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21. 22:44ㆍ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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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칠곡 (메인)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의 만남을 가지는 장소로 1910년대 망화담 위에 칠우정을 건립하였는데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剛)이 ‘칠우정(七友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의친왕이 이 정자의 이름을 ‘칠우정’이라 나라를 빼앗기는 시절을 만나 이곳에 은거하며 수련한 것으로 보인다. 우포(愚圃) 김양한(金亮漢) 우전(愚田) 김정진(金廷鎭) 통하여 경영하며 완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울분을 산수 자연 속에서 삭이며 마음을 수양하였던 것이다. 이들 칠곡을 흔히 신선유구곡(新仙遊七曲)이라 말하지마는 금번 학술조사를 통하여 선유구곡 아래 신선유구곡이 새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칠우정의 주인공인 칠우들이 칠곡을 새로 지정하여 경영했음이 밝혀졌고 또한 이 선유칠곡(仙遊七曲)의 각 굽이의 명칭이 석각되어 있음이 고증되었다. 괴산군에 있는 외선유구곡(外仙遊九曲)이 그것이다. 1963년 1월 1일 농암면 삼송리가 법률 제1172호에 의거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되면서 외선유구곡은 문경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정태진이 유람할 당시에는 외선유구곡도 문경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 굽이를 유람하고 구곡시(九曲詩)를 지었다. 정태진은 먼저 서시를 지어서 외선유구곡을 유람하는 자신의 감회를 피력하였다. 이황(李滉)이 명명한 지명이다. 외선유동에 구곡을 설정하고 각 굽이의 특징에 맞게 퇴계가 명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이전의 단순히 경치가 좋은 공간이 아니라 천리(天理)가 유행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처럼 구곡원림(九曲園林)은 그 명칭에서부터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성리학적 세계를 만들었다. 제3곡이 학소대(鶴巢臺), 제4곡이 연단로(煉丹爐), 제5곡이 와룡폭(臥龍瀑), 제6곡이 귀암(龜巖), 제7곡이 기국암(碁局巖), 제8곡이 난가대(爛柯臺), 제9곡이 은선대(隱仙臺)이다. 각 굽이의 명칭에서 이미선계(仙界)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학소대, 연단로, 기국암, 난가대, 은선대 등은 신선이 사는 장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이다. 퇴계가 이 굽이의 이름을 이렇게 명명한 것은 이 공간이 신선이 노닌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퇴계가 신선의 세계를 추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성리학자로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것이다. 정태진이 지은 「외선유구곡시(外仙遊九曲詩)」는 다음과 같다.
嘉名肇錫昔何年 아름다운 이름 옛날 어느 해에 시작됐나
隱仙臺
선유칠곡은 제1곡인 칠우대(七友臺)에서 시작된다. 칠우대는 완장리 입구 시내 건너편 높다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데 바위에는 나이 순서대로 칠우(七愚)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계곡 사이로 난 길에 잡목이 우거져 이를 헤치고 어렵사리 올라가면 숲 사이에 칠우정(七友亭)에 이른다. 아쉽게도 칠우정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어지러운 상태로 남아 있었다. 칠우정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앞으로는 망화담(網花潭)이 있는 시내가 보이고 멀리는 선유구곡이 자리하는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 칠우들이 이곳에 모여서 망국의 한을 달래고 시회(詩會)를 가지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은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칠우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위도 : 36° 40′14.04″ ∙경도 : 127° 59′14.74″ ∙고도 : 250.2m 작은 연못을 만든다. 이 못이 선유칠곡 제2곡인 망화담(網花潭)이다.널따란 바위 옆에 세워진 돌에 ‘망화담’이란 아름다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끼가 많이 끼어 돌에 새겨진 글씨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물에 떠있는 꽃들이 많아서 그물질할 수 있는 못이란 의미의 망화담은 봄이면 선유칠곡에 각 굽이의 꽃잎들이 떠내려 와 이곳에 이르러 맴돌지 않았나 여기진다. 망화담(網花潭)에서 시내를 따라 2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널따란 흰 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이 굽이가 선유칠곡 제3곡인 백석탄(白石灘)이다. 주위에는 나무가 없고 다만 흰 바위들 사이로 맑은시냇물만 흘러가고 있다.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 굽이를 찾을 만한데 주위에 그늘을 드리울 만한 나무가 없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찾지를 않았다. 흰 돌들 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바위로 인하여 여울을 만들며 흘러가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 옛날 칠우들은 이 굽이에 이르러 망국으로 인하여 가졌던 울분을 삭이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다. 바위 위에 새겨진 ‘와룡담’ 글씨는 해서와 초서를 배분하고 조합하여 절묘한 느낌을 준다. 위로부터 흘러내려 오던 시냇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못을 이루면서 넘실거려 마치 용이 누워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용이 누워 있는 못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공간은 현재 접근이 쉽지 않아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찾지를 않는다.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약간의 공사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굽이에 이르러 와룡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와룡담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위도 : 36° 40′16.68″ ∙경도 : 127° 58′51.05″ ∙고도 : 245.2m 이 바위 위에 홍류천(紅流川)이라 새겨져 있어 이 굽이가 선유칠곡의 제5곡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차게 흘러오던 시냇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다소 완만하게 흐르게 되는데 이 때문에 흘러가는 물을 시간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홍류는 붉은 물인데 물이 붉을 수는 없으니 이것은 물 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 흘러갔기 때문이다. 물살이 세차게 흘러가면 붉은 꽃잎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공간은 물살이 천천히 흘러가기 때문에 붉은 꽃잎들이 물을 가득 메우고 가기 때문에 시내가 온통 붉은 빛을 띨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홍류천이라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홍류천의 위치는 다음과 같이 측정된다. ∙위도 : 36° 40′76.30″ ∙경도 : 127° 58′47.92″ ∙고도 : 245.9m 홍류천(紅流川)을 굽어돌아 약 50m 정도 오르면 시내 전체를 덮은 넓은 바위에 이르는데 이 굽이가 선유칠곡 제6곡인 월파대(月波臺)이다. 이 굽이는 선유칠곡의 다른 굽이와 달리 바위가 넓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시내가 흘러가 대(臺)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비스듬히 자리하는 바위 때문에 이 굽이를 흐르는 시냇물이 완만히 흐르고 있었는데 달이 뜬 밤이면 달빛이 이 물살 위에 비치면서 하얀 물결을 이루고 흘러가기 때문에 월파대라고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월파대 바위 위에 앉으니 선유칠곡의 경영했던 칠우들이 달밤에 이 굽이에 이르러 하얀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흥에 겨워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월파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위도 : 36° 40′13.08″ ∙경도 : 127° 58′47.62″ ∙고도 : 246.3m
옥하대(玉霞臺)와 인접하여 있다. 옥하대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지만 선유칠곡을 경영했던 칠우들은 이곳이 선유구곡의 제1곡이라는 사실을 알았던지 옥하대 아랫부분에 선유칠곡의 극처를 설정하였다. 널따란 바위가 약간의 격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유구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니 7리를 걸쳐 흐르는 여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따라서 내려오다 이곳에 이르러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칠리계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09.06″ ∙경도 : 127° 57′36.03″ ∙고도 : 246.5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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