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1. 16:11ㆍ차 이야기
[문화산책] 거품과 차茶 / 김승희 지난호 읽기
차 한 잔의 향과 시 ?___김승희
거품과 차茶 김승희 청주에 마음 가는 일이 있어 지인들과 들렸다가 벚꽃길과 마주쳤다. 아직 연분홍 쪼가리 하나 흩어지지 않은 것이 이제 막 멍울멍울거리며 부풀어 터지는 쌉쌀한 절정인 듯하다. 맑은 고을 청주淸州에는 마음 없이 흐른다는 무심천無心川이 있다. 무심한 길벗이기에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옛 나무들은 강과 더불어 해마다 물넘이처럼 흐드러진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무작정 마구마구 열리고 피어서 나무를 온통 차지한 벚꽃을 보노라면 언제나 엄마의 고무장갑에 달라붙은 그리고 커다란 다라이를 모두 채우고도 모자라 넘어가던 하이타이 거품을 떠올리곤 했다. 지금도 만개한 벚나무 꽃뭉치들을 입이 벌어지도록 치어다보니 금방이라도 거품 한 무데기가 얼굴로 툭 떨어질 것만 같다. 며칠 후면 저 거품뭉치는 조각조각 나뉘어 무심천 물가에 쇤 몸을 누이고 갈대를 덮는 흰 수의가 될 것이다. 하이타이 거품이 피곤한 빨래감의 오염물을 물고 수챗구멍으로 사라져 가듯이 저 벚꽃 거품들도 세상에 떨어지며 날리며 사람들이 오염시켜 놓은 것들을 깨끗이 씻어가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서 무지개를 훔쳐 바람을 타고 달아나던 비누방울 거품에서부터 할매 막걸리 사발 술거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살면서 많은 거품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거품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이중적인 이미지들을 가지고 곁에 머무르다 사라지는 설레는 동반자이다. 아름다운 삶의 꽃방울이자 가질 수 없는 실체일 수밖에 없는 그것.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거품이란 단어는 거품경제라는 말을 떠올리는 조마조마한 단어가 되어 있지만 거품이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삭막한 세상일까.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그런 칙칙하고 무거운 세상일 것이다. 차에도 거품이 있다. 아니 사실 차는 거품을 사랑한다. 그리고 거품을 늘 품어 숨기고 있다. 좋은 차에는 사포닌 성분 역시 풍부히 들어있어 달여서 다탕을 내는 자다법煮茶法이나 찻잎분말을 물과 교반攪拌하여 마시는 말차법의 경우 매우 풍부한 거품을 만들어 낼뿐 아니라 맑은 다탕도 차선으로 잘 휘저으면 제법 풍성한 거품을 볼 수 있다. 다탕의 거품은 본격적인 대중적 차생활의 시작을 만들어낸 당나라 육우시절의 다법茶法에서부터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당대에서는 찻잎을 떡차로 만들어 보관했다가 거칠게 가루낸 것을 3~5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한 솥에 끓여내었는데, 다탕과 함께 거품을 손님들의 잔에 고루 나누느라 고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재미있는 거품차로는 오끼나와의 ‘부꾸부꾸차’가 있다. 부꾸부꾸란 차에 있는 거품을 말하는 것으로 일단 부꾸부꾸용 바리때에 찻물을 넣고 큰 찻솔로 거품을 일으킨다. 그리고 차가 든 다른 찻주발에 이 거품을 마치 커다란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얹고 그 위에 흑설탕을 뿌려 마시는 차로 오늘날에도 오끼나와 여행을 즐겁게 하는 별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흔히들 차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라면 사람들은 ‘맑다’ ‘푸르다’ ‘향기롭다’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천여 종에 이르는 차가 있다고 한 것과 같이 세상에는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무수히 다양한 차가 만들어지고 발달되어 왔기에 모든 차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푸르다’고 하는 것은 사실 녹차의 경우에만 해당이 되며 ‘향기롭다’고는 하나 어떤 차는 개인에게만 향기로 느껴질 때도 있다. ‘맑다’의 경우에도 찻잎을 우려마시는 포다법泡茶法에 의한 차들만 해당되며 설사 포다법이라 하더라도 균사발효가 된 ‘흑차黑茶’의 경우 잔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다탕으로 마시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찻잎을 가루내어 마시는 말차末茶의 경우에는 물에 녹지 않는 고운 찻잎 가루가 물과 섞여 있기 때문에 맑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다. 차를 분류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발효의 종류와 정도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따는 시기나 산지는 물론이요 열처리 방법과 차나무의 수령, 재배방법에 따라 달리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기준 중에는 차의 형태에 대한 것도 있다. 이파리 모양이 온전한 채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산차散茶, 덩어리진 긴압차緊壓茶, 잎을 둥글게 만 주차珠茶, 잘게 자른 파쇄형破碎形차, 찧어서 뭉쳐 말린 떡차 등등 그 중 잎 전체를 매우 곱게 가루를 낸 것이 말차이다. 현대에 와서 차마시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말차를 알고 즐겨 마시는 이는 드물다. 허나 차를 마시는 이유 중 효능의 부분에 있어서라면 말차는 많은 차의 종류 중 압권이라 할 만하다. 단단한 찻잎의 조직에서 미세하게 금이 간 곳을 통해 그 성분을 내어 마시는 현대의 포다법은 찻잎이 가진 성분의 매우 한정된 부분만을 섭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말차의 경우 찻잎 전체를 분가루만큼 곱게 갈아 그 전체를 섭취하기에 차가 가진 성분 거의 대부분을 섭취할 수 있다. 말차 한 잔이면 우린 차 10여 잔 이상의 효과를 능가한다 하겠다. 색상도 아름다운 짙푸른 녹색이 눈을 즐겁게 할뿐 아니라 싱그러운 새싹의 향기와 감촉이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레하다. 또한 달콤함을 숨긴 맛은 한 번 맛을 들이면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차 중의 차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매혹적인 차이기에 옛부터 그 제조 과정은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말차는 해가림하여 부드럽게 키운 차나무 어린잎을 녹차로 만들고 기계맷돌로 곱게 갈아 매우 짙푸른 녹색을 띠고 있다. 또한 포장기술의 발달로 공기나 습기와 접촉시키지 않으면 상당기간 그 상태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차가 유행하던 송나라와 고려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보관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말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찻잎을 따서 익힌 다음 찧어서 잎맥을 제거하고 압착시켜 즙을 짜낸 후 둥근 단차團茶로 만들어 말려 보관해야만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매우 비쌀 수밖에 없었고 이는 말차가 지배층의 전유물이 되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단차의 모양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다식茶食의 모양과 매우 흡사한데 이익李瀷이 『성호사설』에서 다식에 대하여 “다식은 아마 송조宋朝의 대소룡단大小龍團이 변한 것이리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용단이란 다식판에 찍어내듯 차를 찍어낼 때 용무늬가 나타나도록 만들었기에 이름 지어진 것이다. 비싸고 귀한 차가 제수祭需에서 빠졌을 리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상례喪禮를 비롯한 여러 의례에 차를 중요히 생각하여 빠지지 않고 사용하였다. 차례茶禮라는 말이 술과 밥이 없는 차를 이용한 상시적 일상례와 제례를 의미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그 중에서도 제례에서는 말차를 사용하여 강신降神을 하였으며 맑은 차는 홀기에 적힌 헌다獻茶에 올려졌다. 또 지배층의 놀이문화로써도 유행하였다. 명전茗戰이라 하여 거품을 낸 차를 두면 거품이 스러지면서 그 아래 찻물이 보이게 되는데 각자의 잔 중에서 가장 나중에 찻물이 보이는 것으로 우승을 가렸다. 이 놀이는 매우 성행하여서 종내에는 고액의 재물이 오가는 투기와 노름으로 전락하는 등 후유증이 심했다고 한다. 말차는 타서 마시기도 매우 까다로웠다. 단차를 불에 구운 후 망치로 깨고 조그맣게 부수어 옥 등으로 만들어진 매우 곱고 두터운 차맷돌에 간다. 이를 다시 가는 채에 쳐서 차분말을 만들고 대나무나 솔잎, 가느다란 은고리 등으로 만들어진 차선으로 끓는 물과 혼합하여 마셨다. 이때의 말차는 선명한 녹색의 불발효차였을지라도 밀봉보관이 불가능하였으므로 매우 약한 발효상태였을 것이다. 일단 조금이라도 발효된 차에서 일어나는 거품은 녹색 보다는 흰색에 가까웠다. 이러한 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가장 좋은 도자기 찻잔으로서 송나라에서는 천목天目이라 불리는 검은색 도자기가 유행하였고 고려에서는 비색翡色이라는 가라앉은 푸른색 청자가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비색청자에 고운 흰 거품을 얹은 말차는 매우 매끄러웠고 살짝 발효된 차는 유향乳香을 내었으므로 이러한 차를 마신 옛사람들은 이를 젖맛 또는 참으로 제호의 맛이라 표현하였다. 차에서 생성되는 거품은 향기와 온도를 보존하고 부드러움을 더하게 하는 최고의 요소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옛 차를 연고차硏膏茶라고도 하며 연고차는 확실하게 대단히 매혹적이었나 보다. 송나라의 시인이며 화가이자 예술을 사랑한 황제인 휘종은 직접 말차를 젓고 마시는 법을 적은 『대관다론大觀茶論』을 저술하였고, 이 휘종에 못지않은 예술적 취향으로 유명한 청기와를 만들었던 고려 의종 또한 매일 손수 찻가루를 간다하여 재상인 최승로가 이를 못마땅히 여겨 올린 장문의 상소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차를 오늘날에는 만드는 곳이 없어 맛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세계의 차문화에서 말차는 일본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과 우리나라 역시 차문화가 발달하였던 시기에는 말차가 대대적으로 유행하였으나 만드는 방법이 까다롭고 보관이 어려워 백성을 수탈하는 원인이 되었기에 점차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이러한 연고차에 의한 말차가 아닌 녹차가 산차 상태인 채 곧바로 말차 만드는 방법으로 발달해 말차다법을 유지·발전시켰다. 이는 일본문화에 엄격한 차의 형식을 만들어냈고, 일본 무사들이 교양으로 여성교육을 강화시키는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 다도茶道라고 일컬어지는 차문화는 이 말차다법을 말하며 잎차의 경우 ‘전차도煎茶道’라 달리 부른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조선의 도공이 끌려갔고 또 어마어마한 양의 도자기를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도 이 말차 다도의 유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붙잡혀간 이삼평이 일본에서 백자의 원료가 되는 광맥을 발견하고 일본 도자의 중심지 아리타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도자기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는데 그 포장재로 딸려간 우끼요에(판화)가 유럽의 화단을 강타하고 도자기 무역으로 얻어진 수익은 일본경제 발전의 밑바탕이 되었으니 알게 모르게 차는 세상과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이와같은 말차의 배경은 우리에게 왜색이라는 선입관을 주어 대중과 친해지기 어려웠다. 비록 옛 방식의 연고차가 아니라 할지라도 말차는 그 내용에 있어 일본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말차가 지닌 효능과 매력적인 차문화 형태는 속 좁은 문화순혈주의로 포기해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에게도 한국 고유의 말차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현대에 맞는 말차다법과 이용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첫째, 시중의 가게에서 파는 ‘가루차’라 써진 것은 ‘말차’가 아니다. 그것도 녹차잎을 분말상태로 만든 것은 같으나 그 품질과 입자의 크기는 격차가 매우 큰 것이어서 ‘가루차’는 요리나 첨가제로 쓰일 뿐 차로써 말차를 즐기지는 못한다. 물론 요리나 첨가제로도 말차가 좋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둘째, 꼭 비싼 찻사발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형태의 것이라면 어떤 것을 써도 무방한데 아무래도 금속은 피하는 것이 좋다. 좋은 흙과 정직한 유약으로 잘 만들어진 찻사발이 차맛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를 다루는 정성과 솜씨이기 때문이다. 셋째, 찻가루는 잘 밀봉해 보관하여야 하고 마실 때에는 체에 내리는 것이 좋다. 보관되었던 차는 서로 엉겨 단단한 멍울이 지므로 녹지 않은 소금덩어리를 씹는 것처럼 차의 풍미를 해치게 된다. 이제 차를 점다點茶해 보자. 사발을 데우고 대나무로 된 차선을 더운물에 충분히 적신다. 차선이 마른채로 말차를 저으면 가느다란 차선이 끊어지며 가시처럼 입 안을 찌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꼭 유의하여 지켜야 한다. 혹시 끊어지려하는 부분이 있으면 미리 제거한다. 다음은 소량-찻수저로 1정도-의 찻가루를 넣고 잘 끓은 100℃의 물을 조그만 찻잔 2~3개 정도 붓는다. 차선으로 천천히 물과 찻가루를 섞어 전체적으로 비슷해지면 격불이라고 하여 지그재그로 차선을 움직이며 차를 저어 거품을 일으킨다. 거품이 충분히 일면 가볍게 차선을 저어 부드럽게 한다. 마지막으로 차를 마신다. 물을 붓고 격불을 끝내기까지 1분 이상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시간이 지체되면 산화가 진행되어 최상의 차맛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저어도 거품이 잘 나지 않지만 몇 번 연습하다보면 요령이 생겨 누구나 곧잘 하게 된다. 또 말차가 무조건 거품이 많다고 하여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일본에서도 유파마다 달라 그저 소량의 거품만을 일으키는 곳도 많다. 하지만 거품이 곱고 풍성하였을 때 마시기가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말차는 그 효능과 맛으로 이용범위가 넓다. 한여름 시원한 탄산음료가 당길 때도 있으나 특유의 들큰함이 싫다면 아주 조금만 말차를 물에 개어 맑은 탄산음료에 섞어 마시면 새로운 맛에 놀랄 것이다. 술에도 말차는 좋은 친구다. 신선한 우리 막걸리에 말차를 진하게 개어 혼합하면 술이 약한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고 좋은 술이 된다. 시인들이 이러한 말차에 대해 시를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고려 후기의 문신 이연종의 시를 읽으며 찻사발을 두 손에 안아보자.
소년 시절에 영남 절간에 손님되어 차 싸움 한가한 유희 여러 번 했다 용암 바위 봉산 기슭에서 죽림 속에 중들 따라 매부리를 따다가 불 앞에서 말린 것 가장 좋다 하는데 더군다나 용천봉정 물까지 있음에랴 중들의 차 솜씨 바르기도 하여라 찻잔 속에 설유(차거품)를 쉬지 않고 집어넣었다 돌아와 벼슬길의 풍진에 매달려 세상살이 남북으로 두루 맛보고 이제 병들어 한가한 방에 누워있으니 녹록히 분주함은 내가 할 일이 아니로다 양락도 순갱도 생각 없고 화려한 집에서의 풍류도 부럽지 않다 죽창은 정오 햇빛에 향연이 뜨는데 낮잠 자다 일어날 제 차 한 잔 준비되었네 몇 번이고 머리 돌려 영남 적설 생각이 나 산중 친구는 소식이 없거니 하물며 당시의 경상이야 즐겨 이 사람 기억하여 내사(하사와 같다)품 나눠주려고 치암상국은 홀로 잊지 않고 초당으로 하인 보내 주었네 봉함 뜯어 자용을 보기도 전에 종이에 배인 향내 벌써 코를 찌르네 구리쇠 화롯가에 차의 운치가 행여 깎일까 염려되지만 한창 타는 불로 끓이기를 손수 시험했네 솔바람이 솥에 들어 솨솨하니 듣기만 해도 마음과 귀를 맑게 하누나 찻잔에 가득히 맛이 짙으니 마시자 시원하여 골수를 신선으로 바꾸는 듯 영남에 놀던 그때는 아직 동몽이어서 차 마시는 깊은 취미 몰랐었더니 이제 공의 선사를 받음으로써 옥천자와 같이 통령했소다 때때로 두 겨드랑 바람을 타고 봉래산 꼭대기로 날아올라가 서왕모의 자하상(자하주 술잔) 한 번 기울여서 종전 연화의 누를 말끔히 씻고 다시 구전진금단(신선이 되는 약) 가지고 와서 공의 진중한 마음 보답하고저 ──이연종, 「차茶를 주신 박치암에게 사례하며[謝朴恥庵惠茶]」
김승희 / 1959년 여수에서 태어났으며 2012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 다도생활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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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daum.net/kpoetry/78l8/729 시와산문 그리고 시와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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