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법변墨法辨 /김정희金正喜

2015. 12. 10. 13:24글씨쓰기

 

 

 

 

 

       묵법변墨法辨/김정희金正喜 古人의 說文集

2015.10.1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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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辨 )

묵법변墨法辨/김정희金正喜


書家墨爲第一。凡書之使毫。卽不過使毫行墨而已。紙與硯。皆助墨以相發爲用者。非紙無以受墨。非硯無以潑墨。墨之潑者。乃墨華之騰采。非止一段善於殺墨也。能煞墨而不能於潑墨者。又非硯之佳者。必先得硯然後可以作書。非硯墨無所施。紙之於墨。亦與硯相似。必須佳紙。迺爲下墨。所以寶墨。澄心玉版。桐箋宣牋。筆又其次耳。東人秪於筆致力。全不知墨法。試看紙上之字。惟墨而已。此百姓日用而不知也。是以韋仲將亦以爲張芝筆左伯紙並臣墨。又宋時 得李廷珪半丸如千金。見古人法書眞蹟墨溜處。如黍珠突起礙於指。可以溯墨法矣。是以古訣云漿深色濃。萬毫齊力。卽並擧墨法筆法。而近日我東書家。單拈萬亳齊力一句。以爲妙諦。不並及其上句之漿深色濃。不知此兩句之不可離開。是夢未到墨法。不覺其自歸偏枯。妄論麗末來。皆偃筆書。一書之上下左右。毫銳所抹。毫腰所經。分其濃淡滑澀。以爲書皆偏枯。其所云濃淡滑澀。可論於墨法。而烏在其筆法之偃與不偃也。混圇無別於墨法筆法。但以筆法擧擬。豈不偏枯者耶。良可慨矣。

   서가(書家)들은 묵(墨)을 제일로 치는데, 대체로 글씨를 쓸 때에 붓털[亳]을 부리는 것은 곧 붓털로 하여금 묵을 묻히도록 하는 데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종이와 벼루는 모두 묵을 도와서 서로 쓰임을 발하는 것이니, 종이가 아니면 묵을 받을 수 없고 벼루가 아니면 묵을 발산시킬 수 없다. 묵의 발산된 것은 곧 묵화(墨華)의 떠오르는 채색이니, 일단(一段)의 묵을 잘 거두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묵을 거두는 데에만 능하고 묵을 발산시키는 데에 능하지 못한 것은 또 좋은 벼루가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벼루를 얻은 다음에야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벼루가 아니면 묵을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종이가 묵에 대해서도 또한 벼루와 서로 비슷한 존재이니, 반드시 좋은 종이가 있어야만 이에 행묵(行墨)을 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묵과 징심당지(澄心堂紙)ㆍ옥판지(玉版紙)와 동전(桐箋)ㆍ선전(宣牋) 등의 종이를 보배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붓은 또 다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직 붓치레하는 데만 힘을 기울이고, 묵법(墨法)은 전혀 모른다. 그래서 시험삼아 종이 위의 글자를 보면 오직 묵 그대로일 뿐이니 이는 백성들이 날로 쓰면서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중장(韋仲將) 또한 말하기를, 

“장지(張芝)의 붓과 좌백(左伯)의 종이와 신(臣)의 묵(墨)을 써야 한다.”

하였고, 또 송(宋) 나라 때에는 이정규(李廷珪)의 반 자루를 천금같이 여겼었다. 그리고 고인(古人)의 법서 진적(法書眞蹟)의 먹물 방울진 곳을 보면 마치 기장알[黍珠]이 불룩 튀어나와서 손가락에 걸릴 것 같은 것을 볼 수 있으니, 여기에서 옛 묵법을 거슬러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결(古訣)에 이르기를, 

“먹물은 깊고 색은 진하며, 수많은 붓털이 힘을 가지런히 쓰게 한다.[漿深色濃 萬亳齊力]”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묵법(墨法)과 필법(筆法)을 아울러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나라의 서가(書家)들은 홑으로 ‘수많은 붓털이 힘을 가지런히 쓰게 한다.[萬亳齊力]’는 한 구절만 집어내어 이것을 묘체(妙諦)로 삼고, 윗구절의 ‘먹물이 깊고 색이 진하게 한다.[漿深色濃]’는 말은 아울러 언급하지 않아서 이 두 구절이 서로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니, 이는 꿈에도 묵법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편고(偏枯)한 데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그리고 망녕되이 논하기를, 

“고려 말기 이후로는 모두가 언필(偃筆)을 썼는데, 한 획의 상하 좌우로 붓끝이 스쳐간 곳과 붓 허리가 지나간 곳에 진하고[濃] 묽고[淡] 매끄럽고[滑] 껄끄러움[澁]을 나누어 포치해서 획이 모두 편고하게 되었다.”

고 한다. 그러나 진하고 묽고 매끄럽고 껄끄러움에 대해서는 묵법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지, 어디 언필을 하고 안하고 하는 필법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묵법과 필법을 구별 없이 혼동시키어 다만 필법만 들어서 논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편고된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위중장(韋仲將) …… 한다 : 위중장은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위탄(韋誕)을 이름. 중장은 그의 자이다. 위탄은 문재(文才)가 뛰어났고 글씨를 잘 쓴 것으로도 유명하였는데, 그는 특히 제묵(製墨)을 잘하였으므로 그가 만든 묵을 세상에서 중장묵(仲將墨)이라 칭했었다. 장지(張芝)는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초서(草書)에 뛰어나서 당시에 초성(草聖)으로 일컬어졌는데, 그는 특히 대단히 좋은 붓만을 사용했었고, 좌백(左伯)은 역시 후한 때 사람으로 특히 종이를 잘 만들기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위탄이 일찍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채옹(蔡邕)이 비록 자신이 글씨에 능한 것을 과시하지만, …… 장지의 붓과 종이와 신(臣)의 묵을 쓰고 있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이정규(李廷珪) : 송(宋) 나라 때 묵공(墨工)의 제일인자로 일컬어졌던 사람이다.
[주D-003]고려 …… 되었다 : 이 내용은 바로 조선 후기의 서가(書家)인 이광사(李匡師)가 지은 《원교필결(圓嶠筆訣)》에 “吾東麗末來 皆偃筆書 畫之上與左 毫銳所抹 故墨濃而滑 下與右 毫腰所經 故墨淡而澁 畫皆偏枯而不完"이라고 한 것을 간추려 인용한 말인데, 여기에서 말한 언필(偃筆)은 곧 필법(筆法)의 한 가지로, 글자를 쓸 때에 맨 첫 획(畫)이 아래의 획을 덮어 가리게 쓰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