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국가흥망의 교훈#11:바람처럼 사라진 혁련발발 하나라(H)

2018. 10. 30. 05:50잡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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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08-30 17:52:00 최종수정 2018-08-31 12:02:20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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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이사, 전한 유방소하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40) 북위의 1차 유송 공격(AD422-AD423) 

 

   병상에 누워있던 탁발사는 남쪽의 유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이 기회에 유송을 칠 생각이 생긴 것이다. 사실 유유가 장안을 점령했을 때(AD417)만 해도 여세를 몰아 북진할 것이 두려웠던 탁발사는 서둘러 유유와 화친을 맺고 공물을 바쳐왔었다. 그러나 유유가 죽은 마당에 더 이상 화친 따위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유송과의 교빙을 끊고 장안, 낙양, 호뢰(하남성 형양), 활대를 공략할 준비를 갖추었다. 최호가 나서서 강력하게 말렸다. 최호는 약 40년 전 부견이 100만 대군으로 동진을 공격하다가 실패한 비수대전(AD383)의 패배를 상기시키면서 말했다.

 

“ 상사를 틈 타 공격을 하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 성공한다손 치더라도 결코 아름답지 못한 일입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 정중히 조문하시고

  나약한 고아(유의부 지칭)가 

  속발하는 재해를 감당 못하는 것을 보게 한 다음

  천하를 구휼하셔서 의롭다는 명성을 얻으시면 

  강남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 됩니다.

  지금 정벌에 나서셔도 저들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지 않으므로 

  이긴 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강한 신하들끼리 권력을 서로 다투어 변란이 일어나게 한 다음

  군사를 보내면 병사를 지치지 않게 하면서도 쉽게 거둘 수 있습니다.“

 

병상의 북위 주군 탁발사는 이렇게 반문했다.

 

  “ 유유요흥의 죽음을 틈타 후진을 멸망시키지 않았소.   

    나는 왜 안 된다는 말이요?“

 

최호가 정곡을 찔러 말했다.

 

  “ 그것은 요흥이 죽어서가 아니고 

    요흥의 아들이 무능하고 서로 다투어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 강남에는 그런 불화가 아직 없습니다“

 

   탁발사는 듣지 않았다. 군사를 일으켜 해근주기공손표에게 공격을 맡겼다. 남정을 맡은 북위 장수들 사이에 의견대립이 생겼다. 해근은 먼저 요충지 성곽을 공격하자고 했으나 최호는 강남 군사들이 수성에 매우 능하므로 먼저 땅을 점령하자고 했다. 그런 다음에 곡식과 병기를 축적하고 그런 다음에 기회를 갖추어 성을 공격하자고 했다. 그러나 공손표도 성을 먼저 공격하자고 하는 바람에 탁발사도 그렇게 결정했다.

 

   북위군의 공략방향은 크게 네 갈래였다. 가장 동쪽 산동성 평원방면군숙손건이 맡았고, 업성을 공격하는 중부군해근이 맡았으며 공손표 호뢰관 방면, 그리고 우율제가 가장 서쪽에서 맹진과 낙양방면으로 공략해 들어왔다.   

 

 

(41) 탁발사 사망(AD423)

 

   거대한 북위군이 여러 방면에서 남쪽으로 쳐들어오자 유송은 혼란에 빠져 들었다. 조정에서는 채곽이부상서로 임명하였는데 채곽은 중서령 부량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선발하는 일에 관해서는 저한테 전권을 주실 것이고

    간섭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면 저는 직책을 받을 수 없습니다.“  

 

황당하다고 생각한 부량사공 서선지와 그 문제를 놓고 상의했다. 서선지는 부량에게 이렇게 말했다. 

 

  “ 황문시랑과 녹상서사 이하만 다 채곽에게 맡기십시다.

    그 이상은 우리가 같이 상의하여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량이 나가 채곽에게 중신회의 결정사항을 알려주자 이렇게 외치며 돌아갔다.

 

  “ 나는 서간목(서선지 어릴 때 이름)을 위해 

    종이 끝에 서명만 할 수는 없읍니다.“ 

 

   6세기 남조 양나라 역사가 심약 채곽이 인선의 일을 통째로 맡기라고 무리하게 요구한 것은 혼란한 그 시기에 직책을 맡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런 판단을 ‘원대하다’고 말했다.(AD423) 

 

   북위유송의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던 AD423년 겨울(12월6일) 탁발사가 병환으로 죽었다. 나이가 32세였다. 사흘 뒤에 탁발도(AD408-AD452)가 즉위했다. 이 사람이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 태무제 세조다.  

 

 

(42) 유의부 폐위와 문제 유의륭 등극(AD424) 

 

   유송을 이어받은 황제 유의부는 과연 무능하고 무례하며 황음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놀이와 주연에 탐닉했다. 범태와 같은 은퇴한 중신이 그런 그를 깨우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편 유의부의 한 살 아래 동생 여릉왕 유의진은 총명하고 또 문장을 사랑했으나 좀 경솔하고 겁이 많은 나약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태자(유의부)궁에 근무하는 사령운 안연지혜림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약에 내가 뜻을 얻게 된다면    

    반드시 사령운안연을 재상으로 삼고

    혜림은 도독으로 임명할 것이요.“

 

   사령운이란 비수대전대승장 사현의 손자지만 성격이 삐뚤고 오만했으며 평소 자신의 능력에 비해 맡겨진 직책이 낮다고 불평을 늘어놓던 사람이었다. 안연 또한 동진 성제 시절의 중신 안함의 증손자로 술을 좋아하고 방종한 사람이었다.  

 

   사공 서선지유의진이 이런 부랑배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이 때 서선지는 매우 부족한 유의부 대신 동생 유의진으로 황제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유의진이 사령운 등과 교제를 못하도록 사람을 보내 설득을 시켰다. 그래도 유의진이 행동을 고치지 않자 서선지사령운과 안연을 지방 태수로 내보내 버렸다. 유의진은 그런 속내도 잘 모른 채 계속해서 조정의 정치를 비난하고 무리한 요구를 그치지 않았다. 서선지 등은 유의진 옹립계획을 접고 황제를 부추겨 유의진의 죄악을 열거하면서 폐서인 시켜 귀양을 보내버렸다.   

  

   서선지광릉(강소성 양주)에 주둔하고 있는 또 다른 고명대신 단도제건강으로 불렀다.그가 군권을 가지고 있었고 또 명성이 전국에 떨치고 있었으므로 그의 동참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서선지는 서둘러 건강으로 들어 온 단도제와 고명대신 사회에게 황제폐립의 계획을 밝혔다. 단도제는 그 날 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을 잘 잤으나 사회는 밤새 잠을 못이루며 뒤척였다. 황제 유의부는 예전처럼 황궁안 뜰에다 상점을 벌여놓고서 측근들과 직접 장사하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서선지는 이른 새벽 황제 유의부를 체포하여 태자궁에 유폐시키고 영양왕으로 강등시킨 다음에 오나라로 귀양을 보냈다가 사람을 보내 시해했다. 조정에서는 누구를 후사로 삼을 것인지 의논을 거쳐 셋째 아들 유의륭을 황제로 세웠다. 이 사람이 유송 태조 문제다.   

 

 

(43) 하나라 내분과 혁련창 (AD424)

 

   유송유유AD422년 죽고 북위 탁발사AD423년 죽으면서 주군의 사망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하나라도 후계문제로 시끄러웠다. 혁련발발장자인 태자 혁련괴를 폐위하고 그 대신 어린 혁련륜을 세우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 혁련괴는 7만 군사를 발동하여 혁련륜을 공격했다. 3만의 혁련륜 군사고원지역에서 크게 패하였고 혁련륜도 전사하고 말았다. 혁련륜이 혁련괴에게 죽자 혁련륜의 형인 혁련창이 1만 군사로 혁련괴를 습격하여 죽이고 그의 무리 8만 5천을 흡수한 뒤 통만으로 철수했다. 하나라 주군 혁련발발은 반란을 일으킨 혁련괴를 성공적으로 제압한 혁련창을 대견해 하여 태자자리에 앉혔다.(AD424) 

 

 

(44) 혁련발발의 사망(AD425년)과 북위의 1차 하나라 공격(AD426)

 

   AD423 서진걸복치반북위에 조공하기로 하고 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AD425년 8월 혁련발발이 45세로 사망하면서 하나라혁련창이 황제가 되었다. 북위 탁발도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AD427년 북위하나라를 공격하기로 했다. 북위주군 탁발도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 혁련과 연연 중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하는가?”

 

여기서 연연이란 유연(柔然)이 지배하는 지역으로 내몽고 북쪽 지금의 몽골지역에 웅거하던 흉노족 무리를 말한다. 장손숭장손한해근이 답했다.

 

  “ 혁련은 토착민이니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벌레 같은 연연은 몰려다니면서 약탈을 자행하는 족속입니다.  

    쫓아가 사로잡되 못 잡더라도 가축을 뺏아오면 군비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태상 최호가 반대하면서 나섰다.

 

   “ 연연은 새무리 같아서 

     대병으로 가면 따라가도 잡기 힘들고,

     가변운 경병으로 가면 적을 제압하기 충분치 않습니다.

     혁련은 토지가 작고 정치와 형벌이 잔인하여 

     민심이 이반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신이 모두 포기한 곳이니 의당 그곳을 먼저 정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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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서 유결도 우선 후연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군 탁발도(북위)를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10월 수도 평성(산서성 대동)을 출발해 통만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출병하였으므로 통만을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주민 1만여 가구를 빼앗아 돌아왔다.그러나 장안방면으로 나아간 해근은 AD426년 12월 장안을 지키던 하나라 수비군 혁련을두혁련조흥을 깨뜨리고 장안을 접수하는데 성공하였다.

 

 

(45) 북위의 2차 하나라 공격과 통만 함락(AD427) 

 

   통만을 정복하지 못한 탁발도하나라 주군 혁련창이 장안을 수복하기 위해 혁련정과 2만 군사를 남하시킨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하를 정복할 생각을 세웠다. 장안에서는 북위해근혁련정이 대치하고 있었다. 탁발도는 그 틈을 타서 통만을 기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장손한에게 기병 3만, 탁발소에게는 보병 3만, 탁발복진에게 보병 3만, 그리고 하다라에게 기병 3천을 주어 척후를 맡겼다. 탁발도발린산(내몽고 준격이기)에 도착하자 기병 3만을 가지고 배나 빠른 속도로 통만으로 진격했다. 여러 신하들이 통만의 견고함에 비추어 볼 때 3만 가지고는 함락을 시킬 수가 없다고 말렸다. 탁발도는 공성전략이야말로 가장 낮은 수단의 전략이며 기습전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공격법이라고 말하면서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 통만 부근에 가서는 골짜기에 군사를 숨기고 틈이 올 때까지 매복작전을 폈다.  

 

   하나라에서 적자옥이 항복해 와서 이렇게 말했다.

 

   “ 혁련정은 지구전을 쓸 생각입니다.”

 

   장기전은 북위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집이 2천리 먼 데다가 큰 강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탁발도는 유인하기 위해 거짓 퇴각작전을 폈다. 그리고 죄를 지어서 하로 도망간 병졸에게 이런 풍문을 퍼뜨리게 했다.

 

  “북위나라 군대는 식량이 고갈되었고

   지원 보병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하나라 주군 혁련창은 그 풍문을 굳게 믿었다. 3만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북위를 공격했다.(AD427년 6월2일) 북위장손한탁발도에게  하의 병사가 예리하니 조심하라고 하자 탁발도가 이렇게 대꾸했다.

 

  “ 멀리까지 와서 도적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저들이 나오는데 내가 다시 도망가고 피한다면

    저들 사기나 북돋울 뿐 우리는 사기가 떨어진다.“

  

환관 조예도 비바람이 불어 징조가 나쁘니 피하자고 권했지만 탁발도는 듣지 않았다. 최호가 말했다.

 

   “ 무슨 소린가 천리를 달려와 적을 제압할 계획을 세웠는데

     하루 아침에 전략을 바꿀 수가 있는가?

     적들은 전진하는 것에만 취해 뒤를 수습할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매복으로 습격해야 할 것이고    

     바람 또한 사람의 이용하기 나름이지 

     어찌 변하지 말라는 법이 있더냐?“

  

탁발도가 크게 칭찬하며 말했다.

 

  “ 훌륭한 말씀이시요!”

 

   혁련창의 군사와 맞닥친 탁발도가 넘어져 추락하여 거의 잡힐 뻔 했지만 먼 친척 탁발제의 도움으로 피할 수가 있었다. 화살도 여럿 맞았지만 끝까지 분투하여 하나라 승세를 뒤집어 엎고서 승기를 잡았다. 도망가던 하의 주군은 통만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상규(감숙성 천수) 쪽으로 도망갔다. 탁발도는 미복차림으로 통만성 안으로 잠입했다. 하나라 군대가 성문을 닫는 바람에 갇힌 꼴이 되었지만 탁발도는 오히려 궁성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하나라 군대가 패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궁성에서는 상서복야 문지가 주군의 모후, 즉 혁련발발의 처를 업고 성 밖으로 도주했다. 이제 통만성 안에는 하나라의 신하도 군대도 거의 다 숨어버린 무정부 상태가 된 것이다. 6월3일 탁발도는 하의 군신과 왕족 1만여 명을 체포하였으나 태사령 장연서변은 그대로 재임명해서 관용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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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30 17:52:00 최종수정 2018-08-31 12:02:20



2018.08.30 | 뉴스 > ifsPOST  http://www.ifs.or.kr/bbs/bo






[ 맡김 예화들 ] 문제를 바라보는 눈외| 예화자료  

지미|조회 115|추천 0|2017.05.02. 15:05

문제를 바라보는 눈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보는 시각입니다. 문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는 문제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문제에 대한 반응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에머슨"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제 속에 하나님의 기회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며 조용함 가운데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기회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극단적인 방법 중 하나는 문제 때문에 생길 최악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임어당 선생"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일을 받아들이는 데서 생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최악의 일이라고 한다면 죽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도 문제가 안됩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문제 속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우리의 마음에는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자

 

  우리 몇 사람이 둘러앉아서 선교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그 당시 여섯 살쯤 되었던 아멜리는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우리의 말을 가로막았다.할아버지, 성경 어디에 문제란 말이 나와요?”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단어가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인데, 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렇게들 걱정하고 있어요? 그 단어는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다면서요!”


   나는 이 어린아이의 말을 듣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없는 것처럼 문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는 많은 고통으로 가득 찬 나의 삶을 통해, 골치 아픈 일로 머리를 썩이는 것이 죄라는 것을 배웠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믿는 우리는 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발도, 팔도 두통을 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두통을 앓을 수 있는 것은 머리뿐이다. 그러므로 두통을 앓는 신자는 우리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에게 ?보좌에서 내려오시오. 이제부턴 내가 머리요. 그것을 증명하려고 내가 두통을 앓고 있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가 왜 골치를 앓을 필요가 있는가?


   루터는 밤이 되면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 이게 제 세상입니까? 당신 세상입니까?, 제 교회입니까? 당신 교회입니까? 당신 세상이고, 당신 교회라면 제발 당신이 돌보십시오. 저는 피곤해서 자야겠습니다.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오. 내일 아침에 다시 뵙겠습니다!? 터와 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자.

 


맡김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군을 이끌고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장군 한 사람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포위망을 좁히며 총공세를 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펠드리히 시에서는 비상 시의회를 소집하고 항복 여부를 논의하였는데 대다수 시의원들의 의견은 미리 항복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데로 모아졌습니다. 그때 교회의 지도자 한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의 힘만을 믿는다면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긴다면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무서워 떨고만 있지 말고 교회의 종을 힘껏 치고 부활절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 뒷일은 하나님께 맡깁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펠드리히 시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찬송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종소리와 찬송소리는 프랑스군 진영에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밤 사이에 오스트리아 군대가 도착했기 때문에 울리는 기쁨의 종소리와 노래소리일 것이라고 판단해서 공격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말았습니다. 펠드리히 시는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망할 자유와 희망할 자유가 있습니다. 믿을 자유도 있고 믿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맡길 자유도, 내가 움켜쥐고 있을 자유도 있습니다. 영원히 살 자유도, 영원히 멸망할 자유도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뜻대로 선택할 자유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펠드리히 시민들처럼 우렁차게 종을 울립시다. 그리고 찬송을 부릅시다. 결과는 하나미께 맡긴 채 사람에게 항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항복합시다. 반드시 고침 받을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우리 생의 연주자

 

   이태리 어느 시장에서 한 거지가 낡은 바이올린을 가지고 서툰 연주를 하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도 그 거지에게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모두 제 갈길만 가고 있었다. 거지는 울상이 되어 땅에 주저 앉아 울어버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사람이 거지 곁으로 다가와 그 바이올린을 달라고 했다. 거지는 관심없이 그 바이올린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사람은 낡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지가 켤 때와는 달리 사람들은 그 바이올린 소리에 매혹되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땅바닥에 놓은 거지의 모자에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자에는 은전과 금화가 가득찼고 이를 보던 거지는 금새 희색이 만연했다. 바이올린을 켜던 신사는 다시 거지에게 바이올린을 들려주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바이올린을 켠 사람은 이태리가 낳은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피가니니였다.


   연주는 악기가 좋고 나쁨에 있지 않다. 연주자에 달린 것이다. 우리 생의 연주를 예수그리스도께 온전히 맡기자.

 


조각그림 맞추기

 

   조각그림 맞추기를 취미로 하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매번 집에 올 때마다 좀더 조각이 많고, 어려운 조각그림을 사 오곤 했습니다. 하룻밤은 천 조각이 넘는 조각그림을 사 왔습니다. 사 오자마자 가족들은 달려들어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이 넘자 힘이 빠졌습니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맞추기는 커녕 시작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야 자기가 조각그림을 사오면서 이것저것을 비교하다가 다른 상자와 뚜껑그림이 뒤바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맞추어 보려고 노력하던 그림은 옳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에 대해 실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속에서 바라고 있는 교회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웃 사람들에 대해 실망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하나님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비뚤어진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위에 우리의 기대를 실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틀린 조각그림의 뚜껑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에게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 만큼 살지 못하며 더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 만큼 우리는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허다하게 우리의 문제는 우리를 어떤 딴 사람의 이미지로 바꾸려 하거나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애쓰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른 조각그림의 뚜껑 그림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쓰시도록 자신을 내 맡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영국의 한 직물공장에는 불문율이 있다실이 얽히면 무조건 공장장에게 보고하시오 어느 날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여공이 작업을 하는 도중에 실이 얽혀 버렸다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풀어보려고 했다그러나 풀려고 하면 실은 더 얽혀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그제야 그는 공장장에게 보고를 했다왜 즉시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공장장의 질책에 그는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공장장님, 저는 최선을 다해서 얽힌 실을 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다?그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공장장인 나에게 보고하는 일이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딪친다그러나 여공처럼 우리가 해야할 최선의 일을 무시함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네게 맡기라?고 말씀하신다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보고하고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맡김의 유익

 

   우리가 산산이 부서진 희망과 일그러진 계획과 망가진 삶의 일부를 혼자서 깨끗이 치워버리려는 마음을 버릴 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신다. 그분은 부서진 희망의 조각들을 제거하시고, 선한 것을 회복하시며, 혼돈 속에서 질서와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막지 않고 그분께 역사하실 기회를 드리면 하나님은 놀라울 정도로 창조적으로 일하신다.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진흙과 같은 존재가 된다.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우리의 인생을 형성하시도록 맡기는 것은 우리의 삶을 그분의 손에 올려놓고 "주의 뜻대로 나를 만드소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또 우리가 시작한 모든 일을 스스로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재능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아무런 불평없이 우리를 다시 고쳐주시도록 말씀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15세기의 작가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삶을 주님의 손에 맡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에서든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나를 사용하소서. 주께서 나로 더불어 하시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선하신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둠 속에 거하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기꺼이 그리하겠나이다. 내가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기꺼이 또 그리하겠나이다. 주께서 나에게 편안함을 주시든 고난을 주시든 모두가 주의 뜻이니이다."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아신다

 

   갓 결혼한 신랑이 신부와 의논도 없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당황한 신부는 부랴부랴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몇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신부는 필요한 것을 빌리려고 옆집을 방문했습니다. 40쯤 들어 보이는 옆집아주머니는 신부가 필요로 하는 것 이외에 많은 것들을 더 빌려 주었습니다.


   "새댁, 이것들도 꼭 필요할거야." 신부는 엉겁결에 아주머니가 주는 대로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아주머니가 빌려 준 그 물건들은 정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 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당신의 형편을 아뢰십시오.

"저희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 주님 앞에 저희의 형편을 다 아뢰오니 저희의 길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요즘,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당신의 형편을 아뢰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허탄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필요에 부응하고, 우리의 사치가 아니라 우리의 쓸 것을 고려하여, 분량을 균형잡히게 하는 데서 나타난다.


 

                                                [ 맡김 예화들 ] 문제를 바라보는 눈외
2017.05.02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마르크스주의 여권론

  • 리포트 >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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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9.20 / 2011
  • 4페이지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마르크스주의 여권론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마르크스주의 여권론


* 마르크스주의 여권론

   마르크스주의 여권론(Marxist feminism)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여성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규명한다. 마르크스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생산수단과 부의 소유여부에 의해 제약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그 자체 내부의 사회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문제의 원인 또한 법․정치적 불평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성별 분업체계 있는 것이며, 여성문제를 일으키는 성별 분업체계는 각 사회의 계급문제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의 특징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모순인 계급모순과의 관련성 속에서 여성문제의 원인을 밝힌다는 점에서, 그 해결책에 있어서도 여성문제의 처방이 독자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해결과 근본적인 변혁 속에서 모색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차별의 폐체 사회의 변혁운동과 분리된 대남성 투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수단의 생활화를 통한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사회관계의 철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하 생략(미리보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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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마르크스주의 여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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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자유주의 여권론 보고서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자유주의 여권론



   여성문제의 사회적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여성이 줘는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여성주의(feminism) 이론들이 나타났다.

   여성주의 이론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성불평등이라는 동일한 현상일지라도 이론적 관점에 따라 성불평등을 다르게 분석하고 더 나아가 성불평등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단일한 체계를 이루기보다는 부단한 사회변동 속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과 이면에 감춰진 것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성연구의 시각은 사회과학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남성들의 시각이나 일부 교육받은 여성들의 경험만이 아니라 불평등과 억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아우르면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일어날 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이다. 18세기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근대 사회로의 본격적인 전환은 자유 평등사상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가운데 여성들도 남성과 같은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여성차별적인 교육제도나 법률, 관습에 대한 항의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적 흐름은 물론 지금까지도 진행중이지만, 특히 여성의 참정권이 확보되는 20세기 초 중엽까지 여성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다.

   한편 산업혁명 이후 노동계급의 급성장과 아울러 사회변혁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여성운동에도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사회주의 운동과 맥을 함께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들은 자유주의 여성운동과는 달리 남녀차별만이 아니라 경제적 억압을 포함한 여성들의 상황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서구의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영과 식민지 사회에서 일어날 민족해방운동 역시 여성운동의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 자유주의 여권론

   여권론의 성장은 서유럽과 미국의 지적 발달에 깊이 관련이 있으며, 영국 메리 월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존 스튜어트 밀(J. S. Mill)과 레일러 밀(Taylor Mill)을 포함한 18세기와 19세기의 사상가들이 근대 여권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타고날 신분에 의한 모든 인위적만 제한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계몽사상자유주의 사상과 융합하여 자유주의 여권론(liberal feminism) 근간을 이루고 있다.

   월스톤크래프트1792년 “여성권리의 옹호”라는 책자를 통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모든 여성들이 그들의 이성과 능력을 발취하여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그들 속에 내재해 있는 합리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Wollstonecraft, 1975)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여성의 예속” 에서 여성에게만 자유주의적 관행이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같은 법적 권리와 동등한 교육기회, 참정권의 획득, 직업기회를 가짐으로써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킬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J. S. Mill, 1972).

   자유주의 여권론은 사회적인 제도 및 법에 있어서의 개혁을 꾀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들이 생물학적 속성 때문에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보수주의적 관점을 배격하고 있다.

   따라서 공중을 재교육시킴으로써 보다 해방되고 동등한 남녀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성역할의 재사회화 과정에 주력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교육과 직업의 균등한 기회보장으로 공적 부문의 남녀차별이 줄어들 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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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자유주의 여권론 보고서
출처 : 올레포트 자료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3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자유주의 여권론
파일이름 :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 자유주의 여권론.hwp
키워드 : 여성문제,시각,자유주,여권론,여성문제,보,자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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