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3. 17:25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
쑥부쟁이 그리고 그 어려움
쑥부쟁이는 흔히들 식물의 문외한이 들국화라고 통칭하기도 하는, 가을의 산과 들을 수놓는 보라빛 야생 국화 종류 중의 하나이다. 시인 안도현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무식하다며 자신과의 절교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http://www.nature.go.kr; 2018)은 쑥부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식물을 아래와 같이 기재하고 있다.
– 가는쑥부쟁이<Aster pekinensis (Hance) Chen>
– 가새쑥부쟁이<Aster incisus Fisch.>
– 개쑥부쟁이<Aster meyendorfii (Regel & Maack) Voss>
– 갯쑥부쟁이<Aster hispidus Thunb.>
– 까실쑥부쟁이<Aster ageratoides Turcz.>
– 눈개쑥부쟁이<Aster hayatae H.Lév. & Vaniot>
– 단양쑥부쟁이<Aster altaicus var. uchiyamae Kitam.>
– 미국쑥부쟁이<Aster pilosus Willd.>
– 민쑥부쟁이<Aster associatus Kitag.>
– 산쑥부쟁이<Aster lautureanus (Debeaux) Franch.>
– 섬갯쑥부쟁이<Aster arenarius (Kitam.) Nemoto>
– 섬쑥부쟁이<Aster glehnii F.Schmidt >
– 쑥부쟁이Aster yomena (Kitam.) Honda
– 왕갯쑥부쟁이<Aster magnus Y.N.Lee & C.S.Kim>
– 흰왕갯쑥부쟁이 <Aster magnus f. albiflorus Y.N.Lee & C.S.Kim>
분류학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이 복잡한 이름 속에 구절초 종류들까지 함께 섞어 놓으면, 뉘라서 이를 쉬이 구별하겠는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여 절교를 해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이유로 자신과의 절교를 선언해야 할까? 그런데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주장이 있다.
“한글명이 꺼름칙하다면, 특히 사람의 정신성에 관련한다면 올바르지 못한 이름은 정당하게 고치면 된다…(중략)…개쑥부쟁이를 쑥부쟁이로, 쑥부쟁이를 왜쑥부쟁이로 고쳐 불러야 옳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자연과 생태, p434]
저 복잡한 이름 속에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간신히 쑥부쟁이를 찾아내어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건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정신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으로 읽히니 정말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만 같다. 정말 그러한가?
언급된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의 유래와 구별방법을 고찰한 후 하나씩 내용을 살펴보자.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의 유래와 구별
(1) 이름의 유래
현재의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라는 식물명의 기초가 확립된 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식물분류학을 개척한 정태현 등 4인이 저술한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쑥부장이’와 ‘개쑥부장이’로 등재되었다가 그후 표기법의 변화에 따라 개칭되어 현재의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로 정착되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된 학명도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현재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이르고 있다.
쑥부쟁이와 관련된 식물명이 문헌상 발견되는 것으로 19세기 저술된 임원경제지(18??), 물명고(1824)와 명물기략(1870)에 한자로 ‘馬蘭'(마란) 또는 ‘紫菊'(자국)으로 기록된 것이 있다. 한글 이름은 일본인 모리 다메조(三爲三)가 저술한 조선식물명휘(1921)에 “쑥부쟝이”로 기록된 것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쑥부쟁이는 쑥+부쟁이의 합성어로 ‘쑥’은 잎 또는 자라는 모습이 쑥을 닮은 것에서, ‘부쟁이’는 옛적에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에 사용했던 가느다란 막대기인 부지깽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한약서 제중신방(1923)에 부지깽이를 부쟁이와 유사한 ‘부이당이’로 표기한 것이 보이고, 현재에도 경북 지역에서 쑥부쟁이를 ‘부지깨나물, 부지깽이’로 부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쑥부쟁이와 분리하여 ‘개쑥부장이’라는 별도 이름을 부여한 기록은 조선식물향명집이 최초이다. 식물명에서 ‘개’는 예부터 식물명에서 흔히 유사한 종에 부치는 이름이므로 개쑥부쟁이는 쑥부쟁이(쑥부장이)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조선식물향명집의 공동 저자 중 1인인 이덕봉 교수는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된 국화과 식물에 대한 그 유래를 밝힌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1937.1.)에서 ‘ 쑥부장이’는 한자어로 馬蘭(마란)인데 조선에서 실제로 사용한 이름이고 ‘개쑥부장이’는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최초로 新稱(신칭)한 이름이라는 취지로 기록하였다.
(2)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의 구별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의 구별[이상의 내용은 이창복, ‘대한식물도감’, 향문사(1980) 및 이영노, ‘한국식물도감’, 교학사(1996)의 개쑥부쟁이와 쑥부쟁이 등 참조]
쑥부쟁이는 가새쑥부쟁이<Aster incisus Fisch.>와 잎 모양과 열매의 관모 길이를 주요 기준으로 하여 분류하고 있지만, 상당한 변이가 있기 때문에 분류학적으로 구별 특징이 명확하지 않고 분포지에 대한 기술에서 식물도감마다 차이를 가지는 등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러나 개쑥부쟁이는 총포, 잎 및 관모 등에서 쑥부쟁이 및 가새쑥부쟁이와 차이가 뚜렷하여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 불러서 안 되는 이유?!
(1) 쑥부쟁이를 왜쑥부쟁이라 불러야 하는 근거?!
그런데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고 하면 정신성에 관련되고 올바르지 못한 이름을 부르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 개쑥부쟁이는 동북아에서 한반도가 분포 중심이고 전국에 분포한다…(중략)…북쪽으로는 만주와 연해주 지역까지 분포한다. 일본열도에는 분포가 알려지지 않았다.
– 반면에 이름이 익숙한 쑥부쟁이는 우리나라의 남부의 온난하고 습윤한 난온대지역에 보이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종이다. 개쑥부쟁이가 쑥부쟁이에게 그 이름을 내주고만 셈이다.
– 우리나라 야생식물에 대한 근대 분류학적 최초 기재라 할 수 있는 1921년 모리(森)의 ‘조선식물명휘’ 내용을 그대로 승계한 데서 빚어진 결과다. 당시 모리(森)는 개쑥부쟁이의 실체를 눈치 챘으나, 한글이름 없이 일본에 분포하는 종(Yamajinogiki, 山路野菊)으로 기재했다. 대신 한글명 쑥부쟁이이라는 이름은 일본열도가 분포 중심인 Aster yomena(또는 Aster indicus)를 대응시켰다.
– 그 후에 한국 1세대 분류학자들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중략)…개쑥부쟁이라는…(중략)…한글명을 기재했다.
– 패배의식의 식민 잔재를 걷어 내야 하는 것과는 방점이 다르다. 개쑥부쟁이를 쑥부쟁이로, 쑥부쟁이를 왜쑥부쟁이로 고쳐 불러야 옳다(이상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자연과 생태 p433~434 참조).
요약하면 (i) 개쑥부쟁이는 한반도가 분포 중심이고, (ii) 쑥부쟁이는 우리나의 남부의 난온대에 분포하는 쑥부쟁이로 일본을 대표하는 종이며, (iii) ‘쑥부쟝이’라는 이름을 최초 기록한 일본인 식물학자 모리 다메조(森爲三)은 이것을 알면서 한반도 분포종에는 한글명을 부여하지 않고 일본 대표종에다 쑥부쟁이 종류의 한국명 대표격인 쑥부쟁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iv) 한국의 1세대 분류학자들은 이를 추종하여 그대로 명칭을 이어 받아 개쑥부쟁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으므로 (v) 지금이라도 개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고 하고 쑥부쟁이는 왜쑥부쟁이라고 불러야 정신성이 올바르게 되고 패배의식의 식민 잔재를 걷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고 하면 정신성에서 문제가 있고 패배의식의 식민잔재에 빠지는 일이 되니 누구라서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맞는 말일까?
(2) 개쑥부쟁이는 일본에 분포하지 않는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국가표준식물목록(2018)은 개쑥부쟁이에 대한 학명을 Aster meyendorfii (Regel & Maack) Voss로 사용하는데 이 학명으로는 일본의 주요 식물도감에 별도 종으로 등재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개쑥부쟁이는 일본에 분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도 좋을까?
식물분류학의 태두 린네(Linne)가 의도하였던 대로라면, 세계를 통틀어 하나의 종의 식물은 하나의 학명만을 가져야 하므로 이론상으로 학명으로 해당 종의 식물이 검색되지 않는다면 그 식물은 해당 지역에 분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각 학자마다 또는 각 나라마다 종 분류에 대한 분류학적 견해의 차이가 있고, 정보통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학명을 발표한 문헌을 출간 시간별로 관리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선들이 있다. 따라서 하나의 종에 하나의 학명만이 있지도 않고 학명이 다르다고 하여 반드시 동일 종의 식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게 실제 형편이다.
모리 다메조(森爲三)는 <사진6>에서 보이듯이 조선식물명휘에서 현재의 개쑥부쟁이를 기록할 때 한글명 없이 학명을 Aster altaicus Willdennov로 하고 이에 대한 일본명을 야마지노기쿠(ヤマヂノギク, 山路野菊)로 기록하였다. 그런데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기록한 일본명 山路野菊(현대어 표기 : ヤマジノギク)으로 일본 식물도감을 찾아보면 일본의 상당한 넓은 범위에서 분포하는 식물로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
<사진10>에서 보듯이 일본에서 일본명 山路野菊(산로야국, 일본 현대어 표기 : ヤマジノギク)으로 검색을 하면 학명이 Aster hispidus Thunb.인 식물이 검색된다. 학명 Aster hispidus Thunb.는 국가표준식물목록(2018)을 기준으로 한국명은 ‘갯쑥부쟁이’이다. 어찌된 일일까?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2018)은 갯쑥부쟁이에 대하여 “해변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실 한국명 갯쑥부쟁이는 해안가에서 자라는데 잎이 다소 두껍고 낮게 퍼져 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잎, 총포 및 관모의 형태는 개쑥부쟁이와 별 차이가 없다. 해안가에 조금씩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점점 개쑥부쟁이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므로 분류학적으로 개쑥부쟁이와 갯쑥부쟁이가 별도로 구별되는 종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논란이 있어 왔다.
위 마키노 일본식물도감은 Aster hidpidus에 대하여 우리나라처럼 ‘해변’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기재하지 않고 ”山地や海岸に 生える”(산지와 해안에 분포한다)라 하고 있다. 즉, 일본 분류학계의 주류적 견해는 한국명 개쑥부쟁와 갯쑥부쟁이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같은 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포털사이트 중 적당한 곳을 골라 Aster hidpidus를 검색하면, 우리나라에서 분류하는 개쑥부쟁이<Aster meyendorfii (Regel & Maack) Voss>와 잎, 꽃, 총포 및 관모가 똑같이 생겼는데 일본 해안가가 아닌 산지에서 담은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비단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안동대에서 식물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쑥부쟁이 종류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 정규영 교수는 개쑥부쟁이를 별도로 분류하지 않고, 갯쑥부쟁이(Aster hispidus Thunb.)에 대하여 우리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2018)의 기재와 달리 “해안 및 산야 건조한 곳에서 자라는 이년초”라고 기록하여 이점에서 일본의 주류적 학자와 분류학적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정규영, “한국관속식물 종속지(I) 중 개미취속”, 아카데미서적(2000), p242 참조].
일본에서 한국에서 사용하는 개쑥부쟁이 학명으로 분포 식물이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은 개쑥부쟁이와 갯쑥부쟁이를 같은 종으로 보고 학명을 통합 처리한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한반도에 분포하는 개쑥부쟁이가 일본에 분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학명만을 단순 대조하거나 일부의 견해를 채용하여 개쑥부쟁이가 일본에 분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만주와 연해주 지역까지 개쑥부쟁이가 존재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식물지(영문판, 2018)를 검색하여 보면 한국에서 개쑥부쟁이를 표기하는 학명 Aster meyendorfii가 아니라 Aster altaicus Willdenow, 阿尔泰狗娃花(아이태구계화)라는 이름으로 분류하여 한국에도 분포하는 종으로 기록하고 있다. 학명 차이에도 동일한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중국에 대해서는 분류학적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쑥부쟁이의 분포를 인정하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분류학적 견해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개쑥부쟁이라는 종은 분포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3) 쑥부쟁이는 한반도 남부에서만 분포한다??
한편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같은 책에서 “쑥부쟁이는 우리나라의 남부의 온난하고 습윤한 난온대지역에 보이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종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맞는 말일까?
식물도감을 살펴보면 쑥부쟁이는 남부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기재한 식물도감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최초 식물도감이라 할 수 있는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1957)에서 최근의 도감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식물도감은 쑥부쟁이를 전국 분포종으로 기록하고 있다[이영노, ‘한국식물도감’, 교학사(1996)의 쑥부쟁이 참조]. 실제로 서울 인근의 인가 근처나 산야 저지대에서 쑥부쟁이는 어렵지 않게 관찰이 가능하다.
심지어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 스스로도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책에서 쑥부쟁이에 대하여 “전국분포(개마고원 이남, 주로 남부지방)”라고 기록을 하였다. 그럼에도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한국식물생태보감2에서는 쑥부쟁이를 은근슬쩍 우리나라의 남부 분포종이라고만 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로 하는 주장이 신빙성이 있을까? 개마고원 이남에서 중부에 분포한다는 쑥부쟁이는 쑥부쟁이가 아닌지부터 규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4) 모리 다메조(森爲三)는 개쑥부쟁이가 일본에 분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를 숨기고 일본명을 부여하였다?
모리 다메조(もり ためぞう, 森爲三; 1884~1962)는 1908년 한반도로 건너와 1945년까지 조선의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나, 식물학보다는 어류 등 동물학에 더 큰 활동을 했다. 식물학을 다루기는 했으나 일본 식물학의 견지에서 보면 중심부보다는 변방에서 박물학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1921년에 완성한 조선식물명휘는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보고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조선식물명휘를 작성하면서 일본 본토에 분포하지 않는 식물을 마치 분포하는 것처럼 임의로 만들어 보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보면 상식에 맞지 않다. 따라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 일본 식물학의 중심부에서 개쑥부쟁이(당시 학명 Aster alataicus)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로 숭상받는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가 1898년 식물학 잡지에 투고한 Aster 관련 논문을 살펴보자. 마키노 도미타로는 이 논문에서 “Yamdzi-no-kiku is the Aster altaicus Willd.(=Calimeris altaicus), which commonly occur in mountain regions in this country”[일본명 야마치노키구는 학명이 Aster altaicus Willd.(=Calimeris altaicus)인데 이 종은 일본의 산지에 흔지 분포한다]라고 하였다. 즉, 개쑥부쟁이(Aster altaicus)는 일본에 흔히 분포하는 종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나카이 다케노신( 中井猛之進)의 스승이자 일본 동경제국대학 생물학의 교수이었던 마츠무라 진죠(松村任三)와 일본 쿄토대학 생물학과 교수이었던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가 1910년 식물학 잡지에 공동으로 투고한 논문을 살펴보자. 개쑥부쟁이에 대한 당시 학명 Aster altaicus Willd.이라는 것, 일본명은 “Yamaji-nogik”(야마지노기쿠)라는 것 그리고 일본에 분포하는 종이라는 것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내의 저명한 식물학자들은 동일한 학명의 식물이 일본에 분포하는 것으로 연구하고 보고하였는데, 변방의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무슨 재주로 일본에 개쑥부쟁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도 의도적으로 일본명을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객관적 기록은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일본에 개쑥부쟁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하여 이미 일본 현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일본명을 기재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알지 못한 것은 조선인이 부르는 조선명이었다.
(5) 쑥부쟁이가 쑥부쟁이가 되고 개쑥부쟁이가 개쑥부쟁이가 된 이유?!
조선식물명휘(1921)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총독부의 의뢰에 따라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상을 조사하여 보고한 조사서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을 그대로 채용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 문헌들의 성격을 고려하면 쑥부쟁이가 쑥부쟁이가 된 이유는 간명하게 추론할 수 있다. 조선에서 실제 조선인들이 쑥부쟁이를 그리 불렀기 때문이다.
개쑥부쟁이는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저자들은 다른 종이라는 것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이 부르는 조선명이 없었고 문헌을 찾아도 이름이 없었기에 쑥부쟁이와 닮았다는 의미에서 예부터 유사한 식물에 붙이는 전례에 따라 ‘개’라는 접두어를 추가하여 새로이 이름을 신청한 것이다(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는 실지조사를 우선하고 문헌조사를 보완적으로 행하고도 교육상 실용상 부득이 한 경우 즉, 이름을 찾지 못하는 경우 새로이 신칭한다는 취지로 기록하고 있다).
왜 조선인들은 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분포하는 장소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개쑥부쟁이는 상대적으로 건조한 것을 좋아하여 대개는 척박한 고산 등 높은 지대에 분포한다. 반면에 쑥부쟁이와 가새쑥부쟁이는 저지대의 습윤한 장소에 살기를 즐겨한다. 개쑥부쟁이와 분포지역이 겹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쑥부쟁이와 가새쑥부쟁이가 사람들이 사는 민가에서 가까운 곳에 분포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쑥부쟁이는 馬蘭(마란) 또는 紫菊(자국)으로 불리우며 가을날 정취를 돋구는 아름다운 야생식물임과 더불어 굶주림과 허기를 달래는 구황식물이기도 했다. 그 식물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함께 삶을 영위하였던 우리의 선조들이 주변에 더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인식하고 이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6) 소결론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저술한 조선식물명휘(1921)는 Aster altaicus(현재의 개쑥부쟁이), Aster indicus(현재의 쑥부쟁이)와 더불어 Aster incisus(현재의 가새쑥부쟁이)를 함께 기록하였고, 그 중에서 Aster indicus(현재의 쑥부쟁이)에 대해서만 한글명 ‘쑥부쟝이’를 기록하였음은 앞서 살핀 바와 같다.
그런데 <사진2>에서 보듯, 조선식물향명집(1937)은 Aster indicus가 아닌 Aster incisus라는 학명에 대하여 ‘쑥부장이’라는 식물명(조선명)을 부여하였다. 이것은 조선식물향명집(1937)의 저자들이 조선식물명휘를 그대로 추종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당시 연구하여 인식한 나름의 분류학적 기준에 따라 Aster indicus(현재의 쑥부쟁이)와 Aster incisus(현재의 가새쑥부쟁이)를 동일한 종으로 보고 통합된 조선명으로 ‘쑥부장이’를 기록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조선식물향명집(1937)은 모리 다메조(森爲三)의 조선식물명휘(1921)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식물향명집(1937)의 저자들은 그 기록에 “조선어에 생소한 內外先學들의 오전오기(誤傳誤記)도 불소(不少)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태현 외 2인,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머리말 참조]. 그리고 그 오류를 극복하기 위하여 수십 년간의 지방을 전전하며 이름을 채록하기 노력하였고 접근 가능한 상당한 문헌을 찾아야 했다. 그 성과물이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식물명의 기초를 만들었다. 잘못과 오류는 비판되어야 하고 교정되어야 하며 한계가 있다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왜곡으로 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글을 마치며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가 근거로 제시한 내용대로 개쑥부쟁이는 일본에 분포하지 않고 쑥부쟁이는 일본 대표종(?)이라고 가정하여 보자. 그렇다고 우리가 쑥부쟁이를 왜쑥부쟁이라고 해야 하고 개쑥부쟁이를 쑥부쟁이라고 해야만 올바른 일이고 그래야 식민의 잔재를 극복하는 일이 되는 것일까?
식물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선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을 규정짓는 온도와 기후 등 환경에 맞추어 진화하고 종을 형성하며 번식하고 그렇게 삶을 영위한다. 식물의 분포역은 그 자체로 과학적 토대와 방법에 근거하여 규명이 필요한 과학으로서 식물학의 한 영역이다. 과학은 과학적 방법에 따라 조사 연구하고 보편타당한 결론을 얻는 과정이며 그것에 그 어떠한 고상하고 대단한 것일지라도 주의나 이념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식물명(국명)이 식물의 분포역에 맞추어 명명되지 않으면 올바르지 않다거나 식민의 잔재가 된다는 어떠한 법칙이나 규정도 없으며 가사 그런 주장이 있다고 한들 과학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식물명(국명)은 해당 국명을 사용하는 언어공동체가 만들고 형성하며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언어의 한 영역이다. 그러하기에 과학의 보편적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자 했던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근대 식물분류학에 따라 한반도 분포 식물을 분류하면서도 그에 대한 식물명(국명)을 정리할 때 “조선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은 그대로 채용함”이라는 기준을 우선하여 내세운 것은 어쩌면 조선어(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국권을 상실하고 우리의 언어조차 빼앗는 작업이 시작될 무렵이었기에 더욱 소중하기도 하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심미적 대상임과 동시에 굶주림을 해결해야 식용의 대상이었던 쑥부쟁이를 한반도에서 살아가며 조선어를 사용한 민초들이 인식한 그대로 반영하여 그 인식에 따라 식물명을 정리하였다면, 백배 양보하여 그것이 식물의 분포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왜 올바르지 못한 것이 되고 정신성에 문제가 있으며 식민의 잔재가 되는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암흑기에 그나마 과학의 토대를 익히고 발전시켰던 선대 학자들의 수고로움은 차치해두자.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학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재에도 가새쑥부쟁이와 쑥부쟁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개쑥부쟁이와 갯쑥부쟁이의 정확한 분류학적 인식조차 없으며 그 분포역마저 자의적으로 재단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시인이 언급한 대로 우리는 우리와 절교하면 될 것인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기록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조차 없이 주의와 이념으로 재단하고 그것으로 과학을 대체하는 행위가 계속되는 한 식민의 상태를 불러온 폐쇄적 고립과 과학의 부재는 계속될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념의 과잉이 환호를 받고 그에 대한 믿음과 추종이 세를 얻어 가는 오늘의 현실은 호명되어진 식민의 시대보다 나아진 것이 무엇인지, 그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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