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박사 기고]제다학술대회 그 허와 실 (2017.01.02 문화재청 국민의소리)

2017. 2. 1. 22:04차 이야기



      

[정서경 박사 기고]제다학술대회 그 허와 실 (2017.01.02 문화재청 국민의소리) 언론 보도자료

2017.01.0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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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 학술대회” 그 허와 실


주제와 크게 벗어난 논지
시대구분과 연구 목적 상실의 논고
전공 연구자의 부재, 아니 부적절한 구성
서로 자기 업적 빛내기와 낯내기 전략 일쑤
논문이 가장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객관성 결여
주관적 생각을 정리한 견해로 연구 성과 내지 못하고 좌초한 꼴!

    제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기념 학술대회가 있었다.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지난 12월 16일에 개최되었다. 주최는 문화재청이었고, 주관은 사단법인 무형문화연구원이었다. 벌써 열흘이 지났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그간 생각들이 많았다. 학술대회의 전반적인 스케치를 공유하면서 차문화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아가 공동의 과제로 삼았으면 하는 일념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동안 차문화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전통문화의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늦은 감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차문화의 제다부문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차문화를 국가 제도적으로 보호, 육성하게 된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관심의 전환은 선대 차인들의 노력과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박동춘 선생의「사찰 문화에 따른 제다 전승의 현황과 특징」이라는 논문의 토론을 맡았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 논문을 포함하여 여섯 편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하여 오후 5시 30분까지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체하며 발표와 토론 그리고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구성은 3개의 세션(session)으로 1. 한국 제다의 역사적 전승양상과 특징 2. 한국 제다의 전승 실태와 특징 3. 한국 제다의 진흥방안과 미래가치로 그 핵심은 제다와 전승맥락이었다. 그런데 이날 학술대회의 결과는 차문화 전승연구의 전공자로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차계와 학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기조강연부터 약속된 발표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마치 그것이 룰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발표자가 토론시간까지 다 사용하고 토론은 마치 구색 맞추기 위한 장식물처럼 시간을 재촉하고, 토론에 대한 발표자의 견해조차 들을 수 없는 구성이 아쉬울 뿐이었다. 또 모 차인(?)은 대회장 입구에서 차를 대접하는 찻자리에서 “차 맛도 없다”는 핀잔을 하기까지 했다. 제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기념이라는 축제 분위기보다 상대 제다인을 흠집내기에 일관한 지적들로 성숙하지 못했다. 차계와 학계 전체의 성찰이 필요할 때다. 특히 올해 丙申年에는 정부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았다. 성숙된 국민의 집단 지성이 촛불로 항변하는 광장의 문화가 크게 대두되었던 해였다. 역사의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차계 역시 이러한 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봉착했다고 생각한다. 몇몇 지명도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차문화계의 독재의 시대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주최측에서는 이 학술대회의 발표집을 단행본으로 묶을 예정이라고 했다. 총서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 성과물들인지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순일 교수의 기조강연에서부터 여섯 편의 논문들은 논제가 가진 쟁점에 집중(執中)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견강부회, 주마간산, 부화뇌동,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이런 용어들만 난무한 학술대회로 막을 내렸다.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만은 아니다. 학술대회를 참가하여 경청한 플로어의 여론이다. 논제에서 설정하고 있는 시대구분은 그저 구분을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각 세션에서 구분하고 있는 시대와 범주 그리고 논거의 초점에서 어긋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내용으로 무엇을 논하려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목적과 방향성을 잃은 논거들로 방만하고 난삽했다. 문화재청에 올라와 있는 <학술대회 참관기 글>이라는 최성민 선생의 글을 읽었다. 기조강연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매우 신랄했다. 공감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박희준 선생의 조선시대 제다를 논하는 연구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한국 차나무 시배지 문제에서부터 이미 역사성에서 그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송경섭 선생의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야국의 차 문화론 등 선행연구검토의 부재가 야기되었다. 조선시대의 제다법을 논하기 위한 다서들도 다소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박정희 선생이 토론문에서 지적한 일본과 네덜란드의 농서를 참고해 편찬한 책이 우리나라 제다법을 분석하는 기본서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등가적이지 않은 다서들의 비교분석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우리나라 차문화사에서 조선시대의 차 생산, 특히 제다에 관한 기록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라는 어불성설의 논거를 제시하는가 하면 조선시대 제다법과 전승문화로서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는 연구 목적과는 매우 相反된 전개를 보여 주었다. 학계에 발표된 기존 연구의 동향과는 어긋난 성과 없는 결론이었다.

우리 차문화 역사상 자료적으로 가장 많은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시대는 조선시대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 후기 차문화 중흥의 3인방이라고 하는 다산과 초의 그리고 추사가 활동했던 시기를 중심으로 음다 문화가 크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다와 차문화 전승의 일면에서 다산과 초의를 큰 획으로 한 시대와 공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대의 차문화의 뿌리에서 조선 후기 경화사족들의 음다 문화 확산기가 우리 차문화의 시대적 범주와 공간적 폭을 대표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 차문화는 생성에서 현재까지 수많은 문화 특색의 소재들을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연구의 영역에서 제외된 시간적 공간적 범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사각지대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 주목하지 못했던 새로운 근거나 범주 설정도 없이 기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방만하게 펼치는 수준에서 그쳤다.

강순형 선생의「일제 강점기 이후 제다의 지속과 변화」라는 논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것은 부제이고 주제는 「한국 근현대 덖음녹차 제다의 정체성 찾기」이다. 굳이 부제를 달 이유도 없었다. 논고의 전개로 봐서는 시대구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지속과 변화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그 본질은 전승맥락이다. 논제에서 필자는 꽤 기대를 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라는 시대구분이 구미를 당기게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허울만 좋았다. 속빈 강정이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구분은 공중에 날리고 발표자가 속해 있는 협회를 홍보하거나 문화재와 전통이라는 절 주제로 1장과 2장을 채웠다. 핵심이라고 하는 3장에서는 시대구분과 달리 조선시대 제다법이 전부였다.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다서 역시 <조선실록>, <세종실록 지리지>, <승정원일기>였다. 그리고 뜬금없이 난데없이 터무니없이 백자 다기가 등장한다. <근대 덖음녹차 제다>라는 소주제에서는 장원의 다록, 추사와 산천, 초의의 다신전이 주 내용이다. 현대 작설차에서는 『조선의 차와 선』에서 언급한 백운옥판차 등이 1쪽에 불과하다.

시대구분은 논문에서 다루어야 할 범주의 설정이다. 더욱 아연실색한 것은 <초의선다>라는 차통을 제시한 증제차 제다방식이다. 초의=증제차 라는 등식인가?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적 해석인가? 기 연구된, 조사된 초의차의 제다법 또는 근 현대의 제다법의 연구 성과들은 묵과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도대체 일제 강점기 이후의 제다의 지속과 변화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우문의 현답처럼 토론자가 문제의 핵심 사항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성을 잡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리고 토론자에 대한 답변은 성실하게 응답하는 것이 학술대회의 정석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차계의 고민이나 논란들을 정리하고자 기획하는 것이 학술대회 개최의 목적이고 이유이다. 그러나 이 주제의 발표에서는 오히려 토론자의 담론이 차계에서 우려하는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토론을 담당한 김동명 교수는 “필자는 결론에서 현재 제대로 정립된 제다법이 없다고 하면서 그를 위해 ‘복원’이 해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복원이 진행되어야 하는지 그 대안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주관적 생각 일변도의 글로 토론자의 질의응답에도 불성실하게 마무리하는 인상을 남겼다.

논문은 논증의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논증이라고 한다. 주관적 견해를 나열하는 것이 연구논문은 아닐 것이다. 객관성의 결여는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제다라는 핵심주제에 부합되지 않고 제다의 과정만 나열하는 것이 제다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연구라고 할 수 없다. 학술대회를 기획할 때는 관련 논문 연구자를 존중하여 구성에 중점를 두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시대구분이 필요하고 세션구분이 필요한 것이다. 논문 한 편도 쓰지 않은 발표자의 논문, 관련 연구와는 아무 상관없이 배정된 토론자! 이런 문제는 기본적으로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과가 도출될 수 없었던 것은 시작부터 예견된 구멍이고 허점이었다.

이경희 선생의「제다의 민간전승 현황」은 말할 것도 없다. 차문화 연구에서 가장 많은 연구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茶詩이다. 그런데 茶詩의 이해부족은 물론 문헌자료나 선행연구 검토가 불충분하다는 해석이 중론이었다. 현지 내지 현장조사는 역사적 자료와 현장의 중요성, 지역의 특수성, 그리고 그 시대의 공간에서 살았던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의의를 갖는다. 형성과 변화 그 어느 것도 현장을 통하여 드러나지 않는 것을 조사라고 할 수 있는지 그 정당성의 결여가 심각하게 발현되었다. 물론 기록되지 않은 전승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현장론적 방법론인 기억을 쫓는 것이고, 그 기억은 구비문학조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현장조사는 문헌을 통해 그 지역에 대해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한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전재는 참고자료가 있다는 강점과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무작정 현장조사를 해 보았더니 결과는 허술하더라 라는 논지의 현장을 조사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取捨 중 하나이다. 더불어 옛 문헌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추적하는 방식도 있다. 일종의 사례조사인 셈이다.

그러나 문헌에 근거하지 않은 지역을? 더구나 역사성이나 지역성마저 고려할 수 없는 지역의 현장을 차문화의 민간전승지역이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타인의 자료 발굴 업적을 각주나 인용도 없이 본인의 발굴인 양 사용하거나 기록 자료의 원문 제시도 없이 해석하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사진 자료나 근거자료 하나 없이 현장조사의 사례로 제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 하다. 가장 큰 문제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이해가 부족한 실정에 있다는 것이다. 공시적 상황에서 민간제다는 어떻게 대응하며 존재했는가의 전승 여부는 그 어느 쪽에서도 부재임을 여실히 드러낸 논고였다. 녹차를 기호식품이라고 정의하고 “기호식품만이 한국적 전통이 아니다”라는 논거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발효차가 대세라는 논지는 현재 차계와 학계가 고민하는 거대담론을 1세기 정도 후퇴시키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이 발표의 토론자인 김동곤 제다 명인 역시 시대 구분이나 음다 문화의 변천 내용 그리고 녹차 제다법의 유입과 영향 등에 대한 논지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더불어 현장조사의 논거들이 빈약함도 지적했다. 떡차는 화석과 같은 차, 옛날에 있었던 차라고 정의했다. 오히려 연구자의 발표 내용보다 제다 명인의 논지가 더 정확하다는 평가로 분석 되었다.

대표적 민속학자들(나승만, 임재해)의 주장처럼 문화산업의 핵심은 상업적 이득을 얻기 위한 문화의 상품화가 아니라 문화의 창조적 생산력 회복과 확장이며, 이를 위해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문화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부터 있었던 문화자원을 잘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곧 문화의 시대에 있어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문화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능력과 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스스로 문화력을 회복하고 문화생산의 터전 구실을 만드는 단계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가치관이 제다인에 의해 인지되고, 나아가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발견할 때 이를 실현하라는 당위성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고 이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찾는 동시에 문화적 힘을 확산시키는 능력을 갖추는 지적 생산성은 차 학계나 차인 단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어지는 발표에서도 상당한 오류들은 발견되었다. 기존의 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었다. 박동춘 선생은「사찰 문화에 따른 제다 전승의 현황과 특징 -대흥사를 중심으로」라는 연구 논문이었다. 연파와 초의의 제다법을 본사와 말사의 구도에서 사찰문화에 따른 제다법의 특징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초의의 제다법이 범용된 사찰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의 논란도 주목을 끌었다. 더욱이 대흥사라는 사찰 배경으로 사찰문화를 아우를 수 있을지의 논의도 진행되었다. 또 여러 차례 발표된 자신의 논문을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모색도 없이 참신성이나 독창성의 결여도 지적되었다. 고연미 선생의 「해외 제다 관련 문화재 사례를 통한 한국 제다의 전승방안 모색」이라는 논문이다. 해외 제다 관련 문화재 사례는 범주만 방만했다. 내용은 한 ․ 중 ․ 일의 비교였다. 결론으로 제시하는 첫 번째 모색의 제안은 학술적 제다 현장의 기록화였다. 그리고 학술총서발간, 인식제고와 제도 개선을 들었다.

이러한 문제점의 도출은 1970년대 차문화 연구가 활발해지면서부터 있어왔다. 기본적으로 눌러 붙은 문제를 벗겨내지 못한 이러한 대안은 연구를 위한 연구에서 답보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일인의『조선의 차와 선』이후의 국내 연구자들의 현장조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뿐더러 이후 진행되는 현장조사의 참고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자의 목소리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진실성의 결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차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날 학술대회는 그 실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세부전공 연구 관련자의 연계나 연동이 모두 무너졌다. 관련 연구 한 편 없어도 발표자와 토론자가 구성되는 것이 차판이다. 제다가 핵심인 학술대회에서 제(내) 다(차)만 훌륭하다는 아전인수격 홍보전략과 낯내기에 바쁘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 수 있을까 하는 계산속에서 학문의 성과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학문은 역사적 진실성을 도출해 내는 것을 1차적 작업으로 삼는다. 논문은 어느 것이든 학문의 발전을 도모하는 연구 결과를,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공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자료적 근거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국가 정책의 기틀이 되어야 함은 물론 차문화 ․ 산업진흥의 樣式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의 良識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 良識만이 예산 낭비나 정부기관의 부정의 계연성을 차단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고연미 선생의 「해외 제다 관련 문화재 사례를 통한 한국 제다의 전승방안 모색」의 토론을 맡은 양원모 교수의 논지는 오히려 더 정확했다. “동아시아 각국이 갖고 있는 문화재로서의 핵심제다기술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한국 제다의 차별성과 문화적 가치를 밝히는 토대이다. 중국과 일본의 제다 전승사례는 특정보유자나 보유단체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호 육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나라는 제다 기술에 관한 특정 보유자나 단체 및 지역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를 보호 육성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제다가 그 역사적, 학술적, 기술적 가치와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단체 및 지역의 토대로 차의 종류와 가공방법, 그 효능과 기능 및 상품성이 다양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다 종목만의 지정 한계를 벗어나, 개인이나 단체 및 지역 제다의 다양성과 역사성의 인정 ․ 계승 ․ 발전에 관한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 과제라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양원모 교수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전통식품의 계승발전과 가공기능인의 명예를 보호할 목적으로 전통식품 명인을 지정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차분야에서는 현재 우전차명인, 죽로차명인, 수제녹차명인, 야생차명인 등이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무형문화재제도와 명인제도와의 연계나 활용 및 상호보완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도 지적하였다.
제다 기술자들은 농림부에서 명인 제도에 의해 검증된? 기술자들이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제다’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에 이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 것인지 큰 과제로 남았다. 부디 선대 차인들의 노력과 집념이 헛되지 않기를, 다시 한국 차문화가 조선시대 중흥의 역사와 근 현대 부흥의 역사에 이어 더 크게 부활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