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에서의 삶, 무한한 가능성

2014. 10. 22. 19:06과학 이야기






       


멀티버스에서의 삶, 무한한 가능성  우주와 시간 / 과학 

2014/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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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에서의 삶, 무한한 가능성

25 September 2014, New Scientist

   모든 가능한 세상 중에 우리가 가장 좋은 곳에 살던 아니던, 멀티버스(multiverse)는 우리가 가장 좋은 결정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세상 중에 가장 좋은 곳에 살고 있다." 1709년 고트프리드 라이프니쯔(Gottfried Leibniz)가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의, 전능의, 그리고 전지의 신이 악을 참아주시는 이유는 이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운명을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러나 최적(optimal)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쯔는 그런 세상의 최초의 낙관주의자였다.

   그런 그의 주장을 세상은 내버려 두지 않았다. 볼테프(Voltaire)는 캉디드(Candide)의 팬글로스(Pangloss) 박사라는 인물로 라이프니쯔를 풍자했다. 팬글로스 박사는 끝없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식 낙관주의에 매달린다. 하지만 라이프니쯔의 생각이 이겼고 그리고 진화했다. 1926년 제임스 브랜치 캐벌(James Branch Cabell)은 이렇게 썼다. "낙관주의자는 우리가 모든 가능한 세상 중 가장 좋은 곳에 산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염세주의자는 이 말이 사실일까 두려워한다."

    이제 모든 가능한 세상들이란 문제로 돌아가 보자. 50년 전 휴 에버렛(Hugh Everett)은 양자 물리학의 기묘함을 가장 깔끔하게 설명하려면 '새로운 우주가 끝없이 생성'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각각의 우주는 우리가 사는 곳과 약간씩 다르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동의한다. 그중에는 다시 악(evil)이라는 문제를 다루려는 사람도 있다.

   대중문화에서도 평행세계라는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그중에 에버렛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방법으로 종종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긴 해도 만약(what-if)이라는 가정에는 명백한 호소력이 있다. 그리고 평행세계는 공상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로맨스 코메디(romcom)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로부터 스릴러물 파더랜드(Fatherland)까지 모든 곳에 나온다.

  역사학자들은 중요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반사실적 추리(counterfactuals)를 한다. 윈스턴 처칠이 그랬으며 기업에서도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기후 시나리오는 협상 테이블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만약(what-if)이라는 생각의 힘을 더욱 더 사용해야 할까? 멀티버스는 파격적인 개념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린 결론을 고려해 볼 유용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돕게 될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낙관주의가 되어야 할 이유는 있다.

 



- 네이버 블로그 <Physics of Dream>  hansyoo 님의 글 중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