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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silbo.co.kr/news/photo/201308/421094_150961_1212.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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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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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3일인 8월9일 오늘은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을 방문했던 날이다. 진흥왕은 540년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는데, 그 1년 전인 여섯 살 때 천전리 각석을 찾아왔다. 진흥왕의 이름은 심맥부지(深麥夫知)였다. 그는 539년(법흥왕 26) 7월3일(음) 어머니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와 큰어머니이자 외조모인 법흥왕비인 부걸지비(夫乞支妃, 보도부인)와 함께 천전리 각석에 왔다. 동행자와의 촌수가 좀 복잡한 이유는 신라 왕실의 혼인 방식인 근친혼(近親婚) 때문이었다. 진흥왕의 아버지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은 법흥왕의 동생으로, 형의 딸인 지몰시혜와 혼인하여 진흥왕을 낳았다. 그래서 진흥왕에게 있어 법흥왕은 큰아버지이자 외조부가 되었다.
울주 천전리 각석에 진흥왕이 방문했던 사실은 지금까지 좀 덜 알려져 있었다. 1970년 12월24일 천전리 각석이 공식 발견된 후, 언론에 소개될 때 화랑(花郞)유적으로 대서특필되었다. 천전리 각석 명문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화랑유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명문을 해석해 내면서 진흥왕을 비롯한 신라 왕족들의 행차 사실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초기에 부각된 화랑유적이란 성격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치가 좋은 천전리 계곡은 신라 왕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천전리 각석 명문을 보면, 신라 왕족들이 천전리 각석을 처음 방문한 것이 525년(법흥왕 12) 6월18일(음)이었다.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과 어사추여랑(於史鄒女郞)이 수행원을 거느리고 계곡에 왔는데, 이들은 “오래된 골짜기인데 이름이 없는 골짜기였다. 좋은 돌을 얻어 글을 썼고, …서석곡이라 이름하는 글자를 지었다”고 바위면에 기록을 남겼다.
이것을 보면, 무더운 여름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왔던 사부지갈문왕 일행은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를 보고 그곳을 오래된 골짜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계곡을 ‘서석곡(書石谷)’이라 이름 지었다. 울산의 지명 가운데 신라 왕족이 지은 지명이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유래가 뚜렷한 이런 지명은 이제부터라도 적극 살려내 불리도록 했으면 한다.
천전리 각석의 525년(을사년)에 새긴 명문은 ‘원명(原銘)’이라 불리는데, 발견 당시에는 신라 최고(最古) 금석문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천전리 각석은 지방문화재 지정 절차를 건너뛰어, 1973년 5월 바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천전리 각석의 1위 자리는 얼마동안 유지되다가 1988년 물려주게 되는데, 경북 울진에서 524년(법흥왕 11) 건립된 비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에는 흥미롭게 사부지갈문왕이 법흥왕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요컨대 선사(先史)시대부터 특별한 장소였던 천전리 각석에는 525년 여름부터 신라 왕족들이 행차했으며, 그 방문 사실을 바위에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천전리 계곡에는 왕족뿐만 아니라, 귀족·승려·화랑 등이 즐겨 찾았다. 각석 바위면에는 말을 타고 가는 행렬과 배 그림도 있는데, 이것은 신라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천전리 각석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울산대곡박물관은 상설전시실에서 신라 왕족들의 천전리 각석 방문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그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7월25일에는 사부지갈문왕의 방문일인 음력 6월18일을 기념해 ‘대곡천을 방문한 신라 사부지갈문왕을 찾아서’란 행사를 기획했다. 진흥왕 방문일인 음력 7월3일을 기념해 오는 10일에는 ‘서석곡에 온 신라 왕자’ 어린이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그러나 이런 작은 박물관 수준이 아니라, 좀더 큰 기념행사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흥왕과 신라 왕족들의 울산 행차는 예술·공연분야 등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천전리 각석은 울산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울산 속에서 신라를 만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다. 작은 사실이라도 좀더 다양하게 조명해 나간다면, 그 만큼 울산 지역사는 풍성한 내용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