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서예의 가치관
라이브 서예의 가치관
도정 2007.02.11 14:49
라이브 서예의 가치관
권상호(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 교수)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다녀왔다. 1947년 파리 오페라의 발레마스터로 재직했던 조지 발란신이 조르주 비제의 ‘교향곡 제1번 C장조’에 맞추어 안무한 작품
학문과 예술의 가치는 실천과 공유에 있다고 본다. 조형 예술의 한 영역인 서예도 이 범주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라이브 서예’란 필자가 새로 만든 용어로, 라이브 콘서트 또는 라이브 쇼라는 말에서 보듯이 공공장소에서 실제 붓글씨를 써 보임으로써 서예가와 관중이 함께 즐기는 서예의 한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서예의 실천과 공유적인 면에서 붙인 말이다.
굳이 한자어로 이름 붙인다면 휘호(揮毫), 낙서(樂書) 또는 생서(生書)라고 할 수 있다. 붓을 마음먹은 대로 휘두르며 글씨를 쓴다는 의미에서는 휘호(揮毫)이고, 글씨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낙서(樂書)이고, 글씨를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본다면 생서(生書)라 할 수 있다. 사실 표구를 잘 하여 벽에 걸어 둔 멋진 글씨를 보는 것도 감흥을 주지만 점획을 긋는 매순간 손끝에 와 닿는 변화무쌍한 느낌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발 감각도 아마 서예가들의 손 감각과 상통하리가 생각한다.
서예의 출발은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서 문자언어로서 출발한 실용적 목적에 있었다. 그러나 인쇄술과 워드프로세서의 발달로 말미암아 서예의 실용적인 가치는 점차 줄어들고, 시각의 대상으로서 먹물이란 재료를 써서 화선지라는 공간에 이루어지는 예술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건축이나 의류 등도 처음에는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하였지만 오늘날은 이들도 예술의 한 영역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구나 모든 생활 용품이 기능도 중요하지만 디자인 개념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 실용과 예술의 경계가 없어진 느낌도 든다. 실용과 예술은 둘이 아니므로 실예불이(實藝不二)라 할 수 있다. 인간적인 면에서 풀이하자면 생활과 예술도 둘이 아니다. 삶의 예술화라는 말보다 삶 자체가 예술이어야 한다. 생예불이(生藝不二)라고나 할까.
라이브 서예도 따지고 보면 일찍이 존재했었다. 천하제일의 행서로 꼽히는 서성 왕희지의 '난정서'가 그 좋은 예이다. 난정서는 왕희지가 영화 9년(353년) 음력 3월 초에 많은 선비 및 청장년과 더불어 난정에서 모임을 갖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면서 잠견지(蠶繭紙) 위에다 서수필(鼠鬚筆)로 단숨에 써내려간 324자의 라이브 서예의 명작이다. 당나라 서예가 장욱(張旭)은 술을 좋아해 취하면 미친 듯이 붓을 잡았으며,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기도 했으니 실로 라이브 서예의 대가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김정희나 대원군 이하응 등도 라이브 서예의 대가들이다. 선비들이 모여 여흥을 즐기던 장소인 정자나 사랑방의 서예 행위가 모두 라이브 서예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정자와 사랑방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따라서 라이브 서예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청소년들이 성장과정에서 붓글씨 쓰는 장면을 접할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단지 박물관이나 거실에 걸린 박재된 서예만 무심히 접할 따름이다. 까만 먹물을 듬뿍 찍은 붓으로 하얀 화선지 위에 점과 선을 교차시켜 가면서 즉흥적으로 창출해 내는 새로운 질서와 아름다움을 접해 보거나 체험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아름답고 품위 있는 정상의 서예문화, 사라져가는 선비문화를 되살리는 길은 라이브 서예에 있다. 실제로 필자는 라이브 서예 활동을 통하여 주위로부터 많은 호응 얻고 있다. 서예에 나타나는 예술적 매력을 관중이 보고 느끼고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점과 선의 끝없는 변화가 주는 멜로디감, 필압(筆壓)의 강약(强弱)이 주는 리듬감, 운필(運筆)의 속도 변화에서 오는 율동감, 먹의 농담에서 오는 신비감, 문자 상호간의 비례와 균형에서 오는 긴장감 등, 서예는 진정 인간의 영혼과 신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절묘한 조형미를 자아낼 때 그 절정에 이른다.
일을 할 때는 일을 붙잡고, 여가를 만들어서는 붓을 붙잡자. 붓 잡고 붓 운전을 해 보자. 운필(運筆)의 핵심은 기운생동(氣運生動)이다. 기운이 살아 움직이는 심획(心劃)을 긋기 위해서 골방을 박차고 대중 앞에 나아가 라이브 서예를 즐기자.
blog.daum.net/ksh-1715/9547003 말과 글로 푸는 인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