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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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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봉독하신 뒤
그 말씀이 바로 이 자리에서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신다(복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19─5,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4-22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동양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늘의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출사표’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에서 제갈량의 고사를 연상하는 게
송구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지』라는 위대한 문학 작품의
명대목이 절로 생각날 만큼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공생활의 시작을 밝히시며 보여 주신 확고한 모습은 멋지고 시원합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신 뒤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는 대목을 거듭 묵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언자의 전통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한국 교회가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을 자주 잊고 있으며,
어쩌면 조금은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신앙의 자기 쇄신을
가능하게 한 비판 의식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우리 시대에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구로서
존재하려면 끊임없이 예언자적 전통에서 시대와 세상과
교회 제도의 현실을 성찰하고 쇄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은 세상과의 힘겨운 대립만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의 몰이해라는 어려움까지도 자주 겪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진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길은 교회가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그분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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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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