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교학 - 2. 정토와 아미타불 - 3. 아미타불신앙의 기원

2013. 10. 30. 16:19경전 이야기

 

2.정토와 아미타불

 

    2. 아미타불신앙의 기원

     

      정토교의 신앙 대상인 아미타불 및 극락정토의 신앙과 사상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떠한 이유로 일어났는가 라고 하는 문제는 정토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연구 命題로서 洋의 東西를 막론하고 많은 학자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연구에 종사해 왔다. 그렇지만 문헌 자료의 대부분이 없어진 古代 인도에서 이 신앙의 기원을 探索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한 일이다.

     

    아마 정확한 결론을 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起源의 문제에 관해서 그 중에 대표적이라고 생각되어 지는 것을 간추려 보고져 한다.

    아미타불 신앙이 인도본토 스리랑카 버마 태국 등 南方의 여러 지역에서 볼 수가 없다. 또한 중국으로 부터 멀리 육로 또는 해로로 인도에 여행한 法顯 현장 義淨 둥의 인도 여행에 관한 기록에서도 아미타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에 傳來돤 불교 가운데 특히 대승 불교 경전 중에서 많이 설해 지고 있다. 이러한 대승불교 경전은 주로 카시밀 및 네팥 지방으로 부터 전래된 것이 많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 아미타불 신앙이 발생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설이 있다.

    원래 이 카시밀(kashmir) 간다라(gandhdra) 등의 西北 인도는 일찍부터 이란의 종교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불 신앙의 기원을 이란의 고대 신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라고도 한다. 이 학설은 주로 유럽의 동양연구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一名인 아미타브하(Amitabha)는 무량의 광명을 가진 부처님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 觀念은 이란의 태양 숭배의 영향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원시 대승불교의 보호자인 스기샤族 및 이란人은 모두 태양숭배의 종족이었기 때문에 아미타불신앙은 太陽神活에서 유래한다고도 발한다. 또 아미타불인 佛格은 釋尊으로 부터 連想된 佛이지만, 이란의 오르마쯔인 神은 無限의 광명을 가진 神이기 때문에 이 神의 觀念이 불교의 가운데 들어와 발전 변천해서 아미타붙인 佛을 생기게 하지 않았는가 라고도 말하여 지고 있다. 이러한 이란의 古代宗敎에서 아미타불인 佛의 起源을 찾으려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인도 內部의 思想에서 찾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주로 일본의 불교학자들이다. 그것은 베다聖典에서 설하는 야마(yama耶摩) 天은 無上幸福의 곳이며, 또 安穩不死의 세계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야마의 本體는 태양으로 무한의 광명을 가졌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의 광경은 야마天의 상황을 좀더 誇大 하게 기술했다고 생각되는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신앙의 기원을 이 야마天에서 찾으려고도 한다. 이 밖에 梵天의 신화에서 起源을 찾으려는 설도 있다. 梵天의 세계에서 서술하고 있는 梵天王의 玉座의 觀念이 無量光의 觀念으로 계속되며, 또 玉座를 푸라나(prana生氣)라고 부르는 點이 無量壽의 觀念에 결합된다고 한다. 다음으로 어떤 학자는 인도의 비슈뉴(visnu)神話에서 기원을 찾아, 이 神의 신앙이 아미타불인 佛을 만들지는 않았는가 라고도 한다. 이 외에 西方의 守護神 바루나(varuna)와의 연관볼 찾는 설 또는 아그니(Agni)神의 호칭과 관계를 찾는 설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아미타불인 佛의 起源에 대하여 유럽 학자는 주로 이란의 고대종교에서 淵源을 찾으며 일본의 학자는 인도의 고대종교에서 찾고 있지만, 지금 바로 어느 것이 적절한가 한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아미타불신앙이 인도 문화권 가운데서 興起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西北 인도는 古代의 인도 문화의 발생지 임과 동시에 이란 문화와의 接觸지대였기 때문에 불교사상이 발전된 인도 사상에 이란, 그 밖의 外來思想이 첨가되어 아미타불인 佛格이 생겼다 라고 생각되어 진다.

    다음으로 아미 타불신앙이 발생한 故地가 西北인도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아미타불경전을 전한 번역승의 傳記로 부터 충분히 살펴 볼 수 있다. 아미타불경전을 전한 지루가참 축법호 鳩摩羅什 覺賢 등의 四世 紀以前에 사람들의 傳記를 보면 언제나 西北 인도와 인연이 깊다. 이렇게 아미타불 경전을 전한 사람은 그 출생지를 또는 璇學地에 있어서 아미타불 신앙을 貝聞하지 않았을런지 전연 見聞하지 않았던 경전을 번역한다 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인도 본토, 스리랑카 또는 西方아시아 방면에서 이러한 신앙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西北인도를 가지고 아미타불신앙의 발생지라고 결정하는 점

    에 異義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西北인도의 어떠한 곳에서 발생했는가라는 점은 밝힐 수가 없다. 역시 언제부터 이러한 신앙이 발생했는가 라고 하는 成立年代에 대해 서 볼 때 이것 또한 異說이 많아 알 수 없다고 말한 상태이지만, 대체로 紀元前後경에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 定說인 듯하다. 이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에 기반해서 類推하는 설이다. 아미타불에 관한 경전이 중국에시 번역된 최초는 支婁迦讖譯(147~186)위 『般舟三昧昧 및 『無量淸淨平等覺經』이다. 계속해서 支謙(223~282)에 의해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八道經』二卷이 번역되었다. 따라서 二世紀의 中頃 또는 二世紀의 初에는 대개 아미타불경전이 중국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신앙이 年代的으로는 어느 頃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것에는 명확한 자료가 현존하지 않지만, 중국의 經典 飜譯史에 있어서 불교경전과 論書가 인도에서 편찬되어 중국에 傅來되기 까지 무릇 100年 내지 200年을 경과 했다.

     

    이렇게 볼 때 이런 경전은 대체로 紀元 前後에 편찬되었다고 생각되어 진다. 역시 이 신앙은 다시 소급해서 생각해 보면 대체로 紀元前 일세기 경에 소박한 아미타불신앙이 생기지 않았는가 라고 추측된다. 그러므로 다음에 어떠한 이유에 의해 이러한 신앙이 불교교단의 內部 로 부터 발생했는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교 교단은 크게 나누어 출가교단과 재가교단으로 나눌 수가 있다. 출가교단이 라는 것은 석존의 가르침을 받들고 專心으로 佛道의 수행에 힘쓰는 출가자(比丘)의 집단이다. 在家敎團이라는 것은 出家敎團을 支持하고, 귀의하여 그 출가자의 가르침을 받드는 在俗信者의 집단이다.

     

    대체로 기원 전후의 頃부터 불교교단 가운데 출가비구의 교단과는 다른 在家의 불교신자의 단체가 인도 各地에서 成立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가지고 苔提薩타(bodhisattva) 즉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 라고 불렀다. 이 보살인 멍칭은 원래 석존의 前生을 말하는 이야기(本生譯) 중에 석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온 것이지만, 자기들도 석존과 같이 佛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라고 확신하여 사용하는 듯한 다. 이러한 在家信者의 집단 가운데는 출가비구의 교단에 참가한 사람도 상당히 많아 이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대승불교 운동이 흥기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는 在家敎團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것이 지만, 이때 편찬된 대표적인 불교경전은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화엄경』 등이 있다. 아미타불신앙도 이러한 재가교단의 사람들이 제창한 新佛敎運動(대승불교운동)의 일환으로 興起하고 『무량수경』 둥의 대표직인 아미타불 경전은 이런 사랑들에 의해 편찬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여 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釋尊의 遣法을 保守的인 출가교단의 사람들에게 맡겨 둘 수 없다고 하는 일부 진보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과 在俗信者가 석존의 참 정신의 현양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낸 것일 것이다. 이것은 석존의 참된 모양으로 아미타불을 이해하지만, 다른 어떠한 불교도의 석존 이해보다도 眞精神울 파악하고 있다고 하는 信念과 함께 생각해 낼 것이다. 保守的인 출가교단의 고갈에 대해 在家敎團의 사람들과 一部 진보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에 의해 석존 참된 자세로서 묘사된 것이 아미타불인 부처님일 것이다 라고 말하여지고 있다.

    다음에 아미타을신앙의 興起가 대승불교의 흥륭에 관계있는 곳으로 부터 『무량수경』에 설한 法藏比丘의 출가와 成道 및 十方諸佛國으로 부터 보살의 西方淨土往詣의 說話에 관련하여, 대승불교도가 보살도를 닦는 理想的인 사람으로 法藏比丘를 보살도의 완성자로서 아미타불을 생각해 냈다. 現世에는 쉽게 보살도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淨土를 보살도 완성의 道場(장소)으로서 十方諸國보다 서방정토에 많은 보살의 往詣를 例示하고 西方往生을 설한 것이 그 처음이 아닌가 라고 말해 지고 있다.

    여하튼 불교교단의 내부에서 아미타불신앙이 발생하여 이 부처 님을 섬기는 아미타불교도에 의해 경전이 편찬되기에 이르렀지만, 편찬된 아미타불 경전은 시대와 함께 차차 增補, 改竄도고 또 別種의 것도 편찬되었다. 점차로 인도, 西域地方에 널리 또는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에 散說되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전래되어 현존의 많은 아미타불 경전을 볼 수 있게 되였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염화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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