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 이야기 / 향기. 님의 글

2013. 9. 27. 18:44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가장먼저 봄을 알리는 설중매(雪中梅), 매화(梅花)

 

 

 

 

아직 일부에서는 따스한 날씨 탓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핀다고도 하지만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따로 있다. 눈 속에서 피는 꽃 ‘설중매(雪中梅)’라 불리는 ‘매화(梅花)’가 그것이다. 매화는 한창 추위의 절정을 지난 2월부터 추운 곳에서는 4월에 꽃을 피운다. 은은한 향내와 함께 시든 가지에 피는 꽃의 모습과 나무의 품격이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고 해서 예로부터 사군자 중 으뜸으로 치기도 했다.

사군자 중 하나였던 만큼 매화는 많은 옛글과 그림 속에 녹아들며 그 아름다운 이미지를 굳건히 지켜왔다. 특히나 매화의 아름다움과 그 지조는 수많은 문인에 의해 읊어졌다.

 

서거정이 지은 동문선에 의하면 한국 최초의 매화 시는 신라말 최광유(崔匡裕) ‘정매(庭梅-뜰의 매화)’이다.

 

 

練艶霜輝照四隣 서리 내렸어도 아름다운 자태는 사방을 환희 비추고

庭隅獨占臘前春 섣달 뜰 한 구석에 피어 봄 오기를 기다리네.

繁枝半落殘粧淺 먼저 핀 가지 반은 졌어도 나머지가 그런대로 볼만한데

晴雪初消宿淚新 날 개이고 눈 녹기 시작하자 자면서도 줄줄 눈물을 흘리누나.

寒影低遮金井日 찬 그림자 나직히 드리우고 좁은 방에 해가 비치니

冷香輕鎖玉窓塵 차가운 매화 향기 잠긴 옥창(玉窓)안의 먼지에서 희미하게 풍기네.

故園還有臨溪樹 고향에 돌아가면 나무가 있는 시냇가 먼저 둘러 봐야지

應待西行萬里人 기다려 주오, 서쪽으로 만리 길을 떠나온 이 사람.

 

-「정매(庭梅)」, 최광유(崔匡裕)-

 

 

이 시는 최광유가 당에 건너가 유학하던 시절 장안(長安)에서 설을 맞이하여 매화를 보고 향수에 젖어 지은 것이다. 최광유의 문집은 따로 전하는 것이 없지만, 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매화 시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당에서 유학하던 이들이 많았기에, 최광유가 최초의 매화시를 썼다는 것을 단언할 수는 없으나 현재의 기록으로써는 최초라 봐야 할 것이다.

매화는 겨울에서 봄이 오는 듯한 아직은 추운 시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러한 특성 탓에 매화와 관련한 시에서는 계절의 변화 속 그 아름다움을 많이 노래했다.

 

 

■ 봄을 알리는 꽃

 

매화는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화가 피기 전 얼어붙은 땅 위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겨울은 역학적 사고로는 죽음의 상태에 있는 계절이다. 이 계절의 끝머리에 피기 시작하는 매화는 봄소식을 알려주고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되찾아주는 꽃인 것이다.

 

정도전 또한 매화를 사랑하였던 조선전기 대표 매화 시인 중 한 명이다. 다음은 그가 남긴 시 『영매(詠梅)』 시중 하나로 겨울의 끄트머리에 피는 매화꽃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窮陰塞兩間

何處?春光

可憐枯瘦甚

亦足??霜

 

-「영매(詠梅)」,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이외에도 가장 먼저 이르게 봄을 알리는 매화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 의해 읊어졌다.

 

 

一樹寒梅白玉條 차가운 매화, 한그루 백옥 같은 가지

逈臨村路傍溪橋 다리목 길가에 저만치 피었네.

不知近水花先發 물 가까워 꽃 먼저 핀 줄 모르고

疑是經冬雪未消 겨울이 지났는데도 눈 아직 녹지 않았나 하였더라네.

 

-「조매(早梅)」, 장위(張渭)-

 

 

 

古梅花發小庭幽。

春到南枝最上頭。

誰遣雪來添?媚。

天公應亦好風流。

 

-「영매 권2(詠梅 二首) 」, 이수광-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매화(梅花)」, 이색(李穡, 1328-1396)-

 

 

중국 남송의 대표적 시인 육유(陸游, 1125-1210)와 중국 명말 청초 문인화가인 운수평(1633-1690)도 매화를 찬미한 시를 남겨 또한 그 아름다움이 이미 동양권에서는 인증되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聞道梅花坼曉風 매화는 새벽 바람에 꽃을 피운다고 들었는데

雪堆遍滿四山中 눈더미가 사방 산 속에 가득하구나.

何方可化身千億 무슨 방법으로 이 몸이 천억 개로 나누어져

一樹梅花一放翁 한 그루 매화마다 이 한 몸 육방옹이 마주 서볼까.

 

-「梅花絶句(매화절구)」, 陸游(육유, 1125-1210)-

 

 

雪殘何處覓春光 눈이 아직 남았는데 어디서 봄을 찾으랴.

漸見南枝放草堂 초당 남쪽 매화 가지에 꽃이 막 피려하네.

未許春風到桃李 봄바람이 복사꽃 자두꽃 피워내기 전에

先敎鐵幹試寒香 단단한 가지에 상큼한 향기를 먼저 알리네

 

-「雪中梅(설중매)」, (운수평, 1633-1690)-

 

 

■ 고고한 지조

 

이처럼 춘한(春寒) 속에서 홀로 핀 고고한 자태는 유교적 차원에서 선비의 굳은 지조와 절개를 즐겨 비유하였다. 그리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많이 재배되기도 했다.

조선조 세조 때의 성삼문은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 하여 단종에 대한 연군의 뜻을 눈 속에 피는 매화로 표상하고 대나무가 가진 절개의 뜻을 더하여 충신의 의지를 상징하였다.

선비들은 매화의 곧고 맑은 성품을 노래한 글을 지어 일편단심으로 사모하는 임에게 자신의 간절한 심성을 나타냈다.

 

 

 

庭前兩株梅。秋葉多先悴。谷中彼?蔚。亂雜如爭地。孤標未易保。衆植增所恣。

風霜一搖落。貞脆疑無異。芬芳自有時。豈必人知貴。

 

-「뜰 앞의 매화」, 이황(李滉, 1501-1570)-

 

 

 

 

-「매화(梅)」, 권필( 1569-1612)-

 

 

梅 매

매화

얼음 뼈

옥같은 뺨.

섣달 다 가고

봄 오려 하는데

북쪽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꽃피웠네.

안개 아침에 빛 가리고

달 저녁에 그림자 배회한다.

찬 꽃술 비스듬히 대숲 넘나고

향기는 날아서 금 술잔에 드누나.

고운 꽃송이 잔설에 떨어 안스럽더니

바람결에 날려 이끼에 지니 애석하도다.

굳은 절개를 맑은 선비에 견줄만함을 아니

그 우뚝함 말한다면 어찌 보통 사람에 비하리.

홀로 있음 사랑하여 시인이 보러감은 용납하지만

시끄러움 싫어해 나비가 찾아옴은 허락지 않는도다.

묻노라, 조정에 올라 높은 정승의 지위에 뽑히는 것이

어찌 옛날 임포 놀던 서호의 위, 고산의 구석만 하겠는가.

-「매화(梅)」, 권필( 1569-1612)-

 

 

마치 시가 아니라 그림을 그린 듯한 위의 시는 조선 중기 권필(1569-1612)이 지은 「매화(梅花)」란 작품이다. 보탑시(寶塔時) 형태를 취한 이 시에서는 ‘굳은 절개를 맑은 선비에 견줄만하다(從知勁節可比淸士)’고 말하며 매화의 굳은 절개에 대해 찬미하고 있다.

 

 

■ 아름다움의 극치

 

눈에 비친 새론 매화 한 떨기 옥이 되고

은은한 향기 꽃소식은 춘풍에 실려 오네.

지난 해 파수 다리 곁에서 보았는데

어느 날에 흰 벽 가운데로 옮겨졌나.

 

映雪新梅玉一叢。暗香芳信又春風。

昔年?水橋頭見。何日移來素壁中。

 

-「영화매(詠畵梅)」, 이수광(1563-1628)-

 

앞의 시조는 이수광이 사행을 가던 도중 1년 전 파수 다리에서 보았던 설중매가 어느 날 화폭에 담긴 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눈 내린 가운데 새로 핀 매화, 눈빛(雪)에 부딪혀 청명함이 옥같이 눈부시다. 설중매의 뛰어난 자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청아한 외모에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는 온축된 덕이 저절로 품어져 나오는 듯하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고결한 화목으로 전통문화에서 그 청초한 자태와 향기를 가진 탓에 미녀에 즐겨 비유되었다. 옛 기생들의 이름에서 ‘매화 매(梅)’ 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관련한 것이다. 그 예로 조선시대 여류시인이자 기생이었던 매창(梅窓1573-1610)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창은 매화만큼이나 아름다운 미모 덕에 주변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매창은 점잖은 시 한수로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고는 했는데, 다음의 시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매창(梅窓), 매화도(梅花圖)

 

 

平生不學東家食 평생을 두고 동가식은 배우지 못했으니

只愛梅窓月影斜 다만 매화 핀 창가에 비낀 달빛을 사랑할 뿐

詞人未識幽閑意 선비들은 나의 그윽한 마음 모르고서

指點行雲枉自多 한 점 떠도는 구름 가리키며 스스로 취하는 굽은 마음.

 

-매창(梅窓, 1573-1610)-

 

 

이규보는 「매화」에서 순결한 미녀를 두고 ‘옥 같은 살결엔 아직 맑은 향기 있네.’라고 노래하였고 민요 「배꽃타령」에서는 ‘매화로세 매화로세 큰애기 얼골이 매화로세’ 와 같이 처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매화에 비기고 있다.

또한, 매화는 아름다움과 함께 정절을 상징하기에 풍습에서 여인들은 매화와 대나무를 함께 새긴 매죽잠(梅竹簪, 비녀)을 즐겨 착용하기도 하였다.

 

 

姑射氷膚雪作衣 고야산 신선 고운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香唇曉露吸珠璣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이슬에 구슬을 마시는구나.

應嫌俗蘂春紅染 속된 꽃술이 봄철 붉은 꽃에 물드는 것 싫어서

欲向瑤臺駕鶴飛 신선 사는 요대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 하는구나.

 

-「매화(梅花)」, 이인로(李仁老, 1152-1220)-

 

 

고려후기 문신이었던 이인로(李仁老, 1152-1220) 역시 그의 시 「梅花(매화)」에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노래하며 요대(신선이 사는 곳)와 같은 신선의 경지에까지 결부시키고 있다.

 

 

하루 종일 매화들을 지켜보는 은자(隱者)가

차례로 피는 매화 실컷 보겠네.

맑은 기운 몰래 쫓아 자연의 기운 변화로 바꾸니

방심은 좋은 시 재촉하기를 먼저 하네

얼음 같이 차디찬 꽃잎과 꽃술은 먼지 한 점 끼기 어렵고

향기 그윽한 눈길에는 나비도 오지를 못하네.

만일 외롭게 피는 매화 천상에다 심는다면

월궁(月宮)의 선녀들 모두 시기하겠지.

-「우차운(又次韻), 이수광(1563-1628) -

 

隱翁終日對叢梅。看盡瓊?次第開。

淑氣暗從寒律轉。芳心先爲好詩催。

氷?冷蘂塵難染。雪逕幽香蝶不來。

若把孤根天上植。月宮仙子摠相猜。

 

지봉 이수광(1563-1628) 역시 매화를 사랑한 문인 중 한 사람으로 매화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시를 많이 읊었다.

 

 

■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매화(梅花)

 

매화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다. 그는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가장 많이 남긴 작가로, 스스로 ‘참으로 매화를 아는 사람(眞知梅者)’이라는 칭호를 짓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매화 시를 별도의 『매화시첩(梅花詩帖)』으로 꾸몄는데, 여기에는 모두 62제(題) 91수(首)의 매화시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적힌 “내 평생 즐겨함이 많지만, 매화를 혹독하리만큼 사랑한다.”라는 문구와 더불어 다음의 시 또한 퇴계의 매화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달이었지.

幾生修到梅花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그는 매화를 직접 가꾸기도 하였는데 그의 매화 시는 이러한 직접적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진정성이 담긴 소산이라 할 수 있다.

 

手種寒梅今幾年 한매를 심은 지가 몇 년이던고,

風烟灑蕭小窓前 바람과 연기가 작은 창문 앞에 쇄소하였구나.

昨來香雪初警動 어제 핀 매화가 처음엔 깜짝 놀라 움직이는 듯,

回首群芳盡索然 돌아보니 다른 꽃들은 다 쓸쓸할 뿐.

 

-「매(梅)」-

 

이황의 매화 사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바로 관기 두향(杜香)과의 애절한 사연이다. 그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세 때 만난 두향의 나이는 방년 18세로 그녀는 빼어난 인물을 지녔으며 시문(詩文)과 거문고에 능하고 화분에 매화를 기르는 분매(盆梅) 솜씨가 좋았다.

 

첫 부인에 이어 재취마저 사별하고 아들까지 잃은 처지였던 퇴계는 두향이 고이 길러온 매화분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황의 풍기군수 발령과 함께 이 둘은 멀리 떨어지고 만다. 두향은 이황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분매와 함께 편지를 보낸다. 매화를 보며 이황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黃卷中間對聖賢 옛 성현의 오래된 책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 밝고 빈 방에 초연히 앉아.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을 보게 되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줄 끊어졌다 한탄하지 않으리.

 

두향을 향한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그의 유명한 유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퇴계는 그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그녀가 보내온 매화분(梅花盆)을 가리키며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고 할 정도로 두향과 매화에 대한 사랑이 매우 깊었다.

 

당시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던 매화는 지금 안동 도산서원의 입구에서 그 대(代)를 이으며 그들의 사랑을 후세에까지 전해나가고 있다.

 

 

전기(田琦), 매화초옥(梅花草屋), 근대한국화

 

 

아주 오래전 우리 조상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매화가 올해도 어김없이 지조를 버리지 않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그 아름다운 꽃잎을 피우기까지 올해도 길고 긴 겨울을 잘 지나왔다. 2월 중순을 향하여 가는 시점, 아직 매서운 막바지 추위가 연일 한창이지만, 지금 따뜻한 남쪽 제주는 가장 먼저 펼쳐질 새봄맞이 매화축제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혹시 춥다는 핑계로 주변 매화나무에 핀 꽃을 눈꽃으로 스쳐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괜스레 되짚어본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산과 들이 너나 할 새 없이 꽃불을 질러대는 봄의 한창에 서기 전, 추위 속에서도 고고한 꽃잎을 피우며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매화와 함께 막바지 겨울의 냉기를 즐겨보기를 권한다. 혹시라도 추위를 뚫고 핀 매화에서 잠시나마 선조의 올곧은 정신세계의 도를 터득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글 오소미

 

 

 

 

 

 

 

 

 

 

 

 

동문선(東文選) > 동문선 제12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정매(庭梅)  최광유(崔匡裕)

 

비단처럼 곱고 서리처럼 빛이 나서 이웃까지 비추니 / 練艶霜輝照四隣

뜰 한 구석에서 섣달의 봄을 독차지했구나 / 庭隅獨占臘天春

번화한 가지 반쯤 떨어져 단장이 거의 스러진 듯 / 繁枝半落殘粧淺

갠 눈이 갓 녹아 눈물 새로 머금었네 / 晴雪初銷宿淚新

찬 그림자는 나직이 금정의 해를 가리웠고 / 寒影低遮金井日

싸늘한 향내는 가벼이 옥창의 먼지를 잠갔구나 / ?冷香輕鎖玉窓塵

내 고향에도 시냇물 가에 몇 나무 / 故園還有臨溪樹

서방에 땅 손질하는 만리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리 / 應待西行萬里人

 

 

 

동문선(東文選) > 동문선 제19권 > 오언절구(五言絶句)

 

영매 이수(詠梅 二首)  정도전(鄭道傳)

 

오랜 이별 뒤에 한 번 서로 만나니 / 久別一相見

깨끗이 치의(緇衣)001]를 입었구나 / 楚楚着緇衣

다마 풍미가 있음을 알고 / 但知風味在

얼굴이 그릇됨을 묻지 말라 / 莫問容顔非

 

옥을 새겨 옷을 짓고 / 鏤玉製衣裳

얼음을 마셔 성령을 길렀네 / ?氷養性靈

해마다 서리와 눈을 띠고 / 年年帶霜雪

봄빛의 영화로움을 알지 못하네 / 不識韶光榮

 

[주D-001]치의(緇衣) : 경대부(卿大夫)가 사조(私朝)에 거할 때에 입는 옷이다.

 

 

 

삼봉집(三峯集) > 삼봉집 제1권 > 오언절구(五言絶句)

 

매화를 읊다[詠梅]

 

아득하고 아득하다 강남의 꿈이 / 渺渺江南夢

날리고 날리어라 재 밖의 혼이 / ??嶺外魂

상사에 잠겨 부질없이 서 있노라니 / 想思空佇立

더더군다나 갓 떠오른 황혼일레라 / 又是月黃昏

 

또[又]

맑고 청명한 소리 거문고 줄이라면, [어떤 본에는 사(絲)가 현(絃)으로 되었음.] / ??孤桐絲

한들한들 물에 잠긴 연기로구려 / ??水沈煙

희고 희다 벗님의 옥 같은 얼굴 / 皎皎故人面

밤이라 창문 앞에 갑자기 왔네 / 忽到夜?前

 

천지가 궁음에 막히었으니 / 窮陰塞兩間

어디서 봄빛을 찾아볼 건가 / 何處?春光

몹시 마르고 여위었지만 / 可憐枯瘦甚

빙상을 물리치긴 넉넉하다오 / 亦足??霜

 

잔설을 밟아라 나막신 신고 / 著?踏殘雪

이 강물 기슭을 거닐어가네 / 行此江之濱

뜻밖에 찬자(粲者)001]를 만나고 보니 / 忽然逢粲者

그윽한 사람에게 위안을 주네 / 聊可慰幽人

 

한 굽이 시냇물은 맑고 얕은데 / 一曲溪流淺

삼경이라 달그림자 저물었구나 / 三更月影殘

손님네 어서 와서 옥피리 불어라 / 客來吹玉?

홀로 서서 추위를 이기지 못해 / 獨立不勝寒

 

재너머는 봉우리 첩첩 포개고 / 嶺外疊峯巒

바위가엔 얼음 눈이 많기도 하네 / 巖邊足?雪

옥혼이 먼 시골에 떨어졌으니 / 玉魂落遐荒

서로 보자 둘이 다 시름 극하네 / 相看兩愁絶

 

오랜 세월 이별했다 이제 와 보니 / 久別一相見

초초하게 검정 옷을 입었군 그래 / 草草著緇衣 [【안】 이는 묵매(墨梅)를 읊은 것이다.]

풍미 있음을 알면 족하지 / 但知風味在

옛 얼굴 아니라고 묻지 마오 / 莫問容顔非

 

먼 곳 사자 어느 때 출발했는가 / 遠使何時發

만 리 밖에서 처음 돌아왔구려 / 初從萬里廻

봄바람은 아무튼 정다워라 / 春風也情思

불어 불어 손아귀에 들어오네 / 吹入手中來

 

 

정백자(貞白子)는 옥결선생(玉潔先生)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시(詩)를 배워서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시를 배우는 것은 선(禪)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옛사람의 공안(公案)이 스스로 있는데, 선생은 무슨 점으로 인해 시를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네가 선(禪)을 다 배우고 나면 그때 가서 너에게 일러 주마.”

“배운다는 것은 묻지 못하겠거니와, 청컨대 배워서 안 되는 점을 묻고자 합니다.”

“말을 하면 부딪치는 것이요, 말을 하지 않으면 등지는 것이니, 부딪치면 이쪽에 떨어지는 것이요, 등지면 나변(那邊)에 떨어지는 것이라, 부딪침이 아니요, 등짐도 아니요, 중(中)을 중으로 삼아 들어가야만 바야흐로 본분의 풍광(風光)을 엿보았다고 할 수 있다.”

“제자는 근(根)과 기(機)가 낮고 용렬하여 때와 연(緣)도 오지 않았는데, 지금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모기나 등에가 철우(鐵牛)를 깨무는 것과 흡사합니다. 청컨대 선생은 방편(方便)을 아끼지 마시고 한 마디 전어(轉語)를 내려 주시어 끝내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선생은 말없이 한참 있다가 위의 팔절(八絶)을 가늘게 읊으니, 정백자는 듣고는 몸이 오삭하여 하나의 이회(理會)하는 데가 있었다. 그래서 곧 게(偈)002]를 다음과 같이 올리었다.

 

옥을 가늘게 누벼 의상을 짓고 / 縷玉製衣裳

얼음을 마시어 성령 기르네 / ?氷養性靈

해마다 눈서리를 펴고 있으니 / 年年帶霜雪

봄빛의 변영을 알길 없구나. / 不識韶光榮 [어떤 본에는 소(韶)가 소(昭)로 되어 있다.]

[【안】 뒷사람의 평에 이는 세상을 은둔하는 뜻이라 하였다. ]

 

밤은 고요해라 눈이 처음 개니 / 夜靜雪初霽

맑은 달이 반공에 비끼었구나 / 淡月橫半天

애가 다 끊어진 강남 나그네 / 腸斷江南客

시를 읊으며 홀로 잠 이루지 못해 / ?詩獨不眠  [선생은 너는 내 피육(皮肉)을 얻었구나 하였다.]

파사한 광한전의 밤이라면 / 婆娑廣寒夜

냉담한 초택의 가을일레라 / 冷淡楚澤秋

기미야 똑같이 맑다 하지만 / 一般淸氣味

풍류는 호올로 차지했는걸 / 獨自占風流

 

밝은 창에 빛난 궤 비끼었으니 / 明?橫??

소진의 침범을 허하지 않네 / 不許素塵侵

조용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 燕坐讀周易

그야말로 천심이 보이고 말고 / 端的見天心

 

[ 선생은, “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어갔구나.” 하였다. 정백자는 흔연히 즐거워하며, “역시 잘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를 물어서 셋을 얻었습니다. 시(詩)를 듣고 선(禪)을 듣고 또 군자의 마음이 노파(老婆)보다 자상함을 들었습니다.” ] 

 

서호(西湖)003] 사람이 아니 보이니 / 西湖人不見

천지도 부질없는 봄이로구려 / 天地徒爲春

천 년이라 동떨어진 오늘에 있어 / 曠然千載下

정과 신이 몰래 어울렸구려 / 冥會精與神

 

[선생은 넌지시 말했다. “정백은 족히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만하다. 그 교한 것은 기왕이요 그 안 것은 장래이다.” 선생은 이로부터 다시 시를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만약 청해 묻는 자가 있으면 “정백자가 있느니라.” 하였다.]

 

 

[주D-001]찬자(粲者) : 아름다운 사람을 이름. 《시경(詩經)》 당풍(唐風)주무(綢繆)에 “그대여, 그대여,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가[子兮子兮 如此粲者何]” 하였다. 여기서는 매화를 말한 것이다.

[주D-002]게(偈) :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나 글귀. 4구로 되어 경의 끝에 붙는다.

[주D-003]서호(西湖) : 송(宋) 나라 화정 처사(和靖處士) 임포(林逋)가 서호(西湖)에 살았는데, 매화에 대한 유명한 시가 있다.

 

 

 

 

지봉집(芝峯集) > 芝峯先生集卷之二 > 七言絶句

詠梅

 

凌寒梅?早迎新。竹外園林未覺春。標格可人元勝絶。一枝?發便精神。

古梅花發小庭幽。春到南枝最上頭。誰遣雪來添?媚。天公應亦好風流。

 

 

 

퇴계집(退溪集) > 퇴계선생문집 제2권 > 시(詩)

가을날의 회포

[ 왕매계(王梅溪)가 한창려(韓昌黎)의 시에 화답한 것을 읽고 느낌이 있어 그 운(韻)을 그대로 쓴다.]

 

뜰 앞에 서 있는 매화나무 두 그루 / 庭前兩株梅

가을 들자 잎이 먼저 우수수 떨어지네 / 秋葉多先悴

골짜기에 무성하게 우거진 저 잡초들 / 谷中彼?蔚

어지러이 떨기 이뤄 서로 땅을 다투는 듯 / 亂雜如爭地

고고한 그 모습은 보전하기 어렵고 / 孤標未易保

잡다한 초목들만 멋대로 뻗는구나 / 衆植增所恣

바람서리 한 차례만 불어와 뒤흔들면 / 風霜一搖落

굳세고 약한 것이 다를 것이 없는 듯 / 貞脆疑無異

꽃답고 향기로움 저 나름의 때 있거니 / 芬芳自有時

어찌 남이 알아야만 귀하다 하겠는가 / 豈必人知貴

 

 

 

                                                                                                         다음 카페 <양재클럽(Y-Club)>     향기. 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