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

2016. 1. 25. 01:47글씨쓰기

     

초서




草書

도정 권상호


  草書의 속성은 簡易化에 있다. 어느 서체를 막론하고 빨리 쓰고자 할 때에는 자연히 흘려 쓰게 마련인데 이를 草率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기록상으로 볼 때 篆書를 사용하였던 중국 戰國時代에 이미 草稿라 하여 빨리 쓰기 위한 草體가 있어 正體와 구별되었다. 따라서 넓은 뜻에서 초서는 모종의 자체를 草略한 書體 모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또한 書體史에서 말하는 고정된 의미의 초서도 隸書를 사용하였던 漢初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그 변천 과정에 따라 隸書를 간략하게 速寫한 章草가 先行하며, 張芝가 章草에서 波磔을 제거하고 글자 上下의 血脈을 이어 創案하였다고 전해지는 今草는 이후 東晋時代 二王 父子에 의하여 극치를 이루어 후대의 표준이 되었다. 狂草는 唐 후기 張旭에서 비롯된 것으로 魏晉時代 이래 전통적인 초서 필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정을 마음껏 표현하여 자신도 가누지 못할 만큼 作爲性을 초월한 상태에서 썼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초서는 극도로 생략된 點畫과 線條에 자신의 정감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쓴 사람은 알아도 그것을 보는 사람은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흔히 있다. 그렇기 때문에 或者는 草成最難이라 하여 草書가 글씨 중에서 가장 이루기 어렵다고 한다.


 

  草訣歌(東晋 王羲之)


1 草聖最爲難 초성 되기가 가장 어려우니   龍蛇競筆端 용과 뱀이 붓끝에서 다툰다.


2 毫釐雖欲辨 아주 적은 차이일지라도 분별되어야 하니   體勢更須完 그래야 글씨 형체가 더욱 완전해 진다.


 

  書譜를 쓴 孫過庭은 唐初에 활약했던 사람이다. 그의 名字, 生卒, 官職에 대해서는 異說이 많다. 하지만 그는 博學하고 文章과 書에 능했으며, 특히 草書의 名家로 알려져 있다.


  孫過庭이 쓴 書譜는 四六騈儷文의 唯美的인 文體로 전통적인 입장에서 書論을 정리한 槪說書이다. 이 글에 나타난 서론은 王羲之 典型의 근거 아래 漢魏 이래 能書家의 書品과 이론, 서예술의 가치 등 學書의 理念을 논한 내용으로 기본적으로는 六朝書論의 美學的 견지에서 보았으며, 한편 작가로서의 체험에 의한 독자적 견해를 피력한 중국의 대표적 서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書譜는 서론으로서의 중요성 못지않게 草書 학습의 典範이 되고 있다. 혹자는 서보를 千篇一律的이고 변화와 생동감이 부족하며 運筆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酷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보에는


  첫째, 點畫


  둘째, 用筆


  셋째, 結句


  넷째, 章法 


  등의 특징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書譜를 초서 학습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서보를 대하기 전에 먼저 顔眞卿의 三稿와 王羲之의 尺牘集을 통하여 초서에 대한 눈을 뜨는 것도 좋다. 이후에는 초서의 典範인 서보가 문장도 훌륭할 뿐 아니라 글씨도 좋아, 항상 이를 携帶하면서 玩賞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개성이 강한 狂草와 明淸代의 草書帖을 보면서 그들의 장점과 특징을 익히면 더욱 좋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 개성이 강한 작품들이어서, 지나치게 방종해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다시 서보를 통하여 沈着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보면 서보가 초서 학습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書家를 막론하고 각기 독특한 字法과 章法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性情을 書寫하고 예술적으로 昇華시키고 있다. 또한 그 가운데서도 공통적인 자법과 장법을 발견할 수 있으니, 여기에 초서 학습상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타원형을 비롯한 몇 가지의 자형이 있다.


     1. 타원형


     2. 방사선형


     3. 左短上齊(왼쪽이 짧을 때는 위를 가지런히 한다.)


        右短下齊(오른쪽이 짧을 때는 아래를 가지런히 한다.)


        - 그러나 가지런한 부분이 칼로 자르듯이 너무 정리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때로는 몇 자를 이어 써서 連續感과 生動感을 극대화시킨다.


  셋째, 首尾雙關의 法則을 사용하여 전체의 統一性을 추구한다.


 

  이렇게 書譜를 익힌 후에 張旭과 懷素의 狂草나 明淸代 諸家들의 名帖들을 가까이 하면 초서 공부에 進一步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손과정의 서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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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過庭/648~703)


중국 당()나라 초기의 서예가. 자 건례(虔禮). 진류(陳留:河南省) 출생. 벼슬은 솔부록사참군(率府錄事參軍)에 이르렀다.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배워 초서를 잘 썼다. 그의 저서 《서보(書譜)》는 왕희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인적 서법을 근본으로 글씨를 공부하는 방법을 논한 것으로, 특히 저자의 자필본(自筆本)으로 유명하다. 그의 진적본(眞蹟本)이라 하는 초서의 권자본(卷子本)이 청나라 조정에 전해오고, 사진으로 복제되어 있다. 그의 글씨나 논지(論旨)는 모두 왕희지에 대한 숭배가 나타나 있다. 그 밖의 진적본으로 《초서천자문(草書千字文)》 《경복전부(景福殿賦)》가 전한다.


 

(草書)


한자의 전서예서 등의 자획을 생략하여 흘림글씨로 쓴 서체. ()는 초고(草稿)의 뜻이며, 신속히 쓰는 필기체로서, 중국 한대(漢代)에 비롯되었다. 전한(前漢) 무렵, 전서의 필기체로서, 고초(古草)가 있고, 후한(後漢) 초기에 장초(章草)가 생겼으나 이것은 예서의 자획을 간략하게 한 것이며, 붓을 치키는 팔분(八分)의 필법을 가진 기복(起伏)이 심한 것이었다. 후에 동진(東晉) 초기(330?)에 팔분의 필법은 없어지고, 한 자씩 차분히 쓰는 왕희지(王羲之)의 《십칠첩(十七帖)》과 같은 독초체(獨草體)나 붓을 떼지 않고 이어서 쓰는 왕희지의 《상란첩(喪亂帖)》과 같은 연면체(連綿體)가 생겼다. 왕희지나 그의 흐름을 따르는 서가들에 의해서, 간략민속한 필기체라는 편리성보다도 초서 독특한 미가 발휘되었고 당대(唐代)에는 더욱 흘려쓴 회소(懷素)의 《자서첩(自敍帖)》과 같은 광초체(狂草體)를 낳았다. 또한 초서를 해서의 흘림글씨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며, 해서는 초서보다 후에 성립된 것이다.


 

광초(狂草) ; 지나치게 휘갈겨 쓴 초서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 당대(唐代)에 시작되어 장욱(張旭)과 회소(懷素)가 쓴 글씨가 대표적이고, 명말청초(明末淸初)에는 왕탁(王鐸)과 부산(傅山)이 유명함.






  














[cǎo shū]  

草书

草书是汉字的一种字体,特点是结构简省、笔画连绵。形成于汉代,是为了书写简便在隶书基础上演变出来的。有章草、今草、狂草之分,在狂乱中觉得优美。
中文名
草书
特    点
结构简省、笔画连绵
形成年代
汉代
代表人物
崔瑗张芝张旭怀素

历史编辑

说文解字》中说:“汉兴有草书”。草书始于汉初,其特点是:存字之梗概,损隶之规矩,纵任奔逸,赴速急就,因草创之意,谓之草书。
章草笔划省变有章法可循,代表作如三国吴皇象急就章》的松江本。今草不拘章法,笔势流畅,代表作如晋代王羲之初月》、《得示》等帖。狂草出现于唐代,以张旭怀素为代表,笔势狂放不羁,成为完全脱离实用的艺术创作,从此草书只是书法家临摹章草、今草、狂草的书法作品。狂草代表作如唐代张旭《肚痛》等帖和怀素《自叙帖》,都是现存的珍品。

发展编辑


从草书的发展来看:草书发展可分为早期草书、章草和今草三大阶段。早期草书是跟隶书平行的书体,一般称为隶草,实际上夹杂了一些篆草的形体。初期的草书,打破隶书方整规矩严谨,是一种草率的写法。称为“章草”。章草是早期限草书和汉隶相融的雅化草体,波挑鲜明,笔画钩连呈“波”形,字字独立,字形遍方,笔带横势 。章草在汉魏之际最为盛行,后至元朝方复兴,蜕变于明朝。汉末,章草进一步“草化”,脱去隶书笔画行迹,上下字之间笔势牵连相通,偏旁部首也做了简化和互借,称为“今草”。今草,是章草去尽波挑而演变成的,今草书体自魏晋后盛行不衰。到了唐代,今草写的更加放纵,笔势连绵环绕,字形奇 变百出,称为“狂草”,亦名大草。 到了今天,草书的审美价值远远超越了其实用价值。 草书是按一定规律将字的点划连字,结构简省,偏旁假借,并不是随心所欲的乱写。草书符号的 主要特征之一是笔画带钩连,包括上下钩连和左右钩连。隶化笔法的横势倾向,为左右钩连的草化提供了依据。章草笔法用“一”形,今草笔法用“s”形。这是两者的根本区别。运笔放纵、点画狼藉的又称大草或狂草。

典故编辑

亦自不识

张丞相素好草书而不工。当时流辈皆讥笑之,丞相自若也。一日得句,索笔疾书,满纸龙蛇飞动,使侄录之。当波险处,侄惘然而止,执所书问曰:“此何字也?”丞相熟视久之,亦不自识,诟其侄曰:“汝胡不早问?致予忘之!”[1] 

译文

张丞相喜欢书写草书(草体字),但是很不工整。同行们都讥笑他,他却不以为意。一天,他忽然得到佳句,赶忙索要笔墨奋笔疾书,字非常潦草,写了满纸。他当即让侄儿把诗句抄录下来。侄儿抄到笔画怪异的地方,感到迷惑不解,便停下笔来,拿着他所写的字询问张丞相念什么字。张丞相反复辨认了很久,也没认出来自己写的是什么字,于是就责骂侄儿说:“你怎么不早一点儿问我,以致我也忘了写的是什么。”

注解

张丞相:即张商英,北宋人,宋哲宗时官至宰相。
工:好
流辈:同流的人,此指草书爱好者们,即同行们。
自若:自如,即跟平常一样,不受别人的影响。
录:抄录
波险处:指笔画曲折怪僻的地方
惘然:迷惑的样子
执:拿
熟视:反复地看
久之:长时间,“之”是语气助词,无实义。
诟:责骂
胡:为什么
致:以致[1] 

划分编辑

广义的草书

是指草写的书体。它包括两种情况:一是,
 
在文字不统一的远古时代,自然不会有统一规范的草书,那时出现的潦草的字,就属于广义的草书;二是在文字统一后,在应急的情况下,或者是在起草文书稿件、记录他人谈话时,行笔快捷,笔画连带、省略,信手写的不规范的潦草的字,这种潦草的字很难用于交流,隔久了甚至连写字的人也难以识别,这种潦草的字就属于广义的草书。

草书

为了便捷书写,经过漫长的约定俗成的过程,尤其是在篆书向隶书转化的时期,民间流行的草字的数量逐渐增多,写法逐渐统一,经过由量变到质变的过程,终于产生了具有法度的草书,那便是章草,之后进一步发展成今草,狭意的草书就是指章草和今草
自章草起草法就基本形成了,约定俗成的草法既具有法度的规范性,又具有很大的灵活性,其基本内容包括以下三个方面:一是,草书是笔画省略,结构简便的书体。二是,草书是以点画作为基本符号来代替偏旁和字的某个部分,是最具有符号化特征的书体。三是,草书的笔划之间字与字之间相互连带呼应,是便于快捷书写和便于表达书者情感的书体

简史及特点编辑

任何书体在使用中都有简便易写的要求,发生省简笔画和潦草的趋势。这种趋势是文字演变的主要原因。每当社会变革和文化大发展的时期,文字应用频繁,个人随手省简,异体字出现的速度加快,为了使文字更加利于应用,势必要加以纠正。甲骨文时期有草写的痕迹。“周宣王太史作籀书”、“李斯小篆”、“程邈作隶书”以及蔡邕以八分书写熹平石经等,都是两周、秦、汉各自对当时流行的字加以规范化而颁定的标准字样,也是公认已形成的新的书体为正体字的开端。
但是要求简易的趋势并不因此停止。早在记录帝王公卿大事的商代甲骨文、周代金文里就有简笔和潦草的字迹,史籍中“屈原属草藁”、“董仲舒藁书未上”,说明战国古文和西汉隶书在急速书写时也非正体。据魏晋人记载,东汉北海敬王刘睦“善史书,当世以为楷则”,刘睦死前,明帝派驿马“令作草书尺牍十首”。章帝时,齐相杜度善作习字的范本,章帝曾诏令杜度草书奏事。可见公元 1世纪中叶以来,草字已经不尽是出于匆促书写而是被珍视和仿习的字体了。从近世出土的汉简可以看到,西汉武帝时字划省简的隶书已经通行。到新莽时期,有更多省划和连笔的字。东汉光武帝建武二十二年(公元46年)简就已经完全是草书了。但是从周代到新莽时期都不曾把草书列为一种书体
说文解字》成书于和帝十二年(公元 100年),许慎[2]  在《叙》里说“汉兴有草书”,是以草书为一种书体之始。东汉末期,张芝其同时以及稍晚的钟繇等名家辈出,各成流派。当时赵壹有《非草书》之文,蔡邕有类似之议,以维护正体字的地位,这反映出草书已极一时之盛。汉末直到唐代,草书从带有隶书笔意的章草发展成韵秀宛转的今草,以至奔放不羁、气势万千的狂草。
章草起于西汉,盛于东汉,字体具隶书形式,字字区别,不相纠连;历代对章草的名称有不同的说解。有见汉末以来《急就章》有草书写本而说章草因《急就章》的章字得名的,最为无稽。有以章帝爱好草书或曾令用草书作奏章,甚至说章帝创造草书的,都属臆测。有以章法之章与章程书章楷的章同义,符合早期草书略存八分笔意,字与字不相牵连,笔画省变有章法可循的事实,近人多信此说。
今草起于何时,又有汉末张芝和东晋王羲之、王洽两种说法。从传世的表、帖和出土的汉简、汉砖看,在汉末以八分书为正体字的同时,已经出现近似真书的写法。草书也会随之变异。略晚于张芝的草书家崔瑗作《草书势》,对草书有“状似连珠,绝而不离”、“绝笔收势,馀綖纠结”、“头没尾垂”、“机微要妙,临时从宜”的描述,可见汉末的草书笔势流畅,已不拘于章法。书体演变本来没有截然的划分。说今草起于张芝是从新体的萌芽看;说今草起于二王,是着眼于典型的形成。唐代以来真书沿袭至今。
草书在唐代出现了以张旭、怀素为代表的狂草,成为完全脱离实用的艺术创作.狂草亦称大草,笔意奔放,体势连绵,如唐朝张旭《千文断碑》、《古诗四道》,怀素僧《自叙帖》等等,,张旭史称“草圣”,孙过庭书谱》字字区别,不相连接,而笔意活泼、秀媚。“大草”与“小草”相对称,大草纯用草法,难以辨认,张旭、怀素善此,其字一笔而成,偶有不连,而血脉不断。清朝冯班《钝印书要》谈学草书法云:小草学献之、大草学羲之,狂草张旭不如学怀素。怀素的草字容易辨认,字迹清瘦见形,字字相连处亦落笔清晰易临。张旭字形变化繁多,常一笔数字,隔行之间气势不断,不易辨认,形成一种独特的风格,韩愈《送高闲上人序》中提到张旭草书以“喜怒窘穷,忧悲愉佚,怨恨、思慕、酣醉、无聊、不平,而有动于心,必于草书挥毫发之”,故学张旭难。

衍生与发展编辑

近常见隶书笔法中带草笔飘逸之体,谓隶草,有些像章草,这与平时善写隶书精熟有关,故书隶草能独树风格。也是书写表演的一种手法。
破草”是现代书家中最常见的,如狂草书法家杜浩平梅湘涵的书法作品,它的特点是点划结体,使转和用笔,多为从古到今各书家中的结体演变成自己风格,王羲之书体中学一些,王铎法帖中取一些,祝允明、孙过庭等等历代名家中取其长处,集自己之品貌,任意发挥,洒脱自如,这种写法和今草相似。
行草有“草行”之说,书体中带有许多楷法,即近于草书的行书。笔法比较流动,清朝刘熙载《书概》云:行书有“真行”、有“草行”。“真行”近似真书而纵于真,“草行”近于草书而敛于草。唐朝张怀瓘《书议》云:兼真者谓之“真行”,带草者谓之“行草”。故

草书是汉字的一种字体。它出现较早,从汉代初期,书写隶书时有时才“草率”地书写而形成的,由于汉章帝喜好草书,因此被称为“章草”,是一种隶书草书。章草字字独立,接近于行草,但对难写之字简化不多,书写不变。后来楷书出现,又演变成“今草”,即楷书草书,写字迅速,往往上下字连写,末笔与起笔相呼应,每个字一般也有简化的规律,但不太熟悉的人有时不易辨认。一般也把王羲之王献之等人的草书称为今草。
今草简化的基本方法是对楷书的部首采用简单的草书符号代用,代入繁体楷书中(尽管草书出现得不比楷书晚),往往许多楷书部首可以用一个草书符号代用,为了方便,字的结构也有所变化。因此,不熟悉的人较难辨认。草书符号的整理可以查阅《标准草书》。
到唐朝时,草书成为一种书法艺术,因此演变成为“狂草”,作为传递信息工具的功能已经减弱,成为一种艺术作品,讲究间架、纸的黑白布置,是否让人能认清写的是什么已经不重要了。在狂草中,有“词联”符号,就是把两个字(常见词组)写成一个符号。由于当时书写多是从上到下地竖行书写,词联符号的设计也类似。“顿首”“涅盘”等都有草书词联符号。
日语中的平假名是以汉字的草书形式为蓝本创作的。
现代人学习草书一般以今草为起点。普遍认同的草书写法有于右任先生编著的标准草书(有同名字帖)。

章草编辑

草书是中国文字最为简约的书体。草书的起源,亦如行书,或其他书体,无法确指始于何时。史记说:“战国时,楚怀王使屈原造宪令,草稿未上,上官氏见而欲夺之,盖草书之祖起于。”据此故有草书缘起于草稿之话,可见战国时即已有草书的形成。因为起于草稿的字体,为了发挥速写功能,较为省略草率,自然不能工整,草草写成,顾名思义而为草书。但此种草书,仅能说是古篆(当时使用的字体)的草稿,真正草书的开始发现,则始自汉初,其演变过程,自应是先有“章草”,而后又有“今草”,再又有“狂草”等草体了。
章草是隶书速写而成,故源出于隶。传说为西汉元帝时黄门令史游所创。宋赵彦卫云漫钞说:“宣和,陕古人发地得木简,字皆章草,乃永初二,发夫讨叛羌檄。米元章帖言:章草乃章奏之草。今考之既用于檄,则理容施于章奏。盖小学家流,自古以降,日趋于简便故大篆变小篆,小篆变隶;比其久也,复以隶为繁。则章奏文,悉以章草从事,亦自然之势;故虽曰草,而隶笔仍在,良繇去隶未远也。”此说章草因通於章奏得,其说较为可信。“章草”字体,虽已“隶书”简约,但仍略带波磔,若从汉初木简书迹(上图),可见初期的“章草”,实际上就是应急的粗率“隶书”变体。故其笔法与结体,无一定规范可循,一直到了东汉的张芝,章草字体,才臻成熟,至魏晋而登峰造极。其中著名的书家,如魏时的韦诞、吴时的皇象、晋时的索靖,都称为一代章草的宗匠。
“章草”传世的法帖,计有史游《出师颂》、《淳化阁帖》中张芝书、皇象所书《急救章》、索靖的《月仪帖》等。虽传刻至今,但法度端凝,体势坚劲,有独立自强之特,仍足供为后人临摹研究的最佳资料。
“章草”的笔画略带隶书的波磔,而字字独立不相连带;利用符号,一笔万同,是汉隶行书之变体。
今草即现今所通行的草书,通称为草书,传说为後汉张芝(伯英)所创始。韦诞说:“芝学杜度,转精其功,可谓草圣,超前绝後,独步无双。”张怀 《书断》说:“自杜度妙於章草,崔瑗、崔实,父子继能。伯英得崔杜之法,故知新,因而变之,以成今草。字之体势,一笔而成,偶有不连,而血脉不断;及其连者,笔脉通其隔行。惟王子敬深明其旨,故行首之字,往往继前行之未,世称一笔书起自张伯英,即此也。”又说:“章草之书,字字别。张芝变为今草,上下牵连,或上字之末,而为下字之上。呼史游草为章草,因伯英草而谓今草也。”由是而知,“今草”与“章草”不同之处:章草字字独之,系速写隶书而成,而“今草”则省去“章草”的波磔,上下牵连,是速写“章草”而成的。于右任先生标准草书自序说:“其为法:重形联,去波磔,符号之用加,使转之运益;大令所谓穷伪略之理,极草之致者,最为得之。”按“重形,去波磔。”二语,可说是“今草”的特征,也是“今草”益趋简捷的所在。

草书区别编辑

章草笔画简约,有萦带连接,与今草相似。但其结体平正,用笔劲涩,笔画中有波磔,特别是捺画的起笔与捺的末笔,明显的保留了隶书的笔意,且字字独立,不相连绵,排列整齐,与今草、狂草有明显的区别。今草即一般所说的草书,它是脱去了章草中保留的隶书形迹,并在章草和楷书的基础上加快行笔,增加圆环勾连而成。张怀瓘《书断》中说:“章草之书,字字区别,张芝变为今草,加其流速,拔茅连茹,上下牵连,或借上字之终而为下字之始,奇形离合,数意兼包。”这正是章草与今草不同体势和运笔的概括,代表作如崔瑗《贤女帖》。
狂草创始于唐朝,唐人张旭是狂草的开山祖,故有“草圣”之称。后来的和尚怀素亦是狂草大家。狂草比今草更加简便快速,且笔势更加连绵回绕,活泼飞舞,奔腾放纵,大有驰骋不羁,一泻千里之势。古人谓其形体“或敛束而相抱,或婆娑而四垂,或攒翥而整齐,或上下而参差,或阴岭而高举,或落择而自披。”真是“众巧而百态,无尽不奇”。作者可借其抒发奔放激越之情,或寄以驰骋纵横之志,或托以散郁结之怀。但由于其省笔多,形体与楷、行二体相差太大,故较难辨认。[4] 

一笔书编辑

今草又称“一笔书”,张怀瓘说:“(草)字之体势,一笔而成,偶有不连,而血脉不断,及其连者,气候通其隔行……世称一笔书者,起自张伯英。”《书断》所谓“一笔书”是指今草在创作过程中,字与字之间,行与行之间映带连属,顾盼多姿,或笔笔连级,或笔断意连,所以草书又称为一笔书,张芝今传(将军帖)便是其代表作。到了王献之的《中秋帖》、《十二月帖》,“一笔书”表现得就更明显了。不管怎么说张芝在书法史上的地位还是很高的,难怪有人称之为“草圣”。[5] 

人物作品编辑

1)张旭唐 《古诗四帖》
2)怀素唐 《自叙帖》
3) 孙过庭唐 《书谱》
4)黄庭坚宋 《李白忆旧游诗卷》
5)米芾宋 《论草书帖》
6)赵佶 宋 《草书千字文》
7)鲜于枢 元 《石鼓歌》
8)祝允明 明 《前后赤壁赋》
9)文徵明 明 《草书诗卷》
10)徐渭 明 《白燕诗卷》
11)王铎 清 《草书诗卷》
12)林散之  草书《中日友谊诗》[3] 
13)李志敏 《草论-三春堂狂草》[6] 

章法原则编辑草书之章法虽难以定形,但也有其必须遵循的原则。

(一)气势贯通
蔡邕说:“势来不可止,势去不可遏。”要使静止的字活起来,就必须讲“势”。势是发展的、流动的、变化的,所以蔡邕认为笔势应来去自然,不可遏止。这“势”就是“血脉”、“筋脉”,是章法气势形成的根源,也是草书章法形成的原因之—。唐张怀瓘在《书断》中说得很透彻:“字之体势—笔而成,偶有不连而血脉不断。”此言用于小草是最适当的。虽有时点画不作连写而仍需气脉相贯。一字如此。一行也如此。要能上下承接,左右瞻顾,意气相聚,神不外散。字与字之间的贯气,主要靠上下字之间的欹侧斜正的变化,有揖有让,递相映带,有时靠势的露锋[7]  承上引下,有时靠急速的回锋以含其气,在静止的纸上表现出动态美。清梁同书说“气须从熟中来,有气则自有势,大小、长短、欹正,随笔所至,自然贯注成一片段。”所以气势还需从用笔的精熟中来。若用笔滞凝,神情呆板,拘谨不畅,则必无势可言,贯气更谈不上了,所以书法艺术得势才能得力,得力才能得气,得气才能得神,草书之作全在神驰情纵,得心应手之间写出精神和气质来。笔势是多变的,“飘若浮云,矫若惊龙”、“崩浪雷奔”、“百钧弩发”,这些在书法中常见的形容词都是在捉摸不定的动态中以物喻情的。正是因为草书章法无固定不变之状,所以见之可以自由想象、思游云天。

草书章法之错综变化难以名状,错综者指字之大小错综、疏密错综、用笔轻重错综,欹正错综等,怀素《自叙帖》、张旭《古诗四首》皆极尽错综变化之能事,其章法常以“雨夹雪”喻之。如落叶纷披,令人眼花缭乱,然片片落叶又极规则,规则中有不规则,视觉上是动的。细审之,每一字又静静躺在纸上,并不曾动,这就是因其错综变化所致的艺术效果。形成草书章法的整体效果是:满纸盘旋,飞舞,内气充盈,十分的传情,十分的浪漫,激情不可抑止。丁文隽在《书法精论》中精辟地指出:“就一字观之,真之结构密而大草之结构疏,就全幅观之, 真之结构疏而大草之结构密。”以人求异之心而论,草书之章法最异,最能满足人们求异心理的需要,最能吸引人的视线。
草书章法理应“虚实相生”。“实”指纸上的点画,也即有墨的黑处;“虚”指纸上点画以外的空白,也即无墨的白处。老子曰:“知白守黑”,是指哲理上的虚实,是对世间万物矛盾的一种理解和调和的方法。用在书法上,就是要调配好黑白之间的关系,太黑则墨气一团,气闷而有窒息感;太白则凋疏空旷,气懈而有松散感。草书章法中还应有“透光之美”,其作品的雅趣往往在“白”的妙用,也就是在“虚”处来体现书法艺术的韵致和高雅之情。邓石如说:“字画疏处可以走马,密处不使通风,常计白当黑,奇趣乃出。”在草书章法的处理上,要“虚者实之”,“实者虚之”,虚中有实,实中有虚,互补互生,使字与字,行与行之间能融为一体,缜密无间。所以刘熙载说:“古人草书,空白少而神远,空白多而神密。”空白多反而显其密,妙在线条的粗细强弱的交替,笔势的开合聚散的变化,字形的大小高低的错杂,构成虚实相生章法效果。字字相插,行行相争,相争相插处互挤互拥,相让相避处又遥相呼应,磊磊落落,洋洋洒洒,体现出草书狂放、瑰奇、纵逸的艺术风格。怀素、徐渭的草书最为典型。虚与实是相互对立的矛盾体,对任何一方的失控,就会使矛盾突出。太虚则疏,太实则闷。但虚实是相对而言的,没有虚就无所谓实,反之亦然。矛盾双方都得依赖对方而存在而变化。故最终还应有所调和,使矛盾的双方违而不犯,和而不同,变而不乱,作品才会有浑然一体的和谐之美。若能在草书章法处理上使矛盾在又冲突、又调和中指挥若定,胸有成竹,使作品能险而不怪,潇洒畅达,超然入胜,毫无雕饰,变化出于自然,新奇仍能守法,斯乃谓之高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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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字演变

演变种类
甲骨文 ( 殷商时期 ) 金文 ( 殷商到秦统一之前 ) 隶书 ( 秦朝到汉代 )
楷书 ( 三国时期 ) 草书 ( 汉代 ) 行书 ( 东汉之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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