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30. 05:33ㆍ美學 이야기
<요약 >
무릉도원은 동양의 이상적 낙원이자 근원으로 예술 속에서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왔다. 무 릉도원의 이미지는 주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세속을 벗어난 선경(仙境)으로 관념화하고, 미화되어 있는데 특히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이를 동경하고 재현하려 하였다. 한국의 미술표현에 있어서도 그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그리고 이광사, 심사정, 이하곤, 정선, 윤재홍, 김수철, ... 장승업, 안중식 등 많은 작가들이 무릉도원을 주제로 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무릉도원도는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보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도화원기’의 내용과 관련 없이 무릉도원도를 현실과 관계시키면서 새롭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표현 모두 무릉도원도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는데 무릉도원이 이상향적 선경으로 따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고 나아가 이웃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이 무릉도원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중심어 : 무릉도원, 몽유도원도, 이상향, 낙원
1. 서론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도 시의 일상은 기계와 같은 반복적 생활이고 고독과 소외현 상이 더해지면서 점차 지쳐가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편안함이 가득한 낙원과 같은 이상세계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가들도 낙원과 같은 이상세계를 희구하며 이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이상적 낙원의 세계를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상정하고 있다. 무릉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나타나 있는 상상의 마을인데 동양적 낙원의 원형이자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문학과 미술분야에서 작품으로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왔다. 문학에서 무릉도원의 형상화는 크게 선경(仙境)으로 관념화하여 미화하거나 재현하는 심미적 경향과 피진(避秦)에 주제를 맞추어 난세와 학정에 대한 비판과 개탄을 토로하는 현실비판적 경향으로 나타내었다. 그리고 미술에서는 ‘도화원기’의 내용을 재현하는 ‘재현공간(再現空間)’ ‘신선들이 사는 세계로 본 선계공간(仙界空間)’ ‘은자를 표현하는 ‘은일공간(隱逸空間)’을 나타내었다. 이와 같은 무릉도원의 표현은 한국에서도 시와 그림에 그 영향을 미쳤다. 시는 대체로 재현형, 예찬형, 자족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에서는 조선 이전에도 표현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조선 초기 안견에 의해 그려진 <몽유도원도>가 가장 오래되었다. 이후 조선 말기까지 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소수에 불 과하다. 한국의 현대미술에서도 무릉도원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현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다. 본 연구는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무릉도원’을 주제로 하여 형상화된 표현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그 표현들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연구의 목적에 해당된다.
2.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이해와 내용
이 장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표현되고 있는 이상적 낙원공간인 무릉도원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의 장으로 ‘무릉도원’에 대한 예비적 이해와 도연명의 <도화원기>가 어 떤 내용인가 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다.
2.1. 무릉도원에 대한 예비적 이해
무릉도원은 동아시아에서 낙원의 원형으로 인식되어 있다. 또한 무릉도원은 학정(虐政)에 지친 민초들이 갈구했던 도피공간이자,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동경하는 선계 (仙界)공간이며, 시인묵객들에게는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예술공간 이기도 하다. 1)
1) 김상홍, 「동아세아의 이상향 무릉도원」, 『동아시아 고대학』, 동아 시아 고대학회. 제 14집, 2006, p. 263
그리고 그림이나 시, 이 야기 문학 등 예술적 표현으로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왔는 데 무릉도원의 이미지는 도연명의 <도화원기 병시(桃花原記 幷詩)>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2)
2) 김석회, 「무릉도원 형상화의 유형과 그 함의」, 『국어국문학』, 국어 국문학회, 2008, p. 66.
<도화원기 병시> 는 도연명이 58세(422년)에 발표되었으며 자수는 기(記)가 319자이고 시(詩)가 160자로 모두 479자로 이루어졌는데 무릉도원이 곧 이상적 낙원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무릉도원’을 내용으로 하는 많은 문학작품과 회화작품이 있다. 문학에서 무릉도원의 형상화 방향은 크게 두 가지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심미적 경향으로 무릉도원을 선경(仙境)으로 관념화하고 미화하거나 무릉도원을 재현하여 그 세계를 동경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특정 장소를 무릉도원으로 치환하여 표현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이를 예찬하거나 자기가 사는 곳을 무릉도원에 비겨 자족하기도 한다. 이를 대표하는 작가는 초당(初唐)의 왕유(王維)이며 그의 작품으로 <도원행(桃源行)>을 들 수 있다. 둘째는 현실비판적 경향으로 피진(避秦)에 주제를 맞추어 난세와 학 정에 대한 비판과 개탄을 토로하는 경향인데 도원경의 심미적 가치는 없어지고 민생의 문제나 작가 자신의 출처에 관한 번민이 나타나 있다. 이를 대표하는 작가는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이며 작품으로 <도원행(桃源行)>을 들 수 있다. 3)
3) 김석회, 위의 논문, pp. 66-73 참조. 왕유의 <도원행>은 도화원기의 해석적 재현으로 무릉도원의 선계에 대한 동경이 심미적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왕안석의 <도원행>은 마지막 부분에 정치현실에 대한 개탄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의 개념으로는 ‘선계의 공간’ 과 ‘현실 은거의 자연공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앞에서 분류한 것과 같이 도원을 신선의 세계로 본 도가적인 요소의 공간과 현실 속에서 탈속적인 은거의 경지를 추구하는 유가적인 요소의 공간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영향 속에 ‘무릉도원’에 대한 내용의 시들이 많은데 왕유와 왕안석의 경향으로 본다면 왕유형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재현형’, ‘예찬형’, ‘자족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4)
무릉도원을 그림으로 그린 ‘무릉도원도’는 도연명이 <도화원기>를 짓고부터 유명해진 고사산수화의 화제 가운데 하나이다. ‘무릉도원’은 중국에서 일찍부터 시인과 화가들의 관심대상이 되었으며 당, 송, 원, 명, 청에 걸쳐 많이
4) 김석회, 위의 논문, pp. 75-76 참조.
그려졌다. 그 가운데 당대의 오도자(吳道子), 남송의 유송년(劉松年), 원대의 전선(錢選), 조맹부(趙孟頫), 명대의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청대의 석도(石濤)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그러나 청대 이전의 것으로 현존하는 무릉도원도는 전해지지 않다. 한국에서는 ‘무릉도원’에 대한 내용이 언제 처음으로 알려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조선시대의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릉도원도이다. 이후 이징(李澄), 이하곤(李夏坤), 이인문(李寅文), ... 안중식(安中植) 등의 무릉도원도가 전해져 온다. 그리고 무릉도원을 표현한 회화작품도 문학작품과 같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함을 볼 수 있다. 회화작품에서는 대체로 ‘도화원기’의 내용을 재현하는 ‘재현공간’과 도원을 신선들이 살아가는 선경의 이미지로 그려놓은 ‘선계공간’ 그리고 도화원기에 담겨있는 은일사상을 바탕으로 동굴과 복숭아꽃에 둘러쌓인 전경을 통하여 은자를 표현하는 ‘은일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5) 대체로 가로로 길게 표현된 작품들에서는 ‘도화원기’의 문학적 내용이 스토리텔링화 되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재현공간의 작품이 많으며 세로로 그려진 작품에서는 선계 공간이나 은일공간으로 재해석된 작품이 많다. 이는 가로로 되어 있는 작품에서는 문학적 내용을 설명적으로 이끌어내기 쉽고, 세로로된 작품에서는 구름에 쌓여진 높고 깊은 산속에서 세속과 격리된 선계와 은일 공간을 표현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회화에서의 ‘무릉도원’ 표현은 주로 <도화원기>의 내용을 재현하되 도교와 유교적 사회현상에 따라 <도화원기>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고 회화의 표현도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도화원기’에 대한 내용이 전래되면서 중국인들 못지 않게 무릉도원이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잡았으며 그림이나 문인들의 시문(詩文)으로 다수가 창작되었다. 그리고 무릉도원을 찾아 중국에까지 갈 수 없었던 까닭으로 무릉도원만을 절대적인 이상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국내에서 도화원과 유사한 이상향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많았다. 청학동(靑鶴洞), 봉래산(蓬萊山), 우복동(牛復洞), 소동천(小洞天) 등을 제2의 무릉도원으로 인식하여 찾아 나서기도 하고 시문에 이를 운위하였다. 그러나 청학동 등이 도화원의 차선책은 될 수 있었으나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이상향은 역시 무릉도원이었다. 6)
5) 허 용,「조선시대 도원도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pp. 18-35 참조.
6) 김상홍, 앞의 논문, p. 264.
2.2. 도연명과 <도화원기>의 내용
무릉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로부터 유래된다.
도연명은 중국 동진(東晉) 말기부터 송(宋) 초기에 살았던 문인이다. 본명은 잠(潛)이고 자는 원량(元亮) 혹은 연명(淵明)이라고 한다. 그가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든 가정 형편 속에서 책과 거문고를 좋아했고 육경(六經)을 익혔는데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 22살(393년)에 관직에 나갔다. 그러나 관직에 나갔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하였는데 405년 마흔 한 살 때는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으로 부임하던 중 취임 80여일 만에 관직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을 은거하며 전원생활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해 지은 406년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서문에 벼슬을 그만둔 이유와 당시의 심회가 잘 나타나 있다. <도화원기>는 도연명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생활을 하던 417년에 지은 글이다. 동시에 지어진 시(詩)와 기(記)는 ‘도화원시 병기(桃花源詩 幷記)’라는 작품으로 전해진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한편 도원의 공간 설정이 동굴과 같은 작은 입구를 지나 별천지에 이르게 된다는 점, 다시는 별천지를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의 이야기 방식은 도연명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진대(晉代)의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실린 몇 작품과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지역들은 모두 도연명이 살았던 곳과 멀지 않는 지역이며 동굴이 많은 호남성(湖南省)의 형산(衡山)을 중심으로 채집된 민간설화가 바탕되어 있다. 그러므로 <도화원기>는 당시 지역의 설화에 영향받았다는 설도 있다. 7)
7) 허 용, 앞의 논문, p. 12 참조.
<도화원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진(東晉) 태원 연간 때 무릉이라는 곳에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가 살았다. 계곡을 따라 배를 저어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허둥대고 있는데 눈앞에 복숭아꽃 숲이 펼쳐져 있었다. 언덕을 끼고 수백 보를 걸어가도 숲에는 복숭아나무 외에 다른 나무는 없고, 신선한 풀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으며 꽃잎들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어부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고 그 숲의 끝까지 가보았다. 숲은 물이 솟아오르는 곳에서 끝이 났지만 거기에는 산이 하나 나왔다. 그 산에는 동굴 같은 작은 입구가 있었고 그쪽에 어렴풋이 빛이 있는 듯하였다. 어부는 배를 두고 그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입구가 좁아서 겨우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으나 수십 보를 더 들어가니 훤하게 밝았고 앞이 트여 있었다. 그 곳의 땅은 넓은 들판이었고 집들은 모두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도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 대나무 등이 있었다. 길이 사방으로 통해 있었고, 농사짓는 농부들의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어디선가 닭의 울음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외부의 것과 같았고 노인과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은 어부를 보더니 도리어 크게 놀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으며 어부는 자세히 대답했다. 사람들은 어부의 말을 듣고서는 그를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차리고 닭을 잡아 음식을 대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찾아와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선대에 진(秦)나라의 난을 피해서 처자와 마을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로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아 바깥의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하였다. 지금 밖은 어떤 세상이냐고 묻는데 그들은 한(漢)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위(魏)나라와 진(晉)나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말해주었더니 이들은 모두 놀래며 탄식을 하였다. 마을의 나머지 사람들도 각각 그들의 집으로 어부를 초대했고 모두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어부는 마을에서 수일동안 머물러 있다가 작별을 고하고 떠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 일을 바깥의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마을 밖으로 나온 후, 어부는 배를 찾아 타고서 이전에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 놓았다. 어부는 마을로 돌아와 태수를 찾아가 이러한 일들을 이야기했고 이 말을 들은 태수는 곧 사람을 보내 어부가 표시한 곳을 찾게 했으나 매번 길을 잃었고 다시는 그 길을 찾아 내지 못했다. 남양에 유자기라는 고상한 선비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가 보고자 하였으나 끝내 길을 찾지 못하였으며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이후로는 무릉도원을 찾거나 길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8)
(晉太元中,武陵人捕魚爲業,緣溪行,忘路之遠近. 忽逢桃花林,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漁人甚異之. 復前 行,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捨船 從口入.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土地平曠, 屋舍儼 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其中往來種作,男女 衣著,悉如外人. 黃髮垂髫,並怡然自樂. 見漁人,乃大驚. 問所從 來. 具答之. 便要還家,爲設酒殺鷄作食. 村中聞有此人,咸來問訊. 自云先世避秦時亂,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今時何世. 乃不知有漢,無論魏晉. 此人爲具言所聞, 皆歎惋. 餘 人各復延至其家,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 道也. 旣出,得其船, 便扶向路,處處誌之. 及郡下,詣太守說如此, 太守卽遣人隨其往,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南陽劉子驥,高尙士 也. 聞之,欣然規往. 未果,尋病終, 後遂無問津者)
8) ‘도화원기’에 대한 번역은 번역자에 따라 문장 기술이 조금씩 다르나 대개 내용은 같다. 본 논문의 번역은 필자가 기존의 번역을 약간 각색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면 어부가 복숭아꽃에 이끌려 도원에 들어가 도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을 보고난 후 자신의 마을로 되돌아오는 과정과 다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내용의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지역설화를 이야기식으로 묘사하였는데 도교적 선경과 자연 은일사상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대에 많은 문인들과 화가들에 의해 이상향적 낙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3. 무릉도원의 표현
3.1. 중국에서의 무릉도원도 표현
중국에서 <도화원기>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 표현한 ‘무릉도원도’는 당(唐)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왔으나 송대 이전의 작품은 전해지지 않고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도화원기>에 담겨져 있는 설화적 요소와 도교적 요소가 그대로 반영된 표현이었으나 문인들이 도원에 대해 재해석하는 입장이 나타나면서 그림에서도 변화하는 양 상을 지니게 된다. 즉 초기에는 신선들이 사는 낙원의 공간으로 묘사되다가 점차 현세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9) 본 연구에서는 중국의 ‘무릉도원도’ 가운데 시대별 중요 작품을 사례로 하여 그 표현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 10) 당나라 시기에는 ‘무릉도원도’가 기록으로만 남아있는데 서원여(舒元輿)의 시와 한유(韓愈)의 ‘도원도’라는 시에서 그 기록을 볼 수 있다. 오대(五代)에는 형호(荊浩)와 관동(關仝)의 도원도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11) 송대(宋代)에는 조백구(趙伯駒), 이소도(李昭道)의 작품이 명대(明代)에까지 전해졌다고 하나 현존하여 전해지지 않는다.
9) 허 용, 위의 논문, pp. 1-2 참조.
10) <무릉도원도>의 현존하는 작품은 많지만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은 송(宋)대 조백구(趙伯駒) 작품의 방작, 명(明)대의 문징명(文徵明), 구영(仇英), 사사표(査士標), 청(靑)대의 석도(石濤), 고상(高翔), 근대의 장대천(張大千)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중국에서 무릉도원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무릉도원도’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들을 검토해 보겠다.
11)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志)』에 형호와 관동이 남긴 작품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박은화 역, 『도화견문지(圖畵見聞志)』, 시공아트, 2005, p.122와 p.157 참조.
조백구의 무릉도원도는 명청대(明淸代)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임모되고 방작되었는 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구영(仇英)의 <방조백구도원도(倣趙伯駒桃源圖)>이다.
<방조백구도원도>는 가로가 4m 넘게 <도화원기>의 내용을 스토리텔링하여 충실하게 나열하고 있다. 도원의 동굴 입구 풍경부터 도원을 나오는 어부의 모습에 이르는 <도화원기>의 중요한 서술 내용을 빠짐없이 그려 놓은 것이다.
또한 구영은 <도원선경도> 같은 작품도 제작하였는데 <도화원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 청록산수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단과 상단 부분의 높은 산 위에는 누각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동굴 주변과 산에 그려진 나무 등이 복숭아 나무가 아니라 소나무나 고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면의 하단 부분에 동굴을 배치하고 동굴 속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도화원기>의 내용을 새롭게 변형시켜 놓고 있다.
왕몽(王蒙)의 <도원춘효도(桃源春曉圖)>는 <도화원기> 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재현하여 놓기보다는 도원을 찾아가는 어부의 모습을 통하여 부분적인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이 때 어부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엮어가는 어부가 아니라 은자(隱者)를 묘사하고 있다. <도원춘효도>에서는 좌측 중앙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에 가려져 도원으로 향하는 길과 동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의 풍경과 어부의 표현에서 도원을 향한 열망을 볼 수 있다.
명대 주신(周臣)의 <도화원도(桃花源圖)>는 상단부 오른쪽에 높고 험한 산을 배치하고, 중단부 윗부분에 도원의 마을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중단부 아래에는 산의 구릉과 언덕, 큰 나무, 동굴을 배치하였는데 동굴 앞에 나룻배가 있다. 마을의 입구에는 어부와 도원 사람들의 만남을 그려 놓고 있는데 특히 동굴 부분과 마을을 연결하는 부분을 거리가 있게 표현하여 격리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문징명(文徵明)의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는 가로가 약 6m나 되는데 조백구의 작품을 모작한 것으로 <도화원기>의 내용을 상세하게 재현하였다. 내용이 상세하다 보니 구성이 복잡해졌으며 시점도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전과 같이 청록산수화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징명의 산수화 표현 형식인 수묵과 담채를 중심으로 하여 맑고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명대 사사표(査士標)의 <도원도(桃源圖)>는 가로로 그려져 있다. 산수의 풍경이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산의 준들이 단순화되어 있으며 부감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어부와 주민들이 만나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 도원은 농촌 풍경같이 표현되어 있다.
석도(石濤)의 무릉도원도는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는데 75세 되는 해 비자형(費滋衡)이 읊은 도원시(桃源詩)의 시의(詩意)에 맞춰 그린 그림으로 만년작이다. 선경과 같은 깊은 산의 풍경이 아니라 농촌 풍경과 같은 표현으로 현실적 정취가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전체 화면에서 좌우가 넓은 여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산의 준 등이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고, 산수의 표현이 수묵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위에 담채를 하였다.
장대천(張大千)은 사천성(四川省) 내강(內江) 출신으로 원래 본명은 정권(正權)이고 후에 원(爰)으로 개명하였다. 대천은 법명(法名)으로 환속한 후에는 법명을 주로 사용하였다. 1960년대 중반기 무렵에는 발묵법(潑墨法)에 색을 섞거나 뿌려서 산수풍경을 웅대하게 표현하거나 환상적인 표현을 하였다. 그리고 거대한 화폭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도원도>에 서도 그러한 발묵법과 뿌리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도원도>는 장대천이 대만에 살고 있을 시기인 만년에 그린 것이다. 세로로 길게 그려졌는데 하단 부분에 복숭아 나무와 나룻배를 탄 어부를 배치하고 중단 부분의 좌측에 동굴을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사용하여 도원의 넓은 풍경들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도원의 입구가 발묵과 발채에 의해 청록 산수화 같이 웅대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풍경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3.2. 한국에서의 무릉도원도 표현
한국에서도 ‘무릉도원’에 관한 문학 작품들이 많아 ‘무릉도원도’가 많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소수이다.
현재 조선 말기까지 작품에 ‘무릉도원’에 관련된 제목을 사용하여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 조속(趙速)의 것으로 전해지는 <도원도>, 이광사(李匡師)의 <도원도>, 장득만(張得萬)의 것으로 전해지는 <도원도>, 심사정(沈師正)의 <무릉도원 산수화>, 정선(鄭敾)의 부채에 그린 <도원도> 이하곤 (李夏坤)의 <도원문진도>, 장시흥(張始興)의 부채에 그린 <도원도>, 윤제홍(尹滓弘)의 <도원도>, 이방운(李昉運)의 <무릉춘색도>, 김수철(金秀哲)의 <무릉춘색도>, 이인문(李寅文)의 <도원춘색도>, 원명웅(元命雄)의 <도원춘색도>, 장승업(張承業)의 <도원도>, 안중식(安中植)의 <도원문진도> 등이 있으며 그 외 작자 미상의 것들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작품 가운데 중요 작품 몇 가지를 선택하여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검토해 보도록 하겠 다.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안평대군 (安平大君)으로부터 1447년 음력 4월 20일 꿈속에서 도원을 여행한 것을 그리라는 명을 받고 3일 만인 4월 23일에 완성한 그림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무릉도원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와 그림의 내용이 발문에 기재되어 있는데 안평대군과 함께 당시 대표적인 문인 20명의 시문과 글씨가 담겨 있다. 발문내용은 도연명의 <도화원기> 내용과 비슷한데 인적이 없는 곳으로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신선이 사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왼쪽은 현실세계로 설정되어 있고, 중간부분은 현실세계에서 도원경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며, 오른쪽은 도원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부감법으로 표현되어 웅장하게 보이는데 고원, 심원, 평원의 삼원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도원 부분은 높고 험한 산들로 감싸여 있고 나무들은 복숭아꽃으로 그려져 화사한 분위기가 난다.
정선(鄭敾)의 <도원도>는 부채에 그린 그림이다. 화면의 우측 하단 부분에 작은 동굴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 나룻배 한 척이 있다. 좌측에는 논밭과 복숭아나무가 있다. 나무 아래에는 어부와 도원의 주민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있다. 상단부는 산으로 가득 차 있고 산 아래에는 마을이 배치되어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도원을 수묵으로 표현하였고 도원 속의 인물보다는 산수의 배경이 강조되어 있는 점이다. 그리고 정선 특유의 표현법이 더해져 마치 일반적인 산수화와 유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도원의 내용 보다는 산수풍경을 표현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 외에 여러 점의 ‘무릉도원도’를 그린 것으로 전한다.
이광사(李匡師)는 서예가로 몇 점의 그림을 남겼다. 이광사의 <도원도>는 이와 동일한 임모본이 몇 종 더 있는데 이광사가 기존의 것을 임모한 것으로 보인다. <도원도>는 <도화원기>의 내용을 충실하게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우측하단 부분에 동 굴과 나룻배를 위치시키고 중앙부에는 도원의 사람들과 어부가 만나는 장면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좌측 상단에는 산과 나무로 둘러쌓인 도원의 마을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어부가 도원에 들어간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그려내어 도원의 전체 풍경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이하곤(李夏坤)의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는 조선 후기에 그려졌다. 이하곤은 정선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는데 전문화가라기 보다는 문인화가였다. <도원문진도>는 <도화원기>의 부분적 내용을 그린 것으로 하단에는 나룻배와 어부, 중단에는 동굴, 상단에는 복숭아꽃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 이상세계를 표현한 도원과는 다르게 익숙한 현실 적인 풍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단 부분에 그려져 있는 집과 울타리, 들판, 나무, ... 복숭아꽃은 당시 현실 속의 평범한 농가처럼 보인다. 즉 현실에서 도원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이처럼 이하곤의 <도원도>는 현실의 낙원이 설정되어 있는 작품 이다.
안중식(安仲植)은 조선 말기와 근대 초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산수화는 수묵담채 산수, 청록 채색의 채색산수, 실경의 실경 산수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수 개의 <도원도>를 남겼다. 그의 <도원도>들은 대부분 청록산수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기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1913 년에 그려진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와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1913년에 그려진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는 화려한 색채의 청록산수화로 그려져 있다. 하단부에 나룻배를 탄 어부가 있고 산은 겹겹으로 쌓여 중단부에서 상단부로 향하고 있는데 상단부로 갈수록 험준해 보인다. 이러한 표현은 중국화보의 준법과 우점준으로 산의 형태를 그렸는데 전체적으로 같은 형태와 구도를 반복하여 중 첩된 산형을 이룬 공간처리로서 유기적인 작례(作例)를 보여주고 의식적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12)
12) 허영환,『 심전 안중식』, 예경, 1989, p. 7.
이상과 같이 조선조까지 그려진 무릉도원도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도연명의 <도화원기> 내용을 재현해 놓은 것과 <몽유도원도> 처럼 도원을 꿈속 같은 내용으로 재해석하여 그려놓은 것도 있다. 특히 중국의 무릉도원도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산과 기암으로 이루어진 표현도 있지만 도원의 주변 풍경이 조선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으로 변이된 것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은 무릉도원도가 작가와 시대의 주변적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무릉도원도 표현과 성격
4.1. 무릉도원도의 표현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표현되고 있는 무릉도원도는 재료나 기법에 의한 분류도 할 수 있겠지만 크게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하여 재해석하는 부류와 <몽유도원도> 와 관계없이 무릉도원을 상상하면서 재해석하여 표현하는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몽유도원도>의 원본 차용과 재해석’ ‘<몽유도원도>의 변형을 통한 재해석’ ‘자연풍경의 무릉도원 해석’ ‘사회현실의 비판을 통한 은유적 무릉도원 해석’으로 분류해 볼 수 있 다. 이를 검토해 본다.
◦ <몽유도원도>의 원본 차용과 재해석
(이상현)
이상현의 작품세계는 시공간이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하나의 공간 속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따로 하는 등 네러티브가 복잡하다. 나아가 사진뿐 아니라 영상 속에서 과거와 현실의 역사적 문제까지 다루고 있어 복합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현의 도원도도 복합적인 작품이다. 화면을 이루는 배경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하고 있지만 곳곳에 할리우드 간판, 미사일, 슈퍼맨, 말,... 고층 건물 등을 배치하였는데 이미지들은 북한과 미국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배치들은 상상하였을 것이다. 내가 만드는 이념, 인종, 문화 간의 갈등이 없는 인류가 다 함께 살아가는 도원의 세계이다.”13) 라고 말하고 있다.
13) 이상현의 2009년 <작가노트> 중에서.
여기서는 <몽유도원도>의 차용을 통해 현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이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존하는 세계임을 나타내고 그 공존 속에서 이상적 낙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시공간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인하여 과잉과 충돌이 일어난다.
작가노트에서는 <sympony9몽유도원도>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sympony9 몽유도원도>는 로린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008년 2 월 북한의 동평양극장에서 드보르작의 심포니 9번 신세계를 연주한 것을 기념하는 작업이다.
그날 연주가 끝나자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미사일과 핵개발 등으로 긴장이 높아지는 북한과 미국은 적대관계이지만 사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신세계이다.
드보르작이 19세기 말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이민선에서 내리던 사람들이 찾던 미국을 신세계로 보았듯이 북한 또한 그들만의 신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드는 이념, 인종, 문화 간의 갈등이 없는 인류가 다 함께 살아가는 도원의 세계이다.”13)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몽유도원도>의 차용을 통해 현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이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존하는 세계임을 나 타내고 그 공존 속에서 이상적 낙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이남 )
이이남은 동서양의 유명작품을 차용하여 현대적인 시간성을 담아내는 영상작업을 이어간다. 유명작품들은 디지털 영상기술과 그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이이남의 작품에서 동양미술은 한지에 그려져 있는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영상매체를 통해 입체화되고 움직이는 모습으로 새롭게 표현된다. 그리고 서양미술은 인상주의, 팝 아트를 비롯한 유명작품들이 재해석되어 있다.
이이남의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하여 재해석한 것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평면화 되고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라면 이이남의 <몽유도원도>는 영상기법을 통하여 입체화 되고, 움직이며, 살아있는 풍경으로 변화하였다. 영상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산들이 입체적으로 재현되면서 현실풍경으로 바꾸어놓았다. 폭포에서는 물이 쏟아지고 다양한 꽃들은 아름답게 피어 있다. 계절에 따라 색채가 변화하기에 시간 변화의 속도감도 느껴진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유명작품의 되살림이고 새로운 산수풍경이다. 이와 같은 이이남의 <몽유도원도>는 과거의 작품을 현재의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시간을 전복시킨다.
또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함으로서 창조와 복제의 경계를 와해시키고 있다.
(이순구)
이순구의 <관념의 정원-무릉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 우측 부분을 그대로 차용하고 그 위에 원형의 빨강, 보라, 파랑, 검정, 녹색, 흰색의 작은 점들을 그려넣었다. 그리고 작품의 중앙 부분에는 <몽유도원도>와 다른 사각형으로 되어있는 새로운 공간을 설정하였는데 그 속에는 의자와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의자는 비어 있어 주인공의 부재로 이해되기도 하며, <몽유도원도>의 드러나지 않은 역사적 상상 부분을 확대하여 그려 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중앙 부분의 의자와 소나무가 있는 사각형의 풍경이 또 다른 공간의 화면 분할을 통한 이중화면으로 보이는데 이상과 현실의 대립적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에는 감상자의 상상력이 더해진다. 차용된 <몽유도원도>와 의자와 소나무가 있는 공간 사이에 설정된 미확정성의 공간이 여러 가지 해석을 하게 만드는 텍스트로 작용되는 것이다.
(구본아)
구본아는 ‘物’ 연작으로 벽, 혹은 파편의 흔적들에 나비와 풀잎, ... 괴석, 산의 이미지 등을 몽타주 하듯이 편집하여 시간의 흔적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마치 화석 같은 느낌을 주어 지나가 버린 시간과 빛이 바랜 기억을 상기시켰다.
구본아의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유사한 괴이한 산과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物’연작에서 보여주던 사물들의 파편 흔적들이 사용되면서 산수화가 표현되어 있다. <몽유도원도>의 이미지를 차용하되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동양 산수화의 기법과 서양화의 초현실적 기법을 융합하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괴이한 산과 함께 꽃, 나비, 얼음 결정, 풀잎, ... 등 과거의 흔적과 시간을 상징하는 듯한 이미지들이 몽타주 되어 환상적인 풍경으로 연출되어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꿈의 이야기를 표현해 놓듯 구본아도 산과 함께 주변의 흔적들을 몽타주 하여 문명과 자연의 융합속에서 나타나는 몽환적인 기묘한 풍경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의 <몽유도원도>는 현실의 이미지를 모아 비현실적 산수풍경을 형상화 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원본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표현하면서 마치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하는데 무릉도원이란 과거와 현재의 시간과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몽환 속의 세계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민진)
이민진의 <신도원경>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하고 있다. 중앙 부분에는 넓은 분지를 배치하여 변화를 주었다. 분지에는 호랑이, 부엉이, 멧돼지, 닭, 새, ... 거북이, 나비, 모란꽃, 연꽃 등 각종 동물과 곤충, 식물이 어울려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무릉도원 속에서 자연과 동식물들이 상생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데 여기서 모란이 부귀를 상징하고 있듯이 호랑이는 수호신, 부엉이는 지식을 상징하며 등장하는 사물들이 각기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릉도원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곳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진의 <신도원경>은 비현실적인 무릉도원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데 청정한 자연을 넓게 제시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부재하고 동물과 곤충 그리고 식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강렬한 색상을 발 하면서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은 이민진의 <신도원경>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욕망 속에서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향은 온갖 동물과 곤충, 식물들의 어울림으로 나타내었는데 오염이 없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무릉도원의 풍경 속에서 만물 들이 상생하며 공존하는 낙원을 표현하고 있다.
◦ <몽유도원도>의 변형을 통한 재해석
(석철주)
석철주의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원본을 차용하지 않고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래 <몽유도원도>는 꿈에서 본 이상향을 그린 것으로 봄날 복숭아꽃이 만발한 계곡의 풍경이다. 그러나 석철주는 재해석하여 화면 전체를 분홍색이나 청색, 보라색 등 단색으로 나타내고 있다.
석철주는 전통의 동시대적 재해석이라는 과제를 통하여 새로운 무릉도원의 풍경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화와 서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나드는 퓨전형 산수화를 통하여 무릉도원을 현대적 산수풍경의 표현으로 재해석해 내고 있다. 단색의 색채로 나타나 있는 산수풍경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다른 느낌의 생명력과 자연감을 드러낸다. 이는 자연을 동경하는 석철주 내면세계의 반영이다. 그의 <몽유도원도>는 높고 깊은 수많은 산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기암괴석이 구름과 어울려 환상적인 정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재해석하였는데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풍경이다. 여기서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재구성하였을 뿐 아니라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릭을 이용했고, 물감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지워 내는 기법을 사용하면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혼용한 퓨전적 표현을 하고 있다.
석철주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 전통과 가치를 되새기면서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자고 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 는 것이다.
(엄태림)
엄태림의 <신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원본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변형시켜 이용하고 있다. 화면 전체는 고원, 심원, 평원의 삼원법과 부감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아시아와 한국의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에서 나타나는 문양들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도상으로 만들었다.
작품의 좌측면은 복잡한 현실세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여인의 형상은 상상 속의 이미지이다. 여인의 주변에는 스트레스와 굶주림, 헤어짐, 이모티콘, 네일아트, 립스틱, 하이힐 등의 이미지가 있다. 또한 각종 음양의 문양과 연화문, 제강, 치우, 형천, 서왕모가 표현되어 있다. 작품의 우측면은 승화와 낙원을 뜻하는데 무릉도원을 나타내는 복숭아로 주제를 감싸고 있으며 교통표지판, 새 등의 이미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에서 나타나는 여러 도상들이 혼합이 되어 ‘다문화 아이콘의 혼성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어 혼란스럽다. 그러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무릉도원은 저기 따로 떨어진 비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많은 것들이 모여 서로 충돌하는 곳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자연풍경의 무릉도원 해석
(왕형열)
왕형열이 나타내는 무릉도원은 도원명의 <도화원기>에서와 같이 복숭아 꽃이 피어있거나 신선이 사는 세계가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풍경으로 평범한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외연적인 것이고 내포는 자연풍경과 새를 통하여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활 속에서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적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즉 <도화원기>의 내용을 그려 놓은 것이 아니라 그 내포된 의미만을 재해석하여 현대적인 퓨전 산수화기법으로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펼쳐 놓는다.
그리고 의인화된 새들이 자연의 편안한 안식처를 찾아다니는 풍경을 표현하는데 있어 전체 화면을 빨간색으로 표현하여 현실과는 다른 환상속의 산수풍경이 제시되고 있 다. 그리고 도시의 건물 사이로 새들이 안식처를 찾아다니는 도시 속 무릉도원의 존재를 암시하는 풍경 등 다양한 무릉도원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의 <신몽유도원도> 에서도 무릉도원은 이상향적 선경이 아니라 바로 이웃들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임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새는 외롭게 혼자 있기도 하고 여러 마리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새와 말 그리고 파초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데 자유로운 여행과 조용한 침묵 속의 휴식을 즐기며 이상적 낙원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 사회현실의 비판을 통한 은유적 무릉도원 해석
(홍성담)
홍성담의 <신몽유도원도>는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지향하며 세상을 정화하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은 가운데 부분의 아기를 중심으로 크게 좌측과 우측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측은 붉은 망토를 걸친 파시스트가 있는데 몸에는 칼이 여러 개 꽂혀 있고 그에게서 미사일과 내장이 내려오고 있다. 파시스트의 좌측에는 허수아비가 죽은 돼지와 수간(獸姦)을 하고 있으며 허수아비의 머리에 서는 몬스터의 세상이 설정되어 있다. 좌측은 밥을 든 거대한 여신상이 서 있는데 여신의 얼굴을 찢고 호랑이가 나오고 있다. 여신의 우측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고통 중에 아기를 낳고 있으며 그 아기의 머리에는 삶과 죽음, 사랑과 투쟁 같은 내용이 펼쳐져 나온다.
이와 같은 작품 속에는 생명의 물줄기, 궁사, 동물, 바리데기 공주, 우주나무, 연꽃, ... 등 우리 민족과 관계있는 설화의 내 용이 표현되어 있다.
홍성담의 <신몽유도원도>에는 제목과는 다르게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이미지가 없다.
2000년대 문명이 지니고 있는 모순과 다툼 그리고 민족에 관계되는 내용들이 가득 차 있다. 무릉도원이 낙원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반하여 홍 성담은 오히려 현실의 모순된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신몽유도원도>는 세계 와 우리민족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에 대한 현실비판적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릉도원이라는 낙원에 대해 알레고리적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4.2. 무릉도원도의 성격
동양에서 이상향에 대한 표현은 도연명의 <도화원기> 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에서 무릉의 한 어부가 찾아낸 이상향에는 토지가 비옥하며,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짐승들이 있으며, 복숭아꽃이 만발한 평범한 마을로 묘사되어 있다. 즉 신선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현실적 공간이었으며 전쟁과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이러한 이상향의 공간은 동양의 문화 속에서 문학이나 미술작품을 통하여 형상화되어 왔고 현실에서 좌절을 겪을 때 마다 사람들이 찾아가고자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근원적 열망이 투사된 상징적 공간이 무릉도원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무릉도원을 꿈꾸는 것은 현실세계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 전쟁, 권력, 소외 등 수많은 문제로 서로 갈등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 이에 사람들은 고통이 없고, 갈등이 없으며, 희망이 가득하여 후손들에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물려줄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꿈꾼다. 동시대에서도 무릉도원은 평화와 안식의 공간이며 자연과 합일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무릉도원이 평화로운 자연공간의 이상향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아무나 알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상상으로 상정되어 있는 공간이다.
무릉도원의 표현을 통한 이상향의 동경은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2000여년 전 도연 명의 <도화원기> 에서 시작된 무릉도원도의 이미지가 오늘날 미술 작품에서 형상화된 이미지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한국의 현대 미술에서 형상화된 무릉도원은 작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오늘날 작가들이 기존의 작품을 바탕으로 재해석하거나 새롭게 해석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자연 친화적이며 평화적인 이상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갈등의 공간인 현실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무릉도원에 대한 작품들 은 심리적 이미지의 형상화로 보인다. 고단한 현대인들에 게 무릉도원이라는 낙원의 ‘상징적 존재’를 제공함으로서 심리적인 욕망 해소의 표현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룰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차라리 주변의 풍경이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하는 데 이는 현실 속에서 무릉도원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무릉도원에 대 한 이미지의 형상화는 이중적 양면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 다.
먼저 무릉도원의 이미지가 여러 작가들에게 소재로 복됨으로서 점차 상품화되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작가나 감상자들에게 욕망해소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고전의 유명작품 차용을 통한 현대적 해석이라는 방법에 이용되면서 고차원적인 상품 소재로 소비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신화된 오늘날 ‘무릉도원’과 같은 낙원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적 낙원이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무릉도원’은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현실 속에서 이미지만 반복적으로 대체될 뿐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는 대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
5. 결 론
인간은 과거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바람에 만족스럽지 못하고 고달프다. 현실은 항상 결핍되어 있고 그 결핍에 의해 불안과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불안과 갈등에서 벗어나는 이상적인 삶을 동경하게 된다. 이상적인 삶의 동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논의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무릉도원’이며 무릉도원은 동양적 낙원의 원형이다.
이 연구는 동양적 낙원의 이상향으로 상정된 ‘무릉도원’이 한국 현대미술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논해 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현실에서의 안녕과 평화에 대한 갈망은 동서고금 어느 시대나 저변에 깔려 있는 인간들의 욕구였고 이러한 욕구들은 현실 저편에 있는 낙원을 제시하기에 이르렀으며 낙원은 예술표현을 통하여 형상화하여 왔음을 알 수 있었 다.
둘째, ‘무릉도원’에 대한 해석은 신선들이 사는 선계, 현실과 격리된 마을, 주변의 자연과 함께하는 평범한 마을 등 각 시대마다 현실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 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염원하는 세상이 작가의 상상으 로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한국 현대미술에서 ‘무릉도원’은 작가들의 개별적 상상력이 더해져서 새롭게 재해석되어 표현되었는데 기법면에서 크게 회화와 영상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었 다.
넷째, 고전을 차용하여 재해석하는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하고 이를 무릉도원의 원형으로 제시하면서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섯째,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와 현실의 모순된 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현실비판을 통하여 낙원에 대한 바람을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여섯째, 때로는 무릉도원을 주변의 자연에 대한 경탄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는데 무릉도원이 다른 세계가 아니라 복잡하고 바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평화를 누리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곱째, 낙원으로 상징되는 ‘무릉도원’이 이전과 같이 저 멀리 이상적 동경의 세계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 낙원을 제시하려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영상 미디어 등으로 자연 풍경을 입체화하여 더욱 환상적인 풍경의 낙원을 제시하려 하는 면도 볼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결과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현국 현대 미술 속의 ‘무릉도원’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영향이 많았으나 공통된 낙원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형상화된 무릉도원의 배경에는 현대생활 속에서 안녕과 평화를 염원하는 공통된 욕망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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