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보성에의 차향을 잊지않으며...(全文)

보허 步虛 2016. 3. 23. 23:25




      

보성에의 차향을 잊지않으며...(全文)

 (2)

김일세  01.07.26 19:47


반갑습니다.

김일세입니다.

자유계시판에서 자리를 옮겨 공개자료실에서
글을 개재합니다.
1단락 1단락씩 개재하려하였으나..
시간이없다는 핑계아니 개으름으로 전문을 다올립니다.
긴글인듯합니다.
각종매스미디어..책 그리구 저의 견해를 적었습니다.
아시는내용일수도 있구.. 어디선가 본 글일수도 있습니다.
그점 양지해 주시기 바라며..
차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슴하는 바람에서
이 글 올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소서



한송이 어여쁜 연꽃이 되기보단
그꽃을 피우는 진흙이고저....

김_일세 두손모음







차(茶)란 글자는

풀(草)과 사람(人)과 나무(木)가 합쳐서 생겨난 것이다. 사람은 자연 즉 풀과 나무를 벗어나 살 수 없고,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행복하다. 차는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만든 기호음료를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약용식물의 열매, 종자, 뿌리, 줄기 등을 이용해 만든 것을 모두 차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서 차는 찻잎을 이용해 만든 차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종의 대용차이다. 약용식물은 세계적으로, 약 300종 정도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약 200종이 있고, 민간 요법 등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합하면 약 600종이 된다고 한다.
찻잎을 이용한 전통차는 약용식물을 이용한 차와는 달리 마실 때 일정한 예절이 필요하다고 한다.

녹차는 일본말

그냥 일반적인 이름으로 알고 있는 녹차는 일본인 자신들이 부르기 쉽도록 차의 색깔로써 차의 별칭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문헌을 살펴보면, 차나무의 찻잎 모양을 보고 비취빛깔과 참새의 혓바닥과도 같다고 하여 작설이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차의 빛깔, 색, 그리고 그 향속에서 미를 찾았고, 차 한잔을 우려내는 데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 순간 자신을 다스리며 발전시키는 명선의 경지로까지 승화 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잎차 또는 작설차 등으로 바꾸어 불러야 할 것이다.

차의 역사
차의 기원은 고대 중국 설화중 농사의 신인 신농씨로부터 시작된다. 신농씨가 온 세상의 모든 식물의 맛을 보다 독초에 의해 중독이 되었는데, 어느 날 문득 차 잎을 먹고 난 다음 독에 제거된 것을 확인하고 이를 인간에게 널리 마시게 한데부터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차가 있었으나 성행하기로 는 흥덕왕 때 김대렴이 당에서 차씨를 가져다가 왕명으로 지리산 에 심었다고 한다.(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3년) 이외에도 차 의 전래에 대한 전설은 많이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대 인도의 야유타국에서 가락국의 김수로왕에게 시집 온 허왕비가 차 씨를 가져와 백운산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로부터 본격 적으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신라시대 飮茶(음다. 차를 마시는 방식)풍은 전차보다 병차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그리고 고구려는 북국의 한지로 신라보다 오히려 차의 유입에 유리한 조건이 있었음에도 문헌에 나와 있는 것 은 없다.
茶의 산지는 주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논할 때 신라의 땅인 경상도 보다 전라도 지역에 더 넓게 차 재배지를 이루게 된다. 그 이유 는 차의 산지는 지리산 이외에 많은 명산에서 생산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려의 다풍은 '연등회'와 '팔관회'의 행사에서 주로 진다라는 행사가 있었다. 진다란 주과식선을 열기 전에 임금이 차를 명하면 차신이 차를 올리는 의식이다. 이런 나라의 행사에 반드시 사 용했음과 동시에 고려 궁중의 중요한 생활상 음식물의 하나였다.


고려시대에는 차를 공급하는 관청까지 둔 것을 보면 널리 보편화되어 갔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음다의 풍습이 발달함에 따라 다기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고려 자기의 발달은 음다풍의 확대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음다법은 냉차를 주로 마셨는데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다른 것으로 격식이 까다로왔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고려도경) 그러나 차는 민초들의 착취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茶稅의 주구가 극심하니 그 당시 차의 주산지인 화계에서는 차를 채취할 때 관이 집집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징발하여 차를 따게 하니, 이것은 차가 아니라, 기실은 백성의 고혈이요, 만민의 살을 베어 먹는 것이다.(이규보의 글)
우리는 여기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차의 수요공급 관계는 보편화된 상태였으나 관의 착취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이규보는 분개하여 "산야를 불질러 다공을 없애야 만이 만민이 안도할 것이니 이를 알아달라."라고 친구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주구가 이렇게 심하니 민초들은 차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비싼 소금을 뿌리는 일까지 있었다.
고려 때는 신라 이상으로 병차가 유행했다고 한다. 병차를 만드는 기구를 '다마'라고 칭했는데 개성에서 발견된 다마가 있다. 고려인은 다마에 차를 갈아서 분말을 만들어 탕관에 탕수를 넣어 마셨다고 한다. 이렇듯 고려 시대에는 음다의 풍속이 자뭇 성행하였다.
이러던 것이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불교의 배척 정책으로 인하여 대중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음다의 풍속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세종25년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은 이미 차의 대중화가 이루어 졌으니 자못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 음다의 풍속을 반영하듯 야생차의 쇠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례를 들면 함안 같은 곳에서는 차종이 거의 근절되다시피 하였다. 점필재는 함안에 부임하면서 다원을 만들어 민폐를 들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차의 산출이 없는 지역에서조차 차의 부세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폐는 고려 때와 비슷했다. 점필재가 만든 다원을 함안 다원이니 엄천사 북쪽 죽림이라고 하였다.
조선조 차의 민폐는 차의 쇠퇴이외에도 옛날의 다공이 이때까지 존재했으며, 차가 없으면 엄청나게 비싸게 다른 생산지에 가서 구해 상납했다는 점이었다. 차를 상공했던 지방에서는 거의 다 이러하다보니 민혈을 착취하는 관인의 침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나무를 스스로 작벌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조선조 학자들의 차에 대한 지식은 매우 낮았다. 조선조 차에 대한 문헌은 아주 미약하여 성현의 용재총화,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 유득공의 "경도잡지" 등에서 나타난다.
다산 정약용은 차에 관련되어 '다신계'를 조직하면서 차의 보급에 열의를 가졌다. 그리고 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동다송, 다신전 등을 저술하면서 우리의 차 역사에 있어 새로운 획을 그었다. 조선시대의 최대 다원은 화계였으나, 고려 때 보다는 성하지 못하였다.
일제시대에 차의 재배를 살펴보면 일본은 보성지역에 대규모의 차 생산지를 만들고 이곳에서 나는 차를 본국으로 가져갔다. 따라서 이 시대에 주로 조성된 다원들은 식민지 2중3중의 착취구조 속에서 생존했어야만 했다.
이 시대에 큰 맥을 잊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무등산에 기거하면서 우리 나라 남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을 들 수 있으며, 현대에 들어오면서 문일평 선생이 차에 대해 아주 박식했다고 한다.


차 나 무

가. 차나무

차나무는 식물학상 산차아목(山茶亞目), 산차과(山茶科), 차속(茶屬), 차종(茶種)의 종자 식물로서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 이다.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의 동남부와 인도의 아샘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품종은 중국종과 인도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중국종은 잎과 나무가 작은 관목으로 '중국 소엽종'이라 하고 추위에 강하고 녹차용으로 적합하다. 인도종은 인도와 중국 운남성 일부의 열대 아열대에서 자라며 잎이나 나무가 큰 교목으로 '인도 대엽종'이라 하고 홍차용에 적합하다.
우리 나라와 일본의 차나무는 모두 '중국 소엽종'으로 다자란 경우에도 2m를 넘지 않지만, 중국 운남성에는 높이가 30m나 되고 수령이 천년에 가까운 차나무도 있다. '중국 소엽종'과 '인도 대엽종'은 전혀 다른 종류의 차나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염색체 수가 같으므로 세포유전학적인 차이는 없다고 한다.

나. 차나무의 기원설

차(茶)라는 것이 언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인 편작(扁鵲)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를 장사지낸 무덤에 처음으로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편작의 아버지는 8만 4천의 약방문을 알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6만 2천에 대해서는 그의 아들 편작에게 전수하고 나머지 2만 2천은 차나무로 남겼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차나무는 '비방(秘方) 덩어리'인 셈이다. 그래서 나무인지 풀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 풀[초(?)]과 나무[목(木)]를 합쳐서 차(茶)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둘째, 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왕자 달마(達磨)가 수마(睡魔)를 쫓기위해 떼어 버린 눈꺼풀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설이다. 달마는 중국 소림굴(小林窟)에서 9년 면벽 후 선조(禪祖)가 된다. 달마(達磨)가 정진(精進) 중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수마(睡魔)였다. 잠을 쫓기 위해 눈꺼풀을 떼어 뜰에 던졌는데, 이튿날 아침에 마당에 보니 한 그루의 나무가 돋아나 있었다. 그래서 이 나무의 잎을 따서 달여 마셨더니 잠을 쫓는 효험이 있었는데, 이것이 차나무였다고 한다.
셋째, 불제자인 의원 기파(耆婆)가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스무살 된 딸이 죽어 있어, 속죄의 뜻으로 딸의 무덤에 좋은 약을 뿌렸더니 차나무가 돋아났다는 설이다. 기파는 고대 인도 왕사성(王舍城)의 명의였다. 빙파사라(頻婆娑羅)왕의 아들로서 석가에 귀의하였다. 그는 의술을 배우고 돌아와서 부처님의 풍병, 아나율(阿那律)의 실명, 아난(阿難)의 부스럼을 고쳤다고 한다. 그런데 기파가 여행을 떠난 사이에 스무 살의 딸이 죽었다. 며칠 뒤에 돌아온 기파는 딸이 앓을 때 좋은 약을 못준 것이 후회되어 좋은 약을 뿌렸더니 무덤에 차나무가 돋아났다. 그래서 차나무를 스무 살짜리 사람[?人]의 나무[목(木)]라고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 성상(性狀)
차나무는 영년생(永年生)이고, 우리 나라에 있는 것은 모두 중국 소엽종으로 관목이다. 잎의 모양은 긴 타원형으로 가장 자리에 톱니가 있고 길이는 3∼10cm 정도로 두텁고 윤이 나는 짙은 녹색이다. 꽃은 하얀 색으로 보통 다섯 장의 꽃잎에 다섯 개의 녹색 꽃받침이 있고, 꽃술은 노란 색으로 암술은 하나에 수술은 굉장히 많다. 열매는 2∼3개의 방에 각각 1∼2개의 씨앗이 결실하며 꽃은 9∼11월에 피고 열매는 이듬해 가을에 익어, 만개한 꽃과 익은 열매가 함께 달려 있어 독특하다. 뿌리는 아주 깊게 뻗어 건조에 강하다.

라. 차나무의 생육 환경(環境)

기후는 연평균 기온 13°C 이상, 강우량은 연평균 1,400mm 이상이어야 하니 고온과 많은 비가 필수적이다. 녹차용 차는 좀 냉랭하고 안개가 짙은 지방이 적합하며, 고지대일수록 차의 수확량은 적지만 향기가 좋다.
토질은 표토가 깊고 배수가 좋으며 자갈을 가진 식토나 식양토가 좋으며 산도 5∼6의 약산성 땅이 알맞다.
일조량이 많으면 차잎의 섬유가 발달하여, 쓰고 떫은 맛이 쓰게 되므로 해가림을 위한 비음수(庇蔭樹)로서 차나무와 성미가 맞는 오동나무가 활용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차나무 위에 볏짚을 고깔모자처럼 씌우거나 차밭 전체를 거적으로 가려서 일조량을 제한하여 차잎을 따는 복하다원(覆下茶園)이 활용되기도 한다.

마. 번식법

번식은 실생법과 삽목, 취목법이 있다.

실생법은 늦가을에 거둔 씨앗을 가을에서 봄까지 밭에 구덩이를 한 자 정도 파고 거름을 깐 다음 씨앗을 직파한다. 3∼4년부터 차를 딸 수 있고, 이식이 힘들다.
삽목할 때는 그 해에 싹튼 어미나무 가지의 가닥에서 길이가 6-9 cm 정도이고, 잎이 2-3개 달린 것을 잘라서 묘판에 꽂고 뿌리를 내려서 묘목으로 사용한다.
취목법은 어미나무를 밭두둑에 심고 어미나무의 가지를 휘어 잡고 끝에서 20cm 되는 부분을 비틀어 돌리면서 직각으로 굽혀 좌우의 밭이랑에다 묻고 뿌리를 내서 묘목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어미나무를 밭이랑에 심고 그 가지를 사방에 방사상으로 휘어 묻어서 뿌리를 내어 묘목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사. 우리 나라 차나무의 분포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 차의 생산지를 보면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상도는 진주목(이 때는 하동은 진주에 속해 있었다.)을 포함해서 6곳, 전라도는 구례현을 포함해서 28곳이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상도는 하동현을 포함해서 10곳, 전라도는 35곳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현재의 산지와 지역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차나무의 재배 환경은 북위 45°, 남위 30°까지이지만 우리 나라는 북위 35°30' 이남에서만 자란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전라북도의 김제, 옥구, 남원, 경상남도의 함양, 밀양, 울산 지방의 남쪽에서만 차가 자라고 있다. 차 생산량의 대부분이 경남과 전남, 그리고 제주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차의 종류

茶는 차나무의 어린순을 채취하여 만든 것이다. 즉 잘 손질된 찻잎 또는 차가루나 차덩어리를 말한다. 마른차와 물이 어울려서 만들어진 것이 찻물이다. 이러한 차는 보통 1)채취시기 2)발효정도 3)색상등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를 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딱 들어맞는 방법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생산 및 소비되고 있는 茶를 대별하여 구분함으로써 茶를 좀더 알기 쉽도록 한다는데 차의 종류를 분류하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가. 채취시기에 따른 분류

녹차는 보통 雨前, 細雀, 中雀, 大雀으로 나눈다. 雨前은 곡우전에 나온차라고 하여 우전이라 한다(곡우는 매년 4월 20일). 細雀은 雨前 다음에 어린잎으로 차를 만드는데 보통 4월 말 정도까지를 잡는다. 中雀은 말그대로 細雀과 大雀의 중간인데 보통 전문가들이 雨前과 細雀을 주로 마시며 中作은 대중화된 차라고 볼수 있다. 맛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고 잘마시면 색·향·미를 다 즐길 수 있는 차이다. 보통 5월 중순쯤으로 기간을 잡는다.大雀은 그야말로 제일 큰 잎인데 채다기간은 5월말까지가 보통이고 조금은 억세고 커서 여간 잘 만들지 않고는 녹차의 풍부한 맛을 내기가 실제로 어려운 차이다
보통 造茶를 하는데 雨前과 細雀을 만드는데 주로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大雀은 구하기가 힘들고 거의 유통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大雀은 만들고도 인건비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요즘 많은 이론이 제기 되고 있다. 왜냐하면 지역과 계절에 따라 날짜에 의한 구분은 무너지기 일쑤이다. 때에 따라서는 곡우전에는 차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데 그렇게 본다면 雨前이라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요즘은 첫물차이니 두물차이니 하며 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단계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도 차가 나오는 시기가 많이 차이가 나는데 화개만 해도 쌍계사 밑과 쌍계사 위는 심지어 1주일정도 차가 나오는 시기가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아는 이들은 쌍계사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차들을 더 높이 평가 하기도 한
다. 말을 하자면 高山茶인셈이다
채엽시기에 따라 4월중순부터 5월초순까지 채엽하는 것으로 첫물차, 6월중순부터 하순까지 채엽하는 것을 두물차, 8월 초순에서 중순사이에 따는 차를 세물차, 9월 하순부터 10월 초순사이에 따는 차를 네물차로 분류한다.
이 중 첫물차는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고급으로 치고 가격 또한 높은 편이다. 두물차와 세물차는 여름철의 무더운 날씨로 차의 떫은 맛이 강하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지고, 네물차는 차입 중에 섬유질이 많아 형상이 거칠고 아미노산 함량이 적어 번차용으로 사용된다.
나. 발효정도에 따른 차의 분류

차잎 중에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는 성분은 떫은 맛을 내는 폴리페놀(Polyphenoles)이다. 이 성분이 차잎에서 존재하는 산화효소(酸化酵素)의 작용에 의해 황색이나 홍색을 띠는데 아플라빈이나 데아루비긴이라는 성분으로 바뀌면서 수색과 맛 향 등이 변화되는 과정을 발효라고 한다.

1) 불발효차(不醱酵茶)(0%)

- 증제차는 증기로 찌고, 덖음차는 솥에서 덖는 방법의 차로서 산화효소를 파괴시켜 녹색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만든차이다.

· 증제차 : 설록차 우전옥로, 설록차 한라, 말차,


· 덖음차 : 설록차 옥수, 억수, 만수, 천수, 용정차

2) 반발효차(半醱酵茶)(10-65%)

- 햇볕이나 실내에서 시들리기와 교반을 하여 찻잎의 폴리페놀 성분을 10-65% 발효시켜 만든차.

- 원래 우롱차는 50-60%가량 발효정도가 높은 차를 일컫지만 지금은 발효정도가 낮은 포종차류를 포함해서 모두 우롱차라고 한다.

·백차(白茶) : 백호은침(白毫銀針), 백모단(白牡丹) 등
·화차(花茶) : 쟈스민차, 장미꽃차, 치자꽃차, 계화차 등
·포종차(包種茶) : 철관음차(鐵觀音茶), 수선(水仙), 동정오룡차(凍頂烏龍茶)
·오룡차(烏龍茶) : 백호오룡차(白毫烏龍茶)

3) 발효차(醱酵茶)(85%이상)

- 발효정도가 85%이상으로 떫은맛이 강하고 등홍색의 수색을 나타내는 차이다.

·잎차형 홍차
·파쇄형 홍차 : 티백용 홍차원료

4) 후발효차(後醱酵茶)

- 녹차의 제조방법과 같이 효소를 파괴시킨 뒤 차입을 퇴적하여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해 다시 발효가 일어나게 만든 차를 말한다.


·황차(黃茶) : 군산은침(君山銀針), 몽정감로차(蒙頂甘露茶)
·흑차(黑茶) : 보이차(普耳茶), 육보차(六堡茶)

다. 색상에 따른 분류

보통 차의 제조공정과 제품의 색상에 따라 백차, 녹차, 황차, 우롱차, 홍차, 흑차 등의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중국의 차 문화가 가장 다양하고 일반화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차 분류를 기준으로 한다.

1) 백차(白茶)

백차는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 싹을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로서 차잎이 은색의 광택을 낸다. 백차는 향기가 맑고 맛이 산뜻하며 여름철에 열을 내려주는 작용이 강하여 한약재로도 많이 사용한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정화, 복정 등이 주산지이다.백차는 차 싹이 크고 솜털이 많은 품종을 선택하여 이십사절기 중 淸明 전후 2일 사이에 걸쳐 제조한다. 특별한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키면서 약간의 발효만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가장 간단한 차이다.

·백호은침(白毫銀針)
백차 중에서도 최고급품으로 봄에 나온 어린 싹만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찻잎 표면에 흰색의 솜털이 붙어 있어 은백색을 나타낸다.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찻잎이 하나씩 세워져 마치 꽃잎이 춤을 추는 듯이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모양이 매우 우아하다. 또한 향기가 좋고 단맛이 남으려 떫은맛이 적고, 녹차보다 오래 보관하여도 향미의 변화가 적다.

·백모단(白牡丹)
백호은침을 만드는 어린 싹보다는 조금 더 자라서 잎이 약간 펴진 상태에서 따서 만든 차로서 가격 역시 약간 싼 편이다. 녹색의 찻잎에 흰색 털이 끼어 있는 모양이 목단의 꽃과 같다고 하여 백모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향기가 상쾌하고 맛 또한 산뜻하다.

2) 녹차(綠茶)

찻잎을 따서 바로 증기로 찌거나 솥에서 덖어 발효가 되지 않도록 만든 불발효차이다. 중국과 일본 등이 주요 녹차 생산국으로 중국에서 는 덖음차가, 일본에서는 증제차가 주로 생산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덖음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증제차는 전체생산량의 25%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열처리 과정에서 증기로 찐 다음 덖음차와 같이 말아진 형태로 만든 옥록차도 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증제차의 산뜻한 맛과 덖음차의 고소한 맛이 조화된 새로운 형태의 녹차이다.

·증제차
찻잎을 100도 정도의 수증기로 30-40초 정도 찌면 찻잎 중의 산화 효소가 파괴되어 녹색이 그대로 유지되고 부드러운 증제차가 된다.
증제차의 형상은 비늘과 같은 침상형으로 차의 맛이 담백하고 신선하며 녹색이 강하다.

·옥록차
옥록차는 증제차와 마찬가지로 먼저 생잎을 수증기로 찐 다음 덖음차와 같이 구부러진 모양으로 만든 차이다. 담백한 맛과 구수한 향이 특징이며 엽록소의 파괴가 적어 녹색이 강한 편이다.

·덖음차
덖음차는 생잎 중의 산화효소를 파괴시키기 위해 솥에서 덖어서 만들기 때문에 풋내가 적고 구수한 맛이 특징이다. 특히 수제로 만든 차는 기계로 만든 차보다 녹색이 떨어지며 열처리시간이 길기 때문에 수색이 황녹색을 띠고 비비기가 부족해 고소한 향은 있으나 맛이 담백하다. 반면에 기계로 제조된 것은 위생적이고 녹색이 강하며 맛이 진한 특징이 있다.

·현미녹차
현미녹차는 증제차에다 볶은 현미를 혼합하여 만든 차로서 녹차 의 산뜻한 맛과 볶은 현미의 구수한 맛이 조화되어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말차
말차는 차광 재배한 찻잎을 증기로 찐 다음 건조시켜 맷돌과 같은 말차 제조용 기계를 사용해 아주 미세한 가루로 만든 차이다. 떫은맛은 적고 아미노산과 엽록소가 많아 가루차 그대로 물에 타서 마시거나 차빵. 차국수, 차아이스크림등 여러 가지 식품소재로 이용되고 있는 특히 물에 녹지 않는 비타민A나 토코페롤, 섬유질 등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어 영양가치가 높다.

·용정차(龍井茶)
중국 녹차의 대명사로 중국 절강성 항주의 서호(西湖)주변의 산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오늘날에는 용정에서만 생산되는 차를 용정차라 하지 않고 용정 외에도 사봉, 운서, 호포, 매오 등지에서도 생산된다. 아주 어린 싹만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제조과정이 까다롭다. 처음 덖는 과정에서 최종 제품이 될 때까지 솥 안에서 덖고 비비기를 하여 편평한 모양의 차가 되도록 만든다. 차의 맛이 부드럽고 향이 독특하나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기호에는 다소 부적합한 편이다.

·주차(珠茶)
차가 진주와 같이 둥글게 말린 모양을 하고있기 때문에 주차라고 부르며 중국의 절강성, 안휘성, 강서성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차의 수색은 황색이 진한 황녹색이고 약간 떫은맛을 낸다. 차를 우려내는 동안 둥글게 말린 차잎이 크게 펴지기 때문에 모양 을 감상하면서 마시는 즐거움이 있다.

·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
중국의 녹차로서 소주 오흥현 동정호의 동산과 서산에서 난다. 벽라춘은 향기가 높고 맛이 부드러우며 잎이 가늘고 어리며 우려낸 빛깔이 벽록색이다. 만들어진 찻잎은 나선형이고 잎에는 녹용에 있는 털과 같은 것이 있다. 차 색은 벽록색이고 찻잎은 소라 고동처럼 나선형을 하고 있고 동정산 벽록봉 아래에서 난다고 하여 벽라춘이라 이름하였다.
벽라춘은 7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낮은 등급으로 갈수록 잎이 커지고 털이 적어진다. 그러나 급이 낮을지라도 다른 녹차보다 그 잎이 더 어리다. 이것은 벽라춘이 아주 1이른 시기의 춘분과 곡우 사이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황산모봉차(黃山毛峰茶)
모봉차가 생산되는 황산은 중국 안휘성의 유명한 명승지로서 중국의 5대 명산중의 하나이다. 황산모봉차는 작고 흰 은빛털이 찻잎 을 덮고 있는 차이지만 중국의 차소개서에는 백차로 분류하지 않고 녹차로 분류하고 있다. 황산 모봉차는 작고 흰 은빛털이 온몸에 감 고 있어, 마치 여우털이나 밍크를 온몸에 감고 있는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또 높은 향기와 부드러운 맛이 자랑이다. 맛이 신선하고 부드러우며 어린잎이 많은 백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찻잎의 빛깔은 황록색이고 우려낸 탕 색은 맑고 투명하다 또한 우려낸 잎도 선명한 황록색을 띠고 있다. 찻잎은 넣고 물을 부으면 찻잎이 둥둥 뜨다가 계속해서 물을 부으면 천천히 가라앉는다. 모봉차는 청차와 녹차만 드는 방법과 같다.

3) 황차(黃茶)
황차는 찻잎의 색상과 우려낸 수색 그리고 찻잎찌꺼기의 세 가지 색 이 모두 황색을 띤다.황차는 중국의 6대 차류 중의 하나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녹차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잘못 처리되어 황색으로 변화되면서 우연히 발견된 황차는 송대(宋代)에는 하등제품으로 취급 되었느나 연황색의 수색과 순한 맛 때문에 고유의 제품군을 형성하게 되었다.
황차는 녹차와는 달리 찻잎을 쌓아두는 퇴적과정을 거쳐 습열상태에서 차엽의 성분변화가 일어나 특유의 품질을 나타내게 된다. 녹차와 오룡차의 중간에 해당되는 차로서 차엽 중의 엽록소가 파괴되어 황색 을 띠고, 쓰고 떫은맛은 내는 카테킨 성분이 약 50-60% 정도 감소되므로 차의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또한 당류 성분과 단백질의 분해로 당성분과 유리 아미노산이 감소되어 단맛이 증가되며 고유의 풍미를 형성하게 된다.

·군산은침(君山銀針)
君山은 중국 호남성(湖南省) 악양현의 동정호(洞庭湖) 가운데 있는 섬으로서 이 동정호 근처에서 생산되는 차다. 이 차는 중국의 唐 代에서 비롯하였고 淸代에는 황실에 바쳐지던 귀한 차이다. 군산에서는 원래 녹차를 생산하다가 후대로 가면서 황차로 바꾸어졌다. 이 차는 청명(淸明)전후 3-4일에 걸쳐 어린잎을 따서 먼저 솥에서 열 처리를 한 뒤, 1차 건조를 시킨다. 다시 수분 함량이 50-60% 정도에서 종이로 싼 뒤 목상자나 철제상자에 넣고 40-48시간 저장시켜 만든다. 군산은침은 향기가 맑고 맛은 부드럽고 달고 상쾌하며, 우려 낸 차의 빛깔은 밝은 등황색이다. 차싹은 백호가 많고 잎의 모양은 곧고 가지런한 것이 담황색을 띄고 있다. 이 차에 더운물을 부으면 차싹이 곧게 뜨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몽정감로차(蒙頂甘露茶)
몽정감로차는 중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차로서 당나라 때부터 널리 알려진 차로 몽정차라고도 한다. 중국의 사천성 몽산의 정상에서 난다. 唐代의 문헌인 <국사보>에서는 몽정차를 황차 중에서 가장 뛰어난 차라고 했다. 옛날에는 공물로 바쳐지는 몽정차를 만들 기 위해서 관원과 승려가 제사를 지낸 다음에 차를 땄다고 한다. 몽정차의 맑은 향기는 오fot동안 지속된다. 그 맛은 달고 신선하며 우려낸 차 빛은 밝은 황금색을 띤 녹색이다. 그리고 차의 외형은 잎 하나가 완전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고산차의 특징인 가는 바늘 같은 모양의 잎이 백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빛깔은 벽록색이다.

4) 오룡차(烏龍茶)
烏龍茶는 중국 발음으로 통상 우롱차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한자 발음으로 그냥 오룡차라 하는 아무래도 친근감이 든다.
이 오룡차는 중국의 남부 복건성(福建省)과 광동성(廣東省), 그리고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는 중국 고유의 차이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의 발효정도가 20-65% 사이의 차를 말하며 반발효차로 분류된다.
오룡차란 이름은 11세기 북송(北宋)시대의 기록 중에 나타나 있으나 이때에는 지금의 오룡차가 미처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지의 명칭에 유래되었다는 설과 품종에서 연유되었다는 주장, 그리고 송대 에 제조된 용무늬가 새겨진 떡차(龍鳳團茶)가 잎차 형태로 변하면서 차잎 모양이 까마귀와 같이 검고 용처럼 구부러져 있다고 하여 이처럼 불렸다는 設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오룡차는 중국 복건성에서 생산되는 무이산의 암차가 그 원류이다.
대만의 오룡차도 이 복건성의 오룡차가 대만으로 건너간 것이다. 복건성 숭안현 남쪽에 있는 무이산은 산세에 변화가 많아 무이산 36봉 72 암이라고도 한다. 해발 700여미터에 붉은색 사암으로 된 토양은 차나무가 무성하다. 여기에서 나오는 암차가 육계,수선,오룡,철라한,대홍포,기란,매점 등의 품종이 있다. 그 가운데 이름난 것은 육계, 수선 그리고 오룡차이다. 무이암차의 찻잎을 따는 기준은 녹차와는 다르다.
녹차는 어린 찻잎을 따지만, 무이암차는 다 펼쳐진 찻잎을 딴다 찻잎 을 너무 일찍 따면 무이암차의 독특한 향기와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늦게 따면 찻잎이 너무 쇠어져서 좋은 차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반발효차(半醱酵茶)는 기름기가 많은 요리에 잘 어울리는 제품으로 중국음식을 먹을 때 오룡차를 함께 마시면 입안을 산뜻하게 해주고 느끼한 맛을 없애주며 소화를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
오룡차를 마실 때는 의흥(宜興)의 소형 다기를 이용하여 다관에 절 반정도 차를 넣고 90-100도의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 마셔야 제 맛이 난다. 소형 다기가 없을 경우에는 일반 사기형 다관을 사용하여 무방하나 녹차나 홍차를 우려 마시는 다관을 사용하면 향이나 맛이 혼합되어 본래의 맛과 향이 떨어진다.

·철관음차(鐵觀音茶)
철관음(鐵觀音)이란 이름은 중국 청나라 때 복건성의 안계현에 살고 있던 농부가 매일 관음상에 차를 공양하다가 우연히 관음상 옆의 바위 사이에 차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유래되었다. 태양을 뒤로하고 있는 차나무의 모양이 관음상과 같이 빛나고 있어 농부가 이 나무를 집으로 옮겨 심은 뒤,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더니 차 맛이 진하면서 부드럽고 뒷맛이 달게 느껴지며 치자꽃과 같은 향기가 났 다고 한다. 관음이 주신 차나무로서 잎이 철과 같이 검고 무겁다하여 철관음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철관음은 높은 향기가 오래 유지되고, 차 맛이 달고 입안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리고 마신 뒤에는 입안에 과일의 향기와 같은 향이 감돈다. 이 입안에 감도는 향기를 여느 향기와 구분하여 철음운(鐵音韻) 이라 한다. 차의 탕색은 금빛이 감도는 선명한 등황색이고 잎은 두텁 다. 찻잎을 말린 것을 보면 둥근 원형을 하고 있다. 찻잎은 일년에 4차례 걸쳐서 따는데 봄에 딴 차를 春茶(입하 전후),여름은 夏茶(하지 전후). 더울 때 딴 차를 暑茶(대서 전후), 가을은 秋茶(백로 전) 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춘차가 주종이고 그 다음에 딴 차는 맛이 조금 떨어진다. 특히 추차의 경우는 맛이 떨어지지만 향이 일품이어서 추향차라고도 한다.

·수선(水仙)
중국 복건성의 수선(水仙)이라는 차나무 품종으로 만든 차로 찻잎이 길고 큰 편이다. 가열처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약간 태운 냄새가 나며 발효도가 높아 수색이 갈색을 띤 홍색을 나타낸다. 오룡차 캔드링크의 원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여러 번 우려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동정오룡차(凍頂烏龍茶)
대만의 중부지역인 남투현 녹곡향(鹿谷鄕)의 동정산(凍頂山) 주변 다원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무이암차가 전래되었다고 하는 대만 대표 적인 차이다. 차 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강하며, 마시고 난 뒤 입안에 단맛이 남는 것이 특징이다. 청심오룡의 품종으로 잘 만들어지면 검은 녹색을 띠고 청개구리처럼 반회색의 점을 가지고 있다. 잎의 모양은 선형에 가까운 녹차와 구형의 철관음의 중간형이다. 차를 우려내면 밝은 황금색을 띤다. 우려낸 찻잎을 보면 찻잎 둘레가 붉고 그 안은 담녹색을 하고 있다. 다른 지방의 차보다 비싸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차가 동정오룡차 브랜드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이 차는 대만의 국책사업으로 등급은 매화의 갯수로 표시한다. 즉 다섯송이 매화는 최고의 품질이고, 포장에서 선명한 붉은 색은 반발효차이고 암홍색은 발효차이다.

·무이산 대홍포차(武吏山大紅袍茶)
무이산의 대홍포차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 선비가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무이산을 지나가다 병이 생겨 사경을 헤매다가 근처 사찰의 스님이 원숭이를 시켜 절벽에 있는 차를 따오게 해서 차를 달여서 먹이자 병이 완치되어 무사히 과거를 보게되었다. 그 선비는 과거에 장원을 하였을 뿐 아니라 왕의 부마로 책봉되어 공주 와 결혼하게 되었다. 신세를 진 부마는 은혜를 갚고자 스님을 찾아가 절을 새롭게 단장해 주었다. 어느 날 왕비가 병이 생겨 천하의 명의를 불러 치료를 하였으나 차도가 없어서 부마가 스님에게 차를 부탁하여 왕비에게 먹였는데 그러자 질병이 완쾌되었다. 이에 왕은 자신의 홍포를 벗어 나무위에 덮어주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왕이 둘이 될 수 없듯이 왕의 옷을 입은 차나무는 점점 말라 죽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부마가 홍포를 걷어내자 오색 찬란한 빛이 생기고 차나무는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문산포종차(文山包種茶)
일명 청차(淸茶)라고도 불리는 문산포종차는 향이 강하고 맑으며 황금색의 수색을 나타낸다. 반발효차 중에서도 15-20%정도로 낮게 발효를 시킨 관계로 찻잎은 녹색에 가까운 편이다.차엽 자체에 꽃향기 가 있어서 마신 뒤 입안의 상쾌함을 더해 준다.

·백호오룡(白毫烏龍)
발효정도가 65%전후로 높기 대문에 수색이 홍차에 가까운 홍색을 나타낸다. 대만의 신죽(新竹), 묘율(苗栗)지역에서 생산되며 여름철 무소독 무비료 재배로 일종의 벌레가 잎의 즙을 빨아먹은 뒤 차입 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벌꿀과 같은 향이 형성된다. 향빈우롱(香檳烏 龍) 또는 동방미인(東方美人)이라 부르기도 한다.

5) 홍차(紅茶)
홍차는 발효정도가 85% 이상으로 떫은맛이 강하고 등홍색의 수색을 나타내는 차이다. 세계 전체 차 소비량의 75%을 차지하는 차로서 인도, 스리랑카, 중국, 케냐, 인도네시아가 주 생산국이며 영국과 영국식민지였던 영연방국가들에서 많이 소비된다.
홍차도 처음에는 녹차나 오룡차와 같이 잎차 형태로 생산되었으나 티백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티백용의 파쇄형 홍차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지만 고급 차 류는 여전히 정통 잎차형으로 생산되고 있다.
인도의 다즐링(dazzeling), 중국의 기문(祁門), 스리랑카의 우바( Uva)홍차가 세계 3대 홍차로 꼽히며, 차엽 그대로 우려 마시는 스트레이트티와 밀크를 첨가시켜 마시는 밀크티 형태가 있다.

·다즐링 홍차
세계 3대 명차의 하나로 북동 인도 히말라야 산맥의 고지대인 다즐링 지역에서 생산된 홍차이다. 보통 3-11월이 수확기이며 3월 중순 에서 4월에 첫물차가 생산되나 향기는 6-7월의 두물차가 가장 강하다. 차의 수색은 다른 홍차에 비해 엷은 오렌지색을 띠고 맛이 부드러우며 달다.

·우바 홍차
인도 다즐링, 중국의 기문홍차와 더불어 세계 3대 명차의 하나로 스리랑카 중부산악지대인 우바에서 생산된 하이그론티(High Grown Tea, 해발 1200m 이상에서 생산된 홍차)에 해당되는 고급차이다. 7 -8월에 생산된 홍차의 품질이 가장 뛰어나며 꽃향기와 산뜻한 떫은 맛, 그리고 밝은 수색이 상쾌함을 더해주는 차이다.

·기문 홍차
홍차의 원산지인 중국에서 생산된 세계 3대 명차 중의 하나로 중 국 안휘성의 기문에서 생산된 홍차이다. 수확기는 6-8월로 비교적 짧으며 8월에 생산된 것이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 수색은 밝은 오렌지색으로 훈연한 것과 같은 향기가 있다.



·앗샘 홍차
세계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인도 북동부의 앗샘평원에서 생산된 홍차로 주로 브랜딩용 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통상 3-11월에 걸쳐 수확을 하며 맛은 농후하고 수색은 진한 적갈색을 띤다. 밀크를 첨가하여 마시는 밀크티로 적당하다.

6) 흑차(黑茶)

중국의 운남성(雲南省),사천성(四川省), 광서성(廣西省) 등지에서 생산되는 후발효차로서 찻잎이 흑갈색을 나타내고 수색은 갈황색이나 갈홍색을 띤다.
차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퇴적하여 곰팡이가 번식하도록 함으로써 곰팡이에 의해 자연히 후발효가 일어나도록 만든 차이다. 처음 마실 때는 곰팡이 냄새로 인해 약간 역겨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몇 번 마시다 보면 독특한 풍미와 부드러운 차 맛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 는 잎차류 보다 차를 압착하여 덩어리로 만든 고형차가 주로 생산되며 저장기간이 오래 될수록 고급차로 간주된다
옛날에는 보이차를 약용으로 많이 이용하여 <운남성지>, <백화경> 등의 기록에 의하면 "보이차는 기름기를 제거하고 장을 이롭게 씻어 내고, 술을 깨게하며, 소화를 돕고, 진액을 생기게 하며, 목의 통증을 다스린다. 또 생강탕과 같이 쓰면 간기를 치료하고 피부의 출혈을 멈추게 한다"라고 하였다.
체내의 기름기를 제거 효과도 강하여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기름기가 많은 광동요리를 먹을 때 함께 마시는 얌차(飮茶)가 유명하다.

·보이차(普耳茶)
중국의 운남성(雲南省)에서 생산되는 후발효차로서 운남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드는 차로서 보이현에서 모아서 출하하기 때문에 보이차라고 한다. 알칼리도가 높고 속을 편하게 해주며 숙취제거와 소화를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에 잘 어울리며 곰팡이균을 번식시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있다. 홍콩이나 싱가폴, 광동지방에서 주로 많이 소비되고 있으며 오래 숙성시킬수록 가격이 비싸다.

·보이긴압차(普耳緊壓茶)
보이차는 운반의 편의와 장기간 저장을 위하여 찻잎에 수증기를 가한 다음 틀에 넣고 압착하여 일정한 형태의 덩어리로 만든 차 제품이다. 형상에 따라 타차, 전차, 인두차 등 여러 가지로 불리워 진다. 마실 때는 칼로 잘게 썰어서 우려 마시며 버터나 밀크, 소금을 첨가하여 마시기도 한다.
형상에 따라 분류하면 타차(차그릇 모양),박차(벽돌모양),병차(餠 茶:평평하고 둥근원형모양),긴차(緊茶:하트모양), 주차(珠茶:탁구공 모양), 인두차(人頭茶:사람 머리 크기와 같이 크게 만든 차)등의 종류가 있다.

라. 찻잎의 크기 및 생산지에 따른 한국전통녹차 분류

·우전차(雨前茶) : 곡우(穀雨 4월20일~ 4월21일)전에 아주 어린 찻잎 순만을 따서 만든 차

·세작 : 곡우에서 입하경에 가르고 고운 찻잎순과 펴진 잎을 따서 만든 차
·중작 : 입하 이후 잎이 좀 더 자란 후 펴진 잎을 따서 만든 차
·입하 : 중작 보다 더 굵은 잎을 따서 만든 차
·대작 : 한여름에 생산되어지는 차를 대작이라 한다.
·작설차(雀舌茶) : 찻잎이 참새의 혓바닥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죽로차(竹露茶) : 대나무의 이슬을 먹고 자란 차라는 뜻
·반야차 : 예로부터 내려오는 나름대로의 방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차
·유비차 : 유기농법으로 재배되어진 차
·화개차 : 화개지역에서 생산된 야생녹차를 말함.


차 마시는 법(茶道)

1.다도(茶道)란 무엇인가 ?

찻잎 따기에서 차를 우려 마시기까지의 차일(茶事)로써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德)을 쌓는 행위를 말한다.

2. 한국식 행다법

1) 예를 갖추고 손임을 맞이한다.
팽주 : 차를 다리는 사람
다동 : 팽주를 보조하는 역할(팽주의 왼쪽)

2) 절을 한 뒤 목례를 하고 차석으로 간다.
차석 : 차를 마시는 자리

3) 차석에 앉아서 손님에게 편히 앉기를 권한다

4) 탕관을 들어서 수구에 붓는다.
탕관 : 차를 다리기 위해 끓인 물을 담아 놓은 주전자
수구 : 물 식히는 그릇

5) 수구를 들어 다관에 붓는다. (물의 온도 = 다관의 온도 = 다잔의 온도)
다관 : 차를 다리는 그릇

6) 다관을 들어서 잔에 부어 잔을 데우고, 다시 수구에 차수를 채운 다음 다관에 붓는다.
(수구의 물을 잔에 따루어 잔을 데운 후 다시 수구에 붓고 1분 정도 식혀(70도) 다관에 붓기도 한다.)

잔을 데우는 이유 : 차의 맛이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물(차수)의 온도와 다잔의 온도를 갖게 해줌.
7) 차통을 들어서 차시도 함께 잡고, 차를 다관에 넣는다.
(다관의 물이 약 70도 되었을 때)

차통 : 차를 담아 놓는 항아리
차시 : 차 숟가락

8) 잔의 물을 퇴수기에 버리고 차건으로 닦는다.
퇴수기 : 물을 버리는 그릇
차건 : 현대 생활의 행주

9) 우러난 차(약 30 - 40초 후)를 반복하여 두 번 이상 반복하여 따른다.

반복하여 따르는 이유 : 차의 맛은 민감하기 때문에 첫잔과 마지막 잔의 농도와 맛을 같 게 하기 위해서 이다.

10) 팽주는 가장 중앙에 위치한 다잔의 차의 간을 보며 손님에게 권하고 손님은 색, 향, 미 를 감상하며 차를 마신다

11) 재탕 시에는 수구를 거치지 않고 다관에서 차수를 부어 차를 우려내어 바로 잔에 붓기 도 한다.

12) 차를 마시고 다과를 먹으며 다담한다.
다과 : 차를 마실 때 먹는 과일이나 과자, 떡
다담 :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

13) 마지막으로 않은 상태에서 목례를 행함으로써 마무리 인사를 한다.

오늘날 차를 끓이는 방법은 잎차를 우리는 팽다법, 말차에 숙수를 부어 휘젓는 점다법, 차를 물에 넣어 끓이는 자다법이 있다. 댕다, 점다, 자다를 모두 뜻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다(前茶)라는 말을 흔히 썼으며, 행다(行茶)는 보다 넓은 의미로 차를 끓여서 대접하고 마시는 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물 끓이기
물의 끓는 상태는 끓는 모양에 의해[형변(形辨)], 끓는 소리에 의해[성변(聲辨)], 끓는 김을 보고[기변(奇變)] 판별할 수 있다.

물의 끓는 모양에 따라

1.비 해안(一沸蟹眼) : 물이 끓기 전에 솥바닥에 게눈 같은 기포가 생길 때
2.비 어목(二沸魚目) : 고기눈 같은 방울이 하나씩 떠오를 때

3.비 용천연주(三沸龍泉連珠) : 물방울이 염주같이 계속 끓어 오를 때
4.비 등파고랑(四沸騰波鼓浪) : 끓는 물이 파도치듯, 북을 치 듯 격렬하게 끓을 때
5. 비 순숙(純熟) 또는 결숙(結熟) : 끓던 기력이 완전히 사라진 때[수기전소(水氣全消)] 이때가 잎차의 탕수로 알맞을 때다.

그 외에 송(宋)나라 나대경(羅大經)은 물 끓는 소리를 시적(詩的)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물 끓는 소리가 마치 솔바람 소리와 같다 하여 '송풍(松風)' 또는 전나무에 비내리는 소리와 같다 하여 '회우(檜雨)'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 차그릇의 배열

물이 끓었으면 차그릇을 펼치고, 차의 등급에 따라 물을 식히고, 차그릇을 끓는 물로 데워야 한다. 차그릇을 벌여 놓음에도 설이 분분하나, 예나 지금이나 차를 즐겁게 마실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다관을 비롯해서 물 식힘 사발, 개수 그릇 등은 오른쪽에, 찻잔과 잔 받침, 차통, 찻숟갈 등은 왼쪽에 배열하는 게 우리 전통의 방법이다.

◆ 물 식힘과 차그릇의 예온

끓는 물을 다관, 찻잔, 물 식힘 사발에 부어 미리 데워 둔다. 이는 차 맛도 좋아지지만 차 그릇의 소독도 되므로 위생적이다. 어떤 이는 여름에는 찬물로 냉각시켜야 한다지만 더운 차를 부었을 때 차의 안팎 온도가 달라지면서 차 맛이 아래 윗물이 져서 좋지 않다.
차를 우려낼 물은 차의 품질에 따라 알맞게 식혀 사용한다. 고급차(세작)는 50∼60。C, 중급차는 70∼90。C, 하급차 즉 홍차, 오룡차(반발효차) 등은 끓는 물 그대로 사용한다. 차 그릇의 예온과 물 식힘은 한꺼번에 이뤄지게 된다.

◆ 차넣는 법

①중투법(中投法) 끓인 물을 다관에 절반을 붓고 차를 넣은 다음, 다시 나머지 물로 채운다.
②상투법(上投法) 끓인 물을 먼저 붓고 차를 뒤에 넣는다. 여름에 차를 마실 때
③하투법(下投法) 차를 먼저 넣은 뒤에 끓인 물을 붓는다. 겨울에 차를 마실 때

이러한 투다법은 '찻물 온도'와 '기온에 의한 차그릇의 온도 변화'와의 상관 관계를 오랜 기간의 경험에 의해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다.

◆ 차다리는 법

①차는 건조한 곳에 따로 보관하여 변질이 되지 않은 차를 쓴다.
②좋은 물을 쓴다. 산상수(山上水)가 가장 좋으나, 그렇지 못할 때는 수도물이라도 하룻밤 정도 재워 두었다가 사용한다.

③물을 충분히 끓여 뜸을 잘 들이고, 알맞게 식힌다.

1. 찻잎의 종류 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불발효차인 녹차류와 반발효차인 우롱차, 발효차인 홍차로 나뉘는데 이들 차의 종류에 따라 달이는 방법도 달라지게 된다. 대체적으로 발효 정도가 높아질수록 차를 달여내는 물의 온도가 높아지며 시간도 조금씩 길어지게 된다.

2.찻잎의 상태 찻잎의 상태가 많이 부서져 있거나 가루가 많을 때에는 가능한 온도를 낮추거나 시간을 줄이거나 혹은 양을 적게 넣어야 하는데, 부서진 잎을 보통 달여내는 방식으로 했을 경우는 차의 맛이 떫고 강해서 마시기가 매우 곤란하다. 이는 찻잎이 부서져 있을 때 용출되는 찻잎 성분량이 많고 용출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잘 말아진 잎은 침상형보다 시간을 조금 길게 하여 가열처리를 많이 한 것은 온도를 높여서 차를 끓여야 하며 시간이 너무 짧거나 온도가 낮을 때는 가용 성분의 용출 속도가 느리므로 차의 맛이 담백해지게 된다.

3.차의 양 차의 양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차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찻잎의 손실도 따른다. 그래서 먼저 차를 마시는 인원에 비례해서 다관의 용량을 정하고 1인당 2~3g을 기준으로 차를 달여낸다. 또 잎이 어릴수록 여러가지 가용성분이 많기 때문에 양을 조금 적게 하는 것이 좋고, 반면 경화된 잎은 용출되는 가용성분의 함량이 적으므로 양을 조금 늘려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4.물의 종류 물의 종류에 따라 차의 향미는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차를 달이는 물은 깨끗한 샘물이나 증류수, 혹은 경도가 낮은 연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5. 물의 온도 찻잎 성분의 추출 정도는 물의 온도에 따라 매우 민감하다. 물의 온도가 너무 높을 경우 카페인 성분의 용출이 많아져 맛이 쓰고 낮은 경우에는 찻잎 중의 향미 성분과 수용성 성분의 용출이 불충분하여 맛이 싱거워지게 된다.

6.시간 차의 추출 시간은 역시 침출물의 양에 밀접한 관계가 있어 차의 수색, 명암, 맛의 농도, 쓴맛, 떫은맛이 달라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2~4분 우려내지만 부서진 잎이 많거나 가루가 많을 때는 조금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다.

7.채엽시기 봄철에 따는 1번차는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낮아서 맛을 나타내는 에스테르형의 카테친 성분이 적고 지미성분의 아미노산 함량이 높으며 향미도 강한 데 비해서 일조량이 많은 2번차나 3번차의 경우 떫은밧이 강하므로 차를 달일 경우 물의 온도를 조금 낮게 하는 것이 좋다. 같은 계절이라도 초기에 딴 것과 후기에 딴 잎과는 차이가 있다.

◆ 차 마시는 법

①기본 팽다법 ②기본 점다법 물 끓이기


물 끓이기 차사발 데우기
그릇 헹구기 차넣기
숙우 식히기 숙수 붓기
차 넣기 휘젓기
숙우 붓기 마시기
기다리며 잔비우기
따르기
마시기
재탕 우려 마시기
마무리

차가 손님 앞에 다 놓여졌으면 팽주는 손님을 행해 목례를 하거나 "차 드십시요"라고 권한 후 같이 마신다. 두세 번으로 나누어 마시되 머금어 굴리듯이 차가 입안에 고루 배이게 마시면 탄닌의 살균작용과 불소성분으로 인하여 치아에 좋고 풍미를 한층 오래 즐길 수 있다. 잎차를 마실 때는 잔받침은 그대로 두고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오른손으로 잔을 잡고 왼손으로 잔을 받친다. 잔이 크면 두 손으로 감싸 쥔다. 말차를 차사발에 점다하여 마실 때 손님이 많으면 다같이 마시지 않고 팽주가 주는 대로 마신다. 점다후 오래 지나면 유화가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차사발은 두 손으로 안전하게 감싸쥐고 천천히 한꺼번에 마신다. 또 차를 마실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며,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찻잔에 남은 향기를 맡고 잔을 내려 놓거나, 잠시 기다렸다가 입안에 남은 차의 뒷맛을 감상하는 것도 차의 풍미를 아는 일이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고 한다. 귀로는 찻물 끓이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눈으로는 다구와 차를, 입으로는 차의 맛을,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즐기기 때문이다.

◆ 다구

다구는 차를 마시기 위해 갖추어야할 도구들을 가리킨다. 아주 기본적인 다기(茶器)에서부터 찻상, 다반, 차시, 다포 등을 통틀어 다구라고 한다. 다기의 선택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해두면 좋겠다.

첫째, 다기는 진열용이 아니다. 다른 도자기 제품처럼 예술성과 골동품적 가치만을 따질 수 없는 생활 자기임으로 유명도예가의 고가품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둘째, 실용적이어야 한다. 매일 사용하려면 편리한 기능과 도자기 제품이므로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셋째, 아름다워야 하고 쉬 싫증을 느끼지 않을 만한 것이 좋다.

◆ 다구의 명칭과 쓰임새

·차 주전자(다관 )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 보통 몸통에 손잡이 달렸고 주둥이 안쪽에는 거름망이 있다. 모양은 보통 주전자와 같이 손잡이가 위에 둥글게 붙은 것과 물 따르는 주둥이[주구(注口)]의 반대편에 붙은 것이 있다. 또 손잡이가 아예 없고 주구대신 귀때기가 붙어있는 것도 있다.
차주전자의 뚜껑은 차 찌꺼기를 청소하기에 편리할 만큼 커야 하고, 차를 따를 때 흘러내리지 않도록 몸체와 서로 요철(凹凸)로 되어 있어야 한다. 주구의 안쪽은 거름망이 촘촘히 뚫려 있어야 하며, 찻물이 주둥이를 타고 흐르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이 좋다.

·찻잔
찻잔은 시대와 모양에 따라 여러 이름이 전한다. 구(具)는 원통형의 통잔, 완(碗)은 사발형의 가루차용, 종(鍾)은 작은 반구(半球)형의 잎차용을 이른 것 같다. 찻잔은 약간 두툼하여 쉬 뜨겁거나, 쉬 식지 않는 것이 좋으며, 잎찻물의 아름다운 색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잔의 안쪽은 백색이 좋다. 잎찻잔은 보통 5개로 손잡이가 없다.

·잔 받침(잔대, 차탁(茶托),차반(茶般))
찻잔 받침은 원형, 타원형, 사각형, 배모양 등으로 도자기나 나무 제품이 대부분이다.

·물 식힘 사발[숙우(熟盂)]
끓인 물을 적당량 부어 알맞은 온도로 식히는 사발이다. 물을 붓기 좋도록 귀가 있어 귀사발 이라고도 한다.

·물 끓이는 솥[탕관(湯罐)]과 풍로
물 끓이는 그릇으로, 신라 때에는 돌 솥도 있었다. 지금은 의식 다례가 아니면 화로나 탕관은 사용하지 않고, 주로 주전자나 전기포트를 사용한다.

·찻상, 다반
다기를 올려놓는 상과 소반을 가리킨다.

·다포
찻상과 다반 위에 덮고 그 위에 다기를 올리는 수건.

·차시
마른 차잎을 다관에 일정량 떠 넣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

·자완
주로 가루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막사발.

·다선
가루차를 저을 때 사용하는 거품기.


이 외의 차구로는 물을 받아 놓는 물 항아리, 차를 조금씩 덜어 쓰는 차통, 개숫물을 버리는 개수 그릇, 차쟁반, 표주박, 찻상보, 차행주 받침, 차주전자 뚜껑 받침, 다식 접시 등이 있다.
다구는 개개인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다 도

다도는 茶를 마신는 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다사(茶事)를 통해 심신을 수련하는 것을 말한다. 차는 처음에는 음료수나 약으로 사용했지만 점차 기호 식품화 되면서 취미생활과 연결되었고, 다시 일상생활의 도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다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다도의 성립은 중국 당나라의 육우가 8세기 중엽 을 지은 때부터 비롯되었다. 그 뒤 다도는 중국을 비롯해 우리 나라와 일본 등으로 유포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해 고려시대에는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했고 조선시대에는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 와 한때 쇠퇴기를 갖던 다도는 19세기에 들어서 다시 일기 시작했다. 그 당시 초의선사는 을 지어 다도의 이론적인 면 과 실제적인 면을 크게 정리, 발전시켰다. 초의선사는 다도를, "따는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데 그 정을 다하고, 물은 진 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와 같이 다도는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우러나게 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도를 관통하는 정 신을 다도정신이라 하여 다실의 분위기, 다구의 아름다움, 차의 성품, 차를 끓이는 여러 가지 일 등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을 뜻한다.
다도정신은 다인들의 정신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그것을 증명해 준다. 차인들은 차를 통해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했다.
예로 한 시구에서 "맑은 바람을 타고 티끌 세상을 벗어나고자"라 고 표현했듯이 이는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초탈을 희구하뎐 도가 의 다도정신으로, 이때의 초탈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부귀와 공명을 가볍게 보려는 마음에서이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의 시 중에 "한 잔 차로 곧 참선이 시작된다."는 구절은 차와 선이 한 맛으로 통하는 경지의 표현이다.
차와 선이 서로 같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는 선의 삼매경에 들어 대오각성하는 길이나, 차의 삼매에 들어 묘경(妙境)을 깨닫는 것이 한가지라는 선가(禪家)의 말로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상통하는 다도정신이다.
우리나라의 다도정신에는 중정이 강조되었는데, 이것이 유교의 다도정신으로 중국의 다도정신에서 강조하는 중용(中庸)과 일본의 화(和)와도 서로 상통한다.

다 선

노란 꾀꼬리 나무에 오르니 한 송이 꽃이요
백로가 밭에 내리니 눈 내린 것 같구나
黃鶯上樹一枝花
白鷺下田千點雪

선(禪)을 행하는 쌍계사 삼성각(三聖閣)의 주련이다. 마치 한편의 시(詩)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선(禪)이나 선시, 또는 멋을 이야기할 때 흔히 회자(膾炙)되는 야부도천(冶父道川)의 선시에 버금가는 멋이 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빛이 물밑을 비추어도 흔적이 남지 않네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 바람 쓸쓸한데 애써 시(詩)를 지으니
바깥 세상길 외국이라 아는 이 적도다
창밖 삼경에 비 뿌리는데
등잔 앞에 이 마음 끝간데를 모르네
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머나먼 이국에서 고향을 그리는 애절한 심정이 가을 밤비와 더불어 절실한 상념을 가져다주는 시다.

다음은 원감국사(圓鑑國師: 1226-1292)의 [산중락(山中樂)]이란 시이다. 국사의 차와 선과 멋이, 산중에서 신선처럼 사는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산중의 즐거움이여
몸과 마음에 맞으니 천전(天全)을 기르네
숲은 깊고 골짜기는 좁고 돌길은 외길이네
소나무 아래에는 시내가 흐르고 바위 밑에는 샘이 솟네
세상과는 한 점의 인연도 없네
한 발우 밥과 한 접시 나물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네
물 한 병과 찻잔의 차 목마르면 손수 끓인다네
대지팡이 하나에 방석 하나
다니면서도 선(禪)이요 앉아서도 선이라네
산중의 이 즐거움 참으로 좋아
옳고 그름과 슬픔과 즐거움 모두 잊었네
산중의 이 즐거움 참으로 귀해
학(鶴)을 타거나, 허리에 돈을 차기도 원치 않네
몸과 마음 얽매임 없으니
다만 일생 동안 매임 없이 천년을 살려네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체(茶禪一體)
초의선사의 [산천도인이 차를 사례함을 받들어 화답하여 짓다]라는 다게(茶偈)에는 그의 다도정신 즉 다선일미(茶禪一味)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즐겼나니
차는 군자처럼 성미에 사악함이 없기 때문이라네
古來聖賢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
초의(草衣)의 다선일미 다선일체 사상은 황인경의 {소설목민심서}에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다산초당에 새손님이 들어왔다. 초의였다.
"사부님 오랫동안 격조하였습니다."
"그 동안 어찌 지냈는가. 나는 아직 풍기가 있어 출입이 곤란하다네."
"빈승이 사부님의 건강을 돕겠습니다."
초의는 다기(茶器)를 꺼내면서 빙그레 웃었다. 천진무구한 동안(童顔)이었다. 찻잔도 그의 얼굴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모양이었다.

"옛 기록을 보면 수문제(隋文帝)가 젊어서 뇌병을 앓았는데 백약이 무효였다고 합니다. 사부님, 이것은 빈승이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든 작설차이옵니다. 효험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자네 말만 들어도 몸이 가벼워지는 듯하네."
"아암(초의의 스승)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빈승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다산에 가서 사부님께 좋은 차를 달여 드리라고요."

초의는 마당으로 내려가 다로(茶爐)에다 불을 지폈다. 윤종모(尹鍾謨)가 옆에 와 말을 걸었다. 그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공재 윤두서의 혈손으로 약용이 다산초당에 든 이후 줄곧 약용의 가르침을 받아 왔던 터였다.

"스님, 다도(茶道)란 무엇입니까."
"차를 끓여서 마시는 것이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차를 탈 때 그 묘(妙)함을 다하고, 만들 때 정성을 다하며, 진실로 좋은 물을 얻어서, 중정(中正)으로 차를 달이며, 차의 체(體)가 되는 물과 물의 신(神)이 되는 차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차의 신기(神氣)가 건실(健實)하고 더불어 물이 신령(神靈)스러우면 이것이 다도(茶道)에 다 통하는 것이라네."

"그러면 중정은 무엇입니까."
"불은 보통 무화(武火)와 문화(文火)로 나뉘는데 센 불과 약한 불을 두고 한 말이네. 그 중간의 것을 중정이라고 하지."

이것이 초의의 다선일미사상이다. 초의는 조선의 다도를 중흥하였으며 노년에는 다선(茶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럼 다도란 차를 따고 만들 때부터 마실 때까지의 일관된 예법을 말함이군요."
"암, 한 가지도 소홀히 하면 도에 어긋나는 것이라네."
"전 또 숭늉 끓여 먹듯이 차만 끓여 마시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초의는 열심히 부채질을 하면서 스승에게 드릴 차를 끓였다. 김나는 모양과 끓는 소리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찻잔도 따뜻하게 데웠다.
"조물주가 한 아름다운 나무로 하여금 귤(橘)과 같은 성품을 지니게 하였고 그 타고난 천성으로 따뜻한 고장에서만 자랍니다. 무성한 이파리는 설한풍(雪寒風) 겨우내 푸르고, 흰 꽃은 서리에 씻겨서 가을 경치를 빛나게 합니다. 이렇게 귤이 나는 귤동에서 맑은 향기를 은은히 풍기는 고귀한 차를 마시니 이것이 신선이고 도(道)가 아니겠습니까." "하늘과 신선과 사람과 귀신이 모두 차를 아끼었다 하니 차의 됨됨이가 참으로 기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식경(食經)}에 이르기를 차를 오래도록 마시면 힘과 황홀한 뜻을 얻는다 하였사옵니다."
"땅 속의 귀신도 만금(萬金)으로 사례하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옛날 진무(陳務)라는 사람의 아내가 일찍 과부가 되어 두 아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차를 즐겨 마셨는데 마실 때마다 집 뜰 앞에 있는 무덤이 안쓰러워서 무덤에다 차를 한잔씩 올렸습니다. 두 아들은 어머니의 행동이 못마땅하여 간하였습니다. '어머니, 무덤에 무슨 영험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자꾸 이러시면 무덤을 파 버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어머니가 극구 말렸습니다. '어찌 귀신인들 차를 싫어하겠느냐. 혼자 먹기가 죄송하여 드리는 것이니 관여치 말아라.' 그날 밤에 진무의 아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한 남자가 나타나서 '내가 여기 묻힌 지 3백 년이 되었는데 부인의 도움으로 화를 면하였습니다. 좋은 차를 주셨으니 은공을 모르겠습니까.' 다음날 아침에 부인 뜰에 나가 보니 무덤 앞에 돈 10만 냥이 있었다고 합니다."

"흐흠, 귀신도 차의 귀중함을 알고 은혜를 갚은 거로군."
"뉘라서 사제간에 즐기는 진(眞), 색(色), 향(香)의 차 맛을 알겠사옵니까. 잡것이 한 번 스치면 그 진성(眞性)을 잃고 마옵니다."

또한, 이능화(李能和)는 그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차는 선(禪)'임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차는 물의 성현이다. 현미한 도와 청화의 덕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당나라 때 조주종심선사는 언제나 사람을 접하면 "차나 마시고 가게[끽다거(喫茶去)]"라고 말하였다. 이로부터 조주의 차는 세상에 성하게 칭송되면서, 차의 한길은 마침내 선(禪)에 속하게 되었다. 일본 다도 또한 선에 속하며, 이렇게 본다면 당나라 차의 종자는 아직도 절로 지리산에 번연(繁延)하고, 다도는 오로지 선가(禪家)에서만 알뿐이다.

다 인

·지장법사
지장법사(653~752) 신라 진덕여왕의 넷째 아들로 24살에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 들어가 성도하여 100세에 입적하였다. 중국의 차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는데, 당시 구화산에 심은 차를 공경차라고 했으며 맛이 특별하였다는 기록이 청나라의 다사(茶史)에 적혀 있다. 지장스님을 모시던 제자 도명이 구화산을 떠날 때 쓴 시가 아래와 같이 전한다.

- 산에서 내려오는 동자를 보내며 - 절이 적적하니 너는 집 생각 하누나 여기를 떠나 구화산을 내려가려나 네가 지난 날 대난간에서 죽마 타던 것을 그리워하여 금지에서 *금사를 모으는 데는 싫증이 났구나. 칠병 속의 시내에 달을 불러오는 것 그만두고 차 달여 잔 속에서 *꽃놀이하는 것도 그만두리 진리를 사랑하여 쓸데없이 눈물을 자주 흘리진 않으리 노승은 안개와 노을을 짝하리라.
금사 : 진리를 뜻함
꽃놀이 : 밀차의 차거품이 뜨고 없어지는 모양을 보고 즐기는 것을 말함

·최치원

최치원(857~894) 신라 말엽의 학자로 자는 고운이며 해동공자라 일컬었다. 13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많은 벼슬을 받았으며, 29세에 귀국하여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들을 지내다가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태수를 지냈다. 894년에 시무 10여조를 상소하였으며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하여 각지를 유람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모르나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그는 아마 신선이 되어 간 것일 게다"라고 하였다. 그가 당나라에서 벼슬할 때 차와 약을 사서 고국에 부치겠다는 편지가 전해지며 당시에 햇차를 받고 감사하는 글이 아래와 같이 전해진다. "선옹(선승)을 대접하거나 우객(신선)께 드려야 할 선황(신선들끼리 주로받는 선물)을 평범한 선비(최치원)가 받게 되어 감사하며, 차로써 갈증을 풀 수 있고 근심을 잊게 되었습니다."

·초의선사

초의스님은 조선후기의 대선사이자 한국 다도의 중흥조라고 할 수 있다. 초의 스님의 선사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후기의 불교가 선의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사조에 반해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고자 노력하셨다는 점이다. 스님은 언제나 제법불이(諸法不二)를 강조하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차와 선은 둘이 아니고,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와 선이 둘이 아니라고 하였고, 특히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에 심취하여 차를 통해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의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곤 하였다.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는 교유가 깊었으며, 추사와의 교유는 동갑내기로서 서로가 서로를 드높여 주는 남다른 사이였다..두사람의 교유를 보면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 초의스님이 당시 험난한 뱃길을 건너 세차례나 제자를 보내 추사에게 손수 법제한 차를 보내고 추사는 초의에게 글을 써보내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초의스님은 1856년 10월에 42년간 깊은 교유를 맺어오던 추사가 과천 청계산 아래서 유명을 달리하자, 그의 영전에 완당 김공제문(玩堂 金公祭文)을 지어 올리고 일지암에 돌아와 쓸쓸히 만년을 보냈다. 초의스님이 지은 차에 관한 책에는 茶神傳과 東茶頌이 있다. 다신전(茶神傳)은 순조 28년(1828)에 한국 차의 근원지인 화개동 칠불암 아자방(亞字房)에 계시면서 참선(參禪)하는 여가에 청(淸)나라의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백과전서 격인 ≪만보전서(萬寶全書)≫가운데 ≪다경채요(茶經採要)≫ 에서 다신전을 초록(抄錄)하고 시자인 수홍(修洪)의 청에 의해 1830년 일지암에서 이를 정서하였다고 한다. 동다송(東茶頌)은 다신전을 초록한지 약 10년 후에 정조의 사위인 해거도인 (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가 진도 부사인 변지화(卞持和)로 하여금 초의선사에게 茶道에 대해 물어와 그 청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다. 동다송은 초의선사가 스스로 "고인소전지의근술(古人所傳之意謹述)" 이라고 말했듯이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송(頌)마다 고인(故人)들의 여러 문헌과 시구(詩句)를 인용하고 주(註)를 달고 있다.  




·추사 김정희

김정희(1786~1856) 서화가이며 문신으로 호는 완당, 추사, 예당, 시암, 파파, 노과 외에 차를 무척 좋아하여 다로, 고정실주인, 승설차의 이름을 본 딴 승설학인 등이 있다. 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엮임하였고, 학문에서는 실학파에 속했으며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는데, 특히 예서와 행서에서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추사는 30살에 다산의 아들 유산의 소개로 동갑인 초의를 만나 특히 친교가 두터웠으며, 초의로 부터 해마다 차를 얻어 마셨다. 추사가 제주도에 귀양갔을 때 초의는 직접 찾아가 같이 지내며 차나무도 심고 참선도 하였다. 고요히 앉았노라니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구나 신비한 그 어느 때에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네 추사는 19세기 전반의 탁월한 실학사상가 이며, 금석학자 이고, 위대한 서예가 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추사를 다시금 보게 되는 이유는 그가 다인이었다는 것이다. 실상 그의 실사구시학 밑바탕에 차생활이 영위되고 있었고, 서도(書道)의 밑바닥에는 차도(茶道)가 깔려 있었으며, 참선(參禪)의 밑바닥에는 차선(茶禪)이 함께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사 역시 차시일관(茶詩一貫)이요, 차서일체(茶書一體)였으며, 또한 대흥사에 계시던 차선일치(茶禪一致)였던 것이다. 초의 스님과의 교류는 제주도 귀양살이를 할 때, 초의 스님이 죽로차(竹露茶)와 키우던 차나무를 보냈다고 한다. 추사는 그 차를 마시고 차나무를 기르며, 유배지에서의 울분을 누르고 서도에 정진하였다. 이 때 추사가 초의스님의 차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반야심경(般若心經)≫ 한 질(一帙)을 써서 보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추사는 일찍이 흉중(胸中)에 오천자가 있어야 비로서 하필(下筆)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속장(俗匠)의 마계(魔界)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흉중(胸中)에 청고(淸高)하고 고아(古雅)한 뜻이 없으면 예법(隸法)을 쓸 수 없고, 흉중(胸中)이 청고(淸高)하고 고아(古雅)한 뜻은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있지 아니하면 나타낼 수 없다."고 갈파하였거니와, 실로 추사의 소위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는 차도(茶道)·차선(茶禪)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사의 곁에는 늘 차가 있었고, 차로가 있었으며, 그의 글씨와 시구에도 늘 차가 있었다. 추사는 역시 지리산 화개동의 죽로차(를 제일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죽로차응 중국에서 제일가는 용정, 투강보다 질이 훨씬 나으며, 인도의 유마거사의 주방에도 죽로차 만큼 묘미 있는 차가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 밖에도 각지방의 차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누가 차를 선물해 오면 무엇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초의 스님으로부터 차선물을 가장 많이 받은 듯 하며, 추사는 초의 스님이 보내 준 차를 마시며 차선을 다듬고 탈진습기를 몸부림쳐 갈구하며 때로는 붓을 들어 대필로 '茗禪' 두자를 써서 존경하는 초의 스님에게 보내기도 했다. 추사는 차생활의 높은 구경을 이룩하며 차 속에서 서와 선과 화 및 실학을 더듬어 고행하고 힘써 정진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실학(實學)의 집대성자'이며, 조선후기 다인이었다. 다산은 1762년 남인에 속하는 관료학자 정재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산이 다인으로써 유명해진 것은 1800년을 전후로 하여 당시 반대파에 몰려 20년 가까운 귀양살이를 하면서 부터이고, 귀양지 중에서도 강진의 귤동 뒷산 즉 다산(茶山)이라는 山의 초당(艸堂)이 유명하다.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던 귤동 뒷산에는 차나무가 야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이 다산이 된 셈이고, 지리적으로 지리산 일맥(一脈)인 관계로 자연적으로 차나무가 번식된 것인지 그 이전에 귤동에 차를 사랑하는 선비가 있어 차나무를 옮겨 심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다산초당(茶山艸堂) 부근에는 차나무가 무수히 야생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산은 저술하는 틈틈이 이 차나무를 돌보고 재배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당 뒷 편 바위틈을 파서 약수터를 만들고, 그 이름을 약천(藥泉)이라고 했다. 또 초당 앞뜰에는 크고 널찍한 바위를 옮겨다 놓고, 그 바위에서 차를 끓였다. 그 바위 이름이 바로 차조(차 부뚜막)이며 그 앞으로 대나무가 무성하고 소나무 사이로 남해 바다가 건너 보인다고 한다. 다산은 아득한 하늘가 절역(絶域)에서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다"고 독백하였다. 아득한 절역에 홀로 서 있는 다산은 차로써 그 고독을 이길 수 있었다. 다산에서 나는 차와 약천의 간석수를 차조 위에서 끓여 마사면서 "시원하기 마치 안개를 머금는 듯 하다"고 했다. 다산의 저술 중 실학에 관계된 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했지만 많은 시문과 차시도 발견되어진다. 초의 스님과는 초의 스님이 23세 때 다산과 교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다산의 차 생활은 차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순(純)하고 고요한 음료에서 흘러나오는 천둥, 번개 소리가 삼국시대 신라의 화랑정신으로 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실학의 집대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차와 실학의 일체화를 볼 수 있다.


차와 풍류(風流)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 고운(孤雲) 선생은 그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교(敎)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하는 것이다. 들어 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 : 공자)의 뜻과 같은 것이요, 무위(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교(敎)를 행함은 주주사(周柱史 : 노자)의 종지(宗旨)와 같은 것이요. 악(惡)한 일은 하지 않고 선(善)한 일은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 석가)의 교화(敎化)와 같은 것이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塋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물론 도올 김용옥은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난랑비서}에 나와 있는 풍류(風流)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 노래 춤 등으로 멋지게 노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현묘지도(玄妙之道)와 신도(神道)의 동음이의어임을 주장하였다.

이규보(1168-1235) 선생은 6척의 조그만 정자의 네기둥에 바퀴를 달아 밀고 다니며, 산수 좋은 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시회를 열고 술마시며 거문고 타고, 차 끓이는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의 {사륜정기}에 의하면 그저 놀고먹자는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륜정기(四輪亭記)

바퀴를 넷으로 한 것은 네 계절을 상징한 것이고 정자를 6척으로 한 것은 육기(六氣)를 상징한 것이다. 두 대들보와 네 기둥을 마련한 것은 임금을 보필하여 정사를 도와 사방의 기둥이 된다는 뜻이다.
멋과 차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석용운은 {한국다예(韓國茶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멋이란 인간의 사고(思考)와 언행이 이상(理想)의 경지에 이르러 있고 품위가 있고 운치가 있어 속되지 않고 사려 깊은 것을 말한다. 멋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재화를 들여 멋있게 살고 싶어 가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고상한 취미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이 맨 처음 움직이면 배고픔을 면하는 일이요, 그 다음은 안일과 행복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많은 취미 생활을 만들어 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차(茶)생활이다. 이러한 차생활은 인간들의 정서 생활에 많은 이로움을 주었고 또 인간들의 정신 영역을 한없이 넓혀 주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사색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은 무한한 세계를 개척했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자기 완성을 통해서 영원히 사는 비법을 터득했고 또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우주의 일부분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고 정신적 자기 구현을 통해 두려움 없는 마음의 편안을 얻은 것이다. 태초부터 청정한 이 마음에는 한 점 바람도 일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의 폭풍을 맞고 서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처럼 길을 잃은 인간들이 차 한잔의 여백을 통해서 진실을 밝히고 자기의 잃어버린 진면목(眞面目)을 찾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다인(茶人)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화묵객(書畵墨客)들이나 시객(詩客)들이 명승지를 찾아 즐기고[풍류(風流)], 불승(佛僧)들이 자연 속에 묻혀 백운과 청산을 마주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이 다 뜻이 있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었다. 그래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나 명승지에는 으례히 자그마한 정자(亭子)를 세우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뜻이 있는 선비들과 끽다(喫茶) 음주(飮酒)로 함께 즐기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웠다. 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집안에 정원과 연지(蓮池)를 만들고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축대를 쌓고 누대(樓臺)를 만들어 좋은 벗을 청해 다주시화(茶酒詩畵)로 정신적 편안과 육체적 안락을 함께 도모하였으니 이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요,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풍미이다. 이러한 멋의 생활이 차의 생활이요, 이를 얻고자 하는 정신이 차의 정신이다.


차 와 술

중국의 의적(儀狄)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어 우왕(禹王)에게 바쳤다.



옛날, 죽어 가는 아버지를 위한 처방이 하루에 세 사람의 간을 얻어 누룩에 버물러 두었다가 그 즙, 즉 술을 먹이라는 것이었다. 효심이 깊은 이 사람은 활을 메고 산 속의 오솔길에서 숨어 기다렸다. 첫 번째 사람은 글공부하던 선비였고, 두 번째 사람은 소복입은 청상과부이었으나 세 번째 사람이 영 나타나지 않고 해는 기울자, 저자의 거리로 내려왔다. 처음 만난 것이 원숭이였지만 급한 김에 시위를 당겨 아버지께 약, 즉 술을 해 드렸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삶에 대해 진지해지다가, 좀 지나면, 애교스럽게 변하고, 마지막에는 원숭이같이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왕자 달마(達磨)는 중국 소림굴(小林窟)에서 9년 면벽 후 선조(禪祖)가 된다. 신광(神光)이 찾아와 제자 되길 청하나 거절하자, 밤사이 허리까지 눈이 차도록 움직이지 않으며 왼팔을 잘라 바쳤다. 드디어 입실(入室)을 허락 받았는데 이 이가 선종(禪宗)의 2조가 된 혜가(慧可)이다. 달마(達磨)가 정진(精進) 중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수마(睡魔)였다. 잠을 쫓기 위해 눈까풀을 떼어 뜰에 던졌는데 그 곳에서 나무가 자랐다. 이것이 차나무였다.
이상은 술과 차의 전설이다. 하느님은 물을 만드셨고 사람은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차도 마찬가지다. 차와 술은 가장 문화적(文化的)인 물이며, 물의 정수(精髓)이고, 사람의 물이다. 술에는 청상과부의 애잔한 슬픔도, 사냥꾼의 혈기 방장함도 미친개의 광기(狂氣)도 함께 있다. 차에는 눈까풀을 잘라 낸, 벽을 뚫을 것 같은 달마의 안광(眼光)이, 팔을 자르는 정진(精進)의 아픔이 있다.
술에는 화기애애한 즐거움과 방만함, 시끌덤벙한 소란과 이완, 그리고 흐려지는 눈이 있지만, 차(茶)에는 조용함과 정진(精進)을 위한 자기 성찰(省察)의 긴장이 있고, 오관(五官)을 통해 내밀하게 퍼지는 즐거움과 맑아지는 눈이 있다. 차와 술은 인간의 영원한 사랑의 물이면서도 상반성의 물이다. 어떤 중국인은 "대호차당(大好茶黨)은 술에 옴쭉도 못하고 대주호(大酒豪)는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

설총은 원효대사의 아들로 신문왕의 분부에 따라 [화왕계(花王戒)]를 들려 드렸다.

왕은 모란, 충신은 할미꽃, 간신은 장미에 견주어 왕도(王道)를 설했는데, 할미꽃이 왕인 모란에게 "비록 좌우의 공급이 넉넉하여 기름진 고기와 좋은 곡식의 밥으로 창자를 채운다 할지라도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해야 하옵고 "라고 아뢰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차와 술은 함께 마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시

선생의 시를 보면 차와 술은 불이(不二) 즉 같은 것이다.

술이 얼근하매 낮잠이 달콤하니
어이 차 달여 부질없이 물 허비할 손가
만취한 얼굴에 찬물 뿌린 듯하여라
차 대하여 술 찾음이 미치광이 같으니
차 들고 술 마시며 평생을 보내면서
오락가락하며 풍류(風流)놀이 시작해 보세

이규보는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도 술의 해독에서 벗어나려고 차를 즐겨 마신 다인(茶人)이었다는 것을 다음 시에서 잘 알 수 있다.

엄스님을 찾아서
내가 이제 산집을 찾는 것이
술마시기가 본래의 뜻이 아니건만
올 때마다 마실 자리 베푸니
얼굴이 두꺼운들 어찌 땀이 나지 않겠소
스님의 인격이 진실로 높은 것은
오직 이 차를 마시기 때문이라네
곧잘 몽정차로서
혜산의 물로 달여
한 사발에 문득 한마디
점점 심오한 도의 내용으로 들어가네
이 즐거움 진실로 맑은 이야기인데
하필이면 어지럽게 취할까 보냐

차 유적지

일지암 / 다산초당/ 백련암 / 송광사 / 다솔사 / 통도사 / 칠불암

일지암은 전남 해남군 두륜산 대흥사의 다정(茶亭)이다.초의가 오랜 세월을 묻혀 살며 이곳에서 차생활을 즐겼다. 두륜산 꼭대기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한 곳에 지은 일지암은 두칸 정도의 초가이고, 뜰에 가득 꽃을 심고 뜰 복판에는 연못이 있고, 추녀 밑에는 크고 작은 석조를 마련해둔 아름다운 차정원이다.

다산초당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에 위치하며 정약용이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10여년 세월을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에 위치하고 있는 송광사는 삼보사찰(三寶寺刹)중 승보사찰(僧寶宗刹)로 불리우는 유서 깊은 절입니다. 송광사는 고려시대 때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불일보조국사지눌(佛日普照國師知訥)스님께서 주석하신 정혜결사도량이다.


지눌스님 이래 송광사에서는 16분의 국사스님을 배출하였고, 조선시대로 들어와 서산(西山)스님과 쌍벽을 이룬 부휴 선수(浮休善修)스님에 의해 승보사찰의 전통을 이어왔다. 근래에는 효봉(曉峰), 구산(九山)스님이 그 전통을 이어와 한국정신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도량이다. 이곳 스님들은 송광사 경내의 향나무림속 에서 자란 차나무로 차를 만들어 마시는데 이 차를 죽로차라고 한다.

다솔사는 경남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찰 뒤에 넓은 야생 차밭이 있다. 이곳은 근대 차 문화 운동의 기수로 존경받는 효당 최범술 스님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통도사는 경남 양산에 위치한다. 대웅전 서편에는 구룡지가 있으며, 이 못의 크기는 약 4-5평의 타원형으로 그 위에 돌다리가 놓여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문수보살상 앞에서 부지런히 참회 정진했더니 문수보살이 범승 (梵僧 -인도의 승려)으로 화하여 나타나 부처님이 친히 입으셨던 가사와 진신사리 등의 유물을 주면서"신라의 남쪽 축서산 아래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용이 독을 품어 사람을 괴롭히니 그대가 그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이것을 봉안하면 삼재(三災), 즉 물, 바람, 불의 재앙이 들지 않는다" 고 일러 주었다.
그 후 귀국한 자장율사는 이곳 축서산 아래 구룡 신지에 이르러 구룡의 항복을 받아 물리치고 못을 메워 대가람을 건설하였다. 구룡 가운데 다섯 용은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의 용은 삼동곡(三洞谷)으로 갔다. 오직 한 마리 용이 가람을 수호할 서원을 세우고 남아 있기를 원하므로 조그만 못을 파고 머무르게 했다고 한다. 이 못이 지금의 구룡지이다. 수심은 비록 한길도 되지 못하지만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통도사 금강계단 안의 차나무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가락국의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차나무 씨앗을 가져왔는데 김해 일대와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김수로왕과 허 황후의 열 왕자 가운데에 일곱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을 가진한 칠불암. 초의선사가 이곳에서 "다신전"을 완성한곳이기에 더욱덕 유명하다.


차 성분 및 기능

1. 카테킨류의 기능
차의 주성분인 카테킨류는 성인병 예방과 암 예방에 관계한다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입증되었고, 후천성 면역 결핍증 바이러스와 충치 세규에 대해서도 강한 살균능력을 가지고 있는 성분이기도 하다. 충치예방 치약이나 소취제와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2. 카페인의 기능
커피에 있는 카페인은 폴리페놀 주성분이 클로르겐산으로 차 속에 있는 카테킨이나 데아닌 성분이 없기 때문에 체내에 바로 흡수되면서 강한 카페인의 활성과 함께 동맥경화나 심장질환을 일어키는데 반해 녹차의 카페인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카테킨과 같이 작용하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3. 항당뇨성 다당류
일본의 미쯔이노린연구소의 하라 등은 자연발증 당뇨병 쥐에 카테킨착제 0.5% 첨가사료를 투여한 실험에서 카테킨이 혈당 상승 억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4. 항산화성 비타민
녹차 8~10잔 정도면 1일 필요한 비타민 C의 소요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

5. 감마-아미노부틸릭산
가벼운 증상의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 양호한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도 개발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6. 사포닌
차에서 쓴 맛과 강한 떫은 맛이 있어 차의 품질에 영향을 주는 성분인데, 동물실험에서 항암 및 항염증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 미네랄과 기타
미네랄과 미량원소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노화예방, 항암효과, 성인병 예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차의 효능
1. 차의 암발생 억제 효과
현대의 새로운 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환경호르몬피해를 막아준다. 남성에게는 정자 수 감소를 막아주고, 여성에게는 호르몬 증가를 억제시켜줘서 유방암을 억제시켜준다.
홍차와 녹차 등이 구강암, 소화기관의 암, 폐 암, 결장암을 예방하는 한편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지고 있으며, 또 차는 과일과 야채에 들어있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항산화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 콜레스테롤 제거 효과
녹차 잎에서 추출한 조카테킨과 EGCg는 콜레스테롤 함유식을 투여한 쥐의 혈장 및 간장 콜레스테롤의 상승을 강하게 억제시키고, 대변으로 체외 배출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러한 콜레스테롤 강하작용은 소화기간 내에서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저해시키는데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 동맥경화 억제작용

1) 강압작용
2) 혈중 및 간장지질 저하작용
3) 과산화지질 저하작용
4) 동맥지질 저하작용

4. 차의 혈압상승 억제 효과
차 속의 카테킨 성분이 혈압상승 억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고가바(GABA)차에도 혈압상승을 억제하는 성분이 있다.


5. 차 성분의 혈소판 응집 억제 작용
차 침출액(EGCg, C, EC 등 카테킨)과 차잎 성분(데아플라빈류, 데아플라빈모노갈레이트)이 혈소판 응집 억제작용을 한다.

6. 식중독 예방 효과
차의 항균 성분에 의해 살모넬라균, 장염비브리오균, 웰치균, 보투리너스균, 포도상구균은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여름철에 차 한잔은 식중독을 예방한다.

7. 콜레라 예방 효과
일본 소와대학 의학부의 시아무라 교수(세균학) 등은 차의 성분 중에는 티푸스, 적리균, 콜레라균, 장염비브리오균 등과 같은 병원성 세균에 대한 강한 살균 작용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8. 충치 예방 효과
1) 치아 표면의 불소 코팅 효과
2) 치석형성의 억제
3) Glucosyl transferase 활성의 억제
4) 충치 세균에 대한 살균 작용

9. 기타효과
항산화 작용, 노화 억제 효과, 중금속 제거 효과, 항당뇨 효과, 지방간의 예방, 다이어트 효과, 항알레르기 효과, 에이즈 바이러스 역전사 효소에 대한 억제 효과, 담배의 해독효과, 구취 및 냄새 제거 효과, 차 향기 성분의 기능성, 알칼리성 체질개선 효과, 염증 치료 효과, 기억력 및 판단력 증진, 피부 미용 효과, 면역력 증강, 스트레스 해소, 변비 개선 효과, 카페인의 생리 작용, 데아닌의 생리 작용, 방사능 해독 작용 등이 있다.




차의 보존관리

1. 차의 흡착성(吸着性)
송나라 채양의 「茶錄」중 藏茶조에는 "차는 대껍질과 상화(相和)하고 향이나 약 냄새를 싫어한다. 또 따뜻하고 건조한 곳을 좋아하며 축축하고 차가운 곳을 꺼린다." 고 하였고 명나라 허차서(許次舒)의 「茶疏」중 置頓 조에는 " 차는 습기를 싫어하고 건조를 좋아한다. 차가운 곳을 싫어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또 찌는 듯이 덥고 답답한 곳을 꺼리고 맑고 서늘한 곳을 좋아한다." 고 하였다.

찻잎을 자른 조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매우 두터운 층의 해면조직(海綿組織)이 보이는데 이는 상하의 표피세포를 지탱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강력한 흡수작용과 보수(保水)작용을 하는 물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화학적인 분석결과에 따르면 차에는 특히 물과 친하기 쉬운 성분인 당류, 포리훼놀류, 단백질, 팩틴, 고분자의 종려산과 텔패노이드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마치 해면(海綿)이 물을 흡수하듯이 다른 냄새, 맛, 수분 등 공기중의 기체화된 어떤 것이든 빨아들이는 매우 강한 흡착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담배, 기름, 화장품, 약품, 세제, 소금에 절인 물고기나 짐승의 고기, 장농의 옷 등 어떤 냄새가 나는 곳의 곁에라도 보관하면 이내 흡수하여 차의 품질을 금방 버려 놓게 된다. 차에 용뇌(龍腦)나 사향(麝香) 등을 섞던 북송의 제다법이나 차에 꽃향기를 배게하여 화차(花茶)를 만든 남송의 제다법도 모두 차의 흡착성을 활용한 것이었다.

2. 차의 변질 및 원인
대게 보관의 부주의로 차가 변질이 되면 클롤로필, 카테킨류, 지질(脂質), 아스코르빈산(비타민c) 등의 산화로 인해 색택(色澤), 수색(水色), 향미의 변화와 아스코르빈산의 감소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변질의 주요인자로는 대략 수분함량, 저장온도, 산소, 광선 등의 영향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1) 수분 : 밀봉건조 된 상태의 차는 화학반응이 억제되고 질과 양 모두가 비교적 안정된다. 그러나 차 속의 수분함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차의 색, 향, 미, 영양소(아스코르빈산)등 모두가 감소된다.
일반적으로 수분함량이 3% 정도일 때가 가장 장기저장에 알맞으며 1% 이하일 때는 품질이 빠르게 저하된다. 또 5-6% 이상이 되면 급속한 변질이 되기 때문에 안정된 건조상태의 보존이 필수적이다.

2) 온도 : 차의 변질은 그 내용성분의 산화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많으므로 산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저온저장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말차나 고급녹차일수록 저온저장이 요구되며 보이차와 같은 발효차는 상온저장(상대습도 50-60°이상의 통풍이 잘되는 곳)도 가능하다.

3) 산소 : 공기 중에는 약 21 의 산소가 있는데 산소의 의학적인 성질은 매우 활발해서 대부분 화학원소와 반응하여 강력하지는 않지만 산화물을 형성한다. 차에 대해서도 또한 완만한 산화를 일으키므로 인위적인 수단으로 무산소의 조건(窒素充塡等)에서 저장한다면 자동적인 산화를 완전 억제하여 차의 품질을 장기간 변질시키지 않을 수 있다.

4) 광선 : 광선은 식물색소의 산화변색을 촉진하는 외에 차 속의 어떤 물질의 광화반응(光化反應)을 발생시켜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이상한 맛이 나게 한다. 따라서 차를 저장할 때는 광선에 노출되는 유리제품의 그릇들은 피해야 하며 서늘한 그늘에 두도록 한다.

< 차 보관의 원칙 >

차의 변질을 방지하고 장기저장을 위한 최적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다 할 때 차의 수분함량을 3 선으로 건조시키고 그 상태로 저장이 되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 적정 환경의 온도는 평균 0-5°정도이며 공기접촉을 되도록 줄일 수 있는 조치와 광선의 침해를 피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방습성이 높은 플라스틱 필름이나 알루미늄박으로 만든 봉지나 상자에 담아두면 상온에서 2-3개월 정도 저장이 가능하다. 차 전용의 냉장고에서는 상대습도 55-65 와 적정온도 0-5。C의 조건하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저장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이밖에 제다 판매업소 등에는 질소가스충전, 진공포장 등이 응용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소량 저장방법은 차 저장통으로 도자기단지, 나무통, 함석통, 아연주석통 등이 있는데 도자기단지는 뚜껑이 꼭 맞지 않는 결점이 있으나 석회주머니를 넣고 그 위에 한지종이나 깨끗한 비닐봉지에 차를 넣어 단지에 채운 뒤 코르크마개나 솜으로 덮어 밀봉한다. 나무통은 나무에 따라 냄새가 베일 염려가 있고 습기를 막는데도 약한 결점이 있다. 역시 함석통이나 주석통에 종이에 싼 차를 넣어 뚜껑을 꼭 맞게 덮은 다음 건조하고 서늘하며 깨끗한 곳에 보관하는 방법이 제일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리고 개봉한 차는 가급적 빨리 먹는 것이 좋으며 반드시 밀봉해 두는 것을 염두에 두도록 한다. 냉장고에 넣어 둘 때는 다른 식품과 함께 넣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차의 이용


①차 찌꺼기의 비료 효과

차를 우리고 난 찌꺼기는 그냥 버리기 쉬운데 찻잎 찌꺼기 여러 가지로 이용 가치가 있다. 이 찻잎 찌꺼기 중에는 단백질이 있지만 아미노산 이외의 성분은 물에 녹지 않고 잎 중에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차 찌꺼기를 관상수나 화분에 주면 질소비료 대용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 고급 화분에는 이 찌꺼기를 오래 삶아서 식힌 다음 물을 뿌려 주어도 비료가 된다.

②차의 목욕
목면 자루 속에 엽차를 넣어서 묶은 다음 목욕할 때 욕조 물 속에 넣고 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노폐물 배출이 잘되며, 비타민C가 풍부하여
손이 튼 것도 낫는다. 또한 방향유도 함유되어 있으므로 차 자루로 얼굴을 맛사지하면 매우 반들반들해진다.

③무좀치료
무좀증세가 나타나면 차를 진하게 끓인 뒤 적셔서 환부에 붙여 두거나 세숫대야에 차 끓인 물을 넣고 발을 담그면 찻잎 중의 폴리폐놀 성분에 의한 수렴작용에 의해 환부가 건조하게 되고, 살균 작용에 의해 무좀균의 증식을 막게 된다.

④악취 제거
화장실 냄새가 심하거나 냉장고 냄새가 많이 날 때는 찻잎 찌꺼기를 말려 두었다가 사용하면 소취효과가 뛰어나 냄새제거에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⑤머리 감을 때
찻잎 찌꺼기나 찻잎을 헝겊 주머니에 넣어 머리를 감을 때 미리 우려낸 물로 헹구면 머리털이 부드러워지고 비듬이 적어진다.

⑥입 냄새 제거
차에는 강한 수렴성이 있어 구취제거에 큰 몫을 한다. 향이 짙은 음식을 먹은 후 찻잎을 씹어주면 4~5분내에 냄새가 없어진다.

⑦신발냄새 제거
신발에서 늘 냄새가 날 경우 찻잎을 싸서 신발바닥에 깔면 냄새가 사라진다. 미리 예방하기 위해 깔아두는 것도 좋다

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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