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 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성서에 보면 열 명이나 되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 와 멀찍이 서서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했지만 얼른 다가가 고쳐주지 않으시고 이상하게 차갑게 대하십니다.
“저 동네에 있는 사제에게 가서 너희들 몸을 보여주어라~”
예수님 앞에 목숨을 걸고 나오느라 그들은 군중들에게 이미 발각이 되었겠지요.
‘이것 뭐야, 이 더러운 놈들......’
열 명의 나병환자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사제가 있는 곳은 동네 한가운데인데~’
그곳을 지나가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지만
‘저분에게 뭔가 뜻이 있어서 시키셨겠지~’
열 명의 나병환자는 누더기의 모습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동네 한복판을
절뚝거리며 가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가는 도중에 다 나았어요.
오늘 여러분도 가까운 본당으로 가지 않고 이 깊은 산중으로 오셨습니다.
‘이 먼데를 가야 되나~ 아내는 자꾸 가자고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오기 싫어 온 사람이 넷이에요.
마지못해 끌려오듯 왔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가라고 해서 온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이곳으로 오는 중에 치유가 되기 시작했어요.
오늘 이 거룩한 땅에 머물면서 치유의 은혜, 구마의 은혜, 믿음의 은혜,
순교의 은혜까지 얻은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하세요.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기적, 구마의 기적,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기적 중에서
첫 기적은 가나의 작은 마을 혼인잔치에서 하십니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옷매무새가 예쁘듯이 예수님이 하신 이 가나의 첫기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기적도 우리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가나의 기적을 보면 어떻게 해야 주님의 은총가운데, 기적가운데 사는지를 알려주십니다.
천주교 술꾼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적이 바로 이 가나의 기적이지요?
그러나 이 기적은 단순히 술을 숭배하는 뜻이 아닙니다.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난 때가 혼인잔치 때라는 겁니다.
혼인은 기쁨을 나타내고, 재창조를 의미하고, 또 평화를 의미해요
기쁨이 충만할 때, 새로운 창조가 일어날 때, 평화로울 때 기적이 일어났어요.
때가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은 혼인잔치 때, 당신의 어머니와 같이 그 집에 끝까지 머무십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 중에 하나가 그분께는 우월감이 깃든 권위가 없었어요.
엄격하거나 너무나 근엄해서 흥을 깨는 분이 아니었어요.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우울한 성인은 없고. 기쁜 마귀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면서 그들과 같이 사는 것
아이들과 어울릴 때는 아이들처럼, 남이 노래할 때는 같이 노래하고
춤춰야 할 때 같이 춤추고, 술 마실 때는 같이 마시면서 애덕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
한마디로 사랑으로 승화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그곳에 머무셨습니다.
그전에 어느 공직에 계시던 분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공직에 있다 보면 3개 종파를 다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절에 가면 절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관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합니까? 큰 절은 못해도 머리를 깊이 숙여서 예의를
갖추셔야 돼요.”
돌아가신 법정 스님은 명동성당에 특강하러 올 때마다 한 시간씩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열려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다른 자리에서 애덕의 덕을 깨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려면 다정다감하며 밝고 명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같이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아름답고 신이 나는 겁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도록 애 쓰십시오.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중요합니다.
이 사건은 갈릴리 어느 작은마을의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첫 번째 기적이 자그마한 가정에서 일어났다는 겁니다.
하느님은 가정적인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론적으로는 내 가정보다 더 소중한 곳이 없다고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가족들에게 불신을 주고, 폭력적이며, 가정에서 예의를 안 지킵니다.
집을 나가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토록 너그러운 사람이
가족에게는 차갑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성당에서 보면 최고의 남자로 봉사 잘하고 ,여자들에게 친절합니다.
그 성당의 자매들이 그 형제를 보면서
‘야, 저사람 바다처럼 마음도 넓구나!’
그의 아내에게 “마리아, 니 신랑 참 멋있어!”
그 당사자 자매님은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너도 와 한 번 살아봐라.”
많은 경우에 내 좋은 면을 보는 것은 대개는 이방인들입니다.
나의 나쁜 면을 보는 것은 늘 생활을 함께하는 내 아내요, 자식입니다.
그것이 비극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장소는 성당이 아니라 내 가정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영광을 이룬 곳이 가정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세 번째, 이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주목해야 합니다.
만일 혼인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면 그 수치와 모욕은 죽을 때까지
그 신랑, 신부에게 따라다닙니다.
“야, 그 집 잔치 중에 술이 떨어졌대.’
이 비천한 가정을 수치와 경멸의 상처에서 구하기 위한 동정과 이해심에서
생명의 주인이시고 영광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는 당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쓰셨습니다.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을 하면서 탤런트를 쓰기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가나안 기적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모님 모습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성모님의 가장 아름답고 큰 덕은 ‘철저한 순명’ 입니다.
마리아는 당신이 배가 아파 낳은 아들 예수였지만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첫 번째 기적을 요구했을 때, 성모님의 요구를 거절한 것처럼 보였을 때까지도
성모님은 예수님을 확실히 믿었기에 시중드는 사람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해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철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해라고 하는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할 때도, 아들의 시신을 안았을 때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메시아인 내 아들이 어찌 이리 비참하게 죽을 수 있을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믿었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내가 가는 길을 알지 못하면 암담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제인 저도 주교에게서 수많은 명령을 받고, 그럴 때 마다
이 사제의 앞길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주교의 입을 통해서, 사제에게 순명을 시험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기적은 순명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예고 없이 닥치는 사건과, 그 이유와, 의미를 알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거기에 바오로 사도의 확신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내 눈앞에 일어난 이 일이 선은 아니지만, 고통을 받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고통 자체도 선하게 열매를 맺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게 신앙입니다.
가나안 기적은 술의 기적이 아닙니다.
첫 번째,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때 생기는 기적입니다.
두 번째, 가족에게 최선을 다할 때 생기는 기적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처럼 사람차별하지 않고 당신의 능력을 베풀 때 생기는 기적입니다.
네 번째,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무조건 신뢰할 때 기적임을 잊지 맙시다.
모든 기적의 첫 번째인 가나안 기적!
동시에 우리들이 확신해야 될 것은 사제가 미사 때 포도주를 들고
‘너희는 모두 받아마셔라!’
‘저게 정말 ‘예수님의 피’ 일까?’
분명히 피로 변합니다.
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하느님이 포도주를 피로 못 만들겠습니까?
맞지요?
믿어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 성지에 부르신 것은 제가 부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제의 입을 통해서 하고 싶으신 말 하고 계시고
주고 싶은 것 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거룩한 미사를 봉헌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