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1/2)

2014. 1. 9. 02:34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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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1/2)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오늘날의 터키 카파도캬) 체사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조모, 누이 마크리나, 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오 주교와 세바스테아의 베드로 주교가 모두 성인일 만큼 영광스러운 가문의 출신이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특출하였다. 370년 무렵 체사레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따르고 있다. 379년 무렵 선종하였다. 그레고리오 성인 역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학문과 웅변이 뛰어났으며,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90년 무렵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듣고 간직하여 그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아버지 안에 머무를 수 있다. 영원한 생명은 바로 아버지와 아드님 안에 머무는 데에 존재한다(제1독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는 자신의 신원을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밝힌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의 제1독서는 영원한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것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자 프롬의 유명한 구분을 빌리자면, 자신에게 그저 붙어 있는 것인 ‘소유’에 매여 있는 대신에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깨닫는 체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묘한 것은, 이러한 본연의 존재 경험은 오만과 허영과 자존심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로 내면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조금의 꾸밈도 없이 표현하고 감사하는 모범을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발견합니다. 회개의 세례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은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라는 신원을 철저하게 깨쳤습니다. 자신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직 자기 뒤에 오실 분을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이러한 겸손은 그저 몸에 밴 습관적인 공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요즘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자존감’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열렬히 추구하는 갈망이 그리스도를 만나 온전히 결실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진리를 체험한 사람의 겸허한 자세는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는 증거가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 나는(세례자 요한의 고백)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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