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허남춘 교수(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명혜(강원대학교 교수), 김유정(미술평론가), 김정숙(제주대학교 교육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 변숙자(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제주 신화 속 꽃의 의미를 찾아” 라는 주제로 ‘제주도 신화에 등장하는 꽃의 상징성과 의미연구’ 세미나가 지난 16일 눈 내리는 서귀포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렸다.
서귀포시문화도시조성사업의 일환인 이번 학술세미나는 제주인의 죽음에 대한 미의식의 뿌리로서 '서천꽃밭'이야기 등 제주 신화 속 꽃의 생명성과 치유의 기능을 확인하고, 생태적 관점에서 보는 신화의 상호소통방식에 대하며 제주신화의 의미와 독창성을 찾아보기 위해 마련됐다.
'현대문명과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갈아 없애는 맷돌과 같다'
좌장으로 나선 허남춘(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교수는 블레이크의 싯구를 차용한 문구를 시작으로 이 흥미로운 주제의 포문을 열었다. "제주신화에는 생명 존중의 정신과 고난을 이겨 나가는 인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대등하다는 가치와 현대 문명이 신화 속으로 회귀하는 이유를 설파하며 제주의 과거, 신화 속의 삶으로 이끌었다.
1부의 첫순서는 일본 출장 중인 관계로 영상으로 강연을 대신한 문무병(제주신화연구소)소장의 '서천꽃밭에 대한 미학적 담론’으로 시작했다.
"꽃이 없으면 굿도 없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굿은 옛 제주인에게는 희망이었으며 심방은 ‘의사’에 가깝고 꽃은 ‘의술’이었다. 이공본풀이는 ‘서천꽃밭’을 찾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이다. 죽음의 공간인 저승과 삶의 공간인 현실의 대립이다. 그러나 굿을 통하여 대립은 화해로 바뀌며 화해는 꽃을 통하여 환생의 의미로 바뀐다. 마침내 굿을 통해 우리의 삶이 이어진다는 주제로 귀결됐다.
강명혜 (강원대학교) 교수는 <제주도 신화 속 꽃의 상징성 및 생체 치유의 기능>에 대해 이어갔다. "제주도 신화에 나타나는 ‘꽃’ 이나 ‘꽃밭’은 동남아지역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개이다", 사철 꽃을 볼 수 있는 제주도의 기후적 특성을 들며 북쪽 지방의 버드나무 여신이나 북유럽 신화, 몽고나 만주도 나무, 즉 어머니 나무를 섬기는 풍습과 대비해 설명했다. 또 서천꽃밭에 다양한 기능을 하는 꽃들. 환생과 치유의 꽃만이 아닌 멸망꽃, 악심꽃, 수레멸망악심꽃 등의 부정적 기능도 조명했다.
"꽃과 꽃밭은 인간생애의 모든 인간 존속의 법칙이다"
낡은 질서의 소멸과 새로운 질서의 출현, 봄과 겨울의 싸움에서 오래된 것은 죽고 새순이 돋아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마땅한 자연의 법칙으로 풀어냈다.
김유정(제주문화연구소, 미술평론가)소장은 <제주인의 죽음문화와 미의식>을 통해 제주인의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의식, 한 뿌리로 인식 되는 현상을 설명했다. 제주도의 제사 문화 중 ‘문전제(門前祭)’를 예로 들며 그 제의 대상인 문전신은 ‘문전본풀이’ 에서 유래함을 언급했다. 또 제주 문화 사료 속에 꽃의 기호적 상징성과 복수적 기능, 치유적 기능이 복합적으로 엮어있는 다중적 특성을 통해 제주인의 미의식을 설명했다. "문자도의 경우, 효의 상징으로 잉어 대신 갈치, 우럭, 옥돔으로 대치했으며 신의를 나타낼 때는 입에 서신을 문 기러기 대신 꿩이 나타난다"고 비교했다. "실제보다는 상상을 재구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꽃을 통해 관념적 주제도 생략, 상세, 단순화한 제주도 미술의 특징을 드러냈다. 또 담채표현이 두드러지는 점은 물감이 귀했던 당시 제주도의 상황을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숙 신화연구가가 현대미술에 차용된 제주신화 속 이미지를 설명하고 있다. |
2부 발제자로 나선 김정숙(제주대학교 교육과학 연구소 특별연구원)신화연구가는 <제주신화 속에 나타난 꽃의 생명성과 영성>을 통해 신화적 시선이란 즉 ‘타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굿판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메’인 동백에 대해 "심방들이 굿을 할 때 가장 많이 손에 잡는 꽃이지만 정작 신화텍스트에는 동백꽃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식하는 글자로서의 ‘꽃’을 빼고 고유한 이름을 가진 꽃 각각은 각각의 기능, 개성, 고유성을 가지며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은‘ '환생꽃’과 ‘번성꽃’으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추운 겨울에 홀로 빨갛게 피는 동백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상징하며
번성꽃이 되고, 환생꽃이 된다"
변숙자(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겸임교수) 교수는 <생태적 관점에서 본 신화의 상호소통 방식과 의미>를 발제했다. 세경본풀이 중 정수남이가 숲속 공간에서 본능과 짐승성이 극대화되고 이후 목축신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처럼 신화 속 공간은 존재의 변화를 이끌고 각 공간에 존재하는 힘을 양면적 속성을 지닌 주인공을 통해 소통시킨다. 즉 신화에서는 인간, 자연, 신이라는 세계가 각자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며 소통하며 상실되거나 전이되지 않고 내재되어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3부 자유토론 시간이 오자 패널들은 제주신화의 여성성에 주목했다. 고구려의 유화부인이 어머니와 처에 머물렀듯 고대, 중세의 신화에서는 남성영웅주의 신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제주신화는 우승, 열패, 약육강식의 주제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두루 먹여살린다'는 여성성이 극대화된 이야기이다. 이는 제주도 특유의 공동체정신과 맞닿으며 현대인의 삶 또한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무당과 굿이 사라지며 고유의 민속과 풍습이 사라지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강명혜 교수는 "무속을 풍습이 아닌 종교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 꼬집었다. 변숙자 교수는 "중국은 전통문화 내용이 대폭 증가한 개정교과서를 현장에 보급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기복신앙에서 유래된 전통풍습을 ‘마쯔리’축제로 안착시켰다. 반면 우리 교과서의 전통은 더없이 줄어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허남춘 교수는 "교육의 현장에서 전통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제주신화에 대한 눈높이에 맞는 교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제주신화를 통해 하늘과 땅의 덕을 인정하면서 자연과 공존해 사는 게 제주의 정신임을 되짚으며 뜻깊은 장정을 마무리했다.
양희주 sgp199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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