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연구

2019. 12. 12. 11:07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연구|중국인문과학 
樂民(장달수)|조회 31|추천 0|2018.10.28. 19:11                              http://cafe.daum.net/jangdalsoo/j36U/632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연구


申芳芳*

―――――――――――――― < 目次> ――――――――――――――
Ⅰ. 머리말
Ⅱ. ‘鐵腸石心’의 사용례
Ⅲ. ‘鐵腸石心’의 변용 양상
1. 自敬의 구현
2. 상대 인품 칭찬
3. 정치적 입장 토로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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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매화는 중국에서 國花로 삼을 정도로1) 으뜸이며, 예로부터 문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일본 등 중국 이웃나라에서도 매우 보편적이다. 옛 문인 묵객들은 수많은 꽃 중에 왜 매화를 소재로 많이 삼았을까?2) 그것은 매화가 고결하고 아담한 이미지로 문인 묵객의 눈을 끌어 그들에게 섬세한 묘사와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 전남대학교
1) 중국 園林學界大家이자 중국 工程院院士인 陳俊愉교수는 그의 논문에 매화가 왜 중국의 國花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밝혔다. <我國國花應是梅花>, ≪植物杂志≫, 1982年第1期, 31-32쪽. <103位院士簽名贊同‘雙國花’(梅花、牡丹)——這一創舉對我國評選國花現狀說明了什麼?>, ≪中国园林≫, 2011年第8期, 50-51쪽.
2) 宋代는 매화를 노래하는 전성기이다. 許伯卿의 ≪宋詞題材硏究≫에 따르면 宋詞영물 작품은 총 2208 수이며 노래한 꽃 종류는 총 57 가지이다. 그 가운데에 앞 10위를 차지하는 꽃들은 다음과 같다. 매화는 1041수이며 꽃을 노래하는 詞중에 47.15%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에 계수나무 꽃은 187수, 8.47%, 연꽃은 147수, 6.65%, 해당 꽃은 136수, 6.16%, 목란은 128수, 5.80%,국화는 76수, 3.44%, 찔레꽃은 60수, 2.72%, 납매는 49수, 2.22%, 복숭아꽃은 48수, 2.17%, 작약은 41수, 1.86%(그리고 난초는 15수, 0.68%로 17위를 차지하고 있음.) 등으로 되어 있다. 매화
및 납매는 총 1090수로 전체 꽃을 노래한 詞 중에 반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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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매화는 추운 겨울에 세한을 이겨 꽃망울을 터트리고 세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강인한 이미지는 정의로운 애국 문인 묵객들로 하여금 역경에 처했을 때 매화 속에서 그들의 정신을 찾아내게 했다.

   문헌상 매화를 노래하는 시는 유래가 깊다. 최초로 ≪上書≫에서 국을 끓일 때 鹽梅 조절하듯 정치를 적절하게 행해야 한다고 하였고 또한 ≪詩經≫<標有梅>에서 소녀가 매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청춘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어 곧 결혼하게 되길바란다는 내용 등은 다 매실을 언급한 것이다. 매화가 관상용으로 재배되면서 남북조시기에 이르러 시인들은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된 매화시를 노래하기 시작하였고 唐·五代를 거쳐 송나라 때에 理學의 확립과 더불어 매화시의 전성기가 되었다. 이 때 매화는 보편적으로 문인 묵객들의 가장 숭고한 인격에 비유되었다.

   시가에서 作法이 중요하고 그 중 가장 중요한 한 분야가 典故를 잘 구사하는 문제3)다. 예술 부호로서 전고는 철학적이고 다정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변용되고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전고는 지속적으로 원래 표현 의미가 강화되고 새로운 표지가 융합되었다. 이에 전고의 형성은 한 시대의 문화 부호의 누적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는 매화시 문학 작품 속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매화의 강인한 절개가 관심을 받으면서 예술 표현상의 요구로 梅와 관련된 전고 즉 옛 시어들이 매화시에 공동된 소재가 되어 더욱 깊이 있는 뜻이 부각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鐵腸石心’이라는 시어를 규명하고자 한다. 

물론 매화 정신을 시의 소재로 창작할 때 표현 방법이 많이 있긴 하지만 본고에서는 관련 시어를 가지고 매화에 철석같은 품격을 부각시키면서 시작품을 다루고자 한다. 宋璟4)이 25세 때에 지은 <梅花賦> 한편이 있는데, 당나라 皮日休5)는 그의 <桃花賦․序>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당나라 명재상인 宋璟과 매화를 관련지었다.6) 宋璟이 당나라의 유명한 재상으로서 <梅花賦> 한편을 노래했다는 것은 예로부터 유명했다. 특히 皮日休가 宋璟이 철석같은 강직한 마음을 가지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梅花賦>를 노래한 것이 그의 인품과 닮지 않았다고 본다는 관점 이후에 더 큰 화제가 되었다.7)


3) 이종묵, <고전시가에서 用事와 點化의 미적 특질>, ≪韓國詩歌硏究≫ 3집, 1998, 323쪽.
4) 宋璟: 663~737. 邢州南和출신이며 자는 廣平이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문장력이 뛰어났으며, 강직한 정치가이자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다. 玄宗開元4년 716년에 姚崇을 이어 승상이 되었는데, 賦役을 완화하고 형벌을 줄이는 등 그간의 정책을 잘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개원 연간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재상 요숭과 함께 ‘姚宋’으로 불렸다.
5) 皮日休: 약838~약883. 晩唐문학가로서 湖北省襄陽사람으로 자는 逸少 또는 襲美고, 호는 醉吟先生 또는 間氣布衣이다. 일찍이 고향 근처의 鹿門山에 은거하여 시와 술을 벗 삼았다. 이 시기의 작품은『皮子文藪』에 실려 있다.

6) 皮日休, <桃花賦․序>: “내가 일찍이 재상 宋璟의 바르고 강직한 자질과 강인하고 의연한 자태를 사모하였다. 그렇게 강직한 ‘鐵腸石心’으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을 토해낼 줄 모르리라고 여겼다. 그의 <梅花賦>를 보건데, 맑고도 화려함이 南朝의 서유[徐庾, 즉, 徐陵과 유신庾信]의 문체를 꼭 닮아서 자못 그의 인품과 같지 않았다.[余嘗慕宋廣平之爲相, 貞姿勁質, 剛態毅狀。疑其鐵腸石心, 不解吐婉媚辭. 然睹其文而有<梅花賦>, 清便富豔, 得南朝徐庚體, 殊不類其爲人也.]” (≪全唐文≫ 卷796, 中華書局, 1983.)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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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鐵腸石心’이란 시어는 단순히 宋璟의 신체 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적으로 宋璟의 인품으로 지칭한 것이다.
시인들은 본래 자신의 생애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시를 창작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생활 속의 느낌들이 그때마다 시에 담겨 그대로 표현된다. 시는 직접적이기보다는 사물이나 자연에 비유하는 수법을 통해 시인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시인이 매화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은 매화만이 가지고 있는 품격 때문이다. 그러므로 송대 문인묵객들이 현실의 어지러운 정세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을 벗으로 삼아 자연에서 나타나는 매화를 통해 고고한 인격과 지조를 노래하고, 또한 애국적인 정서를 나타내곤 하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매화시에서 매화의 강인한 품격에 부합한 ‘鐵腸石心’이란 시어를 운용하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로부터 널리 사랑받은 매화를 시의 제재로 한 작품이 많이 남겨져 있기에, 관련된 연구도 적지 않게 축적되어 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연구는 매화시 전체를 다룬 연구에 머물고 있으며8), 매화시의 시어를 고찰한 연구는 매우 드문 형편이다. 다만 시어와 관련된 매화시의 연구는 겨우 김재용 교수의 논문 한편 밖에 없었다. 그는 논문에서 한국 매화시에서 나타난 ‘鐵腸石心’이 어떻게 변용되어 사용되었는지를 깊이 들여다봤다.9) 앞서 매화시의 역사가 깊고 특정한 전고사용이 많은 것을 밝혔듯 특정 시어를 통해 매화시를 분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김재용이 위의 논문에 언급한 “중국에서 당나라 皮日休 이후 어느 시인도 ‘鐵腸石心’이란 용어를 사용한 예를 찾아볼 수가 없었고, 宋璟과 연관 지은 시 또한 찾아볼 수가 없었다.”10)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자가 ≪全宋詩≫를 가지고 통계한 것에 따르면 ‘鐵腸石心’ 관련 시어 보인 매화시는 대략 76수나 되기 때문이다.


7) 程杰, ≪宋代詠梅文學硏究≫, 安徽文藝出版社, 2002, 387쪽 참조.
8) 매화시의 전체를 다루는 연구는 신익철의 <조선시대 매화시의 전개와 특징>(≪東方漢文學≫ 56집, 2013)이 있다. 이 논문은 조선시대를 세 시기로 나누어 매화시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특정 작가 매화시 연구는 이지운의 <동방여성문학: 沈宜修梅花詩硏究>(≪中國語文學誌≫ 39집, 2012)가 있으니 심의수 매화시를 창작 동기상, 체재상, 내용상 등 세 가지 특징을 검토하였다. 또한 盧垠靜의 <南宋四大家咏梅詩硏究>(≪중국어문학논집≫ 39집, 2006)가 있다. 이 논문은 陸游·楊萬里·范成大의 詠梅詩가 어떠한 특징으로 전대의 詠梅詩와 변별되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이밖에 여러 연구가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만큼 많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해당 연구만 언급하기로 한다.
9) 김재용, <韓國梅花詩의 傳統과 宋璟>, ≪우리文學硏究≫ 22집, 2007.

10) 김재용, 앞의 논문,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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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듯이 매화시 문화가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깊은 역사가 흐르면서 다듬어진 ‘鐵腸石心’ 관련 시어들이 다양한 색채를 띠며 매화시 속에 녹아 있다.

   이 용어를 최초로 宋璟과 연관을 지어 사용한 皮日休나 재상인 宋璟이 다 당나라 사람이므로 필자가 처음에 ≪全唐詩≫11)를 대상으로 삼아 통계를 내보았는데 ‘鐵腸石心’과 관련된 시어가 보이는 작품은 고작 몇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 때에 ‘鐵腸石心’과 관련된 시어가 많이 인용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중국 송대 매화시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 중에 나타난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변용 양상을 연구의 중점으로 삼았다. 먼저 2장에서는 ‘鐵腸石心’이 보이는 매화시의 사용 방식, 체재, 주제, 시기 등 몇가지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 3장에서는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변용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4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요약 정리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全宋詩≫12)에 한정하여 다루고자 한다. 다른 시집에는 매화를 제재로 한시가 일부 보이나 양이 적고, 문학적 성취도 또한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아서 ≪全宋詩≫를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全宋詩≫ 중 매화시에 ‘鐵腸石心’이라는 시어가 인용되지만 문학적 의미를 드러내지 않고 매화의 외형 특징만을 묘사하는 경우도 본 연구에서 제외하였다. 본고에서 해당하는 매화시는 주로 中國國家數字圖書館13) ≪全宋詩≫ 분석시스템에 의해 통계한 것이다. 그리고 대상 작가의 선정은 기존 연구를 참고하면서 매화시를 많이 남긴 시인에 관심을 가지며, 기존 연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뚜렷한 문학적 특징을 나타내는 작품의 경우 ≪全宋詩≫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같이 다루기로 했다. 매화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어가 가지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본고에서는 ‘鐵腸石心’의 시어가 보이는 매화시 내용에 따라 주제별로 분석하여 관련 시어의 미학적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화시의 특정 시어를 살핀다면 향후 매화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11) ≪全唐詩≫: 청나라 康熙帝의 勅命으로 彭定求 등 10명이 편찬했으며 총900권, 목록 12권이 있다. 唐代에 지은 시 형식 작품을 거의 수록했으니, 시인 2,200여 명에 작품이 48,900여 편으로, 唐代산문 총집인 ‘全唐文’ 1,000권과 함께 당 나라 문학의 2개 총집이다.
12) ≪全宋詩≫, 북경대학고문헌연구소에서 편찬했으며 총 72책이 있고, 9206명 시인, 254,247수의 시가 수록되어 한 시대의 시가 총집이다.
13) 國國家數字圖書館사이트 주소: www.nl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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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鐵腸石心’의 사용례
   필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鐵腸石心’ 관련 시어가 언급된 시는 대략 76수가 되는데 이 작품들을 내용에 따라 自敬의 구현, 상대 인품 칭찬, 정치적 입장 토로 등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시의 제목에는 ‘梅’또는 ‘梅花’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시의 내용상 매화가 주요 소재가 되는 경우나 시의 원문에 ‘梅’ 또는 ‘梅花’가 사용된 시들도 가끔 있다. 예를 들면 張孝祥<與趙李二同年夜飲有懷石使君惠叔>는 詩題가 음주 감회이지만 매화시로 언급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내용상 필요하다면 이들 시도 연구범주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원칙 아래 송대 매화시에서 나타난 ‘鐵腸石心’의 사용례는 <표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 1>. ‘鐵腸石心’의 사용례

저자 생몰년 형식 詩題 詩語
秦觀 1049~1100 古體詩 和黄法曹憶建溪梅花誰云  廣平心似鐵
陳公輔 1077~1142 古體詩 戲和德升賞梅因記十三日梅園之游諸兄  一笑公心亦似鐵
周紫芝 1082~1155 古體詩 和李似表丞廳梅發用胡士曹韵  鉄心雖冷白自勝
周紫芝 1082~1155 七言律詩 次韻道卿梅花長句  風味能回鐵石嚴
周紫芝 1082~1155 古體詩 次韻陳郎中再賦孤山梅  麗句誰能鐡石腸
李綱 1083~1140 七言律詩 梅花二首其二  廣平不害心如鐵
李綱 1083~1140 七言律詩 次季弟韻賦梅花三首其三  莫道廣平心似鐵
綦崇禮 1083~1142 七言律詩 賦東城梅花示哲上人  鐵石心腸猶解賦
張綱 1083~1166 古體詩 春末桃李盛開竹間 有梅一枝嶷然秀發 用唐子西韻簡汪彦章  誰知先生鐵石心
張綱 1083~1166 古體詩 次韻公顯賦蠟梅詩二首其一  李侯鐵心似廣平
陳與義 1090~1138 七言絕句 再賦二首呈奇父其二  先生莫道心如鐵
劉子翬 1101~1147 古體詩 次韵蔡學士梅詩  未害廣平心似鐵
王十朋 1112~1171 七言絕句  四日雪坐間有江梅水仙花因目曰三白梅花  此花真是鐵心花
李正民 북송 말기 七言律詩 和同院梅花其二  笑剛腸如鐵石
王銍 북송 말기 古體詩 明覺山中始見梅花戲呈妙明老   獨有廣平心似鐵
王之望 (?~1170) 七言絕句 和錢處和梅花五絕其四  鐵心開府不妨狂
葛立方 (?~1164) 七言律詩 周元舉侍郎梅花次韵三首其一  雖是廣平心似鐵
喻良能 1120~1205 七言律詩  亦好園梅花  從來自倚心如鐵
喻良能 1120~1205 七言律詩  次韻奉酬林明府詠梅   鐵腸還解賦梅花
喻良能 1120~1205 七言律詩  次韻宋嗣宗梅花其一   鐵石廣平曾作賦
陸游 1125~1210 七言絕句  梅花絕句十首其一   廣平莫倚心如鐵
陸游 1125~1210 古體詩  看梅絕句五首其一   不信如今鐡石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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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游 1125~1210 古體詩  庚子正月十八日送梅   莫倚心腸如鐵石
陸游 1125~1210 古體詩  攜癭尊醉梅花下   来伴老子鐵石腸
范成大 1126~1193 七言律詩  再題瓶中梅花   鐵石如翁猶索句
項安世 1129~1208 七言絕句  二十七日衡陽義宰以奚奴墨梅侑客   鐵石心腸宋廣平
釋寶曇 1129~1197 古體詩   梅花歲寒   鐵石乃吾事
朱熹 1130~1200 五言律詩  宋丈示及紅梅臘梅借韻兩詩輒復和呈以發一笑其一   鐵石悞心期
許及之 ?~1209 古體詩  次韻周畏知用南軒聞說城東梅十里句爲韻六言七首其二   廣平心腸鐵石
張孝祥  1132~1170 古體詩  與趙李二同年夜飲有懷石使君   惠叔鐵石賦梅花
廖行之 1137~1189 七言絕句   和武公望雪梅五首其五   鐵石心腸肯受欺
樓鑰1137~1213 七言絕句  謝潘端叔惠紅梅其一○  鐵石心腸可柰何
辛棄疾  1140~1207 七言律詩   和吳克明廣文賦梅   鐵石心腸也惱翁
趙蕃  1143~1229 七言絕句   梅花絕句五首要明叔仲威同作其二   政要渠儂鐵石心
趙師 1148~1217 七言律詩   綠萼梅   廣平真是鐵心腸
張鎡 1153~1221 七言絕句   尋梅三首其二   鐵石心腸欠我詩
曹彥約 1157~1229 古體詩   有懷昌谷老梅再次晦父韻兼贈仲元弟   鐵石廣平猶壓倒
曹彥約 1157~1229 七言律詩   次仁季詠梅韻    鐵心曾對廣平開
裘萬頃  ?~1219 七言律詩   次王成之咏梅   未害平生鐵石腸
裘萬頃 ?~1219 古體詩   次余主簿仲庸梅韻    鐵心元不爲渠回
韓淲  1159~1224 七言律詩   次韵耿運幹   誰疑鐵石作剛腸
陳宓  1171~1230 七言絕句   和傅倅梅巖之什其一   鐵石心腸能妙賦
陳宓  1171~1230 古體詩   和陳中行校書   剛腸逾鐵石
鄭清之 1176~1251 古體詩  冬節忤寒約客默坐爇品字柴作五禽戲體中差小佳園丁以矮梅至如見東郭順子使人之意也消欣然呵皸 凍筆占數語呈 劉菊坡博一笑其一   要是廣平終鐵石
劉克莊  1187~1269 七言律詩   諸人頗有和余百梅詩者各賦一首其二   自許鐵心堅晚節
李龏 1194~? 七言絕句   梅花集句其一○一   先生莫道心如鐵
釋善珍  1194~1277 七言絕句   墨梅   鐵心還自有愁時
李曾伯 1198~? 七言絕句   太府寺梅花盛開和曾玉堂韻其二   何如鐵石廣平腸
方岳 1199~1262 七言律詩  梅花   歲晚道人心似鐵
潘牥 1204~1246 七言絕句   書趙知院墨梅後    總是平生鐵石人
張道洽  1205~1268 七言律詩   梅花二十首   鐵心不受雪霜驚
姚勉  1216~1262 古體詩   和楊監簿咏梅   可笑鐵心輕變易
劉黻  1217~1276 七言絕句   用坡仙梅花十韻擬梅   鐵石心腸雪凍時
謝枋得  1226~1289 古體詩   贈畫梅吳雪塢   歲寒心腸似鐵石
方回  1227~1307 七言律詩   送林學正愛梅二首其一   鐵石心腸待晚成
俞德鄰  1232~1293 七言律詩   次韻陳靜佳詠梅   相對心腸鐵石人
梁棟  1243~1305 五言絕句   謝氏梅園   歲寒心似鐵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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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표 1> 살펴보면 몇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다.
   첫째, ‘鐵腸石心’이 보이는 매화시에서 시인들이 이 시어를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鐵腸石心’을 그대로 인용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예는 아예 없고, 그 중에 글자만 취하고 변용하여 창작하였다. 예를 들면 綦崇禮(綦: 연두빛 비단 기)<賦東城梅花示哲上人>에서 ‘鐵腸石心’을 ‘鐵石心腸으로 변용하여 사용하였다. 어떤 경우는 宋璟과 관련된 단어를 함께 인용하기도 하고 혹은 시어를 일부만 취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때는 시어를 시인 자신 나름대로 조정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項安世<二十七日衡陽義宰以奚奴墨梅侑客>에서는 ‘廣平’‘鐵石心腸’을 함께 인용했고 張孝祥<與趙李二同年夜飲有懷石使君惠叔>에서는 ‘鐵石’만 취하여 사용하였다. 梁棟<謝氏梅園>劉學箕 <與政仲山行見梅偶成併和其詩二首其一>에서는 ‘心似鐵’‘心腸非鐵石’을 조정하여 쓰고 있다.


<표 2> ‘鐵腸石心’이 보이는 매화시의 형식

詩型  고체시 칠언율시 칠언절구 오언절구 오언율시 篇數 26 27 20 2 1
趙必{王象}  1245~1295  古體詩  吟社遞至詩卷足十四韻以答之爲梅水村發也其一   鐵石其心腸
趙必{王象}  1245~1295  古體詩  和同社餞梅   心腸鐵石勁
仇遠  1247~1326  古體詩   盆梅   獨憐鐵石腸
仇遠  1247~1326  七言絕句   題趙信國墨梅後書宋廣平賦其一   廣平鐵石清便賦
陸文圭   1250~1334  七言絕句   折梅壽宋春卿   不信廣平(당 명재상 宋璟의 字)心似鐵
陳紀   1254~1345  七言律詩   和趙華顛梅花   不信先生鐵石腸
劉學箕   남송시기  七言律詩   與政仲山行見梅偶成併和其詩二首其一   慚愧心腸非鐵石
高鵬飛   ?~?  七言律詩   次王元吉詠梅   鐵腸賦詠謾多才
陳棣   이상″  七言律詩   次韻梅花四首其三   廣平見謂心如鐵
陳棣   이상″  古體詩   先春賦梅一首   人笑心如鐵
吳晦之   이상″  七言絕句 奚大卿許賦生香亭詩以促之   誰道廣平心似鐵
虞儔   이상″  七言律詩   次韻古梅   廣平鐵石心猶在
沈繼祖  이상″  古體詩   舜俞作墨梅八軸皆取古人詩句請余之   世有鐵心石腸人
王遂  이상″   七言律詩   飲御園梅下主人   鐵石廣平心
鄭會  이상″   古體詩   梅雪堂   生平鐵石腸
潘桂  이상″   七言絕句   比梅三絕其一   鐵肝迂叟秉剛腸
蒲壽宬  이상″   古體詩   梅陽郡齋鐵菴梅花五首其一   廣平一寸鐵
艾性夫   이상″    五言絕句   追和晦庵先生十梅韻其二   須是鐵心人
李龍高  이상″    七言絕句   硬梅渠儂   元是石心人


中國人文科學第67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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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鐵腸石心’이 보이는 매화시에서는 고체시와 칠언율시 형식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鐵腸石心’이 보이는 송대 매화시에 대한 76수 가운데 단 1수만이 오언율시, 2수만이 오언절구이고, 나머지는 20수가 칠언절구, 27수가 칠언율시이며 26수가 고체시이다. ‘鐵腸石心’이란 시어가 특히 고체시와 칠언시에 많이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언절구와 오언율시는 고작 한두 수밖에 안 된다. 왜냐하면 오언절구와 오언율시는 편폭이 얼마 안 되고 게다가 완곡하고 함축성 있어서 한정된 글자로 의미를 다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鐵腸石心’이 보이는 매화시는 주로 和答詩이다. 화답시란 다른 사람에게서 시를 받고 이에 답하는 형식의 시를 말하는 것이다. 和答詩로 답하는 시인들의 모습은 인간적 친밀감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잘 유지해가는 삶에 대한 태도를 섬세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표 1> 시의 제목을 살펴보면 76수 매화시 중에 화답시가 대략 40수나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들은 문우들과 교유하면서 남긴 시로 거의 다 작자가 화답하는 상대와 서로 매화를 통해 自敬을 구현하거나 상대를 강직한 宋璟으로 칭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문우와의 정분을 소중하게 생각한 송대 시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넷째, 송나라시기에 남송 시기‘鐵腸石心’을 사용한 매화시가 가장 많이 배출된 시기이다. 대략 북송말기 남송초기 15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61수가 다 남송 시기에는 배출되었다. 북송 때에 咏梅분위기가 이미 전성기에 이르렀는데 남송 시기에 들어서서야 ‘鐵腸石心’을 사용한 매화시가 많이 나타난 것을 비교해 보면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북송 말기의 어지러운 정세와 남송 불안정한 정국으로 인해 시인들은 국가 안위에 대하여 마비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문인묵객들이 현실의 어지러운 정세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을 벗으로 삼아 자연에서 나타나는 매화를 통해 자기의 고고한 인격과 지조를 노래하고, 또한 애국적인 정서를 드러냈다. ‘鐵腸石心’이란 시어는 원래 <梅花賦>를 지은 宋璟 강직한 인품을 칭찬하는 것이었는데 시인들은 자연 속에 눈서리를 무릅쓰고 꽃이 피는 강인한 매화를 보고 이 시어로써 매화시에서 자신의 마음속을 드러낸다.


Ⅲ. ‘鐵腸石心’의 변용 양상

  송나라 시기에는 경제와 문학이 큰 발전을 이루고 매화 재배가 보편화되면서 매화는 문학 창작의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성리학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유학 사상도 대중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대중들이 자연에 대한 심미 과정에서 고아하고 함축적인 풍격을 추구하는 데에 앞장섰다.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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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송나라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혼란하고 대외적으로 매우 연약한 시기였다. 성리학자들이 매화시 창작속에서 理學견해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눈 속에서 꽃이 피는 매화에 대한 정신은 중시되었다. 문인묵객들은 사회와 인생에 대해 다시 인식하고 체득하였으며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매화시에서 전고 인용을 통해 자아를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사람들이 매화가 추운 겨울을 무릅쓰고 꽃이 피는 모습에서 절개를 감지하여 귀히 여긴 이후에 宋璟<梅花賦>를 지은 것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이루어졌다. 송경이 ‘清便富豔’하는 <梅花賦>를 지었다는 것은 그의 인품과 닮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송경처럼 철석같은 마음, 바르고 강직한 자질과 강인하고 의연한 자태를 가져야만 매화를 노래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려한 시대적 배경과 함께 당시에 매화시로 유명한 시인들의 업적으로 인해 문인묵객들뿐만 아니라 승려 등 일반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鐵腸石心’과 관련된 시어 보인 매화시가 창작되기도 하고 吟詠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鐵腸石心’ 관련 시어가 매화시에서의 갖는 역할도 크게 달라졌다. 이 시기의 매화시 작품을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표현 방식에 따라 대개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1. 自敬14)의 구현
   沈祥龍≪论词随笔≫에서 이렇게 말했다. “詠物작품들은 物을 빌려 감정을 드러낸다. 무릇 신세에 대한 한탄, 군주와 국가에 대한 우려가 은근히 그 속에 담겨 있고 모두 깊이 있게 의탁하니 단지 순수하게 한 사물만 음영하는 것이 아니다.”15) 불안정한 정국으로 인해 문인묵객들은 현실의 어지러운 정세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을 벗으로 삼아 고고하고 고결한 매화로 자아를 형상화하였다.  


   먼저 남송 시인 葛立方의 칠언율시 <周元舉侍郎梅花次韵三首> 중 첫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不隨羣卉艷陽天   뭇 꽃을 따라 봄날에 피지 않고
幾樹孤芳玉磵前   몇 그루 외로운 꽃나무 옥 같은 산골에 피었네.
陸凱何妨餉范曄   육개가 범엽에게 매화를 보내는 것은 무방하고
綠華端合伴羊權   악록화가 양권에게 짝하는 것은 마땅하네.
憂虞莫問兵戈滿   근심할 때 나라의 병난을 묻지 말고


14) 自敬: 인격의 가치와 존엄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믿는 일.
15) 沈祥龍, ≪论词随笔≫: “詠物之作, 在借物以寓性情。凡身世之感, 君國之憂, 隱然蘊於其內, 斯寄托遙深, 非沾沾焉詠一物矣.” (唐圭璋의 ≪詞話叢編≫에 수록되어 있음, 中華書局出版社, 1986, 40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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賞玩要須酒盞先   매화 감상할 때 먼저 술잔을 채워야하네.
雖是廣平心似鐵   비록 광평의 마음은 철과 같지만
也應作賦詠蕃鮮   부를 써서 번성함과 고움을 노래했네.


   葛立方은 어려서부터 고위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고 벼슬길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해서 소흥 8년(1138)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秦檜를 거역해서 袁州 등지로 좌천을 당했다. 소흥 29년(1159)에 파직을 당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유가사상 영향을 깊이 받아서 시 속에서 가끔 우국 감정을 드러냈다.16) 이 시는 추운 겨울에 매화가 고고한 꽃을 피우는 것을 묘사했다. 산골짜기에 외롭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 나서 陸凱가 벗인 范瞱에게 매화를 보내려는 이야기와 萼綠華羊權의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17) 두 전고를 사용하여 아름답고 환상적인 시상을 이루었다. 宋璟의 강직한 마음이 철석과 같은데도 그가 부를 써서 매화의 아름다움을 찬미했으니 이 아름다운 매화 꽃 앞에서 전쟁터가 된 나라를 내버려두고 술잔을 채워 꽃이나 감상해야 한다고 시인이 스스로 자신을 위로했다. 마지막으로는 ‘廣平心似鐵’이라는 시어를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시인 자신과 宋璟을 서로 대조하여 시인 마음속의 매화 사랑을 암시하면서 매화처럼 세속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절개를 꼭 지키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다음 남송 시인 陸游의 고체시 <看梅絕句五首> 중 첫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梅花宜寒更宜陰   매화는 마땅히 차갑고 또한 그늘이 더욱 적합하니
摩挲拄杖過溪尋   지팡이 짚고 시내 건너서 찾으러 가네.
幽香著人索管領   그윽한 향기가 사람을 끌어당기니
不信如今鐡石心   지금 철석과 같은 마음을 믿지 않는구나.


   육유는 일생동안 많은 우국 시작품을 남겼지만 한적한 전원생활이나 자연경물을 노래하는 작품도 적지 않다.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평범한 사물들을 섬세하게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이 시는 육유의 청장년시기(入蜀이전)에 지은 것으로 4구로 이뤄진 서사시 형식이다. 이 시기는 主和派의 핵심 권력자 秦檜가 죽었고 육유가 이런저런 여러 관직을 역임한 때이다. 시에서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시인은 매화가 추운 겨울의 그늘을 더욱 좋아한다고 해서 지팡이를 짚고 시냇물을 건너 매화를 구경하러 갔다. 매화 향기가 하도 진해서 시인은 매화를 구경하러 가지 않을 수가 없단다. 마지막으로는 ‘鐡石心’이라는 시어를 인용하고 시인이 매화처럼 한적하고 외진 산골짜기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엄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을 표현한다.


16) 王志瑾, 曹冬雪, <葛立方生平新考>, ≪文學遺産≫, 2009年 第3期, 145-147쪽.
17) 陸凱는 남조 송나라의 승상을 지냈는데 문장가인 范瞱과 친분이 두터워서 范瞱이 장안에 있을 때 陸凱가 강남에서 매화 나뭇가지 하나를 范瞱에게 보내며 저명한 매화시 <贈范曄詩>를 남겼다. 그리고 萼綠華와 羊權의 이야기는 ≪零陵县志≫에 따르면 선녀인 萼綠華가 어느 날에 羊權의 집에 내려서 羊權에게 법술과 屍體해독제를 전수하였으며 자신의 그림자를 숨겼고 변신하여 떠났다고 한다.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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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육유의 칠언절구 <梅花絕句十首> 중 첫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空谷佳人洛浦仙   빈 산골에 있는 미인은 낙수의 선인과 같고
洗粧真態更嬋娟   분장 씻어져 보니 진정한 모습 더 어여쁘네.
廣平莫倚心如鐵   광평의 철석같은 마음에 의지하지 마라.
撩起清愁又破禪   쓸쓸한 근심을 돋우고 선을 또 깨뜨리겠네.


   이 시는 육유가 在蜀시기에 蜀(지금 四川)에서 지은 시이다. 제목은 같으나 시의 감정은 앞의 육유의 시와 크게 다르다. 그는 蜀에서 거의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 때 육유가 가슴 속에 우국의 정열이 끊임없이 타올라서 호방하고 웅장한 시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섬세한 감정과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는 미세한 사물에의 예리한 관찰 안목도 갖고 있었다. 시에서 텅 비어 있는 산골짜기에 처하는 매화가 마치 낙수의 신선처럼 아름다운데 눈이 내려 매화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서 더욱 예쁘다고 시인이 감탄하였다. 매화를 구경하고 난 후에 송경의 철석같은 마음에 의지하여 매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어여쁜 모습에 철석같은 마음이 더욱 근심스러워졌다.18) 이를 통해 시인의 매화에 대한 섬세한 감정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梅’자를 나타냄이 없이 절묘하게 매화의 시적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廣平’, ‘心如鐵’이라는 시어를 통해 함축성 있게 ‘매화절구’라는 제목과 서로 호응하며 매화가 너무 아름답기에 시인이 철석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없어서 근심하게 되었음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남송 시인 王十朋의 칠언절구 <四日雪坐間有江梅水仙花因目曰三白梅花>을 살펴보자.


孤標相對楚天涯   외로운 가지가 초나라 하늘 끝을 향하고 있고
寒不能威意自佳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취가 저절로 아름답네.
消得廣平公援筆   광평이 붓을 들어 쓸 만하다고 하더니


18) 宋璟은 그의 <梅花賦>에서“본성이 바뀌지 않는 걸 귀하게 여겨서 바야흐로 군자와 견줄 만한 절개가 있다. 애오라지 글을 써서 가슴을 토로하면서 후세 철인에게 물려주어 명시하고자 한다.[貴不移于本性, 方有儷于君子之節, 聊染翰以寄懐, 用垂示于來哲.]”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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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花真是鐵心花   이 꽃은 참으로 철석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왕십붕은 애국 시인으로 처음에 梅溪의 향촌에서 강의했지만 뒤에 太學에 들어갔다.
高宗紹興17년(1157)에 廷試에 합격하여 秘書郞에 올랐다. 여러 차례 조정을 정비할 것을 건의했고 투항한 금나라의 장수들을 기용할 것을 주장했다. 孝宗때에 여러 차례 글을 올려 금나라에 대항하면서 국토를 회복할 계책을 올렸다. 이 시는 외로운 가지에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초나라 땅을 향해 꿋꿋하게 피어나는 매화를 묘사한다. 꽃이 피는 매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정취는 몹시 아름다워서 宋璟까지 매화의 그런 기품에 놀라서 붓을 들어 <梅花賦>를 짓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廣平公援筆’이라는 시어로 매화를 묘사하는 시임을 제시한다. 그 다음 ‘鐵心花’라는 시어를 통해 시인은 앞에 언급한 추운 날에 꽃이 피는 매화에 철석같고 강인한 품격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이것도 시인이 굳센 지조를 가진 매화에 자신으로 비유하여 自敬한 말이다.

   송나라에 들어서면서 전적으로 매화를 찬미하는 작품은 거의 찾기 어렵다. 나라 불안이 횡행하던 남송 시기에 있어서 많은 시인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애국심을 품고 그것을 시어로 표현하였다. 웅대한 정치 포부를 가지고 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도 세속적인 사람들과 한 무리가 되지 않고 고결한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다. 문인묵객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꽃이 피는 매화의 고고한 품격과 지조를 노래하게 되었으며 매화처럼 고결함과 강인함을 지키려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鐵腸石心’라는 시어는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宋璟의 <梅花賦>로 매화와 宋璟의 인품을 연결시켜 매화에 철석같은 품격을 부각시키면서 굳센 지조를 지닌 매화에 자신을 비유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인품을 宋璟에 비유하여 칭찬하기도 하였다.


2. 상대 인품 칭찬

   이 절에서는 ‘鐵腸石心’ 관련 시어를 통해 매화에 철석같은 품격을 부각시키고 상대방의 인품을 宋璟에 비유하여 칭찬한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북송 시인 秦觀의 고체시 <和黄法曹憶建溪梅花>를 살펴보자.


海陵參軍不枯槁   해릉 참군은 파리하지 않지만
醉憶梅花愁絕倒   술에 취하면 매화 생각하는 슬픔에 쓰러지네.
爲憐一樹傍寒溪   찬 시냇물 옆에 있는 한 그루를 아끼니
花水多情自相惱   꽃과 물이 다정해 서로가 괴롭네.
清淚班班知有恨   맑은 눈물 분명하니 한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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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春相逢苦不早   봄날에만 만남을 원망하면서 일찍 그렇지 않음을 고뇌하고 있네.
甘心結子待君來   기꺼이 열매 맺고 그대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洗雨梳風爲誰好   비에 씻고 바람에 빗어 누구를 위해 좋아지는가.
誰云廣平心似鐵   누가 광평의 마음 철과 같았다고 했는가.
不惜珠璣與揮掃   구슬 같은 말 아끼지 않고 붓을 휘둘렀네.


… 後略… 후략


   이 시는 시인이 벗인 黃子理의 매화시 화답한 것으로 元豊3년(1080)에 지은 시이다.19) 黃子理가 당시에 海陵司法參軍이었다. 시에서 黃子理가 평소에 의기소침하지 않는데 술에 취해 고향에 있는 매화를 노래하면 시에 드러낸 슬픔은 사람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한다고 하였다. 黃子理가 찬 시냇물 옆에 꽃이 피는 매화를 몹시 아껴서 꽃과 물은 모두 다정해지고 그의 번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의인법을 사용해 매화를 규방에 있는 원망스러운 여인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매화의 남아 있는 눈물 속에서 매화도 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매화가 봄날에만 黃子理와 만날 수 있는 것을 원망하면서 왜 黃子理처럼 꽃을 아끼는 자를 일찍 못 만났는지 고민도 한다. 있다면 기꺼이 매일 비바람 속에서 씻고 빗으며 열매를 맺을 때까지 그대를 기다리겠다고 매화가 말한다. 비바람 속에 黃子理를 기다리는 매화가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매화로 마음 철석같은 宋璟도 구슬 같은 말을 아끼지 않고 붓을 휘둘러서 ‘清便富豔’한 매화를 그려냈다. 이어서 시인은 의문문에 ‘廣平心似鐵’이라는 시어를 넣어서 간접적으로 벼슬살이를 하는 黃子理를 정치상 강직한 재상인 송경으로 칭찬하고 시를 지은 재주도 송경에 못지않다고 높게 평가하였다.



   다음으로 남송 시인 周紫芝의 고체시 <和李似表丞廳梅發用胡士曹韵>을 살펴보자.


江頭雪屋知誰家   강변 눈 덮인 가옥은 누구 집인지를 알겠는가.
雪中冷艶空争華   눈 속에 공연히 다투어 고고하게 피어나네.
不知何郎閉東閣   언제 낭군이 동각을 닫았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坐看江梅初着花   앉아서 강변 매화 처음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있네.


19) 진관이 30세(즉, 元豊元年) 때에 과거 시험에 떨어져서 “두문불출하고 집에서 스스로 詩書를 즐기면서 지내고 있었다.[閉門自掃, 以詩書自娛.]”(秦觀, ≪淮海集≫卷33, 台湾商务印书馆, 1984年.) 당시에 <与参寥大师简>에 따르면 “내가 작년부터 집으로 돌아왔고 인간사가 복잡했는데 왕래하는 자는 오직 黃子理, 내 형제인 子思밖에 없었다. 자사가 또한 따로 살고 있고 속
사에 시달려 있다. [仆自去年還家,人事擾擾,所往還者,惟黃子理、子思家兄弟.子思又已分居,困於俗事.]”(秦觀, 앞의 책 권30 중의 <與參寥大師簡>)”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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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底春回猶未透   산골 밑에 봄이 돌아왔지만 아직 사무치지 못하였으니
天寒袖薄姿微瘦   날씨 춥고 소매 얇아서 자태는 약간 여위어 보이네.
黄昏有月誰復知   해질 무렵 달 있음을 누가 또한 알랴.
舉世無花出君右   온 세상에서 그대를 넘어서는 꽃이 없네.


…中略…중략


知君不學崔斯立   내가 알기로 그대가 최사립에게 배우지 않을 것이니
幅巾漫對枯松株   두건을 두르고 산만하게 마른 소나무를 마주보네.
鉄心雖冷白自勝   철석같은 마음은 비록 차갑지만 자신을 이겨 하얘지며
金縷醉歌歡豈無   금실 속에 술에 취해 노래하면 어찌 즐거움이 없겠는가.


…後略…후략


   이 시는 宣和5년(1123)에 宣州丞廳에 매화가 꽃이 피어 시인 李似表의 시에 화답한 것이다. 시인은 추운 계절에 홀로 꽃이 피어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의 고고한 품격을 부각시키면서 벗인 李似表의 외로운 마음이 雪梅의 고고한 자태에 의지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강변 눈 덮인 집에 어느 낭군이 동각을 닫고 앉아서 처음 매화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있다. 맹춘의 계절에 차가운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의 고고한 품격을 찬미하면서 ‘空争華’의 시어를 사용하고 매우 춥고 뭇 꽃들이 다 시들어진 분위기를 나타낸다.

   모든 나무가 숨죽여서 겨울의 추위에 신음할 때 매화만 홀로 꽃이 피었다고 하여 매화의 고고하고 강인한 품격을 부각시켰다. 맹춘이 되었지만 푸른 잎이 아직 안 나서 매화나무는 여윈 느낌을 보인다. 온 세상에 이러한 품격을 지닌 매화를 넘는 꽃이 없다하면서 또한 간접적으로 벗인 李似表에 대한 인품을 매우 높게 평가한 것이다. 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매화가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더욱 아름다우니 시인의 벗이 언젠간 꼭 자신의 뜻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 매화처럼 고고하게 꽃을 피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 시에서는 ‘鉄心’의 시어를 사용하여 앞에 ‘空争華’와 앞뒤 서로 호응하고 매화에 고고하고 강인한 품격을 부각시키면서 李似表가 매화처럼 강인한 절개를 지키려는 마음을 칭찬했다.



   다음으로 남송 시인 裘萬頃의 고체시 <次余主簿仲庸梅韻>을 살펴보자.


春醪欲冰木欲折   봄 탁주 얼고 나무 꺾이려 하는데
急雨風吹不成雪   급한 비와 바람에 눈 내리지 않았네.
玉妃夜墮廣寒宮   선녀가 밤에 광한궁에서 떨어져
開作寒花賽清絕   차가운 꽃을 피워 몹시 맑고 절묘하네.
未須千樹插山巔   수많은 나무 산꼭대기에 심을 필요 없고
且要幾枝橫水邊   다만 몇 가지 강물 옆으로 놓으면 되네.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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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香疎影尚無恙   은은한 향기와 성긴 그림자 여전히 있으니
憑誰喚起西湖仙   누가 서호의 신선을 불러오겠는가.

不妨琢句更馳送  글을 다듬고 더욱 빨리 보내주어도 좋으니
一洗十年塵土夢   10년 동안 걱정거리 한꺼번에 다 씻어버리겠네.
鐵心元不爲渠回   철석같은 마음은 본디 이에 돌리지 않을 텐데
眼底珠璣聊簸弄   잠깐 눈에 구슬 같은 시로 놀릴 뿐이네.


   裘萬頃은 寧宗嘉定연간에 吏部架閣이 되고, 大理寺司直을 지냈다. 시에서 ‘梅’를 드러내지 않고 관련된 시어로 묘사하면서 의인법을 운용하여 비바람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먼저 봄에 마시는 탁주가 얼고 나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매우 추운 날씨와 센 바람을 묘사했다. 추운 날에 꽃이 핀 매화 나뭇가지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시인은 매화를 廣寒宮에서 뛰어내린 선녀처럼 고결한 모습으로 느끼고 있다. 산꼭대기에 매화나무를 많이 심을 필요 없고 단지 몇 나뭇가지를 강물의 옆으로 놓으면 된다는 것으로 임포처럼 벗인 主簿인 余仲庸의 지극한 매화 사랑을 구현했다. 은은한 향기와 성긴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매화는 그대로 있지만 시인 임포는 이미 멀리 떠났다. 그러니 벗인 余仲庸에게 서로 편지를 자주 주고받고 잠깐이라도 우환을 근심하지 말라고 시인이 권하였다. 마지막으로 말머리를 돌려서 ‘鐵心’이라는 시어를 통해 관직을 역임한 벗이 宋璟처럼 강직하니 이따위 아름다움 ‘유혹’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단지 시로 잠깐 갖고 놀릴 뿐이라고 간접적으로 칭찬했다.

   다음으로 송나라 시인 艾性夫의 오언절구 <追和晦庵先生十梅韻> 중 두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微吟水部詩   낮은 음으로 何遜의 매화시를 읊조리다가
欲續廣平賦   광평의 <梅花賦>를 이어서 짓고자 하네.
須是鐵心人   반드시 철석같은 사람이어야만
方識花妙處   비로소 이 꽃의 오묘함을 알 수가 있네.


   이 시의 ‘水部詩’何遜<楊洲法曹梅花盛開>를 말하는 것인데, 그가 楊州에 水曹行參軍으로 재직했을 때에 지은 시이다. 시인은 눈서리 속에 만발하여 아름다움을 더해가는 매화에서 궁중 여인의 시름과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그러다가 매화가 추운 겨울을 무릅쓰고 꽃이 피는 절개를 감지하며 宋璟이 지은 <梅花賦>를 생각하기에 이 <梅花賦>를 이어서 매화의 추위를 무릅쓰고 꽃이 피는 강인한 품격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皮日休의 관점과 달리 반드시 宋璟처럼 철석같은 사람이어야만 매화의 이러한 강인한 품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목에 ‘追和’라는 말을 통해 이 시가 晦庵선생의 <十梅韻>을 다시 화답하려고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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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鐵心人’이라는 시어를 통해 宋璟의 인품에 대한 칭찬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무엇보다는 庵선생의 인품을 높이 평가하여 찬미한 것이다. 앞에 언급한 듯이 和答詩는 그들과의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한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3. 정치적 입장 토로

   宋璟은 일대 名相으로 奸臣의 전횡에 맞서고 외척의 정치 간섭을 견제하는 등 그 시기의 정책을 잘 유지해서 개원 연간의 전성기를 이루는 데에 기여하였다. 송대 문인들이 관직에 있을 때는 자신의 정치 포부를 시로써 드러내고, 뜻을 펼치지 못했을 때는 벼슬길에서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굳센 마음을 나타내며 또한 타인이 관직에서 공업을 이루는 것을 격려하는 경우가 있다. 다음은 송대 매화시에서 ‘鐵腸石心’ 관련 시어를 사용하고 시인의 정치적 입장을 나타낸 작품이다.


   먼저 남송 중기 저명한 시인 趙蕃의 칠언절구 <梅花絕句五首要明叔仲威同作> 두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誰能當此風霜面누가 이 바람과 서리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政要渠儂鐵石心정치에 그20)의 철석같은 마음을 지녀야 하네.
我亦苦吟羞不足내가 애쓰게 읊어도 부끄럽게 이루지 못했으니
願從千古覓遺香천고 따라 남겨진 향기를 찾아보려고 하네.


   趙蕃은 벼슬아치 집안 출신으로 음보로 入仕했다. 36살 때 太和에 가서 主簿가 되었다. 太和에 있는 동안에 유학사 陳明叔 등과 친하게 지냈고 함께 교유하면서 시를 읊었으며 후에 시로 楊萬里의 인정을 받았다. 辰州司理參軍으로 옮겼는데 어떤 안건에 대해 郡守와 심하게 다투어 관직을 그만두고 떠났다. 恩師 劉淸之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서 33년 동안 향촌 생활을 지냈다. 나중에 입조하여 비각에서 근무하다가 致仕했다.21) 시에서 시인은 바람과 서리 속에 피어 있는 매화를 보면서 자신의 관료 생활을 생각했다. 정사를 처리하는 데는 꼭 宋璟처럼 강직하고 굳센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시
인은 아무리 반복해서 실천해도 철석같은 宋璟을 따라가지 못함을 토로했다. 시인이 차라리 천고의 역사 속에 숨어 宋璟이 지은 <梅花賦>에 남겨진 매화 향기를 찾는 것이 더 낫다고 결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이 ‘鐵石心’으로 재상 宋璟의 시정방침을 배우고자 했는데 펼치지 못한 자신을 자조하는 듯하다.

20) 그: 원문은 渠儂이다. 대명사인 ‘그’ 라는 뜻이다. 여기서 송광평을 가리킨다.
21) 施常州, <南宋诗人赵蕃生平与创作考论>, ≪南京师范大学文学院学报≫, 2015年第2期, 15-19쪽. 


중국 宋代 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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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송나라와 원나라가 바뀌는 때의 시인 方回의 칠언율시 <送林學正愛梅二首> 중 첫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早與梅花歃血盟   일찍이 매화와 혈맹을 맺어
歲寒同社保幽貞   세한삼우처럼 그윽함과 곧음을 지키고자 한다.
八詩共識林和靖   8수 시로써 함께 임포를 알게 되었는데
一賦誰知宋廣平   한 부로써 누가 송광평을 알 수 있겠는가.
邂逅老夫傳此本   늙은이를 만났으니 이 책을 전하기로 하고
殷勤今日送君行   금일 은근하게 그대 배웅을 나왔네.
開元宰相和羹事   개원 재상이 나라를 다스린 것을 보면
鐵石心腸待晚成   철석같은 마음은 늦게 이루어지는 것을 기약하네.


   제목을 보면 시인이 매화를 사랑하는 林學正에게 써주는 시임을 알 수 있다. 시에서 얼마나 매화를 사랑했던지 일찍이 매화와 피로서 맹세를 하여 세한삼우처럼 같이 함께 굳센 지조를 지키고자 한 시인의 벗인 林學正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사람들이 포가 지은 8수 매화시를 통해 그를 알아서 ‘梅妻鶴子’라고 불렀지만 宋璟이 지은 <梅花賦>가 하도 ‘清便富豔’한 <梅花賦>를 통해 宋璟의 인품을 알 수 없다고 말하였다. 시인은 林學正이 매화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떠나는 날에 송별 선물로 <梅花賦>를 전해주었다. <梅花賦>의 저자인 재상 宋璟의 ‘和羹事’로 격려해 주었다. 앞에 언급했듯이 선진 시대에 매화는 꽃보다 열매가 더욱 중시되었고 나아가 ‘매실’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인재로 지칭되었다. ‘和羹事’라는 전고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林學正이 宋璟처럼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鐵石心腸’의 시어를 사용해서 林學正이 정치상 宋璟처럼 바르고 강직하니 그가 꼭 명재상 宋璟처럼 나라에 큰 공적을 쌓을 것을 믿는 마음을 토로했다.

   다음으로 남송 시인 劉克莊의 칠언율시 <諸人頗有和余百梅詩者各賦一首> 중 두 번째 작품을 살펴보자.

字字追還水部公   글자 하나하나 수부 하손을 뒤따르고
篇篇壓倒後村翁   글마다 후촌 늙은이를 압도하였네.
可憐和靖拘香影   화정이 향기와 그림자에만 매여 있음이 가엽고
更笑花光著色空   화광이 여백을 남겨놓음이 더욱 우습네.
自許鐵心堅晚節   철석같은 마음으로 오랫동안 지킨 지조 있다고 여기고
渠能粉面向春風   어찌 분 바르고 봄바람 마주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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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略…후략
   이 시의 제목이 제시하다시피 이는 시인이 지은 백 편의 매화시인에 화답한 자에게 다시 화답해준 시들 중의 하나이다. 劉克莊이 말년에 상을 입어 집에서 한가히 보내면서 ≪梅花百咏≫을 지었다. 이 백 편의 매화시가 나타나자 많은 문인들이 적극적으로 화답하였다. 이 시는 劉克莊이 문우인 의 和答詩에 대해 다시 화답해준 시이다. 시에서 시인이 매화시에 오래 동안 애용되어 온 何遜과 임포 이야기를 인용해서 何謙의 和答詩에 높은 평가를 하였다. 또한 묵매도로 유명한 花光을 인용하고 대조하여 何謙이 시에 그려낸 색다른 매화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시인 자신을 연상하게 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철석과 같고 벼슬아치 길에서 언제나 굳센 지조를 지키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하면서 ‘粉面’을 아첨함에, ‘春風’을 권력에 비유하여 절대로 조정 집권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劉克莊은 젊은 시절 建陽令으로 재직하던 때에 梅花詩禍로 파면되었고 이후 10여 년 동안 이 詩禍로 인해 관직에서 집권자들의 배척으로 여러 번 탄핵을 당했다.22) 이 시에서 시인이 ‘鐵心’을 인용하여 자신이 벼슬아치 길에서
재상 宋璟처럼 강직해서 절대로 집권자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입장을 토
로했다.


Ⅳ. 맺음말

   劉勰(약465~약521년)은 ≪文心雕龍≫에서 “용사란 대개 문장 외에서 옛 일을 근거로 뜻을 유추하고 고사를 인용하여 오늘을 증명하는 것이다.” 23) 라고 하였다. 시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데에 있어서 옛 일을 끌어 활용하고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가깝게 표현하도록 한다. 皮日休가 처음으로 ‘鐵腸石心’이라는 시어를 사용하여 당나라 명재상인 송경과 매화를 관련지은 이후로부터 수많은 시인들이 매화시에 이 시어를 재삼재사 해석하여 吟詠하였다. 본고에서는 먼저 ≪全宋詩≫ 중의 관련 작품을 목록으로 만든 다음에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사용례 특징, 그리고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변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22) 孫培, <论刘克庄≪梅花百咏≫ 唱和活动的多重意义>, ≪福建师范大学学报≫, 2014年第2期, 30-35쪽.
23) 劉勰, ≪文心雕龍≫: “事類者,蓋文章之外, 據事以類義, 援古以證今者也.” (上海古籍出版社, 1998, 338쪽.)


중국 宋代梅花詩에 나타난 시어 ‘鐵腸石心’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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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상 매화를 노래한 시가 기나긴 세월을 지냈다. 예술 부호로서의 전고는 매화관련 심미활동이 일어나면서 원래 표현 의미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동시에 새로운 표지가 융합되었다. 특히 사람들이 매화가 추운 겨울을 무릅쓰고 꽃이 피는 모습에서 강직한 품격이나 절개를 감지하여 귀하게 여기면서 ‘鐵腸石心’宋璟<梅花賦>를 지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새롭게 이루어졌다. <梅花賦>를 지었다는 것은 그의 인품과 닮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송경처럼 철석같은 마음, 강직하고 강인한 인품을 가져야만 매화를 노래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에 매화에도 철석같은 품격을 부각시켰다.

   2장에서 ‘鐵腸石心’의 사용례에서는 시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 점, 고체시와 칠언율시 형식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점, 화답시가 가장 많이 있는 점, 남송 시기에 가장 많이 배출된 점을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변용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鐵腸石心’ 관련 시어의 표현 방식에 따라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鐵腸石心’ 관련 시어를 사용하여 自敬을 구현한다. 둘째, ‘鐵腸石心’ 관련 시어를 인용하여 상대 인품을 칭찬한다. 셋째, ‘鐵腸石心’의 관련 시어를 사용하여 정치적 입장을 토로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매화를 소재로 한 시 연구가 매우 많으나 아직까지 매화시에 나타난 시어에 대한 연구가 소략한 것이 아쉽다. 본 연구는 ‘鐵腸石心’ 관련 시어가 나타난 매화시를 다룸으로써 보다 깊이 있게 매화시에 접근하려고 하였다. 본고에서 다룬 송대 이외의 다른 시대에 대한 연구는 후일의 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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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he usage of poetic diction ‘Tie Chang Shi Xin’ in the plum blossom poems of the Song Dynasty of China. To this, the transform usage phenomenon of the related poetic diction ‘Tie Chang Shi Xin in the Song Dynasty of China’s plum blossom poems is investigated according to the ≪Quan Song Poems≫.
With the rise of plum blossom’s aesthetic activities and the demand of artistic expression‎, the allusions on plum blossom become the material of the plum blossom poetry, and these allusions go towards deeper meaning and bigger impacts. The ‘Plum Blossom Fu’ was written by Song Jing who was a famous prime-minister in Tang Dynasty, which becomes a hot topic from ancient times to the present.
Especially, when Pi Rixiu mentioned that the Song Jing with ‘Tie Chang Shi Xin’ was not suitable for reciting the morbidezza ‘Plum Blossom Fu’, which received more attention. The poetic diction ‘Tie Chang Shi Xin’ mentioned here does not refer to the body parts of Song Jing, but artistically refer to the character of Song Jing.

   Based on the statistics of the table that I counted, the usage of the ‘Tie Chang Shi Xin’ has three characteristics. Firstly, the poetic diction is used in various ways, such as ‘Tie Shi Xin Chang’, ‘Tie Xin Ren’, ‘Xin Ru Tie’, ‘Shi Xin Ren’, ‘Tie Shi Guang Pin Xin’, and so on. Secondly, the classical poems and seven-syllable poems have the most forms. Thirdly, the reply poems are the most amounts. Finally, most of these poems related to plum blossom poems appeared in the Southern Song Dynasty. Because the late Northern Song Dynasty was chaotic and the Southern Song Dynasty was a time of turbulence, many poets had the numb attitude to the countries. Therefore, the intellectuals separated from the chaotic social, taking the nature as friend, expressing the solitary personality and moral integrity and patriotism through the natural plum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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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n, the transform usage phenomenon of the ‘Tie Chang Shi Xin’ related poetic diction is investigated according to the ≪Quan Song Poems≫. Three categories are studied, which includes self-respect and praising other’s personality and revealing political ambition. Because of the chaotic politics and separating from the social, the image of the poets who reacquainted with the society and had the self-visualization through the plum blossom has become apparent. Also, we can understand another kind of a state of mind from these poets. In the ‘Plum Blossom Fu’ of Song Jing, the plum is connected with Song Jing’s character, indicating his character like iron-stone. In addition, we are able to see the poem’s political stand in the chaotic politics.

   Since ancient times, the intellectuals have liked to write poems using plum blossom, and quite a number of poems have been passed down. The related academic research is also very active. Most studies are just investigating the whole content of plum blossom poems, however, the studies on words of plum poems are very little. The plum blossom poems with a long history have many allusion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analyze the plum blossom poems based on the special poetic diction.

   The author hopes that it can make a little contribution to studies on plum blossom poetry in the future work.


【Key words】Song Dynasty, plum blossom poems, Tie Chang Shi Xin, Pi Rixiu, Song Jing

접수일자 2017. 11.10 심사완료일 2017. 12.06 게재확정일 201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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