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의 차이야기〈30〉 이숭인의 차생활 ②우리 차에 대한 자부심 높아

2016. 3. 30. 10:31차 이야기



       조은의 차이야기〈30〉 이숭인의 차생활 ②우리 차에 대한 자부심 높아

조은

승인 2004.08.10  16:00:00


바닷가 마을 이른 봄에 차가 나오는데
바구니에 따고따니 이슬 머금은 싹이 새롭구나
봉하여 의조(儀曹)에 부치고 묻노니
궁중의 용단차 맛과 어느 것이 참인가

송나라 소동파는 고려 사신들이 중국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을 했다고 한다. 고려 관리들이 중국에 가서 서적과 그림 등의 문물을 전부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숙명적 관계로, 정치적·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언어는 있었으나 문자가 없던 때, 고조선 말부터 삼국시대 초기에 처음으로 한자를 빌려 사용하게되고, 김춘추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왕실복식에 중국복식제도를 도입했는가 하면, 신라 경덕왕 때는 우리의 지명을 한자화하는 등 점진적으로 중국문화권에 들어간다. 또, 불교와 유교 같은 종교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고, 특히 고려말 성리학의 전파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궁중과 상류계층에게 중국문화는 흠모의 대상이었고, 강력하게 본받고 싶은 존재였다.



   차문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려와 조선의 지식인들은 다경,다록 등과 같은 차문헌과 그밖의 중국문사들의 차시를 신속하고 넓게 섭렵하였다. 신라시대부터 한명(漢茗)이라 하여 중국차가 등장하고, 고려시대 궁궐에서는 뇌원차(腦原茶) 같은 토산차도 있었으나 중국차도 많이 사용하였다.

이숭인은 궁궐에서 용단차를 사용하는 것이 마땅찮았던지, 이른 봄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우리의 토산차를 의조(儀曹)에 보내고는, 어느 것이 더 좋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숭인 마음속에는 이미, 우리차가 더 좋다는 확신이 있는 듯하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적 신념을 지킨 이숭인의 성품이 차의 기호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숭인은 차를 매우 좋아하고 우리 토양에서 자란 우리차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또, 이숭인의 차시에는‘차로 창자를 씻는다’ 는 문구가 여러 번 나온다. 「유지군이 차를 보내준 것에 감사한다」란 시에는 위의 문구와 함께 ‘또’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경험이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역하면 창자, 즉 오장을 씻는다는 내용이지만,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닦는다는 뜻일 것이다. 마음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정신이 속진에 물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작설차의 깨끗하고 맑은 맛을 보며 자신의 마음도 깨끗해지길 바란 것이리라.

선생이 내게 차를 나누어주니
색과 맛, 부드러움이 새롭구나
하늘아래 떠도는 한을 씻어주니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도다

이숭인 차시의 백미인백렴사가 준 차」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하늘아래 떠도는 한을 씻어주니’ 라는 문구가 기분을 매우 좋게 한다. 고려말의 격변기를 살며, 6번의 유배를 겪으며 쌓인 한이 한두 가지일까. 차의 성분 중에 각성작용이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차를 마시며 사색하는 시간에 자신의 내면을 관조한 것이리라. 차생활을 통해 무아를 경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는 시구는 소동파의 시 '조부가 부친 학원차' 에서 인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차를 인격화한 것이 차를 더 친근하게 하고, 또 차를 마실 때 이 구절을 떠올려 보며 아름다운 사람의 영혼을 만나는 듯도 해본다.

이숭인은 차를 참으로 좋아하고, 다도정신도 체득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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