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3. 08:36ㆍ잡주머니
- 기사입력 2018-10-25 17:23:03 최종수정 2018-10-25 19:01:51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35) 양왕으로 불리기 원한 장중화(AD347년10월)
동진이 시어사 유귀를 직접 보내 장중화에게 시중, 대도독, 대장군, 독농우관중제군사 및 서평공의 직책을 내렸다. 그러나 내심 장중화는 양왕이라고 불리기 원했다. 심맹을 유귀에게 보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 전량 주공은 여러 세대 진의 충성스런 신하인데
지금은 선족보다도 대우가 못하니 어떤 일인가?
모용황을 연왕으로 책봉하면서
주공(장중화)은 겨우 대장군일 뿐이니
어떤 포상방법을 가지고 충성과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권고하시겠는가?
양왕이 되게 하여 주시지요.“
유귀가 웃으며 말했다.
“ 방금 그대는 실언을 하신 것입니다.
옛적 하은주 시대에 왕이 내린 작위로는 상공만한 것이 없었읍니다.
오나 초가 처음으로 왕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야만인이기 때문에 그냥 못 들은 척 한 것일 뿐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제나라나 노나라가 망령되게 왕이라고 했으면
제후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한 고조가 한신과 팽월에게 왕을 내렸지만
결국에는 다들 목이 날아갔읍니다.
일시적으로 내린 상일 뿐 근본적으로 후대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황제께서는 귀공의 충성을 깊이 헤아리셔서 상공을 내린 것이니
이미 총애와 영광이 지극한 것입니다.
어찌 선비 야만족과 같이 비교할 것이 있겠읍니까?
또 공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 법인데
귀공께서 3대를 이은 결과로 왕이 되셨지만
나중에 동쪽의 호족과 갈족을 평정하고 낙양을 접수하여
황제를 영접하게 되면 무엇으로 덧붙여 줄 수가 있겠습니까?"
할 말이 없는 장중화(전량 경렬왕)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36) 장중화 죽음과 장조의 독단(AD353년11월)
장중화가 병으로 눕게 되었다. 이 때 나이는 스물여섯에 불과했다. 10살짜리 아들 장요령을 세자로 세웠다. 장중화의 서형 장조가 용기, 힘, 재능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몰렸다. 그는 장중화의 총신 조장, 위집과도 의형제 맺었으므로 그야말로 실세 중의 실세였다. 도위 상거가 장중화에게 장조를 내치라고 권유했다. 장중화가 거절하면서 말했다.
“ 장조를 주공(周公)으로 삼아
어린 아들을 보필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요?“
부한의 대승 공훈으로 전량을 위기에서 구한 사애가 뛰어난 능력 때문에 주변의 질시와 참소를 받아 주천태수로 강등되었다. 장중화가 건강할 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주군이 눕게 되자 권력다툼이 수면 위로 나타나면서 충신들이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애가 주군 장중화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 권력을 가진 총신이 일을 멋대로 처리하면
공실이 장차 위태로워지니
빌건대 신이 들어가서 돕도록 해 주십시오.
장녕후 장조와 조장 등의 무리가 장차 반란을 일으킬 것이므로
그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AD353년 11월 10일 장중화가 병이 위독해지자 사애를 징소하여 위장군으로 삼고 안팎의 모든 군사를 도맡게 하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장중화의 조서를 장조와 조장이 숨기고 보내지 않았다. 11월 18일 장중화가 사망하고 세자 장요령이 계승하여 대사마, 양주자사 및 서평공이 되었다. 장조는 조서를 고쳐 자신을 스스로 도독중외제군사로 임명하고서 모든 정치와 군사를 관장했다.
(37) 장조 쿠테타(AD354년 1월)
장조가 스스로 양왕을 자처하면서 연호를 건원으로 고치고 백관을 설치했다. 아들 장태화를 태자로, 동생 장천석을 장녕후로 봉했다. 명백한 반란이었다. 낭중 정기가 장조에게 충간을 올렸다.
“ 무공(장궤) 이후 전량 조정은 대대로 신하의 절개를 지켜왔습니다.
오랑캐에게 대적하고 군사를 매년 일으켰어도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은 것은 공실의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전하의 공훈과 덕이 돌아가신 공보다 높지 않은데 혁명을 꾀하시니
신은 아직 그것이 옳은지 알지 못합니다.
저들 병사와 백성들이 우리에게 귀부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은
오로지 동진 조정을 받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스스로를 높이시면 장차 민심이 떠날 것인데
어떻게 이 한 모퉁이 땅을 가지고 천하 강적을 이기겠습니까?
장조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기를 궐 아래에서 참수해버렸다.
(38) 은호의 축출과 환온의 정권장악(AD354년 겨울)
동진 조정에서는 은호와 형사옹양익상교관팔주제군사 환온이 줄기차게 북벌을 주창하고 있었다. 특히 후조가 내부분열로 흔들리면서 전연에게 멸망하던 AD351년 전후야말로 북벌의 절대 기회라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AD337년 모용황이 세운 전연과 AD351년 건국한 전진의 세력을 지극히 가볍게 본 것이었다. 동진이 전진과 붙은 남전전투(AD354)에서 동진군이 대패한 것을 보면 그것은 명백하고도 남았다. 이 패배를 계기로 은호가 축출되고 환온이 군권을 장악했다.(AD354) 환온은 보,기병 4만으로 강릉에서 재차 북벌에 나섰다.(AD354년2월)
진주자사(이 때에 이미 후조는 멸망했으므로 독립된 상태) 왕탁이 전량 조정에 사신을 보내 알려왔다.
“ 환온이 입관(함곡관 넘어 옴)했습니다.
그는 용병도 매우 잘하고
그 뜻도 깊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점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점치기 어렵다는 말은 환온이 장차 동진의 황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도 품어왔고 또 전쟁에서 이겨서 관중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항복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장조가 한편으로는 왕탁의 건의를 거절하기도 어렵고 또 그가 자신을 배반할 것도 두려워 왕탁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왕탁은 살해음모가 발각되자 군사를 발동하여 동쪽을 정벌한다고 하면서 서쪽으로 도망쳤다가 환온이 철군하자 다시 돌아왔다. 장조는 진주자사 우파와 3천 군사를 보내 왕탁을 공격했다. 의지할 곳을 잃은 왕탁은 11월 전진에 항복했다. 전진 주군 부건은 그를 상서로 삼고 조정에 등용했다.
(39) 포학한 장조 퇴출과 장관 부상(AD355)
장조는 음란하고 옹졸하고 포학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장조가 하주(감숙성 임하)자사 장관을 질투하여 장액태수 색부로 교체하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장관을 호족토벌 부대로 좌천시킨 뒤 역췌와 장령을 보,기병 1만 3천군사와 함께 파견하여 장관을 습격하게 했다. 그러나 장액사람 왕난이 그 계획을 알고 장조에게 권면했다.
“ 이 군사들이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차 전량이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이와 함께 장조의 부도덕한 짓 세 가지를 지적하는 상소를 함께 올렸다. 화가 난 장조는 왕난의 목을 치도록 명령했다. 왕난이 죽기에 이르러 이렇게 예언했다.
“ 내가 죽으면 군사들은 밖에서 패배할 것이고
왕은 안에서 죽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
장조는 왕난의 일족을 참살시켰다. 장관이 그 말을 전해 듣고 군사를 일으켰다. 하주자사로 부임한 색부의 목을 베고 전국에 격문을 띄웠다. 장조를 죽이고 폐위시킨 뒤 장요령을 세우자고 했다. 장조가 보낸 역췌와 장령의 군사가 황하를 건너자 장관이 나가서 격퇴시켜 버렸다. 역췌는 겨우 빠져 나와 홀로 고장으로 돌아왔다. 장조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다.
장조와 사이가 나빴던 효기장군 송혼, 송수 형제도 장조에게 등을 돌리고 장관과 합류했다.
장조는 후환을 없애려고 장요령을 불러 허리를 부러뜨려 죽였다. 송혼의 군사 1만이 고장에 도달했다. 장조는 장관의 동생 장거와 장숭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거와 장숭은 시장거리에 나서서 수 백명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 장조가 무도하여 형님의 대군이 이미 성 동쪽에 도착했소.
장조의 편에 서는 사람들은 삼족을 멸할 것이요. “
그리고 장거와 장숭은 재빨리 나아가서 성 서문을 열고 송혼 군사를 영입했다. 전에 장조를 세우자고 주장했던 영군장군 조장은 죄가 두려워 장중화의 생모 마씨를 불러 전각에 세운 뒤 양무후 장현정을 주군으로 옹립한다고 선언하게 하였다. 역췌는 전각으로 들어가 배반한 조장을 잡아 죽였다. 전각 안에서 장조는 전투를 적극 독려했지만 민심을 잃은 장조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군사에 의해 장조가 피살되고 그 두 아들도 함께 죽었다.
송혼과 장거는 일곱 살짜리 장현정을 대장군, 양주목, 서평공으로 추대했고 장관이 고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장현정을 양왕(전량 경도왕)으로 옹립했다. 그리고 장관 스스로는 사지절, 도독중위제군사, 상서령, 양주목, 장액군공으로 사실상 전권을 장악했다. 송혼은 상서복야가 되었다.
농서에서 군대를 장악하고 있던 이엄은 장관에 불복종한다고 선언하고 동진에 붙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엄을 따랐다. 장관은 우패를 보내 이엄을 토벌시켰으나 서평(청해성 서녕) 위침도 이엄세력에 동참하면서 우패가 크게 패배했다. 장관은 다시 장거를 파견하여 위침을 격파했다. 주천태수 마기도 전량 조정에 반란하면서 위침에 호응했는데 장관이 장요와 왕국을 파견하여 겨우 토벌에 성공하고서 마기를 참수했다. 그러나 이번의 일로 전량의 국세는 크게 훼손되었다.
*** 돈제일주
(豚蹄一酒, tún tí yī jiǔ)
뜻 : 돼지 발굽과 술 한 잔. 작은 물건이나 정성으로 큰 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제위왕(齊威王)」 8년에 초(楚)나라가 크게 군대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침공했다. 위왕은 순우곤(淳于髡)에게 조(趙)나라로 가서 원병을 청해오도록 하면서 황금 백 근과 수레 열 대를 예물로 가져가게 했다. 순우곤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웃자 관의 끈이 모두 끊어졌다. 왕이 물었다.
“선생은 이것을 적다고 생각하시오?”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웃는 데에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없겠소?” “이제 신이 동쪽으로부터 오던 중에 길가에서 풍작을 비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돼지 발굽 하나와 술 한 잔을 놓고 다음과 같이 빌었습니다. ‘높은 밭에서는 채롱에 가득하고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하도록 오곡이여 풍성하게 익어서 집 안에 가득 넘쳐라.’
신은 그 손에 잡은 것은 그렇게 작으면서 원하는 것은 그처럼 사치스러운 것을 보았기 때문에 웃은 것입니다.”
위왕은 황금 천 일(溢), 백벽 열 쌍, 네 마리가 끄는 마차 백 대로 예물을 늘려 주었다. 순우곤이 작별 인사를 하고 조나라에 들어가자, 조나라 왕은 정병 10만과 가죽수레 천 대를 보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초나라는 밤중에 군사를 돌려 철수했다.
(威王八年, 楚大發兵加齊. 齊王使淳于髡之趙請救兵. 齎金百斤, 車馬十駟. 淳于髡仰天大笑, 冠纓索口. 王曰, 先生少之乎. 髡曰, 何敢. 王曰, 笑豈有說乎. 髡曰, 今者臣從東方來, 見道傍有禳田者, 操一豚蹄, 酒一盂. 祝曰, 甌簍滿簍, 洿邪滿車, 五穀蕃熟, 穰穰滿家. 臣見其所持者狹而所欲者奢, 故笑之. 於是齊威王乃益齎黃金千溢, 白璧十雙, 車馬百駟. 髡辭而行, 至趙. 趙王與之精兵十萬, 革車千乘. 楚聞之, 夜引兵而去.)」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온다. 순우곤이 비유를 든 말에서 ‘돈제일주’가 유래하여, 작은 정성이나 물건으로 큰 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용례
큰 사업을 해 보고 싶다면서 그렇게 적은 돈을 투자하려고 하다니. 그렇게 ‘돈제일주’ 해 가지고 어떻게 큰 사업을 일으키고 큰돈을 벌 수 있겠어?
술의 역사는 약 9,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미 맥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디오니소스(박카스)신의 전설이 서려 있는 와인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지중해 연안의 포도산지 곳곳에서 일찍부터 "생명의 물"로 생산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禹王의 딸 의적(儀狄)이 또는 주신 두강(杜康)이 만들었다 하기도 합니다. 우왕이 술맛을 보고는 훗날에 이 맛있는 음식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을 근심하였더니 과연 걸왕이 酒池肉林 하였다가 나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소주는 고려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들어와서 이제는 한국의 세계적 명주가 되어 있습니다.
술은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와 혼성주와 합성재제주로 나뉩니다.
발효주는 곡물이나 과일의 즙을 효모를 이용하여 발효한 술입니다.
발효주는 대개 1~8%의 알코올을 함유하며 함유량이 높아도 12% 정도인데 효모가 생존할 수 있는 최대 알코올 함유량이 13%이기 때문입니다.
증류주는 발효주를 증류하여 알코올 도수를 올린 술입니다.
증류주에 약용 재료를 넣어 몸에 좋다는 약주를 만들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술과 음료 향료를 섞어 마시는 것은 칵테일 혼성주이라 불립니다.
우리나라 술자리에서는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를 맥주와 섞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속취하고 대취하기를 즐겨합니다.
합성재제주는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술로 위스키나 브랜디에 많습니다.
음주에 대하여,
항간에서는 옛날부터 처음에 사람이 술을 마시다,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술은 잘 마시면 약이 되고 잘못 마시면 독이 됩니다.
술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주도를 찾고, 음주예의가 있으며, 술에도 품계가 있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 관계에 흠을 잡히지 않고 친화력을 더욱 증진시키며, 스스로도 즐거운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中國 春秋戰國時代
제(齊)나라에 성은 순우(淳于)요 이름이 곤(髡)이란 신하가 있었습니다.
익살과 다변(多辯)으로 유명했는데 천한 신분 출신으로, 몸도 작고 학문도 잡학(雜學)에 지나지 않았으나 기지가 넘치는 변설로 제후를 섬겨 사명을 다하고, 군주를 풍간(諷諫)하기도 했습니다.
술의 달인이기도 한 그에게 어느날 임금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는가?"
순우곤이 대답하기를
"벼슬에 구품(九品)이 있듯이 술맛에도 구품(九品)이 있습니다."
九品 ------ 임금이나 손위 사람 앞에서 엎드려 마시는 술이 맛없는 구품이요
八品 ------ 공석(公席)에서 돌려 마시는 술이 그 다음으로 맛없는 팔품이며
七品 ------ 제사(祭祀)나 잔칫집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시는 술이 칠품
六品 ------ 술집에서 여럿이 어울려 모사(謀事) 꾸미며 마시는 술은 육품
五品 ------ 주점에서 홀로 마시(自酌)는 술은 오품입니다.
四品 ------ 또 집에서 친구와 대작(對酌)하는 것이 사품이요
三品 ------ 집에서 혼자 마시는 독작(獨酌)이 삼품이며
二品 ------ 벗과 더불어 좋은 경치를 찾아 나누(對酌)는 술이 이품
一品 ------ 아름다운 풍광 아래 홀로 즐기(獨酌)는 술이 으뜸인 일품입니다.
위와 같이 술을 마시는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술맛은 현격히 달라집니다.
그외에 등외로, 내가 예모(禮貌) 없이 아무데서나 인용하는 내가 좋아하는 술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脣酒)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농담으로 또 하나 더 보태면 내가 사랑하는 꽃은, 말할 것도 없이, 말하는 꽃(解語花)입니다.
당나라 현종이 조정 신료들과 태액지 연못에서 만발한 연꽃을 감상하다 그
아름다움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있는 분위기에서 양귀비의 재치있는 능수능란한 응구첩대를 듣고 칭찬하여 한 말이라 합니다.
무릇 하는 일마다 그 방면의 도(道)가 있고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이른바 7주도, 7불고, 7품계라는 주법이 있다 합니다.
* 7 酒道
(1) 술자리에 합석하였으면 적어도 첫잔은 받아서 잔을 잡습니다.
(2) 왼손으로 잔을 주거나 술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3) 왼손으로 잔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4) 술은 손바닥이 천정으로 향하도록 따르면 안 됩니다.
(5) 잔을 받았으면 입에라도 대고 빨리 잔을 돌립니다.
(6) 술잔은 3분의 1 이하로 잡습니다.
(7) 술을 철철 넘치게 따르지 않습니다.
* 7 不顧
(1) 술의 질을 따지지 않습니다.
(2) 술자리를 가리지 않숩니다.
(3) 술 마시는 상대의 연령을 묻지 않습니다.
(4) 슬픔과 기쁨을 넘어 초월합니다.
(5) 집안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6) 밤과 낮을 가리지 않습니다.
(7) 건강을 생각하지 않아야 술이 당깁니다.
* 7 品階
(1) 酒卒 : 술맛도 모르고 벌로 마시며 자기관리도 못합니다.
(2) 酒客 : 술맛은 알지만 많이 마시고 술의 세계를 음미는 못합니다.
(3) 酒家 : 술맛을 즐기며 덕담을 나누고 음미하는 교양인입니다.
(4) 酒愛 : 술의 진수를 알며 풍류를 논할 줄 압니다.
(5) 酒仙 : 술에 달관하여 맛만 보아도 술의 세계에 몰입하는 신선입니다.
(6) 酒聖 : 술을 보기만해도 호연지기의 경지에 이르는 수도자입니다.
(7) 酒神 : 술을 생각만 하여도 호연의 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동탁 조지훈 시인은 워낙 애주가였는데
술을 좋아하는 위인을 아래와 같이 9급 9단으로 나누었습니다.
유급자들은 아마추어 급수이고, 유단자들은 프로 단수라 할수 있습니다.
(1) 부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습니다. ---------------- 9급
(2)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냅니다. ------------------- 8급
(3) 민주(憫酒) --- 술에 취하는 것을 민망해합니다. ---------------------- 7급
(4) 은주(隱酒) ---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 6급
(5) 상주(商酒) --- 무슨 이익이 있을때만 술을 마시는 사람 --------------- 5급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 4급
(7)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 3급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 2급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 ----------- 1급
(1) 애주(愛酒) ---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 주도(酒道). 1단
(2) 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 주객(酒客). 2단
(3) 탐주(耽酒) --- 술의 진경(眞境)을 체득한 사람 ------------- 주호(酒豪). 3단
(4) 폭주(暴酒) --- 주도(酒道)를 수련하는 사람 ---------------- 주광(酒狂). 4단
(5) 장주(長酒) --- 주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 ----------------- 주선(酒仙). 5단
(6)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 주현(酒賢). 6단
(7) 낙주(樂酒) ---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 주성(酒聖). 7단
(8) 관주(關酒) --- 술을 즐거워하되 마실 수 없는 사람 --------- 주종(酒宗). 8단
(9) 폐주(廢酒) --- 술로 인해 다른 세상에 간 사람---------- 열반주(涅槃酒). 9단
또 내가 술자리에서 빼지않고 즐겨하는 이야기 하나를 덧붙입니다.
와신상담의 한 당사자인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칠때 그 지방의 토호 한 사람
이 향기롭고 맛이 좋은 술과 함께 야전 건조식을 바치니 왕은 그 술을 혼자
마시지 않고 강의 상류에 붇고 장병들이 하류에서 마시게 하니 이미 술맛이
나 술향기야 다 떨어졌지만 물결과 더불어 기뻐 높이 뛰며 춤추는 술을 마시
고, 또 그 건조식은 주머니에 넣고 잘게 부수어서 모두가 나누어 먹으니 군사
들의 사기가 충천하여 백천배로 잘 싸워 그 전쟁을 대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출처] 주도(酒道) 10단(段)|작성자 진인사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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