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다고 귀하겠느냐, 권력 없다고 천하겠느냐”
“사람은 출신 성분으로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태생에 의해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행위에 의해 귀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숫타니파타
정조대왕 행차 그린 ‘환어행렬도’
당대 화가 참여, 최고기량 발휘
왕 곁에 있다고 귀한사람 아냐
귀천 결정하는 것은 바로 행위
개똥이 엄마, 소식 들었어? 아, 글쎄 임금님이 내일 낮에 우리 동네 앞을 지나가신대.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게 귀하신 분이 지나가는지 몰라. 살다보니 참 별스런 구경거리도 다 있네. 개똥이 엄마도 읍내 뒤쪽 산 옆에 있는 큰 건물 알지? 그게 임금님이 주무실 무슨 궁이래. 어쩐지 너무 조용하더라니. 알고 보니 그게 사또가 사는 관아가 아니라 궁전이었다니까. 항상 텅 빈 집처럼 쓸쓸하더니만 내일은 북적북적하겠네. 우리 어디서 볼까? 기왕이면 높은 데 올라가 임금님 행차를 쫘악 볼 수 있는 자리를 잡아야지? 아이고, 내일은 정신없겠네. 좋은 자리 차지하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할 거 아니야. 개똥이 엄마도 내일 아침 빨리 차려 먹고 득달같이 나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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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신 외, ‘환어행렬도’, 1795년경, 비단에 색, 156.5×65.3cm, 삼성리움미술관. |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는 정조대왕이 화성(華城:수원) 행차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윤 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 동안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에 내려가 여러 가지 다채로운 행사를 치른다. 특별히 이때를 기념해 행사를 치른 이유는 1795년이 혜경궁 홍씨가 회갑이 된 해였기 때문이다. 또한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가 태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는 동갑이었다. 혜경궁 홍씨는 28살 한창 좋을 나이에 남편과 사별했다. 시아버지 영조에 의해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대참변이었다. 전 세계 역사를 다 뒤져봐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아들 살해였다. 물론 아들의 심병(心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결단이었다. 남편 없는 궁궐은 온통 정적들뿐이었다. 그 살얼음판같은 궁궐에서 혜경궁 홍씨는 아들 정조가 아슬아슬하게 왕위를 물려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가슴 조이고 애타는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리라.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을 보내고 33년이 흘렀다. 다행히 아들은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오래 살아서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회갑연을 베풀었다. 특별히 아버지 묘소가 있는 화성에서.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회갑연을 마치고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 모든 행사장면은 8폭 병풍으로 제작해 혜경궁 홍씨에게 바치고 궁중에도 들였다. 이 병풍이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이다. ‘화성능행도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리움미술관,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등 여러 점이 전한다. 밑그림이나 필치 등에서 약간씩 차이가 보이지만 기본적인 형식은 똑같다. 8폭병풍의 제1폭은 화성의 문선왕묘에서 치러진 알성의(謁聖儀:문무과)를 그린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다. 제2폭은 화성, 광주, 시흥, 과천의 유생들을 대상으로 문무과정시별시(文武科庭試別試)를 치르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장면을 그린 ‘낙남헌방방도(落南軒放榜圖)’ 이며, 제3폭은 봉수당에서 잔치를 벌인 장면을 그린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다. 제4폭은 수원부 노인을 초대하여 낙남헌에서 베푼 양로연을 그린 ‘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제5폭은 화성 성곽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에서 밤에 군사들이 조련하는 장면을 그린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제6폭은 득중정에서 정조가 활쏘기를 하고 혜경궁홍씨와 함께 불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등이다. 여기까지가 화성에서의 장면이라면 마지막 두 폭 ‘환어행렬도’ 와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는 화성을 떠나 한양으로 귀환하는 장면이다.
‘환어행렬도’는 화성을 출발한 왕 일행이 한양으로 향하던 중 중간에 있는 시흥행궁으로 숙박하러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왕실에 진상한 작품인 만큼 8폭 모두 화가들의 최고 기량이 발휘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환어행렬도’는 보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오늘 그림을 담당한 화가들은 김득신, 최득현, 이명규, 장한종, 윤석근, 허식, 이인문 등이다.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은 김홍도는 의궤 제작 총지휘를 맡았을 것이다.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6000여명의 인원이 동원되고 1400여 필의 말이 투입되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물론 TV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이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볼거리가 어디 있으랴. 비록 왕의 얼굴은 직접 볼 수 없지만 상관없다. 의장대가 앞장서고 오색 깃발이 뒤따르며 말 탄 군사와 호위대에 둘러 싸여 느리게 지나가는 왕의 행렬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끝이 안보일 정도로 이어지는 가마와 고관대작들과 색색의 옷을 입은 군인들은 백성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했을 것이다.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일생에 단 한 번 볼까 말까 한 최고로 웅장하고 즐거운 행사였다.
특별한 행사이니만큼 오늘의 장관을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화가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환어행렬도’에는 그런 화가들의 고민이 촘촘히 박혀 있다. 가장 특징적인 장치는 지그재그식 인물 배치다. 길을 일자로 배치하면 많은 사람을 담을 수 없을 뿐더러 인물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줄 수가 없다. 한 화면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지그재그식 배치다. 행렬 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빼곡하다. 시점(視點)도 중요하다. ‘환어행렬도’에는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동서양 화법을 다 적용했다. 그림 앞쪽에 있는 인물은 크게 그리고 뒷쪽에 있는 인물은 작게 그린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원근법이되 소실점에 의해 평행한 두 직선이 멀리 가서 한 점에서 만난 것처럼 보이는 정확한 서양식 원근법은 아니다. 앞뒤의 인물을 조금 차이 나게 그렸을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감도법(鳥瞰圖法)이다. 마치 높은 창공에 있는 새가 땅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각에서 그린 그림이라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인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조시대의 회화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은 ‘한강주교환어도’로 노량진에 설치된 주교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는 환어행렬을 그렸다.
왕의 행차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재미있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TV에서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연회장면을 지켜보는 마음과 비슷하다. 대통령 곁에는 항상 유명 정치인이나 재벌이나 학자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우리 같은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들만의 천국’에서 허구한 날 연회복을 입고 술잔을 부딪친다. 그렇다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왕의 곁에 있다 해서 그들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부러워할지언정 존경하지는 않는다. 비록 높은 지위에 있을지 몰라도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람은 출신성분이나 태생 혹은 명함과 직책에 의해 귀한 사람이 되거나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신분에 의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던 시대에 신분이 아니라 행위가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당시 인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네 가지 계급에 의해 사람의 등급을 매겼다. 아무리 기품 있는 사람이라도 천민 계급이면 그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돈과 권력에 의해 사람을 특별대우를 하거나 업신여기기도 하는데 부처님 시절에는 오죽했으랴. 부처님은 강고한 신분제를 여지없이 무시해버렸다. 석가족을 출가시킬 때 왕족출신 친척들보다 그들을 수발한 이발사 우팔리를 먼저 선택한 것도 출가순서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승단의 관행을 통해 출신성분을 묻지 않으려는 배려에서였다. 그러니 우리도 ‘돈 많은 사람인가 가난한 사람인가’라고 묻는 대신 ‘천한 행위를 하는 사람인가 고귀한 행위를 하는 사람인가’라고 물어야 된다. 어느 집안과 인맥이 닿아 있는가 묻는 대신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자랐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한 사람일까. 부처님이 선정한 천한 사람 목록은 다음과 같다. 화를 잘 내고 원한을 쉽게 품으며, 성질이 못돼 남의 미덕을 덮어 버리고, 그릇된 생각으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 한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이 세상에 있는 생물을 해치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 시골과 도시를 파괴하고 공격하여,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천한 사람이고,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남의 것을 훔치려는 생각으로 이를 취하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다. 빚이 있어 돌려 달라는 독촉을 받으면 ‘당신에게 언제 빚진 일이 있느냐’고 발뺌을 하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요, 얼마 안되는 물건을 탐내어 행인을 살해하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다.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의 이익이나 남을 위해, 또는 재물을 위해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요, 때로는 폭력을 쓰거나, 또는 서로 눈이 맞아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와 놀아나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다. 가진 재산이 풍족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부모, 형제, 자매, 또는 계모를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 상대가 이익 되는 일을 물었을 때, 불리하게 가르쳐 주거나 숨긴 일을 발설하는 사람. 나쁜 일을 하면서,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숨기는 사람.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 그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는 예의로써 보답하지 않는 사람. 바라문이나 사문 또는 걸식하는 사람을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바라문이나 사문에게 욕하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사람. 어리석음에 이끌려 변변치 않은 물건을 탐내어 사실이 아닌 일을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무시하며, 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진 사람. 남을 괴롭히고 욕심이 많으며, 인색하고 덕도 없으면서 존경을 받으려 하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깨달은 사람을 비방하고 출가자나 재가 수행자들을 헐뜯는 사람. 이들은 모두 천한 사람이다. 그러나 마지막 천한 사람에 비하면 지금까지 말한 사람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진짜 천한 사람은 따로 있다. 사실은 성자도 아니면서 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다. 그는 단순히 무리들 중에서 천한 사람이 아니라 전 우주의 도둑이며 천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천한 사람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전 우주의 도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 같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에 보면 ‘윗물을 길어서(泂酌)’라는 시가 나온다. ‘길바닥에 고인 물도 윗물만을 길어다가 맑은 부분 떠내어서 이곳에 담아 두면 고두밥을 쪄내는 덴 손색이 없네.’ 길바닥에 고인 진흙탕 물도 가라앉히면 맑은 물이다. 원래부터 맑은 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1231호 / 2014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