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과 거문고의 유래

2014. 9. 4. 23:17율려 이야기




가야금과 거문고의 유래 | 溫故而 知新
기지개를펴고 2013.06.29 07:54



       

가야금의 유래|* 국악수업자료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당나라의 악기인 쟁을 본으로 삼아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삼국사기] 진흥왕 12년(551)의 기록에 의하여 가야금이 6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가야금의 모양은

오늘날의 풍류 가야금과 같이 12줄과 양이두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점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의 가야금과 일본의

나라(奈良)라는 곳의 정창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신라금의 모양에서도 알 수 있다.


   가야의 악사 우륵은 가야국에 전란이 일어나자 진흥왕 12년(551)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였다.

진흥왕은 그 다음해에 우륵을 국원에 머물게 하고 대내마 법지와 계고, 대사 만덕을 보내어 그 업을 전수받도록 하였다.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헤아려 계고에게는 가야고,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이 세 사람은 우륵에게서 12곡을 배운 다음, 이 음악들은 번차음하니 아정하지 못하다 하여 12곡을 5곡으로 줄였다.]

우륵은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몹시 노하였으나 다섯 곡의 음악을 다 듣고 나서는 '낙이불류(樂而不流)'하고 '애이불비(哀而不悲)'하니 가히 가히 바른 음악이라고 탄복하였다.

 




거문고의 유래|* 국악수업자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악기인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만들어졌다.

[삼국사기] 악지에는 거문고의 유래 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보냈었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이 악기인 줄만 알았지 그 성음과 타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능히 그 소리를 알고 탈 수 있는 사람이 구해서 후하게 상을 준다고 하였다.

당시의 제 2상 왕산악(王山岳)이 그 본 모양을 그대로 두고, 그 법제를 많이 고쳐서 현금을 만들었다.

겸하여 100여 곡을 지어서 그것을 현금으로 연주하였더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어서 그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불렀고,

그 후에 현학금 현금(玄琴)이라고 불렀다.


   위의 글에 거문고가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진나라를 서진(265~316)이 아니라 동진(316~419)으로 본다

해도 왕산악의 연대가 대략 4세기경이므로 거문고의 제작 연대도 4세기경으로 추정수 있다.

원래의 악기 모양이 [삼국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그 당시의 거문고가 오늘날의 거문고와 그 모습이 같았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통구에 있는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에 17괘 위에 얹혀 있는 4현을 술대로 타고 있는 악기가 그려져 있는데,

이 악기의 모양과 괘가 있는 점, 또 술대를 사용한 점 등이 오늘날의 거문고와 대체로 같아, 이 악기가 바로 16괘 6현으로 된 현행

거문고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거문고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의 거문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선생은 말했다. 모든 사물은 세월에 따라 변하며, 그에 맞추어 모든 것에 대한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Eric Hobsbawm과 Hugh Trevor-roper는 말했다. 'Tradition is not given, but made and invented.'

근세 해상제국(해적국가) 영국의 성스러운 왕실의 전통도 사실은 수세기에 걸친 투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걸 New England 미국에서 애써 족보를 대어 가며 모방하려 하고...


   그렇다면 소위 전통이란 것도 우리의 인식 여하에 달린 것이고, 그 전통은 선조들이 만든 것이지만 그 가치를 재발견하여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 된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세대의 전통을 만들어 우리의 후세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rediscover, reinvent and cherish).

   우리는 물론 조선에 망국의 책임을 묻고 있지만, 그 문화는 왕실이나 상류층들만이 이룬 것이 아니라면, 세세한 우리 문화의 하나하나

소중히 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화니 무한경쟁이니 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단순 부정은 아니다)가 우리 입에 붙는 세월이 되었다.

이런 판에 문화에 있어 너무 우리 것만 찾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적 국수주의는 우리가 세계로 나가서 세계인과 어울려 사는 데 장애가 되는 정서를 만들기 첩경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물론 외국 것은 무조건 싫고 우리 것만이 제일이라는 국수주의는 납득하기 힘들다.

   하나 오늘날 국악이 놓인 처지를 생각하면 잘못된 음악 교육이 우리의 음악적 감성을 얼마나 서구화시켰는지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즐기던 민속악에 대한 오해도, 심지어 우리 음악은 너무 울고 짜는 것이 많다는 것까지...

하지만 산조를 들어보면 이 음악들이 얼마나 여유롭고 흥겹고 신나는지는 들어본 사람들만이 알리라...




 

조선 중기 이경윤의 월하탄금도

(달빛 아래 거문고를 타는 선비의 풍류) 



   거문고를 탈 때의 마음자세를 일컬어 마음을 깨끗이 하여

연주에 임하지 않으면 깊은 소리를 낼 수 없다 하였다.

   거문고는 둔탁하면서도 힘있고 거친 듯하면서도 오묘한 음색으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나의 인격완성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종묘제례 정악 합주단의 거문고
(좌로 부터 아쟁, 거문고, 가야금; 뒤는 편경, 편종;
 아쟁은 활로, 거문고는 술대란 짧은 막대로,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켠다)




거문고 산조의 태두 백낙준선생

 

   조선시대 말 백낙준선생(1876-1930)은 아버지가 부르던 구음(oral) 소리가락을 거문고에 옮겨 가야금 산조의 가락을 창안하였고,

처음으로 거문고 산조를 연주했다, 정악(아악; royal, noble)에서 속악(popular)으로...


   가야금 산조와 달리 거문고 산조는 초기에는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과 가시 돋힌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왜냐면 거문고는 예로부터 모든 악기의 우두머리로서 글을 읽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온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굽히지 않고 가락을 발전시켜 가야금 산조와는 또 다른 깊고 남성다운 묵직한 맛의 거문고 산조는 뭇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산조

    시나위에서 비롯된 산조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 본질은 시나위 같되 시나위 보다는 비교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

비유해 말하자면 끝없이 넓은 시나위라는 모래밭에서 찾아낸 맑은 진주와 같은 음악...

   산조란 허튼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는 뜻으로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흥겹게 연주하는 음악이다.

서양음악으로 치면 구조적 차이는 있지만 sonata같은 종류의 음악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도지방의 무속음악인 시나위가락을 장단이라는 틀에 넣어 연주하는 기악독주곡 형식이다.

한데 시나위는 즉훙음악이다.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악기가 엇갈리게 연주하는 묘한 안어울림(cacophony)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앞에서 듣는 이는 몰아의 경지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면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jazz와 흡사한 우리의 고유음악이다.

그래서 혹자는 산조를 숱한 인간 감정을 포용하면서 백인백색의 감흥을 그대로 투영시켜주는 하나의 정직한 거울같은 음악이라 말하기도 한다...온갖 갈등과 인간적 욕구를 털어낼 수 있는 신나는 살풀이판이라고...

   느린 진양조 장단을 들으면서 서서히 현실의 상념에서 벗어나 가락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그때쯤 음악은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으로 넘어가면서 육체를 벗어던진 영혼을 한바탕 춤판으로 이끈다.

자신을 잊고 너울너울 춤추는 사이 어느덧 가락은 숨가쁜 자진모리장단을 타고 자지러진다.


   산조의 이 정점에서 듣는 이는 현실의 괴로움을 잊고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산조다.

산조에 견줄 음악곡 형식은 어느 나라 음악에도 없다(Beethoven이나 Mozart의 Piano Sonata가 견줄만 하지만...).
산조는 우리나라 악기의 아름다운 소리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자 
연주하는 이의 감성을 최대한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이다.



   산조에는 여러 유파가 있는데 이는 산조가 스승에게서 배운 대로만 연주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배운 것을 재창조해 또다른 자기 세계의 음악을 이루어내면 그대로 새로운 음악이 되는 것이 산조이다.

따라서 산조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시대에 맞는 음악적 감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내용을 채우고 만들어 가야할 음악 형식이다.

하나더, 일반적으로 술대로 켜는 거문고 산조가 손으로 켜는 가야금 산조가 더 어렵다고 한다.

해서 가야금 산조는 널리 유행하고 그 유파가 많으나 거문고 산조는 이에 비해 훨씬 덜 그러하다.




한말 일제 침략기의 거문고












 

한말 일제 침략기의 거문고(옆은 harp와 같은 양금)





 

 

한말 일제 침략기의 거문고




 

거문고 산조에서 없어선 안될 고수. 장고로 박자을 맟추고, 
추임새[얼씨구, 얼쑤, 얼싸, 허이, 흐이, 좋다, 좋구나, 잘한다;

세칭 거북이처럼 아싸 좋다; 아자, 빠샤!]로 흥을 돋운다. 

성별은 무의미하다...

최근의 명인들은 김청만 선생, 장덕화 선생 등 대개 남자가 많다.






 
한말 일제 침략기의 거문고

(좌로 부터 단소[피리], 해금[요즘 인기가 많다, 

Violin음색과 유사하다 하여; 정수년, 김애라, 강은일 등], 거문고, 양금)





 

 

한갑득 선생. 신쾌동 명인과 더불어 
거문고 산조의 양대 산맥을 이룬 분이다.


    농현(술대로 켜는 오른손 말고 왼손으로 현을 누르거나 떨어주면서 음의 강약, 톤을 조절하는 것)에서 잔향보다는 힘차게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추성; 밀어 올려 앞으로 나감 straightforward)이 대단한 분이다(불경스럽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Ritchie Blackmore나 Jimmy

 Hendrix의 guitar 주법을 연상시킨다). 삶의 활력이 필요할 때 즐겨 듣는다.




신쾌동 선생. 한갑득 명인과 더불어 
거문고 산조의 다른 한 백미를 이룬 분이다.
[가야금 산조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뒤에 세워진 좌측 것이 가야금, 우측 것과 무릎 위에 있는 것이 거문고]. 섬세한 농현과 잔향의 다스림, 풍류가 가히 일품이다(퇴성; 반 박자 늦추어 음을 늘여 흥을 돋우며 다시 잰박자로 다음 음에 이어가듯, 굳이 비교하자면 Wonderful Tonight의 Eric Clapton의 Slow-Hand나Jimmy Page의 Blues Guitar 주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거문고 산조의 duo, 거문고와 장고




 

원장현선생, 그는 전통(특히 한갑득 명인)을 충실하게 재현하려 애쓰며 
거문고의 원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진하는 우리시대의 명인이다...
다소 음색이 슬프지만...젓대(대금) 산조, 시나위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다.






김무길 선생, 한갑득 신쾌동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루 연주한다.

명인답게 전통을 재해석하여 우리시대에 맞는 소리를 만들려 애쓰는 분이다. 

특히 긴 산조를...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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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고 산조의 명인 한갑득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요새는 문화재지정이니 뭐니 해서 선생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않되는 소리여. 선생한테는 기본가락을 배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지 재주껏 편곡도 허고 창작도 해서 타야 좋지.

밤낮 배운대로만 허면 그건 밥만 먹고 똥만 싸는 꼴이지. 내가 가락을 타는디 '어떻게 가락을 만들어서 듣는 사람의 심장을 건드려주나' 하고 끊임없이 연구를 하니 가락이 한정이 없어. 수시로 변해. 공연때 마다 다르고 켤때 마다 달라. 그리고 즉흥적인 멋이 있어야 허니 한 음을 켜놓고 그 다음에 동으로 갈지 남으로 갈지 북으로 갈지 서로 갈지를 몰라. 그래서 산조가 어려운 거고 그래서 산조가 좋은 거여. 판소리도 마찬가지여....자유자재하고 신출귀몰하고 구석구석 기묘하고 마음대로 사람을 웃기고 울리고. 그래서 국악이 좋은 거여..."라고...


 이 말씀은 마치 Jazz에서의 즉흥연주(improvisation)처럼 같은 소재로도 연주자,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의 자유로운 형식의 연주를 하는 것을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산조가 주로 서편제의 고향인 남도에서 유래된 때문인지, 그 theme과 변주가 마치 '아리랑(진도)' 변주곡(마치 Bach의 Goldberg variations, Mozart의 Variations on a theme of jean pierre duport, Beethoven의 Diablelli variations처럼 Theme 'n variations과 ravel의 bolero[점차 박자가 빨라지면서 음도 높아지듯])처럼 들린다, 서편제에서 진도 아리랑 가락을 신명나게 부르던 '유봉', 상청을 내지르던 '송화'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볼륨을 높여 들으시면 섬세한 농현과 잔향의 다스림, 고수의 추임새 그리고 그 풍류의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greensage 01: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