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라와 금나라 청나라는 같은 뿌리:거란 요 청나라는 동이족

2018. 3. 10. 21:24우리 역사 바로알기

청나라(靑) 황제는 왜 신라(新羅)를 사모하는가

 

 

건륭황제

 

 

1.금나라와 청나라의 조상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後金)을 세운 왕의 이름을 우리는 누루하치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들의 성(性)은 무엇인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府儀)의 성도 당연히 애신각라이다. “애신각라”라는 성에는 무슨 뜻이 숨어있는가? 애각(愛覺) 신라(新羅)라,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신라(新羅)? 삼국시대의 그 신라? 그렇다. 그 신라다. 다름 아닌 그 신라다. 청나라와 신라가 무슨 관계냐고? 다름 아니라 청나라의 왕족과 신라의 왕족은 멀리멀리 가면 그 뿌리가 같다. 사실이냐고? 지금부터 이 이야기에 기 막힌 사연을 따라가 보련다. 너무나 확연한 심증을 드러내는 고대사 X 파일의 첫 장면이다.

2.금은 곧 김(金)
우리가 오랑캐 청나라라고 알고있는 만주족이 세운 첫 나라는 청나라가 아니다. 대진국(발해)이 망한 후 북방 종족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그중 거란(글안)족이 세운 나라가 요(僚)이고 만주족이 세운 나라가 금(金)이다. 나중 명나라를 몰아내고 중원의 패자가 되는 시점에서 이때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라 이름을 후금(後金)이라고 할 정도로 “金”이라는 이름에 집착하는데, 바로 이 金이 “심증”의 근거다.
金이라고 써놓으면 이 성씨를 가진 사람이 워낙 많아서 두 셋 중에 하나는 이 사람일 것이다. 그 이유가 무언가? 신라가 워낙 오래전에, 그리고 오랜동안 나라를 유지했기에 왕족의 숫자가 이리 많아져 이제 와서는 나라 성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남과 북의 보스가 죄다 김씨니 신라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김은 곧 금이다. 금을 잘 다루고 세공을 잘하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김이라 했다.

3.신라는 대륙에서 온 기마족
그런데 만주족의 나라이름이 金이라니! 김씨더러 너는 만주족 출신이다, 라고 하면 아마 열받는 정도가 아니고 이빨을 악물고 명예회복을 하러 덤벼들 사람이 한 둘이 아니리라. 그러나 어쩔 것이랴, 그 말은 사실이다. 신라계 김씨의 조상은 김알지가 대표하는 부족으로, 거세와 석탈해 다음으로 왕족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왕은 세습이 아니라 여러 종족 중 한 종족이 번갈아가며 맡아 하였는데 종국적으로 김씨종족이 왕족을 맡아 나라를 이끌어 나간 것은 우리가 익히 일고 있다. 김알지는 어디서 왔는가? 만주에서 왔지.(물론 종족 연원이라는 의미이며 지역적 의미는 아니다) 신라족을 구성하는 주요한 종족인 김씨족은 우리가 알다시피 신라의 중건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을 지킨 왕조이다. 사실상 신라왕족을 칭하는 김씨족의 근원은 어디일까?

김씨들 스스로도 잘 알지못하는 이 부분은 그저 경주김씨라는 관향명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경주, 서라벌, 금성, 동경으로 칭하는 신라의 도읍이 현재의 경상도 경주라고 명시해놓은 책자나 문헌은 없다! -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어쨌든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도 크게 나쁠 것 없다. 특히 여기에는 상당히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인디아나존스를 능가하는 모험의 세계가 가득하다. 아마 21세기 우리 문화·경제권의 영화소재의 상당부분은 여기서 가져올 수 있으리라.)

4.일요스페셜에서 증거 보여줘!
아닌게 아니라 지금도 이 이야기들은 다큐멘터리의 소재감으로는 아주 적절하다. 특히, 동방과 서방을 마구 넘나드는 기마종족(스키타이족)의 이야기를 꾸밀 때면 빠질 수 없는 것들이다. 카스피해와 흑해부근의 스키타이 유물과 한반도 신라의 그것은 너무 닮아서 러시아 학자들조차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KBS 일요스페셜.97.3) 특히 천마총에서 발굴한 금관(金冠)은 스키타이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줄줄이 달린 곡옥은 지금도 흑해남부와 터키지방에서 발굴되는 스키타이 종족의 그것과 너무 똑같다!
고구려와도 다르고 백제와도 다른 이 금관의 주인공들의 강역은 카스피해 근처다. 이런 추정이 틀리더라도 최소한 동일한 문화를 뿌리고 가지고 그곳과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같은 유물과 같은 문화양식이라는 공통점만으로 그들이 같은 연원이라고 추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완강히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에서 “추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실증이란 문헌에 의지하는 것이고, 결국 문헌을 남기지 못한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동방스키타이족은 “역사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주요 근거로 남용된다. 그것도 주로 식민사학자나 그 후계자들(주로 관변사학자)이 잘 쓰고 우리도 그 바탕에서 교육을 받았길래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살짝 눈을 돌리면 그 유명한 토인비의 가설은 “추정”을 위한 논리틀이다. 이것은 영국사람 것이라 인정해주고 조선사람이 이런 틀을 만들면, 실증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사이비고 도라이고 괴변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더군다나 문헌대신 그 광대한 영역에 흩뿌려놓은 흔적만 보아도 기마종족의 역사가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기마종족을 “페라스키야”라고 불렀다. 말을 탄 야만족이라는 이 뜻은 알고보면 “페라”와 “스키야”의 합성어인데, 페라는 “페르”,“펴라” 등과 같은 어원으로 고대 동,서,중앙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던 “불(fire)” “벌(field)”의 뜻이다. 어떤가? 발음도 비슷하지 않은가? 평양도 이 어원에서 왔고 부여도 이 어원에서 왔다. 더욱더 신기하게는 페르-샤(터키지방의 고대제국)도 똑같은 의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 즉 배화교다. 불을 신앙하는 불종족인 셈이다.

강역이 여기까지 가는데, 당신은 만주족이 그저 만주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서 왔을 것이라 믿는가? 만주족의 또다른 호칭인 “여진(女眞)족”만해도 그렇다. 그 말은 이두문자다. 즉, 한자의 음을 빌려 호칭을 적어놓은 것이다. 이 여진이라는 말이 숙신(肅愼), 조선(朝鮮), 주신(珠申)과 똑같은 뜻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그 말은 “밝은 온누리”를 뜻하는 말로써 마찬가지로 박달(밝은 들), 배달과 같은 뜻이라는 말을 그대는 아시는가?

단지 우리 민족(현재의 대한민국경제권을 형성하는)만이 아니고 고대 기마종족 전체가 밝은 들판을 지향해 뻗어나가는 이념(준 이념이라고 해두자)을 공유했다는 추정을 그들의 흔적에서 찾아내는 것이 그대는 도라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말텐가? 만약 그렇다면, 단언하건데, 그대는 없다.
못난 것은 우리들이지 그 넓은 광역을 누비던 우리 조상들이 아니다. 경주 김씨들은 경주에 정착하기 전만해도 카스피해와 태평양 사이를 오가던 종족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황금족이라 칭하였으며 자칭 황금족들은 반도경주에서만 정착한 것이 아니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대륙과 만주 곳곳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밝다는 뜻을 가진 金이라는 뿌리말을 지켰고 한 가지가 신라(새라불, New Land/Field)를 세웠고, 통일의 전통을 이어받고자한 후금(황금족의 후예)의 누루하치는 중원을 제패했다.

물론 이 때는 이미 우스꽝스러운(북방 기마종족들의 입장에서 보면)“단일민족”으로 전락한 조선은 그들을 오랑캐라며 중국편을 들었지만, 누루하치의 신라사랑은 변함이 없었다고나 할까?

고대사 X파일 첫장면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강조한다. 사실 중국역사의 속을 들여다보면 “상상”을 넘어선 “공상”이 난무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학계의 거두들이 마치 대단한 이론인 것처럼 내세우면 그게 곧 사실의 역사로 추인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 이런 상상력을 내세우면 어떻게 될까?
당장 얼마전 SBS 방송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사람들처럼 “도라이”취급을 받을 뿐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말도 못하나?

아니 아메리카에 들어온 것치고 원래 아메리카적인 것이 있었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거기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유입된 사람들의 인종통합 실험장이었다. 따라서 중국종족의 것만 있었다고 한다면 웃기는 이야기다. 하다못해 그들 종족은 수시로 다른 민족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고대는 물론이고 근세의 청나라도 그렇고 1000년만 넘어가면 몽고족의 원나라가 그렇다. (5호16국시대에서 5胡가 누구인가? 북방 오랑캐 아니던가?)

고대 소아시아와 우랄산맥, 중앙아시아를 마구 휘둘러 다니던 여러 제국의 역사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들은 “코난, 바바리언”이라는 영화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고대 세계사의 수수께끼인 “스키타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분명 오늘 김씨 성을 가진(김알지계열을 말함. 김수로 계열은 다음에 이야기하겠음)사람들의 뿌리라고 믿는다.

바바리언, 스키타이, 야만족이라고? 아니다.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고 아마 스키타이들은 말도 탈 줄 모르는채 한 곳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을 “패쇄적이고 우둔하고 느린 곰탱이들”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혹시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위대한 “말(言)의 문화”가 사라졌다는 자막을 보신 일이 있는가? 사라져버린 X파일을 찾는 것은 그들을 선조로 인정하는 우리들의 몫이다.

독자여러분, 제발 상상력을 죽이지 마시라. 오늘의 비참한 신세 때문에 과거를 상상할 힘을 잃는 것은 미래에 대한 꿈도 버리는 짓이다.

이 상상력만 살아있다면, 제깟 춘추사관과 식민사관을 순간에 깔아뭉갤 무궁무진한 흔적들은 아시아 전역에 살아있다.(최소한 몽고가 지배했던 영역은 스키타이들의 것이다) 때가 되면 죄다 살아나 춤을 출 것인즉, 그 때를 기대해보자!

5.환단고기에 기록이 있다.
안함로의 삼성기전 상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乙未(을미) 漢昭時(한소시)에 進據夫餘故都(진거부여고도)하여
稱國東明(칭국동명)하시니 是乃新羅故壤也(시내신라고양야)라.

을미(BC 86년)년, 한나라 소제때에 고두막한은 부여의 옛서울을 점령하여
나라를 동명이라 칭하니,
이곳은 신라의 옛 땅이다.

 

 

 

 

고조선이 중국사면 청나라는 한국사
중국의 방식으로 중국을 친다

 

김선영 기자 grace@digitalmal.com

 

 

 

조용한 재판장 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다. 판사가 젊은이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이는 대답한다. "아이신지료 푸이(愛新覺羅 傅儀)."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구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중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아이신지료…, 아이신지료…. 한족(漢族)인 판사가 듣기엔 이상하기만 했던 청나라 황제의 성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약 '애신각라'에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면.

 

애신각라의 비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일 뿐이라는 중국의 억지가 10년만의 폭염으로 열이 오를 대로 오른 한국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부흥했던 나라는 모두 중국의 지방 정권일 뿐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토록 가볍다. 그러나 섬뜩하게 위험하다. '섬뜩하게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노리는 것이 단지 고구려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강역은 상당 부분 한반도 북부와 동북아시아로 고구려와 비슷하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고조선도 중국사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 사학자들은 이미 이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고조선은 기자 조선과 위만 조선인데, 기자는 은나라 사람이고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므로 결국 기자-위만 조선은 중국사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엔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고조선(삼조선이라고도 불린다) 역사에서 단군조선 부분을 '공식적 한국사'에서 사실상 배제하고 신화로만 치부해온 국내 사학계의 책임이 크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박탈당한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신라 건국 이후 2천년으로, 강역은 한강 이남으로 좁혀질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현재 논리를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백제도 한국사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중국인'이라는, 고구려 시조 추모(주몽)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는 중국의 논리를 중국 측에 그대로 되돌려 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보니까 예상대로(!) 중국의 공식 역사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한족(漢族) 국가인 송나라를 강남으로 몰아내고 대륙을 지배했던 금나라와 중국 역사상 최강대국인 청나라가 저절로 한국사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조선이 중국사라면, 금나라와 청나라는 한국사에 속해야 한다. 그 건국자들의 뿌리가 한반도 남부라는 믿을만한 사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국 방식으로 친다 1 : 금(金), 청(淸)은 시조가 신라인이므로 한국사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세를 떨쳤던 나라를 묻는 질문에 4위를 차지한 국가가 청나라이다. 그 대단했던 청나라를-엄격히 말하면 후금(후금은 청나라의 전신이다)-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그런데 그의 성은 '애신각라'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뒤에 서술)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성에 '신라'와, 신라 왕족의 성 인 '금(金)'이 포함되어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었지요.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친명배금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는 취지로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청은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 때, 누르하치도 평안도 지방관현에 벼슬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나라로부터 나왔고 금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이덕일 씨도 오 연구원과 의견을 같이 했다.
"중원을 복속하고 한족을 지배했던 곳이 청나라입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때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청은 충분히 조선을 복속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우리 시조는 신라인"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금나라 태조와 정확히 어떤 혈연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중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아들인지 몇 대를 거친 손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인데,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유민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기자는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왕족'이라는 주장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방식으로 친다 2 : 민족개념 새로 짜기

'중화민족'은 사실 비교적 최근(중국공산당 집권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개념이다. 현재 중국의 영토에 사는 모든 민족은 모두 '중화 민족'이란 것. 이 '중화 민족'은 역사학이라기 보다 대륙의 다양한 소수 민족을 포섭하려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인 것이다. 이런 '우악스러운' 중화민족 개념에 대항하려면 우리도 본래의 '단일 민족' 개념을 새로 짜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여진, 거란 등의 북방 민족을 한민족(韓民族)의 테두리와 융화시키는 것일 터이다. 더욱이 이런 방식은 '중화 민족' 개념 보다는 문화, 인종, 생활방식의 유사성 등에서 훨씬 타당성이 크다.

 

그럼 여진 등의 기마 민족과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역사학자 이덕일씨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공을 세운 부하의 4대 후손이 누르하치라고 밝히면서 여진족, 몽골족 등과 조선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정립한다.


"이제 단일 민족 국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성공적으로 감행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여진, 몽골 등의 기마 민족 덕분이었습니다. 동이족이라 불리던 유라시아 반도 동북부는 그렇게 서로 뒤섞여 살았던 것입니다. 고구려 영양왕은 거란족, 말갈족을 거느리고 수나라에 대항해 싸웠고 발해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또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기마 부대원들도 거란, 여진족들이었지요. 심지어 여진족은 조선에 귀화하면 벼슬을 주고 조선인으로 인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혈통이 어찌 되었든 함께 어우러져 살았으니 '우리 민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달회 오정윤씨는 민족개념에 대해 훨씬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동이족(東夷族)'에 거란, 여진, 몽골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거란은 '알'을 의미하는데 부화하기 전 알의 색상은 황금색입니다. 즉, 밝음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배달 민족의 '배달, 박달(밝은 들)'의 의미와 같습니다. 또한 여진은 고려의 '려'와 발해의 원래 이름인 '진'을 합해 여진이라고 한 것으로 몽골어로 밝은 온누리라는 의미에요. 또 몽골인들은 지배자를 '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칸'은 '삼한'의 '한'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동이족들은 똑같이 밝음을 숭배하고 하늘의 자손과 땅의 자손이 만나 천지를 새로 만들 아이들 잉태하는 거의 비슷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동이족에 포함된다는 민족들의 인류·신화학적 공통점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말을 이었다.


"고구려는 전성기 때 몽골, 거란, 여진과 같은 여러 북방 민족을 통치했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이후에도 발해가 이들을 상당수 흡수해 서로 공동체가 되었고요. 교과서에는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말갈족, 즉 여진족이라고 나오지만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한국인들은 발해를 민족사에 포함시키는 교육을 받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것도 조선 후기 학자인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주장한 이후부터였지만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발해를 말갈의 나라로만 여긴 것이다. 그러나 발해가 민족사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려면, 발해를 구성했던 사람들, 특히 말갈인들도 한국인의 조상으로 보는 편이 훨씬 논리적일 것이다.

신채호와 박은식의 북방민족관

여기까지 쓰다 보니 '재야 사학자'들의 목소리만 너무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른바 정통주류의 질책이 우려된다. 그래서 현재 한국 사학계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들이 북방 민족들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잠깐 살펴 보기로 한다.

단재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이렇게 썼다.

 

"동국, 즉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민족은 선비족, 부여족, 지나족, 말갈족, 여진족, 토족의 여섯인데, 이 가운데 단군 자손인 부여족이 다른 5족을 정비하고 동국역사의 주류가 되었다."

 

단재의 대표작인 '조선상고사' 머리말도 읽어 보기로 하자.
"흉노와 몽골을 비롯한 거란. 여진족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우리민족에서 떨어져 나간 시기를 알아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로 신채호를 꼽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는 잊고 살기 일쑤다.

 

이번엔 역사학자이며 언론인이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한 백암 박은식의 소설 '몽배금태조'(꿈 속에서 금 태조를 만나다)를 통해 그의 북방민족관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 소설은 일제 식민지 시절 '무치생'(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이란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서생이 만주로 떠나갔다가 꿈 속에서 금 태조 아골타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이다.

 

"오호라. 우리 조선족과 만주족(滿洲族)은 모두 다 단군대황조의 자손으로 오랜 옛날에는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기도 했고, 또 서로 통하기도 했는데 필경은 통일이 되지 못하고 분리(分離)되면서 두만(豆滿)과 압록(鴨綠)을 경계로 이루어 양쪽의 인민(人民)이 왕래도 하지 못하고 각기 살은 지가 천여년이 되었다. 이에 따라 풍속이 같지 않게 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남같이 생각하면서 다른 종족처럼 되었다. … 대개 대금국의 태조황제는 우리나라의 평주(平州) 사람 김준(金俊)의 9세손이요, 그 발상지는 지금의 함경북도 회령군이고 그 민족의 역사로 말하면 여진족은 발해족의 다른 이름으로 발해족은 마한족(馬韓族)의 이주자가 많은지라 금국(金國)의 역사로 말하면 두만강변의 한 작은 부락으로 흥기하여 단숨에 요나라를 멸하고 다시금 북송(北宋)을 취하여 중국 천지의 주권을 장악하였으니…."

 

이렇게 한탄하는 무치생을 금 태조 아골타가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다.

 

"너는 조선의 유민(遺民)이 아닌가. 조선은 짐의 부모의 나라요, 그 민족은 짐의 동족이다. 짐은 지금 천국에 있는 고로 인간 세상의 일은 직접 간섭하지 않지만 하늘에서 오르 내리는 영명(靈明)이 인간 세상을 감찰하고 있으니 현재 조선민족이 떨어진 경우와 고통스런 정황을 보는 것이 매우 측은한 바가 있으나 하늘은 스스로 싸워 강한 자를 사랑하시고 자포자기한 자를 싫어하시니, 하늘의 뜻이로구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사이에서

기자는 개인적으로 최근 한·중·일 동북아 삼국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민족주의 열풍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아시아컵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중국의 관객들이 보여준 국수주의적 반응과 이에 맞선 일본의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발언("중국인은 민도가 낮아 어쩔 수 없다")은 민족주의가 얼마나 끔찍하고 좀스러우며 혐오스러울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기자는 또한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통일)한국이 '거란, 여진은 우리 민족이므로 그들의 역사적 강역 또한 우리 것'이란 식의 '대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새로운 국가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중국 같은 이웃이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현실적 대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하다 보면 '저항적 민족주의'가 다시 필요한 시기라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주장만 고집하는 것은 '발톱까지 무장한' 패권주의 앞에서 무장을 해제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진보적 시사 종합지 '말' 9월호 편집

 

 

 

 

한민족 상고대륙사를 바로본다! 우리 역사를 반도사관의 국통이 아닌 상고대륙사의 국통으로 다시한번 바라본다!-안원전 님의 글

작성날짜 : 2001-12-09(일)

대륙사로 보면 요는 만주족 금,청과 함께 동이족의 일부다. 지금까지는 반도사의 입장에서 요나 만주족을 이민족화 해서 보았다. 요는 발해를 삼킨 뒤, 동단국이라 이름을 바꾸고 발해사를 지어 요가 고구려의 역사를 이은 것이라 정통성을 주장했다.

실제 환단고기에 대조영때 말갈의 장수 걸사비우와 거란의 장수 이진영과 손을 잡고 병력을 연합하여 크게 당나라 장군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격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말갈이 물길에서 왔고 물길은 읍루에서 왔으며 읍루는 숙신의 후예로 같은 동이의 한 갈래인 거란과 힘을 합해 하이브리드화 하여 진한 이후 완전히 이질화된 지나한(漢)족을 쳤음을 보여준다.(동이-서이-서하-화하-한(漢)족) 반면 발해 당시 거란과 말갈 등의 만주족은 대 한(漢)의 입장에서 동족의식이 서로 있었다.

또 지나대륙의 각종 고대 사서에는 왜를 동이족의 일부로 보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대륙내 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것이 소위 북왜다.


그런데, 요의 역사 속에는 대륙내의 왜 역사를 다룬 왜국흥망사가 있다. 이것이 바로 대륙 남단과 북단 등 광역적으로 벌여져 있던 북왜(남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열도의 왜 개념)다. 동호, 선비, 거란, 만주족, 흉노 등의 동이 제 족의 북방유역을 제외해도 양자강 유역은 전통적으로 동이 9족 및 삼묘족,형오계,백월계 묘요계 등 의 동이족이 살고 있던 근거지로 왜는 동이 제 족의 일부로 함께 살았다.

오히려 대륙사관으로 보면 왜도 우리민족의 하나인데(광개토대왕비문에도 왜가 나오고 임진왜란때는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반도 내륙에서 왜가 출몰한다 왜일까?) 마치 반도사관에 안주해 거란, 만주족을 사갈시하고 이민족화해서 보았듯이 왜를 사갈시하고 이민족화해 보다 보니 백제 패망이후 탯줄을 끊고 독립을 선언한 일본사가들은 한반도 기마민족 도래설을 넘어서서 이러한 대륙내 북왜의 역사를 근거로(거란 몽고지역의 왜와 양자강 이남과 대만의 왜) 일본민족의 서래설(중동슈메르에서 대륙을 거쳐 일본열도로 들어갔으며 기마민족 도래설은 이러한 과정의 하나로 한반도를 거친 것이라며 극복하고 있다)을 말하고 있다. 우습지만 일본 상고사학자들이 대륙내 북왜의 존재를 이용해 서래설의 대륙사를 주장하는 반면 반도사관에 붙잡힌 해방이후 식민사학자들은 대륙에나 있을 상고 고고학적 유물을 반도 내에서만 움켜쥘 줄 알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과도기 상에서 나온 박용숙의 서래설을 이단시할줄 만 알았다.

왜의 역사를 포함시키고 고구려의 맥을 이은 대진국 발해의 역사를 집필한 요와는 달리 정작 고려는 고구려의 뒤를 이었다는 허장성세 이외에는 유득공의 한탄처럼 발해사 조차 쓰지 못한 채 그 실은 신라의 맥을 이었고(궁예가 그렇고 왕건마저 조작의 역사고 그것마저 수없이 개찬된 소위 정인지의 고려사에 의하면 당의 숙종 혈통이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는 요, 금, 청의 역사로 달려가는 엄정함을 보여주었다.(그런면에서 보면 왕조사만으로 볼 때 인종의 송파구 수항단의 3배9고두의 수치와 50만 백성의 선양 포로유수는 고구려 후계에 대한 신라 왕실 후계의 수치와 같은 것이다.)

이는 고려가 명칭상 아무리 고구려의 이름을 이은 것이라 주장해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따라서 요,금을 지나족의 일부로 보는 한(漢)족 사가들은 고구려가 그들 민족의 일부라 주장하여 고구려 강역이 그들 강역이라고 하는 주장을 한다.

물론 대륙사로 보면 그들 거란, 만주족이 동이족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반도 식민사관에 붙잡힌 우리 못난 노예사학자들은 그들을 이방시, 타민족시 한 채 고려가 고구려 후예라는 단선적 근시안적 명분만을 찾다보니 고려 당시부터 지나족에게 혈통을 댄 존주사대주의의 작제건 신화로부터 시작해 이미 한계성을 지닌 고려사의 명분을 합리화하는데만 급급해 정작 대륙사관적으로 요와, 금,청이 우리의 혈통임을 밝히는데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홀했던 것이다.

이제 한(漢)족 사가들이 고구려를 저희들 강역이라 주장한다면 우리는 대륙사관차원에서 요,금,청이 우리 종족임을 밝혀야 한다. 역사바로찾기가 선행되고 역사개혁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대륙사로 보면 그들도 엄연히 동이족이다. 이 점을 바로 서량지,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지나 사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으며 수많은 고서들이 증거하고 있다.

요가 발해를 먹고 동단국으로 바꿔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고려는 정작 명칭만 가졌을 뿐 인 점을 일본의 가시마 노보루가 일역 환단고기 서문에서 북왜 남왜설로 지적한 것이다. 대륙사관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견해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출처 : 성인군자 되는 길
글쓴이 : 뿌리깊은 열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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