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5. 05:51ㆍ美學 이야기
“이제 논쟁의 결론 내려야 … 반출 막는 ‘국가문화재’ 지정 시급하다” 유물유적
“이제 논쟁의 결론 내려야 … 반출 막는 ‘국가문화재’ 지정 시급하다” 김대환의 文響 (20) 高麗宮址(滿月臺)에서 출토된 ‘世界最初의 高麗金屬活字 ’
현재 문화재지정 심사 중인 고려금속활자는 하루속히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해외로 반출되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해외의 기관이나 개인 수집가들은 이미 이 고려금속활자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회만 되면 소장하려고 혈안이다.
▲ 사진3 해외로 반출된 백제금동반가사유상 한국문화사학회 사진제공
“선조들이 남겨주신 遺物은 말이 없다. 다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後孫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남북공동발굴단이 개성의 高麗王宮址를 계속 발굴해 가면 반드시 잔여분의 高麗金屬活字가 출토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물관에선 볼 수 없는 문화재』(김대환, 경인문화사, 2014) 205쪽에서
“아직도 개성의 고려궁터(滿月臺)에는 잔여분의 금속활자들이 後孫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중단된 남북공동발굴이 재개돼 하루속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길 바란다. 世界最古의 금속활자 책인 直旨心經과 세계최고의 금속활자인 證道歌字가 모두 우리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 「김대환의 문향」 1회, <교수신문> (2015년 3월 2일)
“아직도 文化財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증도가자’를 가볍게 평가절하 하는 연구자들의 벽에 막혀 국내 文化財指定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後孫의 한사람으로 뼈저린 反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이가 재판정에서 나오면서 한 말처럼 ‘증도가자’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도 우리 선조가 만든 ‘世界最初의 금속활자’임에는 변함이 없다.” -「김대환의 문향」16회, <교수신문> (2015년 10월 20일)
“또 다시 高麗의 先賢들께 머리 숙여 謝罪한다. 세계적인 인류의 문화유산을 창조한 민족의 後孫으로서 올바로 지키지 못하고 硏究者로서 힘이 되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희망은 남아있다. 북녘 땅 개성의 高麗王宮址(滿月臺)가 정식 발굴이 이뤄져서 아직 땅속에 남겨져있는 世界最初의 고려금속활자가 출토되면(반드시 출토될 것으로 확신한다) 고려금속활자의 모든 眞僞論爭은 끝날 것이고,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 「김대환의 문향」 17회, <교수신문>(2015년 11월 3일)
그동안 필자가 꾸준히 주장해 오던 ‘고려금속활자의 칼럼’ 결론부분이다. 드디어 지난 11월 14일 개성 만월대의 발굴현장에서 세계최초의 고려금속활자가 남북공동발굴단에 의해서 출토됐다. 만월대 서부 건축군 최남단지역 신봉문터 서쪽 255m 지점에서다(사진1).
출토된 금속활자는 구리와 주석으로 합금된 靑銅으로 鑄造됐으며 크기는 가로 1.36cm, 세로1.3cm, 높이 0.6cm이고 ‘전일한 전’(嫥)자와 유사해 보이지만 현대의 字典에는 나오지 않는 글자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발표했던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와 크기 형태가 같은 종류다(남북공동발굴단은 다른 종류라고 발표했다). 금속활자 뒷면의 半球形 홈과 사용했던 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먹을 채취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하면 정확한 製造年代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성분 분석을 하면 금속활자의 앞면과 뒷면의 합금성분비가 다르게 나올 것이며, 컴퓨터 단층촬영을 하면 금속표면의 靑銅病 때문에 이중구조로 보일 것이다(얼마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청주고인쇄박물관의 고려금속활자를 僞作으로 제시한 근거).
이제는 논쟁 중인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의 결말을 내릴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줄기차게 假品이라고 주장한 연구자들이 제시한 이유나 논거는 설득력을 잃게 됐다. 또한 계속되는 남북공동발굴은 더 많은 고려금속활자의 발굴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필자가 조사한 만월대에서 출토된 활자는 모두 3종류로 금속활자 2종과 도활자 1종이었다(사진2). 이번에 발굴된 금속활자는 이중에서 (사진2)의 ‘侶’자와 같은 계통의 활자다. 남권희 교수가 ‘증도가자’라고 주장해 오던 금속활자의 크기와 鑄造形態, 腐蝕狀態, 鑄造後의 다듬기 등이 일치한다. 이러한 공통점은 그동안 남 교수에 의해 발표된 고려금속활자가 모두 개성의 高麗宮址(滿月臺)에서 출토된 것이라는 結論에 이른다.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점은 ‘증도가자’란 用語의 해석이다. 남 교수가 발표한 ‘증도가자’는 高麗時代에 실제로 불리 운 금속활자의 이름이 아니고 편의상 남 교수가 붙인 이름이다. 따라서 高麗王室에서 제작된 이 금속활자는 ‘南明泉和尙頌證道歌’만을 찍어내기 위한 활자가 아니고 수많은 종류의 典籍을 만드는데 사용한 王室用 活字임이 분명하다.
현재 문화재지정 심사 중인 고려금속활자는 하루속히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해외로 반출되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일 남권희 교수에 의해 발표된 고려금속활자가 假品으로 誤判돼 국가문화재 指定이 안 된다면 이 금속활자들이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의 기관이나 해외의 개인 수집가들은 이미 이 고려금속활자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회만 되면 소장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한번 流出된 문화재는 언제 還收될지 기약이 없다.
1993년 부여의 泗泌山城에서 출토됐었던 국보급 ‘百濟金銅半跏思惟像’의 사건(등산하던 사람이 발견해 당국에 신고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문화재지정을 신청했으나 한 연구자의 僞作 판정으로 문화재지정이 기각돼 결국 해외로 반출되고 수십억원에 매매돼 현재는 遺物의 행방조차 모르게 됐다)처럼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사진3).
문화재 연구자가 유물의 眞僞鑑定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창피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진위감정을 할 능력이 안 되면서 아는 것처럼 무리하게 言行하는 것은 개인의 단순한 過誤를 떠나서 우리 민족에 대한 크나큰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때문에 그동안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를 僞作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던 연구자들의 진심어린 反省이 필요한 때다. |
|
cafe.daum.net/kphpi21/G16B/342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美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려 고분 벽화 (0) | 2016.02.16 |
---|---|
‘원숭이 해… 병신년(丙申年)의 의미는? (0) | 2016.02.16 |
김대환의 文響 (19) 청동상감 ‘정진대사’명 세발항아리 (靑銅製象嵌‘靜眞大師’銘三足壺) (0) | 2016.02.15 |
김대환의 文響 (18) 청자동화오리연적 (靑磁銅畵鴨形硯滴) (0) | 2016.02.15 |
[윤철규의 한국미술명작선 ⑬·끝] 쉰 한 살 단원 김홍도의 봄날. (0) | 2016.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