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차와 선-청대의 차풍습 / 불교신문
보허 步虛
2017. 4. 21. 11:18
차와 선-청대의 차풍습
- 승인 1996.06.01 00:00
바야흐로 녹색의 봄이 스려지고 있다. 다름아니라 차 따는 계절이며 멀리 흘 려가 새벽 이슬 아직 풀 끝에 남아 천지의 기운을 모으기는 늦었다는 것 이다. "저기 저 담벼락에/찻잎 따는 저 처녀야/아득한 산과 들에/밤의 어두움이 깔렸는데/조알같이 많은 날에/또 와서 따아 갔소/석양이 깃들어도/찻잎이 보 이느냐/게 잡은 관솔불이/눈물 위에 비치는데 산 귀신 잠이 깨고/새 짐승 집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내려온 민요인데 하늘이 내려준(天詩) 계절이 다 하기전 어두움 속에서 횃불을 밝히고 차를 따는 서민들의 부지런한 삶의 애 환을 흠뻑 느낄 수가 있어 좋다.여명이 터서 해돋이가 아직 남은 때에 차를 따아 만들어 풋풋한 차 한잔을 목축이는 우리의 생, 그 또한 질박한 풍속이 아니던가. 아무튼 차의 계절은 저만치 물러서고 차의 시대적 구분을 얘기 하며 이어 져 오면서 명대가 가장 두드러진 시대가 아닐까 생각한다.製茶法 品茶法의 대대적인 개량외에도 茶器 또한 활발하게 성행하여 민간인 사이에 그 생산 품은 대단했으며 시장경제에도 차와 그릇이 막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그러나 茶供에 있어서는 당, 송때의 貢茶의 엄숙함 같은 것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차인 원굉도는 "호사가들은 모두 茶供은 하였는데 정말 우수운 일이다"라고 말했듯이 명의 황실은 물론 민간에서의 다공은 거의 찾 아 볼 수 없었고 차가 생활속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다도(다도계)를 얘기하겠지만 그들의 다도는 송대에 중국으 로 건너간 유학승 영서선사에 의해 시작된 연유로 오늘날 화려하게 차의 예술, 미학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그 차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茶供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명대때에 거의 사라져간 당, 송의 遺風의 茶供의식이 일본인의 미학 속에 접목되어 꽃 피어진 차의 예술인 셈이다. 이렇게 차가 세월을 달리 하면서 청나라 때는 홍차 녹차 전차(塼茶 벽돌차), 차말(茶末)을 이용하였다. 청나라때는 차가 품위의 고상함, 예술의 화려함이 사라지면서도 그 못된 前 代(당.송.명)때의 차세는 여전히 서민의 삶속에 남아 그 곤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좋은 풍속은 사라지고 폐를 끼치는 악습이 남은 청나라, 오늘날 또 한 위정자들이 온갖 구실로 백성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씁쓸함, 어느 아득한 세월 끝에 백성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오게 될 것인가. 부담많은 차세는 1730년 때에는 川茶征稅例를 정하고 유지를 받들어 三茶 (오늘날 사천성(옛촉)의 고급차) 아미산, 봉정산의 차들은 차밭과 차나무를 분간하여 세액을 정하고 斤양으로 수납하였다. 더욱 부담스러운 다법은 官部에서 공포한 茶引의 규정인 다법예관은 私茶 는 저지른 사람을 私鹽 소금과 똑같이 벌을 주고, 이에 검사가 끝났는데도 茶引을 받지 않고 산(차밭)에 들어가면서 속이면 私茶로써 죄를 준다. 官業은 茶引을 지급하는 것으로서 차를 생산 하는 府, 州, 현에 교부하는데 대저 상인이 차를 사려면 관청에 수량을 기재한 서류를 제출하고 은을 납부하고 다인을 지급받고서야 비로소 국경으로의 반출이 허락되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假茶 제도인데, 차 5백근 이상을 만든 사람은 본인과 전매한 사람도 함께 신문 호송하여 가까운 지방의 군대에 종군시키며, 만약에 점포에서 천근 이상을 감춘 사람도 이에 비추어서 호송 복역시키며, 위의 수량에 미달한 사람은 죄를 신문하여 상례에 따라 처벌 하는 차의 징벌제도가 엄격해 백성의 고통이 컸던 역사였다. 청나라 말기의 부패함과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차는 그 빛을 잃어가고 더욱이 수차례 걸친 文字獄으로 인해 문인들의 정신적 피폐함, 의욕상실감, 그로 인한 정신문화 의 쇠퇴, 한족 사상도 소진되어 갔고 원대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차를 노래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정말 차로 인한 아편 전쟁이 일어나게 됐다. 그 세기말 속에서 영국 프랑스들과 충돌로 흉흉한 민심은 더 이상 차를 얘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구나 차에 관한 연구서, 책은 거의 전멸되고 그러나 고관, 상류층의 내왕에서는 端茶送客(단차송객)이라는 나쁜 관습만 생겨 났다. 이는 主客의 대화가 서로 화합하지 못할 때에 주인이 하인에게 차를 내도록 하는 것으로 단차송객은 바로 축객으로써 손님을 쫓아내는 악습인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前代의 "客來烹茶" "敲泳著名" "以茶待客"등의 아름다운 인간의 사랑, 차 한잔 속에 자연을 노래하고 존재의 무상함, 외로운 생을 꿈꾸며 연민하던 세상은 점점 우리들의 영혼 밖으로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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