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대(洗心臺)와 낙기대(樂飢臺)

2016. 3. 6. 12:29잡주머니


세심대와 낙기대/이인학 | ★수필♡

두루미 2015.03.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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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대(洗心臺)와 낙기대(樂飢臺)

꽃밭정이수필창작반 이인학

 

 

 

  선대의 고향언덕 바위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여섯 글자가 새겨져있다. 어릴 적에는 별 관심이 없어 그저 글자가 새겨져있거니 하고 무심히 지냈는데, 몇 해 전에 갑자기 글씨가 있던 생각이 나서 찾아가 숲을 헤치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상 대대로 우리 가문이 살던 터인데 뭔가 의미있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우거진 넝쿨을 헤치고 글씨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니 세월과 풍우(風雨)에 닳아 희미해졌지만 어릴 적에 보았던 글씨들이 나타났다.


    '세심대(洗心臺)'와 '낙기대(樂飢臺)'라고 쓰여 있었다. 오래전에 그곳에 정착한 선조께서 친히 글씨를 쓰고 새겼다고 어른들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제대로 듣지 못해서 글씨 자체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세심대는 다른 곳에서도 보아온 명칭이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자하던 선비정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낙기대라는 명칭은 도대체 생소하고 뜻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즐거울 樂’자에 ‘주릴 飢’를 썼으니 배고픔을 즐긴다? 즐길 일이 없어 배고픔을 즐기겠는가? 배고픈 일이 과연 즐길 수 있는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그러한 의미인지 알고 싶어 마을로 내려와 존장(尊長)을 찾아 물었다. 마을 어른의 설명에 따르면 올곧은 선비들의 애민(愛民)정신과 선비의 근본자세인 청빈(淸貧)의 향기가 담겨져 있었다. 조상님들은 항상 가난한 민초들을 생각하여 어려움을 같이하고 배고픔도 같이하는 참다운 선비정신을 실천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뒷산 바위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민초들과 배고픔을 같이 느끼기 위해 세심대와 낙기대라는 이름도 붙였다는 것이다. 양반이라 하여 서민들을 괴롭히고 군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을 나누고 걱정하던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흔적이 바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조상님들은 척박한 산골의 비탈진 논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농사짓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아녀자들도 길쌈을 하고 베틀에 앉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식주를 손수 해결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일이나 자녀교육에 힘써 대대로 훌륭한 선비와 명현을 배출하여 칭송을 받았던 가문이었다. 조상들의 선비정신은 결코 가난이나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기에 백성들과 함께 배고픔을 견디고자 마을 뒷산 바위를 ‘세심대’와 ‘낙기대’로 이름 지어 몸으로 실천하셨던 것이다. 뒷산 주변에는 해묵은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는 보릿고개를 넘어 보리를 거두어도 소출이 적으니 곧 양식이 떨어졌다. 이 때 가난한 이들의 배고픔을 달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상수리나 도토리 열매였다. 이 열매 껍질을 벗겨 맷돌로 갈아 물에 담가 두어 떫은 맛을 뺀 다음 묽게 죽을 쑤어 기근(饑饉)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상수리나무는 배고픈 민초들이 사랑하던 나무가 되었다. 상수리나무마다 사람 키 어림의 높이에는 커다란 상처자국이 남아있다. 상수리가 빠져 흩어지기 전에 나무망치나 돌로 나무를 때려 열매를 털어내느라 생긴 상처들이다. 이런 상수리마저 없으면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 부드럽게 하고 잘게 부수어 쌀이나 보리를 약간 섞어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렇게 먹는 소나무 속껍질을 송기(松肌)라고 불렀다.


   조상님들은 배고프게 살아가면서도 선비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글을 읽어 경륜을 넓혀가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나랏일을 하고 다시 돌아오면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부정을 하거나 백성을 수탈하여 배를 채우지 않았고, 축재에 눈을 돌리지 않으셨다.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었고 청빈(淸貧)은 선비의 자랑이었다. 이곳에서 임금의 부름을 받기도 했던 형극의 길을 떠나기도 했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던 선비정신을 보여 주셨다.


   요즘 연이어 고위관리 임용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재산이 수십, 수백억인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 몇 차례는 기본이고, 각종 투기와 불법을 통하여 재산을 증식했고, 본인이나 자녀들의 병역사항이 개운하지 못했다. 또 과거의 행적이 떳떳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왜 그런 사람들만 후보자로 지명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사람들이 중책을 맡아서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마음이 어둡다. 물질에 초연하시던 조상님들의 떳떳한 삶이 새삼 그리워진다.


    낙동강 상류인 내 고향 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바위에 이제는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여섯 글자는 변화하는 세태에 그 빛을 잃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러한 선비정신이 오늘의 밑거름이 되어 그나마 사회정의가 어설프게나마 유지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선비의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고 자랑이라는 뜻에서 ‘낙기대’라 하고, 그 뜻을 잊지 않기 위하여 항상 마음을 다스리는 ‘세심대’라 이름 지어 실천하신 곳. 나는 오늘도 고향의 바위 언덕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어지러운 세상이 제멋대로 폭주(暴走)하는 가운데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좆아 살아왔던가? 조상님들께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는 않았던가?

                                                            (2015. 3. 17.)



blog.daum.net/crane43/15878922   김학-두루미 사랑방







세심대洗心臺*낙기대樂飢臺*안분지족安分知足*안빈락도安貧樂道의 유래| 연당마을

으뜸빛 |  2013.03.07. 07:50


洗心臺*樂飢臺*安分知足*安貧樂道의 유래

 

*세심대洗心臺

 

   연못,누정,당,대 등 여러 곳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세심洗心'이라는 말은 <역경>"계사상전繫辭上傳"의 "聖人以此洗心 退藏於密"에서 나왔는데,

말 그대로 "심중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낸다."는 뜻이다.


마음속의 더러움이란? 일신의 안위와 재물을 탐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인간의 부정적 속성이라 할 것인데,

이런 마음을 씻어내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서 심신을 수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덕천서원에 세심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정기亭記에서 이 정자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도 세심정이라 이름한 정자가 있는데, 이곳은 조선 중종,명종 때의 학자이며

조광조의 수제자로 이름 높던 조욱이 기묘사화의 여파로 이곳에 은거하며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유서가 깊은 정자이다.

또한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강 건너 보이는 유성룡의 옥연서당 경내에 세심재洗心齋가 있으며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옥산서원 독락당 부근에는 퇴계 이황이 세심대洗心臺라는 글씨를 새긴 암반이 있다.

경북 구미시 오태동에도 세심당이 있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 두들마을 언덕에 항재 이숭일이 새긴 세심대가 있다.

세심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 징심대澄心臺가 경주시 월성군 양동마을에 있다.

 

*낙기대樂飢臺


<시경詩經>"형문衡門"에 "누추한 집에서 느긋이 쉴 수 있으니,

졸졸 흐르는 냇물을 보며 굶주림을 잊고 살만하다 衡門之下 可以樓選 泌之洋洋 可以樂飢"는 말이 있다.


여기서 '형문衡門'이란 기둥 두 개를 세우고 한 개의 횡목을 가로지른 허술한 문을 뜻하는 것으로

흔히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일컬을 때 쓰인다.


따라서 '낙기樂飢'란 먹는데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는 은자隱者의 집이라는 뜻이 된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 두들마을에 '낙기대樂飢臺'가 있으며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용리 부용동정원에 '낙기란樂飢欄'이 있다.




<시경詩經> "형문衡門"


*衡門 = 누추한 집


형문지하 가이루지 비지양양 가이락기

衡門之下 可以樓遲 泌之洋洋 可以樂飢


기기식어 필하지방 기기취처 필제지강

豈其食魚 必河之魴 豈其取妻 必齊之姜


기기식어 필하지리 기기취처 필송지자

豈其食魚 必河之鯉 豈其取妻 必宋之子


누추한 집에서도 한가로이 쉴 수 있네

졸졸대는 샘물에도 굶주림을 달랜다네

고기 먹는다 해서 황하의 방어라야 될까

아내를 얻는다 해서 제나라 강씨라야 될까

고기 먹는다 해서 황하의 잉어라야 될까

아내를 얻는다 해서 송나라 자씨라야 될까




#어진 사람이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자

몸을 숨기면서 부른 노래이다.

제나라 강씨와 송나라 자씨는 제후의

집안을 가르치고 황하의 방어와 잉어는

맛 있는 물고기를 말한다.

 


*안빈락도安貧樂道


가난한 처지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지켜 즐긴다는 말이다.

도문적 유학관으로 볼 때 구도자求道者의 적극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송宋나라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내용에서 그가 진정한 안빈락도安貧樂道를 즐겼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말하는 안빈락도安貧樂道는 '달 아래 고기 낚고 구름 속에 밭을 갈아 먹고 못 남아도

그칠 적은 없어라' '노계 박인로'(인조 14년)가 76세에 지은 '노계가'의 일부이다.

선비는 '가난'을 마다 하지 않고 존재의 '맑음'을 추구했던 청빈사상淸貧思想으로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빈락도安貧樂道를 즐겼다고 생각된다.



*안분지족安分知足

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宋나라 '홍매'가 저술한 '용재수필'三筆人當知足의  "其安分知足之意終身不揄"라는 대목에서 유래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에 뜻을 두고 평생토록 변심하지 아니해야 한다."




*선비정신과 삶

1.체인體認 온몸으로 인식하고

2.체찰體察 온몸으로 성찰하며

3.체험體驗 온몸으로 시험하고

 4.체행體行 온몸으로 실천한다.

 

 

*경주 안강 세심마을

세심대洗心臺

관어대觀漁臺

영귀대詠歸臺

탁영대濯纓臺

징심대澄心臺


"감사합니다"해달별사랑 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석란정,창랑정,천하정,취영정 모습
























































*선비정신과 삶

1.체인體認 온몸으로 인식하고

2.체찰體察 온몸으로 성찰하며

3.체험體驗 온몸으로 시험하고

4.체행體行 온몸으로 실천한다.








남명 조식 선생의 낙기정樂飢亭



남명 조식 선생의 세심정



석계 이시명의 넷째 아들 항재 이숭일이 새긴 세심대 



 

석계 이시명의 넷째 아들 항재 이숭일이 새긴 낙기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洗心亭세심정




퇴계 이황 선생님이 새긴 세심대



"감사합니다" 해달별사랑 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cafe.daum.net/ilovejayeon/OQtV/74   해달별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