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대나무 잎에 불어도 좋다. 파르라니 돋아나는 새잎에 스치는 결이 곱다. 그 바람이 실어온 걸까, 대나무는 아침마다 이슬을 자아낸다. 아침햇살에 방울지어 떨어지는 이슬을 발치에 수줍게 자라나는 차나무가 흠뻑 받아 마신다. 이렇게 대나무의 정(精)을 받은 찻잎으로 빚어지는 차를 죽로차(竹露茶)라 한다든가.
전남 승주군 주암면 대광리 용문마을은 산병풍이 둘러처져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않는 탈속(脫俗)의 비처다. 삼태기 안 같아 휴대전화마저 터지지않는 곳이지만 초의(草衣)선사의 다맥(茶脈)을 잇고 있는 차 연구가 박동춘(朴東春.51.여)씨에겐 더없이 소중한 보물단지다. 마을 뒤 모후산(母後山)기슭에 펼쳐진 1천2백평 가량의 차밭 때문이다. 양지 바른 쪽에 적당히 우거진 대나무 숲을 양탄자처럼 덮고 있는 차나무들은 4백여년 전에 심어져 야생화된 것들로 그녀에겐 바로 격물(格物)의 대상이다.
*** 28세때 응송스님과 인연
차란 자연의 정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지순(至純)한 영물. 그래서 일찍이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에서 "하늘이나 신선.사람.귀신 모두 아끼고 사랑하니 너의 성품은 참으로 기절하구나(天仙人鬼俱愛重 知爾爲物誠奇絶)" 라고 찬탄했으리라. 그녀가 차의 새순이 돋아나는 곡우를 전후해 매년 이곳을 찾는 까닭도 '티끌 한점 없는 자연이라야 차의 이(理)를 드러낼 것'이란 단순한 믿음에서다. 천리를 달려온 객(客)을 위해 막 빚어 내는 햇차의 맛이 가위 고수의 솜씨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해맑은 얼굴 하며 온몸에서 청향의 기품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연록의 차순과 살갑게 지내온 지난 세월의 증표이리라.
박씨가 차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스물여덟살이던 1979년 7월 하순 지인의 소개로 전남 해남 대흥사(대둔사)의 주지를 지낸 응송(應松.1893-1990)스님을 만나면서 부터. 응송은 열일곱살에 대둔사에서 출가, 초의선사의 종법손(從法孫:직계가 아닌 방계의 손)이 된 인물로 초의선사의 다풍이 남아있던 시절 차각(茶角:절에서 차 시봉을 하는 스님)을 거쳐 17년 동안 주지(1937-1954)로 있으면서 이른바 '대흥사 다법'을 그대로 계승한 산증인. 오늘날 육우(陸羽)의 '다경'에 견주어 '동방의 다경'으로 불리는 초의선사의 '동다송'과
'다신전(茶神傳)'을 지켜낸 이가 바로 응송이요, 국내 차의 성지인 일지암(一枝庵)터를
찾아 복원케 한 사람도 그이다.
대처승이란 이유로 불교정화운동 때 주지 자리를 내놓고도 인근 백화사에 머물면서 초의와 그 차법을 연구해 전통차 보급에 힘을 쏟고 있던 응송스님이 전적(典籍)을 정리하고 저술을 윤색하기 위해 한학에 조예가 있는 인물을 찾고 있던 중 박씨가 천거된 것. 한학자이던 조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한시 외우기를 좋아했던 박씨는 이미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1914-99)선생한테 4년간 사사한 뒤 민족문화추진위원회에서 공부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있던 터. "주위에서 유학공부는 나중에 해도 되지만 인물에 대한 공부는 기회가 흔치않다며 한번 가보라고 해 백화사로 스님을 찾아간 게 이렇게 깊은 인연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입안에 네댓시간 茶香 여운
당시 여든여덟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다 쓰러져가는 백화사에서 초의차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응송스님은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차나무를 꺾꽂이하는 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어 틈만 나면 차를 우려 함께 마시며 차의 본질이 무엇이며, 유래는 어떻고, 그에 따라 왜,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차근차근 가르쳤다. "백화사에 내려간 지 얼마 안돼서 스님이 차를 한잔 주시는데 마셔보니 입안에 차향이 네댓시간이나 남읍디다. 그동안 밖에서 숱하게 마셔본 차맛과는 사뭇 다른 무엇이 느껴짐과 동시에 아, 차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며 차에 흠뻑 빠져들게 됐습니다." 박씨는 이듬해 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차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님을 따라 초의선사가 가꿨던 대흥사 차밭에서 어린 찻잎을 골라 따면서 선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같아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뜨거운 솥에서 덖음질할 때나 비비고 털어 말리는 숨가쁜 제다(製茶)과정이 오히려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다. 하지만 스님이 만든 맛과 자신이 만든 맛이 그렇게 다른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틈틈이 불교경전 공부도
"선다일여(禪茶一如)니 선다일미(禪茶一味)니 하는 말을 들어오긴 했지만 직접 해보니 좋은 차맛을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선을 깨치듯 차에 대해서 알 때까지 공부를 하리라 발원을 했지요." 박씨는 이같은 차 공부와 함께 틈틈이 스님에게서 불교교리를 배우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한때 인명록(因命錄)을 강의하기도 했던 학승을 독선생으로 모시고 원시불교서부터 반야경.화엄경.사변만어(四辨漫語).선문수경(禪門手鏡)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워낙 유학이 바탕인 데다 불교와 차를 공부하니 유.불.다를 겸비하게 된다는 설렘에 결혼할 생각도 접어둔 채 4년을 백화사에서 보냈다.
스님에게서 무공(無空)이란 호를 받은 그녀는 84년 결혼을 계기로 스님 곁을 떠난 뒤에도 매년 봄 백화사를 찾아 제다 비법을 전수받는가 하면 스님을 모시고 초의선사와 차에 관련있는 유적을 답사하며 전통차의 정신을 몸으로 겪었다.
*** 입문 20년만에 겨우 자신감
85년엔 그동안 그녀의 도움이 결실을 보아 초의선사와 전통차에 대한 스님의 역작 '동다정통고(東茶正統考)'가 출간되었는데 스님은 책의 서문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여 알고 있는 바를 전한다'며 그녀가 자신의 다맥을 이었음을 공표했다.
그녀는 그해 봄 응송스님에게서 '無傳而傳 無受而受 無傳故眞傳 無受故眞受 (전함이 없이 전하고 받음이 없이 받으니 전함이 없는고로 진정한 전함이요 받음이 없는고로 진정한 받음)'이라는 이른바 '다도전수게(茶道傳授偈)'를 받기도 했다.
그녀가 차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건 차에 입문한 지 20년만의 일. "제다란 차의 생잎이 갖는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생리를 훼손치 않은 채 갈무리하는 것일 진대, 그해 봄 차를 덖는데 어느 순간 이거다 하는 감이 잡힙디다. 그 때의 희열이란..." 그 때 이후 잎의 상태에 따라 불기의 조절은 물론 비비기의 깊이도 절로 자유로워져 흔들리지않는 차맛을 빚을 수 있게 됐으니 차에 개안(開眼)한 셈이다.
중국차는 향은 강하나 맑음이 적고, 일본차는 색깔만 화사할 뿐 마시고 나면 닝닝한 데 비해 우리의 전통차는 처음엔 씁쓸한 듯하다 서서히 맑은 느낌을 주는 '선고회감(先苦回甘)'이 특징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건 '여명에 떠오르는 파란 느낌의, 시원하면서도 맑은 맛'. 이를 위해선 한낱 삿됨이 없는 제다는 물론 차를 우리는 법도 결정적 조건으로, 전통 초의차법에 따르면 뜨겁게 마셔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차의 찬 성질을 뜨거움으로 다스려 중정(中正)을 이뤄야 응축된 기가 드러난다는 원리다.
얼마 전 차 제자들과 함께 1백여통의 올 농사를 마무리한 박씨는 요즘 손수 빚은 '자식같은' 차를 주위에 맛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생을 공부해도 선과 하나가 되는 경지의 차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또 한잔의 차를 내놓는 그녀로부터 기자는 "喫茶去(차나 마시고 가라)"는 묵언을 읽었다.
[중앙일보] 선을 닦듯 차를 만듭니다
2002-05-06
violinen.com/zeroboard/view.php?id=tea&page=1&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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