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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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백성에게 율법의 준수를 호소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실천하라고
내려 주신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켜야 한다.
이 백성의 위대함과 지혜로움은 오로지 주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분께서 명하신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제대로 듣고 실천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율법이나 예언서를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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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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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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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로 말미암은 폐해에 대하여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완고한 마음을 강하게 비판하신 것을 알기에
오늘 복음 말씀은 오히려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1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가장 깊은 지혜를 깨치는 것이자
온전한 생명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시며,
주님의 법을 제대로 깨닫고 몸과 마음에 새기는
'의로움'을 키우라고 격려하십니다(마태 5,20 참조).
사실 『탈무드』에서 볼 수 있듯이,
유다인들이 긴 세월 동안 율법을 배우며 연구하고
실천해 온 역사는 인류에게 큰 지혜의 샘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율법을 배우는 것은 언제나 그 율법을
가르쳐 주는 이를 스승으로 삼아 절대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본의 문학인 우치다 다츠루가 쓴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이라는
책을 보면, 『탈무드』의 주석자로 현대 철학의 거장인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유다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율법을 배우는
전통이 어떻게 그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는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평생 단 한 명만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그 스승은 놀랍게도 그가 여러 대학에서 만난 철학의 석학이나
교수가 아니라, 비견하기 어려운 '라삐', 곧 율법 학자였다고 합니다.
철학자 레비나스에게서 보듯이, 사실 스승과 함께해야
비로소 앎이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가 잘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책을 선택해서 읽듯이 자신의 기존의 지식과 앎을
'자신의 눈높이에서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앎이 아니라,
수직적 차원의 앎은 스승에 대한 절대적 순종과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배움을 통하여 자신의 사심과 편견에 따른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무지함과 무도함과 무력함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율법을 읽고 깨쳐야 생명의 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사순 시기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도 이처럼
진정한 스승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모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앎을 확장하거나 보완하고 충족시키는 가르침이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그분의 길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움에서
우리의 영적 생명에 생기를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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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사랑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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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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