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2019. 3. 4. 04:09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중국인문과학
樂民(장달수)|조회 21|추천 0|2018.12.30. 14:13                                    http://cafe.daum.net/jangdalsoo/j36U/646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신 방 방*^1)


―――――――――――――― < 目 次 > ――――――――――――――

Ⅰ.《광군방보》의 서지사항 및 구성
1.《광군방보》의 서지사항
2.《광군방보》의 구성
Ⅱ. 《광군방보》역주의 범위와 방법
1. 역주 범위
2. 역주 방법
Ⅲ. 역주 대상의 내용 분석
1. 매·난·국·죽 품종 고찰
2. 휘고(彙考)와 집조(集藻) 고찰
Ⅳ. 역주《광군방보》의 학술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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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광군방보》의 서지사항 및 구성

1.《광군방보》의 서지사항

   본고는 청나라 때 만들어진 식물에 관한 방대한 저서인《광군방보》가운데 매보·난보·국보·죽보를 선역(選譯)한 것이다.
《광군방보》는 전칭《어정패문재광군방보(禦定佩文齋廣羣芳譜)》라고도 한다. 강희(康熙)년간에 왕호(汪灝) 등 다섯 명이 
황제의 명을 받아 명나왕상진(王象晉)1)《군방보(羣芳譜)》2)를 바탕으로 첨삭하여 편찬한 실용적인 식물학 대작이다.


* 전남대학교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 박사 수료


1) 왕상진(王象晉): 1561-1653. 명나라 산동(山東) 신성(新城) 사람으로 자는 신신(荩臣), 자진(子進), 또한 삼진(三晋), 강후(康候)이고 호는 

강우(康宇)이며 스스로 농거사(農居士)라고 칭하였다.
2) 《군방보(羣芳譜)》: 또한 《이여정군방보(二如亭羣芳譜)》라고도 한다. 명(明) 천계(天啓) 원년(1621)에 왕상진(王象晉)이 저술한 것이다. 

그 체례는 송나라 때 진경기(陳景沂)의 《전방비조(全芳備祖)》를 따라 한 것이며 전 책은 총 28권으로 천보(天譜), 세보(歲譜), 곡보(穀譜), 

소보(蔬譜), 과보(果譜), 차죽보(茶竹譜), 상마갈보(桑麻葛譜), 약보(藥譜), 목보(木譜), 화보(花譜), 훼보(卉譜)와 학어보(鶴魚譜)로 나뉘어 있다. 

각 보마다 먼저 소서(小序)에서 보(譜)를 지은 의도를 설명하고 다음에는 수간(首簡)에서 본 보(譜)의 제요를 요약하고 역사 문헌을 기술하며 

마지막으로는 식물들의 형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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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군방보》는 총 100권으로 원래《군방보》중에서 기능으로 분류한 체례에 따라 각보(譜)의 항목을 다시 수정하여 편찬하였

다. 천시보(天時譜)를 제외하고 나머지 각 보는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식물의 이름, 형상(形狀), 재배 방법, 지리분포 

등을 고증하고, 그 다음에는 휘고(彙考)라 하여 식물과 관련된 옛 인용 사실을 밝히며, 마지막으로 집조(集藻)라 통칭한 것으로 

식물과 관련된 역대 서(序), 설(說), 문(文), 제발(題跋), 변(辯), 전(傳), 기(記), 잡저(雜著) 등 문학 작품을 수록한다.3)

   이 책의 판본은 청강희각본(淸康熙刻本) 외에 청나라 때 고소(姑蘇), 서재(西齋), 강좌서림(江左書林) 등 각본이 있었다. 

지금 세상에 전해진 간본 중 가장 이른 것은 동치(同治) 7년(1868)에 간행된 것이었다. 그 후에 금장서국석인본(錦章書局石印本

), 만유문고본(萬有文庫本), 국학기본총서본(國學基本叢書本) 등이 있었다. 《일본박물학사(日本博物學史)》 의하면 1804년

부터 1850년까지는 일본 상선(商船)들이 일찍이 여러 차례《광군방보》를 일본으로 갖고 갔다고 한다.4)

   역자는 위에 언급한 원본을 일일이 찾기가 어려웠고 영인본인 만유문고(萬有文庫) 판본,《이조당사고전서회요(摛藻堂四庫全

書薈要)》자부(子部)에 수록되어 있는 판본을 얻었다. 두 책을 비교하면《이조당사고전서회요》판본은 표점이 아예 안 되어 

있는 상태이고 만유문고 판본은 마침표로만 문장을 끊은 상태이다. 이 외에 본문에 있어서 글자의 출입이 거의 없다. 이에 

역자는 만유문고(萬有文庫) 판본을 저본으로 삼고《이조당사고전서회요》판본을 참고하면서 그 가운데에 실린 매보·난보·국보·죽보를 부분적으로 역주하였다.


   만유문고(萬有文庫) 판본은 왕운오(王雲五)라는 사람이 1935년 3월에 대만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발행하였다. 전 

책은 총 24권, 2516쪽으로 지금 중국 무한대학(武漢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광군방보》의 구성

  《광군방보》《군방보》의 수정판으로서 원저에 나타난 오류를 고치고 불필요한 글을 삭제했기 때문에 체제가 더욱 
규칙적이고 취사(取捨)는 더욱 신중하며 내용은 더욱 풍부해졌다.《광군방보》의 내용 제요를 살펴보면《사고전서(四庫全書)》
에는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어정광군방보(御定廣羣芳譜)》 100권은 강희(康熙) 47년(1708)에 청성조(淸聖祖) 황제가 엮은 것이다. 대개 명나라 

왕상진(王象晉)《군방보》를 근거하여 넓힌 것이다.


3) 趙濤, <《廣羣芳譜》的文獻價値>, 《新疆大學學報》, 第4期, 2006, 135쪽 참조.
4) https://baike.baidu.com/item/%E5%B9%BF%E7%BE%A4%E8%8A%B3%E8%B0%B1/2678397?fr=alad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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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로 그 목록을 개정한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천보(天譜)세보(歲譜)천시보(天時譜)로 합병하고 오직 물후(物候)와 영고(榮枯)만 기술하며 천보(天譜) 중에 재해와 상서(祥瑞)를 섞어서 기록한 것과 세보(歲譜) 중에 절기를 넓게 말한 것을 모두 삭제하여 기록하지 않는다. 그 학어(鶴魚) 한 보는 재배와 관련되지 않고 민용(民用)과도 관계없으니 모두 삭제한다. 그 체례(体例)를 개정한 것은 네 가지가 있다. 원래 항목별로 나눠서 목록을 엮은 것은 앞뒤가 참치부제하니 지금 보(譜)마다 그 이름과 형상(形狀)을 먼저 설명한 다음에 사실을 근거로 징집하고 일괄적으로 ‘휘고(彙考)’로 표하며, 시문이나 제영(題詠)을 일괄적으로  ‘집조(集藻)’로 표하며, 만들어 사용하거나 옮겨 심는 여러 방법을 일괄적으로 ‘별록(別錄)’으로 표한다. 그 치료(治療)라는 한 목록에는 참조 교감이 세밀하지 않고 민간처방이므로 자칫 치료시기를 놓칠까 염려되어 또한 모두 삭제한다. ………… 《광군방보》라 사명하였는데 임금님이 특별히 왕상진 같은 작은 인물의 선함을 칭찬하고 창시한 공로를 매몰시키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새로 편찬된 것은 십중팔구이고 상진의 옛 글은 오직 십 중의 일이만 보존된다.5)


   《광군방보》책 맨 앞에는 강희 황제가 직접 지은 서문〈어제 패문재 광군방보서(御製 佩文齎 廣羣芳譜序)〉를 넣었다. 서에는 강희 황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언급되어 있다. “근대 사람이 편찬한《군방보》를 보니, 여러 책의 장점을 수집하고 뜻에 따라 분류한 것은 취할 만하지만 소홀히 하여 빠진 부분이 많은 것은 애석하다. 이에 유신(儒臣)들에게 명을 내려서 비부(秘府)에 소장되어 있는 책을 근거로 좋은 것을 취하여 한데 모으고 쓸모없는 것을 삭제하며 빠진 것을 보충하라고 하였다. ……다시 조정 대신의 주청(奏請)을 윤허하며, 내가 지은 작품도 더하여 종류별로 분류하니 총 100권으로《패문재광군방보(佩文齋廣羣芳譜)》라 명명하게 하였다. 맨 앞에 천시(天時)를 놓은 것은 해의 율령을 중히 여긴 것이다. 다음은 곡(穀), 그 다음은 상마(桑麻)이니 백성의 일을 존중한 것이다. 그 다음을 소(蔬), 다(茶), 과(果), 목(木), 화훼(花卉)로 한 것은 백성들의 삶을 부유하게 하는 것을 돕고, 널리 이용하게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에 약물(藥物)을 놓은 것은 백성들의 목숨을 중시하기기 때문이다.”6)

《광군방보》의 강희 황제 서(序) 다음에는 〈부록(附錄) 군방보원서(羣芳譜原敍)〉가 있다.


5) 《사고전서(四庫全書)》·《광군방보(广羣芳譜)》제요: 禦定廣羣芳譜一百卷,康熙四十七年聖祖仁皇帝禦定。蓋因明王象晉《羣芳譜》而廣之也。凡改正其門目者三。以天譜、歲譜並爲天時記,惟述物候榮枯而天譜之雜述災祥,歲譜之泛陳節序者,俱刪不錄。其鶴魚一譜,無關種植,

亦無關民用,則竟全刪。改正其體例者四。原本分條標目,前後參差,今每物先釋其名狀,次徵據事實,統標曰‘彙考’;詩文題詠,統標曰‘集藻’;制用移植諸法,統標曰‘別錄’。其療治一條,恐參校未精,泥方貽誤,亦竟刊除。……賜名《廣羣芳譜》,特聖人褒纖芥之善,不沒創始之功耳。實則新輯者十之八九,象晉舊文僅存十之一二也。

6) 원문은 다음과 같다. “見近人所纂《羣芳譜》,搜輯眾長,義類可取,但惜尙多疎漏。因命儒臣即秘府藏帙,攟摭薈萃,刪其支冗,補其闕遺。……復允廷臣之請,益以朕所賦詠,依類分載,總一百卷,命名曰《佩文齋廣羣芳譜》。冠以天時,尊歲令也。次桑麻,崇民事也。次蔬茶果木花卉,資厚生,溥利用也。終以藥物,重民命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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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원래《군방보》서문으로 왕상진이 지은 것이다. 이름은 부록이라 하지만 전책의 두 번째 자리에 넣은 것은《광군방보》저자들의 독창성이 보인다. 앞에 언급한《사고전서(四庫全書)》중에 “임금님이 특별히 왕상진과 같은 작은 인물의 선함을 칭찬하고 창시한 공로를 매몰시키지 않는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다시 증명한 것이다. 왕상진의 서문 뒤에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글은〈광군방보간성진정표(廣羣芳譜刊成進呈表)〉이다. 이 글을 통해 유호(劉灝)《패문재광군방보》를 교감한 사람이고 왕호(汪灝), 장일소(張逸少), 왕륭(汪隆), 황룡미(黃龍眉) 네 명 대신(大臣)이《패문재광군방보》를 편찬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각 보는 먼저 식물과 관련된 이름과 형상을 언급하고 그 다음은 휘고(彙考)이다. 휘고는 년대의 선후 순서대로 상고 유저(遺著)부터 명·청시기 지방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관련된 식물 전문(傳聞)과 기사를 기록하였다. 휘고 뒤에는 곧 집조가 이어져 있다. 대체로 집조에 서(序)가 먼저 나온 다음에 설(說), 문(文), 제발(題跋), 변(辨), 전(傳), 기(記) 등이 한(漢)·위(魏)·육조(六朝)를 거쳐 당(唐)·송(宋)·명(明)·청(淸)까지 시대 순서별로 배열되어 있다. 무릇 시는 일반적으로 사언고시, 오언고시,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낱개의 시 구절 등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체제마다 먼저 강희 황제의 어시(禦詩)를 집록한 다음에 저자 년대의 순서에 따라 시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책에서 원래《군방보》에 실려 있는 것을 수록한 경우 앞에 “원(原)”자로 표시하고 새로 편찬한 경우 앞에 “증(增)”자로 표시하였다.《별록(別錄)》도 이와 같으나 보다 더 간략한 글로 기록하였다.

   《광군방보》의 전체 보(譜) 편찬 현황은 역자의 박사 논문 중의 부록에 나타났다. 보의 편찬을 보면 총 11개 보(譜)로 이루어져 있고 사계절과 달이 수록되어 있는 천시보 외에 나머지 10개 보(譜)는 다 식물을 기록한 것이다. 곡보(穀譜)에는 곡류와 콩류 43가지를 기록하고 상마보(桑麻譜)에는 섬유식물 10가지, 소보(蔬譜)에는 야채류 140가지, 차보(茶譜)에는 차 3가지, 화보(花譜)에는 관상식물 234가지, 과보(果譜)에는 식용 과류 156가지, 목보(木譜)에는 나무 241가지, 죽보(竹譜)에는 대나무 6가지, 훼보(卉譜)에는 초본 식물 191가지, 약보(藥譜)에는 약초 527가지로, 총 식물 1667가지를 기록하였다. 대부분 식물의 이름, 형상, 재배 방법, 지리 분포 등을 소개하면서 넓게 옛 사실을 인용하며 중국 고대 식물 대작이라고 말할 만하다. 화보(花譜)는 분량이 가장 많은데 제6책부터 제12책까지 나누어 편찬하였다. 이에 옛 사람들이 꽃을 매우 사랑한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범례에서 언급한 듯이 편리상 매(梅)매화와 매실로 나눠서 따로 편찬되었는데 본고에서는 단지 매화 부분만 선역하였다. 난혜(蘭蕙) 난초와 혜초로 나뉘어 따로 편찬되었는데 본고에서는 난초와 혜초를 함께 선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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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광군방보》역주의 범위와 방법

1. 역주 범위
   본고에서는 《광군방보》 제6책의 22권, 제11책의 44권과 48권, 제12책의 49권, 제19책의 82권과 83권 중에서 매·난·국·죽과 관련된 글들을 선별하여 매보, 난보, 국보, 죽보라는 이름 하에 각각 모아서 역주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보에서 매화 종류, 전체 휘고, 집조 중의 서문 4편, 설(說) 1편, 문(文) 1편, 전(傳) 3편, 기(記) 3편을 선역하였다. 난보에서 난초 종류, 전체 휘고, 집조 중의 서문 1편, 제발(題跋) 2편, 변(辨) 1편, 전(傳) 1편을 선역하며 혜초 각 품종의 종류 및 휘고를 선역하였다. 국보에서 국화 종류, 전체 휘고, 집조 중의 서문 5편, 서(書) 1편, 전(傳) 1편, 제발 2편, 잡저(雜著) 2편을 선역하였다. 죽보에서 대나무 종류, 전체 휘고, 집조 중의 전(傳) 3편, 기(記) 8편, 발(跋) 1편, 잡저(雜著) 1편을 선역하였다.

2. 역주 방법
   본고에서는 의역을 최대한 지양하고 글의 원래 뜻에 맞게 한 자 한 자 번역하도록 노력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역주하였다. 먼저 원문과 본고에서 참고한 내용은 일정 부분 출입이 있음을 밝혀둔다. 가능한 범위에서 쉬운 단어를 사용하였고 인명, 지명, 산이름, 관직 이름, 사건 등에 대해는 될 수 있는 대로 각종의 자료를 참고하여 주석을 달았다. 원문에 수록되어 있는 대부분 경사전기(經史傳記)는 어떤 저서에서 뽑힌 일부 글이니 번역할 때 원래 체례(體例)를 따라 단락을 안 나누고 번역하였다. 다만 전체적인 역주의 체례로는 제목, 번역문, 원문, 교감, 주석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맨 앞에 번역문을 놓고 독자들이 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에 원문을 넣었다. 다만 한 작품에 있는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안에 번역문을 넣었다. 원문을 넣을 때 한 작품의 여러 군데에서 발췌한 것인 경우 앞뒤 문장을 구분하기 위해 번역문과 원문 맨 앞에“⦁”로 하여 “⦁” 뒤에 번역문과 원문을 넣었다. 


   원본《군방보》에 실려 있는 것을 수록한 경우 앞에 “원(原)”자가 표시되어 있으나 역주에는 원본(原本)으로 번역하였으며, 새로 편찬한 경우 앞“증(增)”자로 표시되어 있으나 역주에는 증보(增補)로 번역하였다. 시문은 좌우 배치의 방식을 따랐으며 좌측에 시, 우측에 원문을 배치하였다. 원문에 타이핑 안 되는 글자는 []로 하여 부수(部首)와 나머지 부분을 넣었다. 주석은 글의 배경을 알기 위해 자세히 달았다. 주석은 번역문에서 주석을 다는 원칙으로 하였다. 주석에 인용한 내용은 원전을 밝히고 원전의 문장은 필요하면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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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감표점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표점지침에 따랐다. 고리점(。), 반점(,), 물음표(?), 느낌표(!), 모점(、), 가운뎃점(·), 쌍점(:), 큰따옴표(“”), 작은따옴표(‘’)등을 사용하였다. 책 이름은《》, 글의 편명은 <>를 사용하였다. 번역문과 음이 같은 한자는 괄호() 안에 넣었다. 오자, 탈자, 해독 불가능한 자는 최대한 원문 글을 찾아내려 하였으며 탈자로 인해 해독 불가능한 경우 원저를 찾아서 번역하였다. 원문 중 사람의 성, 이름, 호, 자, 지명, 강, 산 등의 이름은 반드시 밑줄“_”을 넣어 고유 명사로 처리하여 한자를 병기하였다. 기타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역주와 관련된 사항은 한국고전번역원《퇴고필지(推敲必知)》(2009)를 참고하였다.


Ⅲ. 역주 대상의 내용 분석

   《광군방보》에 수록된 매보, 난보, 국보, 죽보는 앞에 언급했듯 먼저 매·난·국·죽과 관련된 품종의 이름, 형상, 재배 방법, 지리분포 등을 고증한 부분이고 이 가운데에 특히 송대에 편찬된 보류(譜類) 저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 휘고 부분은 《상서(上書)》, 《역경(易經)》등 상고 문학작품부터 청나라 지방지까지 옛 역사 문학 작품 속에 있는 관련 사실이 인용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집조 부분은 서(序), 설(說), 문(文), 제발(題跋), 변(辯), 전(傳), 기(記), 송(頌), 부(賦), 시 등으로 나뉜다. 각 보에 수록된 작품 체재를 보면 보마다 빠진 체재가 있어서 체재의 순서가 좀 다르나 시 부분의 체재 순서가 대강 같음을 알 수 있다. 전체 내용을 번역하기에는 양이 너무 방대하여 본고에서 역자는 임의로 매·난·국·죽 품종, 휘고, 집조 중의 일부만 역주하였다. 본고에서는 역주 대상으로 선정한 작품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매·난·국·죽 품종 고찰
   매보에는 총 20가지 매화 품종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원래《군방보》중의 11가지,성대(范成大)《매보(梅譜)》중의 4가지《화경(花鏡)》중의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고찰해 보면 각각 빛깔, 향기, 모양, 개화 시기, 속칭, 소재지, 열매를 맺는 상황 등 매화의 생태적 특징을 묘사하였다. 특별히 유의할 만 한 점은 남송 범성대《매보》에서는 매화의 기본 특징 외에 매화의 운치도 상세하게 기술한 것이다. 범성대의《매보》는 중국 고대 가장 이른 매화 전문적인 저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남송 시기에 문인들이 매화의 운치를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범성대의《매보》중에 매화의 운치를 언급한 것으로 강매(江梅) 묘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매(江梅)〈버려진 씨가 야외에서 자라고, 심고 접붙이지 않는 것으로 또한 각매(直脚梅)야매라고 불린다. 무릇 산골짜기나 물가에서 황량하고 차갑고 맑고 절묘한 정취를 보이는 것은 모두 이 종류이다. 꽃봉오리는 약간 작으나 성기고 말라서 운치가 있으며, 향기가 가장 맑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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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에서 황량하고 차가운 산골짜기나 물가에 운치가 있고 성기고 향기로운 매화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난보에는 총 51가지 난 품종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조시경(趙時庚) 《금장란보(金漳蘭譜)》중의 진몽량(陳夢良)을 비롯한 20가지, 왕귀학(王貴學)《난보(蘭譜)》중의 진몽량(陳夢良)을 비롯한 23가지, 원래《군방보》중의 건란(建蘭), 항란(杭蘭) 등 2가지, 별도로 초, 혜초, 택란(澤蘭), 진주란(眞珠蘭), 이란(伊蘭), 풍란(風蘭), 주란(朱蘭), 약란(箬蘭), 마란(馬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보 중의 내용을 고찰해 보면 빛깔, 꽃받침 수량, 개화 시기, 외형 등 생태적 특징, 생존환경, 재배방법을 기술하였으며 난의 품종에 우열을 논하기도 하였다. 당시에 난을 감상하는 이론체계가 잘 이루어지지 못해서 난에 대한 명명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난 각 품종의 이름을 비교해 보면 주로 다음과 같은 명명 방식이 있다. 첫째, 발견자의 이름을 난의 이름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진몽량(陳夢良), 허경초(許景初) 등이 있다. 둘째, 관직 이름을 난의 이름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순감량(淳監糧), 포통령(蒲統領), 황전강(黃殿講) 등이 있다. 셋째, 산지나 난혜의 특징을 이름으로 삼은 경우이다. 예를 들면 조산(竈山), 석양홍(夕陽紅), 어심란(魚魫蘭) 등이 있다. 넷째, 사람의 별명을 난의 이름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황팔형(黃八兄), 진팔사(陳八斜) 등이 있다. 이러한 품종들은 임의로 이름이 지어진 것이니 이름으로만 이 품종의 특성을 추측할 수 없다. 지금 어심란(魚魫蘭), 건란(建蘭)외에 위에 수록되어 있는 대부분 난 품종들이 전해지지 않아서 후인들이 난 품종에 대해 고증하기는 매우 힘들다.

   국보에는 총 314가지 국화 품종이 수록되어 있다. 원《군방보》중의 감국(甘菊)을 비롯한 269가지, 유몽천(劉蒙泉)《유씨국보(劉氏菊譜)》중의 은태(銀台) 한 가지, 범성대(范成大)《국보(菊譜)중의 등국(藤菊) 한 가지, 사정지(史正志)《국보(菊譜)》중의 밀우(密友) 한 가지, 심긍(沈兢)《국보(菊譜)》중의 사자국(楂子菊)을 비롯한 26가지, 사주(史鑄)《월중국보(越中菊譜)》중의 능풍국(淩風菊), 감자국(柑子菊) 등 4가지, 주사후(周師厚)《낙양국보(洛陽菊譜)》중의 1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국화는 황색을 바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황색, 흰색, 자색, 기이한 품종의 순서로 국보에서 국화 품종을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국보 중 국화 품종 내용을 살펴보면 국화의 속칭, 이름 얻은 까닭, 그루의 높이, 꽃의 모양, 직경과 빛깔, 잎의 모양, 빛깔과 결각(缺刻), 줄기의 모양, 뿌리의 모양과 빛깔, 기미 등 생태적 특징, 산지(産地) 외에 재배 방법 등을 일일이 다 기술하였다. 재배 방법 면에서 고대 사람들이 토양의 비옥도, 물후(物侯) 시기가 국화 재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8) 

7)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인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매보(梅譜)·난보(蘭譜)·국보(菊譜)·죽보(竹譜)를 중심으로->(제출하지 않음) 40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江梅〈遺核野生不經栽接者, 又名直脚梅, 或謂之野梅。凡山間水濱荒寒淸絶之趣, 皆此本也。花稍小而疎瘦有韻, 香最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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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손질하는 재배 방법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만천성(滿天星)〈일명 봉령국(蜂鈴菊)이라고도 한다. 봄에 모종의 정수리를 깎고 가닥이 지면 다시 깎으며 깎고 또 가닥지고 가을에 이르면 한 줄기에 수많은 꽃송이가 핀다.〉9)

   여기서 옛 사람들이 식물을 손질함으로써 국화 생장과 영양의 관계를 조절하여 국화 조형을 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신라(新羅)라는 특이한 국화 품종이 있는데 내용 소개 중에 해외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신라는 한국 고대 삼국의 하나이므로 이 국화는 한국 고대 국화 품종이 아닌가 추측된다.10)

   송나라 때 유몽천(劉蒙泉)의《유씨국보(劉氏菊譜)》가 첫 국화 저서로 세상에 나온 당시에 고작 35가지 밖에 안 되었던 국화 품종은 명나라에 이르러 왕상진《군방보》중에는 269가지 국화 품종으로 발전되었다. 《광군방보》중 국보 품종 맨 끝 부분에 이렇게 덧붙여서 주를 달았다. “원래 보(譜)에 따르면서 유몽천(劉蒙泉), 범성대, 심긍(沈兢), 사정지(史正志) 등의 여러 보를 수집하여 빛깔로 분류하였다.”11)라고 하였다. 그러나《광군방보》중의 국화 품종 수량을 파악하면 거의 다 왕상진의《군방보》에 의하여 편찬한 것을 알 수 있다. 왕상진이 이 책을 저술했을 때 각 국보에서 뽑아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명나라 말기에 현존한 것인지 이에 대해 고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송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어떤 시기라도 우리는 당시 전국에 국화 품종 총 몇 개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국보를 저술한 자가 어떤 지역에서 봤던 품종에 의거하여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죽보에는 총 112가지 대나무 품종이 수록되어 있다. 원《군방보》에 수록된 대개지(戴凱之)《죽보(竹譜)》중의 방죽(方竹), 반죽(斑竹) 등 38가지, 새로 증보한 대개지(戴凱之) 《죽보(竹譜)》중의 36가지, 스님인 찬녕(贊寧)《순보(筍譜)》중의 26가지, 유미지(劉美之) 《속죽보(續竹譜)》중의 3가지,《화양국지(華陽國志)》중의 복죽(濮竹) 한 가지,《본초(本草)》중의 근죽(䈽竹) 한 가지,《아미산지(峨眉山志)》중의 2가지,《광동지(廣東志)》중의 2가지,《운남지(雲南志)》중의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8) 王子凡·張明姝·戴思蘭, <中國古代菊花譜錄存世現狀及主要內容的考證>, 《自然科學史硏究》, 第1期, 2009, 77-90참조.
9) 신방방의 위 박사학위논문 209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滿天星〈一名蜂鈴菊。春苗掇去其顚,岐而又掇,掇而又岐,至秋而一幹數千百朶。〉”
10)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71쪽 참조. “신라(新羅)〈일명 옥매(玉梅), 왜국(倭菊)이라고도 한다. 해외에서 나왔고 9월 말에 핀다. 무성한 꽃잎은 순백색이며 길고 짧음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 꽃잎은 뾰족하고 얇고, 산뜻하고 곱고 밝고 투명해서 옥과 같다. 처음 필 때에 가운데에 청황색 가는 잎이 있어 꽃술 모양과 같은데 성하게 핀 후에 가는 꽃잎이 펴지면 그 꽃술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지는 바른 자색이고 잎은 푸르고 지탱한 줄기는 매우 작다. 무릇 국화 종류는 대부분 뾰족하고 온전하지 않지만 이 꽃의 꽃술은 5조각으로 나누어지니 마치 사람이 팔 다리가 있는 것과 같은데 꽃과 서로 어울려서 운치가 높고 아름다우니 일반적인 국화와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다.〉”
11)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17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按原譜雜采劉、范、沈、史、諸譜,以色分類。”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47 -

   죽보 중의 대나무 품종 내용을 살펴보면 대나무의 빛깔, 크기, 벽 살의 두께 등 생태적 특징, 산지, 재배법, 지리 분포, 용도 등 면에서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나무는 보통 푸른색을 띠고 있는데 여기서 빛깔과 결이 쇠와 같은 흑죽(黑竹), 껍질이 붉은색을 띤 계죽(桂竹), 흰색과 자색 고죽(苦竹), 흰색 개죽(蓋竹), 겉껍질이 노란색인 경죽(雞脛竹), 검정색 균죽(箘竹)노죽(簵竹), 붉은색 적죽(赤竹), 흰색 백죽(白竹), 겉껍질이 푸르고 살이 눈과 같은 흰 만죽(蔓竹), 흰 마디에 붉은색을 띤 단죽(丹竹), 3년이 지나면 자색을 띤 자죽(紫竹), 서리처럼 흰 근죽(䈽竹) 등 다양한 대나무 모습을 볼 수 있다.12) 


   대나무 각 품종의 용도 면에서 고찰하면 지팡이, 관악기, 대자리, 시루, 배, 줄칼, 서재 감상품, 부채, 화살, 검, 창, 단 맛을 낸 국을 끓이기, 화살 통, 들보와 기둥, 서까래, 빗자루, 대나무 헝겊신, 천자 수레의 말채찍, 동아줄, 장대, 약재, 토산물, 대금, 노끈 등으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2. 휘고와 집조 고찰

   이 부분은 주로 매보, 난보, 국보와 죽보휘고집조 부분의 내용을 각각 살펴본 것이다. 매보 중의 휘고에 수록되어 있는 매화와 관련된 옛 고사들은 총 56편 문학 작품에서 인용되었다. 집조에 수록되어 있는 매화와 관련된 각 체재 글은 뒤에 별도로 표로 열거해 놨다. 이러한 내용 속에서 매화는 그 과실로 사람들이 식용하는 것으로부터 꽃으로서 좋아하여 시로 읊조리는 매화의 애호에 대한 변천과정 윤곽을 그려 놨다. 매화의 대략적인 발전 과정을 모두 망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3)

   《시경(詩經)》에는“산에 아름다운 초목이 있으니 밤나무와 매화 열매이로다.”14) 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밤만큼 매화를 귀하게 여기고 읊조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월나라 사신이 매화 한 가지를 들고 첫인사로 양왕(梁王)에게 전해주었다는 미담이 있다.15) 춘추 전국시기에 사람들이 매화를 좋아하는 풍기가 이미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 때 사람들이 더 이상 단순하게 매실을 따는 것이 아니고 눈길을 가지 끝에 있는 매화꽃에 돌려서 맑은 향기를 음미하게 되었다.

12) 흑죽(黑竹)은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62쪽, 계죽(桂竹)은 265쪽, 고죽(苦竹)은 267쪽, 개죽(蓋竹)계경죽(雞脛竹)은 270쪽, 균죽(箘竹) 노죽(簵竹)은 271쪽, 적죽(赤竹)은 272쪽, 백죽(白竹) 273쪽, 만죽(蔓竹)은 275쪽, 단죽(丹竹)은 277쪽, 자죽(紫竹)은 279쪽, 근죽(䈽竹)은 280쪽 참조.
13) 程傑, 《中國梅花審美文化硏究》, 四川出版集團巴蜀書社, 2008, 3-138쪽 참조.
14)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43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山有嘉卉 侯栗侯梅”
15)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43쪽 참조.

中國人文科學 第69輯    - 248 - 

  《서경잡기(西京雜記)》에는“한나라 상림원(上林苑)후매(侯梅), 자화매(紫花梅), 동심매(同心梅), 자체매(紫蒂梅), 여우매(麗友梅)가 있다.16)”고 한다. 한나라 때에 궁궐의 관상용으로 매화나무가 이미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육조 때에는 매화
가 보편적으로 재배되고 시인들도 매화를 소재로 다루어 상징의미를 부각시켰음은 아래 저명한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매화 가지를 꺾다가 역사(驛使)를 만나    折梅逢驛使
농산(隴山)에 있는 벗에게 부쳐 보내네.   寄與隴頭人
강남에서 가진 것이 없어서                江南無所有
애오라지 가지 하나에 달린 봄을 보내네.  聊贈一枝春 


   남조 송나라의 승상인 육개(陸凱)범엽(范曄)과 좋게 지냈는데 강남에서 장안에 있는 범엽에게 매화 한 가지를 보내며 시를 지었다. 이 시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는 우정을 드러냈다.

   매화는 당(唐)·송(宋)을 거쳐 원(元)·명(明)·청(淸)에 이르기까지 애호되었는데 특히 송나라 때에는 그 상징과 애호가 크게 발전되었다. 남송 범성대(范成大)가 그의《매보(梅譜)》앞 서문에 “매화가 천하에 으뜸가는 꽃이라는 것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 어진 사람이나 어질지 못한 사람을 불문하고 다 이의가 없다.17)”라고 한 것처럼 매화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때 각종 체재의 문학 장르에 걸쳐 매화를 소재로 삼아 노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학자들은 매화와 이학 사상을 연결시켜서 매화를 통해 자연의 법칙까지 논하였다.18)

   남송의 장자(張鎡)는 매화를 매우 좋아해서 매화를 굴원(屈原), 백의(伯夷), 숙제(叔齊) 등 옛 문인 고사(高士)에 비유하며 매화에 “꽃에 걸맞은 것[花宜稱]”, “꽃이 미워하는 것[憎嫉]”, “꽃이 영총을 받는 것[榮寵]”, “꽃이 모욕(侮辱)을 받는 것[屈辱]” 등 4가지 일, 총 58 항목을 지어주었다. 특히 “꽃에 걸맞은 것[花宜稱]” 26항목 중에 경연(輕煙), 가월(佳月), 미설(微雪) 등은 후세 사람들이 매화를 그리는 데 자주 쓰는 소재가 되었다.


16)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44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漢上林苑有侯梅,紫花梅,同心梅,紫蒂梅,麗友梅。”
17)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75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梅天下之尤物。無問智愚賢不肖,莫敢有異議。”
18)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50쪽 참조. 《정씨유서(程氏遺書)》에「조매(早梅)가 동지 전에 벌써 피어서 바야흐로 일양(一陽)이 생기지 않았는데 핀 것은 어째서인가? 마땅히 무성한 것은 시드는데 이것은 만물에 있어서 하나의 음이나 양이 오르내리는 큰 절차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가지는 스스로 하나의 무성함과 시듦이 있어서 한도가 달라 동일하지 않으니 이는 각자가 건(乾)과 곤(坤)이 있어서 각자가 사라지고 자라는 단지 하나의 변화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다함이 없어 소나무·잣나무 또한 시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늦게 시들 뿐이다. 시들어도 느끼지 못할 뿐 어찌 변화가 적을 것인가? 바야흐로 여름에 생장할 때 도리어 여름에 시드는 것이 있으니 겨울 추위 즈음에 꽃이 피어 자라는 것이 있음이 무엇이 괴이하다고 하겠는가?」라 하였다.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49 -

제목 저자 년대 체재 내용

〈和梅詩序〉楊萬里 宋 序
벗인 진희안(陳晞顔)은 옛 사람들이 지은 매화시에 화답하여 책을 엮었다. 양만리가 이 책에 지어준 서이다.
〈梅品序〉張鎡 宋 序
장자“꽃에 걸맞은 것[花宜稱]”, “꽃이 미워하는 것[憎嫉]”, “꽃이 영총을 받는 것[榮寵]”, “꽃이 모욕(侮辱)을 받는 것[屈辱]” 4가지 일, 총 58 항목으로 매화 감상에 지어준 서이다.
〈梅譜·前序〉范成大 宋 序 

범성대가 《범촌매보》를 지은 경유를 기술하였다.
〈梅譜·後序〉范成大 宋 序
범성대가 매화를 감상하는 데 독특한 견해 몇 개를 제기하였다.
〈孤山種梅序〉張鼐 明 序
고산에서 걸어가면서 여기에 있었던 옛 사람들을 회상하고 고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였다.
〈梅花說〉楊東山 宋 說
임포가 지은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에 비스듬히 기울고”라는 두 구절에 대해《역경(易經)》으로 자신의 견해를 제기하였다.
〈爇梅文〉周之翰 宋 文
매를 선생으로 삼고 매와 관련된 고사로써 매에 지어준 전기(傳記)이다.
〈梅華傳〉王冕 元 傳
매화(梅花)를 선생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매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매화(梅花)의 가족사와 매화(梅花)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梅伯華傳〉何喬新 明 傳
매를 매백화(梅伯華)라는 사람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매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매에 지어준 생애 소개이다.
〈白知春傳〉洪璐 明 傳
매를 백지춘(白知春)이라는 사람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매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백지춘(白知春)의 가족사와 백지춘(白知春)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友梅軒記〉劉基 明 記
벗이 자신의 집에 우매헌(友梅軒)이라 이름지어 주었는데 작자는 벗과 함께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지에 대해 기술하였다.
〈梅花記〉姚淶 明 記

매화를 선생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에 매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매의 가족사와 매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송·원을 거쳐 매화의 품종과 재배 기술이 크게 발전되면서 지방지 등 문학 작품 중에 매화와 관련된 각종 품위 있는 칭호도 많이 나왔다. 휘고에 매화꽃으로 이름이 지어진 곳은 대략 다음과 같이 있다. 매형촌(梅迥村), 매정(梅亭), 매령(梅嶺), 매화옥(梅花屋), 매화장(梅花莊), 자매계(紫梅溪), 매화당(梅花堂), 매암(梅巖), 매화산(梅花山), 매은(梅隱), 매화촌(梅花村), 매화원(梅花園), 매화오(梅花塢) 등이 있다. 

中國人文科學 第69輯      - 250 -

  다음은 집조 중에 수록된 내용의 개관이다.
 
〈梅花樓記〉陳繼儒 明 記
작자가 벗인 범상선(范象先)과 매화나무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동태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서술하였다.

   다음은 난보 중의 휘고집조 내용을 고찰해 봤다. 중국 전통적인 화훼 가운데에 은 가장 오래된 화훼 중의 하나이다. 옛 고서 중에 난과 관련된 기록은 주로 전고, 시와 이름난 사람에 의하여 나타났다. 예를 들자면 휘고연길(燕姞)이라는 여자가 난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다는 것[燕姞夢蘭], 공자가 난을 군자에 비유했다는 것[孔子喩蘭], 조채(晁采)가 난을 노래했다는 것[晁采詠蘭], 구천(勾踐)이 저산(渚山)에 난을 심었다는 것[勾踐種蘭] 등 유명한 고전이 나왔다. 그리고 난이 덕행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19)


   《역경·계사(易經·繫辭)》에 “마음이 같은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고 하였고《풍속통(風俗通)》“한나라 상서랑(尙書郞)은 입조할 때마다 향초를 품고 난을 들며 입에 정향을 머금고 있었다.”고 하였으며《순자(荀子)》“백성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산초와 난에서 나는 향기와 같다.”고 하였고 한나라 유향(劉向)《설원(說苑)》“10보 안에 반드
시 향기로운 난이 있을 것이다.”고 난을 언급하였다.20) 이 부분에서 옛 사람들이 난을 얼마나 귀하게 여긴지를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 난을 귀하게 여긴 것도 기록하였다.21) 그리고《한만록(汗漫錄)》왕유(王維)가 난을 황자두(黃磁斗) 도자기로 담고 고운 돌로 길렀으니 해마다 난이 더욱 성해졌다.22)”고 하였다. 당나라 때에 화분에 난을 가꾸는 방법이 성행하였음과 토양 조절에 이미 유심함을 알 수 있다.23)

   송나라 때에 이르러 난 재배가 흥성하면서 예난(藝蘭) 학설들이 더욱 많아졌다. 북송 황정견(黃庭堅)이 그의 <서유방정(書幽芳亭)> 중에서 처음으로 난과 혜의 차이점을 제기하고 난과 혜를 식별하기 위한 기초를 확립하였다. 남송 주희(朱熹)<초사변증(楚辭辨證)> 중에 굴원의 부(賦)에서 나온 난혜가 지금 난혜이냐에 대해 변증하였다.24) 이후에 난에 관한 전문적인 저서로 조시경(趙時庚)《금장란보(金漳蘭譜)》왕귀학(王貴學)《난보(蘭譜)》가 이어서 나타났다. 

19)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12쪽 참조. 《진서·문원전(晉書·文苑傳)》에 나함(羅含)이라는 관리가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집 앞뜰에 갑자기 난과 국화가 떼를지어 났다. 사람들은 난과 국화가 그의 덕행에 감동을 받아서 그랬다고 여겼다고 하였다.
20) 《역경·계사(易經·繫辭)》는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11쪽, 《설원(說苑)》은 114쪽, 《풍속통(風俗通)》은 115쪽, 《순자(荀子)》는 114쪽 참조.
21)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22쪽 참조. 왕상진은 꿀벌들이 백화(百花) 중에서 꿀을 따면 모두 넓적다리 사이에 놓는데 오로지 난에서만 꿀을 따면 등으로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서 왕에게 바친다고 하였다.
22)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15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王摩詰貯蘭用黃磁斗,養以綺石,累年彌盛。”
23) 周肇基·魏露答, <中國古代蘭譜硏究>, 《自然科學史硏究》, 第1期, 1998, 69-73참조.
24)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29쪽 참조. 대체로 옛날에 이른바 향초는 반드시 꽃과 잎이 다 향기롭고 조습(燥濕)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베서 패(佩)로 쓰일 수 있었다. 오늘날 이른바 난과 혜의 경우 그 꽃이 향기로우나 잎은 향기가 없고, 그 향기가 고우나 성질이 약해서 쉽게 시들어지므로 베서 패(佩)로 쓰일 수 없다는 관점을 제기하였다.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51 - 

  명·청 때에 난의 재배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난은 점점 일반 사람들이 관상하는 바가 되었다. 이 때 난에 관한 각종 문학 체재 작품도 더욱더 많아졌다. 예를 들면 왕세무(王世懋)《학포여소(學圃餘疏)》에 물을 궤로 사이를 떼어 놓고 쥐, 지렁이와 개미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 재배 방법 등을 일일이 기록하였다.25)  그리고 지방지 중에 각 지역의 난이 자란 곳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거의 다 남방지역이다.

   옛 사람들이 난을 몹시 좋아하므로 고대에 건물들은 난으로 이름이 지어진 경우도 많았다. 난보에서 예를 들면 난산(蘭山), 왕우군(王右軍)의 난정(蘭亭), 난서주(蘭墅洲) 등이 있었다.


   다음은 집조 중에 수록된 내용의 개관이다.

제목 저자 년대 체재 내용
〈續蘭譜序〉王世貞明 序
옛 벗인 장응문(張應文)《난보(蘭譜)》를 저술하였는데 작자가 그의 보에 써준 서이다.
〈書幽芳亭〉黃庭堅宋題跋
를 군자와 사대부에 비유하여 난혜를 노래하였다.
〈跋楊無咎畫秋蘭〉周必大宋題跋
작자가 고서에서 나온 난과 관련된 내용 고찰을 통해 추난(秋蘭)이라는 말이 맞는지를 기술하였다.
〈楚辭辨證〉朱子宋辨
굴원의 부(賦)에서 나온 난혜가 지금 난혜이냐에 대해 변증하였다.
〈正訛〉王象晉明辨
작자가 귀한 건난 한 그루를 얻고 난을 몹시 사랑해서 고서에서 나온 난과 관련 내용 고찰을 통해 지금 숭상한 난이 굴원이 말한 바가 아니냐에 대해 고증하였다.
〈蘭馨傳〉方宇明傳
난을 난형(蘭馨)이라는 벗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난과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난형(蘭馨)의 가족사와 난형(蘭馨)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다음은 국보 중의 휘고집조 내용을 고찰해 봤다. 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서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사랑을 받아왔다.《예기·월령(禮記·月令)》에는 “계추의 달에 국화는 노란색 꽃이 핀다.26)”고 하였다. 이것은 국화가 최초로 가을의 물후(物候) 특징으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사람들이 국화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국화의 용 가치로부터 시작하였다.27) 그리고《당서·이적전(唐書·李適傳)》, 《열선전(列仙傳)》,《서경잡기(西京雜記)》, 《목수한담(牧豎閑談)》, 《화사(花史)》에도 국화를 먹어서 장수할 수 있으며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28)

25)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119쪽 참조.
26)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17쪽 참조.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季秋之月,有黃華。”
27)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19쪽 참조. 남조송(南朝宋) 성홍지(盛弘之)《형주기(荊州記)》에는 “현(縣) 북쪽에 있는 국수(菊水)를 마신 자는 상수(上壽)에 속하는 자가 백이십, 삼십 살이고 중수(中壽)에 속하는 자는 백여 살이고 칠십 살이 된 자는 젊은이로 여겨지며 태위(太尉)인 호광(胡廣)은 오래 동안 풍리(風羸)에 걸렸는데 항상 이 물을 길어서 마시고 있으니 질병이 마침내 나아졌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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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난·국·죽 중에 국화는 꽃, 잎, 줄기, 뿌리까지 다 식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꽃이다.

《신선전(神仙傳)》에는 강풍자(康風子)감국(甘菊)꽃오동나무 열매를 먹은 후에 신선이 되었다고 하였다.29)
또한《명산기(名山記)》에도 국화를 먹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였다.30) 뿐만 아니라 국화를 먹어서 사악함이나 재앙을 쫓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전설로 인해 보통 중양절 전후에 피어난 국화는 사람들의 민속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즉, 중양절에 국화술을 마셔서 장수하거나 재앙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당서·이적전(唐書·李適傳)》,《서경잡기(西京雜記)》,《속진양추(續晉陽秋)》,《속제해기(續齊諧記)》,《간순세시기(幹淳歲時記)》위문제(魏文帝)〈여종요구일송국서(與鍾繇九日送菊書)〉등에는 9월9일에 국화 술과 장수를 언급하였고《속제해기(續齊諧記)》《세시잡기(歲時雜記)》에는 9월9일에 국화 술을 마셔서 재앙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하였다.31)

   중국 문인들이 국화를 시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국화에 상징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대략 전국 시기의 굴원부터 시작하였다. 도연명(陶淵明)을 거쳐 문학 작품 속에 고결하고 지조가 굳은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은사와 같은 이미지도 이루어졌다.32)《동파잡기(東坡雜記)》,《이언평잡록(李彥平雜錄)》,《화사(花史)》에는 이런 이미지를 다 언급하였다.33) 


   국화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품종, 재배와 저서 등 면에서 새로 진척을 보였다. 몽천(劉蒙泉)《유씨국보(劉氏菊譜)》,범성대(范成大)《범촌국보(范村菊譜)》, 사정지(史正志)《국보(菊譜)》등 저명한 국화 저서들이 이어서 세상에 나오면서 예국(藝菊) 기술이 발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송나라 사람들이 국화를 감상하는 데에 꽃의 빛깔로 등급을 매기는 국면을 열었다. 즉, 국화를 품평하는 첫 번째 기준은 꽃빛깔이고 그 다음은 꽃향기와 꽃모양이다. 노란색이 국화 중의 가장 바른 빛깔로 먼저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본 고에서 언급했던 국보 중에 다 분명하게 보인다. 재배와 관련된 능숙한 기술은 송나라 때부터 각 문화 작품 속에 이미 드러났다.


28) 《당서·이적전(唐書·李適傳)》은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17쪽, 《열선전(列仙傳)》은 218쪽, 《서경잡기(西京雜記)》는 218쪽, 《목수한담(牧豎閑談)》은 225쪽, 《화사(花史)》는 232쪽 참조.
29)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18쪽 참조.
30)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21쪽 참조.
31) 《당서·이적전(唐書·李適傳)》은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17쪽, 《서경잡기(西京雜記)》는 218쪽, 《속진양추(續晉陽秋)》는 220쪽, 《속제해기(續齊諧記)》는 221쪽, 《간순세시기(幹淳歲時記)》 228쪽, 위문제(魏文帝)의 〈여종요구일송국서(與鍾繇九日送菊書)〉는 243쪽, 《세시잡기(歲時雜記)》는 223쪽 참조.
32) 張榮東,<中國古代菊花的命名與菊事活動考>, 《大慶師範學院學報》, 第4期, 2010, 63쪽 참조.
33) 《동파잡기(東坡雜記)》는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23쪽, 《이언평잡록(李彥平雜錄)》은 224쪽, 《화사(花史)》는 232쪽 참조.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53 -

    육유(陸游)《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 왕세무(王世懋)《학포여소(學圃餘疏)》 및 각 국보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다.34)

   송나라 때에 이학 사상이 크게 발전되면서 문인들로 하여금 사물 개체에 관심을 더욱 기울이게 하였다. 남송 요관(姚寬)《서계총어(西溪叢語)》35)에는 《초사(楚辭)》에서 말한 “夕餐秋菊之落英”중에 영(英)이 잎인지 꽃잎인지에 대해 옛 고서에서 나온 사실로 자세하게 변증하였다. 


   다음은 집조 중에 수록된 내용의 개관이다.

제목 저자 년대 체재 내용
〈冒雨尋菊序〉駱賓王 唐 序
작자가 벗들과 함께 비를 무릅쓰고 국화를 감상하는 일에 대해 지은 서이다.
〈菊譜序〉劉蒙泉 宋 序
작자 자신이〈국보(菊譜)〉를 지은 의도와 경유를 밝혔다.
〈菊譜·前序〉史正志 南宋 序
작자 자신이〈국보(菊譜)〉를 지은 경유를 언급하였다.
〈菊譜·後序〉史正志 南宋 序
작자는 가을 국화꽃이 떨어지느냐에 대해 논설하였다.
〈范村菊譜·序〉范成大 南宋 序
작자 자신이〈범촌국보(范村菊譜)〉를 지은 의도와 경유를 언급하였다.
〈與鍾繇九日送菊書〉魏文帝 三國 書
위문제가 9월9일에 신하인 종요(鍾繇) 생각나서 국화를 보내며 지은 서이다.
〈黃華傳〉楊維楨 元 傳
국화를 선생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국화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국화의 가족사와 국화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題建陽馬君菊譜〉劉克莊 宋 題跋
건양(建陽) 마 군의 국보에 지어준 서이다.
〈周原己席上題十月賞菊卷〉李東陽 明 題跋
10월에 국화를 감상하여 지은 시집에 작자가 지어준 서이다.
〈劉氏菊譜·定品〉劉蒙泉 宋 雜著
작자가 국화에 등급을 매겨주는 일에 대해 논술하였다.
〈劉氏菊譜·說疑〉劉蒙泉 宋 雜著
다른 사람의 국화 저서 중에 나타난 의혹, 예를 들면 “所記皆無千葉花등을 제기하여 논술하였다.

   다음은 죽보 중의 휘고집조 내용을 고찰해 봤다. 대나무는 옛날부터 사계절에 늘 푸르고 곧은 특성으로 중국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따라서 대나무는 문학 작품의 소재로 중국 문화 흐름에 깊이 융합되어 들어갔다.《시경·위풍(詩經·衛風)》에는 “하늘하늘 흔들리는 죽간이요, 이것으로 기수(淇水)에서 낚시하네.”고 하였다.36)

34)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는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27쪽, 《학포여소(學圃餘疏)》는 229쪽 참조.
35)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26쪽 참조.


中國人文科學 第69輯     - 254 -


   여기서는 가는 대나무가 낚시대로 쓰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역경·설괘(易經·說卦)》,《시경·소아(詩經·小雅)》에도 대나무의 생태적 특성만 언급하였다.37)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연 생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유의하는 것은 그 실용 가치이다. 대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예기·월령(禮記·月令)》에는 대나무를 베서 화살을 만들었다는 것, 《주례·춘관(周禮·春官)》에는 고죽(孤竹)관악기로 만들었다는 것, 《시경·위풍(詩經·衛風)》에는 죽대시대로 만들었다는 것, 《사기·하거서(史記·河渠書)》에는 천자가 기원(淇園)대나무말뚝으로 썼다는 것 등이 있다.38) 여기 또 하나 유의할 만 한 점은 앞에 언급했던 매보 중에는《산해경(山海經)》에서 기록한 매화와 관련된 내용은 오직 한 군데 밖에 없고 중에는 아예 없고 국보 중에는 한 군데 밖에 없는데 이 죽보 중에 뜻밖에도《산해경(山海經)》에서 대나무와 관련된 내용은 24군데나 기록되어 있다. 옛 사람들이 대나무를 지극히 사랑함을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대나무가 푸르고 길고 고운 특성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서 문학 작품의 소재로 쓰여 있었다.39)

   위진 남북조시기에는 전란이 빈번하고 시국이 혼란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근심과 공포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술과 자연에 기탁하는 은일 생활을 추구하였다. 《진서·혜강전(晉書·嵇康傳)》중의 혜강을 비롯한 죽림칠현(竹林七賢), 《진서·기첨전(晉書·紀瞻傳)》중의 기첨(紀瞻), 《왕휘지전(王徽之傳)》중의 휘지(王徽之),《양서·처사전(梁書·處士傳)》중의 완효서(阮孝緖), 《남사·원찬전(南史·袁粲傳)》중의 원찬(袁粲), 《심약전(沈約傳)》중의 심약(沈約), 《북사·양음전(北史·楊愔傳)》중의 양음(楊愔),《영가군기(永嘉郡記)》중의 장치(張廌) 등이 그 대표 인물들이었다.40)


   대나무에 대해 이러한 혹애 분위기 속에서 중국 현존한 최초 대나무 저서인 대개지(戴凱之)의《죽보(竹譜)》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문학 작품 중에 기이한 대나무 이야기도 많이 기록되었다. 《박물지(博物志)》반죽(斑竹)의 유래, 《신선전(神仙傳)》중 바람이 없어도 바닥을 닦을 수 있는 신령스러운 계죽(桂竹), 토기(風土記) 》제단(祭壇)을 닦을 수 있는 대나무 이야기, 《습유기(拾遺記)》 바람이 불어오면 쇠북과 경쇠 소리를 내는 대나무,《화양국지(華陽國志)》대나무에서 태어난 죽왕(竹王) 이야기, 《형주기(荊州記)》 퉁소의 소리를 내는 대나무, 《광주기(廣州記)》중의 아서 칼을 만들면 코끼리의 가죽을 써는 것처럼 토란을 쉽게 써는 굳세고 날카로운 석마죽(石麻竹), 《영가군기(永嘉郡記)》 궁(宮)과 상(商)의 소리를 내는 근죽(䈥竹) 등이 있다.41)


36)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82쪽 참조.
37) 《역경·설괘(易經·說卦)》는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82쪽, 《시경·소아(詩經·小雅)》는 283쪽 참조.
38) 《예기·월령(禮記·月令)》《주례·춘관(周禮·春官)》은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83쪽, 《시경·위풍(詩經·衛風)》은 282쪽, 《사기·하거서(史記·河渠書)》는 284쪽 참조.
39) 王汐牟, <曆代竹譜的編撰與中國古代竹文化的演化曆程>, 《廊坊師範學院學報(社會科學版)》, 第4期, 2012, 78-81쪽 참조.
40) 《진서·혜강전(晉書·嵇康傳)》, 《진서·기첨전(晉書·紀瞻傳)》《왕휘지전(王徽之傳)》은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85쪽, 《양서·처사전(梁書·處士傳)》, 《남사·원찬전(南史·袁粲傳)》《심약전(沈約傳)》은 286쪽, 《북사·양음전(北史·楊愔傳)》은 287쪽, 《영가군기(永嘉郡記)》는 296쪽 참조.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55 -

제목 저자 년대 체재 내용


〈此君傳〉劉子翬 宋 傳
대나무군자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대나무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대나무의 가족사와 대나무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淸虛居士傳〉方淸 明 傳
대나무선생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대나무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대나무의 가족사와 대나무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管若虛傳〉洪璐 미상 傳
대나무를 사람으로 삼고 옛 문학 작품 중 대나무와 관련된 고사들에 의하여 대나무의 가족사와 대나무의 생애를 기술하였다.
〈養竹記〉白居易 唐 記
대나무네 가지 미덕 및 대나무를 기르는 동안 서로의 상지상처(相知相處)를 기술하였다.
〈植竹記〉劉巖夫 미상 記
작자가 대청 밖에서 왜 대나무만 심었는지를 논술하며 군자와 같은 대나무의 덕행을 숭상한 것을 기술하였다.
?竹記)〉劉寬夫 唐 記
작자가 대청 앞에 있는 대나무를 베는 경유를 기술하였다.

   당나라 때는 중국 전통 문화 발전의 전성기였다. 이 때 대나무가 상징 의미를 가지고 문인들의 작품 속에 깊이 들어가면서 동시에 기이한 대나무 품종에 대한 기록, 문인들과 대나무 간의 일화들이 이전 시대 못지않게 많이 나타났다.《속세설(續世說)》중의 두보(杜甫)의 전원생활 이야기,《독락원기(獨樂園記)》중의 좌천을 당한 사마광(司馬光)이 독락(獨樂園)을 지었다는 이야기,《동파집(東坡集)》중의 소식이 남파(南坡)에 대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 《냉재야화(冷齋夜話)》중의 보타산암죽(寶陀山巖竹)이라는 그림의 유래, 《각소편(卻掃編)》중의 소철(蘇轍)과 대나무의 일화, 《휘주여화(揮麈餘話)》중의 조원진(趙元鎭)과 대나무의 이야기 등이 있다.42)  그리고 이 부분에 나타난 대나무로 이름이 지어진 곳은 풍황령(風篁嶺), 반죽록(斑竹麓), 죽헌(竹軒), 수죽오(水竹塢), 죽오(竹塢) 등이 있다.

다음은 집조 중에 수록된 내용의 개관이다.

41) 《박물지(博物志)》, 《신선전(神仙傳)》, 《풍토기(風土記)》, 《습유기(拾遺記)》는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 294쪽, 《화양국지(華陽國志)》《형주기(荊州記)》는 295쪽, 《광주기(廣州記)》 296쪽, 《영가군기(永嘉郡記)》는 297쪽 참조.
42) 《속세설(續世說)》, 《독락원기(獨樂園記)》《동파집(東坡集)》은 신방방의 박사학위논문303쪽, 《냉재야화(冷齋夜話)》는 305쪽, 《각소편(卻掃編)》은 309쪽, 《휘주여화(揮麈餘話)》 310쪽 참조.

中國人文科學 第69輯      - 256 -

   다음은 집조 중에 수록된 내용의 개관이다.


〈竹樓記〉王禹偁 宋 記
작자가 대나무 누각 집에 있는 일상생활을 기술하였다.
〈文與可畫篔簹穀偃竹記〉蘇軾 宋 記
벗인 문여가(文與可)《운당곡언죽(筼簹穀偃竹)》이라는 그림에 지어준 기문이다.
〈有竹堂記〉晁補之 北宋 記
작자가 이문숙(李文叔)유죽당(有竹堂)이라는 대청에 지어준 기문이다.
〈萬玉山房記〉王世貞 明 記
사안(司顔) 선생만옥산방기(萬玉山房)라는 서재에 지어준 기문이다.
〈竹溪記〉唐順之 明 記
외삼촌의 죽계원(竹溪園)에 지어준 기문이다.
〈跋陳慧父竹坡詩稿〉眞德秀 宋 跋
진혜부(陳慧父)의《죽파시고(竹坡詩稿)》에 지어준 발문이다.
〈竹譜〉戴凱之 晉 雜著
운문의 형식으로 대나무의 생장환경, 종류, 형태특징, 용도를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Ⅳ. 역주《광군방보》의 학술적 가치
   강희 황제가 즉위한 후에 국가 경제가 발전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원림과 화훼도 크게 발전되었다. 책을 많이 편찬한 역대 황제들처럼 강희 황제가 한림원에 명을 내려서 수 많은 서적의 교정 및 편찬 활동을 벌였다. 이 책인《광군방보》를 편찬한 목적은 역대 문헌에 나타난 식물 자료를 수집하고 고증하여 후인들이 식물에 대해 더욱 쉽게 검색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광군방보》가 곧 이러한 배경에서 세상에 나왔다.

   앞에 언급했듯이 매·난·국·죽은 일찍부터 옛사람들의 시선 속에 들어가며 실용적인 가치 단계에서 심미적인 가치 단계까지의 변천 궤적을 드러냈다. 옛 사람들은 매·난·국·죽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선명한 문화 특색도 부각시키고 다양한 화사(花事)도 벌였다. 그러나 최근 국내 학문 연구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체계적으로 매보·난보·국보·죽보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대 식물학 백과사전이라는《광군방보》가운데 매보·난보·국보·죽보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옛 고사, 고전(古典), 전기(傳記) 등을 역주하였다. 그 내용 측면의 학술적 가치를 고찰해보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중국 고대 매·난·국·죽의 품종, 재배 방법, 지리 분포, 실용가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매보에는 총 20가지 매화 품종, 난보에는 총 51가지 난 품종, 국보에는 314가지 국화 품종, 죽보에는 총 112가지 대나무 품종이 수록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경우 옛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으로 해당 품종의 식물 특성, 재배 방법, 지리 분포, 실용가치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오늘날에 대부분 품종이 사라졌고 게다가 해당 품종 삽화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들의 실제 모습을 보기는 매우 힘들다.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57 -


   하지만 역대 작자들이 그 당시의 식물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구하여 글로 전해주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보류(譜類) 저서 체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로써《광군방보》는 고대 식물의 발전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직관적인 사료를 제공해준다. 또는 한국에서 최초로 한글화 되면서 매·난·국·죽을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도 그 중에서 옛 사람들이 썼던 재배방법이나 실용 가치
를 흡수하여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중국 고대 역사 문헌을 연구하는 데 학문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광군방보》 매보·난보·국보·죽보 중에서 작자 자신의 경험 외에 옛 사람이 저술한 것을 많이 인용하였다. 매·난·국·죽 전문적인 저서가 나오기 전에 매화, 난, 국화, 대나무는 거의 다 단편적으로 전해왔다. 아쉽지만 옛 매화, 난, 국화, 대나무의 발전 역사를 고증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인 것으로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들이 지금 실전된 경우가 많다. 이 실전된 책들을 고증하는 데 현존한 책에서 나온 내용은 중요한 학문적 근거가 되었다. 역자가 통계한 것에 따르면 매보 중에는 총 56권, 난보 중에는 총 48권, 국보 중에는 총 40권, 죽보 중에는 총 88권 고서(古書)를 인용하였다. 이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옛 사람들이 매·난·국·죽을 인식하여 이용하는 과정의 실제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연 생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유의하는 것은 그 실용 가치이다. 매화는 처음에 국 맛을 내는 매실로 인식되었고, 난은 처음에 연길(燕姞)이라는 여자가 난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로 귀하고 신비스러운 꽃으로 인식되었으며, 국화는 처음에 장생불로 약과 재앙을 쫓아낼 수 있는 꽃으로 인식되었고 대나무는 처음에 화살, 악기 관, 시루를 만드는 실용적인 식물 등으로 인식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이 점점 실용가치에서 시선을 돌려서 매·난·국·죽을 음영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에 인격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옛 사람들의 매·난·국·죽에 대한 애착심을 생생하게 연상할 수 있다.

   넷째, 각 시대 매보·난보·국보·죽보의 전문적인 보록(譜錄) 저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광군방보》 진(晉)나라부터 원(元)나라까지의 주요 저명한 보록(譜錄)들에 대해 요약, 제시, 선별로써 부분적으로 편찬하였다. 이 속에서 수록되어 있는 보록들의 취사, 선택 과정과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광군방보》에서 이러한 방대한 자료에 대해 선별, 분류, 고증, 평가 등 학문적 자세를 통하여 학자뿐만 아니라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연구하고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준다.


中國人文科學 第69輯    - 258 -

보록 명칭 시기 저자 수록 상황

《梅譜》宋 范成大4가지 매화 품종, 전 서문, 후 서문, 본문의 부분 내용
《梅品》宋 張鎡 서문, 본문의 부분 내용
《金漳蘭譜》宋 趙時庚 20가지 난 품종
《蘭譜》宋 王貴學 23가지 난 품종
《劉氏菊譜》宋 劉蒙泉 한 가지 국화 품종, 국보 서문, 정품(定品), 설의(說疑)
《菊譜》宋 范成大 한 가지 국화 품종, 국보 서문
《菊譜》宋 史正志 한 가지 국화 품종, 전 서문, 후 서문
《菊譜》宋 沈兢 26가지 국화 품종, 본문 부분 내용
《越中菊譜)》宋 史鑄 4가지 국화 품종
《洛陽菊譜)》宋 周師厚 12가지 국화 품종
《竹譜)》晉 戴凱之 74가지 대나무 품종
《筍譜)》宋 僧贊寧 26가지 대나무 품종
《續竹譜)》元 劉美之 3가지 대나무 품종

   이러한 보록 중에는 매·난·국·죽 각 품종에 대한 기록, 해당 품종의 실용 가치, 저자의 재배 기술의 노하우뿐만 아니라 저자의 철학적 사상과 문학·예술적 감상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를 한 데 모아 선집으로 보여줌으로써 후속 연구에 기반을 다져준다. 후세들이 매보·난보·국보·죽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를 제공해준다.

   마지막으로 이를 계기로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매화, 난, 국화, 대나무사군자일 뿐만 아니라 꽃, 차, 곡식, 채소 등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다른 화초, 식물 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수행할 매·난·국·죽과 관련된 품종 소개, 고사 고증과 산문 전기(傳記) 등의 번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집조 부분에 있는 옛 사람들이 지은 각 체재의 시도 번역할 계획이다.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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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永瑢,纪昀 等《四庫全書》, 上海古籍出版社, 1995.
程傑,《中國梅花審美文化硏究》, 四川出版集團巴蜀書社, 2008.
張榮東,<中國古代菊花的命名與菊事活動考>,《大慶師範學院學報》, 第4期, 2010.
王汐牟,<曆代竹譜的編撰與中國古代竹文化的演化曆程>,《廊坊師範學院學報(社會科學版)》, 第4期, 2012.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의 내용분석 및 의의 고찰     - 259 -

王子凡·張明姝·戴思蘭, <中國古代菊花譜錄存世現狀及主要內容的考證>,《自然科學史硏究》, 第1期, 2009.
趙濤, <《廣群芳譜》的文獻價値>, 《新疆大學學報》, 第4期, 2006.
周肇基·魏露答, <中國古代蘭譜硏究>, 《自然科學史硏究》, 第1期, 1998.
신방방, <역주《광군방보(廣羣芳譜)》-매보(梅譜)·난보(蘭譜)·국보(菊譜)·죽보(竹譜)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제출하지 않음).
百度百科,https://baike.baidu.com/item/%E5%B9%BF%E7%BE%A4%E8%8A%B3%E8%B0%B1/2678397?fr=aladdin

【Abstract】
In this study, the Mei Pu, Lan Pu, Ju Pu, and Zhu Pu of "Guang Qun Fang Pu" were translated and annotated. "Guang Qun Fang Pu", known as the encyclopedia of ancient botany, includes the types of plants, ecological characteristics, cultivation methods, effects of grains, fruits and vegetables, flowers, and so on. Based on "Qun Fang Pu", "Guang Qun Fang Pu" was revised by Hao Wang in the Qing Dynasty, which consists of Tian Shi Pu, Gu Pu, Sang Ma Pu, Shu Pu, Cha Pu, Zhu Pu, Hua Pu, Guo Pu, Mu Pu, Hui Pu, and Yao Pu. At that time, a total of 1667 species of domestic and foreign varieties were included. Each plant containing the name and the shape was analyzed in detail. Also, this book included cultivation methods of many kinds of plants and various ancient literary works related to plants. Recently, due to
the domestic research segments, the systematically translating on Si Jun Zi Hua Pu has declined. This paper focuses on the Mei Pu, Lan Pu, Ju Pu, and Zhu Pu of "Guang Qun Fang Pu"; it is the first time to perform Korean translations on the related ancient events, classics, and biographies. Because of more comprehensive and accuracy than the original work of Xiangjin Wang, it provides important reference value for ancient plants study in the future.

【Key words】"Guang Qun Fang Pu", Mei Pu, Lan Pu, Ju Pu, Zhu Pu

접수일자 2018.06.29 심사완료일 2018. 07.29 게재확정일 2018. 08.02


 


http://cafe.daum.net/jangdalsoo/j36U/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