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을서 본 '비정한 정치' - 7.30 재보선 / 한겨레 신문 기사

2014. 7. 9. 14:12병법 이야기






       

"손대지 마, 배신자야" 동작을서 본 '비정한 정치'

한겨레 | 입력 2014.07.09 11:30 | 수정 2014.07.09 11:50



당내 정치 기본은 '보스와 조직원의 으리으리한 의리'


정치적 실익 앞에선 원칙·신뢰·우정은 설 자리가 없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포연이 자욱하다. '7·30 전투'가 개시되지도 않았는데 곳곳에서 총성이 빗발친다. 본선보다 경선이 뜨거운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재보선은 유별난 구석이 있다. 여야가 후보 교통정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정에 속고 의리에 배반당하는 정치의 냉혹하고 비정한 속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새누리 나경원 vs 새정치 기동민', 우여곡절 끝에 '후보 돌려막기'로 종착역에 도착했다. 서울 동작을 공천 말이다. 나경원이나 기동민이나 동작을과 뚜렷한 연고가 없다. 원래 서울 중구가 지역구인 나경원은 김포, 수원 등지에 거론되다 김문수가 끝내 거부하자 동작을에 대타로 투입됐다. 기동민은 광주에서 표밭을 닦다가 지도부가 금태섭, 허동준을 주저앉히면서 차출됐다. 누가 나오든 동작을 선거는 '빅매치'가 되게 돼있다. 서울의 유일한 재보선 지역이라 언론의 눈귀가 쏠리기 때문이다.

'기동민 전략공천 카드'엔 복잡한 코드가 숨은그림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정치의 본질을 드러내는 온갖 요소들이 골고루 버무려져 있다. 지도부는 '박원순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동민의 본선 경쟁력을 평가한 것 같다. 기동민이 박원순 휘하에서 정무부시장을 했기 때문이다. 나경원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바람'을 타고 솟구친 박원순에 패배한 당사자다. 기동민과 나경원의 대결엔 '박원순 vs 나경원 리턴매치'란 성격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매정한 게 정치다. 지도부가 기동민을 내리꽂자 14년 바닥을 닦아온 허동준은 튕겨나갔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 기동민과 중앙대 총학생회장 출신 허동준은 전대협 대변인을 앞뒤로 이어가며 맡은 막역한 사이다. 정확히 따지면 기동민이 2년 선배다. 국회의원 선거에 '복수공천'은 없으니 둘 중 하나는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기동민은 웃었고 허동준은 울었다. 기동민의 기자회견 현장에서 허동준은 외쳤다. "안돼, 이건 안 된다고. 놔둬, 손대지마. 20년 지기라고? 배신자야!" 허동준은 무소속 출마를 거론하고 있다. 정치에서 우정은 너무도 덧없는 얘기다.

천정배와 당대표 김한길의 관계는 우정도 속절없게 만드는 정치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천정배는 "광주 광산을 전략공천은 유신 때 유정회 의원을 임명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경선을 요구해왔다. 지도부가 전략공천 방침을 굽히지 않자 천정배는 '무소속 출마 불사'의 배수진을 치고 있다. 김한길은 '밀알론' 신봉자다. 최근에도 공식 회의에서 '땅에 떨어진 밀알이 썩으면 수많은 열매를 맺지만,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다'라는 성경 구절을 언급한 뒤 "저도 밀알이 되겠다. 60년 전통을 지닌 자랑스러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다. 그것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밀알론', 참 좋은 말이지만 현실 정치의 냉혹함 앞에선 부질없는 얘기가 되고 만다. 민주당 시절 '밀알'이란 모임이 있었다. 김한길과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 정동채가 멤버였다. 열린우리당 시절 당대표와 원내대표, 장관 등 당·정·청의 핵심부에 포진했든 이들이다. 모임의 뿌리는 이들이 재선이던 16대 국회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서교동의 '백조'라는 한정식집에서 자주 만나던 이들은 아예 모임 이름을 '백조회'로 지었다. 당시엔 김민석도 멤버였다. 그런데 동교동계를 겨냥한 쇄신운동 과정에서 김민석이 이탈하자, 남은 이들이 "개혁의 밀알이 되자"는 취지로 모임 이름을 '밀알'로 바꿨다. 밀알 멤버들은 열린우리당 시절 수시로 만나 의견을 조율했다. '여당 핵심부 이너서클' 구실을 했던 거다. 세월이 흘러 김한길의 밀알론은 친구 천정배를 날리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 정치 앞에서 참으로 덧없는 게 우정이다.

국회의원 공천은 늘 시끄럽다. 공천이 조용하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정치에서 공천은 '이해관계의 총화'이기 때문이다. '제왕적 보스' 시절, 김대중과 김영삼, 김종필은 막강한 공천권을 휘둘렀다. 실력이 없어도 죽을 힘을 다해 충성하는 가신·측근들에겐 공천장을 손에 쥐여줬다. 공천을 받으려고 충성경쟁이 벌어졌다. 보스의 위세는 더욱 커졌고 정치적 리더십은 갈수록 확고해졌다. '제왕적 리더십의 7할'은 공천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권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다. 야권은 두 거목, 김대중과 노무현 이후 권위 있는 리더십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 리더십의 공백기를 채운 건 어슷비슷, 고만고만한 중간보스들이다. 안철수와 김한길, 손학규, 정동영, 그리고 문재인과 정세균, 박지원 등 중간보스들의 군웅할거는 야권을 너무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도 안 하는 일도 없는 무미건조한 야권이 돼버렸다. 야권에서 어느 때보다 공천이 시끄러운 건 '리더십 공백기 중간보스들의 힘의 균형'과 무관하지 않다.

중간보스들은 당내 세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사활을 걸고 싸운다. 안철수·김한길이 대표직에 있는 동안 최대한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하고, 손학규가 지방선거 때 '해당행위'란 욕을 먹으면서도 탈당한 이용섭을 감싸고 돌고, 정세균, 박지원이 허동준을 밀면서 7·30 재보선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차기 당권을 향해 지금부터 착착 세력을 비축하려는 거다. 차기 당권을 먹으면 20대 총선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정치적 실익 앞에 원칙도, 신뢰도 설 자리가 없고, 우정도, 의리도 갈 곳이 없다. 당내정치의 기본 동력은 여전히 '챙겨주는 보스와 충성하는 조직원의 으리으리한 의리의리', 바로 이것이다.

어찌 보면 '중간보스들의 세력균형'이 허물어질 때 비로소 야권의 권위 있는 정치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누구든 '강한 놈'이 출현해 무림을 제패해야 야권에서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효율적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사람이 누구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또는 막강한 '킹메이커'가 될 것이다. 어느 때보다 유별난 야권의 공천 진통은 '리더십 진공상태'의 야권에서 강한 정치 리더십을 창출해 나가는 과도기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값비싼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와 조폭집단이 별반 다를 게 없지 않겠는가.

임석규 논설위원sky@hani.co.kr

■ '정치 빡'을 시작하며…

정치, 그 속엔 세상의 오욕과 칠정이 다 들어있습니다. 치욕과 영광이 교차하며 탐욕과 연민이 뒤섞이고 투쟁과 타협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정치입니다. 그곳을 향해 무수한 손가락질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정치의 진흙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제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정치가 더럽고 구역질난다고 외면하기만 하면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따금, 정치 안팎의 잡사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표리가 부동한 현실의 정치판을 조금이나마 쉽고 정확하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눈으로 세상사를 바로 보긴 어려울 테니까요.

은 기자 생활 대부분을 <한겨레> 정치부에서 보냈으며 정치부장과 정치·사회에디터 등을 거쳐 지금은 정치 분야 사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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