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7. 14:53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산딸기와 닮은 닥나무 열매
남해 화방사 산닥나무 군락지
▢ 닥나무
사람들은 문명사회로 접어들면서 무언가를 기록해 두고 싶은 강한 욕망이 생겼다. 처음에는 바위를 쪼아 무엇을 표현하다가 문자를 발명하면서부터 나무껍질이나 동물가죽, 조개나 거북껍질, 비단 같은 곳에다 쓰고 그렸다. 그러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보다 값싸고 한꺼번에 많은 문자를 쓸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다. 서양에서는 이집트의 나일강변에 야생하는‘파피루스(papyrus)’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을 저며 서로 이어서 사용했다. 종이라고 하기에는 엉성했지만 오늘날‘페이퍼(paper)’의 어원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후한(後漢)시대 채륜(蔡倫)이 서기 105년에 마(麻)부스러기, 헝겊조각, 어망 등을 재료로 하여 종이를 만들게 된다. 최근에 그 이전인 전한(前漢) 시대에도 종이가 사용되었음이 밝혀져 종이 발명시기를 좀 더 올려 잡고 있다. 어쨌든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서양보다 동양이 한 수 위였다. 종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면서 제조기술의 발전과 함께 원료확보가 문제였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나무, 뽕나무, 소나무, 버들나무 껍질에서부터 갈대, 율무, 짚, 솜에 이르기까지 섬유를 가진 식물이면 거의 종이 원료가 되었다.
여러 가지 식물섬유를 찾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종이와 찰떡궁합인 닥나무를 찾아냈다. 닥나무의 껍질에는‘인피섬유(靭皮纖維)’라고 하는 질기고 튼튼한 실 모양의 세포가 가득 들어있다. 또한 환경 적응력이 높아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매년 새 움에서 나온 가지를 잘라 사용하므로 작은 관목으로 알고 있으나, 그대로 두면 지름 10~20㎝까지 자란다. 한 나무에 달걀모양의 잎과 가장자리가 깊게 팬 잎이 같이 달린다. 암꽃은 마치 짧은 실을 수없이 달고 있는 작은 구슬 같은 모양으로 오뉴월에 핀다. 열매는 초여름에 주홍색으로 익는다.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오랜 시간과 손이 많이 간다. 늦가을에 닥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통에 넣고 찐 후 껍질을 벗긴 후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겉껍질을 제거하면 하얀 안껍질만 남는다. 다시 솥에 넣고 나뭇재를 섞어 삶는다. 그런 다음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절구로 찧거나 떡판에 올려놓고 두들겨서 껍질이 흐물흐물해지게 한다. 이후 통에 넣고 물을 부어 잘 섞은 다음 닥풀을 첨가하여 발로 김을 뜨듯이 한 장 한 장 떼어낸다.
내가 처음 의령경찰서 궁유지서에 부임했을 때(1976년6월)만 해도 이런 방식으로 종이를 만들고 그 종이, 즉 한지에 그림을 그리고 병풍을 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궁유와 봉수는 한지와 병풍이 유명했었다.
닥나무 종이는 제조과정이 복잡하고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었지만, 품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다. 당연히 공급이 달려 닥나무 확보에 애가 쓰였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재배를 권했으며, 조정에서는 재래종 닥나무 재배 독려에 그치지 않고 재료 다변화를 꾀했다. 조선 초기에는 품질 좋은‘왜닥나무’를 수입해 널리 심었다. 가지가 세 개로 갈라지는 삼지닥나무와 싸리 비슷하게 생긴 산닥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한 왜닥나무다. 삼지닥나무는 꽃도 아름다워 오늘날 남부지방의 절 근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산닥나무는 남해 화방사에 있는데 천연기념물 15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종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낙랑시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나 널리 보급된 것은 삼국시대인 6~7세기로 본다. 실제 현물 종이가 발견된 것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석가탑에서 나온‘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더욱 발전했고, 종이발명의 원조인 중국에서도 품질을 알아주었다.
*화방사 산닥나무
닥나무를 목안피(木雁皮)·요화(蕘花)·황안피(黃雁皮) 등으로 나타내는데《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는‘왜저(倭楮)’도 산닥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반계수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래종 닥나무보다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왜저가 종이의 질을 좋게 하므로 인조 때에 일본으로부터 종묘가 들어왔고, 주로 우리나라 남쪽 해안지방에서 재배되었다고 한다.
《문헌비고》에 남쪽도서지대와 해안지대에 왜저가 많다고 하였으며, 경주· 울산·고성·거제·풍천 등에 있다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들이 종이 만드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산닥나무도 절 근처에 심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주 《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0) | 2019.03.04 |
---|---|
[스크랩] 오리나무와 오동나무 그리고 벽오동 (0) | 2019.01.27 |
[스크랩] 파피루스...성경이 기록된 종이 (0) | 2019.01.27 |
[스크랩] 쥐엄나무(하루빔나무, 구주콩나무) (0) | 2019.01.27 |
[스크랩] 파피루스(종이방동사니) (0) | 2019.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