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구곡원림 - 서론

2014. 5. 14. 15:14나의 이야기






       

목차서론구곡원림과 구곡시가의 연원과 전개문경의 구곡원림과 구곡시가경물인식과 형상화

   

 

 문경의 구곡원림  

 

 

 서    론 

 

  

  문경(聞慶)은 우리나라 남한의 남북과 동서의 중앙에 위치하며 경상북도 서북에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은 예천군, 서쪽은 충청북도 괴산군, 남쪽은 상주군, 북쪽은 충청북도 제원군과 접해 있다. 문경은 높고 수려한 산들과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하천을 많이 가진 천혜 비경의 고장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태백산에서 서남쪽으로 힘차게 내달으면서 황정산(黃庭山;959m), 주흘산(主屹山;1,106m), 백화산(白華山;1,063m), 조항산(鳥項山;951m), 도장산(道藏山;828m), 공덕산(功德山;912m) 등 해발 1,000m 내외의 고산 준령을 솟구쳐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마치 문경시를 울타리 두르듯이 감싸면서 험준한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조령(鳥嶺;642m), 이화령(梨花嶺;543m), 비조산(飛鳥山;310m), 천마산(天馬山;279m) 등 유명한 산들이 주요한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서 문경은 일찍부터 영남과 서울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하천은 이 산계(山系)를 따라서 형성되어 흐르고 있는데, 속리산(俗離山)에서 발원한 농암천(籠巖川)과 희양산(曦陽山)에서 발원한 양산천(陽山川)이 가은읍(加恩邑) 왕릉리에서 합류하여 가은천(加恩川)이 되고, 대미산(黛眉山)에서 발원한 신북천(身北川)과 조령에서 발원한 조령천(鳥嶺川)이 문경읍 마원리에서 합류하여 소야천(蘇耶川)이 된다. 가은천과 소야천은 마성면(麻城面) 신현리에서 영강(潁江) 으로 흘러들어 점촌(店村) 도심 지역의 경계를 통과하며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또한 동로면(東魯面)의 황장산(黃腸山)에서 발원한 동로천(東魯川)과 운달산(雲達山)에서 발원한 대하천(大下川)이 산북면(山北面) 대하리에서 합류하여 금천(錦川)을 이루고 산북면과 산양면(山陽面)을 관류하여 영순면(永順面) 달지리 삼강(三江)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한편 동로면 면전리 명전천(鳴田川)은 동으로 흘러서 충주댐으로 흘러들고 한강으로 유입된다.

 
  따라서 문경은 여러 산과 그 산들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서 예로부터 순박하면서도 근면한 사람들이 각 굽이마다 깃들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였다. 이러한 문경인의 삶의 모습은 시대의 변천과 사상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모를 가져왔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전래되어 꽃을 피웠으나 고려 말엽에는 신유학인 성리학이 전래되어 우리 민족의 사상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유학을 국시로 정했던 조선에서 성리학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의 도래는 사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도 초래하였고 그 변화는 조선에 성리학적 세계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유교적인 사상과 생활에서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존숭의 대상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주자에 대한 존숭은 그의 사상에 대한 존숭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지은 작품과 그 작품을 이루게 된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관심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바로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였다. 이 시(詩)는 주자가 은거했던 무이산(武夷山)의 아홉 굽이를 대상으로 읊은 것인데 주자의 학문적 세계가 잘 드러난 시라는 의미로 조선에 수용되었고 많은 성리학자들이 이 시를 차운(次韻)하기도 하였다. 성리학자들은 또한 이 시를 차운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무이도가」의 배경이 된 무이산(武夷山)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직접 구현(具顯)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하여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주자가 살았던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였다. 성리학자들의 이러한 의지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 공간이 바로 구곡원림(九曲園林)이다.

 
  구곡원림(九曲原林)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무이산(武夷山)처럼 빼어난 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계곡이 있어야 한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건양시(建陽市) 숭안현(崇安縣)에 자리하는 무이산(
현재의 행정구역은 중국 복건성(福建省) 무이산시(武夷山市)이다. 상해(上海)에서 항공기로 1시간 정도 걸리며 기차로도 갈 수 있는데 약10시간 정도 걸린다. 무이산은 세계문화유산 자연풍경지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무이산시는 지금 무이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려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은 하늘 높이 솟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형상이 아름다워 무수한 절경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산에서 발원하는 무이계(武夷溪)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흐르며 수량의 변화가 거의 없고 물이 깊지 않아 대나무 뗏목을 타고 유람할 수 있다. 무이산과 무이계가 어우러져 이루는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른 별천지를 형성하였다. 남송(南宋)의 주자가 이곳에 은거할 때 배를 타고 무이계를 거슬러 오르며 무이구곡의 아름다운 굽이를 완상하고 각 굽이의 경치를 시로 읊은 것이 무이구곡이며 「무이도가」즉, 「무이구곡가」이다. 이처럼 주자가 무이구곡가를 읊을 수 있었던 것은 빼어난 무이산과 아름다운 무이구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문경에도 빼어난 산과 그 산을 흘러내리는 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구곡이 많다. 특히 소백정맥에서 뻗어 나와 생성된 산들과 이 산들 사이를 흐르는 계곡이 있어 주자(朱子)가 경영했던 무이구곡(武夷九曲)처럼 구곡(九曲)이 많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구곡이 많이 존재한다고 하여 구곡원림이 설정되고 경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그것은 주자와 같은 성리학자가 있어야 한다. 주자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학자들이 있어야 구곡원림이 설정되고 경영될 수 있는 것이다.

 
  문경에는 곳곳에 이러한 구곡원림을 경영할 수 있는 성리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관직에 나갔다가 물러나 은거하거나 아예 관직에 나가지 않고 구도(求道)한 선비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리학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학문에 정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구곡원림의 경영은 자연스레 이루어진 삶의 양식이었다.

 
  현재 문경에 존재하는 대표적 구곡원림은 가은읍(加恩邑)에 자리하는 선유구곡(仙遊九曲 : 
선유구곡(仙遊九曲)은 희양산에서 발원하는 양산천 계곡에 자리하며 바위 계곡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구곡이다.), 농암면(籠巖面)에 자리하는 쌍룡구곡(雙龍九曲 : 쌍룡구곡(雙龍九曲)은 속리산에서 발원한 농암천과 내서천에 자리하는데 이 계곡을 쌍룡계곡이라고도 한다.), 산양면(山陽面)과 산북면(山北面)에 걸쳐 자리하는 석문구곡(石門九曲 : 석문구곡(石門九曲)은 운달산에서 발원한 대하천과 그 아래 금천에 전개되는 구곡이다.), 문경읍(聞慶邑)에 자리하는 화지구곡(花枝九曲 :화지구곡(花枝九曲)은 대미산에서 발원한 신북천에 자리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중심으로 아홉 굽이가 전개된다.
) 등이다. 선유구곡은 문경시 서북쪽에, 쌍룡구곡은 서남쪽에, 석문구곡은 동남쪽에, 화지구곡은 동북쪽에 자리하여 문경에는 구곡원림이 사방에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곡원림은 조선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원림(園林)이다. 구곡원림은 성리학의 전래 이후 설정되고 경영된 원림이므로 성리학자의 삶과 사상이 투영된 생활문화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곡원림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문경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이곳에 거주했던 성리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문경의 빼어난 경관의 특징과 문경에 은거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이 구현하려 했던 성리학적 사상과 삶의 양상 및 경물인식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이 4곳의 구곡원림을 문경의 다른 유적지와 연계하여 문화관광단지로 조성하고 나아가 신태식의 의병가사 유적지와 함께 문학관광 벨트를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목차서론구곡원림과 구곡시가의 연원과전개문경의 구곡원림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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