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의 그림, 불교 가르침에 빠지다] 1. 작자미상, ‘태평성시도’ - 불행을 깊이 들여다보면 행복이 보인다

      

[조정육의 그림, 불교 가르침에 빠지다] 1. 작자미상, ‘태평성시도’

- 불행을 깊이 들여다보면 행복이 보인다| 불교▒미술

초 심 | 2015.06.24. 13:05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숫타니파타 제1장 사품(蛇品) -        몇 달 전이었다. 라디오를 켰는데 트로트 가수 출신 진행자가 숨도 쉬지 않고 다음과 같이 직업을 읊었다.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해외동포여러분, 근로자여러분, 국군장병여러분, 경찰관여러분, 학생여러분, 병원이나 농업인, 어업인, 중장비기사님, 택시기사님, 버스기사님, 화물차기사님, 119구조대원여러분, 부업전선에서 애쓰시는 주부님, 경비원과 시장상인여러분, 음식업, 의류업, 세탁업, 유통업, 제조업, 제과업, 건설업, 축산업, 부동산중개업, 주유소, 옷 수선하는 집, 그리고 이미용업에 종사하시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듣고 보니 음악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청취자들에게 인사하는 내용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저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모르는군.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데 인기 없는 진행을 하고 있는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 그 음악프로그램을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말에 대한 진행자의 얘기가 실려 있었다. 진행자는 ‘첫방송부터 항상 하는 인사말이지만 혹 청취자 자신의 직업이 소개되지 않을 때는 곧바로 항의’가 들어온단다.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 사람들은 몇 초도 안되는 순간에 훅 지나가고 마는 멘트 하나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했다. 놀라웠다. 보통 때는 스스로가 이름 없는 무명씨처럼 묻혀 살던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본인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존엄한 자로써의 위엄이다. 존엄성에 대한 열망은 생명 가진 자로써의 거역할 수 없는 본능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피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태평성시도’는 그렇게 해서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조선후기 작품 ‘태평성시도’ 가지각색 삶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 일깨워 ‘열반경’ 공덕천·흑암녀 비유 행복·불행 결코 다르지 않아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조선 후기 도시의 태평한 모습을 그린 풍속화이자 기록화다. 여덟 폭으로 된 큰 병풍에 한양으로 추정된 가상의 도시를 설계한 다음 중국풍 건물과 다양한 인물, 갖가지 동물과 보기 드문 기물을 그린 시대의 반영이다. 전체 구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사산(四山: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골격 삼아 창덕궁· 창경궁 등의 궁궐과, 명륜당 · 모화관· 영은문 등의 건물을 배치한 다음 수로와 다리를 매개체로 번화가와 주택가와 외곽을 연결했다.           ▲ 작가 미상,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비단에 색, 각 113.6×49.1cm, 국립중앙박물관.          ‘태평성시도’는 그 도시 안에 살던 사람들의 가지각색 삶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은 작품이다. 장사꾼, 상인, 관리, 연예인, 군인, 하인, 대장장이를 비롯해 술 마시는 사람, 사탕 파는 사람, 담배 피는 사람, 집짓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절구질하는 사람, 칼을 가는 사람, 저울을 들고 있는 사람 등등 그들의 직업과 모양새도 다양하다.   이 정도면 가히 인간생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그림 속에는 총 2170여 명의 인물과 300여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2170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얼마나 더 복잡하고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발생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원칙을 세워야 한다. 너도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원칙 말이다. 행복을 줄 수 없다면 적어도 불행이나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원칙이라도 정해야 한다. 우리가 성인들 말씀을 새겨듣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삶의 원칙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평생 동안 실천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논어‘의 ‘위령공‘에 나오는 내용이다. 남에게 행복은 주지 못할망정 불행은 안겨 주지 말라는 뜻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받고 골머리를 앓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자의 가르침에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오죽하면 일가친척들이 귀찮게만 안해도 도와주는 것이란 푸념이 나왔을까.   그러나 불교는 공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남을 배려하는 ‘서(恕)’의 차원을 넘어 그의 행복까지 기원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자애심이다. 자애심(慈愛心)에 대해 명상수행가 파멜라 블룸은 ‘자비의 힘’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다른 이들이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의 근원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갈구하지만 그것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데 그들이 가능한 한 많은 행복을 얻고 행복의 근원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자애심이다. 자애심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문장이 바로 ‘숫타니파타’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스님의 책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진 문장이다.   중생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부처님이 45년 동안 한결같이 설법하신 법문의 요체다. 부처님이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한 이유도 생로병사라는 근본적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성도 후 열반 하실 때까지 중생에게 전하고자 한 가르침도 ‘행복하라’였다. 그래서 올 한 해는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불법(佛法)에는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이 가득 담겨 있다.   가만히 눈 감고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를 읊조리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 가득 자애심이 차오른다. 조금 일찍 출발해 한걸음 먼저 행복의 문 안에 들어왔으니 내가 발견한 행복론을 1년 동안 열심히 퍼다 나르겠다. 그런데 그 행복의 외형이 결코 매끄럽지만은 않다. ‘열반경’에는 나의 변명을 대신할 만한 적절한 비유가 이렇게 적혀 있다.        한 재벌 회장 집에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회장이 그녀에게“누구냐?”고 물었다.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공덕천입니다.” 회장이 물었다. “뭐 하는 사람이요?”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가는 곳마다 행복과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줍니다.” ‘공덕천(功德天)’이란 이름처럼 복과 덕을 주는 여신인 듯했다. 회장은 뛸 듯이 기뻤다. 회장은 그녀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를 위해 헌신했다. 집안 내부 장식을 바꾸고 곳곳에 꽃을 심어 은은한 향기가 흐르게 했다. 잔잔한 음악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회장은 더없이 행복했다. 역시 그녀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신이었다.   그런 어느 날 또 한 명의 여인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허름한 옷에 지저분한 냄새가 풍겼고 험악한 표정이 어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회장이 그녀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흑암녀입니다.” 회장이 물었다. “뭐 하는 사람이요?”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재물을 잃게 하거나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죽게 하는 등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흑암녀(黑暗女)’란 이름처럼 어둠과 불행을 주는 귀신인 듯했다. 회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빨리 가지 않으면 당신 목숨을 끊어버리겠소.” 그러자 흑암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은 참 어리석군요. 방금 전 찾아 온 공덕천 언니와 나는 늘 붙어 다니는 자매로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대가 나를 쫓아내려면, 나의 언니도 함께 쫓아내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공덕천의 앞모습만 본 사람은 흑암녀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다. 아니, 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덕천의 뒷모습이 흑암녀이고 흑암녀의 뒷모습이 공덕천의 앞모습이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아리따운 공덕천은 흉측한 흑암녀가 되고 혐오스런 흑암녀는 기품 있는 공덕천이 된다.   흉측함도 아리따움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 꽃이다. 다만 우리가 흑암녀의 뒷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이다. 아니면 보기 싫어 일부러 외면했거나. 그래서 고은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자애심을 품고 한 해를 살다보면 마침내 우리도 고은 시인과 똑같은 시를 읊게 될 것이다.   정신없이 사느라 헉헉거리는 동안 골고루 쳐다보지 못했던 그 꽃을 올 한 해 동안 찬찬히 둘러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당신을 포함해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하시기를! 중장비기사님도 국군장병아저씨도 부업전선에서 애쓰시는 주부님도 이미용에 종사하시는 여러분도 모두 모두 행복하시기를!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출처 다음카페 해실한 미소 클릭 cafe.daum.net/mysuk0422/BaL3/307  해실한 미소  |

      

      [스크랩] [조정육의 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1] 작자미상 ＜곽분양행락도＞| 누구나 자유롭게

소국(법흥심) | 2015.08.03. 22:53

 

억수로 팔자 좋은 남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 작자미상, ＜곽분양행락도＞| 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무진당 | 2013.01.14. 18:01

-조정육의 『그림, 불교에 빠지다』1. 작자미상, <곽분양행락도>   “억수로 팔자 좋은 남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불자에게만 해당되는가. 불교를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한정적인 진리’인가. 이런 의문은 불교의 기본 교리인 ‘연기법’만 봐도 곧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연기법은 불자나 불자가 아닌 사람이나 짐승이나 지옥의 중생까지도 적용되는 우주의 진리다. 불교는 그 진리를 가르쳐주는 종교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종교나 이념으로도 가둘 수 없고, 과거에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만고의 진리다. 우주 속에 인드라망처럼 가득 찬 진리를 가르쳐주는 장대하고 거대한 종교다. 나같이 작은 그릇이 담을 수 있는 좁은 세계가 아니지만 무리해서 이런 연재를 감행한 것은 순전히 불법의 포용성을 믿기 때문이다. 서른 해가 넘도록 동양화를 감상하며 행복했던 기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긴 시간동안 동양화를 보면서 내심 놀란 적이 많았다. 불교를 전혀 모르던 작가의 그림에 불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불법(佛法)이 만법(萬法)이라면 불교 교리를 전혀 담지 않은 그림에서도 불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재는 예배 대상으로써의 불교 회화를 포함하여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된 일반 회화에서도 불법을 찾아보고자 기획되었다. 연재를 핑계 삼아 1년 동안 불교 공부에 푹 빠져 볼 생각이다. 불교 공부가 깊지 않은 필자가 감히 불법을 얘기하자니 두려움이 앞선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질책을 기다리겠다.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케익을 샀더니 산타할아버지 모양의 초를 덤으로 주었다.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초였다. 빨간 모자를 쓰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산타였다. 기도할 때 켜 놓으면 좋을 것 같아 집에 돌아와 부처님 상을 모셔 놓은 불단 옆에 올려놓았다. 다음날 아침 기도시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침염불을 시작하기 전에 초에 불을 붙였다. 원래부터 놓아 둔 두 개의 굵은 흰색 초와 산타 초에 모두 불을 붙였다. 대초 옆에서 머리에 등불을 켠 산타는 더욱 작고 앙증맞았다. 천주(千珠)를 돌리며 지장보살을 염송하는 내내 산타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조화였다. 시무외인 여원인을 한 부처님 곁에서 환하게 웃는 산타의 모습은 그대로 포대화상이었다. 모름지기 세상은 이렇게 평화스러워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종교가 지금 방안의 풍경처럼 조화로울 수 있다면 무슨 다툼이 있겠는가. 그런 잡념에 빠져 염불을 하고 있는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초가 타오를수록 산타의 몸이 녹아내리면서 점점 허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모자가 사라지고 얼굴이 사라지고 목과 가슴이 사라졌다. 둥그런 대초가 탈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사람의 형상을 한 초가 사라지자 진짜 사람을 화장하듯 가슴이 서늘했다. 산타할아버지의 산화(散花) 앞에서 남편과 내가 지장보살을 부르며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대로 제행무상이었다. 온전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밀랍으로 된 산타처럼 지상에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길고 짧은 차이만 있을 뿐 항상(恒常)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같은 운명이라 할 것이다.         작가미상, <곽분양행락도>, 19세기, 비단에 색, 131×415cm. 삼성리움미술관   다섯 가지 복과 여섯 가지 비극    촛불처럼 짧은 인생이라 해도 그것은 영원의 차원에서 볼 때의 얘기다. 한 생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길고 긴 것이 인생이다. 긴 세월을 복대기치며 살다보면 별의별 사연이 얽히고설킨다. 기왕이면 뼈아픈 후회 없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에게 눈총 받을 정도만 아니라면 행복 속에 깊이 파묻혀 사는 것도 좋은 인생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일까. 유교(儒敎)에서는 다섯 가지 복(五福)을 갖춘 사람을 진짜 복 있는 사람이라 평한다. 『서경(書經)』의 「홍범(洪範)」조에는 ‘오복’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다 “첫째는 오래 사는 것(壽), 둘째는 부유한 것(富), 셋째는 건강하고 편안한 것(康寧), 넷째는 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 다섯째는 목숨을 살펴서 마치는 것(考終命)이다.” 우리는 오복 중에서 몇 개나 누리고 살까. 나이 들어갈수록 신체가 쇠락해지면서 있던 복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 같다. 열 살 때의 활력과 스무 살 때의 열정을 유지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봤자 소용없다. 개나리꽃 같은 미소와 벚꽃 같은 손짓으로도 돈을 불러들일 수는 없다. 오래 사는 것도 뜻대로 안된다. 부자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병치레는 피할 수 없다. 그나마 성인들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 다스리는 일이나 가능할까. 죽고 사는 문제야 더더욱 내 소관이 아니다. 그저 하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이러니 무슨 수로 오복을 다 누릴 수 있겠는가. 큰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복이 있으면 비극도 있는 법. 인생의 비극은 복을 누리기보다 피하기가 더 어려운 듯 『서경』의 「홍범」조에는 오복보다 한 가지 더 많은 ‘여섯 가지(六極)’로 나열해 놓았다. “첫째 비명횡사하거나 일찍 죽는 것(凶短折), 둘째는 아픈 것(疾), 셋째는 걱정이 있는 것(憂), 넷째는 가난한 것(貧), 다섯째는 악독한 것(惡), 여섯째는 나약한 것(弱)”이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육극’이 ‘오복’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복과 비극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그런데 육극을 전부 피하고 오복을 온전히 누린 팔자 좋은 사람이 있었다. 당(唐)나라 때 실존했던 곽자의(郭子儀:697-781)라는 사람이다. 곽자의는 유명한 무장(武將)이었는데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분양왕(汾陽王)으로 봉해져 곽분양(郭汾陽)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 나가 구함으로써 많은 칭송을 받았다. 85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높은 벼슬을 두루 역임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했다. 곽자의가 살아생전에 누렸던 부귀영화는 아들과 손자까지 이어졌다. 8명의 아들과 7명의 사위가 모두 조정에서 중책을 맡았고 손녀는 황태후가 되었다. 한 가지 복도 누리기 힘든 상황에서 오복을 전부 누린 곽분양을 사람들은 행복과 길상의 대명사로 여겨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라는 형식의 그림을 그려 그 복을 닮고자 했다.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남자 곽분양    <곽분양행락도>는 8폭으로 이루어진 대형 병풍이다. 옛 그림의 구성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지는 것에 반해 <곽분양행락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의 내용은 왼쪽 아랫 부분에 있는 대문으로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연회가 펼쳐진 마당을 거쳐 오른쪽의 궁궐 안으로 이어진다. 특징적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병풍그림은 각 폭마다 독립된 내용을 그리는 각장병풍(各裝屛風)이 일반적인데 반해 <곽분양행락도>는 8폭 전체를 한 가지 주제로 그리는 왜장병풍(倭裝屛風)형식이다. 곽자의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은 조선 전기부터 그려졌지만 위국충절을 실천한 충신의 모습이 강조된 모습이었다. 오복을 다 누린 자의 여유로움이 아니었다. 길상적인 뜻이 담긴 대형 병풍은 1802년 순조 순원왕후가례에 쓰인 이후부터 궁중에서 가례 때 사용됐다. 가례는 경사스런 행사인만큼 <십장생도>나 <모란병풍>이 제작되었지만 자식 많이 낳고 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그림으로는 <곽분양행락도>만한 작품이 없었을 것이다.    <곽분양행락도> 7,8폭 세부     <곽분양행락도>는 긴 화면에 한 가지 이야기가 펼쳐져 있지만 담장과 가구에 의해 크게 세 장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앙에 곽자의를 중심으로 연회가 펼쳐지는 행사장면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연못이 있는 풍경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궁궐 안 장면이 그려졌다. 그림 전개 순서에 따라 왼쪽부터 살펴 보자. 손님들이 아이들을 거느리고 들어오는 대문을 지나면 누각이 세워진 연못이 보인다. 누각 위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앉아 바둑을 두고 있고 한 사람은 난간에 기대어 멋진 연못을 감상한다. 바둑 두는 남자는 상산에 숨어 살았던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연상케 한다. 그들은 황제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상산에 들어가 바둑으로 소일하며 살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시 황제 앞에 나아가 직언함으로써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한 충신이었다. 곽자의의 과거 행적을 빗댄 그림이다.   연못 위에는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원앙새들이 놀고 있고 담장 곁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학과 사슴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하늘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뒤덮인 가운데 청록색의 우람한 바위틈 사이로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곽분양행락도> 5폭 세부     그림 중앙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곽자의를 위한 연회가 한참 진행 중이다. 곽자의는 천막 같은 건물 안 용상에 앉아 마당에서 춤추는 무희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앞에서 한 사람이 큰 절을 올리고 있다. 그를 중심으로 앞과 뒤 옆에는 아들, 사위, 손자, 궁녀, 신하들이 에워싸듯 서 있다. 자식 복이 많은 곽자의는 손자도 많아 그들이 문안 인사를 올리면 누가 누군 지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뒤뜰에서는 여인들이 끊임없이 음식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넉넉하고 풍족한 왕가의 모습이다.   <곽분양행락도> 2폭 세부       연회장소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대각선으로 가로 지른 건물 안에서 노부인이 앉아 연회를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곽자의의 부인으로 추정되는데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긴 세월을 함께 해 온 동반자로써의 흐뭇함이 담겨 있다. 여기서부터 오른쪽에는 여성들의 공간인 듯 각 건물마다 많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곱게 단장한 채 사뿐사뿐 걷는 여인들의 자태에서 살림에 찌든 주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곽자의 손자들을 그린 것이지만 민간에서는 아들의 탄생과 번성함을 기원하며 <영희도(嬰戱圖)> 혹은 <백동자도(百童子圖)>라는 제목으로 자주 그려졌다. 축원과 축복의 상징이다. 아이들 곁에서 길조인 봉황이 춤추는 것도 같은 의미다. 소나무와 매화, 대나무와 모란 등 상서로운 나무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세워진 괴석(怪石)과 정원수가 이곳이 선경(仙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호화스럽고 화려하다. 오방색을 사용한 화려한 색과 건물 처마 밑의 단청까지 확인할 수 있는 꼼꼼한 필치가 속세를 떠난 신선의 세계를 그린 듯 환상적이다. 복락의 향유가 점입가경이다.   우리도 <곽분양행락도>속의 주인공처럼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타할아버지 초처럼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유한한 행복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한번쯤 누려보고 싶은 것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29살의 나이에 그 짧은 행복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사람이 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한 나라의 왕위 계승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의 부와 권력은 곽자의같은 사람이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현란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무엇이든 두 손에 움켜쥐려고만 하는 팔팔한 나이에 인생을 마무리할 때나 깨닫게 되는 진리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자(계속)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http://blog.daum.net/sixgardn/15770573)에서 가져옴   *이 글은 "법보신문 2013년 1월 16일자(http://www.beopbo.com/news/view.html?section=93&category=99&no=73893)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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