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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예언자가 주님께서 티로의 임금에게 내리는 심판의 말씀을 전한다.
그는 많은 재산 때문에 교만해져 자신을 신에 비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무력하게 하실 것이며 이방인들 손에 죽게 하신다(제1독서).
부자 청년이 떠난 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다. 이 말씀에 몹시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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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8,1-10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과연 너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
어떤 비밀도 너에게는 심오하지 않다.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다.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그러므로 나 이제 이방인들을,
가장 잔혹한 민족들을 너에게 끌어들이리니,
그들이 칼을 빼 들어,
네 지혜로 이룬 아름다운 것들을 치고,
너의 영화를 더럽히며, 너를 구덩이로 내던지리라.
그러면 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너를 학살하는 자 앞에서도,
네가 감히 ′나는 신이다.′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를 살해하는 자들의 손에 달린 사람일 뿐이지 신이 아니다.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죽음을 맞이하리라.
정녕 내가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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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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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햇볕 속에 앉아 있는데, 푸른 자줏빛을 띤
큰 물고기가 텅 빈 마음의 어둠 속에서 헤엄쳐 지나간다.
눈을 감자 그 바다가 내 안에 펼쳐진다. 유쾌한 어두움, 즐거운 태양,
내가 염려하는 모든 것이 이미 끝난 세상을 비춘다”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요나의 표징』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담고 있는 바다를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이럴 때면 앞에 인용한, 영성 작가 토머스 머튼의
바다에 대한 묵상이 떠오릅니다.
짧으나 깊디깊은 이 묵상은 매우 오래전부터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감을 준다고 해야 할 머튼의 이 묵상을 되새기면
언제나 바다가 제게로 다가옵니다.
머튼은 바다의 서로 다른 세 가지 깊이의 단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수면이 가볍게 움직이는 바다, 거기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계획을 세웁니다.
두 번째 단계의 깊이에서는 눈을 감으면
다가오는 내적 존재의 동굴과도 같은 어둠이 다가옵니다.
태양 아래 바다 깊은 곳엔 평화가 있고, 우리는 거기서 기도합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더 이상 물처럼 깊지 않고 공기처럼 순수하고
짙은 어두움에서 뛰노는 적극적 삶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밤이기는 하지만
무엇이나 다 영적 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추측이 없으며 깨어 있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지혜의 순간을 만납니다.
“우리는 요나를 고래에게서 구해야 한다.
요나가 자유로워져 열심히 기도하며, 올바른 정신으로
자유롭고 거룩해져 바닷가를 걸을 때 고래는 죽어야 한다.”
아주 오래전 이 묵상을 대했을 때나 지금이나,
알 듯 모를 듯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묵상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 묵상을 대하면 기도에 푹 빠지게 하는 바다가 제 가슴속을
채운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가 깨달았습니다.
이 여름, 그 바다가 다시 제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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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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