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초의선사와 다신전

보허 步虛 2017. 6. 13. 04:25



         


초의선사와 다신전



   중국의 차문화를 진흥시킨 인물-육우의 다경을 소개하다보니, 조선에서 차문화를 일으킨 초의선사가 생각났고, 육우의 다경에 비견할만한 초의선사의 다신전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 차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 같아 소개하기로 한다.



- 초의선사 -

   동다송과 다신전을 지은 초의선사(1786-1866)의 속성은 무안 장씨요,속명은 의순이요,자는 중부이다.

의순은 뜻이 미쁘다-진실하다-는 말이고,중부의 부도-미쁠 부-로서 역경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는 큰 별이 품 안에서 묵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하여 낳았다고 한다.

다섯살 때에 강가에 나가 놀다가 사나운 물살에 떨어졌으나 품어서 건져준 사람이 있었다.

나이 열 다섯 살 때 남평의 운흥사에 머물어 벽봉스님에 의하여 중이 되었다.


열 아홉 살에 월출산을 지나다가 그 기이하고 수려함을 즐기어 불현듯 자유로운 걸음으로 혼자서 그 산 정상에 올라 만월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다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두루 지능에 참여하여 배움이 삼장에 통하고,해남 대흥사의 완호윤우에게 향을 집어 피우고 구족계를 받았으며,선을 금담에게서 받았다.

교를 연역하는 여가에 범자를 배워서 거로의 뜻에 통하고,신상을 잘하여 도자의 방에 들었으며,정다산승지를 따라서 유서의 가르침을 받아 시도를 본 이후로 교리에 정통하여 선경이 넓게 열리고 비로소 구름에 노니는 깊이가 있었다.


풍악-금강산-에 들어가서 비로봉에 오르고,돌아오는 길에 경향의 여러 산을 거쳐 해거도위 홍현주와 자하 신위,추사 김정희 두 시랑과 함께 노닐며 노래부르고 잔을 돌려서 사귀었다.

모두들 동림의 원공과 서악의 관휴로 보았으며,명성이 한 때 떠들썩하였다.

스님은 이내 자취를 감추고 등나무와 담쟁이 덩굴 그늘 속의 두륜산 정수리에 작은 암자를 짓고 현판을 -일지-라고 하였다.

홀로 살면서 40년 동안을 지관하였다.(병조판서 신 헌 - 초의 대종사 탑의 비문)


초의선사도 친하게 사귀었던 김정희와 신 위 처럼 시.서.화의 삼절로 일컬어진다.

이조판서를 지낸 홍석주는 -초의시집-에 붙인 -서문-에서 <호남의 스님인 초의는 사대부를 좇아 배우고 노닐기를 좋아하더니 운어는 질그릇 반죽을 깨끗이 깎아버려 당.송시대 명문의 경지에 드나들고,그의 뜻은 맑고도 원대하여 분택을 떨쳐 버렸더라> 고 하였다.


또 호조참판을 지낸 신 위도 -초의시집-에 붙인 -서문-에서 <일지암은 호남의 스님인 의순의 집이름이다,

의순이 시에 교묘하여 세상에서 초의스님이라고 일컬었는데,그 명성이 자자하다.

하물며 그 시는 중의 티를 떨쳐 버렸음에 있어서랴> 라고 하면서 스님의 시작불사에는 해로움이 없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 다신전 -


초의선사가 다신전을 전하게 된 경위는 다신전의 발문에 적혀있는 것이 유일한 자료이다.

발문에 따르면,총림에는 간혹 조주의 풍류가 있으나그것만으로는 다도를 알 수 없기에 베껴서 보인다고 하였다.


조주종심선사(776-896)라면 떡차 중심의 시대에 살았던 당나라의 스님이었다.

더구나-차나 마시고 가게-하여 이름난 조주선사 비전의 차풍습이라는 것도 죽순,감람열매,수박씨,미나리,쑥 따위를 찻잔에 넣고 마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총림의 차풍습이 떡차 마시기 였는지,-차나 마시고 가게-를 연발하였는지,

차를 잡화법으로 마셨다는 말인지는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다신전의 내용이 잎차이므로 여기에 반사적으로 대비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떡차의 풍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초의선사가 조주선사를 알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정다산과 그의 아들 유산(학연),운포(학유)등에 의하여 초의가 천태,화엄,능엄경 등을 통달하게 되고-조주와 같은 선경에 이르게 된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초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다신전의 앞 부분과 발문에 따르면,초의선사는 1828년의 아마도 장마철에 지리산의 칠불암에 있는 -만보전서-에서 차에 관한 부분-다경채요-만을 베껴 가지고 대흥사로 돌아갔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때로 부터 2년 뒤인 1830년 겨울에 마침내 초의선사는 청나라의 -모환문-이 엮은 -만보전서-의 -다경채요-에 발문을 붙이고 -다신전-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선림에 전하게 된 것이다.


한편,초의선사가 -다경채요-를 -다신전-이라고 개칭한 것은 -어린 물과 쇠잔한 물의 쓰기-,-물거품 다루기-,-샘물의 품수-에 적힌 다신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신이라는 용례는 신당서의 -육우전-에 육 우를 다신으로 숭앙하였다는 옛일도 보인다.

또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차의 독촉장에서는 햇차의 뜻으로 다신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했었다.



다신전


*만보전서*에서 가려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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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 차 따기

 2. 차 만들기

 3. 차 가리기

 4. 차의 저장

 5. 불 살피기

 6. 끓는 물 분별하기

 7. 쇠한 물과 어린 물 쓰기

 8. 물거품 다루기

 9. 차 넣기

10. 차 마시기

11. 향기

12. 빛깔

13. 맛

14. 오염으로 진성 잃기

15. 변질차 않쓰기

16. 샘물의 성품

17. 우물물은 차에 마땅치 못하다

18. 물의 저장

19. 찻그릇

20. 찻잔

21. 잔 닦는 행주

22. 차의 보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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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 따기


   차를 따는 철은 그 때가 중요하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못하며,늦으면 신성한 기운이 흩어진다.

곡우절 닷새 앞을 으뜸으로 삼으며,닷새 뒤가 다음 가며,다시 닷새 뒤가 그 다음 간다.


   찻싹은 자줏빛 나는 것이 으뜸이요,주름진 가죽 같은 것이 버금가며,둥근 잎이 그 다음 가며,가는 댓잎처럼 빛나는 것이 가장 아랫질이다.

밤새도록 이슬에 젖은 것을 딴 것이 으뜸이요,햇볕에서 딴 것이 다음 간다.

음산하게 비가 내릴 때는 차 따기에 마땅치가 않다.

골짜기에서 나는 것이 으뜸이요, 대숲 밑에서 나는 것이 버금가며, 자갈밭에서 나는 것이 그 다음가고, 누런 모래땅에서 나는 것이 또한 그 다음간다.


 2. 차 만들기


새로 딴 것은 쇤 잎사귀와 억센 줄기와 부스러기를 골라내고 너비 두 자 네 치의 노구솥에 차 한근 반을 덖는다.

솥이 몹시 달 때를 기다렸다가 차를 떨구어 넣기 시작하여 얼른 덖어야 하는데,

불길을 늦춰서는 안된다.

익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불기를 줄이고,체에 담아서 몇차례 가볍고 둥글게 체질을 한 다음,다시 솥에 넣고,불기를 차차로 줄이면서 불에 쬐어서 알맞게 말린다.

그 속에 현미한 것이 있으나 말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불기를 고루 머무르게 한 것은 빛깔과 향기가 아름다와진다.

현미한 것은 아직 밝히지 못하였으나,신령스러운 것은 덖을 때 갖춰지는 것이다.


 3. 차 가리기


차의 묘리는 정갈한 만듦새에서 비롯되어 별도대로 간수하며,알맞은 물 다루기에 있다 할 것이다.

우열은 솥의 적부에서 비롯한다.

맑으냐 흐리냐는 물과 불에 달려 있다.


불길을 사납게 하면 향기가 맑아지는데,솥에만 의존하면 심기가 탐탁하지 못하게 되며,불길을 매섭게 하면 설은 채 타 버리고,나무를 더디게 지피면 비취색을 잃게 된다.

불을 오래 지피면 지나치게 익어 버리며,일찍 들어내면 언저리는 설익고 익으면 누렇게 변한다.

설익으면 검어지고,도리를 따르면 달고,어긋나면 떫다.

흰 반점을 띈 것은 무방하며,잘 그을린 것이 가장 훌륭하다.


 4. 차의 저장


   차를 만들어 처음 말리려면,먼저 옛합에 담고 종이로 주둥이를 봉한다.

사흘이 지나 차의 본성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다시 약한 불에 쬐어 바싹 말리고, 식기를 기다렸다가 단지에 담는다.

가볍게 살며시 쌓아올려 얼룩조릿대로 차곡차곡 쟁인다.

아름다운 대껍질과 종이로써 병의 주둥이를 겹겹으로 단단히 봉하고,윗부분을 불에 묻어 구운 벽돌을 식힌 것으로 눌러서 다육기 속에 넣어 둔다.

바람에 쏘이거나 불에 가까이 하지 말도록 삼가해야 한다.

바람에 쏘이면 식기 쉽고,불기에 가까우면 금방 누렇게 된다.


5. 불 살피기


차를 달이는 요지는 불 살피기가 앞서야 한다.

화로불이 빨갛게 되면 차 남비를 비로소 얹고,부채질을 가볍고 바르게 하여야 한다.

탕관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려 차츰 심하고 빠르게 하는데,이것이 *문무 살피기*란 것이다.


문이 지나치면 물의 성미가 유순하여지고,유순하면 차는 가라앉는다.

무가 지나치면 불의 성미가 사나와지고,사나와지면 차가 물을 제압하는 노릇을 하게 된다.

모두 중화가 부족한 것으로 차꾼의 요지가 되지 못한다.


6. 끓는 물 분별하기


끓는 물에는 크게 세가지의 분별법과 열 다섯 가지의 작은 분별법이 있다.

첫째는 모양보고 분별하기라 하며,둘째를 소리를 듣고 분별하기라 하고,세째를 김보고 분별하기라고 한다.

모양의 분별은 속을 분별하는 것이요,소리는 겉을 분별하는 것이요,김은 재빨리 분별하는 것이다.

게 눈,새우 눈,물고기 눈,이음구슬과 같은 것은 모두 맹탕으로 한다.

등파고랑이처럼 용솟음치 듯이 끓기에 이르면 물김이 모두 사라지니,바야흐로 이것이 순숙이다.


첫소리,굴림소리,떨림소리,놀램소리와 같은 것을 모두 맹탕으로 삼는다.

곧바로 소리업식에 이르면 이것이 결숙이다.

김이 한 가닥,두 가닥,서너 가닥과 어지러운 가닥이 떠오르듯 왕성한 기운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지러운 얽힘은 모두 맹탕으로 여긴다.

곧 김이 곧바로 치솟아서 이어지기에 이르면,바야흐로 경숙이다.


7. 쇠한 물과 어린 물 쓰기


채군모는 어린 탕수만을 쓰고 쇠한 물은 쓰지를 않았다.

대개 옛 사람들의 제다법을 이어받아,만들면 반드시 멧돌질하고,멧돌질하면 반드시 갈고,갈면 반드시 채로 치고,채를 치면 티끌은 나부끼고 가루가 날은다.

이제 재료를 섞어 용봉단차를 박아내고 탕면을 보게 되면 차의 신기가 곧바로 뜬다.

이것은 어린 물을 쓰고 쇠한 물을 쓰지 않은 까닭이다.

요즈음의 차 만들기는 체치기와 멧돌질을 하지 않고,모두 형상대로 갖춘다.

여기에 쓰일 탕수는 모름지기 순숙되어야 원래의 신기가 비로소 드러난다.

그러므로 탕수라면 모름지기 다섯벌 끓어야만 차의 세가지 기이함이 주효한다고 말한다.


8. 물거품 다루기


   물 익기를 살폈다가 곧 들어올려 먼저 찻병 속에 조금 따라서 물을 흩뜨려 냉기를 가셔낸 다음,차의 많고 적음을 알맞게 짐작하여 떨어뜨리는데, 중용이 지나치거나 공평을 그르쳐서는 아니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기는 흐리며,물이 많으면 빛깔은 맑아도 맛이 적다.

재포 뒤의 찻병은 찬물로 흔들어 씻어서 찻병을 서늘하고 깨끗하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의 향기가 줄어든다.


탕관이 불에 익으면 차의 신기가 건실하지 않고,찻병이 맑으면 물의 성미는 언제나 신령스럽다.

차와 물이 융합되기를 잠시 기다린 뒤에 잔질하여 나누어 마시기를 베푼다.

나누기가 이른 것도 마땅치가 않고,늦게 마시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빠르면 차의 신기가 덜 일어나고,더디면 묘한 향기가 앞서 사라진다.


 9. 차 떨어뜨리기


차 떨어뜨리기는 차례데로 하여서 그 마땅함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차부터 먼저 넣고,끓인 물을 뒤에 붓는 것을 하투-밑에 떨어뜨리기라고 한다.

끓인 물을 절반 붓고,차를 떨어뜨리고 다시 끓는 물로 채우는 것을 중투-가운데 떨어뜨리기라고 한다.

끓는 물부터 먼저 붓고,차를 뒤에 넣는 것을 상투-위에 떨어뜨리기라고 한다.

봄,가을에는 가운데 떨어뜨리기를 하고,여름에는 위에 떨어뜨리기를 하며,

겨울에는 밑에 떨어뜨리기를 한다.


10. 차 마시기


차 마시기는 손님이 적은 것이 귀하다.

손님이 많으면 떠들썩하고,떠들썩하면 아취가 모자란다.

홀로 마시는 것을 신이라고 한다.

두 손님을 승이라고 한다.

서너명을 취라고 한다.

대 여섯명을 범이라고 한다.

일곱 여덟 명을 시라고 한다.


11. 향기


차에는 진향이 있고,난향이 있고,청향이 있고,순향이 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은 것을 순향이라고 한다.

설지도 않고 익지도 않은 것을 청향이라고 한다.

불끼가 고르게 멈춰진 것을 난향이라고 한다.

곡우 전에 신기가 갖추어진 것을 진향이라고 한다.

또,함향,누향,부향,문향도 있는데,이것은 모두가 바르지 못한 냄새이다.


12. 빛깔


차는 맑고 푸른 것이 빼어난 것이다.

물결은 희고 쪽빛나는 것이 좋다.

누르거나 검거나 붉거나 어두운 것은 모두 품수에 넣지를 않는다.

눈 같은 물결이 으뜸이요,비취색 물결이 중품이며,누른 물결이 하품이다.

새 샘물과 활활 타는 불로 차츰 달이는 것은 고요하고도 교묘하며,옥같은 차와 차가운 물결은 잔의 절묘한 기예를 맡는다.


13. 맛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상등이며,쓰고 떫은 것이 하등이다.


14. 오염으로 진성 잃기


차에는 본시부터 진향이 있고,진색이 있고,진미가 있다.

일단 더럽혀지면 문득 그 진성을 잃는다.

물 속에서 짠 것이 묻었거나,차에 향료가 묻었거나,주발에 과실기가 묻은 것은

모두 진성을 잃은 것이다.


15. 변질차 않쓰기


차를 처음 만들면 푸른 비취색이다.

거두어 간직하는데 그 법도를 얻지 못하면,첫번째는 녹색으로 변하고,두번째는

누른빛으로 변하고,세번째는 검게 변하고,네번째는 흰빛으로 변하니,이것을 먹으면 위장이 차가와지고,심지어는 파리한 기운이 쌓이는 것이다.



16. 샘물의 성품


차는 물의 신령이요,물은 차의 형체이다.

참된 물이 아니면 그 영묘함이 나타나지 않으며,정갈한 차가 아니면 그 형체를 엿볼 수가 없다.

산꼭대기의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산 밑의 샘물은 맑고 무거우며,돌 속의 샘물은 맑고 달며,모래속의 샘물은 맑고 차가우며,흙속의 샘물은 싱겁고 희다.

누른 돌에 흐르는 것이 좋고,푸른 돌에서 솟아오른 것은 쓸모가 없다.

흘러서 움직이는 물은 안정된 것보다 더욱 낫고,그늘에 덮여 있는 것이 햇볕에 있는 것보다 순수하다.

순수한 근원은 맛이 없고,참된 물은 향기가 없는 것이다.


17. 우물물은 차에 마땅치 못하다


다경에 이르기를,

-산물이 상품이요,강물이 중품이요,우물물이 최하품이다-라고 하였다.

첫째,강물이 가깝지 않고,산에서 별안간 샘물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오로지 봄에 매우-봄비-를 받아두는 것이 마땅하다.

그 맛이 달고도 순하여 만물을 기르는 물로서 뛰어나다.

눈 녹인 물은 비록 맑을 지라도 성미가 무겁고 어둡고 차갑게 느껴져서 지라와 위장에 들어가서 많이 쌓이기에는 마땅치가 않다.


18. 물의 저장


  물을 담는 독은 모름지기 그늘진 마당 복판에 놓고 비단으로 덮어서 별과 이슬의 기운을 받게 하면,뛰어난 영기가 흩어지지 않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언제나 간직된다.

가령,나무나 돌로 누르고 종이나 대껍질로 봉하여햇볕 아래서 쬐면 밖으로 신령스러움이 줄어서 흩어지고,안으로는 그 기운이 신성스러움을 해친다.

차 마시기에는 오직 차가 신선하고,물이 신성스러운 것을 귀하게 여기므로,

차가 그 신선도를 잃거나,물이 그 영기를 잃는다면 도랑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랴.


19. 찻그릇


   상저옹은 차 달이기에 은 표주박을 썼는데,너무 사치스럽다면서 훗날에는 자기를 썼으나,또한 오래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은으로 돌아갔다.

내 생각에 은붙이란 단청을 칠한 다락이나 화려한 집에서나 쌓아두기에 알맞고,

돌산에 있는 집이나 띠집-초가집-에서는 그저 주석 표주박이 알맞고,또한 빛깔과 맛의 손상도 없다.

구리나 쇠로 된 찻그릇은 삼가할 일이다.


20. 찻잔


잔은 눈처럼 흰 것이 으뜸이다.

희고 쪽빛이 나면 차의 빛깔을 손상시키므로 버금간다.


21. 잔 닦는 행주


차 마시기의 전후에는 가는 베수건을 갖추어 잔 닦기에 쓴다.

그 밖의 것은 더러워지기 쉬워서 쓰기에 마땅치가 않다.


22. 차의 보위


만들 때는 정성스레,저장할 때는 건조하게,물 끓일 때는 청결하게 한다.

정성스럽고,건조하고,청결하게 하면 다도는 다 된 것이다.



후 기


무자년-1828년-의 비 올 때에 스승을 따라 방장산-지리산-의 칠불아원에서 등초하여 내려와서 다시 정서하고자 하였으나 병 때문에 아직 맺지를 못하였다.

사미 수홍이 시자방에 있을 때,다도를 알고자 정초하였으나,그 역시 병으로 아직 끝내지를 못한지라,참선의 여가에 억지로 붓에 명령하여 마침내 이루었다.

시작이 있고 마지막이 있는 것이 어찌 홀로 군자만이 할 짓이런가.

총림에는 간혹 조주풍류가 있으나 다도를 다 알 수 없기에 베껴서 보이는 것이다.

외람된 일이로고.


경인년-1830년- 중춘,


병으로 암자에서 쉬는 선승이 눈 내리는 창가에서 화로를 안고 삼가 적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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