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20. 고려시대 ⑧
무신정권이 최씨 집권 시대로 넘어오면서 차츰 안정되자 중국과의 교역이 회복되고 문물교류가 확대되었다. 이 시기는 유불(儒佛)이 상호 교유하여 차문화가 발전한 때라 하겠다. 이규보를 위시해 최자, 이진, 김지대 등의 선비 차인과 진정국사, 원감국사, 보각국사, 혜감국사, 정명국사 등의 대덕 차인이 차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은 국가에서만 관리하던 차 생산이 민간에도 허용됐다. 정권의 교체기라 차에 관한 열의가 조금은 약해졌지만 많은 차인들의 시문을 남겼고 심안 노인의 <다구도찬> 같은 책도 나왔다. 일본은 영서(榮西) 스님이 송을 왕래하며 차씨를 가져다 심고 거리에 다점(茶店)도 생겼다. 또한 영서 스님의 <끽다양생기>와 도원의 <영평청규> 등이 출간되는 등 차문화가 이론적 바탕과 체계를 갖추려는 시기다.
<한국> 1193 <동명왕편>(이규보) 1196 최충헌의 집권 1206 진정국사 출생 ① @최자의 활동 ② 1221 송상(宋商) 115명이 오다 1225 토목공사 중지 1226 원감국사 출생 ③ @ 일연 스님 ④ 1224 이진과 혜감 ⑤ 1248 천인의 타계 ⑥ 1254 선원청규 ⑦ 1266 김지대의 죽음 ⑧
<중국> 1190 장종의 활동 ⑨ 1198 송다(宋茶) 수입제한 1205 차를 민간에서 만듦 @ 다상군(茶商軍) ⑩ 1234 금의 멸망 1246 도륭의 도일 ⑪ @ 조맹부 ⑫ 1269 다구도찬 ⑬
<일본> 1191 영서 스님 ⑭ 1192 염창막부 개설 1196 다점(茶店)이 있었다 1202 건인사 건립 ⑮ 1211 끽다양생기 @ 도원의 영평청규 16
① 진정국사는 문경 사람으로 예부시(禮部試)에 합격했으나 백련사로 출가했다. 백련사 결사문을 짓고 주지로 있으면 차를 즐기고 <호산록> 등의 저술과 다시를 남겼다. ② 최자는 이규보의 추천으로 벼슬길이 트여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요직을 거쳤다. <보한집(補閑集)>과 다시를 남겼고 천책과는 다우였다. ③ 원감국사는 조계 6세를 지낸 다승으로 많은 다시와 다게(茶偈)를 남겼다. ④ 보조국사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했으며 그 안에 차 이야기가 나온다. ⑤ 이진은 검교첨의 정승으로 임해군에 봉해졌다. 수선사의 혜감국사와 교분이 두터워 차로서 정을 받고 다시로 마음을 담아 보낸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혜감국사 만항은 해마다 이진에게 차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⑥ 청명국사 천인은 만덕산 원묘국사에게서 출가했다. 후에 혜심에게 조계의 요체를 전수받았다. 차를 많이 마셨따. ⑦ 선원청규는 중국 백장회해의 ‘백장청규’를 바탕으로 쓴 사원의 청규로서 후에 불가의 헌다의식에 중요한 전적(典籍)이 된다. ⑧ 김지대는 무신으로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른 차인이다. ‘유가사’의 구절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한다. ⑨ 금의 장종은 차에 관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송차를 적게 수입하고 자국의 생산을 늘이려 애썼다. 7품 이하의 사람들은 차를 마시지 못하게 했다. ⑩ 남송의 다상들로 편성된 다상군이라는 의용군은 금의 남하를 저지했다. ⑪ 도륭은 제자들과 도일해 건장사를 창건하고 일본 선종체계를 확립했다. ⑫ 조맹부는 원대 서화가로 송설체를 창안했다. 차를 즐겨 그가 그린 ‘투다도(鬪茶圖)’가 유명하다. ⑬ <다구도찬>은 심안노인이 점다법에 필요한 다구 12종에 그 역할과찬을 붙인 다서다. ⑭ 영서선사는 1168년과 1187년 송에 유학하고 차씨를 가져다 심었다. 고산사 명혜상인에게 차씨를 보내 도가노차의 시원이 됐다. 그의 <끽다양생기>는 일본 다학의 근거가 된다. ⑮ 영서가 건립한 건인사를 중심으로 천태, 선, 밀종의 융합을 주장했다. ⑮-1 백장청규에서 선원청규가 생겼는데 도원이 그것을 근거로 영평청규를 만들어 일본 사찰의 규범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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