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8. 22:47ㆍ들꽃다회
후원 깊숙한 곳인 옥류천 지역의 들머리에 있는 개방형 정자인 취한정(翠寒亭)
창덕궁 후원의 신록.....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골고루 비추이는 4월의 따사로운 태양.....
25. 창덕궁 후원 영화당 다회
/ 20140423 수요일 , 맑음
옥류천(玉流川)에서
/ 步 虛
저 푸르디 깊은(翠寒) 은하수를 길어다가
만백성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옥류천 가에나 거닐어(逍遙) 볼거나.....
지치면 너럭바위(逍遙岩)에 둘러앉아
무애차(無碍茶)나 돌려 나누어 마시게나....
하늘엔 태양이 있으매
땅에는 청수가 샘솟고
작은 논에라도 물대고 씨뿌려
내일의 벼이삭을 가꾸어 보세나
음양이 따로 있고 태극은 또 따로 있을소냐......
왕이 직접 벼농사를 지었던 초가지붕의 청의정(淸漪亭)
모내기를 위하여 정자 주변에 있는 논을 깊이 갈아엎어 놓았다......
청의정 천장의 360도 선자연(扇子椽) 서까래
천장 중앙부 한복판에 있는 연꽃무늬는 하늘연꽃(천연 天蓮)으로서,
고구려 고분에서 천장부 7단 모줄임 천정구조 위에 놓인 덮개돌(천개석 天蓋石)
한복판에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을 의미한다.
이 하늘연꽃(天蓮)의 실제 모델은 우리 한민족의 기원인 환인(桓因)의 신시(神市)가
처음으로 열렸던 파미르고원 천산산맥의 빙하지역의 끝자락인 빙퇴석(氷堆石)
지역에서 자라는 설연(雪蓮)으로 그 형태나 꽃잎들이 겹친 모양이 서로 같다.
천산지역의 설연(雪蓮)
天山의 설연
- 차마고도 야영전문 여행가이드 <춘향오빠님>의 사진 중에서
비밀을 밝히는 글 중에서 발췌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채운 덩굴, 당초, 구름,
불꽃, 용의 문양들…. 강 교수는 이 문양들이 우주의 신령한 기운(영기·靈氣)을 표현해
낸 것임을 밝혀내면서, 이러한 무늬들이 백제와 신라, 고려와 조선의 회화, 조각,
건축에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흥미롭게 풀어갈 것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내게는 먼먼 꿈속의 그림들이었다. 아니 고구려 자체가 그랬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1500년 가까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 그것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신라 천년의 미술에 중점을 두고 연구해 왔다. 통일신라가 당(唐)의 영향 아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며, 그것이 그 이후 전개되는 한국문화의 모태임을 확신했었다.
그러나 최근 4, 5년 동안 불상 광배의 무늬와 관련하여 고구려 고분벽화를 살피면서
나의 미술사 연구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가장 소홀히 다루었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늬들, 고구려
고분벽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니 고구려 고분벽화 전체를 지배하는 암호(暗號)같은
무늬들을 해독하는 동안, 고구려 미술은 지속적이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려하게
꽃피웠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 강우방 교수의 글 중에서
평양 인근의 덕화리 1호분의 천장벽화에는 온갖 장식무늬들이 가득하다.
강우방 교수는 이들 장식무늬를 식물 싹이 움트는 형태, 구름 형태,
반 팔메트 덩굴무늬 형태로 분류하면서 이를 신령스러운 기(영기 靈氣)를
표현한 것으로 분석한다. / 사진 제공 강우방 교수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정 중앙부 연꽃 그림의 다른 예
평양 고구려고분 진파리 1호 고분벽화 - 연꽃무늬 천장
하늘을 날으는 구름무늬
- 오른쪽 두번째 고개를 들고 계신 분이 고려대 최종택 고고미술사 전공 교수....
진파리 4호 고분의 천정 모줄임부의 연꽃
위의 강우방 교수님의 글과 천산의 식물생육한계선 근처에 자라고
있는 설연(雪蓮),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정(天頂) 중앙부에 그려진 하늘연꽃인
천연(天蓮).....그리고 창덕궁 후원 최심처에 있는 창의정 천정에 단청으로
그려져 있는 연꽃과 360도 사방으로 뻗혀간 선자서까래의 의미를 서로
연관시켜서 파악하여 보면, 이 하늘연꽃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동이족
고유의 원형질 신앙인 태양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한민족의 기원설화에서 나오는 시조이신 환인(桓因) 할아버지도
우리말 " 환하다.","환안한"의 이두식 표현이다.
태극정(太極亭)에서 청의정(淸倚亭)으로 건너가는 돌다리
- 도랑 석축에 피어 있는 애기똥풀.....
이 도랑물이 청의정을 둘러싸고 있는 논에 물을 대는 수원이고
옥류천(玉流川)의 근원이 된다.
옥류천의 유상곡수(流觴曲水) 위에 있는 우물(어정 御井)
- 시각 지붕형에 연꽃봉오리(연봉 蓮峰)가 있는 우물 두껑이 아름답다.....
4월의 태양.... 그리고 우거진 숲.....
- 청의정 지붕의 360도 사방으로 뻗어간 선자서까래를 닮은 4월의 햇님.....
아기 까치
정사를 보거나 공부하던 틈틈이 하늘의 천문을 보던 취규정(聚奎亭).....
- 연경당 뒷편의 청심정과 존덕정 지구 , 그리고 옥류천 지구의 중간의
나즈막한 언덕 위 한적한 곳에 위치하여 다른 건물들의 불빛의 방해없이
별자리 관찰 등 천문공부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취규정 편액
취규정 연등천장과 우물반자의 단청무늬
덜꿩나무
취규정 앞의 팥배나무
자주괴불주머니......
돈화문 안에 있는 금천교
ㅡ 금천(禁川)은 궁안과 궁밖을 나누는 작은 개울이다.
사전에 허가받은 사람들만이 이 금천교를 드나들 수 있었다.
후원 연경당 앞의 괴석받침돌에 돋을새김한 웃는 사자
세종 제위시 ,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 사진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시각은 오시(午時)이고,
절기는 곡우(穀雨)이다.
영화당 앞 부용지에 떠있는 철쭉 꽃잎....
노오란 좀씀바귀....
부용지에 비친 부용정 그림자....
부용정은(1792년) 열십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북으로 양쪽을
한칸씩을 보태 다각(多角)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부용지의 석가산(石假山)
- 천원지방(天圓地方)형 부용지와 봉래산(蓬萊山) , 석가산 뒷편 건물은 비각(碑閣)
부용지에 비친 철쭉의 그림자...
부용지 서쪽의 출입제한지역인 비각(碑閣) -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
- 산에서 흘러내리는 표류수가 부용지에 떨어지는 곳에
돌로 만든 용두(龍頭) 장식이 아름답다....
빗물에 떠내려 오는 나무가지들을 걸려낼 목적으로 설치된
용머리 위에 있는 두개의 안쪽으로 구멍이 뚫린 사고석(四鼓石)에
새겨진 돋을새김한 오얏꽃무늬는 조선조 왕실의 성씨인 李왕직의
문장이다.
- 사정기비각에는 부용정과 부용지의 건립 내용과 그 과정이 새겨져 있다.
취병(翠屛 : 조릿대 생울타리)과 주합루(宙合樓)
왕비와 비빈들 - 궁중여인들과 왕자, 공주들의 사적 ㅡ 삼삼와....상량정 구역
낙선재 뒷편.... 후원 입구에 있슴. 동궁전인 희우루(喜雨樓)가 있는 성정각 동쪽에 위치함
부용지의 물풀들..... 수면에 떨어져 있는 산철쭉 꽃잎들.....
부용지에 물을 공급하는 우물 어정(御井)
주합루(宙合樓),어수문(魚水門)과 서향각(書香閣)...... 취병(翠屛)과 화계(花階)
주합루는(1776년) 정조의 개혁정치와 조선중기 문예부흥의 산실이다.
이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다. 주합루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어수문은 주합루의 정문으로 물은 왕을, 물고기는 신하를 비유하여 군신간의 융화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어수문으로는 왕이, 그 옆의 작은 문으로는 신하들이 출입하였다고 한다.
꽃마리...... 부용지의 장대석 석축 틈에서 자란다.
부용지 장대석 석축 틈에서 자라는 민들레 열매
- 그리고 반은 바람에 날려가고 반쯤 남은 민들레 씨앗들......
이름하여 반화정(半花亭)이 아니라 반종정(半種亭))이라는 詩가
새로 쓰여질 것인가??
어수문과 계단 소맷돌의 4태극 문양....
민가에서는 삼태극 문양.....
주합루(宙合樓) 화계(花階)를 장식하는 모란
영화당(映花堂) 내부공간 - 사랑내실(御室)
주합루 화계의 봄날......
- 조릿대 생울타리인 취병(翠屛), 만첩백매, 모란, 산철쭉, 앵두나무......
영화당 사랑내실 옆 툇마루에서 부용지를 내려다 보면서 오래된 천량차를 마시다....
원효선사님의 무애차(無碍茶)에서 유래된 진한 가루차(농차 濃茶)를
준비하여 맛을 보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한 백제국 멸망.....
그후 3년 여에 걸친 왜국에서 지원군 5만여명을 이끌고 온 백제왕자 풍(豊)을
중심으로 일어난 백제부흥운동......
나당연합군과 백제부흥군 투항병력을 동원한 서기 668년의 고구려 멸망......
그 이후 웅진도독부와 평양도호부를 통한 당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하여
신라왕실에서 기획한 독립운동 형태의 크고 작은 전란들.....
이렇게 바람이 잘 날이 없었던 때에 원효대사님과 의상대사님의
가슴이 찟겨진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의 아픈 마음를 위무하기 위하여
높은 법상(法床)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무애행(無碍行)으로
다가가셨다.
여기서 나온 다법(茶法)이 당시에 통용되었던 덩어리차인 단차(團茶)를
찻맷돌(다마 茶磨, 다연 茶硏) 등에 곱게 간 가루차를 이용하여
커다란 발우(鉢盂 다완 茶宛)에 진하게 타서 돌려가며 한모금씩 마심으로써
한솥밥을 먹는 한식구라는 일체감을 주어, 승리한 신라인들과,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 사이에서 적대의식이 없어지게 하였고, 이러한 무애다법
(無碍茶法)을 확대보급하므로써 장차 통일신라의 기틀을 다지는
국민통합의식에 적극 활용되었다.
이때에 백제부흥군으로 참전한 왜병들과 군승(軍僧)들을 통하여 진한
가루차인 농차법(濃茶法)이 일본에 전하여졌었고, 이후 일본에서는
각번들 간의 잦은 전란으로 전후(戰後) 화합에 반드시 필요한 농차법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원효대사께서 부안 상왕산(변산 卞山) 개암사 뒷편에 있는 원효굴에 계실 때에
당시 백제부흥국의 주축이였던 복신(福信)이 거처하다가 부흥군 내부의 분란으로
죽은 복신굴이 바로 이웃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에 이 무애다법인 농차법이
일본에 전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일본의 20여 개소의 다도종가(茶道宗家) 중 거의가
우려마시는 충포법(沖包法, 일본에서는 전차법 煎茶法) 보다 가루차(末茶法: 日)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으며, 가루차(抹茶法 : 韓.中) 중심의 다도종가 중 70~80%가
농차법(濃茶法)을 주종(主種)으로 삼고 있는 연유도 일본열도의 역사에서
근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던 잦은 전란에 피해를 입은 각번의 백성들
간의 화합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남북분단 상황인 우리의 현실에서 언젠가 남북통일을 이룩한 후에
남북간 국민화합을 위하여 원효스님께서 창안하신 무애차(無碍茶)에서
유래된 1400여년을 이어져 내려온 이 농차법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루차 숟가락은 히말리아의 야크뿔로 만든 것....
티베트문화와 실크로드 문명교류에 대한 전문연구가이신 한국산악회 김규현 선배님의
여행선물임.....
이 선배님께서 70년대 중반에 인사동에서 죽림서실이라는 다회와 서예를
지도하는 서실(書室)을 여신 분으로 오늘날 유수한 다도문화원의 창설자들이
거의 이 선배님께 다례를 배웠다. 이 죽림서실에는 제헌국회의원이자 다솔사주지를
역임하신 후 삼청동에 사시던 효당 최범술 선생님께서 자주 들리셔서 손수 팽주(烹主)를 즐겨 하셨다.
옻칠다완의 농차에 비친 영화당 천장 단청무늬
찻잔받침(잔탁 盞托)에 새겨진 갑골문 수류화개(水流花開)
잔탁에 새겨진 갑골문 다반향초(茶半香初).....
궁중 비빈들과 왕자, 공주, 옹주님들의 공간 ㅡ 삼삼와......상량정 구역 서편.... . 그리고 만첩황매화.....
.
장식이 화려하고 건물의 높이가 나즈막하여 요지음의 유아원이나 유치원 역활을 하였다.
영화당 내실에서 바라본 부용정과 봉래산(蓬萊山) 그리고 사정기비각.....
부용지(芙蓉池) 석축 틈에 핀 고들빼기 꽃......
어수문(魚水門)과 주합루(宙合樓).....
주합루는 2층 건물이며,
1층은 왕실도서관으로 알려진 규장각으로 쓰였고,
2층은 열람실로 쓰였다.
나무 다기 모음...... 손잡이형 표주박에는 갑골문 명선(茗禪)이 음각되어 있고
복숭아형 표주박에는 갑골문 다선(茶禪)이 새겨져 있음......
영화당(映花堂) 내실 우물마루형 누마루
- 천장 우물반자에 단청이 곱다......
영화당 내실 우물마루 누마루에서 바라본 기념품판매점(좌측 하단부)
- 창덕궁 후원에서는 유일한 기념품 상점이다.
영화당 내실 누마루에서 동쪽에 있는 창경궁을 바라보다.
- 앞마당이 숙종,영조가 과거시험을 친람하던 춘당대(春塘臺)....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
후원의 까치집에서 내려온지 얼마되지 않는 아기 까치들.....
연경당 앞뜰의 작은 애련지 연못가에 핀 민들레 씨앗 열매
영화당 동북방 언덕 기슭에 있는 별자리꽃담.....
동궁전인 성정각 희우루(喜雨樓) 앞마당에 있는 돌로 만든 차도구들.....
큰 것이 차설걷이용 석지조(石池槽, 또는 석다조 石茶槽)
작으며 아래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돌화로(石爐, 석풍로 石風爐)
기둥모양의 돌이 부싯돌을 간직하고 불울 피우는 용도의 수인대(燧引臺, 燧 : 부싯돌 수)
- 수인대 윗면에 뚫린 작은 구멍에다 말린 쑥, 수리취 잎들을 두손으로 비벼서 넣고
부싯돌을 친 다음 입김으로 불거나 부채로 부쳐서 불씨를 얻는다.
수인대 상부 중앙에 잇는 작은 구멍 주변부의 돌에 그으름이 묻어있고
불기에 의하여 돌이 약간 변질되어 있다.
취한정에서 소요정과 태극정을 바라보다.
- 사진 우측은 전설청용 작은 수랏간이 있는 맛배지붕 건물인 농산정(籠山亭)
4월의 신록과 따사로운 햇살 .... 어린 까치......
애기똥풀 군락지
금원(禁苑) 안에서도 가장 내밀한 옥류천(玉流川) 구역의 소요정(逍遙亭)
옥류천(玉流川) 일원 안내판
옥류천 일원 안내도
소요정........ 뒤에 보이는 바위가 소요암(逍遙岩)......
금원(禁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옥류천(玉流川) 구역의
들머리에 있는 개방형 정자인 취한정(翠寒亭)
- 취한정의 건립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숙종과 정조가 취한정에
대하여 읊은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1720년 이전에 건립되었다.
정조의 詩 : <태극정기(太極亭記)>
숙종의 詩 : < 상림삼정기(上林三亭記)>
- 여기서 상림삼정은 청의정, 태극정, 소요정임.
궐내에서 가장 서민적인 건물 - 의두합(倚斗閤)
- 조선조의 건국이념이 된 성리학과 중기 이후의 주자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물이다.
순조의 아들로 22세에 요절한 효명태자(1809~1831년)가
공부용으로 1817년에 건립하였다.
단청을 전혀 하지 않은 서민 민가의 모습이다.
작은 건물은 다실 겸 서재용으로 큰 건물은 거처용으로 ......
효명태자는 순조의 명으로 3년 가량 국정을 대리청정하다가
유명을 달리 하였다.
원래에 이곳에 있던 서실(書室)의 이름이 의두합으로 살림집은
기오헌(寄傲軒)으로,작은 서재는 운경거(韻磬居)로 효명태자가
새로 지어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기오헌(寄傲軒)의 유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의 한 구절인
"倚南聰以寄傲 審容膝之易安" 남쪽 창가에 비스듬이 기대앉으니
간신히 무릎 하나 들여놓을 수 있으나 실로 마음은 편안하구나."
에서 따왔다고 한다.
운경거는 "시와 음악이 있는 집"의 뜻으로 효명태자가 대리청정하는 틈틈이
시와 음악을 즐기며 자기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까지 전해지는 궁중음악과 궁중무용인 정재(呈才)의 발전에도 이
효명태자의 역활이 결코 적지 않음은 우연이 아니다.
효명세자(후에 양아들인 고종대에 익종 또는 익황제로 추증됨)는 순조 27년
대리청정을 하면서 할아버지인 정조의 개혁정치를 본받아 왕권강화에 힘썼었고
특히 세자빈인 풍양 조씨와 결혼하여 안동 金문의 세도정치 타파에 전력하다가
대리청정 3년만인 22세에 요절하므로서 개혁정치의 완성을 보지 못하여
조선조 후기의 역사의 소용돌이가 계속되었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살림집인 기오현(寄傲軒)과 한평반 크기의 작은 서재 겸 다실인 운경거(韻磬居)
의두합(倚斗閤)의 사고석 담장.....
영화당 앞 춘당대의 굽은 금강송들......
의두합(倚斗閤) 전경
의두합의 정문 - 금마문(金馬門)
금마문은 중국 한나라 때 미앙궁(未央宮)에 있던 문으로,
문 안쪽 전각에 왕세자가 있음을 상징한다.
부왕인 순조의 대리청정을 했던 효명세자는 할아버지 정조의 개혁의지를 이어,
약화된 왕권을 세우기 위해 규장각 근처에 전각을 짓고 독서를 했다고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창덕궁 금마문 [昌德宮金馬門] (두산백과)
불로문(不老門)
-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새로 만든 불로문도 이처럼 한덩어리 돌을 깍아서 만들었다.
애련지(愛蓮池)에 비친 불로문 그림자....
주합루(宙合樓)와 어수문(魚水門)...... 그리고 서향각(書香閣).....
화계의 꽃들이 그리 화려하지 않아서 서민풍으로 보아줄 만하다.
요지음 골프장이나 경제력이 좀 있다고 하는 분들의 별서에는 너무 화려한 조경으로
치장하는 경우가 많은 데... 어느 것이 더 자기수양이나 인격도야에 도움이 될까??
우거진 숲을 통하여 본 부용정(芙蓉亭)
역대왕들의 영정, 위패 등이 보관되어 있던 신선원전으로
가는 길은 출입제한 되었다.
덜꿩나무
창덕궁 금원(禁苑)에서 유일하게 편액이 없는 건물인 청심정(淸心亭)....
청심정 천장의 결구구조
단청이 화려하지 않은 것이 조선조 왕들의 소박한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성리학에서 유래한 검박미(儉朴美)의 표상이 될 만한 휼륭한 건물이다.
청심정 앞에 놓여 있는 석수곽(石水槨)
참나무 등걸에 담쟁이덩굴과 거지덩굴(일명 풀머루덩굴).......
- 거지덩굴의 뿌리는 약용
구중심처에 민들레 꽃
4월의 태양을 쪼이는 잘 보존된 숲......
창경궁 담장 쪽에서 바라본 취한정(翠寒亭) 옆모습......
소요정(逍遼亭)의 신록
너른 암반인 소요암(逍遼岩)에 약간의 인공 홈을 파서 수로를 유상곡수(流觴曲水) 형태로 돌려주다.....
- 소요암에 새겨진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글씨는 인조임금의 친필이며
시(詩)는 숙종임금의 작품이다.
飛 流 三 百 尺 비 류 삼 백 척
遙 落 九 天 來 요 락 구 천 래
看 是 白 虹 起 간 시 백 홍 기
飜 成 萬 壑 雷 번 성 만 학 뢰
폭포는 삼 백 척인데
멀리 구천에서 내리고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어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
소요정(逍遼亭) 뒷편에서 바라본 어제시(御製詩)가 새겨진 소요암(逍遙岩)
태극정에서.....
소금(小琴)으로 청성곡을 연주하다....
신록의 숲속을 통과하여 부드러워진 4월의 태양.....
늘어진 산철쭉과 원형 초가지붕의 청의정(淸漪亭).... 그리고 태극정
- 청의정의 기단석은 사각형의 정방형이고, 지붕은 둥글다.
우리의 전통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상징적 건축의장이다.
반면에 원형의 외부구조를 가져야하는 태극정(太極亭)은 기단과 지붕 모두
정방형으로 사각의 소요정과 더불어 건축 영조법상의 반전을 주었다.
태극정(太極亭) 천장의 우물마루 반자...... 오른쪽에 보이는 초가지붕의 청의정(淸漪亭)....
- 태극정, 청의정, 소요정 그리고 농산정은 인조 14년(서기 1636년)에 건립되었다.
태극정은 처음에는 운영정(雲影亭)으로, 소요정은 탄서정(歎逝亭)으로 불리워지다가
후대에 이름을 바꾸어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태극정에서 소요정과 취한정을 바라보다....
- 사진 왼쪽 건물은 작은 진설청격인 농산정(籠山亭) 부분......
소요암(逍遙岩)에 인공으로 홈을 파서 굽이치는 옥류천의 유상곡수(流觴曲水)......
진설청용 건물인 농산정(籠山亭)........ 정자에서 공부하는 왕족의 음식, 차 등을 준비하는 건물...
승지, 내관, 운검(雲劍) , 상궁 등의 수행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
지필묵을 준비하거나 규장각의 서책들을 행사 때 잠시 보관하기도 한다.
주활동공간인 옥류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 북쪽 구석에
간단한 음식들을 장만할 수 있는 부엌인 작은 규모의 수라간이 있다.
태극정에서 바라본 원형 초가지붕의 청의정
당주초석(幢柱礎石)
- 모내기 행사나 기타 궁중 시회(詩會) 등을 열 때에
"農子天下之大本" 등의 당번기(幢幡旗)를 거는 나무기둥을 설치하거나
詩題 등을 높이 게시할 때에 사용되는 나무기둥 받침돌.....
북악산 지계곡에서 나오는 물을 모으기 위한 집수구(集水口)
취한정(翠寒亭)에서 소요정(逍遼亭)과 농산정을 바라보다.
취한정 내부 연등천장과 선자서까래
취한정 옆에 핀 매미꽃
취한정 옆 오솔길에서 창경궁 담장쪽으로 가는 어린 까치
고목에 새잎나는 굴참나무.....
존덕정(尊德亭) 구역으로 내려가는 길.....
연경당(演慶堂) 앞의 작은 애련지(愛蓮池)
애련지는 언제 만들어 졌는지 알 수는 없고 애련정은 숙종18년(1692년)에 세워졌다.
"애련"이란 군자의 덕으로 상징되는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바람에 날려 온 버드나무 꽃가루
의두합 담장 너머에 있는 원래의 애련지와 애련정(愛蓮亭)
불로문을 지나면 애련지(愛蓮池)라는 연못과 애련정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숙종이 지었다.
이런 이름을 붙인 까닭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경당(演慶堂) 안내판
연경당 안내도
연경당(演慶堂) 전경.....
- 구리기와를 씌운 차양용 서양식 헛처마를 한칸 내어단 건물이
선향재(善香齋).... 그 앞의 누마루가 있는 건물이 연경당....
가장 서민풍의 의두합(倚斗閤)......
- 의두합의 뜻은 "북두칠성님께 의지하여 경화(京華)를 바라본다."
라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의두합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공부를 위하여 지은 집으로
작은 건물은 서재용으로 큰 건물은 생활공간이다.
순조의 아들로 22세에 요절한 효명태자(1809~1821년)가 공부용으로
1817년에 건립하였다.단청을 전혀 하지 않은 서민 민가의 모습이다.
존덕정 옆에 있는 폄우사(砭愚榭)
부근의 존덕정, 관람정,승재정 등지에서 시서화(詩書畵)를 겸한
다회(茶會)를 열 때에 지필묵을 준비하거나 규장각 등 궁중서고에
보관 중인 서책들을 잠시 빌려 보관하는 용도의 건물이다.
또한 도화서원들을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도화서에 보관 중인
각종 시서화첩(詩書畵帖)이나 두루마리인 시서화권(詩書畵捲) 등을
다회(茶會)시에 펼쳐보거나 임시 보관하는곳이다.
또는 밤에는 가까이에 있는 반도지(觀纜池)에 비친 별자리 등을 통하여
천문을 공부할 때에 관상감에 보관되어 왔던 각종 천문도나 천문관련
서책들을 읽거나 천문을 익히는 데 활용한 장소이다.
존덕정 서편으로 조금 가면 세칸 짜리 맞배지붕의 폄우사가 있다.
폄우사가 어느때 지어졌는지 확실하게 밝혀져 있는 문헌은 없지만,
1828년 무렵에 제작된 [동궐도]에는 'ㄱ'자 형으로 그려져 있고,
1908년 무렵에 제작된 [동궐도형]에서는 남쪽으로 뻗은 행랑이
없어지고 지금과 같이 'ㅡ'자형으로 그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에 담이 둘러쳐져 있었다가 최근 담을 헐어 버렸다고 한다.
폄우사는 건물도 존덕정에 비해 소박하지만 정자의 이름도 대조적이다.
직역을 하면 ' 어리석음에 돌침을 놓는 정자' , 임금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덕을 높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828년 무렵 제작된 <동궐도>에 의하면 폄우사는 'ㄱ'자형으로 그려져 있다.
폄우사 우물마루에서 바라본 관람정(觀纜亭)과 승재정(勝在亭).....
- 도승지나 승지, 환관 등의 수행원들이 정자의 상황을 살피기 좋은 위치에 자리한다.
폄우사에서 바라본 관람정......
-1908년 무렵 제작된 동궐도형(東闕圖形)에 묘사된 연못은
호리병 모양이었으나 고종 때 일제가 연못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고쳤다고 한다. 함경도 지역을 남쪽에, 경상도·전라도 지역을
북쪽에 배치하여 한반도의 지형을 바꿔놓았다고 알려지면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덕궁 관람지 [昌德宮觀纜池] (두산백과)
은행나무 안내판
은행나무와 존덕정(尊德亭)
존덕정과 정조의 교시 안내판
육각 겹지붕 형태의 존덕정
존덕정(尊德亭)은 처음에 겉모습을 정자 이름으로 붙혀 육각정이라고
하다가 나중에 육우정(六隅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존덕정이 되었다.
존덕정으로 건너가는 아치형 석교(石橋)
- 괴석 받침대와 야간에 횃불을 밝히는 정료대(庭燎臺)
정료대는 다른 말로는 노주석(爐柱石), 광명대(光明臺) 또는
화사석(火舍石)이라 한다. 관솔이나 송진, 식물성 씨앗에서 짠
등유 등을 사용하기 좋도록 윗면 가운데를 파놓았다.
존덕지(尊德池)에 비친 존덕정과 폄우사(砭愚榭)
폄우사 누마루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는 승재정(勝在亭) 뒷태......
영화당과 부용정 전경.....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다.
앞마당인 춘당대(春塘臺)에서는 임금이 직접 참가한 가운데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남쪽 언덕에 있는 속이 빈 고목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려 온 학생.....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의 뒷담에 있는 농수정
연경당은 1828년(순조 28) 당시의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창덕궁 안에 지은 유일한 민가 형식의 건물로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이다.
연경당 후원 정자.... 농수정(弄繡亭)
- 농수정에 오르면 연경당 앞뜰의 애련지와 작은 연지가 보이고
뒷담 너머로 관란정과 존덕정 그리고 승재정이 있는 반도지가 훤하게
내려다 보여서 연지에 비친 달을 희롱하며 글공부나 천문공부를 하기
좋은 곳이다.
연지의 수면에 비친 달과 별자리는 지구의 자전현상을 상쇄시키어
천문을 배우고 익혀서 실생활에 응용하기에 좋은 조경방식이다.
요지음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국정최고자문위원인 당대 석학들이나
국사나 왕사급 고승(종교지도자)들을 모셔서 국정현안을 자문받고,
정책을 입안하는 곳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그 크기가 매우 작다. 초암다도(草庵茶道)에서 유래한
다정용(茶亭用) 별서 영조법(營造法)에 규정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맞대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승지나 상궁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려고 연경당 후원
화계로 격리하고서도 높은 담장을 둘렀다.
초암다도에서 유래한 한두평 크기의 초암다실(草庵茶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다도 최고명가이자 임진왜란을 반대하다가
도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자결을 강요받아 유명을 달리한
- 백제왕족의 후손인 센리큐(千利休 또는 天利休)가 주창한 와비차의
초암다실의 원류가 되었다.
존덕정 구역에서 연경당 뒷담으로 가는 오솔길의 숲
승재정(勝在亭)
- 창호의 띠살이 간결하면서도 화려하다.
마치 잘 생긴 미인이 마음씨도 고운 것 같다.
승재정 앞에서 반도지(半島池)에서 이름을 바꾼 관람지(觀纜池)를 내려다 보다.
승재정 뒷모습
존덕정(尊德亭)
존덕정(1644년 건립)은 육각정자 형태로 겹지붕이 특이하다.
내부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고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日影臺)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도 한다.
배경의 맞배지붕 건물이 폄우사........
관람정(觀纜亭)
- 부채꼴 모양의 평면으로 관람지에 두 초석기둥돌을 담그고 있다.
작은 애련지에서 바라본 연경당(演慶堂) 구역
연경당 앞뜰에서 바라본 의두합 구역
연경당 앞뜰의 괴석받침돌 - 웃는 사자형....
연경당 정문 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 고목 두그루.....
연경당 사랑채 - 연경당 - 누마루 건물
연경당 중문인 장양문(長陽門)
- 순조 때 지은 사가(私家)를 닮은 연경당의 중문 이름이 장양문이고,
이때가 정묘호란, 병자호란 후의 청나라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 태양이여 영원하소서!! "라는 이름의 뜻은 왕실과 사직의
무궁한 창성을 염원하는 의미와 함께, 우리 한민족의 뿌리인 부여족(扶餘族)들의
원시신앙인 태양신앙에 - 즉 사직(社稷)에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경당 안채 공간
사진 오른편 끝에 궁중 매화틀이 있다.
대비마마, 대왕대비마마 등 궁중 안어르신들의 반층 높이를 더한 안사랑채....
연경당 담장
연경당 회랑채 - 행랑채
연경당 구역의 이름이 있게한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 연경당과
구리기와를 올린 서양식 차양을 헛처마로 한칸 내어단
서재 겸 접견실로 사용된 선향재(善香齋)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연결하는 쪽문.....
사랑채인 연경당과 안채가 합벽으로 서로 연결되어 지어졌다.
야간에 등을 켜서 올려 두거나, 관솔, 송진 등으로 횃불을 밝히는 정료대(庭燎臺)
연경당 구역 안채 뒷태
안마당과 회랑채..... 그리고 정료대
창문 띠살과 처마
내외담(샛담)을 쌓아 사랑채인 연경당과 안채를 구분하고 있다.
통벽문
의두합의 쪽문 - 얼마나 서민적인가....
서민가옥을 비교하여 보려고 연경당 사진에 함께 올렸다.
작은 애련지 담장에서 바라본 연경당 일대
후원 별당으로 드나드는 문
연경당 정문인 솟을대문 장락문(長樂門)
- 낙선재의 정문 이름과 같다.
연경당 지구의 이름이 있게 한 사랑채 연경당 바로 앞 선향재의 덧처마 결구구조.....
청수정사 편액 - 연경당 사랑마당의 동남쪽에 위치한 낮은 건물의 당호
사랑채(서재 겸 접견실용)인 선향재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바깥 사랑마당.....
선향재에서 바라본 사랑채 연경당(演慶堂)
선향재 - 차양용으로 한칸 앞으로 내단 헛처마
덧처마부의 차양 - 도르레가 설치되어 있어서 줄을 잡아당겨서 열고 닫는다.
사랑채인 연경당 후원 화계와 연꽃형동자주를 설치한 난간 너머에 있는 농수정(弄繡亭)
- 농수정은 연경당 내에서도 별당 개념의 천문 공부용 정자이다.
선향재(善香齋)
- 처마부에 동기와를 올린 서양식 차양용 덧처마를 한칸 내어달았다.
이러한 양식은 안국동 윤보선 전대통령家와 강릉 선교장 船橋莊에서도 볼 수 있다.
동기와를 덮은 헛처마가 달린 서재 겸 접견실인 선향재..... 그리고 돌수곽(石水槨)
선향재 편액
선향재 북측 담을 따라서 농수정으로 가는 계단
서재 겸 접견실인 선향재의 청나라식 조적식 벽돌 맞배지붕 벽장식인 꽃담무늬.....
대왕대비마마나 대비마마께 문안인사를 올리려 드나드는 우신문(佑申門)
- 하나님의 가호가 늘 함께 하시기를.......궁중 안어르신들께....
연경당 내실......대청마루에서
사랑채엔 안채가 이어져 있고, 사방에 행각(行閣)들이 설치되어 있어
이른바 99칸의 집 구성을 볼 수 있다. 그 후에 왕실의 필요에 의하여
증축하여 실제로는 120여칸이다.
선향재 뒤안에 떨어진 철쭉꽃
연경당의 나즈막하게 격을 낮춘 솟을대문 - 장락문(長樂門)
태정문
연경당 사고석 담장과 행랑채
자주괴불주머니
관람정(觀纜亭)
바닥의 마루 평면이 부채꼴로 반도지에 두 기둥을 담그고 있다.
관람(觀纜)의 뜻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보다>이다.
이 정자에서 찬란한 것이라 함은 낮의 풍광이라기 보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 즉 우주 그 자체이다.
도시의 야경에 우리들의 눈이 잠시 어두워져 있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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