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암자순례 12부작] 6 ~ 10부 두륜산 북미륵암 ~ 선운산 도솔암 外
바닷게 기운 누르는 마애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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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는 인간이 어떻게 저런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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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 맴섬 형제바위 형제바위를 감돌고 있는 농무는 보길도로 가는 배를 잡고 있다 | |
ⓒ 김정봉 |
땅끝서 만나는 하늘 끝 도솔암
땅끝에서 미황사 쪽으로 가다가 대죽리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늘로 가는 외길인 듯 가는 길이 아찔하다. 몇 굽이 돌아가면 차 서너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여기부터 도솔암까지는 800m, 20분 정도 소요된다. 산책하듯 쉬엄쉬엄 갈 수 있는 곳이다. 하늘 끝에 있어도 누구에게나 허락된 암자다.
달마산은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산마루는 뿔이 잔뜩 난 모양이다. 뾰족뾰족 바위가 산등성을 뚫고 튀어나와 절경이다. 애를 먹였던 안개는 여기까지 따라와 바위를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는데 그 모양이 더 신비롭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바위 하나하나가 뿔난 도깨비 같기도 하고 부처님 같기도 하다. 금강산 만물상 대신 달마산 '만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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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산 바위 바위는 보는 이에 따라 부처님으로, 도깨비로 보여 금강산 만물상 대신 달마산 만불상이다 | |
ⓒ 김정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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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 가는 길 안개에 젖은 ‘도솔길’은 천상의 길이다. | |
ⓒ 김정봉 |
색시가 장옷을 뒤집어쓴 채 반쯤 얼굴을 내민 것 마냥 바위에 몸을 숨긴 채 색동 단청한 맞배지붕을 살짝 드러내 어서 달려가 껴안고 싶어진다. 도솔암에 걸친 돌계단은 천상으로 가는 구름다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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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 정경 벼랑바위 위 한 뼘 공간에 새가 둥지 틀듯 걸터앉아 있다 | |
ⓒ 김정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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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 벼랑 날개 없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지, 불심이 아니고서는 만들기 불가능한 위대한 예술품이다 | |
ⓒ 김정봉 |
미황사에 바다생물이 많은 까닭은?
미황사(美黃寺)는 달마산 아래에 있다. 땅끝기맥이 남으로 뻗치다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힘을 다하여 솟아난 곳이다. 안개는 아직도 달마산 중턱을 휘감고 있다. 미황사 를 병풍처럼 둘러싼 하얀 바위능선이 제일경인데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도솔암에서 그 속을 봤으니 다행이다.
미황사는 연이은 중창불사로 예전의 고즈넉한 맛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최악의 성형(成形)은 아니다. 일주문-돌계단-자하루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 착근을 못해 겉도는 느낌을 받는다. 세월이 흐르면 좀 나아질 거다.
자하루 기둥 아래를 통과하면 대웅전 안마당이다. 대웅전은 멀리 보면 삿갓을 쓰고 곧은 옷매무새를 한 점잖은 선비처럼 보이다가도 가까이 다가서면 고운 피부에 민낯을 한 고운 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 대웅보전 단청을 잃은 지 오래, 이젠 민낯이 더 나아 보인다 | |
ⓒ 김정봉 |
미황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749년)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한 연대나 사적에 대한 기록은 없고 창건설화만 전해지고 있다. 설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설화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이 창건설화가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설화는 인도에서 직접 불적이 전래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불교는 4세기 말에 중국을 통해 북쪽을 거쳐 들어왔다고 배웠다. 통설과 다르게 불교는 1세기경 가야국과 전라도 남해안 지방으로 직접 전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의 아웃사이더들이 재평가를 받기 위해 양심 있는 역사가들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듯이 불교의 남방전래설도 전문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대웅전 주춧돌에는 게나 거북, 물고기가 새겨져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파주 보광사나 여수 흥국사와 같이 대웅전이 큰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경우 바다생물을 새겨 넣는 경우도 있지만 미황사의 경우 창건설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미황사 부도에도 대웅전보다 더 많은 바다생물이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 대웅보전 주춧돌 연꽃잎에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어 궁금해진다 | |
ⓒ 김정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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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밭 정경 많은 부도는 미황사 사력을 말해주고 있다 | |
ⓒ 김정봉 |
▲ 부도세부 오리가 한쪽 발을 들고 있다 | |
ⓒ 김정봉 |
▲ 부도세부 물고기와 게가 함께 새겨있다 | |
ⓒ 김정봉 |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 선운사 가는 길은 도솔천 따라 가는 길 | |
ⓒ 전용호 |
10월로 들어서면서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하늘이 파랗다. 전북 고창으로 향한다. 선운사에 꽃무릇 필 때 가본다고 했는데, 결국 올해도 늦었다. 축제도 끝나고, 꽃도 져버렸다. 단풍철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길다. 선운사 나들목을 나와 한적한 도로를 따라간다. 길 양 옆은 풍천장어를 요리하는 식당들로 즐비하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은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천연기념물 송악이 벼랑을 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도솔천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다. 신작로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면 가지런한 선운사 경내 담장 옆을 걸어간다. 산속에 있는 절집이지만 마치 평지에 있는 절집 분위기다.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2층 구조로 된 천왕문이다. 천왕문 치고는 특이하다. 경내는 넓다. 마당 한가운데 강당인 만세루가 있다. 보통 만세루는 절집 마당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데 선운사 마당은 너무나 넓었나 보다. 만세루와 대웅보전 사이에는 연등이 걸리고, 오층석탑이 뾰족하게 섰다.
▲ 선운사 절집 마당 한가운데 있는 만세루 | |
ⓒ 전용호 |
▲ 선운사 팔상전에서 내려다본 선운사 풍경. 바로 앞 맞배지붕이 대웅보전이다. | |
ⓒ 전용호 |
대웅보전은 옛날 건물 그대로다. 웅장하다. 부처를 세 분이나 모셨다. 건물 형태도 맞배지붕으로 깔끔한 느낌이다. 부처 뒤에 있는 후불벽화가 아름답다. 연한 녹색기운이 퍼지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영산전과 팔상전도 옛 모습 그대로다.
어! 한국전쟁 중에 용케도 살아남았네? 나중에 절집을 나오다가 발견한 비석에서 그 답을 알았다. 한국전쟁 중에 북으로 가지 못한 인민군들이 선운사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은 당시 고창경찰서 반암출장소 소장 김재한 경사에게 선운사를 불태울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 후불벽화가 아름답다. | |
ⓒ 전용호 |
사람 가는 길과 차 가는 길이 분리되어 있는 도솔암 가는 길
선운사를 나와 도솔암으로 길을 잡는다. 도솔암 가는 길은 아직 푸릇푸릇 싱그럽다. 나무에는 '질마재길'이라는 리본이 걸렸다.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도솔천 주변으로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나무는 뿌리 밑이 들린 것도 있다. 그러면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도솔천 물은 검다. 도솔천 물이 검은 이유를 설명한 안내판들이 있다. 아마 산속 물이 왜 이리 오염됐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안내문 설명에 의하면 참나무과의 낙엽 등에 함유된 '타닌' 성분으로 인해 검게 보인다고 한다.
▲ 도솔암 가는 길. 아직은 싱그런 숲길이다. | |
ⓒ 전용호 |
▲ 도솔천 물빛이 검다. 천 옆으로 자라는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내 놓고 있다. | |
ⓒ 전용호 |
▲ 도솔암 가는 길.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 |
ⓒ 전용호 |
도솔암 가는 길은 사람이 가는 길과 차가 가는 길로 나뉘어 있다. 도솔천을 사이에 두고 사람길과 찻길을 만들었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싶다면 사람길로, 차를 피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편안하게 걷고 싶다면 찻길을 걸어가면 된다.
도솔암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3.2㎞나 된다. 길은 편안하지만 걷는 거리가 길다 보니 조금 힘도 든다. 가는 길에 하늘로 부채를 펼친 모양의 웅장한 소나무인 '장사송'과 진흥왕이 말년을 보냈다는 '진흥굴'도 지난다.
붉은 빛 신비로운 도솔암 마애불
평탄한 길이 끝나고 가파르게 오르더니 도솔암이 나온다. 도솔암은 건물이 세 채가 있다. 극락보전을 가운데 두고 동암과 서암이 날개를 펼치듯 자리잡고 있다. 절집 마루에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맑다.
▲ 도솔암 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 |
ⓒ 전용호 |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비결을 얻고자 감실을 열었는데 그 안에 있는 책에는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고 쓰여 있어 놀라서 다시 넣어놓았다고 한다.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감실을 열고 비결을 가져갔다고도 전해온다. 마애불은 붉은 빛이 돈다. 그래서 더욱 신비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신선이 거처했을 것 같은 도솔천 내원궁
마애불 주위로 단풍나무가 아직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나한전이 있고 그 앞에 부서진 삼층석탑을 다시 세워 놓았다. 이곳에 삼층석탑을 세웠을 정도면 예전에 상당한 규모의 절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나한전 옆으로 도솔천내원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가파르게 빙 돌아서 마애불 뒤로 오른다.
▲ 도솔암 나한전 앞 삼층석탑 | |
ⓒ 전용호 |
▲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도솔천 내원궁 | |
ⓒ 전용호 |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을 모셔 놓았다. 작은 마당에서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내원궁 난간에 서니 선운산 기암 풍경들이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풍경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옛날 이곳이 거처하는 스님들은 신선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