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 연중 제24주일(9/15)

2013. 9. 18. 14:33경전 이야기

 



연중 제24주일(9/15)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하신 이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그 무엇보다 가장 기쁘게 여기십니다. 일상 안에서 찌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 내어 보이고, 그분께서 우리를 말끔히 씻어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백성을 대표하여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수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神)으로 섬긴다.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시어 그들을 벌하려고 하셨지만, 모세의 간청에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한때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처럼 죄인들 가운데 첫째가는 죄인인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사도로 불러 주신 하느님께 찬미드린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드시며 하느님의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여기서 하느님의 기쁨이란 죄인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7-11.13-14 그 무렵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1,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보면 무언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은아들이 먼 고장으로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올 때의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챙겨 나갈 때만 해도 그는 분명 화려한 옷차림에 말끔한 용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그렇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옷도 누더기였을 것이고, 신발도 없었을 것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는 여느 거지나 다름없는 작은아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알아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였을까요? 자식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 대목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난 뒤부터 줄곧 그 아들을 걱정하였을 것입니다.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기는 하는지, 거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강도를 만나지는 않았는지, 죽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지 차림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먼 데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며 주님을 등져 버렸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신 곁을 떠나 영혼이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시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시며 늘 기다리십니다. 그것이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일어나 아버지께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글쓴이 : 사랑과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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