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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세한도'에 영감 준 그림이 있었으니… 外

보허 步虛 2017. 4. 10. 02:57



       추사 '세한도'에 영감 준 그림이 있었으니…

    2012/10/08 04:23

http://blog.chosun.com/besetohan/6642779

 원문출처 : 추사 '세한도'에 영감 준 그림이 있었으니…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7/2012100701677.html
입력 : 2012.10.07 23:15

 

간송미술관 明淸시대 회화展
'연구하는 미술관' 취지 맞게 이번엔 학술적 가치에 중점
淸代 화가 장경의 '소림모옥' 추사에 영향줬던 그림 눈길

   '이벤트는 이제 그만'.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제83회 정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세운 목표다. 1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명청시대회화전(明淸時代繪畵展)'. 명말인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 청대 회화 60여점이 소개된다.


대중적 인기 피로감에 따른 '숨 고르기'

  '왜 갑자기 중국 회화 전시인가.' 최근 몇년 새 매년 봄·가을 각각 2주씩만 열리는 간송미술관 정기전을 꾸준히 찾았던 관객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의문. 최근 몇년간 간송미술관이 '대중 친화적 전시'를 잇따라 개최했기 때문이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을 여자로 설정한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었던 2008년 가을 전시 땐 혜원의 대표작 '미인도(美人圖)'를 내세워 2주간 7만여명 관객몰이를 했다. 지난해 가을 열린 '풍속인물화대전(風俗人物畵大展)'에도 혜원의 '미인도'와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덕에 5만7000명이 몰렸다.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50주기를 맞아 열렸던 올해 봄 전시에도 7만명이 왔다.

  간송미술관이 이번에 대중에게 낯선 명·청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대중적 인기에 따른 피로감' 때문. 2~3시간 줄 서 기다린 관객이 낡고 비좁은 전시장에서 작품에 '눈도장'만 찍고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가 되자 미술관 측도 난감해졌다. 이번 전시는 한 박자 쉬어가며 '숨 고르기'를 하겠다는 의도.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은 "최근 몇년간 이벤트성 전시를 많이 열어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신경을 쏟았다. 그러나 원래 우리 미술관의 취지는 '미술사 연구'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어렵더라도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적인 전시로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정희의‘세한도’(그림③)의 모델이 된 중국 그림들. 그림①은 간송미술관 전시에 1372년작‘용슬재도’(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헐벗은 나무와 외로이 떨어진 집나오는 청대 화가 장경의‘소림모옥’, 그림②는 장경이 모델로 삼은 원나라 화가 예찬의 헐벗은 나무와 외로이 떨어진 집이 있는 풍경이 서로 닮았다. 김정희는‘소림모옥’이 포함된 화첩을 평생 애지중지했다. /간송미술관 제공·조선일보


秋史가 영향받은 중국 화가들

   이번 전시의 목표는 '화가 추사(秋史)'를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글씨 뿐 아니라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을 그린 빼어난 화가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명·청대 화가들은 대부분 중국 미술사에서 엄청난 비중의 화가도 아니고, 경매 시장에서 인기있는 작가도 아니지만 추사 및 그 학파와 관련된 사연을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추사는 1809년 청나라 연경(燕京)에 가 이름난 수장가이자 금석학자인 옹방강(翁方綱·1733~1818)에게 금석학과 실학을 배우며 안목을 높이고 귀국했다. 청나라 서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나온 청대 중기 화가 장경(張庚·1685~1760)의 '소림모옥(疏林茅屋)'은 추사 대표작 '세한도'를 이해하기 위해 꼭 참고해야만 하는 그림. 잎 떨어진 큰 고목, 초가 한 채가 외롭게 서 있는 쓸쓸한 풍경이 '세한도'를 떠올리게 한다. 추사는 이 그림이 실린 화첩 '장포산진적첩(張浦山眞蹟帖)'을 옹방강의 막내아들로부터 얻어, 평생 보물처럼 아끼며 끼고 살았다. 제주도 귀양지에서 예산 고향집으로 이 화첩을 보내며 겉면에 "이 화첩을 함부로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당부의 글을 남길 정도. 추사 연구자 박철상씨는 "추사 화론의 핵심은 장경이라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장경의 화첩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문인화풍 관념 산수를 연구할 수 있었다. 연구자 입장에서 아주 반가운 전시"라고 했다. '원말사대가'란 원말기 명성을 떨친 네 사람의 화가. 이들의 화풍은 명·청 시대 화가들에게 전범(典範)이 됐다. 장경의 '소림모옥'도 원말사대가 중 한 사람인 예찬(倪瓚·1301~1374)의 '용슬재도(容膝齋圖)'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시에는 이 밖에 추사의 난죽(蘭竹) 그림에 영향을 준 청대의 사군자(四君子) 대가 정섭(鄭燮·1693~ 1765)의 '현애총란(懸崖叢蘭)', 추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승 옹방강 초상화 등도 나왔다. 어려우나 의미 있는 전시. 단, 간송미술관에 '고사소요도(高士逍遙圖)' 등 추사 작품이 70여점 이상 소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 한 점도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관람료 없음. (02)762-0442





      

필획(筆劃)에 대한 사유(思惟)

[세한도 다시읽기]

머니투데이 박덕준 외부기고가 |입력 : 2016.09.05 10:47
 
필획(筆劃)은 끝없는 사유의 대상이다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일반적으로 서예라 한다면 이 쓰기의 기본단위는 획(劃)이라 할 수 있다. 필획(筆劃)이란 붓으로 쓴 획을 말한다. 서예작품을 보고 ‘힘이 있다’ 라고 흔히 말하는 그 부분은 바로 필획에 대한 시각적인 느낌이다.

한편의 서예작품이 여러 필획들 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필획이 전체의 관계에 함몰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체를 위하여 개별 획이 희생되는 일은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각의 필획이 각자 뚜렷한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난 후에야 주변과 조화될 수 있다는 그런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화합(和)하되 같은 것(同)이 아니다’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까닭에 앞서간 많은 서가(書家)들은 필획들이 화합하는 것에도 고민이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개별 필획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과 삶에 대한 끝없는 사유를 이 필획 위에 투영하려 하였다. 추사선생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선생이 남긴 많은 작품들 가운데 세월의 시기에 따른 필획의 변화만으로도 이 같은 고민을 추측할 수 있고 이는 추사서예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부언하자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사유의 대상은 필획의 형태도 아니고 문자의 한 요소도 아니다. 그것은 필획의 느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노래하는 사람이 목소리의 느낌 대하여 어떻게 표현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추사의 작품 ‘五岳圭楞河勢槪 六經根柢史波瀾(오악규능하세개 육경근저사파란)’에서 그 한 예를 살펴볼 수 있다.
다음 두 작품이 있다. 좌측은 젊은 靑篆山人(청전산인)시절 작품이고 우측은 그로부터 30년 후 勝蓮老人(승련노인)시절 작품이다. 우리는 여기서 선생이 동일한 내용의 두 작품을 세월의 간극을 두고 제작한 결과 필획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다.


▲<그림 1> 젊은 靑篆山人시절 작품, <그림 2> 30년후 勝蓮老人시절 작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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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작 《五岳圭楞河勢槪 六經根柢史波瀾》오악의 산세는 황하의 <br />
흐름을 바꾸게 하고 육경에 근거한 문장은 역사에 파란을 일게 하는구나.

▲<그림 1> 젊은 靑篆山人시절 작품, <그림 2> 30년후 勝蓮老人시절 작품

(추사 김정희 작 《五岳圭楞河勢槪 六經根柢史波瀾》오악의 산세는 황하의
흐름을 바꾸게 하고 육경에 근거한 문장은 역사에 파란을 일게 하는구나.



   좌우 두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필획의 차이이다. 필획의 형태가 아니라 선질(線質)에서 보여주는 질감과 그로부터 나오는 감흥이 다른 점이다. 필획에서 이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글씨를 쓰는 순간에 발현되는 감정의 차이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천착해온 필획에 대한 내면의 변화로 보아야 한다.

그 차이는 직접 보고 느낄 수 밖에 없는 특수한 점이 있지만 굳이 언급해보자면 우선 운필의 차이가 있다. 좌측은 붓끝을 드러내고 있는 운필이며, 우측은 붓끝이 감추어진 운필이다. 그 결과 좌측은 힘차고 윤기(潤氣)있고 분명한 형태를 나타내는 반면 우측은 뭔가 불분명하고 투박하면서 윤기보다는 삽기(澁氣: 종이와 붓의 마찰에 의한 까칠한 느낌)에 가깝다. 이렇게 본다면 우측이 좌측보다 테크닉이 떨어진 상태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측이 좌측보다 그 미감의 깊이로 볼 때 몇 수는 앞선다. 다하지 않음으로 해서 더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동양에서 예술적 미감은 일관되게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필획(筆劃)에는 5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

   필획에 대한 서가(書家)들의 인식은 각자의 기준이 있어 각각의 얼굴이 다른 만큼이나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필획이 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통적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글씨가 되지 못한다고 여겨왔다. 그 기준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필획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고전적으로 통용되어온 기준은 “신(神)/기(氣)/골(骨)/육(肉)/혈(血)” 다섯 가지 조건이 그것이다. 북송의 소식(蘇軾, 東坡)이《論書(논서)》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원문을 참고하여 그 내용을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書에는 반드시 신(神)/기(氣)/골(骨)/육(肉)/혈(血) 이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書가 될 수 없다”

    옛 선인들은 이 다섯 가지가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붓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사실까지 기술해놓았다. 필자는 이 내용에 동의하며 필획을 이해하는 기본바탕으로 삼고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神이란 정신이 되며 획의 표정을 만들어내고, 氣와 骨은 필획에 강하고 굳셈의 골기가 있는 것은 마치 인체에 기골이 있는 것과 같고, 肉과 血은 인체에 근육이 있고 혈액이 순환되어 피부가 윤택하듯이 필획에도 살아있는 피부의 윤택함이 있어야 한다. 획 하나에 기세가 있고 뼈대가 있고 근육이 있고 혈액이 순환되는 피부가 있으며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갖추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붓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역할이 따로 있어 각자의 역할이 잘 발휘되도록 붓을 사용해야 한다. 힘찬 획은 ‘붓의 허리’(호심 豪心)에서 나오고, 윤택한 피부 같은 우아함은 ‘붓의 끝’(필단 筆端)에서 나온다. 호심(豪心)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필획에 힘이 없고, 필단(筆端)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필획은 억세기만 하다. (당태종의《指意》 참조).

    획이란 살아있는 생명체로 느껴져야 하였다. 한갓 선(線, line)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을 붓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선이라는데 머무르지 않고 생명의 기운으로까지 사유를 진행해 왔다. 이는 사혁(謝赫)이 말한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상통한다. 즉 그려낸 대상의 ‘기와 운이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동양예술 최고의 화두로 삼고 있는 이 경지도 역시 가장 기본단위인 필획 그 자체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된 이후에야 논할 수 있는 경지라 본다.


필획(筆劃)은 화면에서 하모니를 이룬다

   하나의 필획은 하나의 氣(생명의 에너지:氣勢)를 가지고 있다. 필획은 따라서 하나의 에너지가(價)를 가진 독자적 존재로서 주변과 관계하여 조화를 추구한다. 한 편의 글씨가 있는 화면은 필획이 모여 문자가 되고 문장이 된다. 동시에 이 화면은 여러 획이 모여 서로 관계를 맺는 장(場)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화면에서 하나의 필획은 마치 음악에서 하나의 음표와 같다. 서로 다른 음이 모여 화음을 이루는 현상이 글씨의 화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획은 기(氣)가되고 울림은 운(韻)이된다.

    기와 운의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 할 것 없이 모호한 입장이다. 그러나 유독 추사선생은 화면에서 기와 운의 관계에 대하여 명료하게 정리고 있다. 기세는 흉중에 있다가(氣勢在胸中) 글자 속의 획과 획 사이에 또는 글자 사이사이의 행간에 흘러 넘치는 것(流露於字裏行間),,,그래서 점 획 위에서만 기세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필획에서 발생한 기세가 어떻게 울림이 되는지의 그 과정을 밝혀놓고 있다.

以勁利取勢 굳세고 좋은 것으로 세를 취하고
以虛和取韻 빈 곳에서 어울림으로 운을 취한다
.

    기세는 힘차고 좋은 획에서 얻는다. 그렇게 발생한 기세는 획이 밀집된 곳(虛實의 實한 곳)에서 증폭된 후 최종적으로 획이 성근 곳(虛實의 虛한 곳)으로 모인다. 기세는 여기서 머물며 마침내 서로 섞여 울림이 되니 이를 하나의 운(韻)이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화면을 만날 때 비로소 음악을 느낄 수 있다. 필획과 공간이 만든 울림이다. 앞서 언급한 神氣骨肉血 다섯 가지가 필획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라고 한다면 韻이 되는 경지는 필획의 최종경지라 할 수 있다.
기세의 발생과 운의 느낌에 대하여 아래 《불이선란도》에서 그 한 예를 살펴볼 수 있다. 필획이 강한 곳, 밀집된 곳에서 발현하여 필획이 성근 곳, 빈 곳으로 모여 울림이 된다. 큰 획은 강한 음이 되고 작은 획은 잔잔한 음악이 된다. 시각이 청각으로 느껴지는 경지이다.


▲( 추사 김정희 작《不二禪蘭圖》<br />
54.9 X 30.6, 연대미상)

▲( 추사 김정희 작《不二禪蘭圖》
54.9 X 30.6, 연대미상)


  필획이 울림으로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기세를 지녀야 한다. 음표가 서로 다르듯이 각각 다른 에너지를 가진 필획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획을 구사할 때 그 당시의 意를 표현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단지 글씨를 쓰면 같은 형태의 길쭉길쭉한 필획이 의미 없이 나열될 뿐이다. 이렇게 해서는 표현이 있는 書작품이 될 수 없다. 이를 산자(算子: 주역의 괘를 뽑을 때 사용하는 산가지)가 될 뿐이라 하여 경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추사 선생의 언급이 있다.

   점(點)을 변화 있게 쓰지 않고 같은 형태로 나열하기만 하면 바둑돌을 포석해 놓은 것처럼 되고, 획을 변화있게 쓰지 못하면 산가지를 흩어놓은 것이 될 뿐이다. 모난 필획(方)을 변화없이 중첩하게 되면 말(斗)을 엎어놓은 꼴이 연출되고, 둥근 필획(圓)을 변화 없이 계속 반복되면 둥근고리(環)만 만들어진다. 결국 이와 같이 다르게 하지 않고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되면 음악과 같은 울림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點不變 謂之布碁 劃不變 謂之布算 方不變 謂之斗 圓不變 謂之環)




▲(추사 김정희 작 《彩筆名花》<br />
137 X 33.3 1856년<br />
無雙彩筆珊瑚架 第一名花翡翠甁<br />
더 없이 좋은 붓에 산호 붓걸이<br />
제일가는 이름난 꽃에 비취꽃병)
▲(추사 김정희 작 《彩筆名花》
137 X 33.3 1856년

無雙彩筆珊瑚架 第一名花翡翠甁
더 없이 좋은 붓에 산호 붓걸이
제일가는 이름난 꽃에 비취꽃병)
좋은 필획(筆劃)은 무심(無心)의 경지이다


   아래 작품 행서대련《彩筆名花》은 강한 필획과 약한 필획이 격차가 심하게 관계하고 속도가 빠르고 경쾌한 획과 느리고 무거운 획이 큰 차이로 존재하여 경쾌하고 화려함이 있다. 추사의 간찰에서는 자주 보는 현상인데 대련작품과 같이 큰 글씨를 쓸 때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반면에 아래 《大烹豆腐》은 예서필획이면서 대소 강약의 격차가 매우 적은 필획들이 관계하고 있다. 선생이 고예(古隷)를 좋아한다는 점이 이런 현상을 드러낸다. 필획에 강약변화가 거의 없는 무덤덤하고 졸박한 미감을 선호하는 점이라 할만하다.

   이 두 작품은 모두 71세 과천에서 쓴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만년에 무르익은 선생의 필획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같은 시기에 한 작품은 화려함을 구사하고 있고 또 한 작품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무심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을 이끌게 된 요인은 아마도 그 작품의 내용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위 행서대련《 彩筆名花》은 문구 내용을 보면 “더없이 좋은 붓에 산호 붓걸이 제일가는 이름난 꽃에 비취꽃병”이라 한다. 아름답고 화사함이 없을 수 없다. 반면에 아래 작품 예서대련《大烹豆腐》의 내용은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라네” 라 하며 이 작품에 쓴 방서에 “촌부의 가장 즐거운 일”이라 하고 있지 않는가? 이보다 더 소박할 수는 없다.

   그 내용에 부합하는 필획이란 역시 꾸밈이 없는 천연의 필획이 아니겠는가?
혹자는 만년에 선생의 필획에 세련미가 없다고 하는 평이 있기도 하지만 테크닉의 세련미가 촌로의 소박한 마음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극도의 세련미는 어눌함과 오히려 통한다. 마치 초보자의 필획처럼 보이지만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이런 필획을 써 놓고 선생은 흡족해 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서가들은 이런 경우 버리고 다시 쓸 것이다. 좋다고 하는 경지가 다른 것이다. 이것이 그 사람의 공력이다. 그렇다면 선생의 이런 만년의 시기에 화려함을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바로 위 작품 《행서대련 彩筆名花》이 그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화려함이 오히려 허허롭다.


필획(筆劃)은 치열한 사유(思惟)의 표현이다

   필획에 대한 사유는 서예 표현의 원천에 대한 사유이며 주관적 미감의 기준과 개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 작 《大烹豆腐》<br />
129.5 X 31.9 1856년<br />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br />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요<br />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라네
▲(추사 김정희 작 《大烹豆腐》
129.5 X 31.9 1856년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라네



   앞서 언급한 두 작품 《五岳圭楞河勢槪 六經根柢史波瀾》에서 좌측작품과 우측작품에서 보이는 필획의 변화는 그런 점에서 볼 때 단순한 느낌의 변화 정도가 아니다. 표현의 원천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일이며 미감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고뇌가 무르익은 흔적이다. 좌측에서 우측으로의 변화에는 선생의 예서(隷書)에 대한 개념을 반영하려는 일관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세한도(歲寒圖)의 발문에 쓴 글씨의 필획이 그렇고,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의 필획이 역시 이와 같은 것이며, 앞서 언급한 71세 만년에 쓴 두 작품 역시 그 근원의 필획에 이와 같은 우측으로 변화된 이후의 필획을 사용하고 있다. 필획에 대한 선생의 이러한 사유와 갚은 천착은 마침내 추사서예가 독보적일 수 있는 근원적 바탕을 이루게 되었다.

    추사는 30년 전에 쓴 이 작품을 보고 그 필획이 맘에 들지 않았으리라. 예전에 보았던 소재 옹방강(蘇齋 翁方綱 1733~1818), 석암 유용(石庵 劉墉 1719~1804)의 글씨에서 느꼈던 그런 감흥은 아니었다. 세월이 지났어도 그때 받았던 번쩍이던 신광(神光)은 가슴속에서 더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필획에 대한 끝없는 사유를 그만둘 수 없었던 까닭이 아마도 여기에 있다고 고백하는 듯 하다. 그 작품의 방서에 이렇게 써 넣었다.

   소재 석암이 둘다 이 구절을 쓴 것을 예전에 본적이 있다. 비록 삼십 년이 지난 후인데도 오히려 신광(神光)은 눈에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겠도다. 감히 망령되게 그를 쫓아 따라 써 볼 뿐이다.
(曾見蘇齋石庵 所寫皆此句 雖三十年後 尙覺 神光 在眼匪 敢妄摹追耳)
이당 조카의 부탁으로 써 준다 (怡堂賢姪屬書)



항백 박덕준

항백 박덕준



항백 박덕준

   서법가로서 현재 거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추사 김정희의 필묵법을 복원하여 계승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한자의 축소 생략원리와 초서의 기원을 탐구하여 초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2008년부터 2년마다 개인전을 열어 2014년에 제 4회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전라북도 세계서예비엔날레 본전시 초청(2007), 국제서법가협회전(2013 광주), 강암연묵회(2015 전주) 등 단체전에 참가하고 있다. 저서에, 추사의 필묵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필묵법 지침서로 정리한 “필묵법산고”(筆墨法散稿 2012 삼근재)가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더리더(theLeader)에 표출된 기사로 the Leader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意 밖에서 意를 구한다

박덕준 인문학코너

머니투데이 박덕준 외부기고가 |입력 : 2016.11.03 10:59

진정한 멋(趣)은 법(法) 너머에 있다.

추사 김정희 작, 板殿. 현판 탁본

추사 김정희 작, 板殿. 현판 탁본




   서법을 얘기하면 흔히 듣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라 한다. 뭔가 신비주의적인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논리적 설명이 충실하지 못하면 허황된 생각이라 치부되기 일쑤다. 더구나 도제식 학습에 익숙한 서법가들에게서 구체화된 설명을 기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소위 뜬구름 잡는 방식으로는 서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실체를 잡아서 손에 쥐고 그것을 가지고 작업에 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은 깨달음으로 가능하다. 그렇다고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설명을 위하여 이 부분을 별도 구분하여 정리한다. 구체화 할 수 있는 부분을 법(法)이라 한다면 그럴 수 없는 부분을 법외(法外)라고 하자. 필묵법 5단계 (더리더 10월호 게재, <필묵법5단계, 서법의 체계화>)에서 5가지를 언급하였다. 그 중 1.필획, 2.중획, 3.운, 4.호심묵의 이 네 가지를 법(法)이라 할 수 있고, 나머지 하나인 다섯 번째를 법외(法外)라고 하였다. 오늘은 법외(法外)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아래에 법외의 영역을 필자에게 깨닫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글 한편을 소개한다. 청대(淸代) 정섭(鄭燮, 호:板橋 1693~1765)이 그의 묵죽도에 쓴 발문의 내용이다.

    강변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새벽에 눈을 뜨니 맑은 가을 아침, 한 무더기 대숲이 눈앞에 보인다. 안개에 젖은 대숲 언덕에 햇살이 내리고 해 그림자에 포개진 댓잎, 영롱한 이슬방울 맑은 기운들, 모두가 성근가지 조밀한 댓잎 사이사이에 서려있었다. 가슴에 무엇인가 일어나 이 장면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방금 그리고 싶어 가슴속에 품은 그 형상(胸中有竹 흉중지죽)은 좀 전에 눈앞에서 보았던 그 대나무(眼中之竹 안중지죽)가 아니었다. 하여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붓을 들고 그어 나아가니 갑자기 손아래에서 대나무가 변화무쌍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손아래에서 이루어진 이 대나무(手中之竹 수중지죽)는 좀 전에 그리고 싶어 가슴에 품었던 그 대나무(胸中有竹)가 또한 아니었다. 정리하면, 붓을 들기 전에 생각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意在筆先(의재필선)도 정해진 법일 뿐(定則)이다. 진정한 아취(雅趣)는 법(法) 너머에 있다는 趣在法外(취재법외)라는 것이 바로 실마리가 된다. 어찌 그림만 그렇다고 하겠는가? (주1)


청 정판교 ‘수중지죽’이 언급된 묵죽도, 54 X 79.5, 연대미상.<br />
이 작품의 발문은 필자가 본문에 소개한 글과 일부 다른 구절이 있는<br />
다른 작품으로 보이나 전체적인 뜻은 동일함

청 정판교 ‘수중지죽’이 언급된 묵죽도, 54 X 79.5, 연대미상.
이 작품의 발문은 필자가 본문에 소개한 글과 일부 다른 구절이 있는
다른 작품으로 보이나 전체적인 뜻은 동일함


   번역을 하고보니 한문 투의 글이라 일부 각색하였다. 정섭(鄭燮)은 문학과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두보를 존중하였고, 그림에도 능했는데 대나무, 난초, 돌을 잘 그렸다. 서예에서는 예서에 해서를 섞은 독특한 서체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권세를 뜬구름처럼 여기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고하게 살아간 괴짜 예술가들인 양주팔괴(楊州八怪)의 한 사람이다. 추사(秋史)는 그의 묵죽을 천하제일로 평가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형상이 아닌 가슴에 품은 형상
(胸中之竹)


   그림을 그릴 때는 눈앞에 보이는 형상(眼中之竹)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그리고자 하는 형상(胸中有竹)을 먼저 품어야 한다. 형태를 따라 그린다는 형사(形似)가 아니라 意를 그린다는 사의(寫意)를 하라는 뜻이다. 소동파 이후 문인화에서 줄기차게 제창해 온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들 의(意)를 그리고자 하였고, 또 그린 결과를 의(意)라 하기도 하였다. 사의(寫意)를 한다는 뜻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다. 의(意)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정판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이 그린 것이 진정 그 자신의 의(意:마음)라 할 수 있는가? 혹시 어디선가 보아왔던 기억에 있던 것은 아닌가? 의(意)를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서법에 있어서도 이 관점은 동일하다. 붓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가 의(意)를 드러낸다고 하는 점에서 오히려 더 근원적이라 할 수 있다. 문자의 형태 자체가 추상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서법에서 언급한 사의(寫意)와 관련된 몇 가지를 참고해볼까 한다.

書者散也 (서자 산야)
글씨라고 하는 것은 풀어놓은 것이다.

   동한(東漢) 말 채옹(蔡邕,133-192)의 어록이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意를 따르는 것이라 한다. 내용을 좀 더 소개한다.

‘글씨라고 하는 것은 풀어놓는 것이다(書者散也) 글씨를 쓰고자 하면 먼저 마음속에 품은 회포를 풀고(先散懷抱) 감정과 성품을 맡기고(任情恣性) 그런 연후에 쓰는 것이다(然後書之). 만약 기록하고자 하는 일에 쫓기면 아무리 좋은 붓으로 쓴다 해도 좋은 글씨가 되지 못한다. 무릇 글씨란 먼저 앉아서 고요히 생각을 가다듬고(夫書先默坐精思) 뜻이 가는 대로 따르며(隨意所適)~~’

   唐代에 방대한 서법이론을 저술한 손과정(孫過庭,648-703)의 서론, 서보(書譜)에서 몇 가지 언급을 살펴볼 수 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란 자연의 오묘함과 같아서 인위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同自然之妙有 非力運之能成 (동자연지묘유 비력운지능성)
자연의 妙有(無中之有)와 같아서 人力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덕준 작, 미불의<學書帖 부분><br />
미불의 필의로 쓴 필자의 세필작품

박덕준 작, 미불의<學書帖 부분>
미불의 필의로 쓴 필자의 세필작품



   그러나 한편 손과정은 같은 책에서 서법표현을 통하여 意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情性(지금의 감정과 애초에 타고난 성품)에 도달할 수 있고,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는 못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일은 아니다.

可 達其情性 形其哀樂 (가 달기정성 형기애락)
情性에 도달할 수 있고,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다. 

   손과정의 또 다른 언급이다. 글씨를 쓰는데 잘 쓰게 될 때가 5가지 있고 안 될 때가 5가지 있다. 이를 오합(五合) 오괴(五乖)라 한다.

오합 중 가장 잘되는 경우를 偶然欲書(우연욕서: 우연히 쓰고 싶어짐)(주2) 라 하는데 역시 의도하지 않는 意外의 상황을 중시한다.

    明末 서예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에 의하면 晉人尙韻(진인상운)이라 하고 宋人尙意(송인상의)라 하였다. 왕희지(王羲之) 시대인 晉은 韻을 숭상하고, 宋代는 意를 숭상했던 시대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宋 4대가에 속하는 미불(米芾: 1051-1107)은 學書帖(학서첩)에서 천진(天眞)을 언급하였다. 진정한 본연의 모습인 天眞은 意外에서 나온다고 했다.

天眞 出於意外 (천진 출어의외)  천진이 意外에서 나오더라.


寫意를 실현하는 정판교의 방법 , 수중지죽(手中之竹)

  서법에서 意를 표현한다는 것은 서법 그 자체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정판교 이전의 개념이다. 즉, 사의(寫意)를 강조하였으나 구체적 실현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이제 정판교의 묵죽도에서 말한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체험을 통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깨달았다.

   의(意)란 ‘마음의 소리’이다. 의를 그린다는 것은 내가 아닌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은 내속의 나, 내가 알 수 없는 진정한 나(眞我)를 만나는 일이다. 그것은 지금의 내 의식을 배제한 상태에서만이 가능하다.

   수중지죽(手中之竹)이란 대나무를 그리고 있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하나의 획을 그을 때 그 획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형태의 획을 긋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주변의 다른 획에 대응하는 관점에서 그 순간에 떠오르는 대로 긋는 것을 말한다. 즉, 순간순간의 판단에 깊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화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무의식적(意外)으로 반응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정판교는 이를 손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手中之竹) 즉, 화면상에서 즉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필묵으로서의 화면구성에는 관계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의(意)를 먼저 정해두어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 - 意在筆先(의재필선)도 법외가 아닌 법의 영역에 속한다. 진정한 意의 실현은 법외의 세계에서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추사는 정판교를 높이 평가한다. 추사가 실현하려는 意의 문제는 정판교의 방법과 일치한다고 본다. 이 개념은 추사에 와서 한층 더 구체화한다.

   추사는 먼저 의를 표현하는 사의(寫意)의 단계에 접근하는 방식을 언급한다. 항상 준비된 상태에 있어야 비로소 그 단계에 접근될 가능성이 있다. 9,999의 준비된 노력이 있어야 나머지 1을 만날 수 있는 경지라 한다. 다음은 <석파난권(石坡蘭卷)>에 화제로 쓴 내용이다.

其餘一分…
此一分非人力可能, 亦不出於人力之外
그 마지막 일분…
이 일분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인력 밖에 있는 일도 아니다. (주3)
원문을 통해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보면 이렇게 이어진다.
‘또 다작한 연후에 가능하지 한 순간 부처가 된다거나 맨손으로 용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9,999를 얻고 난 나머지 1(其餘一分)은 성취하기가 가장 어렵다. 9,999를 얻는 것은 아마 모든 이들에게 다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나머지 1은 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인력 밖에 있는 일도 아니다.’ 

   ‘그 나머지 1’이란 손과정이 말한 ‘자연의 오묘함’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추사는 또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에서 자작시를 통해 우연한 과정에서 깊은 본연의 모습이 나왔다고 하였다. 성리학에서 말하던 성중천(性中天)이 바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바로 선(不二禪)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의외(意外)란 그저 우연한 곳이 아니라 선(禪)이라는 깨달음의 세계에 닿아있음을 말한 것이다.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阮堂全集 권10」 <題蘭>
난초 그림 안 그린 지 20년 만에
우연히 흥이 솟아 참모습(性中天)이 드러났네.
문 걸고 들어앉아 찾고 또 찾은 곳이니
이게 바로 유마(維摩)거사가 말한 불이선(不二禪)이라네. 

   특이한 점은 바로 이 시 구절에 <性中天>이란 말과 <覓覓尋尋處>란 부분이 정섭의 구절에서 보인다고 했다. 추사는 판교의 <手中之竹>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결국은 추사 역시 거리낌 없는 무한자유(無限自由)를 지향한다. 이런 상태에서 무아지경의 발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박덕준 작, 2015년 여름 부여 백제관에서 정판교의 ‘수중지죽’이 있는 묵죽도를 보다가 그 발문을 판교의 필의로 씀, 遂다음 一字落

(박덕준 작, 2015년 여름 부여 백제관에서 정판교의 ‘수중지죽’이 있는
묵죽도를 보다가 그 발문을 판교의 필의로 씀, 遂 다음 一字落



書趣亦如 天馬行空 (서취역여 천마행공)
서법에서 흥취는 천마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 

   천마행공(天馬行空)이란 자유자재하여 구속됨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옛사람이 글씨를 쓴 것은 바로 우연히 쓰고 싶어서 쓴 것이다. 글씨 쓸 만한 때는 이를테면 왕자유(王子猷, 王徽之: ?-388)의 산음설도(山陰雪棹)처럼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오는 그런 기분이다. 때문에 나아가고 멈춤(行止)이 뜻에 따라 조금도 걸릴 것이 없으며 서취(書趣)도 역시 천마(天馬)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처럼 구속됨이 없이 자유로움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법외(法外)는 법(法)을 지난 그 다음의 경지.

   위 정판교의 글을 풀이한 전공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정섭(鄭燮) 이전의 일반적인 창작단계는 둘이었다. 눈이라는 감각을 통해본 사물의 형상, 그리고 이를 재구성한 화가의 구상 속 사물의 형상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정섭은 구상된 사물의 형상이 취를 통해 또 한번 변화된 형상을 제시했다. 이 세번째 나타난 작가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작가의 의도 밖이라는 의미에서 우연적이다. 작가의 구상 속 화폭의 형상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이미 육조시대 ‘文心彫龍’ 이후 송대 소식(蘇軾)에 이르기까지 예술 창작의 중대 과제였다. 그런데 정섭은 구상과 달라진 창작결과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 불일치에는 적극적인 자연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취, 즉 조화의 기틀이 작용한 것이다”(정혜린, 『추사김정희의 예술론』신구문화사, 2008)

   ‘수중지죽’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사의(寫意)는 정판교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필묵법 다섯 번째인 법외(法外)의 단계는 바로 사의에 관한 정판교 이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단계의 경지를 소개하는 것일 뿐 실제 작업에서의 과정은 또 다른 문제이다.

   작업자로서 필자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와 같은 법외의 문제를 그 많은 법의 영역과 어떻게 조화를 유지하면서 작업에 임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즉 통합과 응용의 문제이다. 동시에 법을 지키면서도 우연의 세계를 중시한다는 모순된 관계, 이를 극복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추사가 제시한 한 가지 접근법이 생각난다. 법을 통하여 9,999를 성취한 다음 맑은 마음으로 그 나머지 1을 대하는 일이다. 그 나머지 1의 성취를 ‘手中之竹’에 맡기는 일이다. 이 경지는 단 한 번의 체험으로 깨달음이 있으나 특이하게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손을 떠나버린다. 창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매 번 단지 맑은 마음으로 ‘그 나머지1’을 대하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부터 점점 나이들수록 더 어려운 일은 바로 이 “맑음”을 유지하는 일이지 싶다. 쉬지 않고 닦아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을까?

(주1) 江館淸秋晨起看竹 煙光日影露氣 皆浮動于疎枝密葉之間
胸中勃勃遂有畵意 其實胸中有竹 幷不是眼中之竹也
因而磨墨展紙落筆 倏作變相 手中之竹 又 不是胸中之竹
總之 意在筆先者 定則也 趣在法外者 化機也 獨畵云乎哉.
< 정섭의 묵죽도발문(정혜린,『추사김정희의 예술론』신구문화사, 2008)에서 발췌)>
(주2) 各有其五 神怡務閑 一合也 感惠徇知 二合也
時和氣潤 三合也 紙筆相發 四合也 偶然欲書 五合也也
合과 乖가 각각 다섯이 있는데 마음이 화락하고 유쾌하여 힘써하는 일이 없고 한가함이 一合이고, 사물에 감동하고 청종하여 사리에 통하고 깊고 밝은 슬기가 있음이 二合이고, 시절이 화창하고 기후가 온화함이 三合, 종이와 붓이 서로 잘 맞음이 四合이고, 우연히 글씨를 쓰고자 하는 마음 이 일어남이 五合이다.
心遽體留 一乖也 意違勢屈 二乖也 風燥日炎 三乖也
紙墨不稱 四乖也 情怠手闌 五乖也
마음만 허둥지둥 급한데 손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一乖이고, 의지가 꺾이고 기세가 오므라드는 것이 二乖, 바람 한 점 없고 날씨가 무더운 것이 三乖, 종이와 먹이 서로 잘 맞지 않는 것이 四乖이며,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써야하는 것이 五乖이다.

(주3) 又多作然後可能 不可以立地成佛, 又不可以赤手捕龍,
得九千九百九十九分, 其餘一分, 最難 圓就九千九百九十九分,
庶皆可能, 此一分非人力可能, 亦不出於人力之外
阮堂全集 券6 <題石坡蘭券>


항백 박덕준

항백 박덕준



항백 박덕준
   서법가로서 현재 거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추사 김정희의 필묵법을 복원하여 계승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한자의 축소 생략원리와 초서의 기원을 탐구하여 초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2008년부터 2년마다 개인전을 열어 2014년에 제 4회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전라북도 세계서예비엔날레 본전시 초청(2007), 국제서법가협회전(2013 광주), 강암연묵회(2015 전주) 등 단체전에 참가하고 있다. 저서에, 추사의 필묵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필묵법 지침서로 정리한 “필묵법산고”(筆墨法散稿 2012 삼근재)가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더리더(theLeader)에 표출된 기사로 the Leader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意 밖에서 意를 구한다 2016.11.03 | 머니투데이 | 다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