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장자의 호접몽, 니체의 혼돈, 그리고 반야심경 /소설, 김영하 저

2014. 7. 29. 10:12일 이야기






       


[2014.01.14. 살인자의 기억법] 장자의 호접몽, 니체의 혼돈, 그리고 반야심경까지... 대체 이 소설 뭐야?!  책읽고

2014/01/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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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저 / 문학동네 / 2013.07.2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첫째, 제목이 신선하다. 별 생각없이, 별다른 정보없이, 나열되어 있는 책 중에서 쉽게 손이 간다.

둘째, 표지에 눈이 간다. 그냥 제목과 컬러가 딱이다. 딱! 구미가 당긴다.

셋째, 단숨에 읽힌다. 한시간만에 다 읽고, 하루 동안 총 3번이나 읽었다. 그만큼 문장이 간결하다.

넷째, 추천하기 좋다. 책을 좀처럼 잘 읽지 않는(?) 님에게 바로 추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섯째, 적재적소에 유머가 양념처럼 배치되어 있다. 재미있다.

 

이상하게 엄청 쉽게, 또 편하게 읽었는데... 책을 덮자마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주인공(살인자)의 심리, 상황들에 대한 생각들 말이다.

 

   처음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장자의 <호접몽>이었다.

장자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가 깨서 했던 생각,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일까? 나비가 나의 꿈을 꾼 것일까?'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지...

 

     
 

은희와 나누었던 그 많은 대화들은 다 뭐란 말인가. 모두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들이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상상이 지금 겪는 현실보다 더 생생할 수 있단 말인가.

 
 

 -142p.

 

 

다시 한 번 읽고 떠오른 건 <니체>였다.

형사들의 취조 속에서 주인공이 느꼈을 심정.. <혼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134p.)>

결국 주인공은 홀로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결국 혼돈 속에 갇히게 된 것은 아닐까... 흠...;;

 

     
 

책을 읽는데 갈피에서 메모지가 툭 떨어진다. 오래전에 베껴 적은 것인지 종이가 누렇게 바랬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_니체"

 

 

 -62p.

 

 

 

   세번째 읽고 나서 떠오른 건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반야심경>이었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것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과연 그것은 애초에 존재했었는가?

그는 대체 자신이 무엇에 졌다고 생각했을까?....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143p.

 

 

 

    마지막으로 쉬운 문체, 적절한 유머 덕분인지 심지어 연쇄살인범인 주인공이 인간적으로까지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쇄살인범의 본능, 내재된 악은 놓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생각하고 읽어보면 굉장히 섬뜩한 부분이다..;;

 

과거 첫 살인을 기억하며, 

- 다만 후회가 되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었던 일에 어머니와 동생을 연루시켰던 거뿐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다그치는 형사의 눈을 바라보며,

- "당신은 이해를 못 해. 누구보다 그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게 바로 나라는 것을.

   형사 양반, 나도 기억을 하고 싶다고. 왜냐면 나한테는 너무 소중한 것이니까."

 

 

스포일러가 될까봐 더 자세히는 못 다루겠지만.

엄청 쉽게 읽히는데 반해, 읽고 나면 엄청난 생각들이 몰려 오는 놀라운 소설임이 분명하다.

 

소설의 해설에 따르면,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는데.. 난;;

장자의 호접몽, 니체의 혼돈, 그리고 반야심경까지... 대체 이 소설 뭐야?!

당신은 이 소설이 잘 읽히는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할 것!

 

<사진 배꼽>

 

 

 기억나는 부분...

 

살인자의 기억법

p.48

 

프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살인자의 기억법

p.57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살인자의 기억법

p.93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살인자의 기억법

p.105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p.126

 

치매 환자로 산다는 것은 날짜를 잘못 알고 하루 일찍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와 같은 것이다. 출발 카운터의 항공사 직원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바위처럼 확고하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태연하게 타운터로 다가가 여권과 항공권을 내민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죄송하지만 하루 일찍 오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직원이 잘못 봤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오."

다른 직원까지 가세해 그가 날짜를 잘못 알았다고 말한다. 더이상은 우길 수가 없게 된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물러난다. 다음날 그가 다시 카운터에 가서 탑승권을 내밀면 직원은 똑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하루 일찍 오셨네요."

이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된다. 그는 영원히 '제때'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채 공항 주변을 배회하게 된다. 그는 현재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어떤 곳. '적절치 못한 곳'에서 헤맨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가 점증해가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살인자의 기억법

p.145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살인자의 기억법

작가의 말

p.171-172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소설가라는 존재는 의외로 자율성이 적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문장에 지배되고,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을 따라야 한다. 소설의 끝에 도달하면 작가의 자율성은 0에 수렴한다. 마지막 문장은 앞에 써놓은 그 어떤 문장에도 위배되지 않을 문장이어야 한다. 무슨 창조주가 이래? 이럴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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