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고분 출토 '다리미'는 이동식 화로
신라고분 출토 '다리미'는 이동식 화로 유물유적
신라고분 출토 '다리미'는 이동식 화로
황남대총 출토 다리미
백제 무령왕릉 출토 다리미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열도의 고대 유적에서 다리미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다리미는 옷이나 피륙의 구겨진 주름살을 펴는 데 사용되는 기구이다. 한자어로는 ‘울두(複斗)‘ ,'위두'(위<尉 밑에 火>斗) 또는 ‘화두(火斗)‘라고 한다. 조선 헌종 때의 실학자인 오주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무(怯沐)는 속명으로 다리우리라고 하며, 불붙은 숯을 넣고 옷감을 펴는 것"이라 하여, 고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다리우리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는 쇠붙이로 연엽(蓮葉)대접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밑이 반반하고 자루가 달려 있으며, 안에는 숯불을 담아 달구었다. 이렇게 다리미는 예로부터 옷을 다리기 위해 인두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다.
그동안 신라고분인 천마총과 백제고분인 무령왕릉 등에서 출토된 것들이 다리미와 모양이 흡사해 다리미 이외의 기능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는 실정이었다. 청동다리미와 자루솥 출토장면-경주 황오리 16호분 제2곽 (자루솥 밑에 다리미가 놓여 있다)
하지만 고고학 전공자인 이한상 동양대 교수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유적, 그 중에서도 신라 고분에서 집중 출토되고 있는 소위 '다리미' 유물 출토 상황을 분석해 본 결과 기존 학설과 다른 결론을 도출해 냈다. 지금까지 출토된 다리미, 특히 무덤에서 출토되는 '다리미'라는 유물은 옷을 다리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솥을 데우기 위한 이동식 화로(火爐)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하였다. 즉, 그것의 기능은 '다리미'라기보다 세 발 달린 철솥이나 청동솥 밑에 숯불 등을 담아서 음식을 데우거나 끓이는데 사용된 '이동식 화로'라는 것이다 다리미와 청동자루솥의 사용(포토샵으로 구성)
이 교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삼국시대 '다리미' 출토품은 모두 19점에 달한다. 이 중 무령왕릉 왕비의 발 쪽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다리미를 제외한 나머지 18점이 모두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지방에서는 경산 임당동 EⅡ-1호묘와 같은 지역 EⅡ-3호묘와 창녕 계동(桂洞) 7호분이 있다. 다리미와 청동솥의 사용(포토샵으로 구성)
이 교수는 이들 다리미 용도가 이동식 화로용이었다는 결정적인 근거를 경주 황오리 16호분 제2곽에서 출토된 상황에서 포착했다고 한다.
토기로 만든 다리미 이교수의 이런 주장은 흔히 여성 전용으로 생각되는 소위 '다리미' 유물이 한.중.일을 통틀어 여성 무덤뿐 아니라 남성 무덤이 확실하거나 그렇게 추정되는 무덤에서도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새로운 학설로 평가된다.
일본고분 출토 다리미 중 무령왕릉 출토 다리미와 구조가 가장 유사한 것이 있다. 원반형(圓盤形) 화혈부(火血部)는 경사지게 처리하여 6조의 음각선을 돌리고 있다. 긴 손잡이의 상면은 평면으로 처리하였으나, 하면은 반원형으로 처리하여 힘을 받게 하였다. 일본 학계는 다까이다야마 고분을 5세기 말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청동자루솥(초두)
무령왕릉 출토 청동자루솥
청동세발솥 5세기, 황남대총
청동자루솥(청동초두)은 다리 세 개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용도는 주로 액체를 데우거나 끓이는데 사용되며, 자루솥[鐎斗]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루솥은 중국의 경우 한대(漢代)에 등장하여 남북조시대에 성행하였다.
경주 금관총 출토 자루솥
그 중 금관총에서 출토된 청동자루솥은 조형적인 미가 가장 돋보인다. 이 청동자루솥에는 총 3마리의 용이 있는데, 물이 나오는 주둥이와 손잡이 양쪽 끝에는 각각 용머리로 장식하였습니다. 특히 손잡이의 끝에 달린 용머리는 꽃잎을 물고 있는 듯하다. 또한 뚜껑 윗부분의 방형의 테두리내에 구멍흔적이 있고 안쪽에 못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꼭지가 달려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cafe.daum.net/kphpi21/G16B/392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