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행다법

2017. 10. 20. 00:41차 이야기



한국 전통 행다법| 자사호 이야기
  suji |  조회 31 |추천 0 | 2009.05.11. 13:21

  

한국 전통 행다법

1.고구려 시대 행다법

1)무용총(舞踊塚)의 행다법

장소:접견실
인원:3명(주인, 승려 2명)
의식:일반 행다법
문헌:고구려 무용총 벽화
연대:6세기
의의:귀족이 자기 집으로 고승을 청해서 법문을 듣고 차와 음식을 대접하는데, 일반인(신도)이 승려에게 차와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은 이 벽화가 유일하다.
해설:무용총은 만주의 즙안현 통구 지방에서 1940년에 발굴된 고구려시대 고총으로, 주실의 사방과 천정에 여러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북벽에 주인이 두 분의 고승을 청해서 법문을 들으며 차와 음식을 대접하는 광경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접견실에 장막을 치고 그 안에 주인과 승려가 마주 보도록 자리를 설치하고 각자의 앞에 음식상이 마련되어 있다. 모든 음식과 차는 그 옆 주방에서 준비해 온다.


다구:주방용 다구, 토기
차 솥(茶鼎,釜):돌
풍 로(風 爐):질, 돌
차 통(茶 桶):토기, 나무
차 ( 茶 ):떡차(가루차)
찻 잔(茶 盞):토기잔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대, 동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소반
다 과(茶 果):과일
다 연(茶 碾):돌, 토기, 나무
다 과 상(茶果床):목제 소반

행다순서(行茶順序)

-주인과 손님은 담소를 즐기는데, 여기서는 스님의 법문을 주인이 팔짱을 끼고 앉아서 듣고 있다.
-주인은 스님을 초청하고 동자는 접견실에 자리를 마련하는데 주인은 동쪽에 스님(손님)은 서쪽에 자리를 놓는다.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것으로 폭이 좁고 길며 네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주인의 의자는 동쪽에서 서쪽을 행해서 놓고 스님의 의자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도록 한다.
-시녀 세 명이 부엌에서 음식과 차와 술과 다과 준비를 한다.
-스님이 오시면 안내를 해서 접견실에 들어가 자리를 권해서 앉도록 한다.
-주인은 동자에게 명해서 음식과 다과를 준비해 가져 오도록 한다.
-동자가 나가서 시녀에게 전하면 시녀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날라 온다.
-시녀가 날라온 음식상을 동자가 문밖에서 받아 방안으로 가져와 스님께 먼저 드린다.
-나중에 주인에게 음식상을 올리고 다과상과 밥도 준비해서 올린다.
-차는 부엌에서 시녀가 끓여서 다리 달린 소반이나 다리 없는 소반에 담아서 가져다 올린다.
-차를 달이는 절차는 부엌에서 시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찻잔에 따른 차를 소반에 담아서 나른다.
-다과는 다과 접시에 가득히 담아서 올리며 과일을 다과로 사용하고 있다.
-화병이나 다병같은 병은 세 발 달린 소반에 담아 가져다 손님과 주인 앞에 놓는다.
-시동은 작은 칼로 다과를 깎아서 드리기도 하고 심부름을 하며 곁에서 필요한 일을 돕는다.

2)각저총(角抵塚)의 행다법

장소:거실
인원:3명(주인, 부인, 측실)
의식:일반 행다법
문헌:고구려 각저총 벽화
연대:6세기
의의:귀족의 주인이 부인들과 작별하고 멀리 길을 떠나기에 앞서 거실에서 회식(회식)을 하는 모습이다. 이때 술과 차와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가족과 작별할 때 베푸는 회식연에 차와 술이 등장하기는 이 벽화가 유일하다.
해설:각저총은 통구의 무용총 바로 옆에 있는데 서로 쌍벽을 이루는 고총이다. 주실 북벽에 주인이 부인들과 작별연회를 베풀고 있고 그 옆에 시중 드는 시종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천정에는 일월성신(일월성신)의 도상이 그려져 있고, 동벽에는 씨름하는 그림과 심판관 노인이 그려져 있다.
주인은 칼을 차고 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사 같은데 의자를 놓고 걸터 앉아 있고 부인들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 앞에 소반에 음식을 담아 올린 상이 하나씩 있다. 활은 사각소반에 올려 놓고 주병은 세 발 달린 소반에 올려져 있다.
다구:주방용 다구, 토기
차 솥(茶鼎,釜):돌
풍 로(風 爐):돌, 질화로
차 통(茶 桶):토기, 나무
차 ( 茶 ):떡차(가루차)
찻 잔(茶 盞):토기 잔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숫가락(茶 匙):대, 동
찻 상(茶 床):목제 소반

행다순서(行茶順序)
-주인이 먼 길 떠날 준비를 하고 부인들은 단정히 옷을 입고 거실로 나온다.
-주인은 북쪽에서 남향하고 부인들은 동쪽에서 서향하여 거실 바닥에 꿇어 앉는다.
-주인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 앉고 칼을 왼편에 차고 활은 벗어서 오른편 사각소반에 올려 놓는다.
-주인 앞에 간단한 음식과 주안상이나 다과상이 마련되고 부인들 앞에도 다과상이 하나씩 마련된다.
-주인의 오른쪽에 세 발 달린 소반에 술병이 준비되고 그 옆에 나이 어린 시동이 대기하고 있다.
-그 뒤에 시종이 한 명 대기하고, 부인들 뒤에는 시녀가 한 명, 그 뒤에는 시종이 또 한 명 대기한다.
-부인들은 슬픈 표정으로 꿇어 앉아 말이 없고 고개를 조금 숙인 체 양손을 앞으로 모아 단정히 앉아 있다.
-작별하는 회식에서 두 부인을 불러 함께 자리해서 다과를 나누는 것은 고구려인의 생활관습에 이미 등장한 예절이다.
-차는 옆의 주방에서 시녀들이 끓여서 날라다 거실의 주인과 부인에게 올린다.
-고구려 때는 귀족들 집안에서 차를 마실때 부엌에서 시녀나 시종들이 차를 달여서 가져온다.
-찻상은 사각에 네 개의 다리나 세 개의 다리가 붙어 있다. 상은 크고 작은 것이 있으며 용도에 따라 바꿔 쓴다.
-차와 음식은 항상 같이 사용되며 수렵 생활에서 얻어진 육식을 주로 했기 때문에 차는 꼭 필요한 음료가 되었다.
-거실에 장막을 치고 의자에 걸터 앉아 생활하는 관습이 유행하였던 것 같다.

2.백제 시대 행다법

   백제란 백가제해(百家濟海)가 줄어서 된 국명이다. 3국의 하나로 서남쪽에 있었던 왕조인데 지금의 전라도·충청도 일대가 옛 백제땅이다. 이 지역은 3국 중에서 차나무 재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최고 많은 양의 차가 생산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양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백제는 차 산업 및 문화가 가장 발달된 나라였다. 그런데 이런 백제의 차에 대한 문헌과 기록이 말살되어 백제 시대의 행다법을 고증할길이 없어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녕왕릉의 묘에서 찻잔이 여러 개 발굴되었고, 백제의 대표적인 미륵사지석탑에서 찻잔이 출토되는 등 여러 유적지에서 백제 때 차 문화를 확인 할 수 있는 유물들이 발굴되어 단편적이지만 그 시대의 차 생활을 짐작할 수가 있다.

3.신라(新羅)시대 행다법

1)충담선사(忠談禪師)의 행다법

(1)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께 올리는 헌다의식(獻茶義式)

장소:삼화령 미륵세존 앞
인원:1명(충담선사)
의식:헌다의식(獻供)
문헌:삼국유사 권 2, 경덕왕, 충담사
의의:승려가 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헌다의식은 충담선사에 대한 기록이 효시이다. 지금도 사원에서 승려들이 불보살님께 차 공양을 올리는 의식은 이때부터 시작된 의식이다.
해설:충담선사가 경덕왕 24년(765) 삼월 삼짇날에 경주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차 공양을 올렸는데, 이것은 신라때 유행하던 헌다의식의 일종으로 충담선사는 삼월 삼짇날과 구월 중구날에 미륵세존께 차를 올렸다. 특히 화랑 출신 승려들은 옛 수련장에 모셔진 미륵세존께 차 공양을 올렸다. 이는 내세를 기원하고 또 먼저 산화한 화랑들의 명복을 비는 의식이다.
다구:휴대용 다구, 토기
차 솥(石 鼎):돌
풍 로(風 爐):삼발이
차 통(茶 桶):나무, 토기
차 ( 茶 ):떡차(가루차)
찻 잔(茶 盞):토기 잔
찻잔받침(茶盞托):목기, 토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대, 동
차 수 건(茶 巾):베
물 통(水 桶):토기
연 료(燃 料):마른 나뭇가지
찻 상(茶 床):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적당한 장소에 다구를 펼쳐 놓고 차를 끓일 준비를 한다.
-미륵세존 앞에 촛불을 켜고 행을 사르고 인사를 올리고 준비한 간단한 제물을 차려 올린다.
-돌솥을 한편에 설치하고 삼발이 사이로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인다.
-연료는 마른 나뭇가지를 산에서 주워서 쓰거나 숯을 미리 준비한다.
-차 끓일 물은 깨끗한 물로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간다. 근처에 좋은 물이 있으면 그곳에서 길어 온다.
-돌솥에 물이 다 끓으면 한 사발을 먼저 떠내서 찻잔에 부어 잔을 데운다.
-미리 준비한 떡차를 갈은 가루차를 차통에 담아가지고 와서 사용한다.
-차통을 왼손으로 가져와 뚜껑을 열고 오른손으로 차숫가락을 들고 적당량의 차를 떠내서 돌솥에 넣는다.
-차의 양과 물의 양이 알맞아야 하며, 차가 우러나도록 돌솥의 뚜껑을 덮어 잠시 끓인다.
-미륵세존께 올린 찻잔의 물을 버리고 물기를 차수건으로 닦아 제자리에 놓는다.
-차가 맛있게 끓여지면 돌솥 뚜껑을 열고 표주박으로 한 잔을 떠내서 찻잔에 따른다.
-찻잔을 찻상에 옮겨 놓아 미륵세존께 가지고 가서 그 앞에 올린다.
-두어 발 뒤로 물러나 축원이나 기도를 드리며 절을 한다.
-절과 기도를 마치고 잠시 기다렸다가 차를 내려 헌식하고 차도구를 챙긴다.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 차도구를 챙겨 짊어지고 하산한다.

(2)귀정문(歸正門)루(樓)에서 경덕왕(景德王)께 헌다(獻茶)

장소:신라 반월성 귀정문 루
인원:경덕왕과 신하들, 충담선사
의식:헌다의식(獻供)
문헌:삼국유사 권 2, 경덕왕, 충담사
의의:승려가 임금께 차를 달여 올린 헌다의식은 이 기록이 최초이다. 이후로부터 임금이 절에 거동하면 차를 달여서 공양을 하는 관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창림사에는 임금이 거동하면 차 공양을 하고 머물 수 있는 다연원이라는 다실이 있었다.
해설:충담선사가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헌다를 하고 내려와 반월성 근처를 지나다가 귀정문 루에 올라 있던 경덕왕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경덕왕의 요청에 의해서 차를 달여 경덕왕께 올린다. 이때 옆에서 모시고 있던 신하들에게도 차를 대접하고 왕의 요청으로 안민가를 지어서 드리고 국태민안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다.
다구:휴대용 다구, 왕실 다구
차 솥(石鼎):돌, 은(왕실)
풍 로(風 爐):돌, 질화로
차 통(茶 桶):나무, 토기
차 ( 茶 ):떡차가루(가루차)
찻 잔(茶 盞):토기, 은(왕실)
찻잔받침(茶盞托):목기, 토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은(왕실)
차숟가락(茶 匙):동, 철, 은
차 수 건(茶 巾):베, 마
물 통(水 桶):은병
연 료(燃 料):숯, 백탄
찻 상(茶 床):목기

헌다순서(獻茶順序)
-귀정문 루로 올라가 경덕왕께 숙배를 드린다.
-왕의 명을 받아 다구를 꺼내 펼쳐 놓고 차 끓일 준비를 한다. 부족한 다구는 왕궁에서 급히 가져온다.
-왕이 마실 은찻잔과 찻물 끓일 풍로와 깨끗한 물을 급히 준비해 온다.
-풍로에 숯불을 일구어 그 위에 돌솥을 얹고 길어 온 물을 부어 찻물을 끓인다.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물을 끓이고 가져온 다구를 깨끗하게 닦는다.
-물이 끓으면 한 사발을 떠내서 왕의 찻잔에 부어서 데운다.
-돌솥 뚜껑을 열고 가루차를 적당량 넣고 뚜껑을 덮고서 잠깐 기다린다.
-찻잔의 데운 물을 비우고 잔의 물기를 닦아 청결하게 하여 상위에 놓는다.
-차가 잘 끓여졌으면 표주박으로 차를 떠내서 은잔에 알맞게 따른다.
-시자상에 옮겨서 신하가 받아들고 가져다 경덕왕께 올린다.
-차를 올리고 드실 것을 권하며, 왕이 받아서 다 마시고 잔을 물리면 신하가 받아서 전한다.
-신하들에게도 차를 주라는 명을 받고, 돌솥에 물을 부어 물을 다시 끓인다.
-신하들에게 줄 찻잔을 펼쳐 놓고, 끓인 물을 부어서 잔을 데운다.
-찻물이 다 끓으면 가루차를 돌솥에 넣고 뚜껑을 덮어 다시 살짝 더 끓인다.
-차가 다 끓여졌으면 잔에 고루 나누어 따라서 신하들에게 나누어 드린다.
-신하들도 차례로 차를 받아서 마시고 찻잔을 거두어 다구를 챙겨 정리한다.
-왕의 청으로 안민가(安民歌)를 지어서 올리고 물러난다.

(2)보천·효명태자(寶川·孝明太子)의 행다법

(1)오대산 문수보살(五臺山 文殊菩薩)께 올리는 헌다의식(獻茶義式)

장소:오대산 상원사(眞如阮)문수보살 앞 골짜기
인원:2명(寶川·孝明太子)
의식:헌다의식(獻供)
문헌:삼국유사 권 3,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명주오대산(溟洲五臺山) 보즐도태자전기(寶叱徒太子傳記)
연대:신문왕(神文王 681∼692년) 때
의의:보천·효명 두 태자는 날마다 진여원(眞如院)에 와서 36종의 모양으로 화현하는 문수보살님께 차공양을 올려 성불(成弗)하기를 기원했다.
해설:두 태자가 수도생활을 위해서 문수보살께 날마다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올렸는데, 문수보살이 매일 두태자 앞에 화현하여 36가지의 모양으로 변신하여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른 아침 지금의 상원사 자리에 와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신을 해 보이자 환희심이 나서 두 태자는 온갖 공경의 예를 다 갖추어 허공에 계신 문수보살께 차를 달여 올린 것이다. 이후로 보천태자는 득도하여 천인들의 예배와 차공양을 받게 되었다.
다구:휴대용 다구, 토기 다구, 유람할 때 휴대한 다구, 왕실용 다구
다 관(茶 罐):전다용(煎茶用), 토기
차 솥(茶鼎,釜):돌, 철
풍 로(風爐·火爐):발달린 솥, 삼발이
다 연(茶 碾):돌, 토기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통(茶 桶):나무, 토기
차 ( 茶 ):잎차
찻 잔(茶 盞):토기잔, 완, 은
찻잔받침(茶盞托):토기, 목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베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허공에 화현하신 문수보살께 예배를 드린다.
-다구를 펼쳐 놓고 차를 달일 준비를 하는데 보천태자는 다구를 챙겨놓고, 효명태자는 차 끓일 물을 길어 온다.
-불을 지펴 물을 끓이는 동안 보천태자는 차 올릴 단(壇)을 정리한다.
-돌솥에 물이 끓으면 먼저 한 바가지 떠내서 다관과 찻잔에 부어서 데운다.
-다관이 데워지면 다관에 물을 버리고 다관에 차를 넣는다.
-다관에서 차가 우러나는 동안 찻잔의 물을 버리고 물기를 닦는다.
-다관의 차가 알맞게 우러나면 찻잔에 따른다. 찻잔은 문수보살께 올리는 잔 한 개만 사용한다.
-찻잔을 시자상에 옮겨 놓으면 효명태자가 받들고 가서 헌공단위에 올려 놓는다.
-보천태자와 효명태자가 나란히 허공의 문수보살을 향해서 예경을 올린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잔을 물려서 헌식을 하고 다구를 다시 챙겨서 각기 자기 암자로 돌아간다.
-매일 아침 이와 같이 헌다를 하고 각기 헤어져 자기 암자에서 도를 닦았다.
-두 태자의 복식은 신라왕자(태자)의 복장이다.
-문헌상에 전다(煎茶)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잎차를 달이는 것으로 풀이하지만 신라 왕실에서 행하는 헌다의식이 행해졌을 것이다.

(2)오대산 신성굴 보천태자(五臺山 神聖窟 寶川太子)께 올리는 헌다의식(獻茶義式)

장소:오대산 신성굴 보천태자 앞
인원:보천태자, 정거천인(淨居天人)들
의식:헌다의식(獻供)
문헌:삼국유사 권 3,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연대:신문왕(神文王 681∼692년)-경덕왕(景德王 742∼765)
의의:보천태자가 50년 동안 참 마음을 닦아서 도업을 성취하니, 천인(天人)과 천신(天神)들이 예를 갖추고 법을 듣는다. 성자(聖者)의 지위는 하늘보다도 높다. 천인(天人)이 인간에게 차공양을 올리는 최초 의식이다.
복식:신라 왕자(태자)복식
해설:보천태자가 불퇴전의 마음으로 50년 동안 도를 닦아 법력이 생기니 도리천(悼利天)의 천신(天神)이 도(道)를 묻고 정거천(淨居天)의 천인(天人)들이 차를 달여 바치고 또 40명의 성인들이 10척 높이 하늘을 날면서 항상 그를 호위해 주고 또 그가 가졌던 지팡이는 하루에 세 번씩 소리를 내면서 방을 세 바퀴씩 돌아다니므로 이것을 쇠북과 경쇠로 삼아 수시로 수업했다. 이처럼 도업을 성취한 보천태자에게 천인(天人)들이 헌다공양하는 의식은 특별한 의식의 일종이다. 천인들의 의식은 인간세상의 의식과 동일시하여 해석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다구:천인(天人)들의 다구, 신라인의 다구, 숙다(熟茶)도구
차 솥(茶鼎,釜):돌, 철, 동
풍 로(風爐·火爐):삼발이, 발 달린 솥
다 연(茶 碾):돌, 토기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통(茶 桶):나무, 토기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토기잔, 완
찻잔받침(茶盞托):목기, 토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베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보천태자가 계시는 신성굴 앞으로 천신(天神)과 천인(天人)들이 모인다.
-보천태자께 천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차를 끓일 준비를 한다.
-보천태자의 주위에는 천인(天人)들이 옹호하고 정거천의 천인(天人) 몇 사람이 차를 달일 다구를 준비한다.
-차 도구를 보천태자 앞에 펼쳐 놓고 신통으로 불을 일궈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떡차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놓는다.
-돌솥에 물이 다 끓으면 물을 한 바가지 떠내서 찻잔을 데운다.
-돌솥에 가루낸 차를 넣어서 끓인다. 이때 보천태자에게 올릴 차 한잔만 끓인다.
-찻잔에 물을 버리고 잔을 청결하게 닦아서 놓고 차가 익었나를 살핀다.
-차가 잘 끓여졌으면 돌솥의 차를 떠내서 찻잔에 따른다.
-찻잔에 따른 차를 찻상에 놓는다.
-다른 천인(天人)이 찻상을 받쳐 들고 보천태자에게 가져다 올린다.
-보천태자는 차를 받아서 천악(天樂)이 울리는 가운데 마신다.
-보천태자가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찻잔을 천인(天人)이 받아서 가지고 물러난다.
-다구를 챙겨서 예배를 드리고 승천한다.]

3)원효성사(元曉聖師)의 행다법

장소:부안 변산의 원효방 거실
인원:2명(元曉·蛇包)
의식:일반 행다법(茶室)
문헌: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권 23, 기(記):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연대:신라 태종무열왕(617∼686)
의의:사포성인은 날마다 원효성사께 차를 달여서 대접했는데 기록상 가장 오래된 다실(거실)에서의 행다법이며, 그 대상이 모시고 사는 어른이다.
해설:원효성사와 사포성인이 전북 부안군 변산에 있는 원효방에서 함께 지냈는데 사포성인이 차를 달여 원효성사께 드리려고 했으나 물이 없어 걱정을 하니 갑자기 절 옆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서 이 물로 차를 달여 공양을 하였다. 시자가 스승께 차를 달여 공양을 하는 이러한 행다법은 지금도 사원에 전승되어 오는 행다법이다. 이런 행다법은 주로 거실에서 베풀어 진다.
다구:다실용 다구, 백제 토기 다구
차 솥(茶鼎,釜):돌, 철
풍 로(風爐 火爐):삼발이
다 연(茶 碾):돌, 토기, 나무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통(茶 桶):나무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토기잔, 완
찻잔받침(茶盞托):목기, 토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다실(방)밖에서 탕관(차솥)에 물을 끓일 준비를 한다. 불을 피울 숯이나 마른나무를 가져온다.
-다실 밖에서 불을 피워 찻물을 끓일 차비를 해놓고 샘에서 물을 길어 온다.
-화로에 차솥을 올려놓고 물을 끓인다. 물 끓이는 일은 밖에서 한다.
-차 달일 다구를 챙겨서 다실로 가지고 들어가 배열을 마친다.
-밖에서 물이 다 끓으면 삼발이나 화로를 준비해서 차솥을 가지고 들어와 다실에 놓는다.
-떡차를 다연에 넣고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놓는다. 가루차는 거친 가루이다.
-차솥의 탕수를 한 바가지 떠서 잔을 데운다. 그리고 가루차를 차솥에 넣는다.
-또는 가루차를 찻잔에 넣고 탕수를 한 바가지 떠서 그 위에 붓는다.
-차솥에 넣은 차는 잘 끓여진 후에 찻잔에 떠내서 다뤄 마시지만,
-찻잔에 가루차를 넣고 그 위에 탕수를 부어서 만든 차는 다선으로 저어서 거품을 낸다.
-적당하게 물과 차가 섞여지고 거품이 나면 찻잔을 찻상으로 옮긴다.
-찻상에 받들어 가지고 가서 원효대사께 드린다. 차를 다 마시면 찻잔을 물린다.
-찻상에 찻잔을 받아 가지고 물러나 다구를 챙겨서 치운다.

4)지장법사(地藏法師)의 행다법

장소:중국 구화산 신광령
인원:지장법사와 동자(道明):2명
의식:일반 행다법(茶室)
문헌:해동역사(海東繹史)의 다시(茶詩), 사대명산지(四大名山志)권 8
연대:신라 성덕왕(702-737)
의의:도명이라는 동자승과 함께 구화산 깊숙한 암자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도명시자가 매일같이 차를 달여 스승께 차 공양을 올렸다.
해설:중국 안휘성 청양헌 구화산에는 신라 지장법사가 수도를 해서 등신불이 된 도량이다. 이곳에서 수도하고 계실 때 어린 동자승(도명)과 함께 살았는데 이때 시자로 있던 동자가 매일같이 차를 달여 지장법사께 차공양을 올린 것이다. 이곳에는 지장법사가 신라에서 가지고 갔다는 금지차(金地茶)가 지금도 전한다.
다구:다실용 다구, 중국 당나라 때 다기
차 솥(茶鼎,釜):돌, 철
풍 로(風爐 火爐):삼발이
다 연(茶 碾):돌, 나무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통(茶 桶):나무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잔, 완
찻잔받침(茶盞托):목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차 끓일 도구를 준비하고 샘에서 찻물을 길어 온다.
-밖에서 풍로와 차솥에 불을 피워서 찻물을 끓일 준비를 한다.
-차솥에 찻물을 적당량 넣고 불을 피워 물을 끓인다.
-찻물이 다 끓기를 기다려서 방안에 다구를 펼쳐 놓고 차 달일 준비를 한다.
-차솥을 방안으로 옮겨와 자리에 놓고 떡차를 가루낸 차를 찻잔에 넣는다.
-찻잔에 가루차를 넣고 그 위에 탕수를 부어서 다선으로 젓는다.
-찻잔에 거품이 일고 찻가루가 잘 풀리면 잔을 들어서 찻상에 옮긴다.
-찻상에 찻잔을 받쳐 들고 가지고 가서 지장법사께 올린다.
-지장법사께서 다 드시고 난 후 찻잔을 받아 가지고 물러난다.
-찻잔을 제자리에 놓고 다구를 챙겨 치운다.
-다구는 적당한 장소에 매일 쓰기 편리하게 챙겨서 둔다.

5)진감선사(眞鑑禪師)의 행다법

장소:지리산 쌍계사(玉泉寺)
인원:2명(眞鑑,侍者)
의식:일반 행다법(茶室)
문헌:쌍계사진감선사비문〔雙磎寺眞鑑禪師碑文(진감선사 대공탑비명)〕
연대:신라 현덕왕∼흥덕왕(810∼830)
의의:진감선사가 쌍계사의 다실에서 혼자 차를 달여 마신 차생활은 사원의 승려들이 차생활을 할 때 혼자서 즐겨 행하는 다법이고, 시자가 차를 달여 스승께 바치는 행다법은 예나 지금이나 공히 행하는 의식이다.
해설:진감선사가 지리산 쌍계사의 전신인 옥천사의 뜨락에서 돌솥에 섶나무로 불을 지펴서 찻물을 끓이고 또 떡차를 가루내지 않고 덩어리 채 돌솥 속에 넣어서 차를 끓인다. 달관한 도인이 시자도 없이 손수 차를 달여 마시는 모습은 아무 것도 구애됨이 없고 걸림없이 사는 사람의 표본이다. 모든 사람들은 떡차를 가루내서 끓여 마셨지만 선사는 덩어리 채로 끓여 마셨다.
다구:다실용 다구, 중국 다기
차 솥(茶 釜):돌, 솥
풍 로(風爐 火爐):삼발이
차 (漢 茗):떡차
차 통(茶 桶):나무, 죽제
찻 잔(茶 盞):토기잔,완
찻잔받침(茶盞托):토기, 목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 수 건(茶 巾):베
연 료(燃 料):섶나무
찻 상(茶 床):목제
(제외된 다기)
다 연(茶 碾)
다 저(茶 杵)
차숟가락(茶 匙)
찻 솔(茶 拂)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지 거실 밖에다 차 끓일 준비를 한다.
-풍로(삼발이)를 준비하고 섶나무와 돌솥을 옮겨다 놓는다.
-찻상에 찻잔과 차통, 표주박, 차수건 등을 갖추어 가져다 놓는다.
-차 끓일 샘물을 길어 와 돌솥에 붓고 불을 일궈 끓이기 시작한다.
-찻물이 잘 끓으면 뚜껑을 열고 끓은 탕수를 한 바가지 떠내서 찻잔을 데운다.
-찻물이 잘 끓었으면 불 때던 일을 멈추고 돌솥 뚜껑을 열고 떡차를 덩어리 채 넣는다.
-잠깐 기다렸다가 차가 잘 알맞게 우러나면 돌솥에서 차를 떠내 찻잔에 따른다.
-찻잔에 따른 차를 들고 마시기에 편한 장소로 옮긴다.
-거실 안으로 가져 가기도 하고 가까운 장소에서 차를 마신다.
-차를 다 마신 뒤에는 다구를 챙겨서 들고 가 깨끗히 닦아서 보관한다.
-격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해야만 한다.

6)수철화상(秀澈和尙)의 행다법

장소:지리산 실상사(實相寺), 법당
인원:사부대중
의식:헌다의식(제사)
문헌:실상사(實相寺)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秀澈和尙凌伽寶月塔碑)
연대:신라 헌덕왕∼진성여왕(817∼893)
의의:수철화상의 제단에 차를 달여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헌다의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문헌상 최초로 스님의 제단에 차를 올린 기록이다. 왕의 예물로 차를 보냈고, 또 이차를 제단에 끓여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최초의 일이다. 제물로 차가 등장한 사례이다.
해설:생전에 차를 즐겨 마신 수철화상은 입적하신 뒤에도 그의 제자들이 끓여서 올린 차를 대접받게 되었는데, 더욱이 임금이 많은 차와 물자를 보내서 제사드리게 하니, 그 예와 절차에 모든 물자는 궁중에서 보낸 것을 받아 썼으며 극진한 예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스님에게 임금이 보내준 차로 제사를 지낸 사례는 이 기록이 처음 있는 일이다.
다구:제례용 다구, 신라토기 다구
차 솥(茶鼎,釜):돌, 철(쇠)
풍 로(風爐 火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나무, 토기
다 저(茶 杵): 돌, 나무
차 통(茶 桶):나무, 죽제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토기잔, 완, 헌다용
찻잔받침(茶盞托):토기, 목기
표 주 박(茶 瓢):목기, 토기
차숟가락(茶 匙):동, 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시 자 상(侍者床):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다각(茶角)이 법당 밖에서 차 끓일 준비를 한다.
-풍로에 숯불을 일구고 돌솥에 찻물을 담아서 풍로 위에 올려 놓는다.
-제단에 올릴 다구를 갖추어 청결하게 닦아서 준비하고, 제단에 제물로 준비해서 올린다.
-제단에 제수를 모두 올리고 제 지낼 준비를 마치면 찻물을 끓인다.
-밖에서 찻물이 다 끓으면 다기를 깨끗하게 씻고 찻잔을 데운다.
-떡차를 다연에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찻물이 알맞게 끓으면 돌솥 뚜껑을 열고 차를 넣는다.
-잠시 기다렸다가 차가 알맞게 우러났을 때 표주박으로 차를 떠내서 찻잔에 따른다.
-시자상에 찻잔을 받쳐 들고 가져가 수철화상 제단에 올린다.
-찻잔 뚜껑을 열고 다게(茶偈)를 한다.
-헌다인은 의식 절차에 의해서 시자가 날라온 차를 제단에 올리고 축원을 한다.
-차를 올리는 사람은 제사 때마다 바뀔 수 있고, 제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다게를 올리며 또 차도 올릴 수 있다.
-올린 차는 내려서 헌식을 하며 다른 사람이 마시지는 않는다.
-제사를 다 지내고 나면 다구를 깨끗히 씻어서 챙겨둔다.
-의식 절차는 별도로 행하며, 그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7)최치원(崔致遠)의 행다법

(1)신라(新羅)최치원(崔致遠)의 부모(父母) 행다법(行茶法)

장소:신라 최치원의 고향집
인원:최치원의 부모(2명)
의식:일반 행다법(茶室)
문헌:계원필경(桂苑筆耕) 권18(倦十八), 사탐청료전장(謝探請料錢狀)
연대:신라 헌강왕(880∼884년)
의의:신라 때 귀족들의차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이다. 최치원 선생이 신라 땅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차와 약을 사서 부치는 관습은 이 문헌이 처음이다. 이와 같이 신라에서 중국으로 유학을 간 사람들은 중국차를 구해서 고향의 부모님께 보냈을 것이다.
해설:최치원이 보낸 중국차는 떡차였을 것이다. 당시엔 떡차를 돌솥에 달여서 마시는 팽다법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녹유를 금정(金鼎)에 끓이고 향고(香辜)를 옥구(玉甌)에 띄워야 한다고 한 것은 떡차를 가루내어 돌솥에 끓여야 한다는 뜻이다. 최치원의 부모는 신라땅에서 중국차를 신라의 다기에서 끓여서 마셨을 것이다.
다구:다실용 다구, 중국 다기
차 솥(茶鼎,釜):돌, 철
풍 로(風爐 火爐):삼발이
다 연(茶 碾):돌, 토기, 나무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통(茶 桶):나무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토기잔, 완
찻잔받침(茶盞托):토기, 목기
표 주 박(茶 瓢):목기, 토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차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庠):목제
시 자 상(侍者庠):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차 끓일 준비를 한다. 연료와 물을 준비한다.
-거실 밖에 풍로나 삼발이를 분비한다. 항상 차를 달이던 자리에서 끓인다.
-샘물을 길어다가 돌솥에 붓고 찻물을 끓인다. 연료는 숯이나 백탄이나 마른나무를 쓴다.
-떡차를 다연에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이런 일은 모두 다동(茶童)이나 시자(侍者)가 한다.
-찻물이 끓으면 먼저 한 바가지를 퍼내서 찻잔을 데운 다음 가루차를 돌솥에 넣는다.
-다시 불을 일궈 차를 끓인다.
-차가 알맞게 우러나면 찻잔에 나누어 따르는데, 먼저 찻잔의 물을 버리고 잔을 닦아서 제자리에 놓는다.
-표주박을 들고 돌솥의 뚜껑을 열고 차를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다동이 끓여서 잔에 따른 차를 시자가 찻상에 받쳐들고 방으로 들어가 두 분께 드린다.
-다동은 다구를 챙겨서 씻고 시자는 차를 다 마신 후에 찻잔을 거두어 가지고 나온다.
-모든 과정은 어른께 받들어 올리는 절차로 진행되며 이와 같은 의식은 전통적인 귀족 집 안에서 행해졌다.

(2)최치원(崔致遠)의 행다법(行茶法)

장소:중국(中國)·신라(新羅)의 거실(居室)
인원:2명(崔致遠·茶童)
의식:일반 행다법(茶室)
문헌:계원필경(桂苑筆耕)권 18(券十八), 사신다장(謝新茶狀)
연대:신라 헌안왕∼진성여왕(857∼?)
의의:최치원 선생은 중국에 유학 간 사람으로 중국에서 차생활을 익힌 사람이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가서 28살에 귀국하였는데, 차 생활은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 익힌 것으로 당나라의 음다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행다법을 했을 것이다. 행다법의 유입과 중국차의 수입이 함께 이루어진 셈이다.
해설:최치원 선생이 중국에 머물 때는 당나라의 음다풍이 절정에 이른 시기로서 육우가 다경을 저술해서 유포한 지 1백여 년이 되는 때이다. 차는 이미 국음(國飮)이 되었고, 행다법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여 선비들 사이에는 널리 유행한 때이다. 떡차를 가루내어 돌솥에 끓여 옥찻잔에 따라서 마시는 사치와 풍류가 넘칠 때이다. 그 후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나 신라나 모두 정치적으로 타락한 것을 보고 실망하여 산으로 들어가 산수간에 살다가 사라진다.
다구:다실용 다구, 중국 다기, 신라다기
차 솥(茶鼎,釜):금, 돌
풍 로(風爐 火爐):삼발이
다 연(茶 碾):돌, 나무, 토기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통(茶 桶):나무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옥, 토기
찻잔받침(茶盞托):나무, 토기
표 주 박(茶 瓢):토기,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먼저 차 끓일준비를 한다.
-풍로의 연료는 숯이나 백탄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그때 형편에 맞는 연료를 준비한다.
-샘물을 길어다 돌솥에 붓고 불을 일궈서 물을 끓인다.
-찻물이 끓으면 먼저 탕수 한 바가지를 떠내서 찻잔에 부어 데운다.
-떡차를 꺼내 다연에 넣고 가루로 만든다. 차를 끓이기에 알맞게 만든다.
-차를 가루 내면 돌솥의 뚜껑을 열고 가루차를 솥 안에 적당량 넣는다.
-찻잔에 데운 물을 씻어서 버리고 차 따를 준비를 한다.
-잔을 씻어낸 후 돌솥의 뚜껑을 열고 잘 끓여진 차를 표주박으로 떠내서 찻잔에 따른다.
-찻잔을 들고 마시기에 적당한 장소로 옮겨 차를 마신다.
-차를 다 마시고 난 후 잔과 그릇을 챙겨서 깨끗하게 씻는다.
-차를 더 마시고 싶을 때는 다병에 따라 놓고 그때마다 찻잔에 따라 마신다.
-중국식과 신라식의 겸용으로 격식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하였다.

8)사선랑(四仙朗)의 행다법

장소:강릉 경포대, 한송정 사선대 등
인원:4명(四仙 朗徒)
의식:신선 행다법(풍류)
문헌: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권 44,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누정(누정)
연대:신라(고조선)
의의:풍류도를 닦은 선인(仙人)들이 한송정이나 경포대에서 차를 달여 마시며 심신수련을 하는 사례는 선가(仙家)의 다풍(茶風)을 알 수 있는 독특한 행다법이다.
해설:선랑(仙朗)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심신수련을 하였는데 그들의 수련장에는 차를 달이는 돌절구와 돌부뚜막, 돌우물과 다구들이 있다. 항상 차를 달여 마시기 때문에 깨지지 않는 돌로 만든 다구들을 준비해 두고 사용했으며 산수간에 노닐면서 오악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또 낭도들이 차를 나누어 마시기에 편리하도록 그 자리에 고정시킨 다구를 사용했다.
다구:산천용 다구, 돌다구
다 조(茶 竈):돌 부뚜막
다 지(茶 池):석지(석지)
다 구(茶 臼):석구
차 솥(茶 鼎):돌, 철
다 연(茶 碾):돌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통(茶 桶):나무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토기
찻잔받침(茶盞托):목기
표 주 박(茶 瓢):목기, 토기
차숟가락(茶 匙):동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헌다순서(獻茶順序)
-한송정에 석지조를 이용하여 차 끓일 준비를 한다.
-석조(石竈)는 찻물로 끓이며 차 달이는 부뚜막이고, 석지(石池)는 찻물을 보관하는 기구이다.
-석지에 찻물을 길어다 놓고 석조에 불을 피워서 찻물을 끓인다.
-석조 옆에 물을 채워서 물이 데워지도록 하고 연료는 숯이나 백탄을 쓰되 솔방울을 주워다 쓰기도 한다.
-다구를 깨끗히 씻어서 준비하고 찻물이 끓기를 기다려 물이 끓으면 약간의 탕수를 떠내 찻잔을 데운다.
-떡차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돌솥에 넣어 끓인다.
-차의 양은 손님의 수에 따라 가감을 한다.
-찻잔에 물을 버리고 잘 달여진 차를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낭도 한 명이 찻잔을 받쳐 들고 정자 안에 계시는 사선에게 차를 날라다 드린다.
-사선에게 차 대접을 마치고 나면 다른 낭도들이 마실 차를 달인다.
-전과 같은 순서로 차를 달여 낭도들에게 차례로 나누어 준다.
-낭도들은 자기의 찻잔은 각자가 휴대하며 차 마실 때 꺼내어 차를 받아서 마신다.
-사선은 정자 안에서 마시고 낭도들은 밖에서 아무 곳이나 편리한 곳에서 차를 마신다.
-사선이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찻잔을 거두어 가지고 나와 석조의 데워진 물에 씻어서 보관한다.
-석조에 설거지하는 통이 함께 붙어 잇는 것이 특징이다.


4.가락국 시대 행다법

1)김수로왕묘(金首露王墓)의 행다법

장소:가락국(김해)수로왕 묘
인원:수로왕의 자손들(김해 김씨):갱세급간(賡世級干)(17대손)
의식:제례시 헌다의식(獻供)
문헌:삼국유사(三國遺事) 권 2, 가락국기(駕洛國記)
연대:신라 제30대 문무왕(661년)
의의:가락국의 시조 수로왕묘에 제사를 지낼 때 차를 올리는 헌다의식은 지금까지 계승되어 오는 헌다의식의 일종으로 궁중에서는 선왕묘에 지내고 일반 민간에서는 조상님들 제사에 차를 올린다.
해설: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어명으로 60여 년간 끊겼던 수로왕묘의 제사를 다시 이어서 지내게 되었다. 본시 이 제사는 거등왕(가락국 제2대)이 정해서 일년에 5차례(정월 3일, 7일, 5월5일, 8월5일, 15일)식 치루었는데, 구형왕이 신라에 나라를 빼앗기고부터 제사를 지내지 못했다. 이렇게 끊겨진 제사를 다시 그 자손들로 하여금 지내게 했는데, 이때 차를 함께 올렸다. 거등왕 때부터 차를 올렸는지 아니면 문무왕 때부터 차를 올렸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차로서 제사를 지낸 효시가 된다.
다구:제례시 헌다용 다구, 가야 토기
차 솥(茶 鼎):돌, 철
풍 로(風 爐):돌
다 연(茶 碾):돌, 토기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통(茶 桶):나무
차 ( 茶 ):떡차
찻 잔(茶 盞):토기(헌다용)
찻잔받침(茶盞托):토기, 목기
표 주 박(茶 瓢):목기, 토기
차숟가락(茶 匙):동, 철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시 자 상(侍者床):목제
찻 상 포(茶 佈):베

헌다순서(獻茶順序)
-수로왕묘 앞에 자손들이 모두 모여서 제사를 지낼 준비를 한다.
-먼지 제물을 차례대로 준비해서 올린다. 한쪽에서는 차 달일 준비를 한다.
-숯이나 백탄으로 풍로에 불을 피우고 돌솥을 올려 놓아 물을 끓인다.
-찻물이 다 끓으면 헌다용 찻잔에 탕수를 부어 데운다.
-찻잔을 깨끗하게 닦아서 놓는다. 그리고 떡차를 가루내어 돌솥에 넣어 달인다.
-차가 잘 끓여지면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차는 수로왕과 허황후 두잔만 준비한다.
-찻잔을 시자상에 옮겨 주면 집사가 받들고 나아가 헌관 앞에 이른다.
-헌관을 도와서 집사가 헌관에게 찻잔을 건내고 다시 헌관은 집사에게 건내서 집사가 찻잔을 올린다.
-집사가 찻잔을 올리고 물러나면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절하고,
-다시 집사가 찻잔을 가져오면 헌관이 받았다가 다시 집사에게 건네 주고 집사는 받아서 허왕후 앞에 올린다.
-집사가 찻잔을 올리고 물러나면 헌관이 일어나 절하고 제사의식을 이어서 진행한다.
-제사를 다지내고 나면 제물을 조금씩 내려 음복하고 물러난다.
-제사 때 차를 올리는 의식은 이 기록이 효시이다. 이 의식 이후에 선왕묘나 조상님들께 차를 올리는 의식으로 발전했다.

5.발해(渤海)시대 행다법

   만주 동부,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쳐 있던 나라로서 고구려가 멸망한 지 약 30년 후에 동북 지구의 당나라 세력이 쇠퇴한 틈을 타 고구려의 유장(遊將) 대조영(大祚榮)이 창건한 나라이다. 발해의 영토는 차나무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이고 오직 당나라에서 수입해서 마셨으며 신라와는 적대시하여 교류가 없었으며 먼 일본과 교류를 하였다.
그러므로 발해는 당나라의 차를 마시고 당나라의 관습을 모방했으며 심지어는 관제(官制)나 국도(國都)의 설계까지도 당의 제도를 모방하였다. 그래서 발해는 우리나라이면서도 우리의 관습보다는 당의 제도를 따른 것이다.
차 생활 역시 당나라의 법도나 도구를 사용했을 것으로 사료되며 지금도 발해의 옛 영토가 중국땅으로 되어 있고 중국인들은 발해가 자기들 나라라고 하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위축시키기 위해서 발해를 중국에 넘겨주는 역사적 횡포를 저질렀다. 그래서 역사의 왜곡과 문화의 말살이 함께 이루어진 발해의 행다법을 밝히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6.고려 시대 행다법

고려의 진다의식(進茶儀式)

   고려시대 진다의식이란 삼국시대의 헌다의식(獻茶儀式)이 발전된 것으로 국가의 많은 의식에 차(茶)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차를 올리는(進茶)의식(儀式)은 그 대상이 신불(神佛)이거나, 선왕(先王)이거나, 외국에서 온 사신(使臣)이거나, 임금이거나, 오악삼신(五岳三神)일 때도 있다. 의식 때마다 그 대상이 바뀌게 되는데 그 대상에 따라 진다의식도 그 정차가 각기 다르다.
국가에서 행하는 진다의식에는 길례(吉禮)때 진다의식과, 흉례(凶禮)때 진다의식과, 빈례(賓禮)때 진다의식과, 가례(嘉禮)때 진다의식이 있는데, 그 정차와 의식을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겠다.

   길례는 대사(大祀)와 중사(中祀)와 소사(小祀)로 나뉘는데, 대사는 환구(圜丘)·사직(社稷)·태묘(太廟)·별묘(別廟)·경영전(景靈殿)·제릉(諸陵)이 있고, 중사는 적전(籍田)·선잠(先蠶)·문선왕묘(文宣王廟)가 있고, 소사는 풍사(風師)·우사(雨師)·뇌신(雷神)·영성(靈星)·제주현문선왕묘(諸州縣文宣王廟)등이 있다. 이 중에서 진다의식을 행하던 행사는 중사 때 문선왕묘에 한하고, 경영전에는 다방의 관원이 동원되어 행사에 참여는 하였지만 진다의식은 행하지 않았다. 그 외의 행사에는 진다의식이 없었다. 그러면 중사 때 문선왕묘에 행하던 진다의식을 살펴 보기로 하자.

(1)중사 때 문선왕묘(文宣王廟)의 진다의식

장소:문선왕묘, 돈화당
인원:왕과 신하들, 감관, 학관, 학생
의식:길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券) 62,예(禮)4, 문선왕묘
의의:문선왕이란 공자(孔子)를 말하는데, 문사들을 함께 모신 묘당에 제사를 드리고 제사에 참석한 신료들에게 차를 하사하는 것을 말한다. 제단에 차를 올리지는 않지만 참석한 신하에게 차를 하사하는 의식이 있다.
해설:공자 이하 안희 등 여러 제자와 후학 문사들을 차례로 모시고 우리나라 사람은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과 홍유후(弘愉候) 설총(薛聰)을 모시었는데, 매년 춘추로 상정일(上丁日)에 임금이 직접 거동하여 제사를 모시고 제사에 참석한 태자 이하 재추 신료들에게 차를 하사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고려 초부터 실향이 된 의식이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다구, 은
다 정(茶鼎,釜):돌, 은
찻 상(茶 床):목제
풍 로(風 爐):돌, 질풍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뇌원차), 대차(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찻잔받침(茶盞托):청자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다순서 進茶順序
-다방의 관원들은 문선왕묘의 제사에 참석하고 또 시학(視學)에 참석한 신료들에게 드릴 차를 준비한다.
-먼저 문선왕묘에 제사를 드린다. 이때는 차는 쓰지 않고 술과 희생만 쓴다.
-제사를 마치고 왕이 돈화당(敦化堂)으로 납시면 모든 신료가 만세를 부른다.
-임금이 자리에 앉고 신료가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 재배 무도하고 절을 올린다.
-강서관(講書官)이 사인의 안내로 올라와 선지를 받들어 책 읽기를 마치면 모두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 입정한다.
-각문사가 왕의 말씀을 전하여 차를 하사하면 사인의 찬배를 황태자 재추 이하 모든 군신이 재배를 한다.
-왕태자 이하 군관이 당에 올라가 각각 자리 뒤에 나아가 선다.
-사인이 「각각 자리에 나아가라」고 하면 왕태자 이하가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차를 하사하기를 마치면 감관, 학관, 학생은 뜰 밑에 서서 차를 받는다.
-차를 마시라고 하면 모두 함께 마시고 사인의 찬배로 재배를 드린다.
-모두 마시기를 마치고 다시 재배하고, 사인의 안내로 들을 내려가 자리에 나아가면 사인의 찬배로 왕태자 이하 재추 및 감관이 재배한다.
-임금은 처음 거동할 때와 같이 대내로 들어가신다.


   흉례는 국휼(國恤) 진위의(陣慰儀) 부태묘의(附太廟儀) 상국사제존증부조위의(上國使祭尊贈賦弔慰儀)·제신상(諸臣喪)·인국상(隣國喪)·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등이 잇는데, 이중에서 제신상 때에는 부의품(賻儀品)으로 차(茶)를 하사 하셨고,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의식(重刑奏對儀)때에는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1)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의 진다의식

장소:내전(內殿) 남랑(南廊)
인원:왕과 신하들, 승선, 중방, 원방
의식:흉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4, 예 6, 흉례편
의의:중형(重刑)이란 무거운 형벌을 말한다. 중형을 내릴 때 임금에게 고하고 참결을 제하도록 하는데, 이때 모든 신하들이 내전의 남쪽 낭하에서 뵙고 주대하는 의식을 올릴때 차를 임금께 올리고 또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하시게 된다. 이처럼 차를 올리고 또 차를 하사받는 진다의식이 치뤄진다.
이 진다의식은 중형을 내릴 때 치뤄지므로 흉례에 속한다. 제단을 모으거나 신불을 대상으로 삼지않고 임금께 차를 올리고 신하에게 차를 하사하시는 의식이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다구, 은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풍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잔받침(茶盞托):청자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동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기

진다순서(進茶順序)
-중형주대의를 준비하는 일은 다방관원이 직접 준비하는데, 그에 따른 다른 의식은 다른 부서에서 맡는다.
-먼저 왕이 편복으로 내전으로 나와 남쪽 낭하에 자리하고 앉는다.
-6국원들이 차례로 숙배하고 각문이 정전의 뜰에 들어가 옆으로 가면서 재배하고 자리에 나아간다.
-재신과 추밀이 들어와 재배하고 집례의 인도로 자리에 나아간다.
-다방의 관원이 옆에 전각에서 차를 다여 주면 다방참상원(茶房參上員)은 옆문으로 들어가 찻잔을 올린다.
-내시칠품원(內侍七品員)은 찻잔의 뚜껑을 벗기고 집례가 전각 위의 앞 기둥 바깥쪽으로 올라가 면전에서 절하고(임금에게) 차를 권하고 놓은 뒤에 전각에서 내려온다.
-다음으로 원방(阮房)의 8품 이하가 재추에게 차를 올리면 집례가 또 전각 위로 올라가 엎드려 찻잔을 내어 주실 것을 면전에서 창한다.
-다음에 단필주대원(丹筆奏對員)이 들어가 아뢰고 단필로 참결을 받는다.
-다방의 관원들은 찻잔을 거두어 가지고 옆문으로 나가서 다기를 깨끗히 닦아서 보관한다.
-행다법은 뇌원차를 끓이는 방법으로 끓이며 차는 항상 행사장 옆에서 끓인다.
-임금과 행사에 참석한 모든 신하들에게 차가 베풀어진다. 그래서 많은 양의 차를 달인다.
-차를 끓이는 도구들이 대형화되어 있다.


   빈례란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로서, 특히 외국에서 오는 사신(使臣)을 맞이하는 예의를 말한다. 빈례는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北朝詔使儀)과 북조의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北朝起復告勅使儀)과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無詔勅使儀)과 대명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詔使儀)과 대명의 사노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賜勞使儀)이 있다.
이 중에서의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북조의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의식에만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북조(北朝)는 북송(北宋)과 남송(南宋) 그리고 원(元)을 말하며 대명(大明)이란 명나라를 말한다. 북송(태조:960∼흠종:1127년)까지며, 남송(고종:1127∼위왕:1279년)은 인종 6년(1128)부터 충렬왕 5년(1279)까지이다. 원(세조:1260)부터 공민왕 16년(1367)까지이며, 명은(태조:1368)부터 조선 현종 3년(1662)까지이다. 이 중에서 고려때 진다의식을 행한 연대는 공양왕 4년(1392) 고려가 망할 때까지였으며, 송·원대에는 북조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진다의식을 행하였고 명나라 때에는 대명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그러면 먼저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진다의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1)영북조조사의(迎北朝詔使儀)의 진다의식

장소:건덕전(乾德殿)
인원:왕과 신하들, 사신일행
의식:빈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예 7, 빈례편
의의:중국의 사신을 맞이할 때 차로써 예를 갖추는 진다의식을 행하였는데, 이 의식은 외국손님 접대에 차를 사용했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해설:외국(특히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할 때 차를 대접하고 조서를 받는 의식을 진행한 것으로 조서나 칙서를 가지고 온 것과 오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여 맞이하는 의식이 차이가 있는데, 진다의식을 행할 때가 있고 행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북조(송·원)의 사신을 맞이 할 때는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이 의식은 건덕전에서 베풀어졌으며 조서나 칙서를 이 의식을 통해서 받는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다구, 은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찻잔받침(茶盞托):청자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진다순서(進茶順序)
-빈례란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이때 진다의식을 행하는데 다방의 관원이 준비를 한다.
-빈례시 진다의식은 건덕전에서 베풀어지는데 차는 그 옆 가까운 곳에서 달인다.
-자른 부서에서 진다의식의 준비를 하는 동안 다방에서는 차 끓일 준비를 한다.
-왕이 건덕전에 나가 앉으면 각문부사 이상이 먼저 뜰에 들어가 숙배(肅拜)를 드린다.
-사신, 각문 등이 차례로 들어와 숙배하기를 마치면 각문 사인이 문사위에 나아가 사신이 이미 도착되었음을 아뢴다.
-사신이 건덕문 서쪽에 나아가면 왕이 동쪽에 나와 서로 마주보고 읍하고 뜰로 들어간다.
-사신이 명을 전달하고 위치에 나아가 남쪽을 향해 서면 왕은 서쪽을 향해 재배하고 황제의 체후를 묻는다.
-사신이 명을 전하고 왕이 받아서 재신에게 전하고 국신물색을 받고 왕이 재배한다.
-다시 사신이 건덕전으로 들어가 재배하고 왕의 체후를 묻고 치사를 드린다.
-왕이 차를 하사하고 첫 잔은 직접 사신에 권하면서 마시도록 헌작(獻酌)을 한다.
-사신은 차를 받고 재배하며 중사와 하사에게 똑같이 차를 하사한다.
-술과 밥도 하사하는데 먹기를 마치면 사신이 재배하고 물러난다.
-다방은 차를 준비해서 늘 대령해야만 된다.

(2)영북조기복고칙사의(迎北朝起復告勅使儀)의 진다의식

장소:건덕전(乾德殿)
인원:왕과 신하들, 사신일행, 다방관원
의식:빈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예7, 빈례편
의의:중국의 사신을 접대할 때만 행하던 진다의식인데 이 의식은 기복고칙사에게만 하는 의식이다.
해설:중국(북조)에서 온 사신을 접대할 때, 특히 기복고칙사를 맞이해서 칙명을 받고 난 후에, 왕이 사신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 베푸는 다회이다. 이때 먼저 차를 대접하고 술과 음식도 대접하는데 왕이 친히 권한다. 왕은 동쪽에 서향하고 사신은 서쪽에서 동향하여 대좌하고 친히 위로하고 차를 권하며 사신이 먼저 치사하고 왕이 답례한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은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목기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기
물 통(水 瓮):질그릇

진다순서(進茶順序)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의식은 건덕전에서 베풀어지며 차는 그 옆에서 준비한다.
-모든 의식의 준비는 각 부서별로 나누어 분담해서 준비하는데 다방의 관원들이 차를 준비한다.
-다방의 관원은 건덕전 바로 옆 건물 뜰에 차 달일 도구 일습을 옮겨다 놓는다.
-왕과 사신용 다기와 재신과 추밀용 다기와 모든 문무 백관이 마실 다기도 각기 준비한다.
-몇십 명에서 몇백 명에 이르는 인원이 차를 마시기 때문에 여기에 동원된 다기는 대형이고 그 숫자도 많다.
-여러 개의 화로가 마당에 준비되고 숯과 백탄으로 불을 일궈서 피운 후 큼직한 돌솥을 그 위에 얹는다.
-한편에서는 다연에 뇌원차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한편에서는 찻잔을 깨끗이 씻어서 닦는다.
-물이 끓으면 찻잔과 다구 일습을 헹구고 차례차례 차 낼 준비를 한다.
-다방별감의 지시를 받아 먼저 왕과 사신에게 드릴 차를 준비하고 기다린다.
-왕과 사신에게는 은잔을 쓴다. 나머지 사람에게는 청자잔을 사용한다.
-왕이 사신을 맞아 차를 올리라는 교지를 내리면 다방관원이 찻상에 찻잔을 받쳐들고 옆문을 통해서 건덕전으로 내간다.
-왕과 사신이 차를 들고 잔을 물리며 복명으로 모든 수행원에게도 차를 대접하고 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신하들에게도 차를 하사 한다.
-다방의 관원은 모든 신하들에게 일일이 차를 날라다 드리며 신하들은 뜰에 서서 받는다.
-차 마시기를 모두 마치고 재배를 드리고 나면 사신을 인도하여 한림청에 모시고 신하들이 대접한다.



(3)영대명무조칙사의(迎大明無詔勅使儀)의 진다의식

장소:정전(正殿)
인원:왕과 신하들, 사신일행
의식:빈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예 7, 빈례편
의의:명나라의 사신을 맞이해서 접대하는 진다의식으로 북조(송 원)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과 차이가 있다. 조서나 칙서를 가지고 온 사신에게는 진다의식을 행하지 않고 무조칙사에게만 정전에서 한다.
해설:명나라의 사신은 송 원의 사신과 달리 멀리서 영접하며 영빈관에 장막을 설치하고 성문과 거리에 오색채단을 걸어 영접준비를 한다. 당일에 왕이 성 밖의 장막에 출영하여 맞는데 세자 이하 백관이 모두 평상복으로 호종한다. 왕이 장막 밖에 서면 사신이 말에서 내려 마주보고 읍하고 함께 말을 타고 왕궁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왕은 서쪽으로부터 문으로 들어가고 사신은 동쪽으로부터 문에 들어가 정전 가운데에 이르러 동서로 마주보고 선다. 계절인사를 간단히 나눈 뒤에 동서로 마주 앉아 차를 베푼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목기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杵):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기
물 통(茶 瓮):질그릇

진다순서(進茶順序)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진다의식정전에서 베풀어지며 차는 정전 옆에서 준비한다.
-다방의 관원은 정전의 옆 건물 뜰에서 차 달일 준비를 한다.
-다구일습을 다 갖추어 놓고 왕과 사신의 일행이 정전에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다방의 관원은 향연(饗宴)할 때 올릴 차를 차례차례 준비하는데 먼저 왕과 사신의 차를 준비하고 나중에 군신들의 차를 준비한다.
-왕이 사신과 서 동으로 마주 앉고 제신이 서립한 뒤에 차를 내온다. 왕의 차가 먼저 올려지고 사신의 차가 나중에 나온다.
-풍로에 차례로 불을 일궈 물을 끓여서 군신도 함께 차를 준비한다.
-왕과 사신에게는 은잔을 쓰고 군신에게는 청자를 쓴다. 또 차는 뇌원차를 쓴다.
-다방의 관원이 차례차례 사신일행과 군신에게 차를 올린다.
-차를 하사받은 군신은 일어나 재배하고 차를 받으며 모두 함께 마시고 다시 재배한다.
-왕과 사신의 찻잔을 물리고 군신의 찻잔을 거두어 들인다.
-사신을 전송하고 왕이 대내로 들어가고 군신이 물러가면 모든 기구를 정리하여 철수한다.
-다방의 관원은 다구 일습을 정라하여 보관하고 각기 임무를 마친다.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은 북조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과 달리 왕이 서쪽, 사신이 동쪽에 앉는다.



   가례란 혼례와 같이 경사스런 예식을 말하는데 측히 책봉의식(冊封儀式)이나 공주 시집 보내는 일이나 원자(元子)의 출생 또는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나 군신들의 연회 때 가례를 행했다. 이 중에서 진다의식을 행했던 의식은 태후(太后), 왕비(王妃), 왕태자(王太子) 왕자왕희(王子王姬)등의 책봉의식 때와 원자 탄생과 공주 하가와 군신 연회와 노인 연회와 연등회, 팔관회 때 모두 진다의식을 행했다.

(1)책 태후의(冊 太后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인원:왕과 왕태후, 신하들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예 7, 가례편
의의:왕의 어머니를 왕태후로 책봉할 때 진다의식을 행했는데 그 의식 때 차를 올리는 정차에 대해서는 상세히 나와 있지 않다.
해설:왕태후는 왕의 어머니로서 그 위치가 매우 놓은 자리이다. 모든 책봉의식 가운데 시작으로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보다 서열상 먼저이다. 하지만 그 의식은 왕비를 책봉할 때 보다는 장엄하지 않다. 왕태후를 책봉하는 의식 때 차와 음식이 등장하지만 어떻게 마시는지 또 어떤 정차에 의해서 차를 올리는지는 생략되어 있고 다만 다담(茶擔)이 준비된 사항만 나온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다 정(茶 鼎):돌, 은
찻 상(茶 床):목제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은, 청자
찻잔받침(茶盞托):청자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다순서(進茶順序)
-태후를 책봉하는 의식은 대내에서 왕이 책을 보내는 의식과 대관전에서 책을 올리는 의식과 군신에게 연회를 베푸는 의식순으로 진행된다.
-책을 올리는 날 여정궁(麗正宮)에 사신을 보내어 책을 올린다고 알려 드리고 준비를 하도록 한다.
-왕이 대전에 나가 앉으면 각문은 영공, 재추, 사신을 인도하여 대전 뜰에 나아가고 백관은 대전 문밖에 나가 숙배하고 좌우로 나누어 선다.
-다음에 도감원(都監員)이 편복차림으로 대전 뜰에 들어가 숙배하기를 마치면 각문이 태위, 사도 및 집사관을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가 숙배한다.
지절자(持節者)는 대전의 좌우 계단 위에 서서 절의(節衣)를 벗긴다. 각사가 선지(宣旨)를 받들어 말하기를 "태위와 사도는 대전에 올라가 지후(祗候)하라 하신다" 하면 찬자의 구령으로 재배한다.
-태위와 사도를 인도하여 동쪽 계단으로부터 대전 위의 두 기둥사이 남쪽에 나아가 북향하여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추밀은 제(制)를 받들어 말하기를 "짐이 옛일을 상고하여 어머니를 높여 왕태후(王太后)로 삼고자 이제 경 등을 보내니 예를 갖추어 책명을 올린다." 하여 선명을 마친다.
-내시가 책함, 인보, 예물장을 받들고 재추가 전해 받아 나아가 꿇어 앉으면 왕이 친히 전하여 태위가 꿇어 앉아 인보와 책함을 받고 사도는 꿇어 앉아 인보와 예물장을 받는다.
-내시가 받아 들것에 실어 서쪽 계단으로부터 내려와 뜰 안의 서족 책상 위에 동향으로 봉안하되 책은 북족에 인보는 남쪽에 있게 한다.
-절 가진 자가 대전 중간 계단으로 내려가 절의를 입히고 각사가 태위와 사도를 인도하여 본래의 자리에 나아가 재배한다.
-절 가진 자가 책, 인보, 예물장을 인도하여 집사관이 들것에 봉안하여 앞서고 중간문으로부터 나가 루자(樓子)에 안치한다.
-왕이 대내로 들어가면 진상물과 담상(擔床)이 앞서고 다음에는 화로와 다담(茶擔:차와 음식)이 가고 다음은 교잣상과 물주전자가 가고 다음에는 산마안(散馬鞍), 자수개개(紫繡大盖), 홍소개(紅小盖), 연평련(延平輦)이 간다.
-다음은 책을 인도하는 자와 악관, 옥책, 인보, 예물장, 루자, 지절자, 태위와 사도 이하가 가는 데 위의를 갖추자 주악을 잡히고 대관전 문 밖에 이르러 진열한다.
-대관전에서 책을 올리는 절차는 왕이 대관전에 거동하기 전에 집례, 내시, 알자, 찬자 등이 먼저 대전 뜰에 들어가 좌우로 나누어선다.
-영공과 제왕이 차례로 들어와 대기하고 태후가 상궁의 인도를 받아 정전에 앉으려 하면 상복이 좌(左)에서 서향하여 서고 사언(司言)과 사보(四寶)는 우(右)에서 동향하여 선다.
-협률랑(協律郞)이 기를 들면 주악을 시작하고 태후가 전에 앉으면 악을 중지한다.
-왕이 대전 위에서 숙백하기를 마치면 찬자의 구령으로 영공, 재추, 문무백관이 숙배한다.
-태위와 사도가 내급사의 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말하기를 "태위 신모와 사도 모모 등은 왕명을 받아 예물과 전책을 보내나이다" 하고 한다.
-내급사가 대전에 올라가 엎드려 명을 받고 내려와 "可하다"라고 하면 태위와 사도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자리에 돌아가고 책과 인보와 예물자을 가진 자가 인도되어 태수 앞에 나아간다.
-모두가 엎드려 꿇어 앉고 독책관이 책을 읽는다. 읽기를 마치면 재배하고 태위와 사도가 책을 받들어 상궁에게 주고 상궁은 사언에게 준다.
-사도가 인보와 예물장을 상복에게 주면 상복은 사보에게 주고 연평련 및 자수대개와 홍소개, 교잣상, 수관자, 행로(行爐), 다담(茶擔)이 중간문으로 들어와 대전 뜰에 진열한다.
-진상한 예물이 대전 뜰을 지나간 뒤에 돌아 나온다. 이에 태위 이하가 행례원을 인도하여 뒤를 따르면 영광과 재추가 옆으로 서서 북향하고 찬자의 구령으로 재배한다.
-가례를 마치고 태후가 자리에서 내려가면 악이 시작되고 대내로 들어가면 악을 중지한다. 왕이 막차로 들어가면 영공, 재추, 문무백관이 하례를 드린다.
-다음은 군신에게 베푸는 연회이다. 왕이 군신들로부터 하례를 받고 영공이 올리는 수주를 받고 또 신하들에게 술과 차를 하사한다.
-술과 차를 왕께 올리는 의식이나 왕이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하는 의식은 생략되어 그 자세한 정차는 알 수가 없으나 다음 장의 왕비 책봉식 때 하는 의식과 동일하다.

(2)책 왕비의(冊 王妃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인원:왕과 왕비, 신하들, 연반, 책사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예 7, 가례편
의의:한 나라의 국모인 왕비를 책봉할 때 차를 올리는 진다의식을 거행하였다는 것은 차가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이며 모든 의식에 다 올려질 수 잇는 상서로운 신물이라는 것이다.
해설:역대로 국왕은 왕비를 책봉할 때에 진다의식을 거행하였다. 책례를 치루고 나면 다음은 회빈(會賓)인데 이때 진다를 한다. 대묘(大廟), 별묘(別廟), 경영전(景靈殿)에 고하는 것은 모두 유사(有司)가 하고 대관전의 진설은 상사국(尙舍局)에서 하며, 임헌발책을 하고 책사와 부책사가 궁에 이르러 의식에 따라 전하고 책례를 마치고 나면 궁에서 회빈을 베풀어 책사와 부책사를 대접한다. 이어 군신에게 연회를 베푸는데 이 의식은 군신연의와 같게 한다. 회빈 때에 빈·주가 자리를 함께하여 차와 술을 대접한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찻 상(茶 床):목제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은, 청자
찻잔받침(茶盞托):청자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다순서(進茶順序)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은 대묘(大廟), 별묘(別廟), 경영전(景靈殿)에 고하기, 대관전진설(大觀殿陳設), 임헌발책(臨軒發冊), 궁정진설(宮廷陳設), 궁정수책(宮廷受冊), 회빈(會賓), 부보(附補) 백관조하(百官朝賀), 왕비수백관하(王妃受百官賀), 왕회군신(王會群臣)의 순서로 거행한다.
-대묘, 별묘, 경영전에 고하기는 평상시와 같이하고 대관전에 진설하는 일은 하루 전에 상사국(尙舍局)에서 평상시와 같이 설치한다.
-다음은 임헌발책을 하는데 장차 책례(冊禮)를 행하려면 임시로 막사를 설치하여 발책을 하도록 하며 발책하는 요령은 재신, 추밀 이하 문무 백관과 책사(冊使), 북책사 및 행례에 참가한 관원이 모두 조복을 입고 대관전 문밖에서 기다린다.
-다음은 궁정진설인데 하루 전에 수궁서(守宮暑)는 책사와 부책사의 자리를 남궁(南宮)의 중문밖 길 옆 서쪽에 동향하여 설치하고 모두 궁중 중심으로 북향하여 수책위(受冊位)를 설치한다.
-궁정수책은 궁중에서 책을 받은 의식인데 책봉하는 날 유사가 위의를 각추고 궁문의 안팎에 법도에 맞도록 전열한다.
-다음은 회빈(會賓)인데 이때에 진다의식을 한다.책례를 마치고 궁중의 관인이 연반좌(筵伴座)를 대청 위에 북쪽벽 가운데에 설치하되 남향하고 책사와 부책사의 자리는 남쪽벽에 설치하되 책사는 동쪽에, 부책사는 서쪽에, 독책(讀冊)과 권화사(勸花使)의 자리는 책사와 부책사의 뒤에 설치하되 모두 북향한다.
-각 자리마다 과일상을 설치하고 나면 연반은 초대장을 드리고 책사와 부책사가 답장을 한다.
-집례관이 연반을 인도하여 문밖의 좌편에 나아가 남향하고 또 책사와 부책사 이하 독책을 인도하여 문밖의 우편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서 서로 읍하고 문으로 들어가서 청상으로 올라가 요위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기거장을 교환하고 재배하면 빈주가 모두 재배하고 앞으로 걸어나가 또 재배하며 다시 걸어나가 재배하기를 마치고 자리에 나아가 입정한다.
-압물(押物) 이하가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 뵙기를 마치고 가가 물러나 자리로 나아간다.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면 손님과 주인이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 차(茶)를 올린다.
-차를 올리는 의식과 술을 올리는 의식 똑같은데, 그 의식 절차는 술이 이르면 집례관이 빈주를 인도하고 요위에 나아간다.
-연반이 헌작하기를 청하면 손님이 세 번을 사양하고 마지막으로 감히 사양하지 못하겠다고 칭한다. 손님과 주인의 사양하는 것은 집례가 모두 이를 대신한다.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면 빈·주가 서로 읍한다. 주자(注子)와 잔(盞)잡는 자가 연반의 좌측에 나아가 서향하고 선다.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면 빈·주가 서로 읍하고 연반이 홀을 꽂고 술 붓기를 마치면 홀을 뽑고 서로 읍한다.
-연반이 홀을 꽂고 잔을 잡고 나아가 꿇어 앉아 손님에게 조면 손님이 나아가 꿇어 앉아 홀로 꽂고 잔을 받아 잔 잡는 자에게 준다.
-손님의 잔을 잔 잡는 자가 받아 책사의 좌측에 나아가 북향하고 서면 빈주가 모두 일어나 홀을 잡고 서로 읍하고 서서 헌작하며 부사와 독책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손님(책사)이 수작(酬酌)하기를 청하면 연반이 사양하고 손님이 수작하기를 청하여 세 번에 이르면 연반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겠다고 칭한다.
-집례관이 읍이라 구령하면 빈주가 서로 읍한다. 주자와 잔 잡는 자가 손님이 우측에 나아가 서향하고 서면 책사가 연반과 서로 읍하고 홀을 꽂고 잔을 취하여 부책사에게 주고 부책사가 홀을 꽂고 잔을 잡으면 책사가 홀을 뽑고 서로 읍하며 홀을 꽂고 술 붓기를 마치면 홀을 뽑고 또 서로 읍한다.
-책사가 홀을 꽂고 잔을 잡으면 부책사가 홀을 뽑고 서로 읍하며 홀을 꽂고 술을 붓는다. 다음에 독책관이 술 붓기를 마치면 책사가 나아가 꿇어 앉아 연반(주인)에게 주고 연반이 나아가 꿇어 앉아 홀을 꽂고 잔을 받아 잔 잡는 자에게 준다.
-잔 잡는 자가 잔을 받아 연반좌의 좌측에 나아가 남향하고 서면 빈주가 모두 일어나 홀을 잡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찬배하면 빈주가 모두 재배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집례관이 찬음하면 음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3)책 왕태자의(冊 王太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동궁(東宮)
인원:왕과 왕태자, 신하들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예 7, 가례편
의의:왕태자를 책봉하는 의식 때 진다의식을 거행한 것은 책봉 의식 때 차를 올리는 의식이 정례화되어 있다는 증거이며 이 전통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의식이다.
해설:왕태자는 장차 왕위를 계승할 최고의 중대한 위치이다. 이와 같은 왕태자 책봉의식 때 진다의식을 행하였는데 그 정차는 태묘, 경영전, 제릉과 사당에 고하는 의식과 대관전에서 책을 전하는 임헌발책과 여정궁에서 책과 조서를 받는 의식이다. 이 의식을 치루고 나면 그 의식에 수고한 책사, 부책사, 독책 등에게 차와 술을 베풀며 왕이 하사한 꽃과 꽃술을 받는 의식이 거행된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다 정(茶 鼎):돌, 은
찻 상(茶 床):목제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나무, 돌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은, 청자
차잔받침(茶盞托):청자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巾):베

진다순서(進茶順序)
-왕태자를 책봉하는 의식은 태묘(太廟), 경영전, 제릉사(諸陵祠)에 고하기, 임헌 발책, 궁정진설, 궁정수책, 회빈, 부표(附表), 백관조하, 왕후수백관하(王后受百官賀), 왕회군신(王會群臣)의 순서로 진행한다.
-대관전정진설(大觀殿庭陳設)은 왕비 책봉의식과 같으며 다음이 임헌발책인데 시간이 되면 재신, 추밀 이하 문무백관과 책사, 북책사 및 행례에 참여하는 관원은 각각 조복을 입고 대관전 문밖에 나아가 기다린다.
-근신이 조서를 받들어 왕자 앞의 서안 위에 놓고 유사가 책함과 인보를 받들어 왕조의 좌쪽에 진설하는데 책은 북쪽에 인은 남쪽에 있고 절을 가진 자가 인안의 남쪽에 서향하여 북을 위로 선다.
-각문이 재신, 추밀, 문무백관을 인도하여 문사 위에 나아가고 태악령은 공언들을 거느리고 들어가 자리에 나아가며 협률랑 지휘석에 나아간다.
-책을 전하면 책사와 부책사 등이 받아서 가지고 정문으로 나가서 동궁(東宮)으로 나아간다.
-궁정진설은 책사와 부책사의 장막을 동궁 문밖 북쪽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장의(掌儀)는 왕태자의 배위를 궁문 밖 서쪽에 동향으로 설치한다.
-궁정수책은 통사사인이 책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문밖의우쪽에 이르러 동행하고 서면 사인의 찬배로 책사, 부책사 동향하여 읍하고 왕태자가 마주 읍한 다음 여정문(麗正門)으로 함께 들어 간다.
-왕태자가 재배하고 책사를 구선(口宣)하기를 마치면 부책사가 조서함을 가져다 책사에게 주고 책사는 받아 왕태자의 앞으로 나아가 서쪽에서 남향하여 꿇어 앉는다.
-왕태자가 책사의 남쪽에 나아가 북향하여 꿇어 앉아 조서를 받아 좌차자(左遮子)에게 주고 좌차자는 지함자(持函者)에게 전한다.
-독책관이 동향하여 꿇어 앉아 읽고 왕태자는 꿇어 앉아 듣는다. 선책하기를 망치면 독책관이 물러간다.
-회빈은 책례를 마치고 궁관이 연반자리를 대전 위의 동쪽 벽 중간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책사, 부책사의 자리는 서쪽벽에 설치하되 책사는 남에 부책사는 북에 있으며 동책, 권화사 등은 그 뒤에 동향하여 설치한다.
-각각 자리에 과일상을 설치하고 연반이 초대장을 드리고 책사 일행이 잡장을 드린다. 궁정집례관이 연반을 인도하여 문밖의 좌편에 나아가 서향하여 서고 또 책사 일행은 문밖의 우편에 나아가 동향하여 서서 서로 읍한다.
-대전 위 요위에 올라가 입정하고 집례관이 기거장을 교환하고 마친 다음 집례관이 찬읍하면 빈주가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간다.
-자리에 나아가면 차를 올리고 차를 올린 후 술을 올린다.
-차와 술을 올리는 의식은 왕비 책봉의식 때 의식과 똑같다. 빈주가 서로 권하고 받아 마시기를 마치면 서로 읍한다.
-헌작(獻酌)이란 주인이 손님에게 권하는 것이고 수작(酬酌)이란 손님이 주인에게 권하는 것을 말한다.
-왕이 보낸 선송화주사(宣送化酒使)가 궁문 밖에 우편에 이르러 동향하면 연반이 궁문밖의 좌편에서 서향하여 집례관의 명으로 빈주가 서로 읍한다.
-선화주를 가진 자가 먼저 들어가 궁정 서편에 동향하고 집례관이 빈주를 인도하여 궁정에 들어온다. 그리고 권화사는 양쪽 계단 사이에 나아가 북쪽에서 남향하고 압화주사(押花酒使)는 권화사의 서쪽에 남향한다.
-집례관의 찬배로 책사일행과 연반이 모두 재배하며 권화사가 구선(口宣)하고 책사 이하가 모두 재배하고 또 재배한다.
-빈 주가 계단에 오르면 압화사(押花使)가 선화(宣花)를 권화사에게 주고 권화사는 이를 받아 차례로 책사와 부책사 일행과 연반에게 전하여 주면 이를 받아 대화(戴花)한다.
-권화사가 선주(宣酒)를 떠서 차례로 책사와 연반에게 주면 선화주를 권화사에게 부어주고 각각 자리에 나아가 선다.
-집례관이 찬음으로 마시면 음악이 시작되고 마시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집례관이 빈주를 인도하여 뜰로 내려가 입정하면 집례관의 찬배로 재배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4)책 왕자왕희의(冊 王子王姬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인원:왕과 신하들, 오아자, 왕희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6, 례 8, 가례편
의의:왕자와 왕희를 책봉할 때 진다의식을 거행한 것은 모든 책봉의식 때 차를 올리는 의식을 봉행하는 것과 같은 절차로 하며 차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책봉의식은 왕의 즉위식 다음으로 중대한 의식이다.
해설:왕자와 왕희를 책봉하는 의식도 왕비 책봉 할 때와 그 의식 절차가 대동소이하다. 먼저 대관전에 진설(陳設)을 하면 발책(發冊)의 순서가 이어지고 다음은 궁정수책(宮庭受冊)을 하고 이어서 회빈(會賓)례 치루게 된다. 진다의식은 이때에 행한다. 책례를 모두 마치고 나면 주인이 책사와 부책사 등을 위로 하는 의식으로 차와 술을 대접한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은
다 정(茶鼎,釜):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풍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은, 나무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은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찻 상(茶 床):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상다병(進上茶甁):청자

발책순서(發冊順序)
-진설을 마치면 근신(近臣)이 조서를 받들어 먼저 왕좌 앞의 서안 위에 놓고 유사가 책함(冊函)과 인보(印寶)를 받들어 왕좌의 좌측 인안 위에 놓는데 책함은 북쪽에 인함은 남쪽에 놓는다.
-지절자(持節者)가 인안의 남쪽에 서향하여 북을 위로 하여 서기를 마치면 태악령(太樂令)이 악공을 거느리고 들어가 대전뜰의 남쪽에 북향하여 입정한다.
-전의와 찬자가 먼저 들어가 자리에 나아가고 각문이 재신, 추밀 이하 시신, 문무, 상참관을 인도하여 들어가 대전 뜰 위로 나아가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찬자의 구령으로 재신 이하 군관이 재배한다.
-각문이 재신과 추밀을 나누어 인도하여 동서의 계단으로 대전위로 올라간다. 통사사사인이 책사와 부책사 이하를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에 이르러 입정하면 전의가 재배라고 하여 찬자의 구령으로 책사와 부사 이하 행사에 참여하는 관원이 재배하기를 마친다.
-문하시중이 왕좌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꿇어 앉으면 근신이 조서안의 동편으로 나아가 조서함을 받들어 시중에게 주고, 시중은 조서함을 받아 함 가진 내시에게 주고 시중이 조서를 인도하여 동쪽 계단으로 내려오면 함 가진 자가 받들고 뒤를 따라 전제위(傳制位)로 나아가 서향하고 선다.
-통사사인은 책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수제위(受制位)로 나아가 북향하고 선다. 시중이 제(制)가 있다고 칭하면 책사 이하 군신들이 국궁한다. 전의가 재배라고 하면 찬자의 구령으로 책사 이하 모든 군신들이 재배한다.
-시중이 선제(宣制)하기를 "제 몇째 왕좌 모를 책봉하여 모 공후로 삼는다" 라고 하고 왕희일 때는 "제 몇째 왕희를 책봉하여 모공주로 삼으니 경등에게 명하여 절을 가지고 예를 행하도록 하라"고 말하여 선제한다.
-시중이 선제를 마치고 조서를 가져다 책사에게 주면 책사는 꿇어 앉아서 받아 부사에게 주고 부사는 함 가진 자에게 준다. 함 가진 자가 꿇어 앉아서 받도 물러나와 부사의 뒤에 선다.
-책사와 부사가 엎드렸다가 일어나면 전의가 재배라하여 찬자의 구령으로 책사와 부사가 재배하고 시중이 올라가 자리에 들어가며 문하시살은 장절자(掌節者)를 거느리고 절의(節衣)를 벗기고 내려가 전제 위에서 책사에게 준다. 절차는 조서를 전할 때와 똑같다.
-문하시랑이 절(節)을 전하고 올라가면, 중서시랑이 책인(冊印)과 책안(冊案)가진 자를 인도하여 책함을 책사에게 준다.
-통사사인이 책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 찬자의 구령으로 군신이 모두 재배한다.

진다순서(進茶順序)
-왕자와 왕희를 책봉하는 의식의 절차는 대관전에 진설(陳設) 하기와 대관전에서 발책(發冊)하기와 궁정에서 책 받기(受冊)와 회빈(會賓)의 예식과 배표(拜表) 올리기 순으로 진행된다.
-진다의식은 책 받는 예를 모두 마치고 책을 전한 책사와 부책사 그리고 독책관(讀冊官)등에게 왕자나 왕희의 명을 받은자가 주인(主人)이 되어 차와 술과 꽃을 드리는 의식이다.
-책례를 모두 마치고 나면 궁중 관인이 주인의 자리를 대청 위의 동쪽 벽 가운데에 서향으로 설치하고 책사와 부사의 자리를 서쪽에 설치하되 책사는 남쪽에 부사는 북쪽에 있도록 한다. 독책관과 권화사(勸花使)의 자리는 책사와 부사의 뒤에 설치하여 모두 동향하게 하고 모두의 자리 앞에 과일상(果案)을 설치한다.
-주인이 초청장을 드리고 손님이 답장하기를 마치면 집례관이 주인을 인도하여 문밖의 왼쪽으로 나가 서향하여 선다. 또 손님을 인도하여 문밖의 오른쪽으로 나가 동향하여 서서 마주보고 읍하고 문으로 들어가 대청 위로 올라가 요(褥) 위로 나아가 서면 기거장(起居狀)을 교환한다. 재배라고 구령하면 빈·주가 모두 재배하고 걸어나와 또 재배하고 다시 걸어나와 재배하고 각각 자리에 돌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찬인 이하 행사집사관의 기거장을 받아 주인에게 드리기를 마치면 찬인 이하가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 참알(參謁) 하기를 마치고 각각 물러나와 자기위치로 돌아간다.
-집례관의 찬읍(贊揖)으로 빈·주가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 차(茶)를 올리기를 마친다. 다음에는 술이 나온다.
-술이 나오면 집례관이 빈·주를 인도하여 나가 요위로 나아간다. 주인이 손님에게 헌작(獻酌)하기를 청하면 손님이 사양하고 주인이 헌작하기를 청하여 세 번에 이르면 손님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손님과 주인 간의 사양은 모두 집례관이 이를 도운다.
-집례관의 찬읍으로 빈·주가 서로 읍하고 주인이 홀(笏)을 꽂고 술주전자를 잡아 잔에 따른다. 주전자 건네주기를 마치면 홀을 빼어 또 서로 읍하고 홀을 꽂고 잔을 잡아 나아가 꿇어 홀을 빼어 또 서로 읍하고 흘을 꽂고 잔을 잡아 나아가 꿇어 앉아 손님에게 주면 손님은 나아가 꿇어 앉아 홀을 꽂고 잔을 받아서 잔잡는 자(執盛者)에게 준다.
-손님이 잔잡는 자가 술잔을 받아 책사 좌석의 왼편에 나아가 동향하며 서면 빈·주가 함께 일어나 홀을 잡고 서로 읍하고 선다. 다음에 부책사와 독책관에게 헌작하는 것도 이와 똑같이 한다.
-손님이 주인에게 수작하기를 청하면 주인이 사양하고 손님이 수작하기를 청하여 세 번에 으르면 주인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겠다고 청하며 집례관이 찬읍으로 빈·주가 서로 읍한다.
-주전자와 잔을 잡은 자가 손님의 오른편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면 책사와 주인이 서로 읍하고 홀을 꽂고 잔을 취하여 부사에게 준다. 부사가 홀을 꽂고 잔을 잡으면 책사가 홀을 빼어 또 서로 읍하고 흘을 꽂고 주전자를 잡아 수를 따르고 주전자를 주며 흘을 빼어 서로 읍한다.
-책사가 홀을 꽂고 잔을 잡으면 부사가 홀을 빼고 서로 읍하고 홀을 꽂고 주전자를 잡아 술을 따른다. 다음에 독책관이 술을 따르는 것도 부사의 의식과 같이 한다.
-책사가 나아가 꿇어 앉아 주인에게 주면 부사와 독책관도 함께 나아가 꿇어 앉는다. 주인이 나아가 꿇어 앉아 홀을 꽂고 잔을 받아서 잔 잡는 자에게 주면 잔을 받아 주인 좌석의 좌측에 나아가 조금 물러나 서향하여 선다.
-빈·주가 함께 일어나 물러가서 자리에 돌아와 입정하면 집례관의 찬배로 빈·주가 함께 재배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집례관이 찬음(贊飮)하면 음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집례관이 빈·주를 인도하여 요위에 나아가 서로 읍하기를 마치면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고 술과 밥을 베푼다.
-술이 다섯 잔에 이른 뒤에 왕이 보낸 선화주(宣花酒)가 궁문밖에 도착한다. 주인이 궁문 밖에 나가 좌쪽에서 서향하고 빈·주가 마주보고 읍한다. 선화주를 가진 자가 뜰 안으로 들어가 북쪽에서 남향하고, 권화사(勸花使)는 향안(香案)의 동쪽에서 서향하고 서며 압화주사(押花酒使)는 권화사의 우편에서 서향하고 선다.
-주인과 책사 이하가 뜰의 남쪽에서 북향하여 집례관의 찬배로 재배한다. 뜰에서 명을 받도 대전 안으로 올라가 권화사가 꽃을 책사와 주인에게주고 이어서 꽃술을 떠서 차례로 권한다.
-이상의 의식은 헌작하고 수작하는 빈·주의 예와 차와 술을 드리는 의식을 무도 전과 같이 한다.

(5)원자탄생하의(元子誕生賀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연덕궁(延德宮), 왕후전 청사
인원:왕과 신하, 수명자, 사신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5, 례 7, 가례편
의의:나라의 대통을 이어갈 원자가 탄생하였을 때 대관전에서 하례를 받고 왕태후는 수명자를 시켜 왕의 조서를 전한 사신일행에게 차를 베푼다.
해설:원자란 후일에 태자가 되고 대통을 이을 사람으로 각별한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원자가 출생하면 왕이 경영전에 고하고 사신을 보내서 조서를 내린다. 유사가 조서를 갖추어 오리고 대내에서 옥새를 내어 봉함한다. 이를 사신과 부사가 전정에서 받들어 악부와 의장을 갖추어 연덕궁으로 가서 왕비의 명을 받은 수명자에게 전한다. 조서를 받은 왕비는 수명자를 주인으로 삼고 사신을 손님으로 차와 술과 식사를 베풀어 준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은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진상다병(進上茶甁):청자

진다순서(進茶順序)
-원자가 탄생하면 축하하는 의식과 조서와 옥새를 내리는 의식이 있고 이를 전하는 태사에게 차를 베푸는 진다의식이 있다.
-의식의 정차는 먼저 경영전에 고하기, 사신맞이, 손님 접대의 손서로 진행된다.
-다방의 관원들은 연덕궁 옆에서 차를 준비하고 왕후의 명을 받아서 태사를 맞을 수명자는 연덕궁에서 대기한다.
-유사가 조서와 옥새를 갖추어 봉하면 태사와 부사가 전각 뜰에 나아가 명을 받고 조서를 받들고 나가는데 악부와 의위를 갖춘다.
-조서를 소루자에 간직하여 연덕궁으로 향하고 수명자는 절하는 자리에 이르러 재배하고 기다린다.
-태사와 부사는 궁문 밖 왼쪽에 수명자는 오른쪽에서 마주보고 읍한 뒤에 궁 안으로 들어간다.
-태사는 서쪽에서 동향하고 수명자는 향안의 남쪽에서 북향하여 서면 찬례의 구령으로 수명자가 재배하고 임금의 만복을 아뢴다.
-부사가 조서를 가져다 태사에게 주면 태사가 조서를 받들어 수명자에게 전하고 수명자는 꿇어 앉아 조서를 바다 함 가진 자에게 주고 재배한다.
-임금이 보내준 하사품이 뜰이 지나가고 나면 수명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한다.
-다음은 조서를 받아 본 왕후가 태사와 부사에게 수명자를 시켜서 차와 술을 대접한다.
-궁관이 왕후의 말씀을 받들어 전하면 수명자가 주인이 되어 태사와 부사를 맞아 진다의식을 행한다.
-태사와 부사는 마쪽에서 북향하여 주인(수명자)은 북쪽에서 남향하여 서로 읍하고 계단의 요위로 나아가 빈 주가 재배하고 또 걸어나가 재배하고 다시 걸어나가 또 재배하고 각각 자리로 가서 입정한다.
-손님과 주인이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기를 마치면 차와 술을 올린다.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술이 나오는데 손님과 주인이 모두 일어나 한수하고 식사를 차린다.



(6)공주하가의(公主下嫁儀)의 진다의식

장소:공주궁(公主宮)
인원:사위와 사신일행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7, 례 9, 가례편
의의:공주를 시집 보낼 때 진다의식을 행한 것은 혼례식 때 차를 사용한 최초의 문헌상 기록이다. 궁중은 물론 일반 민간에까지 널리 보급된, 혼례시 차를 올리는 풍속은 지금도 전수가 가능한 예절의식이다.
해설:공주를 시집 보내는 의식은 친영(親迎), 동뢰(東牢), 배구고(拜舅姑), 항사(降使)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진다의식항사(사신맞이)때 행해진다. 사위가 그 부모에게 고하고 그 아들에게 초례(醮禮)를 지낸다. 사위가 대궐문 밖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집례가 인도하는 막사로 간다. 친영은 마치고 동뢰와 배구고를 마치고 왕이 보낸 사신이 오는데 집례가 조서를 가진 사신을 인도하여 궁문밖에 이르면 사위가 나아가 맞이하여 차와 술과 식사를 대접한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표 주 박(茶 瓢):청자, 나무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찻 상(茶 床):목제
진상다병(進上茶甁):청자

진다순서(진다순서)
-공주를 시집 보내는 의식의 절차는 친영(親迎), 동뢰(同牢), 배구고(拜舅姑), 항사(降使)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진다의식은 사신을 맞이하는 행사 때 치뤄진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의식으로 먼저 소관유사가 하루 전날 어전(御殿)의 동문 밖에 적당한 곳을 헤아려 사위의 장막을 설치한다.
-당일 새벽에 사위의 아비는 그의 부모에게 고하기를 "국은으로 모(某)에게 실(室)을 주고 모로써 친히 맞으라 하오매 감히 고하고 재배하나이다"라고 한다. 만약 부모가 돌아가셨으면 위패를 청사(廳事)에 설치하고 고한다.
-아들이 장차 가려하면 아비가 아들을 청사에게 초례(醮禮)를 시키는데 아비의 위치를 중간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아들의 위치를 아비 위치의 서편 남쪽 가까이 동향하고 설치하며 아비는 자리에 앉고 아들은 공복(公服)으로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자리 앞에 나아가 선다.
-집사자가 술을 잔에 부어 서향하여 아들에게 주면 아들이 재배하고 꿇어 앉아 받고 집사자가 도 반찬(饌)을 받들어 위패 앞에 설치하면 아들이 수를 들고 일어났다가 곧 앉아 음식 먹기를 마치면 내려서 재배하고 찬례자가 인도하여 아버지 앞에 선다.
-아버지가 명하기를 "가서 숙옹(肅壅:공주)을 맞아서 우리 종친을 은혜롭게 하라" 하면 아들이 재배하고 말하기를 "삼가 엄명을 따르겠나이다" 하고 또 재배하고 내려서 나아가다.
-말을 타고 대궐 문 밖에 이르러 말을 내리면 집례가 인도하여 장막으로 나아간다.유사가 공주의 노부(鹵簿)와 의위(儀衛)를 내동 문 밖에 진설하고 공주가 장차 수레에 오르려면 손가마로 대신한다.
-집례가 사위를 인도하여 장막에서 나가 내동 문 밖에 서서 몸을 국궁하고 공주가 수레에 오르면 사위가 대궐을 향해 재배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 말에서 내려 기다린다.
-공주가 도착하여 수레에서 내리면 사위가 공주를 대하여 엎드리고 공주가 이에 답례하면 일어나 침문으로 들어가 계단에 오르고 부채와 춧대를 잡은 사람이 쫓아 들어가 앞뒤로 진열하면 여상자(女相者)가 공주를 인도하여 방에들어간다.
-다음은 동뢰(同牢)로써 부부가 같이 음식을 먹는 일이다. 먼저 집사자가 사위를 인도하여 남쪽 세소에서 손을 씻는데 공주의 종자(從者)가 물을 떠놓고 공주는 북쪽 세소에서 손을 씻는데 사위의 종자가 물을 떠놓는다.
-장사자(章事者)가 술과 반찬과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또한 서로 마주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여종이 공주를 인도하여 자리에 나가면 사위도 또한 자리에 나아가 서로 엎드렸다가 모두 자리에 나아간다.
-찬자 2인이 잔에 술을 부어 사위와 공주에게 주어 사위와 공주가 잔을 받아 마시기를 마치면 찬례자가 빈 잔을 받고 거두어 반찬을 올린다. 두 잔, 석 잔째의 술도 처음 의식과 같이 한다. 사위와 공주가 함께 일어나 재배를 마치면 찬례자가 술과 찬그릇을 거두어 물러간다.
-다음은 배구고(拜舅姑)인데, 공주가 시부모님을 뵙고 절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당일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의복을 갈아 입고 기다리면 집사자가 시부모의 자리를 당의 동서로 마주 보게 하되 시아버지는 동쪽에 시어머니는 서쪽에 서로 마주 보도록 한다.
-시부모가 옷을 입고 자리에 나아가면 상례자가 공주를 인도하여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시아버지 앞으로 나아가 동향하여 재배하고 도 인도하여 시어머니 앞에 나아가 서향하여 재배하기를 마치고 인도하여 물러나며 신부에게 예주(禮酒:감주)를 준다.
-다음은 항사(降使)로써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이 때 진다의식을 행한다. 먼저 사신이 대전 뜰에 나아가 명을 받고 조서(詔書)를 받들고 나가는데 악부를 갖추어 조서를 호위하고 조서를 메어 소루자(小樓子)에 간직한다.
-공주의 궁문 밖에 이르면 사위가 나와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재배하고 먼저 들어가 기다린다.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궁문밖의 왼쪽에 나아가면 집례가 사위를 인도하여 문 밖의 오른쪽에 나가 서로 읍례한다.
-조서함을 가진 자가 먼저 들어가고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들어가 궁정의 요위에 나아가면 조서함을 가진 자가 사신의 서쪽에서 조금 물러나고 다음에 사위가 들어와 명을 받는 자리에 선다.
-집례의 구령으로 사위가 재배하고 성체의 만복을 아뢰며 재배 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사신이 임금의 명을 받들었다고 하면 사위가 재배한다. 사신이 입으로 말하고 조서를 취하여 사위에게 전하여 주면 사위가 꿇어 앉아 조서를 받아 함가진 자에게 전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 무도하고 재배하기를 마치면 홀을 꽂고 꿇어 앉는다.
-압물이 하사 물품을 인솔하고 뜰을 지나 동에서 들어가 서쪽으로 나가기를 마치면 사위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하고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나가면 사위가 궁문 밖에 나가 전송하며 사신이 장막으로 들어가면 사위가 돌아 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사위가 먼저 초대장을 드리면 사신이 답하고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문 밖의 오른쪽으로 나아가 동향하고 사위는 문 밖의 왼쪽으로 나아가 서향하여 서로 읍례하고 문에 들어와 계단에 올라 요 위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가 기거장을 서로 드리기를 마치면 찬배하여 빈·주가 재배하고 걸어나가 재배하고 다시 걸어나가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가 입정한다.
-압물이 다음에는 지함과 인담(引擔)이 각각 참상을 주인에게 드리는데 압물은 대청 위 기둥 사이의 조금 남쪽에서 동향하여 절하고 지함, 인담은 기둥 밖에서 북향하여 절하고 참상드리기를 마치면 각각 계단을 막은 장막에 나아가는데 매등의 자리가 다르다.
-빈·주가 서로 읍하고 좌석에 나아가기를 마치면 차(茶)와 술(酒)을 베푸는데 술이 이르면 빈·주가 함께 일어나 헌주하기를 마치고 음식을 베푼다.
-사위가 조서를 전한 사신에게 베푸는 다연은 사위가 주인이 되고 사신이 손님이 되어 빈·주의 예로 의식을 진행하는데, 차를 대접하는 의식이나 술을 대접하는 의식이 책봉식 때 거행하는 진다의식과 똑같다.
-차와 술과 음식 대접을 모두 마치고 연회를 파하면 빈·주가 함께 일어나 계단을 내려와 각각 처음의 조서를 전하는 위치에 나아가 입정한다. 사위가 재배하고 일어나 표(表)를 받들고 사신 앞에 나아가 꿇어 앉으면 사신이 조금 앞으로 나와 표를 접수하며 물러나 자리에 돌아가고 사위도 자리에 돌아가 재배 무도하고 재배하기를 마친다.
-사신이 표를 함가진 자에게주고 집례가 빈·주를 이도하여 서로 읍하고 계단에 올라 사퇴한 후에 압물 이하가 차례로 사퇴하는 것은 처음과 같다.
-예폐를 마치고 빈·주가 동반하여 문을 나가 대좌하고 송별주를 마치고는 서로 읍하고 자리를 떠난다.



(7)왕태자절일수궁관하병회의(王太子節日受宮官賀幷會儀)

장소;여정궁(麗正宮)
인원:왕태자와 신료들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7, 예 9, 가례편
의의:왕태자가 명절(절일:매달)에 여러 군신으로부터 하례를 받고 그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차와 술을 대접하고 또 신료들이 올리는 차와 술을 대접받는 연회로서 매달 명절에 올리는 진다의식이다.
해설:왕태자는 대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사람으로서 매달 명일에 대소 신료들로부터 하례를 받고 또 이들에게 차와 술로써 연회를 베풀어 대접한다. 이는 이들이 차와 술을 올려서 축수하는 의식인데 명절에 하례를 드리고 차를 올리는 관습은 이때부터 시행되어 온 풍속이다. 왕태자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신전에도 차와 술을 올려 제사를 지낸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금, 은그릇
다 정(茶 鼎):돌, 은
찻 상(茶 床):목제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은
표 주 박(茶 瓢):청자, 나무, 은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다순서(進茶順序)
-왕태자가 여러 군신으로부터 절일(節日:매월 명절)에 하례를 받고 그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차와 술을 대접하고 또 그들이 올리는 차와 술을 받는 연회이다.
-하루 전 날 유사가 왕태자의 자리를 대전 위의 동쪽 벽 아래 가운데에 서향으로 설치한다. 당일 아침 일찍 장위(仗衛)가 들어가 궁정에 진열하고 영관(怜官)은 양부공인(兩部工人)을 거느리고 자리에 나아가 영관 한 사람이 지휘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왕태자가 화포(靴袍)를 착용하고 장차 전각을 나오려 하면 영관이 지휘봉을 들어 악(樂)을 시작하고 좌정하면 악을 중지한다.
-3사(三師) 3소(三少)는 서쪽에서 북을 위로하고 빈객을 남쪽에서 동을 위로하여 북향하고 재배하면 왕태자가 답배한다. 행두(行頭)가 걸어나가 치사하고 또 재배하면 왕태자가 답배한다.
-왕태자가 자리에 앉으면 전찬(典饌)이 안(案:책상)을 연전(筵前)에 설치하고 찬그릇을 갖추는데 그릇은 모두 평상시 사용하는 금·은 그릇을 쓴다.
-사인이 행두를 인도하여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존소(尊所)에 나아가면 궁관이 차와 술을 올린다. 차 마시기를 마치면 술이 나오는데 그 절차는 똑같다.
-왕태자가 3사 이하 여러 신료들로부터 차와 술을 받으면 다시 여러 군신들에게 왕태자가 차와 술을 하사 하신다.
-이 때 왕태자가 잔을 들면 악이 시작되고 다 마시면 악이 그친다. 차 한잔을 마시는 절차에도 왕과 왕태자에게 만은 악이 따랐으며 왕자나 공주는 예외이다.
-대체로 모든 행사에는 차가 따랐는데 으례히 차가 먼저 나오고 다음은 술이 나오고 다음에 밥 등 음식이 나오는 절차를 거쳤다.



(8)원회의(元會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인원:왕과 군신들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권 67, 예 9, 가례편
의의:설날 아침에 임금께 하례를 드리고 차와 술을 올리는 진다의식이 행해졌는데 이와같은 의식은 지금도 계승되는 설날에 다례 지내는 의식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잇다. 설날 아침에 차 올리는 의식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해설:원회의는 설날 아침에 대소 신료와 왕태자가 임금께 천만세 수주를 올리고 하례를 드리는 의식인데, 그 절차는 평상시 절일에 하는 의식과 같다. 당일 아침 일찍이 대관전뜰에 산선과 수정, 부월을 진열하고 상식과 다방은 수존소를 동쪽 계단 위와 서쪽 계단 아래에 설치한다. 그리고 문무백관의 자리를 뜰 아래에 정하고 악장과 공인을 배치한다. 왕이 거동하면 음악이 시작되고 앉으면 멈추며 태자이하 재추가 차례로 올라와 배무하고 하례를 드린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금 은그릇, 청자
다 정(茶 鼎):돌, 은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은
표 주 박(茶 瓢):청자, 나무, 은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찻 상(茶 床):목제

진다순서(進茶順序)
-당일 일찍이 산선(傘扇)과 수정(水精)과 월부(鉞斧)를 대전뜰에 설치하는 것은 평상시와 같이 한다.
-상식(尙食) 다방(茶房)은 미리 수존소(壽尊所)를 대전 계단 위 동쪽 가에 설치하고 유사는 신료의 존소를 대전 계단 아래의 서쪽 가에 설치한다.
-시간이 되면 시중(侍中)이 중엄(中嚴)을 판주(版奏)하여 태악령(太樂令)은 공인(工人)을 거느리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고 협률랑(協律朗), 전의(典儀), 찬자(贊者)도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사인이 문무 4품 이하 상참(常參) 이하 관인을 인도하여 전정의 위치로 들어오고 참외문반(參外文班) 9품 이상과 유록제권무무반(有祿諸權務武班) 산원(散員) 이상은 대전 문 밖에 나뉘어 선다.
-시중이 바깥 준비가 되었음을 아뢰면 왕이 장차 나가려 하여 의장을 움직이고 협률랑은 기를 들어 음악을 시작하고 왕이 대전에 앉으면 음악을 중지한다.
-각사(閣使)가 태자, 영공, 재신을 인도하여 가운데 위치에 나아가 북향하고 합반(合班)하여 선다.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며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또 재배하고 태자가 걸어 나가 치사 하례 드리고 위치로 돌아간다.
-전의가 재배하라 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기를 마치면 각사가 태자와 영공을 인도하여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대전 위의 중심으로 나아가 입정한다.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 및 대전 뜰에 있는 자가 모두 재배를 마치고 태자가 꿇어 앉아 아뢰기를 "신모 등은 원정(元正)의 수조(首祚)를 맞이하여 신 등은 크게 경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천만세수주(千萬歲壽酒)를 올리나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각사가 아뢰고 근시가 제(制)를 받아 가(可)하다고 하면 각사가 선지(宣旨)를 전한다. 그리하여 태자 영공에게 산호(山呼:만세) 재배함을 허락하면 문무반이 모두 재배한다.
-태자 영공이 세소에 나아가 손을 씻는 것은 평상시와 같이 한다. 다방(茶房)이 먼저 차를 올린다.
-차를 마시고 나면 술을 올리는데 뢰주(酒)하기를 마치고 태자, 영공, 재신이 왕좌 앞의 동쪽으로 가깝게 나아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영공이 존(尊)을 도우며 태자가 수주(수주)를 붓고 다방원(茶房員)이 잔을 공손히 받든다.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다시 대전 위에 자리로 나아가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 대전 뜰에 있는 자 모두가 재배한다.
-태자, 영공이 다시 왕좌 앞으로 나아가 태자가 잔을 받들고 영공이 존을 도와 왕이 작(爵:잔)을 잡으면 협률랑이 깃발을 들어 악을 시작하고 작을 다하면 악을 중지한다.
-각사가 태자, 영공을 인도하여 동쪽 계단으로부터 내려와 계단 아래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기를 마친다.
-각사가 선지를 전하면 '좌석에 나아갈 것을 허락하고 아울러 술과 밥을 하사하신다'고 하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며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9)대관전연군신의(大觀殿宴君臣儀)의 진다의식

장소:대관전
인원:왕과 왕태자, 영공, 군신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68, 예 10, 가례편
의의:대관전에서 왕이 명절이나 생일이나 태후책봉이나 태자를 책봉한 후에 신하들의 하례를 받고 신하들이 올리는 차와 술을 받고 또 차와 술을 하사하는 의식으로 경사스러운 날에 차를 올리는 의식이다.
해설:대관전에서 왕이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해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고 차와 술을 마시며 또 차와 술을 하사하는 의식으로 모든 명절에는 이와같은 행사를 거행한다. 연회의식의 순서는 하루 전에 대관전에 왕의 자리와 군신의 자리를 설치하고 준비하고 진설(陳設)과 당일에 행하는 대연(大宴)으로 되어 있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금, 은, 청자
다 정(茶 鼎):돌, 은
찻 상(茶 床):목기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은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은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다순서(進茶順序)
-대관전에서 군신을 연회하는 의식 때에 군신이 임금께 차를 올리는 진다의식과 임금이 군신에게 차를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 절차는 기일 전에 대관전에 왕의 자리와 군신의 자리를 설치하는 진설(陳設)과 당일에 행하는 대연(大宴)으로 되어 있다.
-하루 전에 상사국(尙舍局)은 왕의 좌석을 대관전 위의 가운데 남향으로 설치하고 편차(便次)는 왕좌의 동편 북쪽에 설치하고 짐승 모양의 화로 두개를 좌우에 설치한다. 태자의 좌석을 왕좌의 동남쪽에 서향으로, 공후백의 좌석은 왕좌의 동서에서 조금 남쪽으로, 재신과 추밀의 자리를 태자 공휴의 뒤에, 문관 3품 및 승제(承制)시신의 자리를 재신의 뒤에, 무관 3품의 자리를 추밀의 뒤로 매등급에 따라 위치를 달리하여 모두 북쪽을 위로하여 서로 바라보게 한다.
-상의국(尙衣局), 상사국은 꽃상(花宴)을 왕좌 앞의 기둥 사이 좌우에 설치하고 다방과 상식국(尙食局)은 어주(御酒)·어식(御食)·어과(御果)상을 구비하며, 군신의 주식(酒食)은 유사가 직위에 따라서 따라 공변한다.
-대연회를 베푸는 당일에 시간이되면 산선(傘扇)과 장위(仗衛)는 들어가 대관전 뜰에 진열하고 태악령은 교방(敎坊)의 악관을 거느리고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협률랑 전의 찬자, 어사 등 무릇 행사 집사관은 모두 들어가 위치에 나아가고 각 문은 각각 태자, 공후백 및 재신, 추밀, 문무, 상참 이상을 인도하여 들어가 문사위(文辭位)에 나아가 입정한다.
-시중이 바깥 준비가 되었음을 아뢰면 왕이 적황색 도포를 입고 대전에 이르는데 협률랑이 꿇어 엎드렸다가 지휘봉을 들고 일어나면 음악을 시작하고 장위가 만세를 아뢰고 재배하고 왕이 자리에 앉으면 음악을 그친다.
-각문이 문사를 아뢰고 태자, 공후백, 재신, 추밀, 문무군관을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북향하여 선다.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 무도하고 또 재배하며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재배하고 태자 걸어나가 치사하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 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각문이 각각 태자 및 상공을 인도하고 동쪽 계단으로부터 대전에 올라가면 집례관이 받아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공후백 및 문무군관이 재배하고 태자가 꿇어 앉아 아뢰기를 "신모 등은 엎드려 모절일을 만나 대경(大慶)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천만세의 수주(壽酒)를 올리고 엎드려 성지를 문후 하나이다" 라고 하면 집례관이 왕좌의 동남쪽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앉아 전하여 아뢰고 승제가 전달하기를 "좋다(可)"라고 하면 집례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태자의 동북쪽에 나아가 서향하고 전달하면 "태자 이하가 엎드렸다가 일어남을 허락한다"고 하며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 문무군관이 재배하기를 마치고 태자 및 상공은 세소에 나아가 손을 씻는다.
-근시관이 차(茶)를 올리면 집례관은 몸을 국궁하여 권하고 매양 술을 올리고 식사를 올릴 적마다 집례관은 몸을 국궁한다. 다음에 태자 이하의 군관에게 차를 하사하면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하고 집례관의 찬음으로 마시기를 마치고 읍례한다.
-다음에 태자 이하 군관에게 술을 베푸는데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잔을 잡으면 음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고 읍례하면 음악을 그친다.
-사재경(司宰卿)이 어식(御食)을 올리고 다음에 태자 이하 군관의 식사를 차린다.왕이 식사를 들면 음악을 시작하고 집례관이 찬배하면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모두 자리에 나아가 식사를 받으며 먹기를 마치고 일어나 읍례하면 음악을 중지한다.
-다식(茶食)이 이르면 교방이 치어(致語:樂人이 받들어 올리는 頌詞)와 구호(口號:詩 한 구절)드리기를 마치고 태자 이하가 내려가 전각 뜰의 절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태자가 걸어 나가 치사하고 물러나 자리로 돌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 무도하고또 재배하기를 마치면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근시관이 차례로 어주와 어식을 올리는 것과 군관에게 술을 베풀고 식사를 차릴 때 음악을 시작하고 중지하는 것은 모두 위의 의식과 같이 한다.
-이와같이 차 올리기를 마치면 술을 올리고 이어서 식사를 올린다. 왕은 으례히 채자 이하 여러 군관에게 차와 술 그리고 식사를 하사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연회 때 이같은 진다의식이 행하여졌다.



(10)상원연등회의(上元燃燈會儀)진다의식

장소:강안전(康安殿)
인원:왕과 신하들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69, 예 11, 가례잡의편
의의:고려 때 가장 큰 명절의 하나인 연등회 때에 진다의식을 거행한 것은 고려 왕실에서 차가 차지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연등회 같은 불교 행사에 차가 등장한 것은 오랜 전통과 불교 의식과 차와의 관계를 말해준다.
해설:연등회는 불교가 국교로 되어 있는 고려 때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이다. 봄에 지내는 연등회는 부처님을 섬기는 행사로서 온 국민이 하나같이 즐기는 민족의 대제전이다. 매년 2월 보름(15일)에 하다가 공민왕 때부터 4월 8일에 했다. 연등회를 치루는 절차는 소회일좌전과 조진을 알현하는 의식과 대회일좌전의 순서로 거행한다. 진다의식대회일좌전(대회일좌전)의식 때 있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금 은기
다 정(茶 鼎):돌, 은
찻 상(茶 床):목기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진다순서(進茶順序)
-연등회의 의식 절차는 먼저 소회일(小會日)에 지내는 좌전(坐殿)의식조진(祖眞:선조어진)을 알현하는 의식 있고 이어서 대회일행사가 있다.
-소회일의 좌전의식은 왕이 대전에 나가 군신들의 하례를 받고 함께 무희들의 춤과 노래, 놀이패들의 잡기와 놀이를 관람하는 행사이다.
-상사국은 왕의 휘장을 전각 위에 설치하고 태자 이하 공후백 추밀 등의 자리를 전각 뜰 좌우에 설치하며 북쪽을 위로하여 동서가 서로 보도록 한다.
-태자 이하 군신들이 전각뜰에 들어가 왕께 재배하고 물러나 자리에 나아가면 다음에 백희(百戱), 잡기(雜伎)가 차례로 전각 뜰에 들어와 연달아 재주를 부리고 연기를 마치면 물러나 나간다. 다음에 교방(敎坊)의 주악(奏樂)과 무희(舞姬)들의 춤과 노래를 감상한다.
-이처럼 춤과 노래 등 잡기와 놀이를 관람하며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다음은 선조의 어진(御眞)을 알현하는 의식이다.
-선조의 어진을 알현하는 의식은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납시면 열성조의 어진을 알현하고 헌작(獻酌)하는 의식으로 먼저 편전에 예를 마치고 나면 예사(禮司)가 초엄을 아뢰고 노부와 의장을 구정에 진열하고 상사국은 왕이 탈 수레(輦)를 전각뜰 가운데에 준비한다.
-태자 이하가 재배하기를 마치면 섭시중(攝侍中)이 바깥 준비가 다 되었음을 전각뜰에 나아가 아뢰면 왕이 전각에서 내려와 수레(輦)에 올라 봉은사로 향한다.
-태자 이하 군신들이 말을 타고 따라가서 삼문(三門) 밖에 이르면 말에서 내린다. 시신이 어가를 인도하여 삼문 안으로 들어가면 왕이 수레에서 내려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
-태자 이하가 진전문(眞殿門) 밖에 나아가 벌려서서 기다리다가 왕이 진전문 안에 이르러 북향하여 서면 계단 아래 요위에 나아가 북향하여 선다. 문무 군신이 차례로 북향하여 서면 추밀의 찬배로 왕이 절하고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 군신이 모두 재배한다.
-매번 왕이 절한 뒤에 사인의 구령으로 모두 재배한다. 왕이 전각 밖에서 절하고 이내 전각 안으로 들어가 재배하고 헌작(獻酌)하기를 마치면 또 재배하고, 태자 이하 군신이 재배한다. 추밀이 복주(福酒)를 올리면 왕이 재배하고 마시기를 마치고 또 재배한다. 음복(飮福)하기 전후에는 신하는 절하지 않고 왕만 전각에 나가 재배하는데, 태자 이하 군신은 나중에 따라서 재배한다. 왕이 나가서 문안에서 북향하여 서서 추밀의 찬배로 절하고 태자, 군신도 재배하기를 마친다. 재추와 추밀이 왕을 인도하여 휘장에 돌아오면 각문이 태자 이하를 인도하여 모두 나가 삼문 밖에 진열한다. 왕이 돌아올 때는 나아갈 때와 마찬가지로 한다.
-대회일 좌전의식은 대회 당일에 왕이 편전에 나아가면 승제원, 근시관, 각문원 및 제숙위 중금도지 새룡관 전문 내외의 위장 등의 예수 및 교방의 주악은 소회일의 의식과 같이 한다. 편전의 예를 마치면 다방(茶房)은 과일상을 왕좌의 앞에 설치하고 수존안을 좌우 꽃상(花案)의 남쪽에 설치한다.
-상사국은 왕태자의 자리를 왕좌의 동남에 서향으로 설치하고 공후백의 자리를 왕좌의 서남에 동향으로 설치하되 북쪽을 위로한다. 태자와 공후백의 과일상은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설치한다.
-좌우승제와 근시관, 각문원, 6상국 제후전관은 모두 공복으로 갈아 입고 천우상대장군(千牛上大將軍) 비신장군 색룡반 중금도지 등의 제 위장은 각각 그 기물과 복장을 착복하고 좌우로 나뉘어 계단 아래에 나아가 기다린다.
-왕이 자황포(柘黃袍)를 입고 나가 대전에 앉으면 명편(鳴鞭)하고 금위가 산호(만세)를 아뢰며 재배한다.
-태사국이 시각을 아뢰면 좌우승제와 천우상대장군이 북서쪽 계단으로부터 올라가 좌우에 서고 각문원은 전각 뜰에 나아가 횡행으로 북향하여 행두의 구령으로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며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또 재배하고 좌우로 나우어 선다.
-각문이 태자 이하 공후백 추밀을 인도하여 들어가 배위에 나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무도 또 재배하며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또 재배하고 좌우로 나누어 선다.
-각문이 태자 이하 공후백 추밀을 인도하여 들어가 배위에 나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며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재배하며 태자가 걸어 나가 치사하고 불러 주심을 감사하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한다.
-왼쪽 집례관이 나아가 선지를 받고 전각을 내려가 태자의 동북에 나아가 전각을 향하여 읍하고 서향하여 올라 오라고 전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각문원이 동서로 나누어 인도하여 전각에 올라가고 좌우 집례관이 받아 인도하여 자리 뒤에 나아가 입정하며 공휴백은 동서의 자리로 나누어 명령을 따른다.
-근시관이 차(茶)를 올리면 집례관이 대전을 향하여 국궁하고 매양 술을 올리고 식사를 올릴 때에도 집례관 모두 대전을 행하여 국궁하여 권하며 뒤에도 모두 이와 같이 따라서 한다. 다음에 태자 이하 시신에게 차(茶)를 하사하는데 차가 이르면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모두 마시기를 마치고 읍한다.
-매번 태자 이하 시신에게 술과 밥을 하사하실 때에도 좌우 집례가 찬배, 찬음, 찬식(贊食)하는데 뒤에는 모두 이를 따른다. 다음에 집례관이 태자 및 공후백, 추밀, 시신을 인도하여 배위(拜位)에 나아가 매양 태자 이하가 헌수(獻壽)하고자 하면 상사국이 요를 배위에 마련하고 거하는데 뒤에는 모두 이를 따랐다.
-이상과 같이 차와 술과 밥 그리고 꽃을 올리고 약을 올리고 또 하사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태자 이하 시신이 재배하고 천만세 수주 올리기를 허락 받으면 먼저 세소에 나아가 손을 씻는다. 왕이 편전에 들어가 조금 있다가 나와 대전에 앉으면 근시관이 함으로 꽅을 받들고 또 근시관 2인이 잔과 주자(注子)를 받들고 먼저 올라가고 태자 이하 추밀이 저에 올라가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태자가 왕좌의 좌측에 나아가 서향하여 꿇어 앉으면 승제원이 꽃 한 가지를 취하여 태자에게 주고 태자가 꽃을 받아 받들고 꿇어앉아 올리면 악이 시작한다. 승제원이 또 한 가지를 취하여 태자에게 주면 태자가 꿇어 앉아 올린다.
-어화(御花)는 한 묶음이 무릇 열두 가지인데 헌수원이 혹은 두가지를 드리고 혹은 서너 가지를 드리되 헌수원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나누어 드린다. 왕이 대화(臺花)하면 태자가 조금 물러나 엎드려 꿇어 앉고 공후백 추밀이 계속하여 나아가 헌화하기를 위의 의식과 같이하여 마치면 음악이 중지한다.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왕좌의 좌측에 나아가 잔을 받들고 꿇어 앉으면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주자를 받들고 술을 붓는데 악관은 계단에 올라가 주악하며 왕이 잔을 들면 음악을 시작하고 술 들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태자가 빈 잔을 받으면 근시관이 잔과 주자를 이어받아 조금 물러나 꿇어앉는다.
-태자 이하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전각에서 내려가 배위에 나아가면 집례의 구령으로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무도하며 또 재배한다. 집례관이 궁신(躬身)이라 칭하여 모두 국궁하고 집례관이 하사하는 별잔(別盞)을 전하면 추밀 이상이 모두 재배한다. 근시관 두 사람이 함으로 회사화(廻賜花)및 봉약(封藥), 선과(宣果), 주자(注子)잔을 받들고 먼저 올라간다.
-태자가 왕좌의 좌측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 앉고 송제가 꽃을 취하여 올리며 왕이 손수 하사하시면 음악을 시작한다. 태자 꽃 꽂기를 마치고 엎드려 물러나 꿇어 앉으면,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나아가 꽃 받기를 위와 같이하여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약을 받는 것이나 술을 받는 것도 모두 위와 같은 의식으로 하며, 마시는 자리로 물러나 집례관의 찬음으로 왕께 읍례하고 마신다. 마시기를 시작하면 악이 시작되고 마치면 악을 중지한다.
-이와 같이 차(茶), 술, 밥, 약, 꽃, 과일 등을 올리고 답례로 하사하는 절차와 의식은 대동소이하며 순서도 비슷하다. 다만 차가 맨 먼저 올려진다는 점과 모두, 음악, 놀이,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사하는 일도 있었다.


(11)중동팔관회의(仲冬八關會儀) 진다의식

장소:대관전(大觀殿), 선인전(宣仁殿)
인원:왕과 신하들
의식:가례시 진다의식
문헌:고려사 69, 예 11, 가례잡의편
의의:팔관회는 천영(天靈),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으로 신라 때부터 내려온 풍속으로 소회일과 대회일로 나누어지는데 진다의식소회일대회일에 모두 행하였다. 가장 장엄하고 법도있는 진다의식은 팔관회 때 진다의식이다.
해설:팔관회는 겨울에 지내는 가장 큰 명절로 11월 14일에 소회를, 15일에 대회 행하는데, 3경유수와 동서 병마사와 8도 목사, 4도 호부 등이 하례하고, 그 밖에 송나라 장사의 우두머리(강수)와 동서의 오랑캐, 탐라인까지 참석하며 모든 참석자에게 술과 잔치를 베풀며 함께 즐기는 대축제이다. 이런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12년:551)때 부터 시작되어 고려 공양왕(4년:1392)때가지 8백4십년 동안 계속된 행사이다.
다구:진다의식용 다구, 청자, 금 은 그릇
다 정(茶 鼎):돌, 은
찻 상(茶 床):목제
풍 로(風 爐):돌, 질화로
다 연(茶 碾):돌, 청자
다 저(茶 杵):돌, 나무
차 ( 茶 ):뇌원차, 대차
차 통(茶 桶):청자, 나무, 은
찻 잔(茶 盞):청자, 은
찻잔받침(茶盞托):청자, 나무
표 주 박(茶 瓢):청자, 목기
차숟가락(茶 匙):동, 은
찻 솔(茶 拂):목제
차 수 건(茶 巾):베

소회일 진다의식

진다순서(진다순서)
-기일 전에 도교서(道校署)는 3단계 뜬 계단을 의봉문(儀鳳門) 동전(東殿)의 층계 아래에 설치하고 상사국은 관속을 거느리고 휘장을 전각 위에 남향으로 가운데에 설치한다. 왕좌를 설치하는 것은 평상시 의식과 같이 한다.
편전을 휘장의 동쪽에 설치하는 상의국은 꽃상(花案)을 왕좌의 앞 기둥 상이 좌우에 놓으며 다방(茶房)은 과일상(果案)을 왕좌 앞에 놓고 수존안(壽尊案)을 좌우에 있는 꽃상의 남쪽에 놓는다.
-상사국은 왕태자의 자리를 왕자의 동남쪽에 서향으로 놓고 공후백의 자리를 전각 위의 동서 벽에 설치하되 모두 북쪽을 위로하여 서로 마주보게 하며 짐승 모양의 화로 두 개의 기둥 밖의 좌우에 놓는다.
-또 좌우 추밀의 자리는 위 계단의 북쪽에 가깝게 마련하여 좌우 시신은 나누어 추밀의 뒤에 있어 모두 북쪽을 위로하여 서로 마주보게 한다. 협률랑(악장)의 자리는 위 계단의 서쪽에 남에 가깝게 동향으로 설비하며 중간계단의 시신의 자리는 좌우에 설치하되 모두 북을 위로하여 서로 마주보게 한다. 악탁(樂卓)은 좌우 시신의 뒤에 설치하며 찬(饌)및 다방(茶房)의 장막은 중간계단의 동서쪽에 설치한다. 내고사(內庫使)는 대존뢰(大尊賚 :세수그릇)을 정원의 좌우에 진열하여 북을 위로 하고 예부(禮部)는 그 관원을 거느리고 황룡의 큰 깃발 둘을 정원의 동서로 계단에 가깝게 꽃는다. 각문은 태자의 문사(聞辭:송축의 치사)하는 자리를 정원 가운데 동편에 가깝게 서향으로 마련하고 공후백의 자리는 그 다음으로 하여 재신의 자리는 그 다음으로 하되 문관은 모두 약간 물러나 서향하여 북쪽을 위로하고 무관은 서편에 설치하되 동향하여 마련한다.
-하루 전에 좌우 추밀, 시신, 장위(丈衛), 악부(樂部)는 대관전으로부터 줄지어 의봉문으로 나가고 재추 이하 문무백관은 모두 정원의 자리에 나아가 의식의 예행연습을 하고 마치면 읍례하고 물러간다.
-소회 당일의 의식은 열성조의 어진(御眞)을 뵙고 북향재배하며 헌작하는 순서로 시작된다. 예사(禮司)에서 시간에 맞춰 초엄(初嚴)을 알리면 노부(鹵簿)와 의장(儀仗)은 나가 구정에 줄지어 서고 견선(絹扇)과 위장(衛仗)은 대관전 뜰로부터 좌우에 줄지어 의봉문에 이르러 멈추고 인가관(引駕官)은 왕이 탈 수레를 인도하여 들어가 요위에 놓는다.
-예사가 중엄(中嚴)을 알리면 추밀 이하 시신 각문 등은 반열을 지어 전각 뜰에 들어가 좌우로 나누어 서서 기다린다. 왕이 자황포(柘黃袍)를 입고 나와 수레를 타고 의봉문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려 옷을 고쳐 입고 조진(祖眞) 앞에 이르러 북향재배하고 헌작한다. 또 재배하고 물러나 편전으로 나아간다.
-다음은 대전에 앉아서 하례 받기와 군신의 헌수받는 예식이다. 장차 왕이 나아가려 하면 근사관이 주렴을 걷고 명편하고 협률랑(악장)이 엎드려 지휘봉을 들고 일어나면 교방이 주악(奏樂)을 울리고 고취(鼓吹)를 울린다.
-왕이 왕좌에 올라가면 명편하고 좌우 승제와 천우상대장군은 동서 계단으로부터 전각에 올라가면 명편하고 좌우로 나누어 서며 향연을 피운다. 태사국이 시각을 아뢰면 협률랑이 끓어 앉아 지휘봉을 놓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한다. 그러면 주악을 그친다.
-이와 같이 왕이 나와 전각에 앉으면 태자 이하 공후백이 조하(朝賀)를 드리고 차와 술올린다. 왼쪽 집례관이 태자와 상공을 인도하여 세소(洗所)에 나아가 손을 씻고, 근사관이 차(茶)를 올리면 집례관이 전각을 향하여 국궁하여 권한다. 다음에 술을 올릴 때는 전중감(殿中監)이 잔을 받들고 근시관이 주자(注子)를 받들고 먼저 올라간다.
-태자와 상공은 동쪽 계단으로부터 전각에 올라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어좌의 좌편에 나아가 서향하여 꿇어 앉는다. 태자가 잔을 받으면 상공이 태자의 좌편에 나아가 주자를 받들고 술을 붓는다.
-왕이 잔을 들면 협률랑이 지휘봉을 들고 악관이 '가곡천온향(歌曲天醞香)'을 울리며 왕이 술 들기를 마치면 태자가 빈 잔을 받고 조금 물러나 끓어 앉고 협률랑이 지휘봉을 놓으면 주악이 그친다. 태자와 상공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전각에서 내려가고 각문이 인도하여 정원의 절하는 위치로 나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입정한다.
-처음 헌수하기를 마치면 사재경(司宰卿)이 식사를 올리고 전중감이 술을 올리는데 세 번하고 식사를 올린다. 왼편 집례가 서쪽 계단으로부터 계단 위에 올라가 어명 받는 위치에 나아가 북쪽하여 서서 선지를 받들고 계단에서 내려온 후 태자의 동북쪽에 나아가 전각을 향하여 읍례하고 서향하여 전하기를 '경등의 하례하는 바는 이미 알았노라'하고 소사(所司)에게 차와 술 하사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각문이 태자 이하 공후백, 추밀 등을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간다. 이어서 3경 유수(三京留守)와 동서병마사, 8도 목사, 4도 호부사 등이 하례하고 자리에 나아가며, 이하 문무백관과 악관과 위장 및 하급군관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자리에 나아간다.
-다음에 추밀 이하 양쪽 계단의 시신 및 정원의 각문원등의 과일상을 차리고 대전 위의 태자, 공후백의 과일상은 앉기 전에 마련하며, 근사관이 올리는 차와 식사를 마련하고 다음에 태자 공후백 및 추밀 양쪽 계단의 시신을 위한 차와 식사도 마련한다. 좌우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 이하 시신이 모두 재배하고 자리에 나아가 식사를 받아 먹기를 마치면 일어나 읍례한다.
-중간 계단의 시신은 서서 식사를 받고, 다음에 근시관이 차를 올린다. 다음에 태자, 공후백, 추밀, 시신에게 차를 하사하면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 이하 추밀, 시신이 모두 재배하고 차를 받고 마시기를 마치고 읍례한다. 태사령의 판주로 만방이 구성아악(九成雅樂)을 정주(呈奏)하고 정원의 중악(衆樂)이 번갈아 시작하기를 앞의 의식과 같이 한다.
-승제(承制) 한 명과 중간계단의 좌우 시신 각 한 명을 내려 보내어 좌우 동락정(同樂亭)과 재신의 장막, 문무 3품관의 장막에 나누어 보내서 별잔(別盞)을 하사하는데 명을 받은 자는 모두 재배하고 뜰에서 내려간다.
-승제가 장차 재신의 장막으로 나아가려 하면 다방인리(茶房人吏)두 명이 주자를 갖추어 별선주(別宣酒)를 받들고 임금이 보낸 교방의 악관으로 하여금 뒤를 따르게 한다. 승제가 장막의 계단 아래의 어명을 전하는 위치에 이르러 남향하여 서면 악관은 동향하여 줄지어 서고 재신은 모두 계단에서 내려가 절하는 위치로 나아간다.
-승제가 어명을 받들었다고 칭하면 재신이 재배하고 국궁하며 구선(口宣)하기를 마치면 재신이 또 재배하고 계단 위에 올라가 조금 앞으로 나아가 서향하여 선다. 그러면 명을 받은 자는 계단에 올라가 재신의 북쪽에 남향하여 선다. 상사국이 과일상을 마련하고 다방인리 한명이 잔을 받들고 또 한명이 술을 부으면 주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승제가 계단에서 내려가 남향하여 서면 재신은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며 돌아와 자리에 나아간다.
-다음은 시립원장(侍立員將), 양부악관(兩部樂官), 사봉군인(侍奉軍人)에게 술과 과일을 하사하랍시는 어명을 전하면 좌우승제, 천우상대장군, 내시, 다방참상원(茶房參上員)과 대전 위 좌우 집례가 차례로 대전 위의 서쪽 벽에 나아가 동향하여 북쪽을 위로하여 서서 재배하고 술을 받아 마시기를 마치고 재배하며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매양 별잔을 하사하라는 어명과 대회날에 꽃과 봉약(封藥), 선과(宣果)를 받는 것은 모두 이를 따른다.

대회일 진다의식

진다순서(進茶順序)
-왕이 처음 선인전(宣人殿)에 거동하면 승제 이하 근시관 및 후전관(後殿官)이 문후하기를 마친다. 대관전에 납시면 시신이 문후하고 의봉루의 위에 거동함에 앞서서 향을 사루고 헌작한 뒤에 근시관 이하가 뜰에 올라가며 태자 이하 공후백, 재신, 추밀, 시신, 문무, 군관이 차례로 선다. 왕이 대전에 앉은 뒤에 문사, 헌수, 전선(傳宣)의 자리를 하사하는 의식은 소회일과 같다.
-이와 같이 신료가 각기 정한 자리에 앉으면 각문이 송(宋)나라의 강수(綱首:상인의 우두머리) 등을 인도하여 문사의 위치에 나아가 입정한다. 각문이 문사하여 아뢰기를 "송나라의 도강(都綱) 아무개 등이 기후(祇候)학 조하(朝賀)코자 하나이다."라 하고 마치면 인도하여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 꿇어앉아 물품을 적은 서장을 올린다. 그러면 각문이 받아 올리고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행두가 성체의 만복을 아뢰며 산호를 아뢰고 재배한다. 이어 행두가 걸어 나아갔다가 물러나 위치에 돌아가 산호를 아뢰고 재배한다.
-다음에 어명을 전하여 자리를 하사하고 음악을 보게하며 겸하여 소사의 술과 식사를 하사하기를 마치면 산호를 아뢰고 재배하며 권반(券班)하여 서쪽으로 나아가 장막으로 나아간다. 다음에 동서의 번자(蕃子 : 오랑캐)를 인도하고 다음에 탐라인을 인도하는데 조하 및 전선하는 예는 모두 송나라 상인과 같게 한다.
-다음에 사방의 공물과 상인과 같게 한다. 다음에 사방의 공물과 제번(諸蕃)들의 공물을 인도하여 동쪽 인덕문으로부터 들어가 빨리 대전뜰을 지나 서쪽의 창문으로 나가기를 마친다.
-다음에 근시관이 차와 식사올리면 집례관이 전각을 향해 국궁하여 권하며 다음에 태자 이하 시신의 차와 식사를 차린다. 식사가 이르면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 이하 시신이 모두 재배하고 자리에 나아간다. 식사 받아 먹기를 마치면 일어나 읍례한다. 대전 위에 차를 올리고 술을 올리며 식사를 올리는 것 및 태자 이하 시신에게 차를 하사하고 술을 베풀며 식사를 차리는 예식과 주악을 시작하고 중지하는 것도 모두 소회일의 의식과 같이 한다.
-다음은 꽃을 올리는 헌화식(獻花式)과 꽃술(花酒)을 올리는 의식이 거행되는데, 왕이 나와 대전에 앉으면 명편하고 향을 사른다. 근시관이 함으로 어화(御花)를 받들고 또 근시관 두 명이 어잔(御盞) 및 주자를 받들고 먼저 올라가 왕좌의 동북에 나아가 조금 물러나 꿇어 앉는다. 태자 이하 추밀 이상은 대전에 올라가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태자가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서향하여 꿇어 앉고 승제원(承制員)이 꽃 한 가지를 취하여 태자에게 주고 태자가 꽃을 받들고 꿇어 앉아 올리면 주악을 시작하고 승제원이 또 한 가지를 취하여 태자에게 주면 태자가 받들어 올린다. 헌수원(獻壽員)이 어화를 드리는 것은 두 가지 혹은 세 네 가지로 하여 헌수원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나누어 드린다. 왕이 대화(戴花)하면 태자가 조금 물러나 꿇어 앉고 공후백 추밀이 계속하여 나아가 꽃을 드리는데 위의 의식과 같이 하여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꽃술(花酒)을 드리는 의식은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술잔을 받들고 꿇어 앉으면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주자를 받들고 술을 붓는다. 왕이 술을 들면 주악을 시작하고 술 들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태자가 나아가 빈잔을 받는다. 근시관이 잔과 주자를 이어받고 조금 물러나 꿇어 앉으면 태자 이하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대전에서 내려가 절하는 위치에 나간다. 그러면 구령으로 태자 이하 양쪽 계단의 시신이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한다.
-꽃술을 드리는 의식은 태자 이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따른다. 다음은 왕이 태자 이하 추밀들에게 꽃과 꽃술을 하사하는 의식이다. 근시관이 함으로 회사(廻賜)하는 꽃 및 주자와 잔을 받들고 먼저 올라가고 추밀 이상이 대전에 올라가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앉으면 승제가 꽃을 받들어 올리고 왕이 손수 하사하면 주악을 시작하고 태작 꽃기를 마치고 엎드려 물러나 꿇어앉는다.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나아가 꽃 받기를 위의 의식과 같이하여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다음은 꽃술을 하사하는 의식인데, 태자가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 앉으면 승제가 주자를 받들고 근시관이 잔을 받들면 승제가 술을 붓는다. 태자가 조금 앞으로 나아가 잔을 잡으면 근사관이 전하여 받고 대전 위의 동쪽 벽에 태자의 마시는 위치로 나아가 서면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물러나 술마시는 위치로 가서 선다.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나아가 회사 함을 받는 것은 태자의 의식과 같이 한다.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왕좌를 향하여 읍례하면 주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근시관이 각각 빈 잔을 받고 태자이 하가 읍례하고 대전에 내려가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면 구령하여 재배무도하고 도 재배하면 각각 위치로 나아간다.
-다음은 재신과 문무 3품 관원에게 꽃과 꽃술 그리고 과일을 하사하는 의식인데 승제 한 명과 중간 계단의 좌우 시신 각 한명씩을 내려 보내어 좌우 동락정(同樂亭)의 재산 강막과 문무3품관의 장막에 나누어 보내서 별선화주(別宣花酒)를 하사하면 어명을 받은 자는 모두 재배하고 뜰에서 내려간다.
-다음은 재신과 문무 3품 관원에게 꽃과 꽃술 그리고 과일을 하사하는 의식인데 승제 한명과 중간 계단의 좌우 시신 각 한명씩을 내려 보내어 좌우 동락정(同樂亭)의 재신 강막과 문무3품관의 장막에 나누어 보내서 별선화주(別宣花酒)를 하사하면 어명을 받은 자는 모두 재배하고 뜰에서 내려간다.
-승제가 장차 재신의 장막에 나아가려 하면 다방인리(茶房人吏)가 주자를 갖추고 별선화주를 받든 좌와 선과(宣果)와 선화(宣花)를 받든 자와 선송(宣送)한 교방악관(敎坊樂官)등이 모두 뒤를 따른다.
-승제가 장막 계단 아래서 어명을 전달하는 위치에 이르러 남향하여 서고 악관이 동향하여 진열하면 재신이 계단에서 내려와 배명(拜命)함과 및 승제가 입으로 전하는 예식과 상식국이 과일상을 설치하는 것은 모두 소회의 의식과 같이 한다.
-재신이 절하기를 마치면 뜰에 올라가 자리에 나아가 대전을 향하여 입정하고 승제가 재신의 북쪽에 남향하여 선다. 꽃함을 받든 자가 승제의 우측에 나아가 꿇어 앉고 승제가 꽃을 취하여 재신에게 전하여 주면 주악을 시작하고, 재산이 꿇어 앉아 받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상식국이 과일상을 마련하고 다방인리 한 사람이 잔을 받들며 또 한 사람이 술 붓기를 마친다. 선과를 받든 자가 각각 뜰에 올라가 재신의 위치를 당하여 동향하여 서면 주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승제가 뜰에서 내려가 남향하여 서면 재신이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돌아가 위치에 나아간다.
-다음은 문무 3품 이하에게 꽃술과 과일과 차를 하사하고 별선주도 하사하며 주악과 무희들의 춤도 하사하게 된다. 이처럼 모든 대소신료에게 차와 식사와 술과 과일을 하사하면 마지막으로 태자가 천만세 수주를 올리며 근시관은 왕에게 차를 올리므로 모든 행사가 끝나게 된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행다법

장소 : 개경의 순천관(順天館), 향림정(香林亭)

인원 : 사신, 정사, 부사

의식 : 일반 행다법, 사신 접대 행다법

문헌 : 선화봉사 고려도경(宣和奉使 高麗圖經), 제27권 관사, 순천관, 향림정, 제32권, 기명3, 다(茶組)

연대 : 고려, 인종 1년 (1123년)

의의 : 이 고려도경에 나타난 행다법은 고려 초기에 국가기반이 안정이 되고 문물이 발전하는 시기에 행해지던 행다법으로 중국(북송)과 다른 부분들이 상세하게 설명되어져 있다. 특히 새로운 행다법이 자리를 잡고 있던 시기로 고려의 뇌원차용봉단차가 함께 마셔지던 때이다.

해설 : 이 행다법은 차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북송의 휘종황제 특명을 받고, 사신의 일행으로 고려 개경에 왔던 서긍(徐兢:1091~1153)이 1년간에 걸쳐 저술한 고려도경에 나타난 행다법이다. 특히 북송과 다른 고려식 행다법의 면모를 상세히 알 수가 있으며, 대각국사 이후에 새롭게 정립된 점다법(點茶法)의 절차와 다구들을 알 수가 있다. 이때에 수입한 용봉 단차와 납차, 그리고 고려의 토산차인 뇌원차의 쓴맛과 약(藥:탕수)를 마시는 관습이 특징이다.
행다법 두곳에서 행해졌는데 연희때는 순천관 뜰 가운데서 차를 끓이고, 즐길때는 향림정에 올라가서 차를 달였다.

돌 솥(石鼎) : 은, 돌
화 로(火爐) : 은, 도자기
다 연(茶碾) : 돌, 나무, 청자
다 저(茶杵) : 청자, 나무
차 통(茶桶) : 청자, 은
차 잔(茶盞) : 은, 청자
차잔받침(茶托) : 은, 청자
차 상(茶床) : 나무, 은
차 상 포(茶床布) : 붉은색사포
차숟가락(茶匙) : 은, 동, 청자
표 주 박(茶瓢) : 청자, 은
차 솔(茶沸) : 나무잎, 뿌리
차 수 건(茶巾) : 세마포
약 잔(藥盞) : 청자
물 통(水瓷) : 도자기
다과그릇(茶果器) : 청자
차(腦原茶, 大茶) : 용봉단차, 뇌원차


행다순서(行茶順序)

- 은제풍로를 뜰 가운데로 옮겨놓고 불를 피운다. 불이 피워지면 은제탕정을 그 위에 올려 놓고 찻물을 끓인다.

- 은 탕정의 찻물이 끓으면 표주박으로 떠내서 찻잔을 데운다. 이때 시동은 뇌원차를 갈아서 분말을 만든다. 이 떡차는 미리 갈아서 두는 것이 좋다.

- 뇌원차나 용봉단차를 곱게 갈아서 채로 쳐서 잘 갈무리해 둔다. 가루발이 고와야 차의 탕이 해맑게 된다.

- 손님의 수에 맞춰서 찻잔을 정하고 찻물도 여유가 있게 끓이다.

- 차의 도구 일습은 관사 안의 붉은색 주칠을 한 둥근탁자를 놓고 그 탁자 위에 다구를 진열해 놓고 붉은 사포로 덮어 놓는다.

- 차 달이는 다방 관원은 다구를 챙겨 뜰 가운데나 정자 옆에서 차를 달인다.

- 차 달이는 방법은 두가지를 병용했는데 하나는 팽다법이고 다른 하나는 점다법이다.

- 점다법은 다완에 가루차를 넣고 끓인물을 붓고 다선으로 저어서 거품을 내서 마시는 방법이다.

- 찻물이 끓으면 찻물을 떠내 차잔을 데우고 찻잔에 가루차를 넣고 찻물을 붓고 다선으로 젖는다.

- 처음에는 거품이 적게 나고 미숫가루를 타서 마시듯 하였다. 다선은 동이나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 차를 끓이면 은으로 만든 연잎 모양의 뚜껑을 덮어서 가져다 드린다. 한잔씩 한잔씩 가져다 드린다.

- 천천히 움직이며 급히 서둘거나 성급하게 행동해도 안된다.

- 차가 다 돌려진 다음에 함께 들도록 되어 있으며 찬자가 "차를 다 돌렸소" 한 다음에 마실 수가 있으며 주인이 권한 다음에 들기 때문에 차가 다 식어서 냉차가 되어 있다.

- 차를 마시고 난 다음에 끓인 물드리는데 이것을 약(藥)이라고 한다. 이 약을 다 마시면 기뻐하고 마시지 않으며 불쾌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이는 잘못 알려진 것 같다.

- 차를 마시고 난 뒤에 탕수를 마시는 풍습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행다법의 특징이다. 이는 살려서 행하며 좋을 것이다.


대각국사(大覺國師)의 행다법
장소 : 고려사, 국청사, 해인사 등
인원 : 2명(대각국사, 수개)
의식 : 생활차 행다법
문헌 : 대각국사 문집, 고려사지.
의의 : 대각국사는 고려 선종(宣宗) 3년(1085) 4월 경오일 밤에 제자 수개(壽介)를 데리고 송나라에 들어갔다. 원래 송나라에 들어간 목적은 화엄학을 배우기 위함이지만 이때에 1년 8개월 동안 송황실과 항주의 고려사에 머물면서 송황제가 하사한 용봉단차(龍鳳團茶)를 마시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점다법(點茶法)시대가 개막되었다.
해설 : 대각국사가 송나라 황실과 항주의 고려사에서 익힌 용봉단차를 끓이는 점다법은 송나라 정통 행다법으로 대각국사를 통해서 고려에 전파되었다. 고려에서는 이때까지도 팽다법(烹茶法)으로 떡차(뇌원다)를 끓여 마시는 행다법을 행하고 있었다. 대각국사가 귀국할 때 가져온 다기들은 송나라의 정통 다구들로서 월주요(越州窯)에서 나오는 해무리굽 청자다완과 건주요(建州窯)에서 나오는 천목다완(天目茶碗)으로 고려의 행다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로 고려에서는 점다법 시대가 개막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자다완의 급진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다구 : 다실용 다구, 중국다기
탕 관 : 은, 동, 돌
풍 로 : 질그릇
차 통 : 청자
차 : 용봉차, 뇌원차
찻 잔 : 청자다완, 천목다완
찻잔받침 : 청자잔탁
물 병 : 청자물병
차숟가락 : 은, 동
차 수 건 : 베
찻 상 : 목제


행다순서
먼저 뜰에 풍로와 탕관을 갖추어 차 끓일 준비를 한다.
풍로에 불을 피우고 탕관에 맑은 물을 담아서 올려놓고 끓인다.
한편 용봉단차를 맷돌에 갈아 채로 쳐서 매우 미세하게 가루를 내서 차통에 담아 둔다.
다완과 찻숟가락을 깨끗이 씻어서 차 끓일 준비를 한다.
찻상에는 다완과 차통과 찻숟가락과 차수건을 준비한다. 찻숟가락은 다선(茶筅)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찻물이 다 끓으면 청자물병에 옮겨 담아 가지고 와서 먼저 다완에 조금 부어 씻어 낸다.
차통을 들고 찻숟가락으로 가루차를 떠내서 다완에 넣고 물을 조금 부어서 죽처럼 저어서 갠다.
다시 탕수를 더 첨가하여 다선으로 저어서 거품을 일군다. 이때 송나라에서는 격(擊)불(拂)하는 방법으로 손놀림을 하여 거품을 일군다.
이때 거품이 갈라지거나 잔잔한 것은 솜씨가 서툴다고 한다. 후대로 내려가면서 처음보다 거품을 내는 것을 더욱 심하게 하였다.
고려에서는 죽처럼 되직한 것과 엷은 것을 최상으로 여겼으며, 특히 참선하는 선사들은 수마를 쫓는 방편으로 죽면차를 즐겨 마셨다.
차의 농도는 자신의 기호에 따라 탕수의 많고 적음으로 가늠하고 즐겨 마시는 정도를 본인이 스스로 결정한다.
차가 잘 풀어졌으면 다완을 바쳐서 가져다 대각국사께 드린다.
탕관을 쓰지 않고 탕병을 쓸 때에는 물병을 따로 쓰지 않고 탕병으로 그냥 사용한다. 이규보선생이 선물 받은 탕병은 쇠로 만든 철병이었다.
단차는 가루를 미세하게 낼수록 좋으며 이로 인하여 맷돌이 발달되게 되었다.




이규보(李奎報)의 행다법
장 소 : 고려의 거실 , 강화도, 개경
인 원 : 이규보외 다수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문 헌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연 대 : 1168(고려 의종 22년)~1241(고종28년)
의 의 : 이규보 선생의 싯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행다법은 대각국사 이후(1085년)에 정착되어가는 점다법(點茶法)이 주로 행해져서 탕관으로 철병(鐵甁)이 등장한다. 하지만, 돌솥에 차를 다리는 팽다법도 병행해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이 시기는 행다법이 변화하고 풍류놀이가 성행해져서 시가(詩歌) 문화와 기로회(耆老會)가 자주 열리었던 때이다.
해 설 : 이규보 선생의 차 생활은 자유분방했으며, 여러사람과 교유하며 차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행다법을 알고 있었으리라 보여진다. 그러나 자신의 차생활은 유다(孺茶)시에서 자세히 드러나 있다. 주로 같이 차를 마신 상대가 고승대덕이거나 뜻이 높은 선비가 주로였으니, 당연히 선승들의 다풍(茶風)을 익혔거나 강좌칠현(江左七賢) 같은 선비들의 차생활이 몸에 배였을 것이다. 선생이 차 한잔 끓여 놓고 참선이나 해볼까 하는 싯구는 선사의 풍모마저 엿보인다. 또, 다른 싯구에서는 여러가지의 다구들도 소개가 되어 있다.

다 구 : 생활차 다구, 점다용 다구.
탕 관 : 철병(鐵甁), 차솥(茶鐺), 돌솥(石鼎)
풍 로 : 전돌풍로(土塼爐)
차 : 유다(孺茶), 뇌원차
차 통 : 청자
찻 잔 : 상감청자다원, 금화오잔, 비색소구
찻잔받침 : 청자잔탁
다 마 : 돌맷돌(石磨)
물 병 : 청자
차숟가락 : 은, 동, 청자
차 수 건 : 베
찻 상 : 나무
다 선 : 은, 동
퇴 수 기 : 청자


행다순서
먼저 뜰에 다구를 갖추어 차 끓일 물을 준비한다.
전돌풍로에 숯불을 일구어 놓고 물을 길어다 철병에 넣어 풍로 위에 올려놓고 끓인다.
한편 돌을 쪼아서 만든 다마(茶磨)로 유다를 고르게 갈아 내서 미세한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차를 채로 쳐서 미세하게 골라 차통에 담는다. 거친 가루는 또다시 갈아서 담는다.
찻상에는 상감청자다완과 차통과 차숟가락과 차수건을 준비한다. 차숟가락은 다선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먼저 차상을 옮겨 차 마실 자리를 잡고 풍로 위의 찻물이 끓었나를 살핀다 찻물이 다 끓었으면 조심스럽게 철병을 들어 옮긴다.
차 끓일 준비가 다된 찻상 옆에 철병을 두고 먼저 탕병을 들어 꽃무늬 찻잔에 뜨거운 탕수를 약간 부어 찻잔을 데운다.
찻잔의 물을 퇴수기에 버리고 찻잔을 바로 놓고 차숟가락으로 차통의 가루낸 유다를 덜어 내서 찻잔에 넣는다.
차의 양은 한 솥 반 정도면 족하다. 진한차를 요구할 때는 차의 양을 추가한다.
찻잔에 가루차를 넣고 탕병을 들어 먼저 약간의 탕수를 찻잔에 부어 넣는다. 그리고 다선으로 저어서 갠 다음 알맞는 양의 탕수를 부어 다선으로 젓는다.
이때 약간의 거품이 생긴다. 거품이 생기는 것은 무방하며 많이 생겨도 상관없다. 후에는 거품이 많이 나는 것을 좋다고 여겼다.
차의 농도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며, 농도는 가루차의 양으로 조정한다.
고루 저어서 가루차가 다 풀어지도록 하며 덜 풀어지면 찌꺼기가 남는다.
유다는 특별하게 어린애의 젖냄새 같은 맛과 향기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점다법에 쓰는 유다나 뇌원차 같은 단차는 가루를 미세하게 갈수록 좋으며 이로 말미암아 차를 가는 맷돌이 더욱 정교해 졌으며 맷돌을 선물하는 풍속도 생겨났다.
이규보 선생은 많은 다구들을 선물 받은듯 하다. 그 가운데는 차를 가는 맷돌, 물끓이는 철병같은 것이 있다.




진각국사의 행다법
장 소 : 구례의 오봉산 전물암, 길상사
인 원 : 2명 (진각국사, 시자)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문 헌 : 무의자 시집, 진각국사 어록, 선문염송


의 의 :
진각국사(1178~1234)가 구례의 오봉산 전물암에서 이빠진 찻잔에 다리 부러진 솥으로 차를 달여 마신 일이나, 길사의 선방에서 소반 가득히 눈을 퍼다가 다져서 산봉우리를 만들고 우물을 파서 고이는 눈물로 설수차를 달여 마시는 행다법은 멋의 극치요 선승들의 차 생활이 격식에 억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행다법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과 차가 한 경지로 어우러지는 선다일여의 수행차를 개척해 주기도 하였다.


해 설 :
대각국사 혜심(慧諶)은 전남 화순에서 나서 24세때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태학관에 들어갔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길상사로 보조국사를 찾아가 뵙고 출가를 하였다. 그래서 유학에도 통달하여 유불을 넘나들며 시문에도 출중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신의 경지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게송을 잘하였으며, 차의 경지를 시로 읊어내는 멋스러움을 한껏 발휘하였다. 이러한 풍모가 얽매임 없는 선의 경지와 멋의 극치인 차의 세계를 하나로 통하게 하는 다시와 선시의 창출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정신이 격식을 초월한 행다법의 세계를 창출해 내었고, 또한 걸림이 없는 수행차 행다법을 창안해 낸 것이다.
다리 부러진 가마솥에 배고프면 죽을 끓여먹고 목마르면 차 달여 마시는 선승, 이빠진 찻잔에 죽을 담아 먹기도 하고 차를 받아 마시기도 했다. 여기에 무슨 법도와 격식이 필요 하겠는가.

다 구 : 생활용 다구
차 솥 : 노구솥(鍋)
찻 잔 : 이 빠진 잔
차 : 작설차, 녹명
차 상 : 눈담는 소반
찻 물 : 설수, 은하수(星河), 용천(龍泉)
연 료 : 솔방울
다 관 : 청자
차 통 : 청자, 나무
차숟가락 : 청동, 나무


천마총 출토 청동정
      천마총 출토 청동정  - 노구솥(鍋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솥)
- ≪삼국유사≫에도 “다리가 부러진 노구솥 한개가 있을 뿐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출토품과 기록 등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서는 철복(鐵鍑; 쇠로 만든 아가리가 큰 솥)과 토기제품 솥을 써오다가 정을 썼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행다순서
먼저 뜰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피워 노구솥에 찻물을 부어 끓인다.
연료는 솔방울을 주어다 모아놓고 사용하는데 솔향내가 그윽하다.
방안에는 시자를 시켜 소반에 깨끗한 눈을 가득 담아오게 한다. 그리고 손으로 다지고 눌러서 산봉우리를 만들고 계곡을 만들고 이윽고 산아래에 구멍을 뚫어 용천을 만든다.
용천에 고인 물을 떠내서 노구솥에 붓고 찻물을 끓인다.
떡차(뇌원차)를 가루내서 차통에 담아 두었다가 꺼내서 차솥에 물이 끓으면 가루차를 넣고 다시 끓인다.
차상에는 이빠진 찻잔과 표주박을 준비하여 차가 익으면 떠낸다.
진각국사는 팽다법으로 차를 달여 마시기도 하고 잎차인 작설차를 달여 마시기도 하였다.
작설차는 눈녹인 설수를 끓여서 다관에 넣고 울궈 마시는 행다법이다.
용천에 눈녹인 물을 솥에 부어 넣고 끓인다.
차상에는 청자다관과 작설차통과 찻숟가락과 찻잔을 준비한다.
찻물이 다 끓으면 다관에 작설차를 넣고 그 위에 찻물을 붓는다. 잠시후 울궈 나면 찻잔에 따른다.
진각국사는 새롭게 유행하는 점다법은 별로 쓰지 않은 듯하고 오히려 작설차를 끓여 마시는 전다법팽다법을 더 즐긴듯 하다.



원감국사(圓鑑國師) 행다법
장 소 : 진각사(眞覺寺), 다송실(茶松室), 백련암(白蓮庵)
인 원 : 원감국사, 시자
의 식 : 생활차 행다법(점다법, 전다법)
문 헌 :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연 대 : 1226(고려고종 13년)~1292(충렬왕 18년)


의 의 :
원감국사의 행다법은 팽다법에서 점다법 시대가 개막된 시기에 살면서도 특이하게 팽다법점다법전다법을 다 사용해서 차를 끓여 마셨다. 백련암진각사에서는 팽다법으로 질화로에 돌솥을 올려놓고 가루차를 끓여 마셨으며, 때로는 청자 찻잔에 눈같이 하얀빛이 나는 다유(茶乳)를 가득 피워서 마셨으며, 또는 자순차를 다관에 울궈서 마셨다. 이 자순차는 잎차로서 전다법으로 차를 달여 마신 것이다.


해 설 :
원감국사의 차생활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즐기었으며,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여 산속에 홀로 지내며 몸과 마음을 하늘에 맡기었다. 산중락(山中樂)이나 산거(山居)시에 보면, 국사의 천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살림살이에서도 알 수가 있는데, 가진것이라고는 {한 발우의 밥과 한 쟁반의 나물, 한 병의 물과 한 솥의 차, 지팡이 하나와 방석하나}로 산중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그 뿐 아니라 차생활을 통해서 터득한 경지를 싯구로 남기었는데, 간명한 싯구에 등장하는 새로운 차용어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은 다유(茶乳), 다연(茶煙), 다응(茶凝), 다려(茶侶), 차칠구(茶七甌), 엄차(淹茶) 등이다.

다 구 : 생활차 다구
풍 로 : 벽돌화로(塼瓦爐) 질화로(瓦爐)
탕 관 : 돌솥
찻 잔 : 청자찻잔, 구(甌), 완(椀)
차 : 엄차(淹茶), 자순차, 산차
차 통 : 청자
물 병 : 청자
다 마 : 돌맷돌
찻 상 : 나무
다 선 : 동, 은
퇴 수 기 : 청자
차 수 건 :
차숟가락 : 동, 은, 청자
찻잔받침 : 청자
표 주 박 : 청자, 바가지


행다순서
(1) 백련암, 진각사의 팽다법
먼저 암자의 뜰에 질화로를 준비해 두고 불을 피울 준비를 한다. 청자 물병에는 미리 차 끓일 물을 떠다 놓는다.
질화로에 불을 피워 놓고 깨끗이 씻은 돌솥을 화로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물병의 물을 부어 찻물을 끓인다.
떡차는 맷돌에 곱게 갈아서 차통에 담아둔다. 돌솥의 찻물이 끓으면 먼저 표주박으로 끓은 물 한 바가지를 떠내 찻잔에 부어 데운다.
알맞은 양의 가루차를 차통에서 떠내 돌솥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 다시 끓인다.
그 사이에 찻잔을 데운 물을 버리고 차가 익기를 기다린다. 차가 다 익으면 불을 죽이고, 돌솥의 뚜껑을 열고 차를 표주박으로 떠내 찻잔에 따른다.  
차를 찻잔에 따라서 찻상에 받쳐들고 방으로 들어가 원감국사께 드린다. 혼자서 차를 직접 끓인 때는 찻잔을 들고 차 마시기에 좋은 장소를 찾아가 마신다.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솥에 맑은 물을 부어 다시 물을 끓여서 떠내 탕수를 마신다.


(2) 산사의 점다법
산사의 뜰에 차 끓일 준비를 한다. 다구를 갖추고 질화로와 돌솥과 물병과 찻상과 차통들을 준비한다.
화로에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인다. 돌솥의 물이 다 끓으면 표주박으로 탕수를 한 바가지 떠서 찻잔에 붓는다.
청자 찻잔에 다선을 담구어 씻어 낸다. 그리고 찻잔을 데운 물을 버린다.
차통에 들어있는 가루차를 차숫가락으로 떠내서 적당량을 찻잔에 넣는다. 그리고 알맞는 양의 탕수를 표주박으로 떠내 찻잔에 붇는다.
다선을 들어서 찻잔에 넣고 차와 물이 잘 섞이도록 젓는다. 이 때 차가 많고 물이 적으며 진한맛의 차 즉 엄차(淹茶)가 된다.
참선하는 중에 졸음을 쫒기 위해서 원감국사는 엄차를 잘 다려 마셨다.
다선으로 고루 저어서 차가 잘 풀리면 찻잔을 들고 마셨다. 나중에 탕수를 마셔 입안을 가시고, 찻잔을 닦으면 된다.


(3) 자순차의 전다법
질화로에 불을 피워서 물 끓일 준비를 한다. 물병에 찻물을 떠와 돌솥에 부어서 끓인다.
찻물이 다 끓으면 표주박으로 탕수를 떠내서 다관을 데운다. 그리고 찻잔도 데운다.
다관의 물을 버리고 다관에 자순차를 넣고 돌솥의 물을 떠내서 다관에 알맞게 부어 넣는다. 그리고 울궈 나기를 기다린다.
찻잔의 물을 버리고 다관의 차가 다 울궈 나면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이 때 주의할 점은 탕의 온도와 찻잔의 수와, 차를 마시는 자리는 계절과 손님의 수와의 관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행다법
장 소 : 개경의 자택, 모정(茅亭), 계산(溪山), 감로사(甘露寺)
인 원 : 이색, 고승, 유생, 노비, 동자 등
의 식 : 점다법(點茶法), 생활차 행다법
문 헌 : 목은시고, 목은문고
연 대 : 고려 충숙왕 15년(1328)~조선 태조 5년(1396)


의 의 :
목은 선생은 고려말 조선초에 걸쳐 살다간 분으로 나라가 바뀌는 혼란기에서도 굴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차에 달인으로서 차문화를 지켜온 계승자이다. 시기적으로 점다법이 유행하는 때이지만 점다법전다법을 다 행한 사람이다. 가루차도 마시고 잎차도 마셨다. 뿐만아니라 상감청자가 퇴화되고, 사원을 중심으로 새로 일어나기 시작한 분청사기 찻잔선물받아 차를 달여 마셨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계승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해 설 :
이 때의 차문화는 주로 밀려난 문인들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고려의 3은(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과 두문동 72인이 모두 차의 달인 들이다. 차는 원래 무인들보다 문인들이 더 즐겨 마셨고, 이 문인들이 세력권의 중심에서 이성계 일파의 무인들에 의해 밀려나자 산으로 은거하거나 항거하는 사람은 살해를 하여 제거 하였다. 이처럼 밀려난 문인들에 의해서 차 문화는 은둔 문화의 성격을 띄게 되었고, 일부 이성계 일파와 합세한 문인들은 관인계급으로 조선의 차문화를 형성하였다. 목은선생의 성리학을 계승한 김종직 선생의 후진들은 4대사화로 인하여 몰살을 당하면서 다시 산속으로 숨어 들면서 은둔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목은선생의 차문화는 훗날 사림파의 젊은 문인들에게 이어져 한제 이목, 정희량과 같은 차의 달인들이 배출되었다.
또한 목은선생은 불교를 숭상하여 많은 고승들과 교유를 하였으며 평생동안 마신 차가 대부분 사찰에서 공급되었다. 그 때마다 시를 지어 보답하곤 하였는데 현존하는 시문집에는 전체 6,200여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의 분량은 이규보 6,700여편 다음으로 많은 양이다. 하지만 차시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70편을 남겼다.


다 구 : 생활차 다기
탕 관 : 돌솥(石鐺, 石鼎, 小石鼎)
은발우(銀盂), 깨진솥(破鍋)
풍 로 : 질그릇
찻 잔 : 다종(茶鍾) - 계룡산 - 분청사기
다구(茶甌), 명종(茗鐘)
찻잔받침 : 청자, 분청사기
차 : 아차(靈芽茶), 노아차(露芽茶), 연화로(蓮花露), 풍다(楓茶)
차 통 : 청자, 분청
차숫가락 :
찻 상 : 목제
차 수 건 :

행다순서
(1) 점다법
먼저 뜰에 차끓일 다구를 준비해서 가져다 놓는다.
어린 동자를 시켜 영천의 샘물을 길어오게 한다.
노비에게 불을 피우도록 하고 길어온 물을 돌솥에 넣어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에 떡차를 멧돌에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놓는다. 가루낸 차는 차통에 담아 보관한다.
찻상에는 이우량이 보내온 계룡산에서 만든 분청사기 다완과 차통과 차숟가락과 차수건 준비한다. 찻숟가락은 다선 겸용으로 사용한다.
이 때 상감청자가 쇠퇴하고 분청사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계룡산에서는 사원의 스님들이 분청사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돌솥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표주박으로 물을 떠내 다완을 씻어낸다. 다완에 가루차를 넣고 끓은 물을 떠내서 다완에 붓는다.
차숟가락으로 저어서 차가루가 잘 섞어지도록 한다. 고루 다 퍼지도록 젓는다. 이 때 거품이 일어난다.
차의 농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도에 맞춘다. 필요에 따라서 가감을 한다.
차는 손님의 수에 따라서 한잔씩 한잔씩 한다. 순서대로 타서 드린다.


(2) 전다법
찻물을 끓이는 순서는 점다법과 동일하다. 찻물이 끓으면 약간 떠내서 다관에 부어 다관을 데운다.
다관을 데우고 나면 찻종에 부어 찻종도 씻어낸다.
다관에 영아차를 알맞게 넣고 돌솥의 끓인 물을 적당한 양을 떠내서 다관에 붓는다.
잠시 기다리면 다관의 차가 우러내고 우러난 차를 찻종에 나누어 따른다.
찻종에 차를 고루 나누어 따른 다음에 손님에게 나누어 드린다.
이 때 분청사기 다관과 찻종이 사용되었으며, 이미 잎차가 상당히 마셔지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가루차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목은 선생은 차생활을 자유분방하게 하였으며, 스님들과 어울려 차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조선조 빈례때 다례의식
빈례(賓禮)란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로서 주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여 베푸는 의식이다. 조선시대의 빈례는 고려시대의 빈례를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에 그 의식과 절차가 대동소이하다.
조선시대의 빈례의 종류는 공식적인 의식만 모두 여섯가지로
첫째는 조정의 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宴朝廷使儀)이요.
둘째는 왕세자가 조정사신에 연회하는 의식(王世子宴朝廷使儀)이요.
세째는 종친이 조정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宗親宴朝廷使儀)이요.
네째는 인국의 서폐를 받는의식(受隣國書幣儀)이요.
다섯째는 인국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宴隣國使儀)이요.
여섯째는 예조에서 인국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禮曹宴隣國使儀)이다.


   이 가운데 다례를 행한 의식은 조정의 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과 왕세자가 조정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에만 다례를 향하는 기록이 자세히 나온다. 하지만 그 외의 의식에서도 다례를 행했지만 문헌에는 기록이 생략되어 있다. 이 외로 국조오례의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사신에게 베푸는 비공식적인 다례의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든다면 사신이 처음 한성에 도착해서 말에서 내릴 때 베푸는 연회때(下馬宴)와 마지막 떠날 때 베푸는 상마연(上馬宴) 이때에도 모두 다례를 베풀었다. 그밖에 한강을 유람하거나 위로연이 있을때나 기타 거동할 때 마다 성균관에 이르면 성균관에서 다례를 베풀었다. 이와같이 일상적인 일에도 다례를 베풀었는데 이런 다례의식은 국조오례의에 기록되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만 간단하게 소개 되었다.
이처럼 공식적인 다례의식과 비공식적인 다례의식으로 나누어 지는데, 여기에서는 공식적인 다례의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조정 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宴朝廷使儀)을 소개하겠다.
이 의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의식이 다례의식이다. 이 다례의식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의식은 조선 오백년동안 거의 변함이 없이 행해진 다례의식이다.


연조정사의(宴朝廷使儀)의 다례의식
장 소 : 태평관(太平館)
인 원 : 왕과 왕세자, 정사와부사, 신하들.
의 식 : 빈례시 다례의식
년 대 : 조선세종(1418∼1450년)
문 헌 : 국조오례의 권지5, 빈례편
의 의 :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연회를 베푸는 의식때 가장 중요한 의식이 다례의식이다. 모든 의식에 앞서 제일 먼저 행해지는데 이때 차를 올리는 다례의식이 모든 의식의 기준이 된다. 술을 드리는 주례의식도 꽃을 드리는 진화의식도 모두 다례의식과 똑 같이 한다.
그러므로 다례의식은 국제간의 의식 가운데 대표적인 의식 절차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의식에 앞서 행해지므로 그 의식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 되었다.
비공식적으로 치뤄지는 다례의식때에도 주례의식이나 진화의식은 생략이 되어도 다례의식만을 생략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사신일행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다례를 베풀은 기록이 나온다.
해 설 : 우리나라에서 사신이라고 칭하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 일본은 통신사(通信使)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사신에게 베푸는 다례의식은 일본의 통신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직 중국 사신에게만 베푸는 의식이다.
이처럼 중국 사신에게 베푸는 다례의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지는데, 첫째는 공식적인 다례의식이고 두 번째는 비공식적인 다례의식이다. 공식적인 다례의식은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공식행사에 베푸는 다례의식으로 [조정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宴朝廷使儀)][왕세자가 조정사신에게 연회하는 의식(王世子宴朝廷使儀)]때에 행하는 다례의식을 말한다. 이와같은 의식은 세종때 제정된 국조오례의 빈례편에 실려있는 의식이고 두 번째의 비공식적인 다례의식은 사신일행이 처음으로 한성에 도착했을 때 베풀어지는 하마연(下馬宴) 다례의식으로 부터 시작해서 사적으로 베푸는 각종 다례의식성균관 다례의식모화관(慕華館) 다례의식 그리고 떠날 때 베푸는 상마연(上馬宴)다례의식 등이다.
공식적인 다례의식태평관에서만 베풀어지고 비공식적인 다례의식은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필요한 장소에서 베풀어 졌다.


다구 : 다례의식용 다구, 백자다구, 은
다병(茶甁) : 은, 옥
찻종(茶鍾) : 은, 백자, 옥
찻종반(茶鍾盤) : 나무
다정(茶鼎) : 돌, 은
풍로(風爐) : 돌, 질화로
다연(茶碾) : 돌, 나무
다저(茶杵) : 돌, 나무
차(茶) : 떡차, 작설차
차통(茶桶) : 백자, 나무
찻잔받침(茶盞托) : 은, 백자
표주박(茶瓢) : 은, 백자
차숟가락(茶匙) : 은, 동
찻솔(茶拂) : 목재
차수건(茶巾) : 베
물병(水甁) : 은, 백자
다관(茶罐) : 은, 백자


다례의식순서(茶禮儀式順序)
그날 분예빈시(分禮貧寺)는 사자(使者)의 좌석(座席)을 태평관(太平館) 정청(正廳) 동쪽 벽에 서쪽을 향하여 설치한다〔검은 칠을 한 교의(交倚)〕. 액정서(掖庭署)는 전하(殿下)의 어좌(御座)를 서쪽 벽에 동쪽을 향하여 설치하고〔붉은 칠을 한 교의〕, 향안(香案)을 북쪽 벽에 설치한다. 사옹원(司饔院)은 주정(酒亭)을 청(廳) 안 남쪽 가까이에 북쪽을 향하여 설치한다.
전하(殿下)가 태평관(太平館)에 이르러 편전(便殿)으로 들어간다〔하루전에 전설사(典設司)는 왕세자(王世子)의 막차(幕次)를 편전(便殿) 문 밖서쪽에 동쪽을 향하여 설치한다〕.
시각(時刻)이 되면 좌통례(左通禮)는 부복(俯伏)하고 꿇어앉아 외판(外辦)을 아뢰고, 전하(殿下)는 여(輿)를 타고 나서는데 산선(傘扇)과 시위(侍衛)는 평상 의례와 같이 한다. 좌.우통례(左右通禮)는 전하(殿下)를 인도하여 중문(中門) 밖에 이르러서는 여(輿)에서 내린다.
사자(使者)가 문에 나서면 전하(殿下)는 읍양(揖讓)하고, 사자도 읍양한다. 사자는 문 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전하는 문 왼쪽으로 들어가며, 정청(正廳)에 이르러 사자(使者)는 동쪽에, 전하(殿下)는 서쪽에서 사자에게 읍(揖)하고, 사자는 답하여 읍한다. 사자(使者)가 좌석(座席)에 앉으면, 전하(殿下)는 어좌(御座)에 앉는다.
산선(傘扇)을 청(廳) 밖 서쪽 가까이에 벌여놓고, 모든 호위(護衛)하는 관원은 좌석(座席)의 뒤에 벌여 서며, 승지(承旨)는 모든 호위(護衛)하는 관원의 앞 남쪽 가까이에 부복(俯伏)하고, 사관(史官)은 그 뒤에 위치한다. 대의장(大儀仗)을 뜰의 동.서쪽에 벌여 놓고, 군사(軍士)를 계상(階上) 및 뜰의 동.서쪽, 안과 밖의 문에 모두 도식(圖式)과 같이 벌여 세운다.
사응원 제조(司饔院提調) 한 사람은 다병(茶甁)을 받들고, 한 사람은 차종반(茶鍾盤)을 받들고 같이 들어가 주정(酒亭)의 동쪽에 선다[찻잔을 든 사람은 서쪽에 선다]. 제거(提擧) 두 사람이 과반(果盤)을 받들되 한 사람은 정사(正使)의 오른쪽 북쪽 가까이에서 남쪽을 향하여 서고, 한 사람은 부사(副使)의 왼쪽 남쪽 가까이에서 북쪽을 향하여 서며[사자(使者)가 많더라도 부사 이하의 과일은 모두 왼쪽에 둔다]. 제조(提調)는 과반(果盤)을 받들고 전하(殿下)의 오른쪽 남쪽 가까이에서 북쪽을 향하여 선다.
제조는 찻종에 차(茶)를 받아[제조가 차를 따른다.]끓어 앉아서 전하(殿下)에게 울리고[찻잔을 올리려고 할 때 전하는 어좌(御座)에서 일어나 약간 앞으로 나와 서고, 사자(使者)도 좌석에서 일어나 약간 앞으로 나와 선다. 주례(酒禮)도 같다.] 전하(殿下)는 찻잔을 들고 정사(正使)앞으로 나아가 차(茶)를 올리며, 정사는 찻잔을 받아 일시로 통사(通事)에게 준다. 제조(提調)는 또 찻잔에 차를 받아 끓어앉아서 전하(殿下)에게 올리고, 전하는 찻잔을 들고 부사(副使) 앞으로 나아가 차를 올린다. 부사는 찻잔을 받고, 전하는 약간 물러난다. 제조(提調)는 또 찻잔에 차를 받아서서 정사(正使)에게 올리고, 정사는 찻잔을 들고 전하(殿下) 앞으로 나아가 차를 올린다[제조는 물러나 주정(酒亭) 뒤로 해서 주정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는다. 주례(酒禮)도 같다.] 전하는 찻잔을 받아 든다. 통사(通事)는 임시로 받았던 찻잔을 서서 정사(正使)에게 올리며 정사는 도로 찻잔을 든다. 사자(使者)는 좌석에 앉고, 전하(殿下)는 어좌(御座)에 앉아 차(茶)를 든다. 제거(提擧)는 각각 사자 앞으로 나아가 서서 찻잔을 받고, 제조(提調)는 전하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서 찻잔을 받아들고 모두 다반(茶盤)에 도로 놓아 갖고 나간다.
이에 앞서 차(茶)를 들면 제거(提擧)는 각각 서서 사자(使者)에게 과일을 올리고는 도로 반(盤)을 들고 나간다.
잠시 뒤에 제거(提擧) 두 사람은 주정(酒亭)의 동·서쪽으로 나누어 서고, 제조(提調) 이하는 주정의 뒤에 벌여 선다.
전악(典樂)은 가자(歌者) 및 금슬(琴瑟)을 거느리고 동·서쪽의 계하(階下)에 들어와 선다. 풍악(風樂)이 울리면 사옹원(司甕院) 관원 네 사람이 각각 진어(進御)할 술그릇을 받들고 계하(階下)로 나아가 북쪽에 향하고 서고, 제조(提調) 네 사람은 계상(階上)으로 올라와 선다. 풍악이 그치면 모두 앉는다.
제조(提調)는 모두 주정(酒亭)의 뒤로 물러나 선다.
제거(提擧) 두 사람은 각각 과반(果盤)을 받들고 사자(使者) 앞으로 나아가고, 제조는 과반을 받들고 전하(殿下)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 차(茶) 올릴 때의 의례(儀禮)와 같이 한다. 과반을 올리려 할 때 풍악이 울린다[곡(曲)과 춤은 그때 품지(稟旨) 한다.] 제조(提調)는 잔에 술을 받아〔술 따르는 것은 모두 제거(提擧)가 한다.〕꿇어 앉아서 전하(殿下)에게 올리고, 전하는 잔을 받아 정사(正使) 앞으로 나아가 읍(揖)하고 제 1의 잔 술을 올린다. 정사는 읍하여 답례(答禮)하고 잔을 들고 부사(副使)에게 읍하고, 부사는 읍하여 답례한다. 또 전하를 향하여 읍하면 전하는 읍하여 답례하고 도로 잔대(盞臺)를 든다[뒤에도 이와 같이 한다.] 정사(正使)가 마시면 제조(提調)는 나아가 꿇어 앉아 빈 잔을 받고, 정사가 읍하면 전하는 읍하여 답례한다. 제거(提擧)는 과반(果盤)을 서서 정사(正使) 앞에 올린다[사자(使者)가 마실 때마다 과일을 올린다]. 제조(提調)는 또 잔에 술을 받아 꿇어앉아 전하(殿下)에게 올리고, 전하는 잔을 받아 읍(揖)하고 술을 올린다. 정사(正使)는 읍하여 답례하고, 잔을 받아 도로 전하(殿下)에게 올린다. 전하는 잔을 받아 부사(副使)에게 읍(揖)하고, 부사는 읍하여 답례한다. 또 정사(正使)에게 읍하고 정사는 읍하여 답례하고 도로 잔대(盞臺)를 받는다. 전하(殿下)가 술을 들면[전하가 술을 들 때마다 제조(提調) 이하는 모두 꿇어앉는다] 제조(提調)는 나아가 꿇어앉아 빈잔을 받는다. 전하고 읍(揖)하면 정사(正使)는 읍하여 답례한다. 제조는 과반(果盤)을 꿇어앉아 전하(殿下) 앞에 올린다[전하(殿下)가 술 들 때마다 과일을 올린다.]. 제조(提調)는 또 잔에 술을 받아 꿇어앉아서 전하(殿下)에게 올리고 전하는 잔을 받아 읍(揖)하고 술을 올린다. 정사(正使)는 읍하여 답례하고 잔을 받아 마신다. 제조는 나아가 꿇어앉아 빈 잔을 받는다, 정사가 읍하면 전하는 읍하여 답례한다. 제조(提調)는 잔에 술을 받아 꿇어앉아서 전하(殿下)에게 올리고, 전하는 잔을 받아 부사(副使) 앞으로 나아가 위 의례(儀禮)와 같이 예(禮)를 행하고 전하(殿下)만은 술을 청하지 아니한다] 약간 물러나 선다. 제조(提調)는 잔에 술을 받아 꿇어앉아 전하(殿下)에게 올리고, 전하는 잔을 받아 읍(揖)하고 정사(正使)에게 술을 올린다[때에 따라 정사(正使)가 행하기도 한다]. 정사는 읍하여 답례하고 잔을 받아 마신다. 제조는 나아가 꿇어앉아서 빈잔을 받는다. 정사가 읍하면 전하(殿下)는 읍하여 답례한다. 사자(使者)는 좌석에 앉고 전하는 어좌(御座)에 앉으며, 풍악은 그친다.
제조(提調) 두 사람이 찬안(撰案)을 맞들고 올리려 할 때 풍악이 울리고, 전하(殿下)는 정사(正使) 앞으로 나아가 찬안(撰案)을 올리며, 제조(提調)는 꿇어앉아 올리는 일을 돕는다. 정사(正使)는 읍(揖)하고 전하(殿下)는 답하여 읍한다. 부사(副使) 앞으로 나아가 찬안(撰案)을 올리는 일도 위 의식(儀式)과 같이 하고 전하(殿下)는 어좌(御座) 앞으로 돌아와 선다. 제조(提調)는 또 찬안(饌案)을 들어 올리고, 정사(正使)는 전하(殿下) 앞으로 나아가 찬안(饌案)을 올리며 〔부사(副使)가 따른다〕 제조(提調)는 끓어앉아 올리는 일을 돕는다. 전하(殿下)가 읍(揖)하면, 사자(使者)가 답하여 읍하고 좌석(座席)에 앉고, 전하(殿下)는 어좌(御座)에 앉으며 풍악은 그친다.
집사자(執事者) 세 사람이 각각 화반(花盤)을 받들고 청(聽) 밖으로 나아가면, 사옹원(司饔院)의 관원(官員) 두 사람이 화반(花盤)을 전하여 받든다. 풍악(風樂)이 울리고, 사자(使者) 앞으로 나누어 나아가면 통사(通事)가 꽃을 올린다. 근시(近侍)는 화반(花盤)을 전하여 받들고 전하(殿下) 앞으로 나아가 끓어앉고, 내시(內侍)는 끓어앉아 꽃을 올린다〔통사(通事)와 내시(內侍)는 일시(一時)에 올린다〕악은 그친다.




김시습(金時習)의 행다법
장 소 : 장사, 금오산, 래소사 등
인 원 : 김시습, 준장로 외 다수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문 헌 : 매월당집(梅月堂集) : 차시 72 수
연 대 : 1435(조선, 세종 17년)~1493(성종 24년)
의 의 :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처지로 일생을 풍운아로 살다간 매월당은 차에 대해서는 달인이었다. 억메이기를 싫어한 사람에게는 차 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격식을 싫어하였기에 그의 행다법은 모두가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생활차요, 그 방법 또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파격적인 행다법이 땅화로(地爐)에 차 달이는 방법을 창안해 내었다.
이 땅화로 행다법은 훗날 일본승 준 장로에 의해서 일본땅으로 건너가 초암다류를 이루었고, 이 초암다류는 일본 최고의 차류파인 우라센께의 기본 행다법이 되었다.
해 설 :
매월당은 일생을 불우하게 보냈다. 어려서는 신동으로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타고난 성품이 의를 좋아하고 불의에 휩쓸리지 않아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방랑자가 되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시(詩)와 차(茶)가 따라 다녔다. 어느 한곳에 정을 붙이기를 싫어하여 늘 바람처름 떠돌아 다녔다. 잠시 마음을 잡는가 싶으며, 그는 어느새 낮선 땅을 헤메고 있다.
그런 그의 풍운아적 기질 때문에 그의 행동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써의 재질은 뛰어나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호방하고 활달하며 뚸어넘고 걸림이 없음으로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욕을 보이곤 했다. 그 상대가 일국의 정승이거나 판사이거나를 막론하고 그에게 걸리기만 하면 봉변을 당했다. 이런 반항아적 기질 때문에 항상 격식을 부정하고 체제를 부정하고 파격적인 행동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차 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당시에 유행을 하던 점다법을 곧잘 부정하고 제멋대로 차를 달여 마셨다. 잎차이던 떡차이던 가리지 않았으며 다기도 그때 그때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했으며 간단한 차 다리는 기구는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의 행다법은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차밭을 가꾸고 추위를 막기 위해 차밭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차를 따서 작설차를 만들어 마셨다. 그리고 손님이 찾아오면 항상 차를 달여 대접하고 시를 지어 주었다. 그래서 차시가 현존하는 것만도 72수나 된다.


다 구 : 생활차 다구, 점다용 다구
풍 로 : 땅화로(地爐), 다조(茶竈)
탕 관 : 돌솥(石鼎), 다당(茶鐺), 철병(鐵甁)
향 로 : 옥향로(玉爐), 질향로(瓦爐)
다 관 : 소관(小罐), 쇠다관(鐵罐)
차 : 황금차(黃金茶), 작설차(雀舌茶), 용봉단(龍鳳團), 감차(甘茗)
찻 잔 : 분청사기 다완, 옥찻잔, 백자 찻잔
찻잔받침 : 백자, 분청, 옥 찻잔받침
다 마 : 돌 절구, 멧돌
물 병 : 분청다병
차숟가락 : 동, 은, 청자
차숟가락 :
차 통 : 분청
차 수 건 :
차 상 : 나무
다 선 : 동, 대나무
연 료 : 대나무


행다순서


(1) 점다법
뜨락에 차 다릴 준비를 한다. 다구를 갖추어 놓고 풍로에 불을 피우고 물병에 물을 길어온다.
돌 솥에 샘물을 부어 넣고 불을 땐다. 이 때 대나무나 솔가지로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사이 떡차를 멧돌에 갈아 차통에 담아 놓는다.
찻상에는 선물받은 다구들이 가즈런히 놓였다. 옥찻잔이며, 분청사기, 백자 찻잔 들이다.
이 때는 분청사기가 최고로 반전한 시기라서 분청사기 다완이 사랑받던 때이다.
더욱이 문화적으로 중국풍을 배척하고 새로운 민족 문화가 꽂피우던 때라서 우리적인 요소가 강하게 표출되던 시기이다.
차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직접 차를 재배하고 차잎을 따서 손수 차를 만들었다.
돌솥의 찻물이 끓으면 한 바기지를 떠내서 다완에 부어 씻어낸다. 다완에 가루차를 넣고 끓은 물을 떠내서 다완에 부어 가루차와 섞는다.
다선으로 저어서 차를 고루 섞는다. 이 때 작은 거품이 생긴다.


(2) 전다법
찻물을 끓이는 방법은 점다법과 동일하게 하면 된다.
찻물이 끓으면 한 바가지를 떠내서 다관에 부어 다관을 데운다.
다관 데운 물을 찻잔에 나누어 따르고 다관에 작설차를 적당량 넣는다.
다관에서 차가 우러나는 동안 찻잔을 데운물을 씻어낸다.
다관에 차가 적당히 우러나면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찻잔에 고루 나누어 따른 차를 손님에게 드린다.
매월당은 작설차를 손수 재배하고 차잎을 따서 만들어 마셨다. 그러므로 점다법시대에도 잎차를 즐겨 마셨으며 이 때 작설차도 잎이 어지간히 자란 것을 따서 차를 만들었던 것 같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행다법
장 소 : 다산초당, 보은 산방 품석정
인 원 : 다산, 윤동 외 제자들, 초의, 혜장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문 헌 : 여유당전서, 다암시첩, 사경첩, 차시 47편
연 대 : 1762년(조선 영조 38)~1836년(헌종2년)
의 의 :
실학자로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차생활은 다분히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면서 풍류적인 멋이 있었다. 다산 초당의 뜰 앞에 자그마한 차 부뚜막(다조)을 만들어 놓고 솔방울을 주어다 불을 지펴 돌솥에 차를 끓이는 장면은 한 폭의 실경 산수화이다. 더욱이 나이 어린 제자 윤동은 차 끓이다 말고 졸고 늙은 스승은 시를 짓는다. 때로는 차를 달여 마시며 연못가를 배회하고 몸에 든 병마는 차를 마셔 물리친다. 한편의 걸명소는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는데 옥고와 형벌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차로서 달래는 장면이 이채롭다. 다산 선생에게 차는 약이요 때로는 말없는 벗이었다. 이러한 차생활이 꺼져가는 조선조 말기에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다시 잇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해 설 :
다산 선생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수도하고 있는 연담유일대사를 찾아가 하룻밤을 같이 지내면서 차를 얻어 마신 일이 처음 차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혜장선사를 만나 차 대접을 받고 나서 차생활에 불이 붙었다. 실로 강진으로 유배를 간지 4년(1804)만의 일이다. 그해 겨울은 혜장선사의 배려로 고성사의 서쪽 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되었다. 이곳에서 다산선생은 그 유명한 걸명소(乞茗疏)를 지어서 혜장선사에게 보낸다. 걸명소란 차를 구걸하는 글이다. 그 글에서 몸에 든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삼고 또 때로는 즐겨 마시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시작된 차생활은 초의선사를 만나면서부터는 그 격조가 자못 높아져 풍류의 멋이 한껏 더해 졌다.
다산 초당의 뜰 앞에 흙과 돌멩이로 자그마한 다조를 만들어 놓고 매일같이 차를 끓여 마셨으며, 시를 짓고, 연못을 만들고 기이한 형상을 한 괴석들을 모아다가 배치하고 난을 기르고 잉어를 키우며, 꽃을 가꾸고 약천을 팠다. 이는 다산선생의 차생활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훗날 유배지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는 제자들과 함께 다신계(茶信契)를 조직하고 계목을 지었으며 그 절목에 보면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차생활 할 수 있도록 다산초당의 주위에 있는 차나무에서 차잎을 따 잎차와 떡차를 만들어 보내라고 하였으며 시를 지어 함께 보내라고 하였다. 이는 차를 통한 스승과 제자의 정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다 구 :생활차 다구, 떡차용 다구
다 조 : 차 부뚜막, 뜰에 설치
탕 관 : 돌솥(石鼎)
다 관 : 백자, 옹기, 은병
찻 잔 : 백자, 청자, 찻종, 다구
차 : 잎차, 떡차, 초의차, 혜장차, 작설차, 엄다(淹茶), 소용단(小龍團)
찻잔받침 : 백자, 나무
물 병 : 백자, 옹기
차숟가락 : 놋쇠
차 통 : 백자, 옹기
차 수 건 :
차 상 : 나무
연 료 : 솔방울


■ 행다순서
(1) 전다법
뜰에 있는 다조에 약천의 물을 길어다가 부어 넣는다. 돌솥은 깨끗이 씻어내고 차 끓일 물을 넣는다.
뒷산에서 주어온 솔방울로 불을 지핀다. 차 끓이는 일은 제자 윤동이 도맡아서 했다.
다조에서 물이 끓는 사이에 다관과 찻잔 등을 깨끗이 씻어서 다산초당의 마루에 올려놓는다.
다조의 물이 끓으면 탕병에 물을 떠내어 담아 가지고 초당마루로 올라간다.
마루에서 차상의 다관에 물을 부어 다관을 데우고 찻잔도 데운다.
다관의 물을 버리고 차를 넣고 탕수를 부어 차를 우린다.
차가 우러나면 찻잔의 물을 버리고 찻잔에 차를 나누어 따른다.
찻잔에 따른 차를 다산선생에게 드린다. 이 때 다른 제자들은 선생께 드린 뒤에 나누어 마신다.


(2) 팽다법
뜰에 있는 다조의 돌솥을 깨끗이 씻어서 올려놓고 약천의 물을 떠다가 부어 끓인다.
돌솥의 물이 다 끓으면 떡차 한 덩어리를 넣고 뚜껑을 덮고 다시 끓인다.
떡차는 가루를 내지 않고 그대로 덩어리로 넣어 끓인다.
선말기에 해남, 강진 일대에서는 떡차를 많이 만들어 마셨는데, 덩어리 차를 그대로 돌솥에 넣어 끓여 마셨다.
너무 오래 끓이면 맛이 쓰기 때문에 알맞게 우러날 정도로 끓인다.
차가 다 끓어서 익으면 표주박으로 차를 떠내서 찻잔에 고루 나누어 따른다.
차를 다산 선생께 가져다 올리고 나머지 차는 제자들이 나누어 마신다.
이 때 차가 진하게 우러나 맛이 쓰고 떫은 차를 엄차(淹茶)라고 하였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행다법
장 소 : 예산 생가, 과천 별저, 대정 적소, 용호백로정(蓉湖白露亭), 죽로지실
인 원 : 추사, 제자들, 초의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문 헌 : 완당전집, 영해타운, 유물, 차시 17수, 서간문
연 대 : 1786년(조선 정조 10)~1856년(철종7)
의 의 :
조선조 후기에 문예부흥을 도모했던 삼궐 중에 한사람으로서 일찍이 청조 문화에 눈을 떠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들여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고 손수 앞장서 실천하는데 한 생애를 바쳤다.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 보다 학문연구와 새로운 문화를 정립하는데 더 열중이었으니, 그의 한 생애가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래서 청조문화를 유입하여 실사구시학과 금석학을 정립시켰으며 이러한 학문을 바탕으로 서법예술을 승화시켰고, 다도의 정신세계를 체득하였으며, 신문화운동을 일으키는 주역이 된 것이다.
차 생활 역시 중국풍과 조선의 다풍을 함께 체득하고 있었는데, 중국다기와 중국 차는 청나라의 여러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선물 받은 것들이다. 그리고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통역관으로 중국에 드나들면서 가져다 준 것들이다. 그리고 조선의 차는 평생의 지음이 된 초의선사의 차이다. 초의선사의 차를 받아 마시면서 동다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우리 차문화 중흥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 부었다. 제주도에 유배를 갔을 때는 차나무를 옮겨 심어 손수 재배하고 차도 만들었으며 제자들을 받아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이 대부분 중인들이라는데 추사의 인본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해 설 :
추사 선생은 24살 나이에 부친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에 들어가 반년 동안 머물다 귀국하는데 이 때 청나라의 이름난 선비들과 어울려 차 생활을 시작한다. 쌍비관(雙碑館)에서 완원(阮元)에게 용단승설(龍團勝雪)차를 얻어 마신 뒤로 완원의 격조 높은 인품과 차생활에 반해 귀국한 뒤에 스스로 자호하기를 [승설학인(勝雪學人)] 또는 [고다암(苦茶庵)] [고다노인(苦茶老人)]이라고 했다. 이처럼 추사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청조의 새로운 학문에 빠져 있을 때 초의선사를 만난다. 함께 몇해 동안을 지내는 사이에 우리나라의 차와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이루어진 것이 금석문의 고증과 집대성이다. 추사선생의 차 생활은 이처럼 처음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되었지만 후에는 초의선사의 영향을 받아 우리 차에 깊이 탐닉하게 된다. 그래서 차의 감별하는 안목이 매우 높았으며 폭넓은 경험과 다양한 체험이 급기야는 초의선사의 차의 품격을 왈가왈부할 만큼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추사가 팽생동안 좋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차와 선과 서예일 것이다. 그래서 말년에는 선에 몰두하여 차와 선이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렀다. 그 산물이 초의 선사께 써서 보내준 [명선(茗禪)]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이다.


■ 다 구 :생활차 다구, 떡차용 다구, 중국다기
다 조 : 차 부뚜막, 죽로(竹爐)
탕 관 : 돌솥(石鼎), 다로(茶鑪)
다 관 : 백자
찻 잔 : 백자, 청자
차 : 차, 떡차, 용단승설, 쌍계사차, 초의차, 건주차
찻잔받침 : 백자, 나무
물 병 : 백자, 옹기
차숟가락 : 차측(茶則)
차 통 : 백자
차 수 건 :
차 상 : 나무
샘 물 : 관악산 샘


■ 행다순서
(1) 전다법
죽로에 관악산의 맑은 샘물을 급히 길어다가 다기들을 깨끗이 씻고, 돌솥에 물을 부어 찻물을 끓인다.
초의선사가 보내준 새차를 꺼내 차 다릴 준비를 한다. 차는 떡차와 잎차가 있는데 잎차를 주로 달여 마셨다.
죽로에서 물이 끓으면 한바가지 떠내서 다관과 찻잔을 깨끗이 행구어 내고 데운다.
죽로의 돌솥에서 끓은 물을 떠내 다관에 부어 넣고 차도 함께 넣는다.
다관에서 차가 우러나면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찻잔에 물은 먼저 버린다.
추사선생은 혼자서 손수 차 끓이기를 좋아하여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달여 마셨다.
더욱이 초의선사가 보내준 차는 직접 끓여서 품평을 하고 꼭 선사께 알려 주었는데, 매양 불기운이 지나쳤다고 지적하였다.

(2) 팽다법
초의선사가 보내준 떡차와 다구를 뜰과 마루에 챙겨 차 끓인 준비를 한다.
불을 피우고 샘물을 골라 좋은 샘물을 길어다 사용한다. 추사선생은 물맛을 매우 잘 알아서 매번 좋은 물을 골라 사용했다.
과천 관악산의 샘물이 일지암의 유천과 서로 우열을 다툴 것이라고 하며 함께 시음해 보고자 한다.
떡차는 가루를 내지 않고 덩어리 채로 탕관 속에 넣어 끓인다.
찻물이 돌솥에서 다 끓으면 차 달일 물만 남기고 떠내서 찻물을 조절하고, 그 속에 떡차 한 덩어리를 넣는다. 다시 뚜껑을 덮고 잠시 끓인다.
차가 다 끓어지면 찻잔에 데운 물을 버리고 표주박으로 차를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차를 오래도록 끓이면 맛이 쓰고 떫으며, 알맞게 끓여야 향기롭고 맛이 있다.
찻잔에 따른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품평을 한다.
추사 선생은 떡차보다 잎차를 좋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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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자 註 : 윗글 본문의 "한국전통행다법"에 기록된 각종 행다법 중에서 팽다법(烹茶法)은 자다법(煮茶法)과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그대로 두어도 무방할 듯이 보이나, 전다법(煎茶法)은 포다법(泡茶法) 또는 충포법(冲泡法)으로 수정하는 것이 한국 전통다법을 정립하기 위한 올바른 길로 여겨지며, 나아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각종 다서(茶書)들에 의거한 표준적인 다법분류를 적용하는 방편이 될 것이다. 


  전다법(煎茶法)이 차를 우러내는 포다법 또는 충포법을 대신하여 사용하는 관습은 대일항쟁기에 조선총독부에서 각종 학교에 시행한 일본식 다도교육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러한 용어관습이 일본식 다도교육의 잔재임을 인식한다면, 광복 후 70여 성상이 지나도록 이를 바로 잡지 못하고 있음은 한국 선인 다인(茶人)들에게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옛 다서(茶書)나 시문(詩文)에서 나타나는 자다법(煮茶法)은 육상저 옹이 "다경(茶經)"을 저술하기 전 시대인  한,위,육조시대 때 차가 약용,음료용 겸용으로 사용되던 시기에  잎차와 병차(餠茶)를 차솥, 차병(茶甁) 등에 달여서 마시던 행다법에 해당하는 다법(茶法)이고,  전다법(煎茶法)은 육우 이후의 성당(盛唐)시대에 유행하던 가루차를 달여서 마시는 다법이므로 이를 잎차를 우려마시는 일본식 전다법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 남부지방에서는 경인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청태전(靑苔錢), 돈차(錢茶) 등 떡차(餠茶)나 작설차류의 잎차(散茶)를 만들어서 약용, 음료용을 겸하여 육우 이전의 자다법(煮茶法)과 육우 시대의 전다법(煎茶法)으로 차를 진하게 달여서 마셨던 팽전방법(烹煎方法)의 기록과 증언들이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 茶  宗   謹 書 -




   *** 追 記 :  위의 "전재자 註"에서 최근 중국 바이두에서 검색한  백도백과(百度百科 : 위키 자료)를 토대로 하여, 한위육국(漢 魏 六國) 시대의 자다법과 육우 <다경> 저술 이후인 성당(盛唐) 시대의 전다법으로 분류하는 것을 충실하게 따랐으나, 육상저 옹의 <다경>을 다시 살펴본 결과 <다경> 사지기(四之器)에서 범자수일승(凡水一升 : 보통  달인 물 한되에)"로 달일 자(煮)자가 한 차례 나타나고,  오지자(五之煮)에 "발자이재자지(餑者以滓之 : 발餑이란 달일 때의 찌꺼기이다)", "제일자수비(第一水沸 : 첫 달인 물이 끓으면)"와 "범자수일승(凡水一升 : 보통 달인 물 한되로)"으로 달일 자(煮)자가 세차례 보이고, 육지음(六之飮)에서는 방시침속(滂時浸俗 : 한때 번진 풍속) 조에 자지백비(之百沸 : 달임은 백번을 끓여서)와 혹자거말(或去沫 : 혹 거품을 거두며 달이는데)과 차유구난(茶有九難) 조에 팔왈자(八曰)와 조간교거비자야(操艱攪遽非也 : 어렵게 따서 급하게 젓고 달이지 않는다)로 달일 자(煮)자가 네차례 나타나 모두 여덟 차례 보일 뿐  달일 전(煎)자는 한번도 보이지 아니 한다. 


   오히려 <다경> 저술 앞시대의 차에 대한 설화와 기록들을 모아서 편찬한 칠지사(七之事 차의 옛일) 광아운(廣雅云) 조에 "욕자명음(欲茗飮 : 차를 달여 마시고자 하면)", 곽박이아주운(郭璞爾雅注云) 조에 "가자갱음(可羹飮 : 국을 끓여 마실 수 있다)", 동군록(桐君錄) 조에 "우파동별유진명차 전음 령인불면(又巴東別有眞茗茶 飮 令人不眠 : 또 파동에는 별종의 진차가 있는데 달여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못자게 한다)", "속중다자단엽 병대조리작차(俗中多檀葉 幷大皁李作茶 : 풍속 중에 흔히 계혈등 잎과 함께 갈매나무 열매를 달여 차를 만드는데)", "자염인단자차음(鹽人但資此飮 : 소금굽는 사람이 다만 이를 마셔 돕는다)", 침중방(枕中方) 조에 "자감초탕세(甘草湯洗 : 감초탕을 달여 - 부스럼을 - 씻고)", 유자방(孺子方) 조에 "이고차총수자복지(以苦茶蔥鬚服之 : 쓴차 - 苦丁茶?와 파뿌리를 달여 복용한다)" 등으로  달일 자(煮)는 여러 차례 나타나나 달일 전(煎)자는 동군록 조에서 단 한차례 보일 뿐이다.

    다만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달일 전(煎)자는 동군록 조에서 "진명차 전음(眞茗茶 飮)이라 하여 차(茶)를 달일 때 단 한차례 쓰였고, 달일 자(煮)자는 차를 달일 때에도 쓰이고 있으며(欲茗飮, 可羹飮)  차가 아닌 다른 약재나 소금을 달이는 용도로도 쓰여  자단엽(檀葉),  자염인(鹽人), 자감초(甘草), 고차총수자(苦茶蔥鬚) 등의 용례로 나타나고 있다.


   <다경> 구지략(九之略 차도구의 줄임)  "기자기(其器 : 달임 그릇)" 조에서 달일 자(煮)자가 한차례 보이고, 십지도(十之圖 차의 그림)에서 "지조 지기 지자(之造 之器 之)에서 달일 자(煮)자가 단 한차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중국 고전다서에서 달일 전(煎)자와 달일 자(煮)자를 서로 혼용하여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하나, 육상저 옹의 <다경>에서 달인 자(煮)의 출현빈도가 월등히 많고 달일 전(煎)자는 칠지사(七之事 : 차의 옛일) 장에서 인용된 동군록의 문장 가운데 단 한차례 쓰인 것으로 볼 때, <다경>의 오지자(五之煮) 장을 포함한 전서(全書)에서 강조하는 다법은 자다법(煮茶法)이라는 것이 일견 더 타당한 분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 바이두의 최근 위키 자료의 다법 분류와는 달리 육우 <다경> 저술 이전에 차가 약용, 음료용 전용으로 쓰였을 시기인 한,위,육국시대의 차 달이는 다법을  <다경>에서 달일 전(煎)자를 유일하게 인용한 동군록(東漢時期 서기 25一220년 刊)의 사용례를 들어 전다법(煎茶法)으로, 육상저<다경>의 핵심부인 오지자(五之煮) 육지음(六之飮) 장을 포함한 전편(全編) 본문 중에서 달일 전(煎)자가 나타나지 않고 달일 자(煮)자만을 한정하여 선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다경(서기 780년 刊)> 저술 이후인 성당(盛唐)시대에 유행하였던 차 달이는 다법을 자다법(煮茶法)이라고 보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중국의 위키 자료 보다 더 진전된 시대별 다법분류법이 될 것이다"라고 판단된다. 

 

   천학비재로 일천한 지식이라 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오니 많은 질책을 바랍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