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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예언자는 외세에 의존하고 헛된 우상 숭배에
몰두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진노를 전한다.
그들은 제단을 세워 희생 제물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시고 죄를 벌하실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고쳐 주시고,
모든 고을과 마을에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낫게 해 주셨다. 그분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실의에 빠진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수확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청하라고 이르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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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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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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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발전은 영성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심리학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의존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종교적 심성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초월과 은총의 영역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가운데 심리적으로만 해결하려 할 때 그러합니다.
그러나 현명하게 그 한계를 의식하고 적절히 사용될 때
심리학은 신앙생활의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 좋은 보기가 우리가 무의식중에 지니고 있는
‘하느님 상’의 중요성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이
모두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하느님 상’을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영성 지도자는 우리를 내적으로 병들도록
‘유혹’하는 잘못된 하느님 상으로,
‘업적만을 인정하시는 하느님 상’을 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해낸 일이 바로 자신의 가치를 의미한다는 생각에 고착된 사람은,
하느님 또한 자기가 해낸 일에 따라서만 자신을
인정하실 것이라는 ‘하느님 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깊은 불안감과 의심의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하느님 상은 업적에만
매달리는 삶의 태도를 더욱 강화시킬 것입니다.
이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영성 지도자는
‘열매를 맺으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라고 제시합니다.
그분께서 맡기신 일을 묵묵히 수행한 뒤 그 결과를
신뢰 속에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긴 과정 속의
한 순간이기에 부족함과 실수도 있을 수 있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업적이나 성과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 연민의 마음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짧은 공생활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업적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신께 맡겨진 사람들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하느님 나라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업적으로 예수님을 평가했던 사람들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의 실패만
보았겠지만, 그분이 맺으신 열매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분의
조건 없는 사랑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듯, 그분과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고, 눈앞의 업적이나 인정이 아니라
더 큰 열매를 맺게 하는 거름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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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여 나를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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