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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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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성인과 유다 성인은 열두 사도의 일원이다.
시몬 사도는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었다가 제자로 선택되었다.
그는 주로 페르시아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다 사도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별하여
‘타대오’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약 성경 ‘유다 서간’의 저자인
유다 사도는 유다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도는 예수님의 친척일 가능성도 있다.
예수님의 형제로 언급되는 복음 구절에 같은 이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마태 13,55)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이 더 이상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와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고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밤새워 기도하신 뒤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사도로 뽑으신다(복음).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을 사도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더니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다음 날 많은 제자들을 불러 세우신 뒤,
그 가운데에서 열둘만 뽑으시어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뽑힌 사도들은 얼마나 흥분되었겠습니까?
‘다른 제자들보다 그다지 잘난 것도 없는데 왜 하필 나를 뽑으셨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을 것이고,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의기양양해진 사도들은 평지에 내려와서 더욱 흥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시고,
더러운 영들도 쫓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열둘은 ‘사도’라는 자리에 오른 만큼,
예수님의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전수받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능력으로 무언가 큰일을 하시면
그 일의 결과를 자기들도 함께 누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삶은 그들의 인간적인 흥분과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삼 년 동안 지내면서 집도 없이 살아야 했고,
결국 스승님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뒤에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애당초 가졌던 기대와 실제의 삶은 아주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뜻하신 삶을 그대로 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인 때의 생각과 실제의 삶은 차이가 많을 것입니다.
사제들의 서품이나 수도자들의 서원 또한 받기 전과 실제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처럼, 우리도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주님의 뜻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주여 당신 종이 여기...(아카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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