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부 「即事二首」其二 - 최북 <북창한사도> / 시와 그림

2015. 12. 15. 22:43美學 이야기

 

 

 

 

 

      

타이틀
    

 

조맹부 「即事二首」其二 - 최북 <북창한사도>         

 

옛 먹을 가니 먹 향 책상에 가득하고

 

 

  앞서 소개한 《제가화첩(諸家畵帖)》에 든 최북의 그림은 모두가 시의도이다. 두 점은 이미 소개했고 남은 2점 가운데 하나인 <창해관일출(滄海觀日出)>은 제목 그대로 ‘푸른 바다에 일출을 보네’라는 시구가 적혀 있는데 이 시구의 출처가 애매하다. 

  ‘창해관일출’이란 시구는 4만8,900수가 실려 있는 『전당시(全唐詩)』는 물론 중국의 여러 한시 검색사이트에서도 전혀 확인이 안 된다. 비슷한 구절로 삼국지의 조조(曹操)가 창해관에서 일출을 보며 지은 「관창해(觀滄海)」에도 ‘동으로 갈석산에 이르러 너른 바다를 바라보네(東臨碣石 以觀滄海)’라는 구절이 있지만 닮았을 뿐 같지는 안다. 또 초당 시인으로 유명한 송지문(宋之問)「영은사(靈隱寺)」에도 ‘누각에서 너른 바다의 해를 바라보며 문에서 절강의 조수를 대하네(樓觀滄海日 門對浙江潮)’이란 구절이 있기는 하다. 여기도 닮았으되 같지는 않다. 

   이런 오리무중의 시구는 조선시대 그림 중에 종종 있다. 이에 대해 화가의 자작시라는 설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근거가 박약하기 짝이 없다는 설이다. 이 화첩만 보더라도 4점 가운데 나머지 3점은 명명백백한 유명 중국 시인의 시를 가지고 그린 시의도이다. 그런데 나머지 한 점만 화가가 자작시를 사용했다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또 있다. 최북도 중인 시인이었으므로 자작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몰라도 다섯자 한 구절만 달랑 적어 넣는 일은 조선시대의 시의도 상식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처사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대개 확인이 되지 않는 시구는 열에 아홉 이상이 화가의 오기(誤記)로 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했으니 이 화첩에 든 나머지 한 점의 시의도도 소개할 의무가 생기게 됐다. 이 그림은 창밖에 오동나무 그늘이 드리운 사랑방에 유건(儒巾)을 쓴 한 선비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안(書案)에는 필가와 벼루가 보이고 종이도 한 자락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면 선비는 붓을 들고 무엇인가 막 써내려 가려는 참인 것처럼도 보인다. 선비 뒤쪽에 열어놓은 벽장에는 책이 수북하게 보인다. 또 방안에는 필통이나 향로가 보여 방 자체도 꽤나 운치 있게 그렸다. 

 

 

 


최북 <북창한사도(北窓閑寫圖)>

지본담채 24.2x33.3cm 국립중앙박물관  

 

 

   가만히 보면 먹만 분명치 않지만 종이에 벼루에 붓이 모두 등장하고 있어 문방사우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 한 쪽에 ‘北囱時有凉風至 閒寫黃庭一兩章 毫生館(북창시유량풍지, 한사황정일양장 호생관)’이라고 시구와 관서가 보인다. 창(囱)자는 창(窓)의 고자(古字)이다.  
시구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고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문인 생활의 한 때를 묘사한 것이다. 출전은 원나라 문인화가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시 「즉사 이수(卽事二首)」에서 두 번째 시이다.(이 시는 간혹「궤(几)」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古墨輕磨滿几香   북창경마만궤향 
硯池新浴燦生光   연지신욕찬생광
北窓時有凉風至   북창시유량풍지 
閑寫黃庭一兩章   한사황정일량장 

옛 먹을 가니 향기 책상에 가득하고 
벼루를 새로 씻으니 찬연히 빛 나네 
북쪽 창에 때마침 서늘한 바람 불어오니 
한가롭게 황정경이나 한두 장 베껴 볼꺼나 

   조맹부는 송나라 태조의 11대 후손으로 말하자면 황족이다. 송 멸망 이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강남의 현사(賢士)을 20명을 뽑아 올리는데 한 사람으로 발탁돼 원나라 한림학사가 됐다. 이로서 동족인 한족에게 훼절의 비난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정치가로서의 공과를 별개로 그는 시 뿐만 아니라 글씨, 그림, 음악에 두루 능한 다재의 문화인이었다. 특히 글씨를 잘 써 따라 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호인 송설도인(松雪道人)을 따서 그의 스타일을 송설체라 했다. 한국에는 고려 말에 전해진 이래 조선 전기에 이 글씨가 대유행을 했다. 글씨로 유명한 안평대군도 말하자면 송설체의 대가였다. 또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남송시대의 궁정 화원에서 유행한 화풍인 원체화풍를 배격했다. 그리고 산수화가 처음 자리를 잡던 당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른 복고주의 화풍을 제안해 새로이 유행시켰다. 

   이 시는 그와 같은 조송설의 시이지만 언제 지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북경의 관직 생활을 마친 뒤 고향 오흥(吳興)에 돌아온 이후일 것으로만 추측될 뿐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재에 앉아 새로 간 먹향을 맡아가며 도가 수련서로는 최고로 치는 『황정경』을 한가하게 베껴본다는 내용은 문인 풍류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경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이후에 많은 문인들이 앞을 다퉈 암송하던 시구의 하나가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최북이 이 시구를 가지고 멋들어지게 자신이 동경하는 문인 생활의 한 장면을 그렸는데 사실 이는 최북만의 심경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무렵 최북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시구를 암송하고 있었다. 

   그보다 다섯 살 많은 심사정도 이 시구를 가지고 그린 시의도가 있다. <초당의 선비>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앞서 최북이 그린 서늘한 바람이 때 맞춰 불어오는 북창과는 전혀 무관하게, 물가에 세워진 수각(水閣)이 그 배경이다. 물가에 세워진 수각이라고 해도 정식으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별도의 칸막이라도 해두었는지 한쪽으로 밀어서 묶어놓은 커튼도 보인다. 그 안에 소담한 서탁을 앞에 놓고 한 선비가 앉아있다. 

   자세히 보면 그 역시 붓을 들고 있다. 역시 무엇인가 쓰려던 참이었다. 초각 밖에는 이번에도 오동나무가 두 그루가 큰 키를 자랑하면서 널찍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초각 뒤쪽으로는 약간 언덕진 곳에서 개울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물살이 있는 개울물이 흘러들고 있다.
한적한 전원 속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는 한 장면으로 어디 흠잡을 데 없는 구성을 갖춘 그림이다. 그 한쪽에 예서 맛이 나는 단정한 글씨로 시 한 편이 적혀 있는데 바로 조맹부 시의 전편이다.(글씨는 현재가 아니라 제3자가 쓴 것으로 여겨진다)

 

 



심사정 <초당의 선비>

지본담채 28.8x24.8cm 개인 


 

 

   그림 속 두 사람 모두 도교 최상급 비서(秘書)인 『황정경』을 베끼려 하는데 한 사람은 아늑한 서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물소리 들리는 수각(水閣) 위에서이다. 이 그림만으로 두 사람의 사이콜로지컬한 멘탈리티를 추측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를 놓고도 해석은 화가 나름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암송자는 이 둘만이 아니었다. 최북보다는 33살, 그리고 심사정 보다는 38살이나 적은 김홍도도 이 시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 그는 이를 시의도로 그리지는 않았는데(아직까지 발견된 사례는 없다) 글로 적어 남긴 것은 있다. (세 사람의 관계는 수차 언급한 그대로 강세황 그룹의 선후배 사이이다)

 


   단원은 글씨도 일품인데 그의 글씨는 아들 김양기『단원 유묵첩』을 만들어 남김으로서 후세에 전하게 됐다. 이 역시 앞서 소개했다. 이 서첩에는 현판 글씨로 보이는 대자서(大字書)에서 시를 베낀 것, 편지글 등 다양하게 들어있다. 여기의 15번째 쪽에 「산거만음(山居漫吟)」이라는 제목으로 시 두수를 적어 놓은 가운데 두 번째 시에 ‘이 구절’이 보인다. ‘산거만음’부터 소개하면 ‘산에 살면서 생각나는 대로 읊조려본다’ 는 정도의 뜻이다. 그런데 이 두 시는 단원이 자작시를 읊조린 것이 아니라 모두 유명한 중국시를 외어서 적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기도 하다. 두 번째 시에 ‘이 구절’이 보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는 것은 조맹부의 시 전체를 베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의 1,2구는 조맹부 시가 분명하지만 뒤따라오는 3,4구는 청나라 옹정제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심성수련을 위해 좋은 글귀를 모아 적어놓은 「열심집(悅心集)」에 보이는 구절이다. 김홍도의 뒤죽박죽은 여기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유묵첩 15쪽에 있는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古墨輕磨滿几香  고묵경마만궤향
硯池新浴照人光  연지신욕조인광 
山禽日來非有約  산금일래비유약 
野花無種自生香  야화무종자생향 

옛 먹을 가니 향기 책상에 가득하고 
벼루를 새로 씻으니 사람 얼굴을 비치네
산새는 약속하지 않아도 매일 날아오고  
들꽃은 씨를 뿌리지 않아도 절로 향기로운 꽃을 피네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향(香)자가 두 번 중복되면 ‘아차’하게 마련인데 단원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2번째의 구 역시 원시의 ‘찬연히 빛나네(燦生光)’이 아니라 ‘사람 얼굴을 비치네(照人光)’으로 얼버무려져 있다. 
베낀 시의 내용이 어떻든 최북, 심사정, 단원 사이에 이 시가 공통으로 암송된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보면 표암 그룹의 선후배 사이에는 중국발(中國發)의 우아하고 문기 넘치는 문인 생활을 동경하는 연대감으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었다고도 생각해보게 된다.

 

 

 

 


김홍도 <송하청송도(松下聽松圖)>  ㅡ>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지본담채 29.2x34.7cm 개인 


 

김홍도. 월하청송도. 지본수묵담채, 29.2 x 34.7cm, 개인 소장

과거 대수장가였던 이병직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최근에야 재공개가 되었다.

단구 낙관이 있는 그림치고는 필치가 매우 꼼꼼한 편이다.

그림 전반을 지배하는 서정을 제시가 증폭시킨다.


 

   그런데 이 유묵첩에 적혀있는 앞쪽 시를 보면 조금 더 할 얘기가 생긴다. 우선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文章驚世徒爲累  문장경세도위루  
富貴薰天亦謾勞  부귀훈천역만노 
何似山窓岑寂夜  하사산창잠적야
焚香黙坐廳松濤  분향묵좌청송도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남아도 해가 될 뿐이요 
부귀의 지극함도 거짓되고 수고로우니 
어찌 산속 조용한 밤에  
향 피우고 조용히 앉아 소나무 소리를 듣는 것만 같으리요 

   이 시는 출전이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단원의 자작(自作)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시의 내용으로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편안한 느낌이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단원 그림 중에 과연 이 시를 가지고 그린 시의도가 있다. 큰 소나무에 파초, 대나무, 괴석으로 둘러싸인 집 한 가운데 한 선비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림인 <송하청송도>이다. 

   성긴 울바자나 처마 끝에 나무로 차양을 덧댄 것은 단원의 가옥 묘사에 여러 번 되풀이되는 트레이드 마크이다. 어쨌거나 그는 유묵첩에 있는 글을 가지고 시의 한편을 멋지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시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조맹부 시구 역시 언젠가는 시의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에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 전하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5.12.15 07:50

  

 

 

 

 


이인문 그림 김홍도 글씨《송하한담도》

109.3x57.4cm 1805년 국립중앙박물관

 

 

 

[漢詩] 山居漫吟(산에 살며 읖조리다) -단원 김홍도| 漢詩 / 古典

 

이보 | 조회 27 |추천 0 | 2010.01.18. 16:14

 

 

송석원시사야연도

 

 

 

 

山居漫吟(산에 살며 읖조리다) -단원 김홍도

 

 

文章驚世徒爲累

문장경세도위누

 

富貴薰天亦謾勞

부귀훈천역만로

 

何以山窓岑寂夜

하이산창잠적야

 

焚香黙坐聽松濤

분향묵좌청송도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남아도 누가 될 뿐이며,

부귀의 지극함도 거짓되고 수고로우니,

어찌 산 속 조용한 밤

향 피우고 조용히 앉아 소나무 소리 들음만 하리오

 

 

 

古墨輕磨滿几香

고묵경마만궤향

 

硏池新浴照人光

연지신욕조인광

 

山禽日來非有約

산금일래비유약

 

野花無種自生香

야화무종자생향

 

옛 먹을 가볍게 가니 책상에 향기 가득한데

벼루에 물 부으니 얼굴이 비치도다.

산새는 약속이나 한 듯 날마다 날아와 지저귀고

들꽃은 심은 이 없으나 스스로 향내를 발하도다.

 

 

                군선도병(群仙圖屛;국보 제139호)

 

   김홍도(金弘道, 1745(영조 21) ~ ?)조선 말기 화가.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 또는 첩취옹(輒醉翁). 본관은 김해(金海). 도화서화원(圖畵署畵員)으로 산수·도선·인물·풍속·화조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후대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 그는 40살 이전에는 정형산수(定形山水)와 도선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며, 40살 이후에는 진경산수(眞景山水)와 풍속화를 다루었다. 금강산을 많이 묘사했던 진경산수의 경우 정선 등의 영향이 얼마간 엿보이지만, 탁월한 공간구성이라든가 강한 묵선(墨線)과 태점(苔點)의 변화있는 구사, 맑고 투명한 화면효과 등은 그의 특색이라 하겠다.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이모저모를 간략하면서도 짜임새있는 구도 위에 풍부한 해학적 감정을 곁들여 표현한 풍속화들은 정선이 이룩했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더불어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동향을 대표하는 업적이다.대표작으로 서원아집육곡병(西園雅集六曲屛) 군선도병(群仙圖屛;국보 제139호) 단원풍속화첩(檀園風俗畵帖;보물 제527호)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 단원도(檀園圖) 섭우도(涉牛圖) 기로세련계도 단원화첩(檀園畵帖)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가 있다

 

cafe.daum.net/ivoworld/3BBX/2478   이보세상

 



 


단원 김홍도 그림감상

"향뜰"-청산 2017.04.26 10:16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백로는 날아가고' 



김홍도. 백로도. 병진년화첩, 1796년, 지본담채, 26.7 x 31.6cm, 호암미술관 소장.


근대화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땅들, 우리는 그 고느적한 습지들을 잃어버렸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북한을 다녀오고서 였다.

그 곳의 천연의 손대지 않은 땅들을 보면서 '김단원이 그린 것은 이 들녘이었구나.'

감탄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이는 또 남한의 땅으로 돌아오면서 느낀 아쉬움이었으니,

우리의 풍경들은 왜이리 변한 것일까.

 

계속 이어지는 들녘과 작은 연못, 그리고 살찐 고기를 찾아

이곳에 몸 담은 백로들이 이 그림의 전부이다.

참 아쉬운 것은 이러한 풍경들을 그린 조선화가는 김단원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조선사람들이 오고 가며 보아오던 평범한 풍경들이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 값어치가 큰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원이 손에 익은 붓을 써서 그린 평온하기 그지 없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에 아무래도 불편한 마음 구석을 어쩔 수 없다.

다만 조선 땅의 아름다움과 김단원의 솜씨에 감탄하고 감탄할 뿐.




▲김홍도. 비학도. 지본수묵담채, 27,5 x 33cm, 서울 개인 소장.


갈필로 그려진 바위산과 키 작은 고목 왼편으로 두루미가 날아오른다.

아마도 단원은 참선 중 이었나보다.

비워둔 것이 허공이 아니라 가득차서 날아오르니

선학임을 비로소 알겠다.



 

김홍도. 선유도. 지본담채, 32 x 42cm, 평양 조선미술관


김단원의 그림은 산수와 풍속이 만난 명작이 많다.

깔끔한 구도며, 명료한 경물이 즐거운 선들 속에서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저리 날아가는 3마리의 새가 그림에 보다 활력을 넣는 듯하다.

풍속이 들어간 단원 그림으로 50대 이후의 득의작이다 .



 

▲김홍도. 송석원시사야연도. 1791년, 지본수묵담채, 25.5 x 32. 개인 소장


김홍도의 절정의 가장 입구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기이한 구도며 가득한 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홍도. 좌수도해도. 지본담채, 26.6 x 38.4cm, 간송미술관 소장


달마는 어느새 아이가 되었다.

지푸라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그만 곤해 잠들었다.

이 가득한 맑음은 무엇일까?

단원이 화선(畵仙)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그림들에서 당당해지는 것이다.

그 격식은 간략하게 하면서 그 뜻은 더 높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롭기 그지없는 파도,동자를 이룬 선들이며,

그 붓질 몇번이나 들어갔고 번개보다 느렸을까.

그리고선 그림을 살려서 이토록 감동은 가득하니,

마치 도를 이룬 스님의 발걸음 같다.

선적인 경지를 내포한 단원 말년 단구 낙관의 걸작이다.



 

김홍도. 청명낭화도. 지본수묵, 41.7 x 48cm, 간송미술관 소장.


홍도라고 관서가 되어있는 특이한 그림이다.

그림을 채우고 있는 것은 파도와 안개일 뿐이다.

그 속에서 파도소리만 가득하다.

단원의 그림은 항상 가득히 자연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김홍도. 소림명월도. 병진년화첩, 1796년, 지본담채, 26.7 x 31.6cm, 호암미술관 소장.


단원의 병진년화첩은 단원절세보첩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중년 단원의 기량을 다 쏟은 화첩이 아닐까 싶은데,

그림들의 세련미가 높을 뿐 아니라, 단원만의 개성이 너무 나도 훌륭하게 녹아있는 화첩이다.

그 중에서도 이 소림명월도는 가장 대표적인 그림인데,

그 전에는 전혀 그림의 중심 소재가 못 되었을 소림이 전면에 포치되고,

그 뒤로 달이 은은하면서도 바르게 있고

그 곁으로 개울물 소리가 화면을 받쳐주는 매우 특이한 그림이다

 

보통 소림이 그려진 곳에 모정과 인물이 중심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 소림명월도에는 관습적으로 등장하던 정자와, 인물, 대나무숲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단원이 그만의 특유한 필치로 만들어낸 우리 산천의 나무들이 주제로

전면에 부각된 것이 놀랍다.

그러면서 그림의 완성도가 높고 훌륭한 효과를 내는 것은 단원이기에 가능한 것인 듯 하다.

단원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화가이다.



 

김홍도. 계변수금도. 병진년화첩, 1796년, 지본담채, 26.7 x 31.6cm,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 월하청송도. 지본수묵담채, 29.2 x 34.7cm, 개인 소장


과거 대수장가였던 이병직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최근에야 재공개가 되었다.

단구 낙관이 있는 그림치고는 필치가 매우 꼼꼼한 편이다.

그림 전반을 지배하는 서정을 제시가 증폭시킨다.




김홍도. 송하유록도. 을묘년화첩, 1795년, 지본담채, 23.3 x 27.7cm, 개인 소장



 

김홍도. 월하고문도. 지본담채, 23 x 27.4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선유도. 병암진장첩, 지본수묵담채, 개인 소장


색을 넣지 않고 고요하게 그린 선유도이다.

조선 남종화라고 할 만한 그림이 아닐까 한다.



 

김홍도. 묵죽도. 지본수묵, 23 x 27.4cm, 간송미술관 소장

김단원의 묵죽도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 묵죽도는 탄은, 수은, 표암 등의 여느 묵죽도와 다른, 단원의 풍모가 가득 배어있는 그림이다.

어두운 바탕을 하고 매우 빠르게 쳐낸 듯한 대잎은 바람에 몹시 시달리는 듯하다

이정의 풍죽그림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에 비해서 단원의 풍죽은 파격에 가깝다.

오주석 선생은 이 풍죽이 단원의 분노를 표출한 그림이라고 하였다.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김홍도. 습득도. 견본담채, 21.5 x 15.2cm, 간송미술관 소장


습득은 당나라 때의 선승이다.

스승인 풍간이 주워다 키웠다 하여 습득이라고 한다

습득은 선종사의화에서 주로 그려졌다.

그래서 김명국이 그린 감필법의 수묵습득도가 남아있다.

김단원의 습득도는 김명국이나 심사정 등의 습득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심사정의 습득도는 남아있지 않다.

 

돌아서 앉아있고, 의복을 검은 먹의 면으로 채워

중심으로 놓게 하는 매우 파격적인 그림입니다

말년의 아호 단구가 관서되어 있다.

단원의 유존작은 현재 500여점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는 안작도 다수 포함되어있다.

 

그럼에도 단원의 기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 또한 상당수 있다.

다음은 그 중에서 몇개의 소품들이다.




김홍도. 병진년화첩 중 옥순봉도. 1796년, 지본담채, 26.7 x 31.6cm, 호암미술관 소장


병진년화첩은 단원의 대표작들이 모아진 화첩으로, 회화적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들이다.

최근에 위작 논란이 불거졌지만, 위작이라고 하기에는, 필치가 소탈하고 구도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현재까지 단원의 기준작이면서 대표작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 화첩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 옥순봉도가 꼽힌다.

완숙기에 이르른 중년의 단원의 솜씨를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김홍도. 병진년화첩 중 조어산수도. 1796년, 지본담채, 26.7 x 31.6cm, 호암미술관 소장


역시 병진년화첩 중 한 작품으로 빼어난 구도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노인이 낚시를 하고 있고, 그 앞으로 시원하게 바위가 뻗어있다.

여백을 많이 주어 시원하기 그지없다.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란 나무는 그 가지가 담백하여 조선회화의 맛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김홍도. 염불서승도. 저본담채, 28.7 x 20.8cm, 간송미술관 소장


비록 소품이나, 단원회화의 신경지이며, 한국 회화의 신경지를 보여주는 초월적 작품이다.

비록 작은 소품이나, 그 가치가 국보로 지정되기에 아깝지 않다고 여겨진다.

노스님이 뒤돌아 좌선을 하고 있고, 달은 크게 떠서 불광을 월광이 대신하고 있다.

동양화단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표현으로,

유연해진 노화가의 붓질 속에서 극도로 창의적이고 초월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스님 밑으로 연꽃이 무리무리 피어있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있어,

말년 선불교에 심취했던 단원의 취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

 



김홍도. 하화청정도. 지본채색, 32.4x47cm, 간송미술관 소장.


단원이 중년에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으로,

알록달록한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다.

당시 청나라에서도 상당히 연꽃그림이 인기를 끌었는데, 청나라의 연꽃그림들과는 달리

상당히 담백한 조선적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화사한 연꽃 위로 푸르고 빨간 잠자리 한마리가 음양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더더욱이 양을 뜻하는 빨간 잠자리가 상승, 파란 잠자리가 하강하는 듯 하여 태극상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화사한 그림이 아닌, 태극적 원리를 내포한 그림인 듯 싶다.




김홍도. 해탐노화도. 지본담채, 23.1 x 27.5cm, 간송미술관 소장

과거 급제를 축원하는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고 간단한 그림이나, 그림의 필치나, 붓의 필치나 자유분방하고

경쾌하기 그지없는, 상당한 즐거움을 주는 그림이다.

 

딱딱한 뜻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격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볼때마다 느끼는 산뜻함이 대단하다.



 

김홍도. 창해낭구도. 지본담채, 38x49.2cm, 간송미술관 소장


단원의 노년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매우 무르익은 구도와 자유롭고 소탈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이 많이 변색하여, 원래의 맛은 많이 잃은 듯 한데

본래에는 널리 차지한 여백이 상당한 깔끔함과 품격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보니, 변색되고 벌레가 먹은 듯 한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거침없고 힘있는 필치며, 단원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붓을 놀렸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그림 중에 하나이다.



 

김홍도. 을묘년화첩 중 해암호취도. 1795년, 지본수묵담채, 23.2 x 27.7cm, 개인 소장


병진년화첩보다 일년 먼저 그려진 화첩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으로,

단원이 완숙기에 이르렀을 때의 작화력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보다시피 이 작품은, 붓질이 꼼꼼하기 그지 없으며, 구도나 세부묘사가 상당히 세련되어있다.

바위나 매의 당당한 모습은 완숙기의 이르른 단원 붓질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매우 소중한 작품이다.




김홍도. 까치. 견본수묵, 27.2 x 20.2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단원의 까치그림으로, 역시 상당히 조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당시 조선이 가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어떠하였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단로라고 낙관되어 있어 말년의 작품으로 생각되며,

작품 전반으로 소재와는 상관없이, 명상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김홍도. 범급전산도. 지본담채, 28.7x37cm,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단구 낙관의 말년 작품으로, 파도의 표현이 상당히 제멋대로이다.

노년에 이룩한 대교약졸의 경지를 보여주는 소탈한 작품이다.

인물은 단원이 이룩한 조선풍속화풍으로 단순하지만 상당히 운치있고 절묘한 작품이다.


- 옮겨 옴 -



blog.daum.net/kycje11/8852617   "향 뜰"