식은 불교에서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이며 주로 음악과 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의식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범패(梵唄), 무용을 작법 또는 범무(梵舞)라고 한다. 범패가 성음(聲音)으로 불전에 공양(供養)을 드리는 것이라면 작법은 신공양(身供養)으로, 즉 동작을 지어 불전에 공양을 드린다는 뜻이며 종교의식 무용인 까닭에 그 어느 무용보다도 정중하고 심오한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법무(作法舞)

 

    작법의 춤사위는 가락의 종류가 소수이고 움직이는 형태가 간결하고 평이하다. 또한 박자의 속도는 범패를 부르는 사람에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여 신축성을 갖으며 소수의 가락을 되풀이하며 춤을 춘다. 정중하고 엄숙하게 움직여지는 동작의 형태는 경건하고 신비성을 지니며, 정중동의 내재적인 양상은 심오한 감정을 풍긴다. 이렇게 작법은 일정한 장단이 없이 한없이 길게 뻗는 범패의 꺾임과 단락에 따라 부처님께 드리는 신공양인 것이다. 춤이기보다 순수한 예배의 자세가 저절로 피는 경건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것이 작법무일 것이다.

    춤사위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면 앞으로 전진하거나 뒤로 돌아오는 것은 교화를 의미하고, 원을 그리며 주위를 도는 것은 진리의 원만함을 나타내며, 손을 모았다가 폈다가 하는 것은 자비를, 몸을 굽히거나 뒤로 젖히는 것은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작법무에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세 가지가 있는데, 타주는 나비춤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별도로 분리하기도 한다.



바라춤

    바라춤은 「바라」라고 하는 서양악기의 심벌즈같이 생긴 기구를 들고 춤을 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라춤은 악귀를 물리쳐서 도량을 깨끗이 하고 아울러 마음도 정화한다는 뜻으로 추어진다. 바라춤은 불교의식 무용에서 가장 춤사위가 화려하다.


나비춤


   진행 동작이 조용하고 느린 나비춤은 연꽃을 양손에 들고 흰 장삼에 청. 황. 녹색의 대령과 홍색의 띠. 고깔 등 화려한 의상을 입는다. 그 모양이 마치 나비 같다고 하여 나비춤이라고 한다. 대개 작법무라 하면 나비춤을 말하고 추는 사람의 수에 따라 혼자 추는 향나비춤, 둘이 엇도는 쌍나비춤, 다섯이 어울려 추는 오행나비춤이 있다.


법고춤


   법고춤은 북(法鼓)을 두드리며 춤을 추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춤은 수행과 정진을 독려할 때나 아침. 저녁 예불시에 추게된다. 큰 사찰의 법고(대북) 앞에서 이른 새벽이나 황혼이 질 저녁에, 미망(迷妄)에 잠긴 중생의 번뇌를 덜어 주고자 북을 두드리는 모양이 법고춤이다.

 

 

[출처] 작법무(作法舞)|작성자 무구

 

 

 

 

 

 

 

 

 

**** 이 신석초의 <바라춤>은 400여행으로 장시(長詩)입니다.

시간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찬찬히 감상하시옵고,

바쁘신 분들을 위하여 이 시의 핵심부<본사 本詞>의 도입부를

아랫쪽에 따로 발췌하여 실었으니 혜량바랍니다.

 

 

이 한편의 장시를 고나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우리 전통문화와

우리 민족과 함께한 선도(仙道). 불교와 도교사상의 정수(精髓)가

이 시 한편에 녹아있는 듯한 소회를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의 글 <강화 전등사 영산재재 - 승무>에 인용하였던

- 조지훈의 <시의 원리>(珊瑚莊刊, 1956)에서 승무의

시작(詩作)과정을 설명한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  뒷날 어느 선배는 나의 시에서 언어의 생략을 충고하였으나

유장(悠長)한 선을 표현함에 구슬같이 밝고 가벼운 언어만으로서는 도저히 뜻할 수 없어

히려 리듬을 위하여 부질없는 듯한 말까지 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연(自然)한 해조(諧調)를 이루는 빈틈없는 부연(敷衍)은 생략보담도 어렵다는 것

나는 여기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 

 

<자연(自然)한 해조(諧調)를 이루는 빈틈없는 부연(敷衍)은

생략보담도 어렵다는 것>

동시대를 살다가신 신석초 선생님도 같이 느껴서

이러한 긴 장시를 낳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1941년 폐간본 문장지(誌)에 서사(序詞) 부분을 먼저 발표하고

마지막 본사(本詞)를 탈고한 1957년 까지 16년 동안

한편 시의 회태(懷胎)를 위하여 숱한 밤을 지새웠을 듯한

신석초 선생님의 장고(長顧)에 저절로 머리가 숙연해집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소중한 것 처럼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한 16년의 세월도 소중한 시간인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라춤 

        /  신석초

 

 

<서사>

 

묻히리랏다 청산(靑山)에 묻히리랏다

청산이야 번하리 없어라

내 몸 언제나 꺾이지 않을

무구(無垢)_한 꽃이언마는

깊은 절 속에 덧없이 시들어지느니

생각하면 갈갈이 찢어지는

내 마음 슬허 어찌 하리라

 

묻히리랏다 청산에 묻히리랏다

청산이야 변라리 없어라

나는 혼자이로라 --- 찔레 얽어진

숲 사이로 표범이 불러 에우고

재올리 바랏소리 빈 산을 울려

쨍쨍 우는 산울림과 밤이면 달 피해 우는

두견이 없으면 나는 혼자이로라

 

숨으리 장긴 뜰 안헤 숨으리랏다.

술으어 보살이 아니시이련

공산 나월(空山蘿月)은 알았으리라

괼 때도 필 데도 없이 나는 우니노라

혼자서 우니노라

아아, 적막한 누리속에 내 홀로

여는 맘을 어찌하리라.

(밤들어 푸른 장막 뒤의

우상(偶像)은 아으 멋 없는 장승일러라)

 

낮이란 구름 산에 자고 일어 우니노라.

밤이란 깊고 깊은 지대방에 잠 못 이뤄 하노라.

감으면 꿈결같이 떠오르는 마아야의 그리메,

가슴 속에 솟아오르는 오뇌의 불길이

꽃바리에 타는 향연 같도소이다.

 

아아, 오경 밤 깊은 절은 하마 이슷하여이다.

달 밝은 구름 창에 이운 복사꽃이

소리없이 지느니,

사람도 늙어서 저처럼 이우는가,

꿈 같은 사바 세월이 덧도

없으니이다.

 

천만 겹 두른 산에 들리나니

물소리!

어지러운 시름의 여울 속에

보살도 와서 어릴 거꾸러진

유혹의 진주를 남하 보리라.

피어 오른 꽃잎의 심연 속에

달디단 이슬이 듣도소이다.

 

시름도 성체도 부질없는 우상이니다.

팔계 쇠성이 모두 다 성이 가시이다.

시왕전에 드린 원은 봄눈처럼 사라지니이다.

가사 어러 메여, 가사 어러 메여,

바라를 치며 춤을 출거나.

가사 어러 메여, 가사 어러 메여,

헐은 가슴에 축늘어진 장삼에

공천풍월을 안아 누워,

괴론 이 밤을 고이 세우고저.

괴론 이 밤을 고이 세우고저.

몸아! 맨몸아! 푸른 내 몸아!

마의 수풀을 가노라.

단꿈은 끝없는 즐김을 좇아,

꽃잎 저 흐르는 여울을 가노라.

바다로 여는 강물을 뉘라 그지리오.

어느 뉘라 그지리오.

 

불타는 바다 위에, 불타는 바다 위에,

난 던져진 쪽달일레라.

사갈나 너른 들에 버려진 쫓가질레라.

이슷한 사라릐 장삼 속에 꿈 어리는

몸이 부엿한 물 같으니다.

아슬히 나는 미쳤에라.

나는 짐승이 되었에라.

마라의 짐승이 되었에라.

내 혼과 몸의 씨앗을 쪼갤

빛날 장검을 나는 잃었는가.

숙명의 우리 안에, 날 지닐

오롯한 자랑을 나는 잃었는가.

 

묻히리란다. 청산에 묻히리란다.

청산이 변할 리 없어라.

 

나는 절로 질 꽃이어라.

지새어 듣는 법고 소리!

이제야 난 굳게 살리라.

날 이끌 흰 백합의 손도, 바람도,

아무것도 내 몸을 꺾을 리 없어라.

 

 

 

 

 

- 계속 -

 

 

 

 

 

 

 

 

 

 

 

 

 

 

 

 

<본사>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 없는 꽃잎으로 살어여러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 소리를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서러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접동새, 우는 접동새야!

네 우지 말아라

무슨 원한이 그다지 골수에

사무치길래,

밤중만, 빈 달에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느니.

 

이화(梨花) 흰 달 아래

밤도 이미 삼경인 제,

승방(僧房)에 홀로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나니,

시름도 병인 양하여

내 못잊어 하노라.

 

 

아아, 헛되어라 울음은

연약한 속임이여.

수유에 빛나는 거짓의 보석이여.

내가 호숫가에 쓸쓸히

설레는 갈대런가

덧없는 바람 달에

속절없이 이끌리는

값싼 시름의 찌꺼기여.

 

적멸이 이리도 애닯고나.

부질없는 일체관념(一切觀念)이여.

영생의 깊은 수기(授記)

하마 허무하여이다.

관념은 모두 멸하기 쉽고

잠든 숲속에 세월이 흐르노라.

어지러운 윤회의

눈부신 여울 위에

변하여가는 구름 연기

시간이 남긴 사원 속에

낡은 다비만 어리나니

세월이 하 그리 바쁜 줄은 모르되

멎는 줄을 몰라라.

 

덧없이 여는 매살한 꽃이여.

창 밖에 피인 복사꽃도

바람 없이 지느니

하물며 풍상을 여는 사람의

몸이야 시름한들 어이리

오오, 변하기 쉬운 꽃여울이여.

내 아리따운 계곡에 흐느껴

우는 소리

내몸 잔잔한 흐름 위에

홀연히 여는

아아, 속세의 어지러운 진루(塵累).

허울 좋은 체념이여

팔계(八戒) 게송이 모두 다

허사런가

숙명이 낳은 매혹의 과실이여.

묻혀진 백옥의 살결 속에

묻혀진 백옥의 살결 속에

내 꿈꾸는 혼의 슬픈

실연이 있어라.

다디단 꽃잎의 이슬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애끓는 여울이여

길어도 길어도 끊이지 않는

가슴속의 샘물이여.

 

눈물이 꿰어진 진주 다래라면

눔비니 밝은 구슬성도

이루지 안했으랴.

눈물이 꿰어진 진주 다래라면

수미 높은 뫼도 아니

이뤘으랴

눈물이 흘러 이내 흔적이

없으니

내 그를 애달퍼하노라.

  전이(轉移)의 물결 위에

내 끝내 지는 꽃잎으로 허무히

흘러 여는다.

 

다만 참된 건 고뇌하는

현유(現有)의 육신뿐인가.

순간에있는 너 삶의 빛깔로

벅차 흐르는 내 몸둥어리

순수한 욕구로 불타오르는

꽃송아리

황홀히 타는 구슬의 꽃술 속에

망령된 시름하는 나비들은

금빛으로 날아

빗발처럼 쏟아지느니

 

깊은 산 유리 속에 홀로

선 내 모습이

하마 청산의 허재비 같으니다.

 

장근 동산이 날 에워

한 조각 여는 구름모양

저 영을 넘지 못하는다

내 안에 내 안 내 누리 안에

무닐 수 없는 장 벽이 있도소이다.

아아 애절한 구속의

모래문이여.

 

넓은 천지간에 속세를 등져

깊이 숙여 쓴 고깔 밑에

고이 접은 네 아미

 

죄스럼과 부끄러움을 가려

그늘진 푸르른 정의(淨衣)

남몰래 앓는 백합을 어리는

빈 산 칡 달은 하마 휘엿하여이다.

야심경 호젓한 다락에

들리느니 물소리만 요란한데

사람은 없고 홀로 타는 촛불 옆에

풀어지는 깃 장삼에

장한이 너울져

춤추는 부나비처럼

끝도 없는 단꿈을 나는 좋니노이다.

 

아아, 고독은 죄스러운 .

사념의 뱀을 낳는가

내 맘 그윽히 떠오르는 마아야

남 몰래 떠오르는 꿈결 같은

마이야의 손길.

.........

 

천만 겹 두른 산에

어리고 서린 두렁칡이

밋밋한 오리나무를 친친 감아 얽으러져

제멋대로 살어 연다.

사람도 저처럼 어러져, 멋대로 살어 열까

바람도 그리움도 천만 없소이다.나는.........

절로 피인 꽃이니다.

만개한 꽃의 매력으로 부풀어오른 몸뚱어리

오오, 순수한 장미의 덩어리여.

바람으로 솟은 둥실한 도리(桃李)의 메여

 

팔상(八相)에 이끌리는 무릇 재앙의 씨여

오오, 끊기 어려운 삼계(三界)의 질긴 연()이여

내가 오히려 사갈나의 꿈속을

얼 없이 헤매느니

광풍에 지부친 뱃사공처럼

물 아래 세 가닥 모래

깊은 웅뎅이를 보지 못하는다.

 

`보리살타`오오,

`보리살타`나무 여래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지장보살

 

중생을 건지신 높은 덕에

청정한 크신 법에

내 몸을 바침이 내 평 생의

원이니다.

 

시방 너른 하늘 아래

시방 너른 하늘 아래

내 몸이 한낱 피여지는 꽃이니다.

첩첩한 구름산에 남몰래 살어지어다.

살어지어다.

그러나 오오 그러나

사바를 꿈꾸는 나여. ()에 이끌리는 나여.

오오, `마라`,`마라`

오뇌의 이리여.

바람 속에 달리는 들짐승이여

 

네가 만약 장송에 깃들인 학 두루미라면

구름 잠긴 영()에 흰 날이 흐르는 제

구천 높이 솟아 훨훨 날아도

여지 않았으랴

내가 적막한 기와 우리 속에

차디찬 금빛 소상 앞에

엎더져 몸부림하는 시름의 포로가 되어

감은 치의(緇衣) 속에 솟아오르는 오뇌의 불길이

꽃바리에 타는 향연 같도소이다.

 

오경 밤 기운 절에 헤매는

바람결에 그윽히 우는 풍경 소리

상방 닫힌 들창에 꽃가지

흔들려 춤을 추고

창 밖 구름 뜰에 학도 졸아

밤이 더욱 깊으메라.

쓸쓸한 빈 방안에 홀로 일어 앉아

남몰래 가사 장삼을 벗도소이다.

벗어서 버린 가사 장삼이

방바닥에 흐트러져

푸른 못 속에 뜬 연꽃 같으니다.

 

누우면 잠이 오며

앉으면 이 시름이 사라지랴

이제 누운들 어느 잠이 하마 오리

어지런 시름숲에 누워 앉아

홀로 밤을 새우나니

서역 먼 길은 꿈속에도 차노메라.

겁겁(劫劫)에 싸인 골은 안개조차 어두메라.

극락이 어디메뇨 가는 길도 모르메라.

 

오오, 스님. 바라문의 높으신 몸이여.

금석같이 밝으신 맘이여.

하해같이 밝으신 품이여.

백합같이 유하신 팔이여.

날 어려지이다 어려지이다

이 밤 어려 자는 목숨이 하마 절실하여이다

가뭇없는 속세의 티끌로 나는 가느이다

`사바세계``일체고액`을 넋에 지고

여느이다.

스님 오오, 모진 이 창생을 안아지이다 

 

 

 

 

- 계속 -

 

 

 

 

 

 

 

 

 

 

 

 

 

 

 

 

가사 어러메어 가사를 어러메어

바라를 치며 춤을 출까나

가사 어러메어 가사를 어러메어

헐은 가슴에 축 늘어진 장삼에

공천풍월(空泉風月)을 안아 누워

괴론 이 밤을 고이 새우고저

괴론 이 밤을 고이 세우고저

지루한 한평생을 짧게 살어여지이다.

수유에 지는 꿈이 소중하여이다.

다디단 잊음이 영역으로 이끌어가는 육신의 발원이여

게으름에 길길이 풀어지는 보석 다래여

천길 구름샘에 폭포가 쏟아져내리노이다.

 

아아, 나는 미쳤는가

나는 짐승이 되었는가

마라의 짐승이 되었는가.

속세에 내린 탐람한

암삭슴이 되었는가.

제가 제 몸을 얽는

관능의 오랏줄이여.

아스리 나는 미쳤어라.

유혹을 버리리라.

나는 거룩한 얼을 잃었어라.

형산(荊山) 묻힌 백옥같이 청정한

예지의 과일을 나는 잃었어라.

 

환락은 아침 이슬과도 같이 덧없느니,

오오, 미친 상념이여.허망한

감각이여.

물결이 왔다 철렁 달아난

빈 모래 펄이여.

흐트러진 젖가슴에 희한의

바람이 휘돌아 불어

내 안이 텅 빈 동굴 같으니다.

꽃 지는 산 다락에 울어예는

귀촉도

영정한 저 소리만

어지러운 물소리에 적녁히 굴러

잠자지 못하는 사람의

깊은 속을 울리노라.

 

열치매 부엿한 둥근 달이

꽃구름에 어려

둥실 날은 추녀 위에

나직히도 걸렸어라

깊고 높고 푸른 산이 날 에워

네 골은 비어 죽은 듯 고요하여이다.

접동새. 우는 저 두견아.

어느 구름 속에 네가 울어

짧은 밤을 새우는다.

두견아, 네가 어이 남의 애를

끊느니.

쿵쿵 흐르는 물소리도

네 울음에 겨워 목이 메이노라.

 

물가에 내려 이슷한 수풀 속에

내 벗은 꽃 같은 몸을 씻노이다.

공산 잠긴 칡 달이 물 위에 떠

금빛으로 흐르메라

휘미진 여울에 빠져 흔들리는

내 고운 모습

 

여울에 잠근 하얀 진주 다래여.

물거울에 흐트러졌다 다시

형체를 짓는 보석의 더미여.

네가 물같이 흐르지 못하여

빠진 달같이 구름 샘에 머무느니.

 

모양에 갇힌 포말의 꾀여.

내가 이 맑은 경()에 와

죄업의 티끌을 씻노라

적막은 푸른 너울처럼 감돌고

부풋한 아리따운 형태의 반영에

고혹하는 비밀의 힘은 살아나노나.

아아, 몸과 영혼은 영원히

배반하는 모순의 짝이런가

씻어도 씻어도 흐려지는 관념형태여.

 

물아. 흐르는 물아. 철철 흐르는

물아.

풀어진 네 몸은 행복도 하여라

응고되지 않는 네 형체

번뇌도 시름도 없으리.

천 가닥 흩어지는 구슬 골짜기

네가 풀어져 흘러 산 밖으로 여는다

언제나 새로운 근원

흐려지지 않는 순수한 샘이여.

 

!.........

새벽 종이 우노라

밤이 이내 지새련다

! ! 종이 우노라

종소리 굴러 물소리에 흔드노메라

소쇄한 유리 속에 넌즛 선 나

고독한 나여.

여명은 참으로 모든 형체를 드러내고

물체와 영상을 나뉘노라

보랏빛 수풀 위에 흐려지는 달 그리메

푸른봉우리가 이곳 가까이 다가서노나

 

청산아 네 거룩도 하여라.

구름에 솟은 바위도 자라나는 나무도

어둠에서 되살아나

불멸의 빛을 던지노라.

네가 날 위해 날 위해

언제나 있어주렴

그러나 부세(浮世)를 그리는 나

내 몸에 소용돌이치는 숙명의

부르짖음이여.

아아(峨峨)히 솟은 푸른 봉에 밝아 오는

숲 바다

밀밀한 나무가 금빛 니우리를 흔들고

지금 아침태양은 장미꽃으로 벌어지노라

가지 끝에 자던 새들 잠 깨어

생생히 우지진다.

 

, , 북이 우노라.

두리둥둥, 아침 법고가 우노라.

천수 다라니 염불 소리

가사 장삼에 염주를 목에 걸고

아침 재를 올리느이다

아아, 우상에 절하는 어리석은 무리

서글픈 위선자여. 거지의 청신녀(淸信女).

꿈도 시름도 비명으로 사라지리

시간은 혼미에서 깨어나느니

아침 빛깔이 화려하게 불타

자잘한 삶의 소리 일어나노라.

 

북소리 염불 소리

염불 소리 물소리

물소리 바라 소리

바라 소리 물소리

물소리 흘러

종소리도 흔드노메라.

 

일만봉 구름 속에 울어예는 산울림

미풍은 참으로 내 젖가슴을 틔우고

첩첩한 산허리에 장미의 숲을

건느노라.

, 늘어진 장삼에 소매를 떨쳐

그윽한 저 절을 내린다

무위한 슬픈 계곡을 나는 내린다........

()

 

<석초시집, 1946>

 

 

 

 

* 불교적 언어를 통하여 불교 정신을 상징 묘사하고 있는

무려 400행이 넘는 장시이다 <문장 폐간호 1941.4>

서사(序詞) 부분이 실리고 전문은 1957년 탈고되었다.

 

제행무상의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엄격한 구성과 고전적 심미성,

그리고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영향으로 그 말씨와 가락 등의

의고적인 형식미를 현대적으로 살리고 있다.

 

 

 

 

 

 

 

 

 

 

 

 

 

 

 

 

 

 

 

바라춤  ㅡ   신석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 없는 꽃잎으로 살어여러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내 홀로

​​다만 내 홀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서러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장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 오, 형체.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이라는 형역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 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주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바라춤’은 승무(僧舞)의 일종으로, 부처에게 재(齋)를 올릴 때

천수다라니경을 외며 바라를 치면서 추는 춤이다.

이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원래 <바라춤>이라는 표제시로 모두 402행으로 구성된 장시(長詩)이다.

 

  이 시는 ‘바라춤’이라는 제재를 통해 세속적인 번뇌, 인연, 욕망과

것을 끊고자 하는 종교적인 승화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조지훈의 <승무>와 제재 및 갈등 구조가 유사하지만,

<승무>와는 달리 이 작품에는 춤 동작에 대한 묘사가 없고,

 내적인 갈등이 더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점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정신과 육체, 감각과 관념, 상승과 하강 간의 격렬한 갈등과 충돌을 노래한다.

 또한 불교나 노장 사상 등 동양 사상이 <바라춤>의 출발점 또는 모태를 형성한다.

이러한 제작 동기를 볼 때 <바라춤>은 우리 시가 문학의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불전에 재(齋)를 올리며 '바라춤'을 추고 있는 상황에서

속세의 온갖 욕망과 번뇌를 극복하고자 하는 소망과 갈등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 이 시에 나타난 사상적 배경

 

  불교 사상뿐만 아니라 노장 사상도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최고선에 도달하고자 하는

무위자연의 도가 사상과 ‘꽃’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는 서정적 자아의 심정이 상통한다.

 

 작가는 세속적인 번뇌로 갈등하는 모습을 종교로써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신석초 [申石艸]

 

1915. 6. 4 충남 서천~ 1975. 3. 8.

시인.

 

전통적 리듬을 빌려 옛 것, 사라져가는 것, 찰나의 것을 즐겨 읊었다.

 본명은 응식(應植), 일명 유인(唯仁), 호는 석초(石艸 또는 石初).

 

고향에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학을 배우다가

1925년 서울로 올라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몸이 아파 중퇴했다.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철학과에 들어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선 프롤레티라아 예술가 동맹(KAPF) 맹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에는 〈신조선〉의 편집일을 했으며, 1948년 한국문학가협회 문화부장,

1954년 〈한국일보〉 기자로 들어가 1957년 논설위원 겸 문화부장을 지냈다.

1960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65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5~66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등을 지냈다.

 

 

 

 

 

 

 

 

 

 

 

 

 

 

 

 

 

 

 

 

 

나비춤 봉행

 

이 조계종 전통문화보존회의 지도교수님이신 비구니스님들이

봉행한 나비춤에서는 양손에 연꽃, 모란 등 꽃을 들지않고,

얇은 사(紗) 장삼 넓은 소매로 양손을 가려

더욱 깊은 청정심을 우러나게 하였다.

 

 

 

 

 

 

 

 

 

 

 

 

 

 

 

 

 

 

 

 

 

 

 

 

 

 

 

 

 

 

 

 

 

 

 

 

 

 

 

 

 

 

 

 

 

 

 

 

 

 

 

 

 

 

패랭이꽃 - 원예종

 

 

 

 

 

 

 

 

 

비목나무 열매

 

 

 

 

 

 

 

 

 

비목나무 열매

 

 

 

 

 

 

 

 

 

 

 

 

 

 

 

 

 

 

부도탑으로 가는 석재다리

 

 

 

 

 

 

 

 

 

삼랑성 성벽

 

 

 

 

 

 

 

 

 

고마리

 

 

 

 

 

 

 

 

꽃잎 절구(絶句)

 

신석초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시문학’, 11, 1972.6

 

 

 

털별꽃아재비

- 북아메리카 원산인 일년초

 

 

 

 

 

 

 

참고자료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短命)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라며 김진섭은 그의 수필 <백설부>에서

백설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바 있다.

 

김진섭의 표현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영원하지 못하기에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도 그처럼 짧은 순간 동안 존재하는 꽃의 아름다움을

인간 세계로 전이시켜 충실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꽃은 비바람에 뒤설레가냘픈존재이지만,

강렬한 생명력으로 다토아 피어난다.

하면서도 뜨거운 생의 욕구를 지닌 꽃의 모습을 제시한

1연에 이어 2연에서는 꽃의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꽃은 자신의 생애에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하늘과 구름혼자 그리워함으로써 조금씩 붉어져간다.

의 그 붉은 빛은 바로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리움이 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머언 여로의 유한적(有限的) 존재인 꽃이지만,

하늘과 구름이라는 이상을 그리워하기에 꽃이 더욱 붉어진다고 시인은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시상의 흐름이 보다 더 강한 어조로 나타난다.

피어 있던 아름다운 순간을 지나 마침내 꽃은 떨어져 어느 저문 산 길가에 뒤둥근다.

그렇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웠던 것처럼

자기의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의 몸을 붉게 태우는 것이다.

 

물론, 꽃은 모든 생물의 대유이자 인간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비록 짤막한 소품이지만,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붉게 타다 가는 / 환한 목숨의 꽃잎처럼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자기 삶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고마리

 

 

 

 

 

 

 

자주개자리

- 지중해 연안 원산,

전초는 사료용,방목지용, 건초용

Alfalfa라고 알려진 목초임.

 

 

 

 

 

 

 

 

미국가막사리

북아메리카 원산의 1년초

 

 

 

 

 

 

 

낭아초 

꽃은 관상용, 뿌리는 약용

 

 

 

 

 

 

 

 

낭아초

 

 

 

 

 

 

 

 

 

 자주개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