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제일의 명필, 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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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일의 명필, 김생(경북일보, 경북칼럼)| ───∥고향의소식들

초동 | 조회 51 |추천 0 | 2009.10.23. 09:02


   
해동제일의 명필, 김생

기사입력 | 2009-10-23

이문학(봉화군청소년센터장)


   김생은 서기 711년(통일신라)에 태어나서 791년 향연 80세를 일기를 세상을 떠났다. 김생은 비천한 가문의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으며 세상을 떠나기까지 글쓰기를 쉬지 않았다. 예서, 행서, 초서에 모두 능통했으며, 고려시대까지 그의 필적이 전해져 그것을 보배로 여겼다고 한다.

 

   예로부터 산세가 아름답고 봉만대곡의 절묘함이 금강산과 방불하다하여 소금강이라 불려지고 있는 봉화군 명호면 소재 도립공원 청량산에는 '해동제일의 명필' 또는 '신품제일의 명필', '해동서성'이라 불리는 김생과 관련한 유적과 설화가 많이 남아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이며 조선중기의 학자 권호문이 쓴 청량산록에는 "김생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봉화 재산 땅에서 태어나 이 산의 비폭굴(현 김생굴)에 들어가 글씨를 익혔는데 그 필적이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있다.", "청량산 주변의 여러 고을 사람들은 김생이 재산현 출신이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믿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김생은 이 산 비폭굴에 들어가 글을 익혔는데 지금까지 그 필적은 해동에서 으뜸이다."라 했다.

 

또 조선중기 문신 주세붕이 쓴 청량산 유람기에는 "우리 집에 김생의 글씨 첩이 있는데 그 자획이 다 가파르고 글 색이 멀리서 바라보면 여러 바위가 다투어 삐죽삐죽 빼어난 것 같다. 이제 이 산을 보니 김생이 여기서 공부를 하여 필치의 정교함이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후략)"

"다만 김생의 글은 반듯하고 장욱(당대 초서의 달인)의 것은 기이하므로 해소와 초서의 구분이 있을 따름이다."라 했다.

 

김생과 관련한 유적으로 김생굴이 있다. 이 굴속에서 10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는데 붓을 씻었던 우물이 있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김생의 글씨와 청량 봉녀의 길쌈으로 서로 기예를 겨루던 전설이 서린 곳이다.

또 김생 굴 앞에 있는 청량정사에서 바라보면 천길 높은 곳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김생 폭포가 장관이다.

 

그런데 김생은 언제 어느 때 눈을 감을지 모르는 노경에서도 다른 일에는 기진맥진하다가도 붓을 잡으면 어디서 힘이 솟아나는지 모르게 태연히 글을 썼다. 중국 사람들조차도 김생의 글씨와 왕희지의 글씨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왕희지체의 달인이었다.

 

또 조선중기 학자 허미수의 기록에는 "그는 나뭇가지로 땅을 긁으며 운필법을 익혔지만 신묘한 경지에 도달했다."하고 과재집(果齎集)에는 "김생이 토굴 속에서 나뭇잎에 마구 글씨를 썼기 때문에 낙엽과 시냇물이 새까맣게 변했다."한다. 고려 시대 문인들에 의해 해동제일의 서예가로, 이규보는 신품제일의 서예가로 평가받았다.

그의 진면목을 살피고 청랑산 등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청량산 박물관에서 김생특별기획전(10.23~11.22)을 마련 김생글씨를 집자한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등 세상에 남아 있는 50여점의 귀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문학(봉화군청소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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